https://youtu.be/cRojMmU8Rlk?si=4cEKhc0ChbLvm1ji
민수기11:1-9
1.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2.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3. 그 곳 이름을 다베라라 불렀으니 이는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은 까닭이었더라
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7. 만나는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라
8. 백성이 두루 다니며 그것을 거두어 맷돌에 갈기도 하며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기도 하여 과자를 만들었으니 그 맛이 기름 섞은 과자 맛 같았더라
9. 밤에 이슬이 진영에 내릴 때에 만나도 함께 내렸더라
불평하고 원망하는 일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해로운가 하는 것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일을 만나든간에 범사에 감사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이스라엘 민족을 보니까 원망 불평을 많이했어요.
하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주었느냐 하면 만나를 주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몸의 기능을 잘 돕기 위해서 비타민도 먹고 단백질도 먹고 탄수화물도 먹고 해야 우리 몸의 기능이 잘 돌아가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만나는 그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었던 것을 믿습니다.
그들은 만나만 40년간 먹어도 영양결핍에 걸리지 않았었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완벽하고 온전한데 우리 인간의 보기에는 그게 맛이 없고 더 맛있는 걸 원하고 더 가지기를 원하고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우리 인간의 보기에는 불완전하고 안좋은거 같고 그렇게 보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좋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을 믿는 다는 것은 내가 잘되는 가운데서는 하나님을 믿고 안 되는 가운데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 그게 아니잖아요?
자녀가 시험을 봤는데 시험에 떨어져도 감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그걸 원하시죠!
하나님은 주실 수 없는 분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는 분이지요.
그런데 왜 안 하시고 왜 안주시냐?
왜 안주실까요?
왜 안하실까요?
안하시고 안주시는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못 하실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나에 대해 불평했습니다.
우리는 더 맛있는 거 먹고싶다는 거죠?
맨날 이것만 먹고 있으니까 맛이 없다는 거죠.
생선도 먹고 싶고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었는데 이제는 맛없는 만나밖에 없다고 얘기하죠.
고기를 먹고 싶어서 원망 불평하잖아요.
그랬더니 하나님은 어떻게 반응하시냐면 31절에서 34절 읽어보시겠습니다.
31.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쯤에 내리게 한지라
32. 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33.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34.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여러분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이 탐욕을 부렸던 그런 자들을 고기는 주셨지요.
하나님께서 메추라기를 진 사방 200만명의 민족이 먹을 수 있는 하룻길 두 규빗을 내리신 거에요.
한 규빗이 장정의 손끝에서부터 팔꿈치까지니까 45cm 잡아서
두 규빗이면 90cm 거의 1미터 높이로 진 사방에 메추라기가 쌓인 거에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기가 먹고 싶다고 그랬더니 하나님이 200만명의 민족의 진 사방 곁 바깥쪽으로 십리길을 1미터로 메추라기를 쌓았으니 한달을 코에서 냄새도 맡기 싫을 정도로 사라람 앞에 10호멜을 거두게 해서 먹게 한 거에요.
여러분 이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은 하실 수 없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하시는 이유, 주시지 않는 이유 그것이 사실은 하나님의 사랑인데도 우리는 모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늘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보다 높고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높음같이 내 생각은 니 생각보다 높고 내 길은 니 길보다 높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눈에는 안되는 것 같이 보여요.
그러나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그 경륜속에서 보면 크게 가장 잘 되는 길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분을 믿고 감사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기를 원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삶에 대해서 원망 불평할 때 내가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원망 불평이 일어날 때 가장 손해보는 자가 누구냐?
누구겠습니까? 스스로 자기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가장 해롭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사실 부족한게 없었어요.
먹을 만나가 있었구요.
마실 물도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필요할 때 반석을 쳐서 물을 내렸고 옷이 안떨어지게 했고, 신방이 안 떨어지게 했습니다.
부족한 게 없었어요.
집은 없었으나 밤에는 불기둥과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낮에는 사막이라서 너무 뜨거우니까 구름으로 덮어서 그들을 인도했고 밤에는 사막에는 아주 추우니까 불기둥으로 그들을 따뜻하게 하면서 그들은 인도했어요.
사실은 부족한 게 없었는데 성경은 그들이 탐욕을 부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어진 거에 만족하지 못할 때 하나님은 그것을 탐욕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맛이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주고 계시다라는 것입니다.
그것에 만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상확속에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됩니다.
원망 불평을 감사로 바꿀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게 영적으로 성장한 자입니다.
우리 육체는 환난이 오면 싫어해요.
우리 육체가 있는한 그래요.
그러나 그것을 즉시 감사로 바꿀 수 있는 능력, 그런 능력이 있는 자가 장성한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믿되 정말 믿어야 됩니다.
그분이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정말 믿는 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을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합니다.
하나님은 기회를 좀 주세요.
말씀으로도 기회를 주시고 여러 가지로 기회를 주시는데 그래도 안 듣고 원망 불평을 계속 하면 하나님은 진노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는 징계라는 것이 옵니다.
그런데 이 징계가 어떤 형태로 오냐면 고난의 형태로 옵니다.
이유없이 내 아들과 딸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또는 내 사랑하는 자가 아프고
내 몸에 질병이 찾아오고
사업이 망하고
그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징계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징계가 찾아올 때 우리가 해야될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하나님, 내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것이 무엇입니까?를 찾아내야 됩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 삶 속에서 말씀하고 계신데도 내가 그것을 거스려서 불순종하는 것을 반드시 발견해야 됩니다.
하나님은 왜 징계하시는가?
왜 우리 삶에 고난이 찾아오는가?
그것은 내 삶에 하나님이 누누이 말씀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한 것이 있기 때문에 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뭐라고 얘기합니까?
내가 내 삶에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있는가를 찾아내라는 겁니다.
찾아내려고 할때에 하나님은 생각나게 하십니다.
딱 떠오르면 그걸 고치면 ‘내 백성이 악에서 돌이키며 넌 내가 그 재앙을 돌이키리라’는 말씀같이 회복시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나 저나 우리 삶에 고난이 찾아올 때 그것이 하나님의 징계의 모습인데 그 고난 속에서 우리의 불순종을 찾아내어서 그 악에서 돌이킬 때 하나님은 그 재앙을 다시 돌이켜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늘 감사하는 자가 되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하고 시소게임하는 자와 같습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면 반드시 돌리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 되심을 믿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을 믿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세 번째는 우리가 원망 불평하게 되면 어떻게 되냐면요?
우리가 하나님 안에 가졌던 소망, 그리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셨던 레마의 말씀,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소망으로 와 있는데 이런 것들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원망 불평하는 순간부터 믿음을 상실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입에서 원망이 터져나오고 불평이 터져 나올 때 여러분 안에 믿음이 있던가요?
믿음이 상실되면 내가 이제까지 갖고 있었던 소망도 잃어버리게 되더라구요.
여러분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나와서 광야를 거쳐서 나오면서 그들은 소망이 있었습니다.
무슨 소망이냐면 새로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소망을 갖고 애굽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소망이 광야의 삶을 살면서 광야가 힘들죠.
겨우 먹을게 있고 겨우 임을 게 있고 겨우 살아 남고 그런게 광야의 삶이잖아요.
광야의 삶을 통해서 원망 불평하는 가운데 그 소망을 잃어버린 거에요.
그래서 가나안을 정탐했을 때 그 소망이 온데 간데 없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라고 말을 했던 그들처럼 만일 내 삶에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찬다면 우리는 내가 처음에 가졌던 하나님 안에서 가졌던 나의 그 소망, ‘어떻게 쓰임받을 것인가’ 하는 그 소망 그런 소망까지도 희미해지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건 참 무서운 얘기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내가 어떻게 쓰임 받을 것인가 기대하고 소망하고 가는 그 길에 있어서 내 앞에 벌어져 있는 삶에 대하여 원망과 불평을 가질 때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함께 그 소망마저도 희미해지고 나중에 힘을 잃게 되더라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대한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삶에 대한 불평은 사실은 누구한테 하는 불평이겠습니까?
간접적으로 하나님께 하는 불평입니다.
‘하나님 내 인생을 왜 이렇게 만들어놨습니까?’
‘정말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까?’
이렇게 반문하고 있더라는 것이죠.
그 얘기를 들을 때 하나님의 심정은 어떨까요?
그러나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믿어드리는 여러분의 믿음을 보여드릴 때 하나님은 반드시 좋은 것으로 반드시 갚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왜 원망하고 불평하는가?
오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고 고기를 달라고 탐욕을 부린 것처럼 결국은 원망 불평이 어디서 비롯되었느냐?
내 욕심에서 비롯되더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내가 주의 일을 위해서 내가 원하고 있는데 왜 안되는 걸 보니까 그게 어떻게 내 욕심입니까?
내 욕심일 수가 많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펼처놓으신 삶에 대하여 내가 감사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자체가 내 육체의 소욕 때문에 내가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영으로 사는 자, 영으로 받는 자는 결코 불평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감사로 바꿀 수 있는 자가 영으로 받는 자의 모습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감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없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살자.
없는 걸 바라보고 살면 늘 원망과 불평입니다.
그러나 있는 걸 바라보고 살면 얼마나 감사한지...
남편 건강한 것만도 감사하지 않아요?
두 다리 성한 거, 중풍 안 걸린 거, 암에 안 걸린 거.
아프면 내가 시다발이 하느라고 인생 다 가잖아요.
자녀들이 건강한 거 감사하고, 세를 들어 살지만 비를 피할 집을 주시는 걸 감사하고.
그러니까 있는 걸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있는 게 더 많은데 없는 것 때문에 마음아파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그런 것을 하나님을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누가 끌고 가고 계실까요?
하나님이요.
이스라엘 민족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우리도 안 보이지만 성령께서 우리 앞서 가시면서 인도하고 계신줄 믿습니다.
그런데 그 인도함을 받는 그 길에서 분명 그 길에서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죄라는 것입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죄를 계속해서 지을때는 하나님은 그냥 두지 않습니다.
진노가 임합니다.
내 삶에 대하여 원망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내가 적극적으로 짓고 있는 죄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 속히 내 삶에 원망하고 불평이 올라올 때 어떻게 해야 되는가?
- 주님을 바라보라
주님이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을 바라볼 때 그 은혜를 생각하면 순간순간 원망 불평이 감사로 바꾸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생각하고 받은 은혜를 생각하고 그리고 나에게 있는 것을 생각하라.
그 다음에 네 번째는 이스라엘 민족들은 주로 하나님을 원망하기 보다는 모세를 원망했어요.
모세는 보이는 사람아닙니까?
그래서 모세를 주로 원망했어요.
그러나 모세를 원망했지만 사람을 원망하는 것이 하나님을 원망한 것이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로 사람을 원망하죠.
내가 저 사람 때문에..
그리고 우리는 환경을 원망합니다. 내가 자라온 환경 때문에.
그러니까 사람을 원망하고 환경을 원망하지만 이것은 사실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죄가 뭐냐면 ‘내가 저 사람 때문에 요모양 요꼴이다’
그런 얘기 많이 하죠.
내가 좀더 좋은 남편을 만났으면 고생 안하고 편하게 살 걸.
남자감은 경우에는 내가 좀더 좋은 아내를 만났으면 정말 잘 살 걸.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이 모든 것들이 사람에 대한 원망이거든요.
그게 사실은 사람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더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 메추라기를 십리길을 두 규빗으로 쌓을 수 있는 하나님이 왜 그 사람을 안 바꿔 놓고 왜 그 사람이 아직도 그 모양이냐 이거에요.
이거 누가 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그냥 두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란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냥 두고 계신 거에요.
그거에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냥 두시는 거에요.
하나님이 하고자 하시면 얼마든지 하실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것에 대하여 내가 원망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과 똑같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똑바로 하십시오.’
‘똑바로 좀 안 하실래요?’
그 얘기와 똑같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서 여러분이나 저나 많은 교훈을 얻어야 돼요.
저는 항상 내 안에 선교를 나가고 싶어요.
그런데 남편은 꼼짝을 안해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냐?
지금 현재 나에게 펼쳐주신 삶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문을 연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자꾸 길이 막히는 거 같고 이건 인간의 생각이죠.
우리의 방법으로 내가 가진 수단과 방법으로 그걸 열려고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높아서 하고자 하시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여십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 때를 기다리고 그 소망을 저버리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실 것이다. 할렐루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런 방법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아멘입니까?
그들이 고기를 먹고 싶어할 때 하나님께서 바람을 불게 해서 메추라기를 쌓이게 할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건 불가능하다.
여기는 사막인데 바다도 없고 아니면 하나님이 소떼를 몰고 오실 것인가?
뭐 어떤 상인들이 지나가서 소떼를 뺏앗아서 먹을 것인가?
이것이 다 인간의 방법이고 사람의 생각이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방법을 쓰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을 쓰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지 못하는 것을 쓰시는 하나님.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믿어야 되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기다려야 되요.
우리 하나님이 바로 그런 분이라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사람을 원망할 것이 아니다.
사람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으로 그것은 하나님 앞에 짓는 적극적인 죄더라는 것입니다.
이 죄를 내가 없이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람을 원망하지 말아야 됩니다.
누가 하고 계신다구요?
하나님이 하고 계신다.
그러니까 우리 입에서는 어떤 말이 나오지 말아야 되겠습니까?
당신 때문에 누구 때문에 하는 말들을 하지 않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얘기는 간접적으로 하나님 때문에 그런 얘기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다섯 번째는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이 다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들 보면 물론 자기 소욕 때문에 하고 있는데 결국 이 땅위에서 삶이 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망하고 불평이 나오더라는 것입니ᅟᅡᆮ.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삶은 결가가 아닙니다.
결과가 아니고 과정입니다.
결과는 언제 나타나요?
우리가 죽고 나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저 하늘나라에서 나에게 상이 주어질 때 그 때 결과가 나타납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이 모든 환경 이 모든 것들은 과정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서 내가 좀 잘 살고 못살고 하는게 문제가 아니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땅은 하늘나라에 가서 상을 받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위에서 잘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내 삶을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안되지요.
우리는 저 하늘나라에 가서 상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이 땅위에서 저 사람은 잘 되고 나는 왜 못되나 이런 마음가짐들이 하나님 앞에서 옳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왜냐 이 세상의 삶은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결과는 어디에 쌓이고 있는가?
하늘나라에 쌓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뭐라고 얘기하느냐 하면 너희가 나와 함께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너희가 나를 위하여 고난을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내 삶에 고난이 없다면 너무 그냥 잘 된다면 그건 문제가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고난이 없을 수가 없는 거에요.
왜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을 통해서 빚어가길 원하시는데 내 삶에 고난이 없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는 것과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케어하지 않는다는 말과 똑같다는 얘기입니다.
나에게 고난이 심하면 심할수록 하나님은 나를 너무 사랑하시는구나! 그걸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우리 인간은 고난이 없으면 하나님께 항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뭘 주시길 원하시냐면 돈도 아니고, 이 세상도 아니고,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 자신을 우리가 얻게 하기 위해서는 고난을 주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가장 큰 복이거든요.
우리가 천국에 가서도 우리가 얻을 가장 큰 상이 뭐냐면 하나님 자신이에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서 내가 내게 지극히 큰 상급이라 그러셨습니다.
하나님을 얻는거, 고난을 통해서 돈 좀 잃고 못 사는게 문제가 아니라 그 속에서 내가 하나님을 얻는 그 자체가 영원한 곳에서 복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진짜 복을 주시기 위해서는 이 세상에서 안되게 하십니다.
고난이 이 고난 뒤에는 저 고난이 오고, 또 어떤 고난이 오고 그렇게 해서 계속해서 파도처럼 밀려오게 하십니다.
그런데 고난이 없고 편안하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너무 고난이 없다면 둘중에 하나입니다.
너무 성숙했거나, 이삭처럼.
이삭은 자기 인생 모든 것을 번제단에 올려놨잖아요.
이삭처럼 모든 것을 미리 다 받쳤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관심에서 벗어난 자는 고난이 없습니다.
여러분 악인들이 이방인들이 잘 되는 거 하나님은 관심이 없어요.
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잘 되는 거에요.
그래서 하루는 파숫군이 날이 밝아오는 것을 기다리면서 하나님께 물어봤어요.
하나님 저 악인들은 저렇게 땅에서 형통합니까?
왜 하나님을 믿는 나는 그렇게 형통하지 못하고 그들이 왜 형통합니까?
그 답이 오기까지 기다렸어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뭐라고 하냐면 저 악인들의 형통을 니가 부러워 하지 말아라
그들은 영원한 곳에서 멸망한다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에 고난이 있고 환란이 있는 그 자체를 다시 한번 내 생각을 바꿔서 감사로 받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은 과정이기 때문에 이 과정 속에서는 헐벗고 주립니다.
헐벗고 주리게 하신 이유가 뭐냐?
우리에게 그 크신 하나님을 주시기 위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태도는 어떻게 해야 되냐?
주님이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고 주먹질하고 침 뱉고 그랬잖아요.
그럴 때 주님의 입에서 나오신 말씀이 있습니다.
뭐라고 그랬냐?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그랬어요.
여러분 우리가 당하는 그 고난과 환난속에서 우리 주님이 하신 이 고백 ’옳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앞에 있는 즐거움을 주시기 위해서
이렇게 된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이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가 우리가 가야 될 길을 지도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고백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져서 하나님 앞에 원망 불평하는 죄를 짓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하나님 우리는 이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나님이 그들을 백성 삼으시고 광야로 이끄셔서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그 과정속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믿지 못했고 주어진 삶 속에서 더 맛있는 거 달라고 원망하고 불평했고 또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했으며 그들은 하나님이 펼쳐놓으신 그 삶 앞에 감사하지 못했고 늘 육체의 소욕을 따라서 원망 불평함으로 말미암아 많은 원망 불평이 가져다주는 그 해악을 당하면서 그렇게 살았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만일에 이 광야의 삶속에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삶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처럼 그렇게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런 속에서도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믿고 그 경륜을 믿고 하나님께서는 결국은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이라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어드리는 그 믿음안에서 감사할 수 있는 우리 모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주실 것을 믿사옵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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