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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딸> 박혜란의 사촌 형부 목사, "이 책은 거짓"

하늘이슬 2015. 3. 11. 11:50

<목사의 딸> 박혜란의 사촌 형부 목사, "이 책은 거짓"


2015.03.08  18:43:11

http://m.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8620

- 고 박윤선 목사 가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결론..."상처가 진실 왜곡"

고 박윤선 목사의 조카사위가 <목사의 딸>(아가페북스)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뉴스앤조이>에 기고한 글을 전문 그대로 싣습니다. <뉴스앤조이>는 3월 20일 <목사의 딸>의 저자, 박윤선 목사의 딸 박혜란 씨를 인터뷰하고 그 내용을 보도할 예정입니다. - 편집자 주 

<목사의 딸>(아가페북스)이라는 책도 책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이 책의 추천자들은 교회의 지도자가 되려면 반드시 일독(一讀)해야 할 책이라고 추천했다. 출판사는 많은 사람들이 보아야 한다는 뜻으로 출간했다.

딸은 자기 아버지를 세상에 바로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으로 글을 쓴다고 했다(12쪽). 그러나 사촌 형부인 필자로서는 처제의 글이 더 이상 교계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명감에서 쓴소리를 할 수밖에 없다. 처제는 열네 살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도 외국에 계시는 상황에서 친모의 별안간의 죽음으로 큰 상처를 입고 평생 가슴 아프게 살면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런 그가 아버지와 새어머니에 대한 어떤 고착된 시각으로 그려낸 서술이, 그들의 진면목은 아니다.

박 목사님 가정을 12년간 드나들다

필자는 일정 기간 동안 박윤선 목사님이 섬기던 동산교회의 성도였고(1962~1969년),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조카사위가 되어(1964년) 필자가 미국으로 유학 가기 전(1975년) 12년간 그의 집을 드나들며 주석 집필을 도왔고, 그 후 신학교에 들어가 그의 강의를 3년간 들었으며(1969~1971), 또 그분이 시무하시는 관악구 모 교회에서 전도사로 사역했기 때문에 박 목사님과 그분 가정을 잘 알 수 있게 되었다.

딸은 사춘기의 어린 나이에 친모를 잃고(자동차 사고에 의한 별세) 새어머니를 맞으면서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다만 질시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새어머니를 악녀(惡女)로 보게 되었으며 아버지를 자기의 불행을 만든 장본인으로 몰아붙였다.

딸은 자기 아버지가 "태생적인 신앙의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고 주장한다(12쪽). 그러나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결사적으로 하나님만 위하여 살아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 틀린 말인가? 한국교회가 이렇게 된 것이, 실은 박윤선 목사님의 가르침대로 결사적으로 하나님만 위하여 살지 못해서 생긴 문제들이지, 박윤선 목사님의 가르침 때문인가? 딸은 한국교회의 잘못된 점을 거의 모두 박윤선 목사님에게 뒤집어씌워 놓았다.

딸은 박 목사님이 "죽기 내기로 기도하고 죽기 내기로 믿으라"고 한 말이 잘못된 결과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딸의 말은 아버지의 주장이 아버지를 힘들게 만들었고, 남들도 힘들게 만들었다는 논리이다. 그가 신앙생활을 이런 식으로 하고 있는 줄 예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사사건건 아버지를 꼬집어 뜯느라 얼마나 힘든 세월을 살아왔을까!

'고달팠던 가정'(33~44쪽)이라는 부분에서 딸은, 자기의 친모(親母)에 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동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데 반해 아버지에 대해서는 친모에게 계속해서 임신만 시키는 분이라고 부각시킨다.

딸은 '새 가족'이라는 제목 아래(69~77쪽)에서, 친모가 별세하고 난 후 박 목사님께서 화란에서 돌아와 맞은 새 부인에 대해서는 너무 달라진 모습을 보여 참으로 이상하게 느꼈다고 한다. 아버지가 새어머니를 대접할 때는 친모를 대하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딸은 자기 아버지가 전처의 별세에 대해 전혀 슬픔을 보이지 않았고 자녀들에게까지 위로의 말씀이 없어서 아주 무심한 아버지로 보였다고 했다. 그리고 새어머니는 전처 자녀들에게 전혀 사랑도 없는 차디찬 인간이라 묘사해 놓았다. 독자들이 이 글을 읽고는 누구든지 딸에 대해 동정할 것으로 보인다.

   
▲ 필자는 고 박윤선 목사의 딸이 박 목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말한다. <목사의 딸>에 나온 새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사진 왼쪽에서 세 번째가 박혜란 씨. 새어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이다. (사진 제공 아가페북스)

그러나 새어머니는 박혜란 처제가 말하는 그런 분이 아니었다. 후처로서 전처 자녀들에게 그만큼 잘한 분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는 북한에서 넘어온 실향민이었고 또 간호사였으며 고신에서 공부한 신학도였고 또 교회 전도사였으며 부흥회를 인도하던 이로 참으로 훌륭한 신앙인이었다.

많은 이들이 새어머니의 믿음이 박윤선 목사님의 가정을 넉넉히 이끌고 갈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사모님 자신이 원하지 않았는데도 주위의 강력한 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결혼한 것이다. 딸은 새어머니의 결단에 감사를 했어야 했는데 정반대의 입장에 섰다.

이 책에는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들이 많다

딸은 '사랑을 몰랐던 목회자'라는 단락(77~89쪽)에서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40세까지는 죽어지냈다고 말한다.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른 말이다. 40세 이전, 즉 자신의 결혼 이전에(25세 이전) 얼마나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했는지 모른다. 결혼을 반대하시는 아버지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반항했다.

박 목사님이 결혼을 반대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사위 될 사람이 박 목사님이 원하는 신앙의 소유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박 목사님은 전처 자녀들에게 참으로 놀라운 사랑을 품고 산 분이었다. 우리 증인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다만 그 사랑을 딸이 원하는 식으로 표현하지 않으신 것뿐이었다.

처제는 '갑작스러운 결혼'이라는 단락(89~96쪽)에서 자신의 결혼은 아버지의 권유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으나,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른 이야기이다. 두 사람은 아주 대단한 열애 끝에 결혼에 이르렀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대로 박 목사님이 부산으로 가면서 마지막에 결혼을 혹시 허락하셨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두 사람은 결코 떨어질 수 없는 열애를 한 것은 사실이다.

박혜란 처제는 또 새어머니의 아들 박은성(가명, 지금 미국에서 신경내과 의사로 수고하고 있다)이 중학교 입시를 위해 서울 큰아버지(필자의 장인, 그 당시 장인과 장모를 모시고 살았다) 집에 있을 때 새어머니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부산과 서울을 왕래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는 박은성을 큰아버지 집에 데려올 때에 한 번쯤 오셨을 뿐 거의 오실 수가 없으셨다. 처제가 왜 이렇게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이유를 우리는 뻔히 알고 있다. 전처 자녀와 후처 자녀를 달리 대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딸은 또 '날아가 버린 마지막 기회'(107~122쪽)라는 제목하에서 그의 아버지와 새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면서 회개를 촉구했다. 딸은 "아버지가 자식인 저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데 큰 방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 회개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한 말들에 대하여 박윤선 목사님 댁의 분위기를 모르시는 분은 박혜란 처제의 말이 사실일 거라 느끼겠지만 우리는 그 주장이야말로 쓴웃음을 자아내는 주장이라는 것을 얼른 알아차린다.

딸의 성경에는 몇 가지 진리가 빠진 것 같다. 아버지(노아)가 술에 취해 벗었음을 알고 아들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아버지 노아가 벗었음을 떠벌렸으나, 다른 두 아들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하체를 가릴 옷을 가지고 뒷걸음쳐 장막으로 들어가 그의 아버지를 가려드렸다는 이야기가 딸의 창세기 성경에는 빠져 있는 것 같다(창 9:20-27). 성경을 다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행위를 '가증한 것'(117쪽)으로 매도했고, 아버지는 '장님이 되신 분'으로 말하고 있다. 세상에 이런 불효가 어디 있는가?

딸은 또 '용서받지 못한 분'(122~130쪽)이라는 제목하에서 자기 아버지가 가족 간의 틈을 회복하려는 의지가 없었다고 했으나 실은 아버지는 자녀들을 위하여 많은 기도를 드리셨고 또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 한번은 박 목사님께서 딸이 살고 있는 콜로라도 덴버로 찾아가 회개하라고 권유했으나 딸이 완강히 거부하여 박 목사님은 끝내 눈물로 발길을 돌리시고 말았다.

딸은 '아버지의 신앙, 아버지의 교훈, 그러나 사랑이 필요했던 가족'(145~164쪽)이라는 제목하에서 아버지가 매일 아침 "아버지께 나아왔사오니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기도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의 기도는 아니라고 했다. 필자도 박 목사님의 이 기도를 많이 들었다. 하나님의 긍휼을 호소하는 기도야말로 가장 바람직스러운 기도이다. 이런 기도는 겸손한 자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복된 기도이다. 필자도 이런 기도를 자주 드리는 중에 특별히 그 기도를 드린 날은 더욱 복됨을 느끼곤 한다. 박 목사님의 기도는 단순한 반복 기도(마 6:7)가 아니라 형언할 수 없는 애절한 기도였다.

딸은 "아버지는 아주 현실감각이 없고 게다가 용기도 부족하다 보니 본인의 내면에 깊이 뿌리박힌 유교사상을 냉철하게 도려내지 못한 채 인생을 마감하셨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남존여비 사상을 가지고 자기의 아내(딸의 친모)를 학대했고, 유교의 효도 개념을 성경에 그대로 옮겨 당신의 자녀가 당신에게 무조건 복종할 것을 강요해서 자녀에 대한 사랑을 모른 채 살아갔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기도해도 유교사상 같은 것은 쉽게 없앨 수 있는 사상이 아닌가? 우리는 박 목사님께서 남존여비 사상도 유교의 충효 사상도 전혀 가지고 계시지 않는 것을, 강의 시간에서나 교회 설교 시간에서나 또 그의 책에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공연히 유교에서 무엇을 끌어내서 아버지를 공격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박 목사님은 목사님 식으로 자녀들을 사랑하셨다

글솜씨가 좋은 필치로 딸은 글을 써 내려갔기에 그 가정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많이 동정하게 되고 박 목사님이 그런 분인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는 식의 말을 하게 될 것이다. 딸은 "아버지는 곁에 있던 수많은 이웃과 당신의 연약한 아내(저자의 친모)와 자녀들을 하나님이 사랑하셨다고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을까"라고 의문했지만 박 목사님은 오늘 몇몇 증인들이 보기에도 그들을 참으로 사랑하셨다. 아버지를 곡해해도 너무 지나친 것임을 알 수 있다.

처제는 미국 덴버에서 14년이라는 세월 동안 하나님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가면서 한국의 기독교는 유교와 조상숭배, 그리고 미신으로 혼합된 종교임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193쪽). 이런 말은 한국교회를 너무 지나치게 폄하하는 말이 아닌가?

처제는 또 '하나님의 재발견'(205~216쪽)이라는 제목 아래서 박 목사님이나 한국의 많은 신학자들과 목사님들이 남성우월주의자인 것처럼 말하면서 마치 콜로라도 덴버신학교 신학자들만이 바른 신앙을 가지고 있는 듯이 말한 것은 기막힌 말임을 알 수 있다. 박 목사님이나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의 참된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결코 남성우월주의를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갈 3:28). 박 목사님은 갈라디아서 3장 28절을 가지고 결코 남성이 우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며, 단지 역할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항상 강조하시곤 했다.

딸은 '이별이 준 아픔'(217~233쪽)이라는 제목하에서 아버지가 별세하실 때 병원 침대에 누워서 "그래도 제가 정직한 마음으로 주의 일을 열심히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불편한 형편에 두시나이까? 속히 나를 불러 가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을 가지고, 딸은 "아버지의 마지막 기도는 주님이 붙들고 계심을, 주님 품 안에 안기어 있음을 찬양하는 기도가 아니었다. 나는 지금 괴로우니 데려가 달라고 조르고 조르는 어린아이의 이기적인 기도였다"라고 말하며 아버지의 삶은 항상 이러했다고 아버지를 꼬집는다. 딸은 어찌 아버지의 그런 점만 보았는가?

박 목사님은 사실 병원에 18일간 누워 계시면서 수많은 놀라운 기도를 드리고 가셨다. 신학교를 위해, 교계를 위해, 또 자녀들을 위해 눈물겹도록 기도하셨다. 필자도 아내와 함께 미국에서 나와 병원에 머물면서 목사님을 지켜보았다. 많은 성도들이 기도해 드리려고 왔다가 오히려 기도를 받고 돌아가지 않았는가? 필자는 마지막 임종의 자리에서, 또 많은 사람을 임종에 동참하게 만들면서 참으로 박 목사님의 훌륭한 점을 발견하고 눈물겨웠었다.

딸은 아버지를 너무 폄하했고 우리 교계도 그랬다

딸은 '태생적 약점'(240~244쪽)이라는 제목하에서 "생전의 아버지는 늘 자신이 죄인이라는 기도를 드렸고 죄로 뭉쳐진 인간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셨다"고 말하고, 이런 자세가 한국교회에 아주 나쁜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아버지는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았으니 이를 갚아야 마땅하므로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라고 부르짖었다. 이는 우상을 섬기던 습관에서 나온 것이라"고 주장한다. 딸은 한국교회의 기도를, 우상 섬기던 습관에서 나온 것이라고 악평하고 있다. 우상숭배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있고 기도가 있단 말인가? 딸은 아버지를 너무 폄하했고 우리 교계에도 그랬다.

모세도 모압 평지에서 설교하면서 이스라엘은 과거에 지은 죄를 철저히 기억하여 교만하지 말라고 부탁했으며(신 9:7-21), 다베라, 맛사, 기브롯 핫다와 사건을 기억하라(신 9:22-24)고 호소했다. 바울 사도는 자기가 "죄인의 괴수"라고 말하며 우리가 죄인임을 기억할 때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고 말했다(딤전 1:12-17).

딸이 그의 글에서 제일 많이 드러낸 말은, 아버지가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하라고 말했는데 아버지가 왜 자식들을 사랑하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그러나 목사님은 목사님 식으로 자녀들을 사랑하셨다. 딸이 그처럼 아버지를 불순종하는데 어느 부모가 어떤 방법으로 자식을 살뜰하게 사랑할 수 있겠는가?

딸은 '죽도록 충성하기의 덫'(255~263쪽)이라는 제목하에서 '지사충성'이라는 휘호까지 문제 삼았다. 이는 유교의 군신 관계에서 신하는 늘 목숨을 다해 군주를 섬겨야 한다는 사상과 맞먹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딸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에 써 붙인 그 휘호도 떼어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자들이니 죽을 지경에 이르기까지 충성하는(계 2:10, Be faithful, even to the point of death)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딸은 바울 사도가 서신 첫머리에 자주 쓴 '종'(롬 1:1; 빌 1:1)이라는 말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박 목사님은 강의실에서나 교회에서나 어디서나 항상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었다. 딸은 아버지가 '83년 묵은 죄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두고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조롱한다. 아버지의 이 의식은 겸손을 가져왔고 온유를 가져다주었으며 권위주의를 배척하게 만들었다. 바울 사도께서 구원을 받지 못해서 자신이 "죄인의 괴수"(딤전 1:15)라고 말한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딸은 아버지와 새어머니께서 생존하신 동안 책을 내지 않고 있다가 두 분이 별세하신 때(1988년, 2014년 각각 별세)를 맞이하여 아버지에게 복수를 결심하고 책을 펴냈다. 그러나 그는 우리 생존한 증인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고 용감하게 책을 펴낸 것이다. 만일 우리가 잠잠히 입을 다물고 있다면 돌들이라도 소리 지를 줄 알았어야 할 것이다(눅 19:40). 우리는 아직 살아서 딸의 책이 허구라는 것을 밝히는 바이다.
 
이 책이 출판된 것은 이 시대의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사실에 입각한 정보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 많으며,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거의 줄곧 비난하고 폄하하는 것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이 책의 이야기가 모두 옳다면 그의 아버지는 비난받아 마땅하겠으나 아직도 교계의 많은 분들이 박 목사님을 존경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하려는가? 아버지는 성숙한 신자가 아닌 위선자일 뿐이요 그들의 존경도 다 위선이고 거짓이라고 말할 작정인가?

따라서 형식은 책이지만 내용은 도무지 균형 잡힌 책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독자들을 혼란케 하고 교계를 어지럽히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아무튼 이 글을 쓴 저자나 추천한 사람들이나 출판해 준 출판사가 있다는 것은 이 시대의 슬픔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책을 선전하느라 출판사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슬픈 가족사'라는 부제를 달기도 했다. 무슨 슬픈 가족사가 있다는 말인가? 그 책에는 딸이 자기의 느낌을 쓴 것 이외에 별다른 것은 없다. 또 그 출판사는 '고(故) 박윤선 목사의 딸이 이제야 말하는, 아버지의 신앙적 오류와 순전한 복음'이라는 설명을 붙여 놓았으나 박윤선 목사님에게 무슨 신앙적 오류가 있다는 말인가?

또한 딸의 글에 무슨 순전한 복음이 있다는 말인가? 그 글에 무슨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 있다고 그런 설명을 붙여 놓았는가? 약간의 지면을 사용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는 말을 한 것뿐이다. 물론 그가 깨달은 "Beholding is a way of Becoming"(하나님을 계속해서 주시하면 하나님을 닮아 간다는 말), Seperation not by Isolation but by Distinction"(믿는 사람들이 세상으로부터 구별되어야 하는데, 물리적인 거리를 둠으로써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되 질적 차이로 거리를 두면 된다는 말)이란 말 같은 것은 바른 말이다(17~19쪽).

또 출판사는 '권위주의, 기복주의, 왜곡된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순전한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우리가 살고 한국교회가 살 길입니다'라는 선전 문구를 달아 놓았다. 필자는 이 선전문을 보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박 목사님에게 무슨 권위주의가 있고 기복주의가 있으며 율법주의가 있다고 이런 문구를 내놓았는가? 몰라도 너무 모르니 이런 문구를 써 놓은 것이다.

비록 열네 살의 사춘기 시절에 친모가 별세함으로써 입은 큰 상처와 친모의 부재로 인한 가정의 갈등이 있었다 하지만, 노년에 이르기까지 믿음으로 화해하지 못하고 오랜 세월 동안 가슴에 큰 응어리를 품고 산 것이 과연 성숙한 신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처제가 주장하는 아버지와 새어머니의 모습이 그분들의 진면목이겠는가? 아버지의 별세 26년이 지난 시점에 이런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니 불효 중에 이런 막심한 불효가 어디 있으랴! 다만 필자는 지금이라도 박혜란 처제가 하나님의 무한하신 긍휼과 사랑을 깊이 깨닫고 여생을 주님이 주시는 참평안을 누리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필자는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언어학과와 총신대 신대원(65회)을 졸업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신학 석사과정 수료), Biblical Theological Seminary(성문학 석사)를 졸업한 후 Pensacola Christian College & Pensacola Theological Seminary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뉴욕동부개혁장로회신학교에서 주경신학을 강의하였고 현재 필라델피아 삼일장로교회 원로목사이다. 필자는 성경 주해에 큰 관심을 가지고 <마태복음 주해>(도서출판 목양)를 비롯한 신약 전권 주해서(13권)와 <창세기 주해>(도서출판 언약)를 비롯한 구약 4권 주해서를 출판한 바 있다. - 필자 주

 

김수흥 kidoeisaram@naver.com


<목사의 딸>, 한국교회에 득일까 독일까

기사승인 [0호] 2015.02.26  12:21:06

http://m.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8535


- 알려지지 않았던 고 박윤선 목사의 가정사…교계 인사들 엇갈린 평가

   
▲ 박윤선 목사의 자녀인 박혜란 씨가 쓴 <목사의 딸>이 출간됐다. 교계는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박혜란 씨는 박윤선 목사(사진 왼쪽)와 첫 번째 부인 김애련 사모(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이에 3남 3녀 중 둘째 딸이다. 사진 중앙에 선 이가 박혜란 씨다. (사진 제공 아가페북스)

딸이 본 아버지의 모습, 사뭇 낭만적인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은데 논란이 일 정도로 적나라하다. 한국교회의 지도자로 칭송받던 목사의 자녀가 쓴 <목사의 딸>(아가페북스)이 교계에서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반응은 뜨겁다. 2014년 12월 5일 첫 판매를 시작한 이 책은 2월 25일 현재 누적 판매 부수 1만 부를 돌파했다. 출판사는 6쇄 인쇄를 준비 중이다. 2쇄 재판이 어려운 기독교 출판 환경을 감안한다면, 교계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 준다.  

저자는 박윤선 목사와 첫째 부인 김애련 씨의 3남 3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서울대 공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1970년 미국으로 이민 갔다. 45세 늦은 나이에 덴버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해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도 성남시 할렐루야교회에서 성경대학 강사로 활동하다 2008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한국교회에서 박윤선 목사는 20세기 한국 보수 신학의 거목으로 평가받는다. 고신대와 총신대 그리고 합신대에서 교수로 활동하며 수많은 후학을 양성했고, 1979년에는 세계 최초로 신·구약 성경 전권을 주석했다. 1980년 교권주의자들의 횡포를 피해 설립한 합신대학교의 초대 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런 그이기에 <목사의 딸>이 한국교회에 던진 파장은 적지 않다.

매정한 아버지 박윤선…"믿을 수 없는 내용" 

   
▲ <목사의 딸>의 부제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슬픈 가족사"다. 박혜란 목사는 프롤로그에서 책을 쓴 동기를 언급한다. 아버지와 가족의 이야기를 사실대로 기록해, 아버지를 우상처럼 떠받드는 사람들이 아버지를 올바르게 판단하도록 하자는 생각에 책을 쓰게 됐다고 한다.

"매우 충격적인 책 가운데 하나다. 무척이나 가슴이 아픕니다. 잘 믿어지지도 않습니다." 추천사를 쓴 김상복 목사(할렐루야교회 원로)의 말처럼, 저자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아버지로서의 박윤선 목사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 준다. 딸에게 있어 박윤선 목사는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다. 가족의 생계를 어머니께 맡긴 채 공부와 교회에만 매달린 분이었고, 유교적 권위에 사로잡혀 권위와 명예만 앞세웠던 사람이었다. 

박윤선 목사는 가족들이 보기에 너무나 매정한 아버지였다. 저자는 아버지가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이웃은커녕 가족과 사랑을 나누는 데도 무감각했다고 고발한다. 

"아버지의 독선적인 성품으로 제일 많이 고통당한 건 가장 가까이 있던 가족이었다. 아버지는 어린 자녀들이 보는 데서 거의 상습적으로 어머니를 구타했다. 이는 자녀들에게 무관심한 것보다 더 치명적인 상처가 되었다. 그런 아버지가 밖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그야말로 함부로 대할 수도 없는 거룩한 어른으로 숭상받던 상황은 오빠들과 언니를 혼돈으로 몰아넣었고, 결국 그들의 인생을 비틀거리며 살아가게 만들었다." <목사의 딸>, 246쪽

"1954년 어머니의 소천 소식을 듣고 유학하던 네덜란드에서 귀국하신 아버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어머니를 비롯해 네 사람의 목숨을 무참하게 앗아 간 미군 운전병이 관대한 처분을 받도록 청원하는 일이었다. 남겨진 어린 자녀들에게는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없으셨다. 또 도착한 다음 날 신학교에서 경건회 설교를 하고 강의를 시작하셨다. 사람들은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극히 존경스러워하며 경건하다 평가했다. 가정과 가족에게는 철저히 무관심한 채 피의자 청년을 생각하여 사면 청원서를 냈는데, 하나님의 종이라는 신분에 걸맞은 행동이라 여기고 과시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같은 책, 280쪽

저자는 박윤선 목사의 신학적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한국교회에 팽배한 영육이원론, 샤머니즘적 기복주의와 율법주의는 박윤선 목사가 그 뿌리를 놓았다고 말한다. 1979년 박 목사가 세계 최초로 성경 전권을 주석한 주석집 역시 한글 번역 성경을 토대로 한 주석이기에, 주경 신학자로서 커다란 결함을 지닌다고 비판한다. 아버지의 품을 벗어난, 미국에서의 생활을 통해 참복음과 참하나님을 경험했다고 서술한다.

"왜곡된 시선으로 쓰인 책", "한국교회에 도움 안 돼"

책을 접한 독자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책이다", "박 목사 역시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아무리 딸이라지만 이건 너무 과하다" 등 책을 접한 독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독자들뿐만이 아니다. 박 목사의 신학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교계 인사들 역시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합신대학교 석좌 교수인 박영선 목사(남포교회)는 칼럼을 통해 박윤선 목사를 적극 옹호했다. 박윤선 목사는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 지대한 공헌을 남겼다고 했다. 그는 "가정 차원에서의 희생과 실패로 박 목사의 가치를 깎아내릴 수 없다. 개인적으로 어떤 불명예와 부족함이 있은들 그를 통한 하나님의 역사와 은혜에 무슨 하등의 문제가 있겠느냐"며 박 목사를 변호했다.

박혜란 목사를 강하게 비판한 이도 있다. 안만수 목사(화평교회 원로)는 예장합신 전 총회장이자 박윤선 목사의 주석과 책을 출판하는 정암문서선교회 대표다. 안 목사는 박윤선 목사에 대한 박혜란 목사의 평가가 왜곡됐다고 말했다. 딸로서 입은 상처는 부인할 수 없지만, 교파를 초월해 한국교회에 지대한 공헌을 남긴 박 목사를 비판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 이승구 교수는 박윤선 목사가 생전에 항상 죄인임을 고백했고, 누구보다도 권위주의와 기복주의를 배격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안 목사는 "70세가 넘어서도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고, 철천지한이 맺힌 것처럼 이런 책을 쓰는 건 한국교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라고 했다. 안 목사는 "박윤선 목사는 유교적 권위에 메인 분이 아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채 박 목사의 신학을 평가 절하했다"고 말했다. 자신이 <박윤선과의 만남>(영음사)을 집필하기 위해 손봉호 교수, 방지일 목사 등 100여 명의 교계 지도자들을 만났고, 그들이 말하는 박 목사는 남을 위해 자신을 철저히 희생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아무리 딸이라고 하더라도 아버지의 모든 부분을 알 순 없다고 했다. 

합신대학교 이승구 교수는 한국교회와 박윤선 목사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 책이라고 말했다. 박 목사가 생전에 가장 강조한 것이 인간의 죄성이며, 어딜 가나 죄인임을 고백했다고 말했다. 책의 내용이 새로울 게 없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박윤선 목사는 권위주의와 기복주의를 철저히 배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박혜란 목사가 편향된 시각으로 아버지를 평가하다 보니 내용이 왜곡됐다. 박혜란 목사가 박윤선 목사의 신학에서 이탈한 모습이 책에서 드러나 안타깝다"고 했다.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인물" 

<목사의 딸>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들은,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메시지라고 평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목사의 부족한 모습을 보고, 후배 목사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딸이 공개한 아버지 박윤선의 삶과 신앙은 너무나 충격적이다"고 말했다. 한국교회가 율법주의 전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논란의 여지가 있음에도, 저자가 아픈 가정사를 털어놓았다고 평했다. 한국교회 안에 율법주의가 뿌리박혀 있고, 그 뿌리가 목회자들의 스승이라 존경받는 박윤선 목사에게 발견된다고 했다.

   
▲ 박혜란 씨는 2년 정도 향상교회에 출석했다. 저자를 아는 정주채 목사는 책에 대해 박윤선 목사의 한계를 비난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반성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장성현

고신대학교 전 총장인 황창기 목사는,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려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볼 수 있는 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려파는 개혁주의보다 근본주의에 가깝다. 성경을 규범주의 틀로만 해석한다. 그 배후에는 변형된 유교주의가 있다. 기독교가 유교주의로 변질됐다"고 했다. 역사적, 문화적 한계가 있는 건 분명하지만 한국교회가 규범주의와 유교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혜란 목사는 2년가량 향상교회에 출석한 적이 있다. 정주채 목사는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개인적으로 박혜란 목사를 만나 보면 상처가 많은 분이란 걸 알 수 있다"고 했다. 계모와의 마찰, 어머니가 아버지께 폭행당하는 모습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책 집필을 주변에서 만류했지만, 묻어 놨던 이야기를 꺼내 놔야 한다는 생각에 집필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딸이 아버지를 비판하는 책을 쓴 것은 마음이 아프다. 훌륭한 분이 그런 연약함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참고하고, 우리 자신을 반성하는 반면교사로 삼으면 된다. 한 면만 가지고 박 목사의 모든 업적을 가릴 수는 없다. 예전에는 철저한 가부장 사회였다. 박 목사 역시 시대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