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즈 루어만 감독이 범상치 않은 비주얼리스트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로미오와 줄리엣>을 처음 봤을 때의 생경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리가 아는 도시 베로나는 라스베가스를 방불케 하는 호화로운 네온싸인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고전적 영국식 의상이 아닌 전형적인 갱스터 패거리의 옷차림을 하고서, 칼이 아닌 권총을 들고 설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입에서 나온 대사들은 영락없이 셰익스피어가 과거에 써 내려갔던 그 대사들이었다. 폭주하는 비주얼과 확실히 불량스런 캐릭터, 거기서 나오는 "사랑이 가냘프다고? 너무 거칠고, 잔인하고, 사나우면서도 가시처럼 찌르는 게 사랑이네" 같은 감미롭기 이를 데 없는 고전적 대사들의 조합은 리메이크를 넘어선 고전의 재창조에 가까웠다. 그렇게 자칫 젊은 세대에겐 고리타분할 수도 있었을 셰익스피어의 고전적 러브스토리는, 수족관을 사이에 둔 첫 만남과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첫 키스, Des'ree의 'Kissing You'와 같은 음악들로 상징되는 시대의 아이콘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누구에게나 알려진 클래식 원작을 영화화할 때, 어차피 아무리 잘해도 본전 소리를 들을 바에야 아예 새로운 영화인 것처럼, 처음 만나는 조합들이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는 생판 다른 영화로 만들어 버리자는 듯한 바즈 루어만 감독의 그런 전략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가장 위대한 미국소설'이라 일컬어지는 <위대한 개츠비>가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그래서 우려보다는 기대가 컸다. 이 고전적 원작을, 힙합 음악을 깔아놓고 전개하고, 심지어 3D로 만든다니. 다만 우려가 있었다면 바즈 루어만 감독의 실력에 굴곡이 어느 정도 있다는 점 정도였다.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을 읽기로 결심한 나는 그래서 그가 영화로 만든 <위대한 개츠비>를 기존에 갖고 있던 특정한 프레임 없이 보게 됐고, 그 결과 영화 <위대한 개츠비>는 세간에서 들려왔던 우려에 비해 훨씬 인상적인 영화임을 알게 되었다. 휘황찬란한 비주얼과 비장한 이야기의 익숙치 않은 만남은 이번에도 효과를 본 것 같았다.
때는 바야흐로 미국에 대공황이 닥치기 직전, 주가는 있는대로 치솟고 금주령 속에 술값은 폭락해 사람들은 내일이 없을 것처럼 흥청망청 놀아제치던 1920년대. 시대의 흐름을 따라 역시 한몫 잡고자 하는 닉 캐러웨이(토비 맥과이어)는 롱아일랜드 근처의 이스트에그로 이사를 온다. 벼락부자들이 모여 사는 이스트에그와 유서 깊은 부호 가문들이 살고 있는 웨스트에그는 강 하나를 두고 마주하고 있다. 웨스트에그에 사는 사촌 데이지(캐리 멀리건)와 그녀의 남편이자 닉의 동창인 톰 뷰캐넌(조엘 에저튼)을 오랜만에 만난 닉은 자기 옆집에 사는 그 대단한 부호에 대한 소문을 처음 접한다. 그는 바로 개츠비라는 인물로, 자신의 존재는 드러내지 않은 채 날마다 내로라 하는 유명인사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대저택에서 파티를 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저 적당한 성공만 좇아 대도시로 온 닉은 데이지 몰래 바람을 피는 중인 톰의 소개로 톰의 내연녀인 머틀(아일라 피셔)과 그 친구들을 만나는 등 점차 미국 도심의 책임없는 유흥 그 핵심에 다가선다. 그리고 불현듯 받은 개츠비로부터의 파티 초대장. 평소 누구에게도 초대장을 보내지 않는다는 개츠비가 왜 자신한테만 초대장을 보내는지 의아한 가운데 닉은 처음으로 개츠비 저택의 파티에 참석한다. 말이 파티지 장내는 마치 록페스티벌의 대공연장을 방불케 한다. 그 속에서 닉은 예상치 못하게, 자신을 제이 개츠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라 소개하는 남자를 만난다. 드디어 자기 정체를 드러낸 개츠비는 여러 활동을 통해 닉과 점점 친분을 쌓더니, 얼마 후 본격적인 목적이었다는 듯 조심스런 제안을 한다. 데이지와의 티 타임을 마련하되, 그곳에 자신 또한 있게 해달라는 것. 알고 보니 개츠비는 지난 시절 데이지와 애틋한 사랑을 나눴던 사이이고, 전쟁통에 헤어진 그녀와 약 5년만에 재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개츠비와 데이지는 5년 만에 다시 만나지만, 격변한 세상과 개츠비의 비밀은 이들의 이야기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몰고 간다.
이번 <위대한 개츠비>에서도 바즈 루어만 감독은 '익숙하지 않은 조합'을 영화의 매력 포인트로 부각시킨다.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인데, 힙합과 전자음악 등 요즘 세대의 음악들이 거리낌없이 흘러나온다. 단순히 BGM으로 쓰이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파티장에서 실제로 그 음악을 틀고 있는 것 같은 효과까지 준다. 원작소설의 무게감이나 시대적 분위기에 따른 예상과 다르게 영상은 당연히 그답게 감각적이고 원색적이고, 때론 박진감 있기까지 하다. 게다가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 시대극이면서 3D 영화다. 지금껏 멜로영화가 3D 형태를 한 적은 거의 없으니 생소할 만도 하다. 그러나 약 100년 전에 존재했던 사람들의, 어쩌면 우리와는 동떨어져 있는 것 같은 이야기를 현대에도 유효한 모습으로 끌어오는 이런 재간은 그의 영화 외에서는 쉬이 만날 수 없는 고유의 즐거움이다. 충실함 대신의 이런 도발은 일단 재미있는 데다, 누구에게나 알려진 고전을 통해 오히려 자기 만의 개성을 살려낼 수 있는 영리한 전략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조합 속 각가의 요소들은, 상당히 쓸모가 있다.
개츠비 저택에서의 파티 장면을 정점으로 하여 전시되는 부자들의 화려한 일상, 찬란한 유흥은 바즈 루어만의 확실한 장기인 과잉 비주얼의 집약이자, 곧 무너질 모래성에 기대 취해가던 당대의 한껏 부푼 아메리칸 드림을 명징하게 표현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아마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 같은 최고 부유층의 화려한 파티 면면, 사람들의 각기 다른 희로애락을 품고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쌓아올려지던 도심의 마천루, 음악과 도박, 유흥이 없으면 하루도 못살 것 같아 보이는 부자들의 여유롭고 넉넉한 일상. 영화는 이 장면장면들을 요란하면서도 스타일리쉬한 현대 음악과 버무려, 21세기의 사람들이 20세기 초의 거품 같던 부흥기를 충분히 실감할 수 있도록 해준다. 미국 힙합계의 거물이자 '비욘세의 남편'으로도 유명한 제이지(Jay-Z, 숀 카터)와 사운드트랙은 물론 무려 영화의 '총제작'을 맡은 만큼, 힙합과 클래식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세련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음악은 고전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현대적인 리듬을 입혔다. (실제로 제이지는 영화 속 배경과 가까운 브루클린 출신이기도 하다.)
영상 흐름의 속도 조절에도 매우 능숙한 바즈 루어만 감독은, 이를 통해서도 영화가 전하는 순간순간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응축해 전달한다. 수시로 활용되는 배속 재생이나 슬로우 모션은 혼란스러운 상황을 경쾌하게 조망하거나, 비극이 벌어지는 순간에 신이 벌이는 짓궂은 장난을 좀 더 세밀하게 목격하게 하거나, 인간의 감정이 맞받아쳐지지 못하고 공허하게 메아리치는 순간들을 포착한다. 덕분에 영화는 2시간 20분이 넘어가는 긴 러닝타임치고는 늘여주고 조여주는 리듬감이 꽤 살아있다. 그리고 이런 영상의 완급 조절은, 고전 멜로 서사극에 3D라는 장치를 활용한 감독의 선택에 나름의 근거를 부여한다. 영화가 의도했을 현장감, 몰입감, 속도감을 전하는 데 3D 효과가 일조하는 것이다. 원경에서 근경으로 빠른 속도로 줌인하거나, 긴 거리를 쏜살같이 이동하거나 하는 시각적 기교를 감독이 전작에서도 적잖이 사용해 왔던 터라, 새삼 생각해 보면 그런 기교를 보다 입체적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도와 줄 3D 기술을 감독이 이번 영화에서 처음 도입한 게 아주 의외는 아닌 듯도 싶다.
원작의 고전미가 영화의 화려함에 가려졌다는 평도 적잖이 봤다. 내가 원작 소설을 아직 다 읽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이런 평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바즈 루어만 특유의 요란한 묘사와 음악과 영상의 다종교배는 개츠비의 삶과 거품같던 당대의 공허함을 표현하기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현재의 그 모든 성공을 오로지 사랑을 위해 이룬 개츠비의 삶은 입지전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이런 개츠비의 인생 면면, 당사자로부터 들으면서도 그것이 정말 진실인지 확신할 수 없는 순간순간의 캐릭터를 영화는 철저히 리얼리즘에 입각하는 대신 마치 한 편의 전설, 거창한 무용담을 펼쳐놓듯 포장하고 과장한다. 개츠비가 자기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그를 둘러싼 소문들이 한올 한올 흘러나오고, 이웃집 거주자로서 닉이 스치듯 목격하는 개츠비의 몇 가지 이미지들이 전개되는 초반부는, 우리는 분명 개츠비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신비감과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개츠비가 처음으로 닉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에도, 싱겁게 나타나지 않고 개츠비 시점에서 목소리만 보여주는 식으로 사람을 감질나게 하다가, 마침내 파티 분위기가 절정에 오른 순간 작렬하는 불꽃들을 배경으로 '내가 개츠빕니다' 하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개츠비를 비춘다. 순간 관객들 사이에서 피식하고 웃음이 터질 정도로 이 순간 개츠비와 그를 둘러싼 풍경은 비현실적일 정도로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한다. 현대의 레이싱 카와 견주어도 손색 없는 자체 차량을 몰고, 도시의 유력 인사들 중 모르는 사람이 없는, 32살에 이룬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업적을 쌓은 개츠비의 모습은, 차라리 지극히 과장된 묘사로 오히려 더 큰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리고 이렇게 높다랗게 쌓아올린 개츠비의 위엄을, 영화는 가차없이 무너뜨림으로써 더 큰 비극으로 전환시킨다. 일찌감치 바즈 루어만 감독은 <물랑루즈>에서 비슷한 전개를 보여주며 작지 않은 감흥을 준 바 있다. 쾌락과 유흥으로 얼룩진 물랑루즈의 화려한 면면을 보여준 뒤, 그러한 물질만능주의의 뒤안길에서 힘없이 주저앉고 마는 댄서와 시인의 사랑을 절절하게 보여줬더랬다. <물랑루즈> 때와 같은 각본가와 작업한 <위대한 개츠비>에서 바즈 루어만은 이러한 방법 - 더 크고 화려하게 펼쳐놓음으로써 그것의 무너짐을 더 실감케 하는 - 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다만, <물랑루즈>가 툴루즈 로트렉 등 실존인물 캐릭터가 일부 등장함에도 당대 현실과는 거리를 두고 전개된 데 비해 <위대한 개츠비>는 당대 현실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기에 그 무너짐을 보고 난 뒤 그 공허함의 존재감은 더 큰 것 같다. 단순한 사랑이야기가 아닌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여서일까, 새삼 원작 소설이 지닐 시대를 초월한 카리스마를 짐작케 했다. 그리고 바즈 루어만 감독은 화려함에 비례하게 더 강렬히 울려퍼지는 처연함으로 그 공허함을 잘 살렸다.
내일을 생각지 않고 마시고 놀아제치던 인간군상과 내일을 확신하고 성공을 향해 달려가던 개츠비의 모습은 묘하게 교차된다. 성대한 파티가 열리는 개츠비의 저택은, 이 당대의 사람들과 개츠비가 만나는 중요한 교차점이다. 이 곳에서 사람들은 내일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쾌락을 추구하고, 개츠비는 내일을 약속할 수 있는 사랑을 찾는다. 다른 모든 이들이 최대한 자신의 존재를 바깥으로 과시하려 할 때, 개츠비는 자기 모습을 최대한 감춘다. 마치 이 성공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찾는 사람에게만 보여주고 싶은 것인양. 내로라 하는 유력 인사들이 한 자리에 모이고, 서로가 인맥을 과시하기 위해 환담을 나누지만, 그 사이에 확신할 수 있는 내일은 사실 없다. 한바탕 파티가 끝나고 난 뒤에 남는 건 지나간 활기의 흔적을 붙잡고 늘어져 있는 손님들, 무기력하게 울리는 노랫소리들, 여기저기 널브러진 쓰레기들이다. 이런 곳에서 홀로 진짜 사랑을 절실히 찾았던 개츠비의 속내를 이들이 알았던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그들은 결국 정말로 개츠비를 비웃는다. 모든 행동과 관계의 뒤에 모종의 목적과 계산이 도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오로지 사랑만을 동력으로 자신을 움직이는 사람은 비웃음거리가 되는 세상이다. 이런 세상의 변화는 안타깝게도 개츠비와 데이지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개츠비와 달리 데이지에게는 세상의 때가 묻어 있었기 때문이다. 시대를 온통 뒤덮은 불확실성 앞에서, 중요한 건 눈 앞에 있는 것에 손을 뻗어 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손 안에 있는 것을 지키는 것임을 데이지는 얄팍하게도 이미 알고 있었고, 취할 수 있다는 긍정에 매료되고 만 개츠비는 이를 몰랐다.
누가 누굴 불순하게 보는가. <위대한 개츠비>는 가장 떳떳했어야 할 사람이 가장 지탄받는 존재가 되고, 가장 부끄러워 했어야 할 사람이 가장 많은 걸 얻어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가치의 혼란 속에 멀쩡한 사람들을 주저앉혀 버리던 당대의 현실을 풀어낸다. 사건의 발단에서 등장인물들 중 가장 백지 상태에 놓여 있었을 닉이 정신병원에서 이 일련의 사건을 서술하는 것도 아주 생뚱맞은 건 아닌 것이다. 놀랍도록 긍정적인 태도로 자신이 별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될 것임을, 서야 함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개츠비는 그런 정신적 믿음보다 이해타산을 가장 중시하는 계산적인 세상에 배신당한다. 이 사람이 내게 어떤 사람인가 이전에 내게 무엇을 줄 사람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치켜세우고 칭송해 마지않던 사람에게서 한순간에 등을 돌리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물질은 물론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이익을 철저히 추구하며 즉각적 변화를 마다하지 않게 된 세상에서, 차곡차곡 별을 향해 쌓아 올려지던 개츠비의 의지는 연기처럼 흩어진다. 그가 습관처럼 부르짖는 '친구'(old sport) 또한 실은 신기루일 뿐이다. 영화는 개츠비의 화려한 일생과 세상의 우스꽝스러움, 그리고 이 둘이 만나 벌어지는 비극을 특유의 과장과 스타일리쉬함을 통해 극적으로 표현하며 외면받는 진심과 환영받는 가식의 극명한 대비를 꽤 저릿하게 전달한다.
개츠비 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필두로 배우들이 펼치는 고전적 연기는 영화를 가볍지 않게 만들어주는 또 다른 요인이다.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17년 만에 바즈 루어만 감독과 호흡을 맞추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10여년 만에 가장 멋진 모습으로 등장한다. 물론 거기에 연기력은 한껏 무르익었다. 이제 그는 더 이상 17년 전의 반항아만이 아니라, 세월의 풍파를 버텨내고 사랑만을 향한 끝에 품위를 잃지 않게 된 신사의 모습에 더없이 어울리게 됐다. 감정 표현에 적극적인 그만의 연기는, 영화의 고전적, 연극적 색채와 잘 어우러지면서 이상적이기 그지없는 개츠비의 캐릭터에 현실적인 매력을 불어넣는다. 실제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절친이기도 한, 닉 캐러웨이 역의 토비 맥과이어는 특유의 선량하고 차분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이성적 태도를 잃지 않는 캐릭터를 무난히 구현했다. 데이지 역의 캐리 멀리건은 어떻게 보면 욕을 들어먹을 수 밖에 없는 속물적 캐릭터일텐데도, 거기에 흡인력이 상당한 여성성과 침착함을 불어넣음으로써 데이지를 충분히 매력적인 캐릭터로 만들어주었다. 더불어 톰 뷰캐넌 역의 조엘 에저튼이 보여주는, 진행중인 불순한 욕망 속에서도 지키고 싶은 것에 대한 집착으로 혼란스러워 하는 남자의 모습도 꽤 인상적이었다. 다만, 영화가 결말부에 이르면서 데이지와 톰의 존재감이 다소 옅어진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앞서 3D 효과에 대해 잠깐 언급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3D 효과를 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영화의 시작부터 나오는 것 같았다. 개츠비 저택을 상징하는 문양이 열리면서 우리를 이 기구한 이야기 속으로 안내하는 영화는, 명멸하는 녹색 불빛을 따라가며 이야기를 시작하고, 그로부터 멀어지며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개츠비가 만의 건너편에서 그토록 붙잡고 싶어 했을 눈부신 녹색 불빛의 기운을 마치 우리에게도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라는 듯. 그렇게 우리 앞에서 깜빡깜빡 왔다가 멀어지던 녹색 빛의 여운은 예사롭지 않았다. 세월에 떠밀려 갈수록 희미해질 것을, 어쩌면 아예 사라질 것을 짐작하면서도 그것과는 별개로 끊을 수 없는 긍정으로 한없이 불빛을 향해 손을 뻗던 개츠비의 모습. 그러나 마치 탄광촌 한복판에서 모든 노동자들을 지켜보고 있던 안경 쓴 눈처럼, 그가 움직이되 나아갈 수 없도록 가만히 꽁무니를 붙들고 지켜보고 있었을 세상. 영화는 이렇게 사랑을 믿지 않게 된 세상과 사랑만을 믿었던 남자의 만남을 통해, 마음이 이끄는 삶의 아이러니한 비극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비극은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적용된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순정에 대한 외로운 칭송이 담겨 있던 20세기의 <위대한 개츠비>는 21세기에 들어서며 당대의 화려함을 한껏 껴안은 모습을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그 화려함만큼, 아무도 모르는 위대함을 지녔던 개츠비에 대한 외로운 칭송은 더 큰 메아리로 공허한 저택 안을 메아리친다.
+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사실이 있었다. 개츠비에게 사업 수완을 알려준 도박사 울프심 역을 연기한 배우는, 국내에서도 흥행에 성공한 인도 영화 <블랙>의 주인공이자 <슬럼독 밀리어네어>에서 주인공이 어린 시절 싸인을 받기 위해 똥통에 빠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바로 그 인도의 전설적 배우, 아미타브 밧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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