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음악

[스크랩] 인생이 꼬일 때 권하고 싶은 영화 <젤리피쉬>

하늘이슬 2008. 11. 5. 17:04

 

 

S#1-삶은 해파리다(?)

 

오늘 원래 <라벤더의 연인들>를 보려했는데 오전에 일이 생겼다. 12시 50분 딱 한 차례 하는 영화라 주말에 봐야 했는데, 토요일 기회를 놓쳤다.

 

대신 좋은 영화 한편을 건졌다. 2008년 최고의 영화로 마음 속에 담아두고 싶은 영화다. 영화 <젤리피쉬>는 마술적인 영화다. 인생에 대해 탐미하고 찬미하고 싶게끔 만드는 영화다.

 

영화 속 줄거리는 그리 밝거나 유쾌하지 않다. 극장을 향하는 시간, 여우비가 오락가락 내리며, 광화문 거리를 적시듯, 영화도 우리를 말렸다 적셨다 한다. 초현실적인 느낌도 가득하다.

 

그러나 자의식을 드러내려다 자칫 싸구려 감상주의에 빠질 수 있는 초현실주의 영화의 단점과 부작용을 이 영화는 철저하게 피해간다.

 

이틀 전 소개한 <누들>처럼 이 영화에도 꼬인 인생들이 등장한다. 한 둘이 아니다. 남자친구에게 차이고 직장 매니저는 사사건건 시비고, 자선사업가인 엄마는 텔레비젼에선 아이들에게 집을 지어주자며 사랑을 외치면서도 딸에겐 관심조차 없다.

 

필리핀 여인도 있다. 그녀는 아이들을 돌보고 싶지만, 맡겨지는 건, 맨날 노인들을 돌보게 되는데, 더욱 꼬이는 건 하루도 되지 않아 노인이 죽거나, 히브리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곱지않은 시선으로 보는 할머니가 걸린다. 할머니는 더구나 딸과 만났다 하면 싸움이다. 또 한 여자. 결혼식이 끝나자 마자 다리가 부러지고, 그 상태로 신혼여행을 가지만, 이거 왠걸 호텔 1층 방엔 매연과 하수구 냄새가 가득하다. 싱글침대 두개를 붙여 급조한 더블베드가 한눈에 보인다.

 

 

이 영화는 3명의 여자를 교차시키며 그들의 인생을 보여준다.

지그재그로 보여지는 이야기가 탄탄하게 느껴지는 건, 편집을 잘 했다는 말이리라.

웨이트리스 바티야, 인생이 꼬인다는 말은 이 정도는 되야 명함을 내밀것 같다.

차이고, 짤리고, 엄마에겐 냉대받고, 임대로 사는 집은 빗물이 새어

홍수를 이룬다.  매일 침울하게 해변가를 걷는 그녀에게 빨간 머리의 소녀가 다가온다

말 한마디 없이 그저 그녀를 따라온다. 혹까지 생겼다.

 

허리엔 자그마한 튜브를 하고선 열심히 뛰는 꼬마 소녀 하나

보는 것으로도 영화는 제값을 한다. 정말 완소녀다.

문제는 상반신 누드로 나오는데, 약간 몽환적인 느낌까지 발산한다.

사진 작가 샐리 만의 사진 속 아이처럼......(저렇게 이쁜 딸 하나 하늘에서 뚝 떨어지면 좋겠다)

 

 

영화를 보는 동안 고민을 했다......도대체 저 꼬마 여자애는 누구인게야?

곰곰히 생각하니, 소녀는 바티야의 유년시절, 또 다른 그녀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이 무겁고 힘들때 과거의 기억에 매몰되거나, 빠져가는 건 인지상정이다.

정치적 환멸을 겪을 때 "그때가 좋았지"란 근거없는 환상에 빠지는것과

다를바 없다. 사람에게는 기억 속 과거가 항상 아름다운 법이니까.

 

영화의 주요한 메세지는 감독의 칸느 영화제 수상식 소감에

드러나 있다. "우리는 인생을 스스로 디자인 할수 있다는 환상 속에 빠져 산다. 그러나

그 누구도 우리 내 삶을 통제할 수 없다" 그러니 즐겨라.

 

 

위 사진에 나오는 커플도 만만치 않다. 결혼 첫날 다리가 부러진

신부와 카리브해에 여행을 가고 싶었던 신랑은

허접한 호텔방에서 화가 단단히 난 연인을 달래느라 여념이 없다.

답답하고 하수구 냄새나는 호텔방은 왠지 앞으로 살아가게 될 그들의 인생을

상징하는 은유적인 장치가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분명 보는 내내 우울함을 수반한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그 우울함엔 끝이 보인다는 게 영화의 매력이다.

이 영화는 매우 초현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구려처럼, 누군가를 가르치려 하거나

감독 자신의 세계로 빠져들지 않는다. 절제의 힘이 뛰어난 영화다.

 

 

아들에게 점수를 따고 싶지만

필리핀에서 멀리 이곳 텔 아비브까지 온 그녀는 완전히

아들의 눈밖에 났다. 그녀에게 시시건건 돌아가라며 큰 소리를 치는 할머니는

연극을 하는 딸과 사사건건 싸운다. 그래서 통했을까?

둘은 언제부터인가 친해진다.

 

 

기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영혼을 묶는 그물이라는

말이 딱 떠오르는 영화. 결국 이 영화엔 여러가지 가능성을 가진 관계들이 나온다.

부모와 아이의 관계, 친구와 친구사이의 관계, 연인들의 관계, 그 관계는 항상 안정되고

튼튼하지만은 않아서, 불안과 우울의 바다 속을 유영한다.

 

햇살 아래 개체수를 증식하는 해파리처럼 헤엄치라

표면은 미려한 빛깔을 드러내지만, 촉수와 독을 내면에 가진 메두사 해파리 처럼

관계의 어려움 속을 유영할 뿐인 우리 내 인생. 그러나 즐겨라. 웃어라

우리들의 관계가 빈 병에 채운 물 위를 항해하는 배가 아니듯,

 현실이 아프고 힘들더라도, 그 속에서 빛나야 하는 실체임을, 영화는 말한다.

 

영화 속 흘러나오는 장미빛 인생(La Vie En Rose)가 너무 좋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해파리 냉채가 먹고 싶은 게냐.....이런이런)

 

 

playstop

 

 

출처 : 김홍기의 문화의 제국
글쓴이 : 김홍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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