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나는 헤븐 교회에서 담임목사직을 내려놓기로 결정하고 성도들에게 이를 통보하였습니다. 주일 예배에 홍윤미 목사를 통하여 이를 전해들은 성도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성도들의 가슴에 임한 충격이 그대로 전달되어서 홍목사는 한동안 말을 이어가기가 어려웠다고 하였습니다.
물론 헤븐 교회와의 연결을 완전히 끊는 것은 아닙니다. 담임 목사직에서 명예 목사직으로 바꾸고, 아마 대부분의 주일 예배는 참여하지 않고 가끔씩 저녁 모임이나 성도들의 영적 훈련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2년 전에 원흥 지구에 땅을 구입하고, 1년 전에 헤븐 교회 신축공사를 시작하였으며, 이제 공사를 거의 다 마쳤습니다. 이제는 입당예배를 코앞에 둔 상태입니다. 아마 이러한 시점에서 담임목사직을 내려놓는 경우는 드믈 것입니다. 적지 않은 사역자들이 교회의 외적인 성장, 대형 교회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게는 그러한 것들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교회 사역을 시작한지 이제 3년 반이 되었지만.. 그리고 그 동안 성도들과 많은 아름다운 시간들을 보내면서 황홀한 행복감.. 그리움들을 갖게 되었지만.. 왠지 사역적인 면에서 나에게 담임 목사는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불편한 면이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조용한 곳에서 기도하고 묵상하며 글을 쓰는 것이 맞지, 수많은 성도들을 돌보고 섬기는 것은 기질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몹시 힘든 일이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100% 듣는다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항상 기도하고 움직이지만, 모든 감동이나 결정이 100% 일수는 없습니다. 다만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찾고 갈망할 뿐입니다. 이번의 경우는 주님께서 건축을 거의 마친 시점에서 내게 빙그레 웃으시며 [자, 그 동안 수고했다. 이제 되었다. 너는 여기까지다. 이제 쉬어도 된다.. ] 하고 말씀하시는 듯이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마음에 아쉬움과 함께 평안과 기쁨이 몰려 왔습니다.
헤븐 교회사역을 시작한지 3년 반.. 그 동안 체중이 14키로가 줄었습니다. 건강이 스스로를 지탱하기 어려울 정도로 약해졌습니다. 목회란.. 별로 좋은 직업이 아닌 것 같습니다.
평신도라면 자기 혼자만 관리하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내게는 수백 명의 영혼들이 항상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게는 근심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가정의 가장이 직장을 잃으면 그 순간부터 평안하지 않았습니다. 가정불화가 있으면 역시 마음에 큰 짐이 되었습니다. 오래 동안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이들이 있으면 속이 많이 아팠습니다. 어려운 전쟁들을 마치고 한 단계씩 영혼들이 성장하고 그리스도를 알아가며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는 것들을 보면, 기쁨과 보람이 가득해졌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에서 가슴이 에이는 전쟁을 많이 치러야 합니다.
나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사역자들이 많은데, 나 혼자 무거운 짐을 지고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대한 일체의 홍보나 광고를 하지 않고, 준비된 영혼들, 하늘을 받을 수 있는 이들만 받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꾸 늘어났습니다. 처음에 150명 정도로 시작한 교회가 3년 반 동안 이미 3배를 넘어섰습니다. 이제 새 예배당을 건축하고.. 원흥에서는 얼마나 늘어날까 생각하니.. 나는 너무 걱정이 되어서 담임 목사직을 내려놓은 측면도 있습니다.
성도들은 내가 그들 모두의 사정을 훤하게 알고 있는 것을 보면 놀랍니다. 나는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문제들에 대해서 아내와 많은 대화를 나눕니다. 사역자들 모임에서도 주로 그 교구성도들의 영적 상태나 문제들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하고, 영적인 처방, 조언들을 제시하곤 합니다.
우리 교회는 수시로 사역자들이 성도들과 상담을 해서 성도들이 평생을 살아온 과정들, 상처들, 약점들, 복음에 대한 이해 등에 대해서 충분히 나누기 때문에, 나는 그 상담보고서를 읽고 각 사람이 영적 성장에 방해가 되는 부분이 무엇인지 캐치하고 답을 줍니다. 그 과정에서 성도들은 많이 성장합니다. 이런 식으로 소상하게 각 사람의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나의 아내가 잠간 마주치면서 인사를 하며 그들의 사정에 대해서 위로를 하거나 용기를 주면, 자기들의 사정을 잘 아는 것에 대해서 깜짝 놀라곤 합니다.
헤븐 교회는 부사역자의 숫자가 많은 편인데, 담임이었던 나 외에도 풀타임 부목사들이 6명이나 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돕는 것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주님을 만나고, 변화, 성장하기 위하여 교회에 오는 것이며 사역자들은 그것을 돕습니다. 그것을 원치 않는 이들은 헤븐에 올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식의 사역은 귀하기는 하지만 몹시 힘든 일입니다. 성도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나는 한계를 느껴가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성도들이 수천 명, 수만 명인 사역자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아마 고통에 짓눌려 거의 잠을 자지 못할 것입니다.
아마 그것도 그릇일 것입니다. 나는 전혀, 많은 성도들을 관리할 수 없습니다. 내가 사역하는 교회의 성도들이 거듭나지도 않고 주를 갈망하지도 않고 세상의 즐거움이나 영광에 빠져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너무나 끔찍한 고통입니다. 나는 그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성도들이 변화되거나, 아니면 교회를 떠나기를 바랍니다. 변화되지 않는 성도들은 나에게 너무나 고통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심판 날에 그들에 대해서 주님께 변호할 자신이 없습니다.
유럽의 교회는 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망했습니다. 예수를 하나님이 아닌 인간으로 가르치면, 거기서 성령이 떠나시고 세상의 온갖 미혹의 악령들이 찾아오게 됩니다. 이제 유럽의 거대한 교회 건물들은 텅텅 비었고, 그 빈자리들은 이슬람, 불교, 뉴에이지.. 등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교회는 사정이 좀 나은 것 같지만, 사실 비슷한 길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현대교회의 사상적인 조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신복음주의.. 이른바 설탕복음을 받아들이면서 교회는 외적으로는 거대해졌지만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온갖 악의 열매를 맺고 있으며 점차 멸망의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한국교회도 멀지 않아 유럽교회들처럼 텅텅 비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를 채우고 있는 것은 욕망.. 꿈.. 비전.. 번영.. 기름부음.. 이런 용어들입니다. 기도하면 꿈을 이룬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기도는 사람의 꿈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찾고 이루는 것입니다.
거짓된 구원의 확신과 거짓된 안위로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지옥의 고속도로를 향하여 달리면서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란, 영생이란.. 하나님을 알고 그 아들 예수를 아는 것인데.. 오늘날 자칭 신자들은 자기 욕망을 이루는 것을 믿음으로 여깁니다.
세상에서 잘 나가고 성공하는 것을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여기는 이들도 많습니다. 자기 만족과 욕망과 자아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들먹이지만..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기독교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복을 받았다고, 성공했다고 간증하고 돌아다닌다고 해서 구원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더 많은 백성들을 탐욕으로 물들게 하고 지옥을 향하도록 인도할 뿐입니다.
세상에 교인은 많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난 자들이며 자기 안에서 그리스도의 인격과 열매와 향취를 가지고 있으며 하늘의 영광을 아는 사람들이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모태신앙이다.. 몇 대째 믿는다.. 기도응답을 많이 받았다.. 이런 것들은 구원의 보장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전혀 그의 영원한 안전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사실, 많은 기도 응답과 소원의 성취가 악령들을 통해서 옵니다.
거듭난 사람으로서의 내적인 증거가 전혀 없으면서도 자기 믿음에 대해서 당당한 사람들을 나는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불행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헤븐 안에서 수 없이 많은 변화된 삶의 간증들을 보고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인관계, 가치관, 삶의 목표 자체들이 아름답게 변하고 그리스도를 갈망하며 모든 순간에 주를 따르는 아름다운 삶의 열매들을 나는 무수하게 보았습니다. 그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무릎을 꿇고 울면서 자신의 불순종과 무례에 대해서 용서를 구하며 남편도 같이 붙들고 우는 것은 헤븐에서 흔히 있는 일입니다. 아내들이 [남편에 순복이후에 내 삶은 변화되었으며 하늘의 평화와 기쁨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도 흔한 일입니다.
거스르고 반항하던 아이들이 부모님에게 울면서 용서를 구하는 것도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아이들을 껴안고 부모가 눈물로 사랑과 축복을 표현하는 것도 흔한 일입니다.
남편이 샤워를 하면서 계속 예수.. 예수를 부르는 것을 보고 남편은 정말 바뀌었다고.. 예수님 같다고.. 존경스럽다고 말하는 아내들도 있습니다. 평생 수십 년을 스포츠 중계를 즐기며 대형 티비를 가장 친한 친구로 여기던 이가 주님을 알게 된 이후, 도저히 그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아서 페기해버린 경우도 있습니다. 헤븐의 성도들 집에는 티비가 있는 집이 거의 없습니다.
가장 큰 기쁨을 알게 된 사람은 세상의 허접한 쓰레기 같은 기쁨을 즐기기 어렵습니다. 돈과 출세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사람들이 그것들을 아주 우습게 여기는 것도 헤븐 성도들의 대표적인 변화입니다. 하늘을 아는 자들은 땅에 대해서 그다지 집착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기의 사명, 부르심에 집중할 뿐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침체는 여기 저기서 많이 언급됩니다. 이에 대한 나의 처방은 어떠한 인간적인 방법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며, 말씀에 입각한 바른 복음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나는 지난 3년 반 동안 기초 복음에 대해서, 계속하여 반복적으로 외쳤습니다. 성도들에게 그것들은 놀라운 충격이었고 가치관의 혁명들, 변화들을 가져왔습니다. 집회 시간이 대부분 통곡의 바다를 이루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말씀을 이해하고 복음을 이해할 때 사람들은 자신이 여태껏 얼마나 엉터리로, 거꾸로 믿어왔는지.. 살아왔는지 깨닫게 됩니다. 주를 위한다는 것이 실제로는 주를 계속하여 십자가에 못 박고, 주를 이용하여 자기 만족과 영광을 추구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깨달음 속에서 울음바다가 시작됩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복이란 대부분 저주이며, 세상에서 저주라고 가르치는 것은 대부분 복입니다. 주님은 세상에서의 형통과 으뜸됨, 성취를 인하여 오시지 않고 실패와 좌절, 낙담을 통해서 오십니다. 그러므로 각 사람의 자랑은 희미해지고, 각 사람의 약점과 수치를 인하여 감사와 감격을 누리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이 오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웃는 자에게는 화가 있고 우는 자에게는 복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상식과 180도 다른 메시지를 헤븐에서는 항상 배우기 때문에 처음에 헤븐에 온 이들은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얼마 전, 여름 수련회에서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였는데.. 성도들은 한동안.. 몇 날.. 몇 주가 지나도 충격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망치로 머리를 맞는 것 같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복음의 메시지는 세상 철학과 180도 반대입니다. 세상의 사상은 사탄에게서 나오는 것이며 성경의 사상은 천국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바른 메시지를 접하면 사람들은 지금껏 살아온 것이 세상 교육의 세뇌인 것을 알게 되고 조금씩 그 세뇌의 미혹에서 벗어나게 되며 점차 세상에서 오는 기쁨이 아닌 하늘의 기쁨을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말씀은 죽이는 것입니다. 말씀이란 기쁨과 희망을 주지 않습니다. 말씀이란 충격과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복음이 전해질 때 성도들은 땅에 엎드러져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하고 전율하고 울부짖습니다. 그리고 그 때 주님이 임하시고 성령을 부으시고 정화를 시키십니다. 그리고 비로소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사역자를 부르시는 과정입니다. 신학교 가기 전에 그렇게 주님의 성령에 사로잡히는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인간적인 사역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는 헤븐 사역을 시작할 때부터, 내가 이 사역을 오래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너무 의존하지 않도록, 내가 없어도 이 헤븐 스타일의 신앙이 잘 유지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그동안 사역자들을 열심히 훈련했고, 지적과 조언을 통하여 집회를 잘 인도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제는 내가 빠져도 성도들은 아무 상관없이 집회 때마다 은혜를 입으며, 각 사역자들마다 은사와 달란트들이 다양하기 때문에, 뷔페식을 하는 것처럼 다양한 맛이 있다고 몹시 즐거워합니다.
내가 주일 예배를 빠진 지 2달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참석 인원은 거의 줄지 않았습니다. 정교인이 되기 위하여 교육을 받은 인원은 오히려 늘어났습니다. 혹자는 농담을 하기도 합니다. 정원 목사님이 빠지면 더 부흥이 올 거라고요.. 내가 하는 집회는 4-5시간이나 되는 등.. 너무 길어서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할 때는 모르지만 끝나고 나면 너무 탈진하고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후임인 홍 목사의 집회는 2시간 정도로 끝나기 때문에 부담이 적어서 사람들이 오기 좋다는 것입니다.
나는 [더 부흥이 되면 안 되는데..] 하고 웃었습니다.
전에 홍 목사가 주일 집회를 인도하는 나의 메시지를 거의.전부기록한 것을 보았습니다. A4 용지 분량으로 100쪽 정도 되는 내용이었습니다. 보통 일반 서적으로 보면, 약 250쪽 정도 되는 내용입니다. 매주일마다 주일 집회에서 4-5 시간을 빠른 스피드로 말씀을 마구 쏟아 붓는데 그것이 대강 책 한권 분량입니다. 그러니 결국 성도들은 매주일마다 책 한권 분량의 메시지를 듣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의 메시지를 기록하기 위하여 열심히 타자를 치지만 전체내용을 다 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들을 때는.충격을 받지만.. 분량이 하도 많으니까 끝난 후에는 다 기억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메시지를 요약하면 그것을 보고 집회때 들었던 내용이 새삼 기억나니까 좋아하는 것입니다
나는 미리 말씀을 준비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메모를 몇 개 해놓고.. 그냥 떠오르는 대로 전합니다. 원고를 써놓고 읽는 것은 왠지, 자신이 기계처럼 느껴져서 싫어합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려면 10시간이 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간에 대강 생략하고 마치게 됩니다.
여러 시간의 집회 중 울고불고 난리를 많이 치기 때문에 성도들은 시간이 가는 줄을 잘 모릅니다. 헤븐 교회가 시작된 초기에는 도중에 나가는 사람들이 꽤 있었으나 지금은 마지막 끝나는 시간까지 거의 요동이 없습니다. 때로는 폭풍 같은 요란함이 있고 때로는 아무도 의자에 붙은 듯이 꼼짝하지 않은 채 죽음 같은 정적이 흐릅니다.
하지만 정리되지 않은 메시지를 즉흥적으로 마구 전하다보니까 메시지가 왔다 갔다 합니다. 도중에 잊어먹고 끝내기도 합니다. 반면에 홍 목사의 설교는 잘 정리되어 있고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나의 메시지는 난해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후임사역자인 홍윤미 목사는 서울대 중문과와 서울대 대학원 중문과를 나온 재원입니다. 대학을 졸업할 때는 인문대학 전체에서 수석을 할 정도로 영리한 편입니다. 나중에 신학을 하느라 정규신학을 하지는 않았고, 군소신학을 하고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아마 신학적으로는 미흡한 부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모자라는 부분들은 계속 공부를 해야 하겠죠. 하지만 우리는 깊은 신학적 지식을 그리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저 단순히 주님을 사랑하고 갈망하고 그를 따르기 원할 뿐입니다.
나는 세상에서의 으뜸 됨이나 위치, 학벌.. 등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많이 강조하고.. 그런 면에서 서울대 출신들을 많이 낮추어 표현하는 편입니다. 헤븐에는 박사들이나 교수들, 서울대 출신들이 많은 편인데, 내가 공격하든 말든 그들은 꾸준히 교회에 나옵니다. 참 신기한 일입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지위나 학벌을 너무 우상시하기에 그것을 조심하라고 가르치는 것일 뿐 타고난 지혜, 달란트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가르치는 달란트이든, 노동하는 달란트이든, 깨달음의 달란트이든, 예술적인 달란트이든.. 그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신성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상하가 없습니다. 그것은 부르심일 뿐입니다. 다만 교수나 박사가 일용직노무자보다 나은 사람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가르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나는 전할 뿐입니다.
나의 난해한 메시지, 우왕좌왕하는 메시지에 비하여 홍 목사는 깔끔하고 쉽게 메시지를 먹기 좋게 입에 쏘옥 넣어주는 것처럼 전달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아주 좋아합니다. 홍 목사 외에도 지혜롭고 열정적인 여러 사역자들이 헤븐에서 영혼들을 돕기 위하여 기도하고 준비되어 있습니다. 나의 빈자리는 별로 크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없어도 여전히 유지될 헤븐 스타일에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헤븐의 특성입니다.
1. 헤븐에서는 모든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어떤 인위적인 것도 없습니다.
이번에 예배당 건축을 다 마쳤습니다. 헤븐 성도들 중에 건축헌금을 하라는 설교나 권면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강대상에서나 어디에서도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십수 년 사역하면서 헌금하라는 이야기는 한번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본질이 아니며, 신앙의 본질은 주님을 알고, 주님을 만나는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나는 가난한 성도들이 헌금을 하지 못해서 마음이 주눅이 들면 어쩌나.. 그것만이 걱정스러웠습니다.
건축을 하나님이 인도하셨다면, 마치기까지도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을 하면 그만이지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무리하게 억지로 할 바에야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나는 감동 없이 함부로 헌금하지 말라고 여러 번 말했을 뿐입니다. 헌금을 많이 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며 헌금을 안 해도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라면,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헤븐의 성도들은 가난한 이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헌금은 계속 채워졌습니다. 한 번도 시공사에 기성금이 밀린 적이 없었습니다.
헤븐의 헌금은 대부분 무명헌금입니다. 자기 이름을 써내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건축헌금도 3천만 원, 5천만 원, 1억 원씩.. 한 사람들이 있지만 누군지는 전혀 모릅니다. 알고 싶은 마음도 없고, 알 방법도 없습니다. 이렇게.. 헌신을 해도 자신이 전혀 드러나지 않고 어떤 칭찬이나 보상도 없지만 사람들은 은밀히 교회를 돕는 것을 기뻐합니다. 이것이 헤븐 스타일입니다.
헤븐 성도들은 지독할 정도로 헤븐 교회를 사랑합니다. 헤븐을 위해서는 어떤 수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오면 도무지 집에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하늘의 기쁨을 알게 되었고,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었기 때문에.. 이들은 헤븐을 떠나게 되는 것만을 두려워하며 항상 교회의 예배와 모임과 만남을 기다리고 갈망합니다.
헤븐은 어떤 인위적인 것들도 다 싫어합니다. 세상에서 유행하는 좋아 보이는 방법들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이 인도하시느냐.. 기뻐하시느냐 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오직 주의 거룩한 성령이 교회를 이끌고 인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외에 어떤 사소한 계획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무런 비전도 없고 손톱만큼도 크게 되거나 유명해지기를 원치 않으며 그저 주가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갈 뿐입니다.
2. 헤븐에는 자연스러움이 있으며 어떠한 강요도 없습니다.
헤븐에는 일체의 강요가 없습니다. 헤븐은 사람의 자유의지를 중요시여기며, 자유의지를 억압해서는 결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도들의 모든 선택에 설득하거나 우리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애쓰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리는 성도들의 뜻을 존중합니다. 그들의 선택이 좋은 것이든, 옳지 않은 것이든..우리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거의 권면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임에는 일체의 강압적인 요소가 없습니다. 오기 싫은 사람이 오는 경우는 전혀 없습니다. 만일 그러한 경우가 확인되면 우리는 그를 바로 돌려보냅니다.
어떤 모임이든, 행사든, 봉사든.. 자발적이지 않은 사람이 참여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것은 억지 참여나 봉사가 영혼을 억압하고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피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상태에서는 성령이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일체의 강압을 싫어하기 때문에 갈망이 없는 가족들을 함부로 교회에 데려오는 것을 금지합니다. 부모의 욕심으로 억지로 자녀들을 데려오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그런 경우 아이들에게 묻고, 본인이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열망이 없다면 바로 돌려보냅니다. 그러한 억압은 성령을 제한하므로 구원의 길을 더 멀어지게 합니다. 우리가 성령께 순종할 때 그분이 일하시는 것이지 우리가 억지로 강짜를 부린다고 그분이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경우 부모도 같이 돌아가게 합니다. 자녀들 문제로 헤븐에서 나가시게 된 분들도 꽤 있습니다.
전통적인 방식대로 아이를 윽박지르고 억지로 신앙을 강요하며 그 스타일을 바꾸지 않으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이들은 헤븐에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그러한 이들은 성령의 일하심을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성령님은 억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며 그를 높이고 예배하는 곳입니다. 억지로 끌려온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성령의 운행하심을 방해합니다. 우리는 돈을 높이고 사람을 높이고 인간의 방법을 추구해서 오늘날 현대교회의 적지 않은 경우 예수가 쫓겨나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수많은 사람이 모여도 거기에 예수가 없고 성령의 운행하심이 없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러한 불상사를 두려워합니다. 갈급함이 없는 사람은 헤븐에 올수 없습니다. 초신자도, 구원의 때가 되면 갈급함이 일어납니다.
헤븐에는 예배에만 참석하고 예배 후의 조별모임이나 주중의 교구모임이나 일체의 모임에 참석하지 않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약30%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아마 여러 사정들이 있겠지요. 교제와 나눔은 영적성장에 필수적입니다. 예배시간에 들었던 것들을 다시 나누고 고백하고 자신의 삶을 나누며, 주중의 모임에서 부르짖어 기도하고 각종 교제를 나누면서 성도들의 연합은 깊어지고 많은 변화와 간증거리들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에 참여하지 못한다 해도 그것을 강요하거나 하는 경우는 일체 없습니다. 모든 것은 본인의 선택입니다. 우리는 영적 성장에 있어서 각자의 갈망을 약간 도와주는 정도이며 결코 앞에 서서 끌고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항상 자연스러운 시기와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다립니다.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각종 모임과 집회에 눌려서 모임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우리는 그들의 공포증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립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우리의 모임은 그러한 모임과 전혀 다르며 일체의 긴장이나 경쟁이 없이 웃음과 기쁨과 자유함과 행복을 누리는 천국의 모임인 것을 자연스럽게 알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3. 헤븐에는 조언과 징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정교인이 되기 위하여 4주 교육을 받을 때 동의하는 서명을 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에 서명하지 않으면 정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헤븐은 [아무나오게..] 스타일의 복음을 싫어합니다. 오늘날 어느 교회에서든지 교인을 지나치게 우대하는 정신이 복음과 주님을 너무 낮추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주님을 가볍게 여기며 그의 임재 앞에서 죄를 짓는 것을 가벼이 여깁니다.
우리는 아무나오게 하지 않습니다. 마음이 상하고 갈급하지 않은 이들은 헤븐에 와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높은 마음의 사람들은 아무리 그 공간에 성령이 역사하신다 해도 주님을 만날 길이 없습니다.
개신교 교리에서 신학생들에게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것 중에 [교회의 표식]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목사안수를 받으려면 강도사고시에 들어가는 것이므로 꼭 외워야 하는 것이죠.
사람들은 농담 삼아 [교회의 표식? 그거야 십자가지 뭐..] 합니다. 하지만 정답은 아주 쉽습니다.
교회의 표식은 1. 말씀선포 2. 성례실행 3. 권징입니다.
예전에는 교회에서 권징이 많이 행해졌었죠. 하지만 오늘날 권징을 실행하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권징을 하면 기분이 나빠진 교인들이 다른 교회로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기분이 나빠서 떠날 때에는 평소에 친밀한 교분이 있는 성도들과 같이 가는 경향이 있고 그것은 교회의 내분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권징제도가 유명무실한 제도가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성도로서의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했는데도 이를 내버려두고 있다면 그것은 바른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에는 목사들이 교회 안에서 온갖 나쁜 짓을 해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가버리는 경우가 흔한데, 그것은 이미 교회로서의 기본기능을 상실한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러한 곳에는 예수님께서 거하실 수가 없습니다.
헤븐의 권징은 아주 단순합니다. 헤븐의 체제나 사역자들에 대한 불만이나..이런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성도들 간의 사소한 갈등이나 바람직하지 않은 언행입니다.
보고가 들어오면 우리는 그들을 부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불쾌감을 준 사람은 반드시 사과를 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문제는 개인적으로 사과하고, 여러 사람들 앞에서의 문제라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사과를 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문제를 일으킨 이들은 사죄를 하고 문제가 끝이 납니다. 사과하고 싶지 않다고 교회를 떠나겠다고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의 결정을 존중하고 축복하며 보냅니다.
사안에 따라 사과로 끝나는 경우도 있고 조금 내용이 중한 경우는 한동안 조별모임이나 교제모임에 올수 없게 되기도 합니다.
전에는 주일예배도 몇 차례 정도 참석을 금지시킨 적도 있었으나 이 경우는 당사자가 너무나 큰 고통을 호소하므로 이 방식은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교제모임에만 빠질 뿐 예배참석은 다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최대의 징계가 몇 주 정도 교제의 제한이기 때문에 예배만 드리고 다니는 이들은 아무런 징계가 없습니다. 이들은 아무와도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기 때문에 잘못하거나 실수할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면 징계를 경험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생 얻지 못할 큰 유익을 징계를 통해서 얻었다고, 자기의 영적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합니다. 지금 헤븐에서 많은 변화된 삶을 누리며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는 이들 중에 이러한 징계를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들은 하나같이 그 순간들을 감사해합니다.
보고가 들어와서 조사를 하는데, 당사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끔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모든 관련 당사자들을 부릅니다. 그리고 증언을 받고 기록합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들이 선명해집니다. 아이들의 문제들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이렇게 세세하게 다룹니다. 아이들끼리 싸우거나 악한 말을 사용했다면, 그대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헤븐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은 세상에서의 습관대로 불리하면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헤븐에 온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어른들에게 인사하는 것과 순종, 예의를 배웁니다. 바깥의 아이들처럼 함부로 소리 지르고 어른에게 대들고.. 이런 것은 헤븐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떤 아이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서 10여명의 아이들을 불러다 조사하고 처리한 적이 있었습니다. 연관이 있는 헤븐 사역자들도 여러 명, 헤븐스쿨 관계자도 포함이 되었죠. 그러자 당사자의 어머니는 사역자들이 아이들을 윽박질러서 아이들 모두가 거짓 증언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자기 아이의 말을 너무 믿은 것이죠.
이것은 사실 좀 황당한 논리입니다. 헤븐 사역자들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고, 또 누구의 편을 들어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곳은 헤븐이기 때문에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그래서 성령이 운행하시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들을 제거할 뿐입니다. 성도들끼리 서로 불편한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예배와 성령을 제한합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처리할 뿐이지 어떤 누구에게 유리한 판정을 해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름다움과 거룩함을 위하여, 성령이 소멸되지 않도록 문제들을 제거하고 징계를 하는 것인데, 그것을 거짓으로, 억압으로 한다면 성령께서 함께 하실 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결코 애매한 문제로 사람들에게 권면하거나 징계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당신은 자아가 너무 강합니다] 이런 식이면 뭘 어떻게 고쳐야 하는지 애매합니다. [당신이 **에게 이렇게 말한 것은 심했고 모욕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과해야합니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선명한 문제만을 다룹니다.
또한 권면이나 징계라고 해서 사역자들이 권위적인 태도나 억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렇게 사죄하는 것이 성도님의 영혼과 영적성장에 유익하며 우리는 그것을 도울 뿐이라고 말합니다.
가끔 젊은이들이 사역자들에게 억울하다고 잘못한 것이 없다고 혈기를 부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사역자들은 조용하고 잔잔한 자세를 유지합니다. 모든 사역자들의 애정이나 판단을 믿지 못하겠으면 이런 징계나 조언이 없는 교회도 많으니까 성도님이 신뢰하고 존경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을 고려해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대부분의 경우는 꼬리를 내리고 죄송하다고 고백하곤 합니다.
한번은 말을 너무 팍팍 함부로 해서 불려간 분이 계셨는데 이분이 폭발을 하셨습니다.
[교회가 무균실이에요? 그렇게 사소한 말도 못하고 어떻게 살아요?]
하지만 이분은 자기의 사소한 말로 많은 성도들이 상처를 받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을 사람들 앞에서 면박주는 일도 수시로 하곤 하였는데 이런 일은 헤븐에서 용납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분은 헤븐을 떠나면서 여기 계신 분들의 인격이나 삶이 부럽고 존경스럽고 자기도 그렇게 되고 싶기는 하지만.. 이렇게 잔소리를 들으며 살고 싶지는 않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결정을 존중하고 축복하며 보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이 있는 곳입니다. 거기서 아무도 함부로 거칠은 언행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누군가 교회 안에서 혈기를 부리고 했다면 그분은 곧 부름을 받게 됩니다. 반성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더 이상 활동할 수 없습니다. 여기엔 아무도 예외가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울 아름답게 보존해야합니다
4. 헤븐의 사역자들은 권위적이지 않습니다
헤븐이 시작된 초기에는 부사역자들이 나의 사상을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억압하고 물질적인 문제나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문제들을 일으킬 때가 있었습니다. 나의 이름을 이용해서 성도들을 괴롭히고 착취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나중에 상황들을 알게 된 나는 몹시 놀랐고 사역자들은 다 교체되었고 문제들은 다 해결되었습니다. 자세한 상황을 다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부사역자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나와 아내가 꿇어 엎드려서 울면서 성도들에게 용서를 구한 적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쉽게 믿는 편이고, 그 결과로 많은 대가를 지불하였습니다.
그 이후, 더 이상 사역자들이 권위적으로 명령하듯이 성도를 대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성도들의 성장을 도울 뿐입니다.
내가 권위적인 부분에 대해서 조심하라고 부사역자들에게 강조를 하다 보니 좀 자연스럽지 않은 부분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성도들이 일체 사역자에게 금품제공이나 선물이나 접대를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역자가 성도를 위하여 여러 시간 상담할 때도 사역자들이 먹을 것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여러 시간이 걸리는 성도들의 직장에 심방을 가서도 사역자가 식사를 대접하는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런 경우는 성도들이 아주 심하게 가난하지 않은 경우에는 식사를 대접하는 것이 옳다고 정정해주었습니다.
헤븐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권위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사역하고, 주가 명하시는 것을, 기쁘시게 여기는 것을 위하여 사역하고 조언하고 권면합니다. 거기에는 권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권위주의는 아닙니다. 우리는 결코 권위적인 자세로 일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도 존중하고 결코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그 인격을 존중해줍니다. 어린아이가 잘못을 행했다고 해서 모욕적으로 혼내고 징계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단호하지만 부드럽게 권면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반성하고 울면 우리는 아이를 안아주고 기도하고 축복해줍니다.
나는 성도들을 가족처럼 대합니다. 연세가 어린 친구들을 자녀처럼 대하고 연세가 있는 분들을 부모님처럼 여기며 존대합니다. 나보다 한 살만 많아도 누님처럼, 형님처럼 대합니다. 헤븐에서 사역자가 성도를 억압하거나 명령하거나 하는 일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 같이 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5. 헤븐에는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
헤븐에서는 세상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대해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 학벌, 명예, 권세.. 이런 것들에 대해서 가볍게 여깁니다. 헤븐에서는 가난하고 못 배우고 재능도 없고.. 그러한 어떤 사람도 차별받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을 대접하지 않으며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을 하대하지 않습니다. 헤븐이 중시여기는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겸손하고 온유하고 순수하며 그리스도를 갈망하는 가입니다. 그것만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존경을 받게 됩니다.
헤븐은 돈을 높이지 않습니다. 나는 오늘날 교회가 죽어가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가 교회가 돈을 사랑하고 높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돈을 높이면 물질의 영이 교회에 들어오고 성령은 떠나십니다. 예수가 쫓겨난 교회가 됩니다. [나는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 하지만, 주님이 쫓겨나가셔서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됩니다.
예배를 드리며 헌금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도 돈을 높이는 행위입니다. 이론의 여지는 있겠지만, 주보에 헌금자 명단을 싣는 경우도 있는데 나는 이것도 돈을 높이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명예심이 있는 사람이면 헌금을 쪼개서 여러 명목으로 헌금을 하고, 헌금자 명단에 자기 이름이 올라가있는 것을 보고 흐뭇해할 것입니다. 어떤 교회에서 주보의 헌금자 명단에 자기 이름이 빠졌다고 언성을 높이고 따지는 소동을 벌이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물론 이들은 주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헌금을 강조하는 것도 돈을 높이는 행위입니다. 교회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목사가 징징거린다면, 성도들은 하나님이 아주 무능한 분이시며 돈이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시는 분이구나..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약한 하나님보다 훨씬 더 강한 물질의 신을 믿으려고 하게 됩니다.
부유한 사람을 우대하는 것도 돈을 높이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재벌수준의 재산을 가진 이들과 원룸에 사는 이들이 아무 거리낌 없이 어울립니다.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는 세상이야기가 전혀 없고 오직 주님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갈등 없이 나눌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대화중에 세상 사람들이 하듯이 돈 자랑이나 자식 자랑, 학벌 자랑, 가문 자랑을 하고 있었다면.. 아마 그분은 조용히.. 징계를 위한 부름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그런 짓거리를 하려고 오는 곳이 아닙니다.
헤븐은 명예나 감투를 높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명칭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성도들은 흔히 장로나 권사 등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불리면 뭐가 좋은지 잘 이해가 안가지만, 아무튼 그것을 대단하게 여기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거액의 돈을 내고 장로나 권사가 됩니다. 돈이 없으면 그것도 할 수 없습니다. 실제적인 주님을 만난다면, 아마 그러한 외적인 치장에 그리 관심을 갖지 않게 될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목사라 부르던 먹사라 부르던 아저씨라 부르던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명칭들은 그저 사람을 구분하는 데 필요할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아름다운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 주목할 것은 오직 그의 갈망과 인품의 아름다움입니다. 감투나 외관은 신경쓸 필요가 없습니다.
인격이 안 된 사람일수록 손톱만한 완장을 차면 온갖 갑질을 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지옥에 속한 사람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입니다. 천국에 속한 사람은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거드름을 피우지 않으며 오직 사람을 돕고 섬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게 노력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께서 그렇게 이끌고 가시기 때문입니다.
헤븐은 학벌을 높이지 않습니다. 학벌에 대한 집착은 오늘날 한국인, 한국교회를 파괴하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나는 이 질병에 대한 세뇌가 얼마나 깊으며 영과 혼을 파괴하는지 강조하여 반복해왔습니다. 사람의 삶이 업그레이드되는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복음을 깨닫고 주님께 굴복하며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킵니다.
남들이 알아주는 학벌을 억지로 노력해서 가졌다고 해서 인생은 결코 흑암에서 빛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불행히도 오늘날 이 거짓종교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무릎 꿇고 경배합니다. 교회도 이 경배에 동참하는 중요한 공범자들입니다. 이것은 너무나 끔찍한 비극입니다.
돈을 주고 교회 직위를 사는 이들이나 돈을 주고 박사학위를 사는 이들이나..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학위에 대한 집착은 열등감에서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하늘을 모르고 주님을 모르고 복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혜나 지식은 부르심이며 타고나는 것입니다. 학위를 아무리 베끼고 만들어내서 여러 개를 땄다고 해서 지혜롭지 않은 사람이 지혜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학위가 전혀 없고 학교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도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롭습니다. 그것은 달란트적인 것이며 주어지는 것입니다.
지혜와 지식의 은사, 부르심이 있는 이들은 학위의 여부를 떠나서 연구하고 공부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헤븐에 서울에 있는 명문대학의 교수이며 학과장인 분이 있습니다. 이분이 부교수인데, 정교수가 되려면 매학기 마다 논문 한편씩 써야 합니다. 학교일도 많고 학회일도 많고 게다가 교회일도 빠지지 않고.. 도무지 시간이 안 되니 몇 년째 논문은 밀리기만 했습니다. 나는 상황을 알고 이분을 불러서 논문을 쓰는 것에 대하여 여러 가지 팁을 주었습니다. 사명에 대해서, 교회 일에 대해서, 성령 안에서 그 영감을 받으며 논문을 쓰는 것에 대해서.. 한참 동안 성경의 예화를 사용하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분이 크게 기뻐하며 듣더니 다시 논문에 도전해서 짧은 기간에 놀라운 속도로 한 가지를 끝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필이 왔다고 하면서 다시 두 번째 논문에 도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성령 안에서 영감을 받으면서 논문을 쓰는 것이 이렇게 쉽고 재미있는지 몰랐다고 즐거워했습니다.
이것은 부르심입니다. 연구와 공부에 부르심이 있기 때문에 성령께서 영감을 주시는 것이고 성령 안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부르심이 있고, 그 부르심을 따라 영적인 원리에 따라 살면 마치 바람에 돛단배가 나아가듯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나아가게 됩니다.
공부에 부르심이 있는 사람은 하면 됩니다. 하지만 달란트가 없는 것을 억지로 흉내 내고 겉을 포장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달란트가 없다는 것은 하나도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부르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부르심이 없는 것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못하는 부분이 많고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잘 하는 사람에게 배우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으로 다른 이들을 섬깁니다. 그렇게 서로 서로 봉사하면서 천국은 이루어져가는 것입니다.
헤븐은 사회적으로 힘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도 전혀 높이지 않습니다. 헤븐은 주님 외에는 아무도 결코 높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담임목사를 지나치게 높인다면.. 그 사람은 조용히 불림을 받게 됩니다. 카페에서는 경고를 받고, 시정이 되지 않으면 활동제한이 됩니다. 나는 주님이 받으실 영광을 대신 취하므로 하늘의 재앙과 저주를 받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사회에서 잘 나가는 위치에 있는 어떤 분은 헤븐에서 자기네들을 높여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전의 교회들에서는 항상 담임목사님이 사람들 앞에서 소개해주시고 칭찬해주시고 하셨다고.. 서운함을 비치기도 하였습니다. 그것은 헤븐을 전혀 오해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실 일을 행할 만큼 간이 크지 않습니다.
헤븐에서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나, 힘겹게 살고 있는 사람이나.. 아무 차별이 없습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이 좀 더 대접을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가난하다고 해서 돕지는 않습니다. 그가 얼마나 주를 사랑하고 겸손한 사람인지를 중요시 합니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돕는 것은 그의 영혼에 해롭게 될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나의 경우도 가난하고 힘든 이들을 잘 지나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생활비를 돕기도 하고 월세보증금이나 이사비용이나 장학금 등을 돕기도 합니다. 이런 식으로 도운 것이 억대는 넘을 것입니다.
나는 사역자가 교회 헌금을 가난한 이들에게 지원하면서 마치 자기 돈으로 선심을 쓰듯이 생색을 내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개인적으로 사비로 돕게 됩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상대방이 받을 수 있는 상태인지를 조심스럽게 관찰합니다. 나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도울 때, 그 도와줌으로 인하여 오히려 증오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둡니다. 사역이란 사실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그 대가로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흔히 겪는 일입니다.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 결과로 공격을 받는 일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목회이며 주님의 가신 길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므로 그리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헤븐은 오직 주님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존경을 받고 인정을 받습니다. 신앙연조가 길지만 열매가 부족한 이들도 있고, 헤븐의 메시지를 접한 지 짧은 시간에 놀라운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외적인 조건보다 오직 그의 열매를 중요시합니다.
6. 헤븐은 교제를 중요시합니다.
성도들은 교회를 사랑하고 사역자들을 사랑하지만 무엇보다도 또래의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는 것을 아주 기뻐합니다. 그래서 그 교제의 시간들을 기다립니다.
얼마 전 호흡기 전염병인 메르츠가 확산되고 있어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었을 때 우리는 진원지에서 가까웠던 사람들이 있어서 한 주일은 예배만 드리고 교제는 하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가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한주일 동안은 주중에 드리는 교구모임을 중단했습니다.
한 주가 지나서 진정이 된 후에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너무나 허전하고 그립고 슬펐다는 것입니다. 예배만 드리고 집으로 바로 가는 것에 이들은 전혀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루 종일 교회에서 울고 웃으며 주의 은혜를 나누고, 저녁 으슥한 떼 돌아갈 때도 아쉬워하는 것이 이들입니다.
이들은 하루 종일 서로를 보고파합니다. 세상에서는 자기의 약점을 이야기하면 이상하게 안 좋은 소문이 나고 힘든 경우가 많아서 친구에게도 마음을 토로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헤븐에서는 자신의 슬픔, 약점, 연약함을 이야기해도 아무도 비판하거나 함부로 훈계를 하지 않습니다. 그저 격려하고 위로하고 힘을 줍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마음껏 마음을 토하며 주님을 나누고 자신을 나눕니다. 자신을 다 받아주고 알아주고 힘이 되어주는 가족들이 있는 것은 삶에서 큰 재산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교제를 몹시 그리워합니다.
헤븐의 성도들처럼 교회를 사랑하는 이들은 아마 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나 봉사가 필요할 때, 우리는 인원이 모자란 적이 없습니다. 모두가 지나치게 많이 모여서 땀을 뻘뻘 흘리며 정말 열심히 일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아무도 몸을 사리지 않습니다. 여름 수련회를 갈 경우는 정말 짐이 많은데 그 더운 여름에 땀이 범벅이 되어도 그저 웃으면서 행복한 모습으로 일합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칭찬하지 않는데도, 모두가 헤븐의 일이라면, 서로 같이 일하는 것이라면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결혼식도 축제이지만, 장례식에도.. 그 어떤 모임에도 일하고 봉사하는 것에도.. 청소에도.. 헤븐 식구들이 같이 일하는 데에는 항상 기쁨과 웃음이 있습니다. 모두들 일을 일로 여기지 않고 놀이로 여깁니다. 우리는 항상 함께 있으면 행복합니다. 그것이 헤븐의 문화입니다.
나는 그것을 보고.. 제발.. 쉬엄쉬엄 일하라고.. 걱정의 말을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항상 괜찮다고 웃습니다.
헤븐가족들은 항상 모이기를 힘씁니다. 아무도 오라고 하지 않지만 기를 쓰고 옵니다. 가정 심방에는 엄청난 인파가.. 집이 부서지지 않을 정도로 모입니다. 헤븐의 심방은 기존의 심방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지요. 같이 음식을 만들어먹고, 웃고, 춤추고.. 어린아이들처럼 장난치고.. 정말 주님 앞에서의 어린이들처럼 놉니다.
사역자들은 다들 유머에 뛰어나신 분들이고 모임을 감동적이면서도 즐겁고 재미있게 인도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습관이 되어서 서로간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폭소기 터지고 쓰러집니다. 중간에 기도하며 축복을 나눌 때는 울기도 하지만.. 나중에 심방이 끝나고 집에 갈 때쯤이면 너무 웃어서 허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심방 사진들을 보면 하나같이 얼굴에 얼마나 기쁨과 아름다움이 있는지 황홀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함께 있기만 하면, 무엇을 해도.. 일을 해도.. 놀아도. 예수님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며 그저 기쁘고 행복하기 때문에 어떤 모임이든 기를 쓰고 모이는 것입니다.
헤븐의 교인들은 교회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교회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다닙니다. 직장에서 훨씬 멀어도 무조건 무리해서라도 교회 근처로 이사를 옵니다. 날마다 밤 기도회를 모이기 때문입니다.
원당에 교회가 이사 왔을 때도 근처에 100 가정 정도가 이사를 왔습니다. 이번에 원흥으로 교회가 이사를 갔지만 원흥은 집값도 전세도 월세도 훨씬 비싸서 대부분 이전이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70여 가구 가까이 원흥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집을 팔고, 빚을 내고, 좁아진 집 때문에 짐을 많이 버리고, 월세를 훨씬 더 부담하면서 무조건 이사를 왔습니다. 이들은 헤븐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날마다 교회에 와서 기도하고 교제하는 그 시간들을 너무나 사모하는 것입니다. 집을 훨씬 줄여가면서도 고작 10분을 더 교회 가까이 오고 싶어서, 걸어서 교회에 오고 싶어서 힘겹게 이사를 온 것입니다.
이러한 열심과 사랑이 어디에서 가능한 것일까요? 그것은 오직 예수입니다. 인간의 사랑은 한계가 있지만, 교회에서 오직 예수를 배우고 그 놀라우신 예수의 은혜와 사랑을 알게 된다면.. 사람들은 누구나 예수에게 빠지게 되며, 같이 예수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들이 서로 미워하면서 사랑이 식은 채로 삽니다. 나는 결혼식의 비유에서 이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여기 삼각형이 있습니다. 삼각형의 꼭대기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삼각형의 아래 두 끝에는 남편과 아내가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꼭대기에 게신 예수님과 가까워질수록 두 부부의 거리는 가까워지며 서로의 사랑은 깊어집니다. 남편과 아내가 꼭대기에 계신 예수님과 연합된다면, 두 부부도 같이 연합됩니다.]
교회의 아름다움, 풍성함, 열매들은 오직 한 가지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이 오직 예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고 그분께 자신을 드리고 그분의 소유가 되며 그분께 미친다면.. 모든 성도들은 서로 서로 깊이 사랑하고 그리워하게 됩니다. 가정에서도, 삶에서도 항상 섬기며 사랑하게 됩니다.
헤븐은 오직 교회에서 예수님을 가르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려고 합니다. 그것만이 헤븐의 목표입니다. 그리고 헤븐의 모든 열매의 원인입니다.
7. 헤븐의 사역자들은 평등합니다
사역에 있어서 질서가 있는 것은 분명한 일입니다. 그러나 사역 자체는 다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며 동등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역자의 사례에 차별을 두지 않습니다. 담임 목사, 부목사, 강도사, 전도사. 모두의 월급은 똑같습니다. 다 같이 230만원입니다. 다른 수입이 있어서 조금 덜 받는 이도 있고 가난한 편이라 조금 더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봤자 몇 십만 원의 차이입니다. 담임목사인 나보다 조금 더 받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분들이 무슨 특별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230만원에 다른 도서비, 사택비.. 그런 품목들은 없습니다. 나는 모든 평신도들이 월급만 가지고 잘 살아가고 있는데 왜 교회의 목사들은 월급 외에도 이런 저런 품목의 비용이 주어지는지 잘 이해가 안 갑니다. 자녀교육비를 따로 받는 목사들도 있는 것 같던데.. 모든 평신도들도 자녀를 키웁니다. 목사만 자녀를 키우지 않습니다. 이러한 구별은 좀 이상합니다. 차라리 월급을 좀 올리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헤븐의 모든 사역자들은 서로 깊이 사랑하며 형제와 같고 가족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이는 것을 즐거워하며 같이 웃고 울며 기뻐합니다.
나는 사역자모임이 있으면 사역자들에게 영적인 원리, 주와 동행하는 길에 대해서 주로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같이 기도하고 찬양합니다. 같이 어울려 탁구를 치고 놀기도 합니다.
경제사정이 내가 제일 나은 편이기 때문에 나는 이들이 어려울 때 돕습니다. 보증금을 지원하기도 집에 필요한 가구를 사주기도 합니다.
아내는 워낙 주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까운 리더들 중에는 아내에게 가구나 옷이나 여러 선물들을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우리를 친정 부모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가 사람들에게 가구를 사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선물을 주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만, 우리는 자유롭게 성도들이나 사역자들에게 줄 수 있습니다.
가끔 상담을 하다보면 여러 사정으로 신혼여행을 제대로 가지 못한 부부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여행비용을 제공하고 몇 년.. 몇십 년 늦었지만.. 신혼여행을 가게하기도 합니다.
한번은 어느 사역자부부에게 제주도에 휴가를 주고 여행비용을 부담해서 여행을 보내려고 했는데 이들이 [어떻게 우리만 가요.] 하는 바람에 결국 몽땅 보낸 적도 있습니다. 나는 몸이 약해서 여행을 가기 어렵지만 그들이 함께 여행을 줄기며 보낸 사진들을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행복합니다. 이들은 다 나의 가족이고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기쁨과 행복은 나의 행복입니다.
사역자들은 서로 몹시 친하고 사랑하며 같이 있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가족이나 형제들보다 더 친밀하게 지냅니다. 그래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전체가 같이 가는 일이 흔히 있습니다. 먼 지방에 장례식이 있으면.. 운전이 힘들 것이라고 여기고, 서로 번갈아 운전을 하기 위하여 전체 사역자가 따라가기도 합니다. 군대에서 휴가 나온 형제가 귀대하는 일이 있으면 거기에도 담당사역자 외에 다른 사역자들도 같이 따라갑니다. 가면서 고기 잡는 그물 등 놀이도구를 가지고 가기도 합니다. 아무튼 같이 놀고 함께 하는 것을 서로 즐기는 것입니다.
8. 헤븐의 재정 상황은 아주 투명합니다
교회 재정의 부정은 최근 들어 많이 이슈가 되는 것 같습니다. 헤븐에는 시스템 자체가 투명해서 부정이 개입될 여지가 없습니다.
헤븐은 매달마다 십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입출금의 금액과 내용을 공개합니다. 이 외에도 중보팀, 리더팀, 본부팀의 카페에는 매주 마다 정확하게 헌금의 입출금의 내용, 잔액이 공개됩니다.
재정의 사용은 사역자, 집행부에서 의논하고 70명 정도 되는 전체의 의결을 받아서 결정합니다. 우리는 교회의 중요한 일도 소수의 반대자가 있으면 일단 중지하고 다시 기도합니다. 우리는 거의 만장일치로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작년에 어떤 분이 내게 거액을 요구하면서 주지 않으면 시끄럽고 안 좋은 소문이 날것이라고 협박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담임목사가 마음대로 교회의 헌금을 주무를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 모양입니다. 하지만 헤븐은 담임목사 혼자서 마음대로 수억의 돈을 움직이고.. 그럴수 있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이 내용을 전체 회의에 붙인 결과 전체가 만장일치로 극도의 분노를 표시했고 고소를 하겠다는 등 격앙이 되는 상황이어서 나는 이들을 제지하기 어려웠습니다.
협박하신 분은 요구가 통하지 않자 어느 교단에 들어가 스스로 창조한 여러 거짓 제보를 하고 몇 명의 협력자들을 모아서 나를 이단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도 별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흐지브지 끝난 모양입니다. 아마 고발하신 분들의 동기, 목적, 이해관계, 관련된 사실 등의 내막을 알게 되면 거기에 넘어가서 이단 심사를 하려던 분들은 몹시 부끄러울 것입니다. 관련된 증거나 증인들은 명백하고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거짓 제보들의 내용들은 내가 사람들을 학대한다는 등.. 헤븐에 있는 사람들이 들으면 다 웃을 만한 내용들입니다. 가까이서 나의 삶을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내가 몇 년간 사역하면서 화를 내는 것을 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어린아이에게라도 비인격적으로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두려운 존재라면, 어린아이들이 어디서든 나를 발견하면 나에게 전속력으로 달려가 안기려는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강대상이든 아니든, 삶의 모든 순간에 항상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그분을 모시고 따르는 길에 대해서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명백한 증거들과 명백한 증인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거짓은 성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어두운 곳에서 돌을 던질 수는 있겠지요.
거짓으로 만들어낸 비난에 넘어가서 나를 같이 비난하던 이들도 있었는데, 나의 설교를 듣고 그런 말을 들은 다음, 그들의 말이 옳다고 인정한다면 그것은 본인의 선택이므로 나는 그것을 존중합니다. 모든 이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자유가 있습니다. 누가 나를 욕하던 말던 나는 그다지 개의치 않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유의지가 있고, 나는 나를 전파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주와 주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나는 하나님만을.. 나의 양심만을 두려워합니다.
헤븐은 돈에 대해서 깨끗합니다. 헤븐의 사역자는 교회를 떠나 은퇴한다고 해도 전별금을 받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교회는 사역자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이고, 성도들은 하나님께 헌금한 것이지 목사에게 헌금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부흥했다면 그것은 복음의 아름다움 때문이지 사역자가 잘나서가아닙니다. 로얄티를 받으실 분이 있다면 그분은 주님이시지 사역자가 아닙니다.
만일 떠나는 사역자가 너무 어려워서 끼니를 이어가기 어렵다면, 구제 헌금 정도를 지원할 수 있겠지만.. 마치 교회가 목사의 것인 양 당당하게 거금을 받아서 나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제도입니다.
목사의 수고는 월급으로 이미 지불된 것이며 오랜 동안 봉직했다면 사회통념상의 평균적 수준의 퇴직금을 받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직장도 그 이상으로 퇴직한 직원의 노후를 보장해주지는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므로 재산을 잃고 점점 가난해지는 것은 사역자의 당연한 일인데, 거기에 보상이 주어진다면, 그는 하늘나라에서 받을 것이 없게 될 것입니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목사의 길을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그는 기업가를 꿈꾸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9. 헤븐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헤븐인들을 보고 주변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얼굴이 아주 밝고 환하고 항상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뚜렷이 구분이 된다는 것입니다.
[거기 사람들은 지금, 현재 천국에서 사신다면 서요?] 우리는 이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나는 성도들에게 [지금 이 순간이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하다] 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마다 나는 말하곤 합니다.
[내일이면 깨질 거에요. 내일은 더 행복할 테니까..]
사람들은 까르르 웃습니다.
수십 년 같이 살던 부부들이 마치 신혼을 사는 듯 서로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말합니다. 문제도 여전히 있고 경제도 어렵고 직장이나 다른 가족들 간의 갈등이나.. 신앙을 핍박하는 이들이나.. 여러 문제들은 산재해있지만 그래도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행복과 기쁨은 헤븐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것은 그 기쁨이 땅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왔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모든 고통은 인생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왕이 되고 주인이 되어 제 멋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삶은 마귀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으므로 아무리 돈이 많아도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알아주어도 항상 불안하고 근심과 두려움으로 분노와 짜증으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주의 십자가 앞에 엎드러져 자신을 주님께 드린 사람. 그리고 주와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천국의 기쁨이 있습니다. 이는 세상에서 온 것이 아니기에 세상의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가 없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기쁨이 있었고, 초대교회 성도들이 순교를 당하면서도 기쁨의 찬송을 쉬지 않았던 것은.. 그 당시는 번영, 성공, 비전, 형통 따위의 복음이 없었고 초기에는 오직 순수한 복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늘의 기쁨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신자들은 대부분 자아의 영광, 욕망의 종교에 빠져서 세상의 기쁨, 쓰레기들을 구하며 마귀에게 짓눌려 삽니다. 그래서 지옥 같은 삶을 삽니다. 그러면서 구원의 확신이 있다고들 합니다. 아직.. 이 땅에 있을 때.. 살아있을 때 그 신앙의 패턴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의 영원은 안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주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합니다. 토요오전 기도모임을 마친 후 도시락을 들고 한강이나 여러 공원을 다니면서 노는 것을 즐깁니다. 처음 헤븐에 온 이들은 이것을 의아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하루 종일 기도와 말씀에만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적당한 휴식과 놀이를 즐기는 것도 영혼의 성장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여러 대외 활동도 많이 합니다. 화정역 광장, 서울역 광장. 광화문 광장. 청계천 등지에서 찬양하고 경배하는 모임을 가지는 것도 즐기고, 청와대, 국회, 등 주요 부서를 둘러싸고 기도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WCC 반대 운동을 위해서 부산까지 내려간 적도 있었습니다. 봉사활동을 즐기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놀이모임도 좋아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모든 일이 맡겨져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지구촌 어디에는 홍수가 있고, 어디에는 내전이 있습니다. 그 모든 일에 우리가 책임을 지고 부담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부분들을 할 뿐입니다. 그리고는 놉니다.
우리는 놀아도 아주 열심히 놉니다. 산보도 하고 공놀이도 하고 어린아이같은 게임도 하면서 웃고 즐기면서 놉니다. 어디에 가든지.. 밤늦은 컴컴한 시간까지 남아서 노는 것은 우리들뿐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일단 만나면 헤어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그 놀이의 기쁨, 여운은 다음날까지 훈훈하게 남아있습니다.
주를 따르는 길은 고난의 길이며 좁은 길이며 자기 부인의 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평화가 있습니다. 행복이 있습니다. 헤븐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누리고 경험합니다. 우리는 그 기쁨이 천국에 갈 때 까지 이어지고.. 천국, 우리의 본향에서는 더 깊은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헤븐인들은 항상 헤븐이 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헤븐 스쿨에 다니는 학생들은 가끔 말하기를 [내가 전에 지옥학교에 다닐 때에는..] 하고 이야기를 합니다. 전에 거칠고 부모에게 거스르고 대들고 컴과 게임에 빠지고..연예인 따라하고 꾸미고.. 그러면서도 항상 불안하고 비참했던.. 이전의 시절을 지옥으로 추억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수업이 없어도 틈만 나면 학교에 와서 살다시피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천국과 기쁨은 누구나 사모하기 때문입니다.
헤븐 스타일에 대해서는 더 쓸 것이 많지만 더 자세하게 쓰자면 책 한권의 분량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이 헤븐 스타일은 내가 사라져도 계속 유지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부담 없이 편안하게 사역을 내려놓을 수가 있습니다.
이제 입당예배는 코앞에 닥쳤고, 건축은 아주 소소한 하자 점검 정도 외에는 다 끝났습니다. 혹자들은 기쁘고 좋을 것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기쁨보다는 걱정 근심이 더 많습니다.
헤븐이 원흥에 교회를 건축한 것은 외적으로 크게 부흥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반복하여 말하지만 나는 그런 것이 싫습니다.
세상에는 진정한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린 수 천 명 수 만 명의 교회가 차고 넘칩니다. 세상을 가르치면 사람들은 많이 몰려오고 그리스도를 가르치면 사람들은 모이지 않습니다. 진정한 부흥이란 사람 많이 모이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길.. 넓은 길.. 유행하는 길은 안전한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갈 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인도하셨겠지만.. 나는 이렇게 도시의 중심부에 오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나는 이곳이 가난한 지역인줄 알았더니 임대아파트는 두 개의 단지 뿐이고 다섯 단지가 일반 아파트였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과연 복음을 받아들일 것인가.. 나는 걱정스러웠습니다.
교회는 성패는 간단합니다. 부자와 권세자가 들어오면 망합니다. 주님이 떠나시고 마귀소굴이 됩니다. 초대교회도 3세기에 이르러 황제가 교회에 들어오면서 망했습니다. 교회에 부와 권세가 주어지면 복음은 죽습니다. 교회는 가난하고 마음이 상한 자들이 들어올 때 성령이 임하시고 하늘의 집이 됩니다.
나의 애당초 계획은 폐공장과 같은 것을 구입하여 대강 수리해서 교회로 쓰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찾아오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멀리서 사모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찾아오는 교회가 되기를 원했지 그저 집 앞에 교회가 있으니까 오는 사람들이 모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고 구해도 방법이 없어서 할 수 없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교회를 화려하게 짓는 게 싫어서 대강 공장스타일로 예배당도 단층으로 허름하게 설계를 했는데.. 모든 시공사들이 일치하게 반대를 해서 결과적으로 싸게 지으려고 하다가 설계비만 몇 천만 원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외부에서 교회인지 모르도록 십자가도 안 달고 공장처럼 지으려고 했는데, 이곳이 종교부지라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애초에 내 예상대로 된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 외부 사람들이 오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교회가 크게 되는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교회에서 모이고 놀기에 공간이 너무 좁아서 여유 있는 공간으로 가고 싶었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예배가 끝나고 집에 가지 않는데, 우리는 갈 데가 없었습니다. 여유 공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배가 끝나자마자 수백 개의 접이식 의자를 접어서 구석에 세워두곤 했습니다. 그리고 바닥에 앉아서 교제를 했습니다. 다음 예배 때는 또 반대로 의자를 펴놓아야 했습니다. 아무튼 공간이 너무 좁았습니다.
우리는 마음대로 소리를 지르며 뛰고 기도해도 아래층에서 항의하러 올라오지 않는.. 엘레베이터도 눈치보면서 타지않을 수 있는.. 사람들의 항의와 불평 때문에 여름수련회도 할수없고 거액을 들여 다른 공간을 빌려야하는.. 이러한 불편함에서 벗어나 그저 간섭받지않는 우리만의 자유롭고 독립된 공간에서.. 마음껏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제 건축이 끝났으니 우리는 자유롭고 편안하게 마음놓고 예배드릴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교회의 모습이 외부에도 드러났기 때문에 외부 사람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걱정입니다.
지금까지 헤븐 교회는 외부에 어떤 교회 표지도 없었습니다. 주로 나의 독자들이 책을 읽고 찾아왔습니다. 책의 메시지에 충격을 받은 이들이 주님을 알고 싶어서, 영적으로 성장하고 싶어서 온 분들이거나 소개를 통해서 오신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제 원흥에서는 일반 기독교인들이 올 것입니다. 기존 기독교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별 갈망도 없고 세상에서 출세하고 복 받겠다는 사람들이 올 것입니다.
나는 일반 교인들의 영적상태나 수준을 대강 알고 있습니다. 어릴 적부터 모태신앙으로 자랐기 때문에 교회 문화에 익숙합니다. 객관적으로 말해서, 일반 교인들의 도덕적, 윤리적, 인격적 수준은 불신자보다 많이 떨어집니다. 교회에서 중책을 맡은 이들일수록 그 상태는 더 심각합니다. 이는 교회에 다니는 것이 인격적으로 영적으로 성장하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형식적으로 습관적으로 교회에 다닐 뿐, 신앙이라는 것이 그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탐욕이나 욕심이나 이기심이나 자아영광을 추구함이나 모든 면에서 불신자들보다 나을 것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실제적인 그리스도를, 복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헤븐에 처음 오시는 분들도 처음에는 비슷합니다. 대부분 얼굴이 굳어있고 날카로우며 은헤와 영의 흐름에 둔감합니다. 신학훈련을 받은 분들도 많고, 대부분 여기저기를 거치면서 온갖 훈련들을 섭렵하시고 오신 분들이 많기 때문에 자기 신앙에 대한 자부심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자부심에 비하여 실제적으로 주를 아는 거시나, 죄에서의 해방과 승리의 경험이나, 참된 기쁨이나 변화된 삶의 증거.. 들은 별로 없는 것이 보통입니다.
우리는 기도실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기도 소리가 대부분 너무 듣기 싫기 때문입니다. 소리 내어서 제대로 발성기도, 부르짖는 기도를 할 줄 아는 분들도 드물고, 또 소리를 내서 기도하는 분들은 속에서 온갖 악성이 흘러나와서 주위를 몹시 고통스럽게 하는데, 처음오신 분들은 그러한 감각 자체가 별로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분들을 위해서 개인적으로는 맞춤 지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원에 많이 다닌 분들은 영이 아주 혼란스럽기 때문에 정화를 위해서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은사적인 사람들, 에언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기름부음을 받았다.. 하는 이들은 대부분 많은 미혹 속에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을 처리하고 영을 안정시키는 데는 세월이 필요합니다. 이런 것들은 개인적으로 다루어야 하며, 대예배 시간에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헤븐에 온지 세월이 좀 지나고 영적으로 정화되면 이들은 점점 표정도 바뀌고 밝아지고 아름다워지고 거칠은 기도의 톤도 포근하게 바뀌어집니다. 신앙적 자부심도 많이 줄어들어서 가르치려고 하는 습관도 많이 사라집니다. 이때쯤 되면 주위에서 [당신.. 요즘 바뀌었네? 부드럽고 따뜻해지고.. ] 이런 소리를 듣게 됩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헤븐에서 잘 버티고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닙니다. 못 버티고 떠나는 이들도 꽤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전도여행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다른 지역으로 갔습니다. 사도가 떠난 후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율법주의가 들어와서 복음을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하고, 돈의 문제가 들어오기도 하고, 은사주의로 인한 혼란이 일어나기도 하고, 종말론에 대한 문제 등.. 잡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러한 제 문제들에 대해서 하나 하나 말씀의 바른 기준을 제시하며 고쳐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향하여 떠나면서 이별을 할 때에. 내가 떠나면 흉악한 이리가 들어와서 양떼를 망가뜨릴 텐데.. 부디 나의 전한 복음을 기억해달라고.. 너희를 주님과 그 은혜의 말씀에 부탁한다고 눈물의 고별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행20 : 25-35] 그는 떠나면서 참으로 교회의 미래가 걱정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의 상황도 당시와 비슷합니다. 사도시대 못지않게 참으로 많은 미혹이 있습니다. 나는 한국과 한국 교회를 멸망으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교회 안에 침입한 물질숭배 사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도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는데, [마6:24] 너무나 많은 이들이 물질을 선택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중심적인 문제 외에도 오늘날 신자들의 영을 혼미케 하는 많은 속임들, 미혹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분별력이 참으로 필요합니다.
기름부음이라는 용어는 이 시대에 참 남발되고 있는 개념입니다. 여기 저기 집회에 참석해서 사역자들에게 안수를 받고 쓰러지는 것을 좋아하는 성도들이 참 많은데, 쓰러져서 기분 좋은 느낌이 오면 흔히 기름부음이 임했다고 말하곤 합니다.
이 달콤한 느낌에 속는 신자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기도하다가 달콤하고 따뜻한 경험을 하면 그것을 하나님의 임재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답답합니다. 도대체 달콤하고 짜릿한 느낌을 왜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거룩한 성령이라고 굳세게 믿고 있는 것일까요? 아무튼 달콤한 느낌을 좋아하고 믿는 사람 치고 정상적인 신자들은 별로 없습니다.
달콤하면 다 하나님인가요? 마약을 해도 달콤합니다. 불륜에 빠지면 더 달콤합니다. 타락한 인간의 육신은 쾌락을 즐거워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쾌락치고 안전한 것은 별로 없습니다. 달콤하고 맛이 있으면 다 몸에 좋은 것인가요? 오히려 몸을 파괴하고 망치는 것일수록 달짝지근하고 입맛을 끌어당깁니다.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 감자나 고구마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속성인데.. 도대체 왜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접하면 달콤하고 꿈결 같은 상태로 들어가고 쓰러진다고 믿는 것일까요? 그것은 최면술에서 하는 짓이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타락한 죄인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면 어떻게 될까요? 이른바 박살이 납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빛을 얻어맞고 쓰러져 눈이 멀고 충격을 받아 삼일을 식음을 전폐한 것 같은.. 그러한 고통과 충격과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서부터 삶의 방향자체가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하나님 체험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유행하는 기름부음 어쩌구는 상당히 위험성이 높은 현상입니다.
그러한 현상을 경험한 사람치고 겸손하고 온유하며 주를 사랑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다들 하나같이 거드름을 피우며 자기는 술람미 여인이며 주님과 깊은 관계라고 주장하며, 여러 허황된 말들을 하며 자신의 신앙을 깊은 것으로 여깁니다. 이러한 열매들은 그러한 경험들이 어두움에서 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문제는 이러한 패턴의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은 신앙적 자부심이 많고 고집이 세서 아무리 권면해도 잘 듣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툭하면 예배시간에 쓰러져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나가다가 살짝 닿아도 쓰러져서 누워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그토록 눕고 싶으면 집에서 누우면 될 텐데 왜 교회에서 누워서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또 돈 주고 해외여행까지 가면서 집회에 참석해서 드러눕는지 참 이상한 일입니다. 미혹의 영들은 어디에나 가득하기 때문에 굳이 그들을 찾아서 멀리까지 돈 주고 갈 필요가 없습니다.
기름부음을 찾고 이상하고 달콤한 느낌을 찾고 내적 치유 받으러 다니는 시간에 말씀을 묵상하고 복음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찾고 행하는 것이 훨씬 더 낫고 안전한 길입니다. 아직도 자신의 신앙적 자부심을 위하여 그 미혹의 기운들을 대적하고 끊지 않는다면.. 그들은 언젠가 무서운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입니다. 영들을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체험을 너무 좋아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양들은 너무나 순진하고 어리석으며 영적인 지식이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바른 복음을 듣고 분별력을 키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의 밥이 됩니다.
오늘날 신앙의 패턴은 다양합니다. 이스라엘을 마냥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종말론의 전파를 사명으로 여기고 이상한 메시지를 계속 전파하면서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데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언제 오실지에 관심이 없고 오늘의 주님과 동행하며 순종하며 걸어갑니다.
헤븐에도 바깥에서 받아온 여러 혼란스러운 영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꽤 있었습니다. 이들은 떠난 이들도 있고, 잘 적응하여 혼란스러운 영들이 정리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성장해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것은 피곤한 전쟁입니다.
지금까지 헤븐 교회는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오직 사모하고 은혜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먼데서부터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다들 교회 가까이로 이사를 왔습니다. 지방의 직장들을 포기하고 좋은 조건들을 포기하고 오직 말씀을 듣고 싶어서 가까이 왔습니다. 교사직을 포기하고 온 이들도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사모함으로 왔지만 처음 왔을 때 그들의 상태는 대부분 엉망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정화되고 처리되면서 비로소 그들은 과거 신앙의 허상에서 벗어나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어가고, 하늘의 기쁨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헤븐의 상태는 아름답고 행복하고 거룩함과 풍성함으로 가득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처음으로 완전히 노출되었습니다. 이제는 아무나 이곳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우리의 천국은 유지될까요? 우리는 오염될까요? 주의 임재는 사라지고 혼탁한 곳이 될까요?
그것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입당 예배는 외부에서 얼마나 오게 될까요? 10명? 50명? 100명?
슬프게도 헤븐 교회는 원흥 지역의 가장 중심부에 있습니다.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있고 가장 큰 교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언제 오픈하는 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교회 안까지 들어와 교단이 어디냐, 문화 강의는 없느냐, 등 거칠게 이것저것을 묻습니다. 곤란하다고 하는데도 막무가내로 예배당에 들어가 기도하겠다고 한동안 강짜를 놓는 분들도 있습니다. 헤븐 성도들은 이 모습을 보면서 과거에 자기가 다니던 교회시절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제발.. 조금만 오거나.. 아무도 안 왔으면.. 하는 마음들을 내비치기도 합니다.
오래 동안 접하지 않았던 일반 기독교인의 세계들.. 서로 잘난 척하고 비난하고 험담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오래 세뇌된 거짓 철학 사상을 전혀 바꾸려고 하지 않고.. 세상에서 잘 나가고 세상의 복 받기를 원하는.. 거칠고 완악한 사람들..
하지만 어쩌면 그들 중에 한두 명.. 몇 명 정도는 겸손하고 하늘에 대하여 준비된 이들을 만나게 될 지도 모릅니다.
초신자들, 아무 개념이 없는 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이들은 쉽게 빠르게 하늘의 빛을 접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지도자로 여기며, 오랜 세월 온갖 훈련을 받고 여러 경험이 많은 이들, 은사적인 사람들은 거의 다루기 어렵습니다. 이들에게는 세월이 많이 필요합니다.
지옥에 속한 이들은 평소의 말투가 사납고 거칠고 소란스럽습니다. 그래서 쉽게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며 폭발하고 싸우고 혈기를 부리고 비난을 합니다. 천국에 속한 이들은 언행심사가 항상 고요하고 잔잔하며 따뜻하고 아름답습니다. 활기가 있고 기쁨과 웃음이 있으면서도 부드럽고 자연스럽고 편안합니다. 그래서 분위기나 대화하는 스타일에서 헤븐인들은 일반 사람들과 선명하게 구별됩니다.
보통 일반 성도들의 모습은 지옥인의 모습과 아주 흡사합니다. 지옥인의 특성들은 아주 많이 가지고 있고 천국인의 특성인 그리스도의 모습은 거의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구원의 확신을 굳게 가지고 자신을 대단한 신자이며 하나님의 종으로 여기는 이들은 아주 많습니다.
이들은 평소에 주님과 동행한다는 개념 자체를 잘 모릅니다. 교회에만 왔다 갔다 하면 자신을 신자로 생각합니다.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성령 안에서 아름답게 말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도 잘 모릅니다. 함부로 화를 내면 내부에 계신 성령께서 탄식하신다는 사실도 모릅니다. 이들은 성령이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언행심사를 보면 그 사람의 안에 성령이 거하시는지, 악령이 거하는지.. 그것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건축이 완공되었고 이제 주위의 모든 이들에게 교회가 공개되었지만, 일반 성도들에게 개방된 시간은 주일예배 오전 11시와 수요밤 예배 오후 8시, 두 타임 뿐입니다 그 외의 모든 모임은 정교인 훈련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도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실제적으로 주를 알아가는 신자를 훈련하고 세우는 것에 더 집중합니다.
기도실은 24시간 개방되지만 외부인들에게는 개방되지 않습니다. 죄송한 마음이지만 이는 어쩔 수 없습니다.
기도원에 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기도하는데, 영이 바른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다들 이상하게 익을 쓰고 이상한 영을 받습니다. 이상한 기운이 흘러나옵니다. 기도 소리를 들으면 평소의 대화나 삶, 인격에 대해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상한 영을 받고 그것을 성령이라고 믿는 이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영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되지 않고 정화되지 않은 이들에게 기도실을 개방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정말 교회가 쓰레기통 같은 상태가 됩니다.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는 천국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진정한 천국이라면, 분리의 기능이 있어야 합니다. 준비가 안 된 사람이 들어올 수 없습니다. 천국에는 모든 이들이 초청을 받지만 예복을 입지 않은 이들은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 예복은 그리스도입니다. 아무리 강권하여 교회에 끌고 와도 그리스도, 진리를 갈망하는 낮은 심령이 아닌 이들은 결국 잔치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 때가 되지 않은 사람이 교회에 온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찾으시는 사람을 우리도 찾을 뿐입니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사람에게로 우리는 갈 뿐입니다.
천국에는 분리, 쫓아냄의 기능이 있으며 그러므로 바깥 어두운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분노하며 천국을 개방하라고 외치지만 천국에는 천국의 법이 있으며 지옥의 법으로 사는 이들은 들어올 수 없습니다.
천국은 잘난 사람들이 아니라 못나고 부족하고 마음이 상하고 낮은 이들이 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위대하고 훌륭하고 당당하신 분들의 입장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입당예배가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나는 입당예배를 인도할 홍목사에게 농담같이 말하곤 합니다.
[입당 예배를 인도할 때 주의할 점은 전혀 은혜가 안 되고 지루하고 따분하게 인도해야 한다는 것.. 괜히 은혜스럽게 인도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교인 등록하겠다고 하면 골치 아파요. 교회가 욕 좀 먹고 저 교회는 이상한 교회야.. 그런 소문이 나야 사람들이 적게 오겠죠. 몇 달 지나면 사람들의 호기심이 줄어들 테니까.. 그 때는 감동적으로 인도해도 되요..]
우리는 사람들이 단순히 많아지는 것보다.. 진정한 성도들.. 하늘을 바라는 성도들을 세우고 양육하기를 원합니다.
나는 최근에 많이 지쳤고 이제 몸이 많이 아프게 되었습니다. 음식도 거의 먹지 못하고 숨이 차서 거의 걷기도 어려운 상태가 되었습니다. 날마다 통증으로 밤을 새운 지도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3년 반 전 사역을 시작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할 때 초기에 반대하던 아내는 내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최근에 그 이야기를 다시 상기시켰습니다.
[여보.. 내가 그랬잖아요.. 당신은 사역을 하면 죽는다고.. 당신 몸으로 감당할 수 없다고..]
나는 미소를 띄고 대답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어요. 조금 일찍 가든 늦게 가든 그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그리고.. 지난 3년 반 동안 많은 영혼을 일으키고 건졌어요. 그렇다면.. 나 하나 쯤 죽어도.. 그것은 남는 장사 아닌가?]
고통은 사람을 순결하게 합니다. 죽음 앞에선 고통은 자신의 모든 것을 돌아보게 하고 회개하게 합니다. 그것은 모든 동기를 정화시킵니다. 불평을 하던 사람도, 고통이 한계에 이르면 더 이상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 엎드립니다. 고통은 하나님과 독대하게 만들고 영혼을 아름답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고통은 좋은 것이며 아름다운 것입니다.
얼마 전 여름수련회가 있었습니다. 마지막 날 밤 나는 강사로 서기로 했습니다. 이날 나의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나는 숨도 쉬기 힘들었고 어지러워서 서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전신에 통증이 나를 감싸 안았습니다.
집에서 교회까지는 불과 2-300 미터의 거리였지만 나는 걸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형제에게 부탁해서 지하 주차장에 차를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전달이 잘못되었는지 형제는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1분 이상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땅 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리고 몇 분 후 정신을 잃었습니다. 한동안 주차장 바닥에 나는 쓰러져 있었습니다. 2-30분 정도가 지났을 까.. 나는 간신히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사력을 다하여 교회까지 비틀거리며 걷기 시작했습니다. 입에서는 구토가 나오고 전신은 땀범벅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가까이 가자 걱정이 되어서 기다리던 아내가 울상을 하고 달려왔습니다. 나는 아내의 부축을 받고 교회에 들어가 강대상까지 올라갔습니다. 나는 맨 뒷자리에서 강대상에 도달하기 까지 여러 번 쉬어야 했습니다.
강대상에 도착한 나를 보고 다들 환호성을 올렸지만 나는 화답할 수 없었습니다. 너무 숨이 차서 한동안 고개를 떨구고 거친 숨을 내쉬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내 상태를 보고 침울해 했습니다.
10분여가 지난 후 숨찬 것이 조금 진정되자, 나는 찬양을 시작했습니다. 다시 성령께서 나를 붙잡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는 여전히.. 예전에 하듯이 4-5 시간을 절규하듯이 포효하듯이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집회에 사로잡히면 이성을 잃은 듯이 됩니다. 바닥에 쓰러져 울기도 하고 주먹으로 상을 내려치고 절규하기도 합니다. 장내는 눈물과 통곡의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이날 전한 메시지는 혼의 애정과 혈연의 정을 처리함으로 하늘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한 메시지였는데, 이날 이후로 너무 충격을 받고 삶의 가치관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폭풍 같은 집회의 열기가 끝난 후에는 나는 다시 시체같이 연약하고 비참한 상태로 되돌아왔습니다. 집회 때는 사로잡혀서 통증을 잊어버리지만 집회가 끝나면 다시 통증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온 밤을 통증으로 보냈습니다. 나는 이제 내 체력으로는 더 이상 집회를 감당할 수 없음을 직감했고, 그래서 이날 메시지를 시작하면서 [아마 저의 마지막 설교가 될 것 같습니다] 하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내가 좀 절제할 수 있었다면 목회수명이 좀 더 길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내 힘으로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강단 바깥에서는 다 죽어가도 일단 강대상에 올라가면 피를 토하듯이 외치게 되고 그것을 절제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예수 이름을.. 미친 사람처럼.. 미친 듯이 절규하면서 부르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이제 곧 입당 예배가 있고 10월에는 5일부터 30일까지 부흥회가 있습니다. 나는 몇 번 참석하지 못하겠지만 몸이 허락하는 만큼은 갈 것입니다.
부흥이란 숫자와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부흥이란 회복입니다. 인간에게 빼앗긴 하나님의 영광의 회복입니다. 하나님의 주인 되심의 회복입니다. 부흥이란 찢어진 심령위에 부어지는 것입니다. 찢겨진 심령은 하나님 앞에 엎드러져서 통곡하고, 심장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불타오르게 됩니다.
거짓과 악과 인간의 탐욕, 주인 됨이 무너지고 통회와 고통이 있는 곳에 주의 영광은 임하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영광의 불이 우리를 새롭게 태우시도록 우리를 드릴 것입니다. 부흥회를 통하여 새 예배당이 시작되는 것은 아름답고 행복한 일입니다.
그리고 11월이 되면.. 당분간 사역을 내려놓고 건강의 회복을 위하여 힘쓰며 오래 동안 쉬었던 글쓰기에 들어갈 것입니다. 가끔 교인들 모임에는 가겠지만 일반 대예배는 거의 가지 못할 것입니다. 대예배는 입당 예배를 마친 후에 아마 한번 정도는 가겠지요.
지금 나의 체력과 목숨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연약합니다.
주님께서 너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하고 내게 안식을 주신다면 그것은 내게 기쁨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좀 더 수고할 수 있는 건강을 허락하신다면, 나는 왜곡된 복음을 회복하고 하늘에 속한 성도들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초 복음에 대한 글을 조금 쓰고 싶습니다. 쓰고 싶은 책의 목록은 50권이 넘지만.. 아주 일부만 쓸 수 있어도 나는 만족하고 감사할 것입니다. 목회를 하는 동안은 전혀 책을 쓸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나는 한 동안 즐겁고.. 그리고 힘든 여행을 하였습니다. 이제 당분간 쉴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헤븐이 오직 주를 사랑하며 주의 뜻을 이루는 도구.. 통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헤븐 성도 여러분.. 목숨만큼..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독자 여러분..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출처 : 정원목사 독자 모임
글쓴이 : 정원목사 원글보기
메모 :
'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2015년 성탄카드 - 아제르바이젠 김동현선교사 (0) | 2016.01.23 |
---|---|
[스크랩] 하나님의 사람, 자유를 향해 날다 (0) | 2016.01.22 |
450억 트레져씨티ABS 반토막, 개인투자자 피해 (0) | 2016.01.20 |
[스크랩] 회복교회 5대 실천사항! (0) | 2016.01.13 |
[스크랩] 천국의 존재와 위치 모습 (0) | 2016.0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