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스크랩]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하늘이슬 2009. 6. 24. 16:31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 개울 물 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 거야. 잠 없는 난 당신 간지럽혀 깨워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 길 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 들고 산책해야지. 삐걱거리는 허리 주욱 펴 보이며 내가 당신 "하나 두울~~" 체조시킬 거야.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 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래 입맞춤하고 싶어.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아주 부드러운 죽으로 우리의 아침 식사를 준비할 거야. 이를테면 쇠고기 꼭꼭 다져넣고 파릇한 야채 띄워 야채죽으로 하지. 깔깔한 입 안이 솜사탕 문 듯 할 거야. 이 때 나직히 모짜르트를 울려 놓아야지. 아주 연한 헤이즐럿을 내리고 꽃무늬 박힌 찻잔 두 개에 가득 담아 이제 잉크 냄새 나는 신문을 볼 거야. 코에 걸린 안경 너머 당신의 눈빛을 읽겠지. 눈을 감고 다가가야지. 서툴지 않게 당신 코와 맞닿을 수 있어. 강아지처럼 부벼 볼 거야. 그래 보고 싶었거든... 해가 높이 오르고 창 깊숙이 들던 햇빛 물러 설 즈음... 당신의 무릎을 베고 오래오래 낮잠도 자야지. 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 볼까...? 어쩌면 그 때는 창 밖의 많은 것들 세상의 분주한 것들 우리를 닮아 아주 조용하고 아주 평화로울 거야.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당신의 굽은 등에 기대 울고 싶어. 장작불 같던 가슴, 그 불씨 사그러들게 하느라 참 힘들었노라. 이별이 무서워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노라. 사랑하기 너무 벅찬 그 때 나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말할 거야. 겨울엔 백화점에 가서 당신의 마른 가슴 덥힐 스웨터를 살거야. 잿빛 모자 두 개 사서 하나씩 쓰고 강변 찻집으로 나가 볼 거야 눈이 내릴까... 봄엔 당신 연베이지빛 점퍼 입고 나 목에 겨자빛 실크 스카프 메고 이른 아침 조조 영화를 보러갈까...?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같은 가을엔 희끗한 머리 곱게 빗고 헤이즐럿 보온병에 담아 들고 낙엽 밟으러 가야지. 저 벤치에 앉아 사진 한번 찍을까. 곱게 판넬하여 창가에 걸어두어야지. 그리고 그리고 서점엘 가는 거야. 책을 한아름 사서 들고 서재로 가는 거야. 나 늙으면 그렇게 그렇게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출처 : 은혜(恩惠)
글쓴이 : 은혜 (恩惠)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