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정독모 가족 여러분
정원 목사님의 소천 소식에 많이 놀라고 가슴 아파하시는 글과 덧글들을 보며..
얼른 최근 소식을 담은 글을 올려서 카페 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해 드려야지.. 했는데
헤븐 교회 식구들의 슬픔을 달래며..
또...외부에서 들려오는 많은 가슴 아픈 이야기들 속에서 과연 주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물으며 엎드려 있느라
미처 글을 올릴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이제 조금 마음을 추스리며
사랑하는 독자모임 회원님들께 인사를 드리고
그간의 이야기들을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정원 목사님께서 공개 사역을 시작하신 지
이제 3년이 좀 더 되었습니다.
2012년 3월 18일에 응암에서 창립 예배를 드렸고
2012년 11월 18일에 원당에서 첫 이전예배를 드렸고
2015년 11월 17일 새벽에 주님 품으로 가셨기 때문에
원당에 자리를 잡은 이후 본격적으로 사역을 하신 기간은
공교롭게도 딱 3년이 됩니다.
원당 헤븐 교회가 있었던 거리의 이름은 “호국로” 였습니다.
평소에 “내 마음에 짐이 있다면 조국의 통일과 부흥이다” 라고 늘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라를 지키는 호국로에서 조국의 부흥과 조국 통일을 위해 3년의 사역과 기도 끝에
모든 진액을 쏟으시고 사명을 완수하고 소천하셨다고 저희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헤븐 교회는 2001년부터 정원 목사님의 독자들이 모여 교제와 나눔을 갖던 [정원 목사님의 문서사역을 위한 기도모임 –정기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몇 명, 조금 지나서는 몇 십 명.. 나중에는 150여명 정도의 인원이 ‘정기모’ 에 모이게 되었는데
당시 정원 목사님은 문서 사역에 전념하고 계셔서 교회 사역을 비롯 일체의 사역을 하지 않으셨기에 건강과 여건이 허락되실 때 몇 주 혹은 몇 달에 한번 정도 깜짝 방문을 하시는 것 외에는 대부분의 경우는 독자님들끼리 토요일에 모여서 중보기도모임을 가졌습니다.
2006년에는 영적 공격으로 죽음의 위기 속에 계시던 목사님을 위해 한 달 동안 함께 밤을 지새우며 기도했던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작은 비공개 교회가 시작되었지만
정원 목사님께서 직접 오시는 경우는 거의 드물었고, 함께 모인 소수의 성도들이 함께 정원 목사님의 문서사역을 위해 중보하고 기도했습니다.
이 비공개 교회는 “정기모” 보다 훨씬 더 친밀하고 가까운 관계를 맺게 되었기 때문에
교회 내에 중요한 사안이나 문제가 있을 때는 정원 목사님께서 함께 짐을 지고 기도해 주셨습니다.
공동체 내부에서 서로 부딪히며 각 사람의 내면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많은 다루심이 있었고 그것을 통한 깊은 성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11년 여름 즈음
그 동안 조용히 숨어있던 이 작은 교회를 외부에 공개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정원 목사님께서도 그 즈음부터 공개 사역에 대한 감동을 받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2012년 3월.. 독자들의 오랜 동안의 간곡한 요청과 (많을 때는 하루에도 여러번.. 정원 목사님이 직접 담임하시는 교회가 없는지, 집회 일정이 없는지 문의하는 전화나 메일이 오곤 했습니다)
기도모임에 참석하시던 사역자님과 성도님들의 적극적인 소원과 지지로 결국 정원 목사님이 담임하시는 헤븐 교회 (처음 설립 당시에는 [헤븐 크리스찬 센터] 였습니다) 가 설립되었습니다.
정원 목사님은 그 당시에도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목회를 할 경우 건강에 무리가 오시지 않을지..사모님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오랜 기도 끝에 주님의 인도와 뜻이 있음을 확인하고 교회를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의 상황은 정독모 카페의 [헤븐교회 사역이야기방] 에 올라온 [교회 사역을 시작하면서] 라는 글에 자세히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밖에도 [헤븐교회 사역이야기방] 올라온 여러 글들과 [정원 목사 독자모임] 카페의 2012년 글과 덧글.. 들을 참조하시면 그 당시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를 공개하기로 결정하기 까지는 많은 고민과 기도가 있었습니다.
비공개 교회 50여명의 죄와 자아와의 씨름을 함께 감당하시는 것만으로도 이미 수 없이 피를 쏟으시고 밤잠을 못주무시고 고통하실 때가 많은데..
아무 제한 없이 누구나 올 수 있도록 교회를 공개하게 되면..
세상 사랑하는 마음 버리기를 원치 않고, 낮아지고 주께 굴복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 이들이 올 경우..
자아와 죄를 다룰 때 억울해하고, 서운해 하고, 오해하고 비난하는 이들이 생기지는 않을지..
성장을 위해 자신의 삶을 모두 드리기 원하는 이들을 다루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드리고 자아를 내려놓기 원하는 자세가 없는 이들을 다룰 때 오는 극심한 영적 전쟁의 짐과 부담을 과연 목사님의 체력으로 감당하실 수 있을지 의문이 되었습니다.
저 뿐 아니라 그 당시 비공개 교회에 소속되었던 성도들 대부분이, 공개 사역을 할 경우 목사님이 과연 버티실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누리고 있는 작은 천국이 퇴색되고 희석되면 어떻게 하나.. 두려움과 우려를 표했지만
다 함께 이 문제를 놓고 여러 차례 기도하면 할수록 저항할 수 없는 주님의 감동과 인도하심이 있었기에.. 결국 모두 공개 사역을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많이 걱정하고 반대하신 분은 목사님의 건강과 사역 방식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사모님이셨습니다.
주님을 중심으로 사모하고 사역자와의 신뢰관계가 충분히 이뤄진 사람이 아니라면, 각 사람을 세우고 다루는 과정에서 마음을 닫고 오히려 목사님과 교회를 공격할 수도 있다고..
또.. 목사님 체력과 건강상태로는 이러한 영적인 전쟁을 오래 버티지 못하실 수 있다고 만류하시면서 끝까지 교회 공개사역을 반대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사모님께서도 주님의 뜻을 구하며 개인적으로 간절히 기도하시던 중.. “나를 도와주지 않겠니” 하시는 주님의 부드럽고 따뜻한 음성에 감동되어 결국 공개 사역을 시작하는 것에 동의하시게 되었습니다.
정원 목사님께서도 몇 달 전부터 마음속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주님의 감동을 느끼고 계셨지만
과연 이것이 주님의 인도하심이 맞는지 확증을 기다리시던 중...
비공개 교회 성도들 전원과 사모님까지 동의하시게 되자.. 밤을 새워가며 새벽녘까지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구한 결과
선명한 감동과 말씀을 받으시고,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헤븐크리스찬 센터] 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시작하시게 되었습니다.
사역 첫 시작부터 많은 이들이 헤븐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갑작스럽게 새로운 영적 전쟁에 들어가게 되신 목사님은
토요일 밤이면 고통 속에 잠을 이룰 수 없으셨을 뿐 아니라
예배 인도 후에도 몇 날 몇 일을 쓰러져 일어나지 못하시기도 하였습니다.
목사님의 건강이 점점 쇠약해지시는 것 같아서 걱정이 되었지만
몇 개월동안 사역이 진행되면서 부터는 다소 안정되어가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 내부에 여러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새로 헤븐에 온 성도들의 자아사랑과 세상사랑의 문제들을 처리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사소한 죄와 관계에서의 부딪힘부터 시작해서 윤리 도덕적인 기준에서 보기에도 용납하기 어려운 죄들까지 하나 하나 사역자들이 상담을 하고 도와야 했습니다.
정원 목사님은 세세한 결정에 직접 관여하지 않으셨지만, 교회 전체의 짐을 짊어지시며 밤마다 기도하고 고통하셨습니다.
그 중에 정원 목사님께 가장 큰 고통이 된 것은 부사역자님들에게 나타난 문제들이었습니다.
각자 개교회의 목회를 하실 때는 어떤 식으로 성도들을 대하시는지...어떻게 재정 운영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관여할 수 없었지만
이제 헤븐 교회의 부사역자가 되셨기 때문에 성도들과의 관계, 재정 문제, 각 개인의 인성과 영성을 살피고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헤븐 교회는 적어도 사역자가 평신도 보다는 더 높은 수준의 인격과 삶의 열매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는데
그간 개별적으로 교회 사역을 해 오신 각 사역자님들의 삶을 막상 가까이서 접해 보니
세상적인 가치관, 다듬어지지 않은 인격, 가정에서의 불화, 죄의 습관, 성도들에 대한 학대, 재정적인 문제.. 등 많은 부분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심한 경우는 성희롱, 재정갈취 등..일반 윤리 도덕적인 기준에서도 용납할 수 없는 문제가 드러난 경우도 있었습니다.
성도들의 잘못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 헤븐교회이기에 사역자들의 문제는 더 깊이있게 다루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사역자님들께서 그 과정에서 죄를 인정하지 않고 합리화하고, 변명하고, 분노하고, 억울해하는 등.. 좋지 않은 자세를 보이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드러난 사안 자체가 심각한 경우도 있었지만, 죄를 인정하지 않고 낮은 마음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더 큰 문제가 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성도들에게 자아와 세상을 버리고 낮아질 것을 가르쳐야 하는 사역자가 본인의 죄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다면 헤븐에서는 이미 사역의 자격이 없는 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원 목사님은 정이 많으시고 한 사람 한사람을 매우 소중히 여기시고..
한번 관계를 맺은 사람은 평생을 함께 하기를 원하시는 성품이셔서
한 사역자의 문제가 드러날 때 마다 밤을 새며 많이 눈물 흘리고 고통하시고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개인적으로도 기도하시고 부사역자들과도 모여서 여러 차례 대화하고 기도하셨습니다.
수 많은 기도와 의논 끝에 어쩔 수 없이 부사역자님들께 사임을 권고해야 할 때면
사임 이후의 생활에 대해서 염려하시면서 1년 여 정도의 봉직 생활에 세 달치 월급에 해당하는 퇴직금을 비롯 생활할 수 있는 재정을 공급해 주시고..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고, 개선을 위한 반성과 노력의 자세를 보이는 경우는 일시적으로 사역을 중단했다가도 후에 다시 만남을 갖고 복직하시도록 선처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사역자에 대한 예우로.. 사임하시는 분의 잘못을 덮어드리고자.. 성도들에게는 사임의 이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로.. 조용히 축복하며 보내셨는데...
이것을 악용하여...자신이 아무 잘못이 없는데 헤븐에서 거짓으로 문제를 만들어 쫓아냈다고.. 뒤에서 성도들에게 몰래 전화를 걸어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자신이 새로 개척한 교회로 오라고 종용하는 등.. 가슴 아픈 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연락을 해서 관계를 회복하려고 생각중이셨던 터라 이렇게 관계 회복의 가능성이 사라질 때 더 고통스러워하셨습니다.
처음 기도모임에 함께 하던 여섯 분의 사역자 중에서 한 분은 개교회로 남기를 원하셔서
다섯 분이 부사역자로 헤븐교회에 함께 하셨고 그 중에 네 분에게 여러 문제들이 드러났습니다.
그래도 그 중에 한분은 다행히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깨닫고 사죄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다시 헤븐교회에 돌아오시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네 분과는 아직도 관계회복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일전에는 사직했던 한 사역자님께 연락을 취하였는데.. 거칠고 일방적인 언사로 만남을 거부하셔서 성사되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또 다른 분도.. 억울하고 서운해 하시는 메일을 주셔서, 그렇다면 잘잘못에 대해 변호하고 해명할 기회를 드리겠으니 만남을 갖자고 메일을 드렸지만 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고 만남을 가질 필요가 없다고 거부하셔서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부사역자님들과 관련해서 일어났던 모든 일들 중에
정원 목사님께서 참 많이 사랑하셨던 한 부사역자님의 거액의 현금요구와 함께 시작된 갑작스러운 비난과 공격은
정원 목사님과 헤븐에 가장 심각한 충격과 고통이 되었습니다.
(자세한 상황과 과정들은 주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이후에 공개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우한 어린시절로 인한 마음 속의 상처들을 듣고 아셔서..많이 안쓰럽게 여기시고 친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했던 부사역자님이기에 더 많이 사랑하고 용납해 주셨었는데
그 사랑을 믿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고 공격하는 모습에 더 마음이 아프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오래 전에 정원 목사님의 아들이 큰 교통사고가 난 적이 있었습니다.
응급실에서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 않아서 조마조마 하던 그때..목사님은 그 당시 작은 일로 상심한 그 부사역자님에게 위로의 전화를 주셨습니다.
나중에 정원 목사님께서 아들의 교통사고 앞에서 자신을 위로해 주셨던 것을 알게 된 그 부사역자님이 정원 목사님께 감사하고 감격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교회 사역으로 인한 지속적인 영적 부담과 통증 이상의 심각한 통증이 시작 된 것은 시점상으로 보면 아마 이 즈음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목사님의 통증은 이런 외부의 공격으로 인한 영적 부담이기도 했지만,
또한 부흥을 위한 영적 전쟁과 기도의 짐으로 인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2014년 정독모 카페에는 아래와 같은 글이 올라왔습니다.
“나는 이번 주일의 예배에서 건축을 마친 후에 입당을 하면 한 달간 매일 밤 연속집회를 할 것을 선언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2014.11.21. 헤븐교회 건축 이야기] 중에서
헤븐교회 대예배 시간에 건축을 마친 후 한달동안 연속 집회를 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말씀하시고, 정독모 카페의 글에도 건축이 완공되기 거의 1년 전에 미리 집회에 대해 언급하신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미리 집회 공지를 할 경우, 공지가 올라오는 그 순간부터 영적 공격이 밀려오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미리 예고하지 않고 깜짝 방문을 하실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한번은 사모님께서 이 문제에 대해서 목사님께 여쭤보신 적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보통 영적 공격을 우려해서 집회에 대한 공지를 미리 올리거나 그러지 않잖아요.
그런데 건축 후 연속집회에 대해서는 왜 이렇게 일찍 공지를 올렸어요?"
목사님의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그건.. 성령께서 원하셔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일반적으로 제가 알던 정원 목사님의 선택과는 다른 선택이었지만..
주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 말씀하시니
목사님의 건강이 버티실 수 있을지 염려는 되었지만, 아마 주님의 뚜렷한 의도가 있으셨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원수들에게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인지 실제로 그 이후 목사님의 삶에 많은 영적 공격이 몰려왔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외적인 공격으로 인한 통증과 함께 밤에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끊임없이 몰려오는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기도하고 강력하게 대적하면 사라지지만 그러나 끊임없이 다시 몰려오는 원인모를 통증과 씨름하며 수많은 밤들을 지새우셨습니다.
하지만 통증이 극심해질 때 까지는 그 정도로 아프신 줄을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때로 목사님이 밤기도 후에 오셔서 중보팀 사람들과 함께 탁구를 치셨는데
너무 즐겁게 탁구를 치고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주셨기 때문에 목사님께서 아프시다는 것을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야 탁구를 치고 움직이고 있으면 통증이 잊혀지기 때문에 탁구를 치러 오시는 것이라고
예배를 드릴 때와 탁구치며 사람들과 웃으며 있을 때 외에는 계속 극심한 통증으로 온종일 시달린다고 하실 때 너무 놀랐습니다.
인내심이 워낙 많으셔서 다른 사람은 발작하며 구를 만한 통증에도 조용히 미소를 짓고 계실 때가 많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이렇게 많은 통증에 시달리고 계시면서 내색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는 것을 원치 않으시고 늘 기쁨을 주고 섬기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극도의 통증이 있을 때에도 곤하게 주무시는 사모님을 절대 깨우지 않으셨고 고통을 내색하지 않으시니 늘 함께 계신 사모님마저도 목사님이 그렇게까지 아픈지를 모르셨을 정도였습니다.
나중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통증에 이르렀을 때에야 아프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병원에 가보자고 사모님께서도, 주변에서도 권하셨지만
목사님은 일관적으로 이것은 영적인 통증이라서 병원에 가서 낫는 병이 아니고 어떤 약으로도 낫는 병이 아니라고 하시며 일체의 병원치료를 거부하셨습니다.
통증이 극심할 때...진통제라도 드려야 하지 않는가.. 사모님께서 말씀하실 때에도
이런 통증은 진통제로 잠재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나의 진통제는 오직 찬양과 경배라고
주의 이름을 부를 때만 통증을 잊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제게도 신신당부 하시며 심지어 내가 혼수상태에 빠질 지라도 나를 병원에 데려가지 말라고 병원에 가면 나는 더 빨리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토록 극심하고 오랜 통증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병원에 가시거나 진단이나 치료를 받아보신 적이 없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증상인지 병명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기에.. 병명이 무엇인지 사인이 무엇인지를 물으시는 분들께 답을 드리지 못함을 양해해주십시오..)
도저히 예배를 인도할 수 없을 정도로 극도로 쇠약해진 몸이었음에도 성도들을 향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시고..수련회에 한번, 부흥회 기간에도 한번 오셔서 집회를 인도하셨습니다.
몸이 아무리 쇠약해져도 일단 단위에 까지만 올라가면 성령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찬양하고 외칠 수 있다고 하시며
수련회 때는 부축을 받고 겨우 겨우 단상까지 비척비척 올라가셨고
부흥회 때는 도저히 걷고 움직일 수 없어서 휠체어를 타고 오셨습니다.
목소리를 내거나 찬양을 하는 자체가 어려운 몸 상태에서 우렁차고 간절하게
“예수! 예수..! 갈망.. 갈망..!!”
외치시며 온힘을 다해 찬양하시는 모습은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부흥회가 계속 지속되면 집회인도에 대한 부담을 계속 가지시고 무리해서 집회인도를 하실 것 같아서..
한달 동안 진행되기로 예고되었던 부흥회를 두 주만에 마무리 하기로 하였습니다.
늘 짐과 부담을 주기 싫어하셔서..
성도들 전체에게는 건강 상태를 알리거나 기도부탁을 하지 않았지만
2006년에 목사님을 위해 한 달 동안 철야 하며 기도했던 청년들이 다시 모여..
이번에는 4개월 동안 철야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중보팀 집사님들과 아이들도 2개월 동안 저녁과 낮에 어찌하든 시간을 내어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청년들이 처음으로 철야기도를 시작한 날..
몇 달 동안 통증으로 밤에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셨던 목사님께서
처음으로 4시간 동안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고 하시며
이것은 기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의 초점을 흐리는 교란과 치열한 접전이 있었지만 기도하고 중보할수록 회복의 증거들을 많이 주셨습니다.
날마다 많은 싸인과 징조가 있었고 주님의 선명한 인도하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엔가는 목사님 댁 현관 앞에서 작은 참새를 보았습니다.
이런 곳에 참새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아주 작은 아기 참새였는데 고개를 떨구고 온몸을 수그리고 힘없이 주저앉아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참새의 등을 조용히 어루만지며 얘기해주었습니다.
“참새야.. 힘을 내.. 괜찮아질 거야”
보통은 그렇게 몸에 손을 대면 파다닥.. 날아가야 하는데 등을 쓰다듬어도 조용히 가만히 앉아있고 게다가 고개를 빠꼼.. 돌려서 제 얼굴을 처다보는 모습에..
아.. 얘가 어딘가 다쳤거나 아니면 먹을 것을 먹지 못해서 날아가지 못하고 있구나.. 너무 안스러웠습니다.
참새가 너무 작아서 지나가다가 모르고 밟을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에
휴지로 감싸서 어딘가 안전한 곳으로 옮겨주려고 가방을 뒤적이고 있는데
“파다닥~~” 하면서 갑자기 참새가 날아갔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 힘없이 조용히 고개를 파묻고 있던 참새
“힘을 내.. 괜찮아질거야”
그리고 조금 후 파다닥.. 날아오른 참새..
왜 그런지 갑자기 눈물이 핑.. 돌면서
아... 그래...목사님도 이렇게 나으실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련회 때, 부흥회 때 힘겹게 단에 오르시던 모습을 지켜보았던 성도들은
따로 말하거나 부탁하지 않았지만 각자 열심히 목사님의 건강을 위한 기도를 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교구 사역자님들을 통해 많은 이들이 목사님 꿈을 꾸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목사님이 건강한 모습으로 꿈에 나왔다고, 건강하게 웃으시고 이야기하시는 모습이 너무 선명했다고 말했습니다.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으셔서 많은 도움을 받으시는 것이 당연한데도
아주 작은 것 하나를 시킬 때도 너무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가능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하시고, 뭐라도 재밌게 해주시려고
아픈 중에도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으로 이런 저런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아무리 아파도 유머와 장난을 포기하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목사님은 아프고 괴로울수록 어찌하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찾으셨습니다
그것이 목사님이 살아오신 방식이었습니다.
자신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자신을 잊고 다른 이들을 위로하라고 가르치셨고 실제로 그렇게 사셨습니다.
소천 이틀 전.. 가장 아프고 힘드실 때에도 교회 근처로 원흥으로 너무 오고 싶은데 재정이 부족해서 못오는 한 성도님의 소식을 듣고..
이사올 수 있도록 도와드리라고 보증금의 절반을 사비로 대주셨습니다.
교구 사역자님을 통해서 후원금을 전달받으신 그 집사님은 친 부모 형제로부터도 이런 도움을 받아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목사님께서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아 주시냐고
이건 말이 안된다고 한없이 펑펑 우셨다고 들었습니다.
기력이 소진되어 입을 열어 말할 힘이 없으실 때에도
성도들에게 어찌하든 영적인 공급을 해 주고 싶으셔서
내가 직접 예배에 가지 못하니 네가 대신 사람들에게 전해달라고 하시면서
힘겹게 입을 열어 메시지를 들려주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 대한 말씀
그리고 하나님 왕국.. 에 대한 말씀
이 말씀들은 정원 목사님의 병상 메시지로 성도들에게 전해졌고
그 어떤 때의 메시지보다 큰 충격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3년이라는 사역 기간 내내 목사님은 수없는 날들을 밤들을 통증과 싸우셨습니다
사모님께서 ‘이렇게 아프고 생명이 단축되는데 왜 공개 사역을 했느냐’고 안타까워하실 때 마다 목사님은 또 대답하셨습니다.
“그건 주님이 원하시고 명령하셨기 때문에 할 수 밖에 없었어. 그리고 어차피 사람은 한번 살다 죽는 것인데, 내 죽음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데 보탬이 된다면 그것은 의미있는 죽음이지..”
목사님은 사역자는 사역을 통해 무엇을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영광이라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헤븐 교회 사역을 하신 기간 동안 건강도 재정도 명예도 잃으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사역의 상급이라고 하셨습니다.
부사역자님들과 동일한 사례비를 받으셨기 때문에 기본 받으시는 사례비도 적으셨지만
(직위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 사례를 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자녀가 많아서 재정의 필요가 많은 부사역자님들에게 더 많은 사례를 주셨으니 동일하다기 보다는 더 적게 받으신 셈입니다)
교회에서 받는 돈보다 교회에 투여하는 재정이 훨씬 많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결국 교회의 사례비로 생활하셨다기 보다 문서사역을 하셔서 자비량으로 사역을 하신 셈인데
그나마도 개인 재정 중에 많은 부분을 사람들을 돌보고 돕는 데 쏟아 부으셔서 헤븐 교회에서 형편이 어려운 분 중에 정원 목사님의 개인 사비로 도움을 받지 않은 분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아프신 기간 중에 가장 많이 말씀하신 것은
고맙고 사랑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모든 사람을 보고 싶고 사랑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합신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을 보시면서..
나는 총신 출신이지만 총신에서 나간 합신에 대해서 굉장히 존경심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학문 중심의 순수한 합신의 깨끗한 정신을 굉장히 존경한다고 하셨습니다.
정원 목사님 학창 시절에 총신에서 박윤선 목사님이 학장님이셨는데
순교의 각오로 신학을 해야 한다고 공부하다가 죽는 사람이 나와야 한다고 그것이 신학교라고 하시는 말씀도 새겨들었고 박윤선 목사님이 쓰신 주석 전체를 사서 읽으며 굉장히 학문적인 도움을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존경하는 합신 교단에서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 가슴 아프고 슬프다고
합신 교단의 자체적인 특성과 성향에 따라 교리적인 문제를 연구 평가해서 내린 결정이라면 그것은 교단의 고유 권한이라 겸허히 받아들이겠지만
거짓 제보를 확인 없이 받아들이고 이미 왜곡된 관점을 가진 채 연구 조사가 시작된 것이 아쉽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어떻든 합신은 참 아름다운 교단이라고 많이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어떤 사람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한다고
여러 방면으로 공격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많이 사랑한다고 보고싶다고 얘기해주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원 목사님은 그리움의 사람이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너무나 많이 사랑하셨고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그리워하셨습니다
소천하시기 이틀 전엔가..
갑자기 그리움에 대해서 얘기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리움이 하늘의 영성.. 하늘을 열고..
사람들의 영혼을 향한 그리움이 땅의 영성.. 땅을 연다고 하시는데..
그 순간 왜 그런지 “그리움” 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너무나 선명하게 와닿아서
가슴이 폭발하는 거 같았습니다
제 마음을 느끼셨는지..지금 이야기를 들은 소감을 말해보라고...네가 뭔가 깨달은 거 같다고..
네가 오래 동안 찾던 것이 이것이었지? 하셨는데..
정말 그랬습니다. 말로는 다 표현 할 수 없지만..제가 찾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영혼에서 일어나는 하늘을 향한 순결한 그리움.. 이었습니다..
소천하시기 며칠 전 목사님이 많이 사랑하셨고, 또 목사님을 많이 보고 싶어하던 헤븐스쿨 아이들이
그 즈음 한창 헤븐교회 내에서 많이 불리던 “역전되리라” 라는 찬양을 배경으로 목사님을 응원하는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다른 선물은 일체 받지 않고 오직 사랑의 마음이 담긴 편지만을 받으신다는 것을 아는 아이들은 목사님 보고 싶다고 힘내시라고 저희가 있다고 응원하는 편지도 썼습니다.
나중에 목사님 다 나으시면 보여드리겠다고 응원피켓도 만들고 초록색 풍선도 많이 사두었습니다. 목사님이 보실 것을 생각하며 너무나 즐겁게 설레임 속에서 이것저것을 준비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참 정직하구나. 누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주는지를 아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당시 이유를 알 수 없는 온갖 통증과 기력소진으로 인해 한걸음도 움직이기 어려우셨던 목사님께 조금이라도 힘을 드리고 싶어서 아이들의 응원 영상을 보여드리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며 이야기하셨습니다.
“목회하기를 잘했어...ㅠㅠ.. 너무 감사해..ㅠㅠ..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많이 사랑해주지도 못했는데..ㅠㅠ..
이 아이들 계속 사랑해 주고 싶어..
안아주고 업어주고 머리 쓰다듬어 주고 싶어.”
그렇게 이야기하시고
계속 소리 내어 우셨습니다..
아이들이 만들어 올린 영상이 붐을 일으켜서
다른 교구에서도 다투어서 목사님 보고싶다고 사랑한다고 격려의 사진과 영상을 올렸습니다.
목사님은 성도들의 얼굴이 나오는 영상을 볼 때 마다 계속 눈물을 흘리며 얘기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보고싶다...
잘해준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나를 사랑할까..
목회하기를 잘했지..ㅠㅠ..”
금, 토...사람들이 올린 영상을 보고 너무 그리우셨는지
소천하시기 3일 전 토요일 밤에는 사람들이 너무 보고 싶다고 하시며
지금 교회로 데리고 가 달라고 하셨습니다.
늦은 밤인데 왜 이렇게 일찍 미리 교회에 가 있느냐고 사모님께서 물어보시자
몸 상태가 시시각각 약해지고 있어서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아예 교회에 갈 수 없을 거 같다고 하시며 정말 힘겹게 휠체어에 오르시고 차에 타셔서 교회에 도착하셨습니다.
차 안에서 숨이 차서 호흡을 고르시면서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나 용감하지?”
몸이 너무 아프기 때문에 어쩌면 이렇게 교회에 갔다가 단에 오르지 못하고 그냥 다시 돌아올 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용감하게 시도해 보는 것이라고 하시며
“나 용감하지?” 라고 또 물으셨습니다.
눈물이 나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네. 너무 용감하세요”
하고 대답했습니다.
주일 아침이 밝아오기 까지 그치지 않는 통증과 씨름하며 신음하시면서 시계를 계속 바라보셨습니다.
평소에도 예배 인도를 하려고 마음을 먹으면 그전날 밤에는 영적 공격으로 인한 통증이 많으셨는데 이렇게 쇠약해진 몸으로 예배 준비를 감당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오전 6-7시까지 견디시다가 너무 공격이 심해진다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너무 사람들이 보고 싶었는데...” 하시며
5분이라도 강대상에서 성도들의 얼굴을 보고 싶으셨던 소원을 접으시고 주일 오전 일찍 댁으로 돌아가셨고..
그리고 그것이 교회에 오신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소천하시기 이틀 전 저녁에 갑자기 몇 명을 부르셨습니다. 작별 인사를 하시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설마 설마 하며 가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너무 고맙다고 수고에 감사한다고.. 사랑한다고.. 우리는 영원한 가족이라고..얘기하시는데...
아니야.. 나으실 거야.. 생각하며 마음에 두지 않았습니다.
소천하시던 날.. 낮에는 의식이 가물가물하신 상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제 영혼의 상태, 달란트, 발전해야 할 부분들에 대해서..
그러나 이미 목소리가 들릴 듯 말듯하여서 많은 부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무언가를 해 달라고 부탁하시는데
처음에는 무얼 부탁하시는 것인지.. 잘 알아 듣지 못했습니다.
“높으신 하나님.. 그거 크게 해 줘..”
라고 하시는 듯 해서 “높으신 하나님!” 이라는 말을 크게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무얼까.. 생각하다 갑자기 번뜩 생각이 났습니다.
아..!! “좋으신 하나님” 그 찬양을 불러달라고 하시는가보다
“좋으신 하나님.. 찬양 할까요?” 했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이시면서
수요예배에서 하는 것처럼 신나게.. 불러달라고 하셨습니다.
이 찬양에 맞추어 아이들이 워십하는 것을 보고 싶어하셨는데..
보여드릴 수는 없었기 때문에.. 대신 저는 박수를 치면서 홍성권 목사는 기타를 치면서 크게 신나게 찬양을 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인자와 자비 영원히~”
겉으로는 신나게 찬양했지만 가슴 속에서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찬양을 하는 동안 힘없이 손뼉을 치며 바라보시다가
나중에는 "Good~!!" 이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드시며 웃으셨습니다.
그리고 아프든 죽어가든 어떻든 어떤 상황속에서도 주님을 경배하는 것이 인간의 최고의 영예라고 하셨습니다.
온몸에 통증이 극심해져서 어떤 자세로 누워도 쉴 수 없을 정도가 되실 때는
작은 의자에 엎드려서 힘없는 그러나 간절한 목소리로 “예수.. 예수.. 하나님.. 하나님..”
하고 주님을 부르셨습니다.
그 의자를 목사님은 “예수 의자” 라고 부르셨습니다.
치열한 공격으로 잠도 잘 수 없고 먹을 수도 없고 다른 안식이 없지만
그래도 기도하고 엎드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하시며
힘드실 때 마다 “예수 의자를 가져다줘”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아프실 때 그 의자에 엎드려
“예수..예수... 내 사랑 예수..”
애절하게 부르셨습니다..ㅠㅠ
어느 날엔가는 예수 의자에 엎드려 아주 잠시 눈을 붙이셨다가
중간에 일어나셔서 방금 본 장면을 이야기 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어두운 도시들을 지나고 있고 많은 악한 영들이 공격하는데
아래에서는 성도들의 기도가
위에서는 예수님의 빛이 지켜주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중간 중간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야기도 하셨습니다.
소천하시기 전날... 마지막 날... 저녁에...
온몸에 통증이 극심해져서 1분 1초도 쉴 새 없이 고통에 시달리시는 모습을 뵈며..
조금이라도.. 한시간만이라도 주무실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성권 목사와 교장쌤에게 목사님 돌보는 일을 잠시 맡겨드리고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청년들과 중보팀이 열심히 대적하고 기도하면
5분이라도 10분이라도 쪽잠을 주무실 수 있었던 것이 생각나서
중보팀을 11월 16일 월요일 저녁에 급히 소집했습니다.
통증이 극심하시다고.. 전투가 치열하니 도와드려야 한다고..
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모여서 간절히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목사님께서 주무신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중보팀이 기도를 시작한 바로 그 시점부터 지금까지 1시간 동안 주무시고 계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쉬시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 기쁘고 너무 힘이 났습니다.
모두들 더 간절하게 열렬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1시간.. 2시간.. 3시간.. 계속 주무신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혹시 몰라서 성권 목사가 바로 옆에 붙어서 목사님의 숨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고로롱.. 고로롱.. 편하게 곤히 주무신다고.. 문자로 연락이 왔고.. 다들 쉬지 않고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그렇게 주무신지 5시간 되었을 때..
11월 17일 화요일 새벽 1시 경에
갑자기 황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께서 숨을 쉬지 않으신다는 것이었습니다...ㅠㅠ...
가까이에 있던 성권 목사와 교장쌤이 급히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면서 119를 불렀습니다.
사람들이 도착하고 20분 가량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는 동안..
중보팀은 모두 울부짖었습니다.
너무나 길게 느껴지는 그 몇십분이 지나고
응급실로 옮겨지고 있다고..조금 후 병원으로 오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응급실에 도착하고 조금 지나서.. 소천하셨다며 마지막 얼굴 뵈러 들어오라고 하였습니다.
흰천이 덮여있었습니다. 덮인 천을 들추고 조용히 잠자듯이 누워계신 목사님 얼굴을 뵈며
목사님께.. 너무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ㅠㅠ.
그리고 소식을 기다리며 모여있는 중보팀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스피커폰으로 전환해서 마이크를 대도록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소천하셨다고 전하자 전화기 너머로 통곡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전화로 다 함께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신뢰하는 기도를 드리고.. 주님의 인자와 자비를 찬양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했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고통스러운데
동시에 이상하게 가슴속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날 밤.. 장례식장에서 이런 저런 준비를 마치고 검은색 정장과 필요한 물품.. 등을 챙기러 다시 집에 들렀습니다. 그리고 밤에 잠시 교회 목양실에 와서 엎드렸습니다.
목사님을 위해 기도한다고 이야기드릴 때면.. 절대로 단순히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기도하지 말라고..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시곤 하셨기에
목사님의 사투와 같은 영적 전쟁과 우리 모두의 기도의 씨름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마음속으로 주님께 질문을 드리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습니다.
목양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문 앞 나뭇가지에 참새 한 마리가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참새.....
뭔가 마음이 아련해졌습니다.
그리고 사모님께서 부탁하신 물품을 챙기러 목사님 댁에 다시 들렀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프신 중에도 그렇게 따듯한 눈빛으로 반갑게 맞아주셨던 목사님이 계셨는데..
온종일 너희들이 오는 것만 기다린다고 하셔서 최대한 빨리 일을 마치고 목사님 댁으로 뛰어가곤 했었는데..ㅠㅠㅠ..
목사님이 마지막에 제일 많이 앉아계셨던 장소에 가서.. 목사님이 내다보셨던 창밖을 물끄러미 보았습니다.
아.. 그런데 마침 거기에도 참새가... 작지만 건강하고 활기찬 참새 한 마리가
뛰어다니며 고인 물을 마시고 고개를 까닥거리고 있었습니다.
아.. 참새는 날아갔구나..
몸을 벗고 아픔이 없는 곳으로
그렇게 그리워하시던 하늘을 향해
자유를 향해 날아간 것이구나..ㅠㅠ.
장례식장에 도착했습니다. 헤븐 교회 식구들이 한사람 두 사람 얼굴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늘 보던 얼굴이었지만 예전과 달라 보였습니다. 아.. 이 사람들이 목사님께서 그렇게 보고 싶어하셨던 사람들이지..돌아가시기 전에 한번이라도 얼굴을 보고 싶고, 손잡아주고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어하셨던 사람들이지..
지금 목사님이 계셨다면 얼마나 반가워하며 사람들을 안아주셨을까.. 그 생각이 나서
한사람 한사람 다가가서 목사님께서 너무나 보고싶어하셨다고 제가 대신 사랑의 마음을 전한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안아주며 혹은 손잡아 주며 우는데
참 이상했습니다. 돌아가신 날 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과 함께 가슴 속에서 올라왔던 그 따듯함이 사람들과 포옹하고 함께 울고. 할수록 점점 더 뜨거워지고 강렬해졌습니다.
한분 한분 안아드리면 한참을 울고 나서는 제게 한두마디씩 이야기를 해 주시는데
참 신기하게도.. 모든 분들의 이야기가 다 똑같았습니다.
목사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고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이야기, 지금이라도 어디선가 웃으며 장난치며 나타나실 것만 같다는 이야기
이 죽음은 영광스러운 승리라는 이야기.. 끝까지 용감하게 싸우다 가셨으니 이제 남은 싸움은 우리가 싸워야 한다는 이야기..
목사님 소천 소식에 마음은 고통스럽고 아픈데도.. 왜 그런지 가슴이 뜨거워진다고.. 심장의 상태가 달라진 것만 같다고...슬픔 속에서도 희망의 빛이 느껴진다는 이야기
내가 죄를 버리지 않아서 목사님께서 그 짐을 지고 가신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하고 이제는 죄를 버릴 수 밖에 없을 것 같다고..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고
그 동안 너무 속썩이고 말썽 부렸는데 용서해주셨던 사랑이 기억나고 가슴에 깊이 새겨져서 잊혀지지 않을 것 같고.. 너무 큰 사랑의 빚을 져서 이전처럼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생전에 그렇게 이야기하셨던 오직 예수만 사랑하라는 말씀에 이제는 순종할 거라고.. 목사님처럼 예수님만 붙들고 사랑해야 천국에서 목사님 뵐 때 부끄럽지 않을 것 같다고..
우리는 너무 그립지만 그래도 고통 없는 곳에 가셨으니 다행이라고 평생을 고통 속에 주를 붙드셨는데 이제는 아프지 않으시니 그거면 된 거 아니냐고..
모두가 동일하게 이런 이야기들을 하셔서 정말 신기했습니다.
어떤 집사님께는 제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이상해요. 다들 오셔서 똑같은 이야기를 하셔요. 마치 암호 같아요.”
눈물 속에서.. 하지만 알 수 없는 평안함과 따듯함 속에서 장례일정은 계속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아니라 사람을 붙드는 것을 항상 우려하셨던 목사님..생전에도 목사님을 높이는 것을 가장 불편해 하시고 경계하셨던 터라..
내가 죽으면 무덤이나 납골당이나 어떤 물리적인 것을 남기지 말라고, 인간은 무익하고 육은 허무하니 내가 죽으면 그냥 태워서 아무 곳에나 뿌리고 흔적을 남기지 말라고..
그리스도가 아닌 사람을 의지하고 바라보게 되어서는 절대 안된다고.. 하셨기에
시신은 화장해서 유택공원에 그냥 뿌리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하루 하루 지날수록 외부에서 소식을 듣고 황급히 달려 오신 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헤븐 교회 식구들 뿐 아니라 외부에서 오신 분들도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이렇게 충격이 되지 않았는데.. 어떤 장례식 가서도 운 적이 없는데.. 목사님 소천 소식에 너무 가슴이 무너져서 한참을 울다 왔다고 하시며 그리움으로 가슴을 쏟으며 우셨습니다.
목사님의 책이나 글을 접한 것도 아니고.. 그저 명절 때 가끔 만난 것이 전부인 외가 친척분도.. 힘들고 외롭고 연약할 때는 항상 목사님이 위로해주셨는데 이제는 누가 나를 그렇게 보듬어줄까.. 하면서 우셨습니다.
정원 목사님의 글과 사역을 사랑하셨던 교회 외부 분들이 오셔서 한결같이 이야기하는 것은 나라가 걱정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정원 목사님께서 생전에 그렇게 나라를 걱정하고 한국 교회를 염려하며 기도했는데 이제 목사님이 안계시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될지 너무나 염려가 된다고 하시며
정원 목사님이 안계시더라도 헤븐 교회가 그 사명을 잘 감당해주기를 부탁하셨습니다.
입관예배와 위로예배 발인예배가 이어지는 동안 모인 사람들은 감사와 죄송함과 사랑과 그리움으로 한없이 울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내 장례식은 눈물 보다는 웃음이 가득한 축제 같은 장례식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종종 말씀하곤 하셨는데 그 부탁은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외부에서 오셔서 예배에 참여하셨던 한 목사님은 이런 장례 예배는 처음 보았다고 하시며 놀라셨습니다. 사람들의 울음 소리만 들어도 정원 목사님이 얼마나 목숨 다해서 이 사람들을 사랑했는지..그리고 이 사람들이 얼마나 정원 목사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정목사님이 목숨을 다해 전한 예수께 자신의 삶을 드리겠다는 열망이 간절한지..절절히 느껴진다고..
마치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고.. 여러 번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며칠 후 다시 오셔서는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서 요즘에 여기 저기 다니면서 정원 목사님 장례식 예배 이야기만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루는 장례식장에 앉아서 물끄러미 천장을 바라보는데
왠지 문득 “연평해전” 영화에서 보았던 거수경례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용감히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참수리호와 윤영하 정장.. 그들을 떠나보내며
“필승” 으로 거수경례하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끝까지 온힘을 다해 치열하게 영적인 전투를 하셨던 목사님..
이제는 남은 싸움을 싸우라고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죄와의 씨름을, 하나님 나라를 위한 싸움을 싸우겠다고 다짐하면서 혼자 조용히 하늘을 보며 “필승..” 하고 경례를 했습니다.
위로 예배를 드리던 날...
헤븐스쿨 아이들이 휴교하고 모두 장례식장에 왔습니다.
아이들을 보니 눈물이 났습니다. 너무나 사랑하셨던 아이들..
소천하시기 전에 아이들이 하는 ‘좋으신 하나님’ 워십을 보고 싶어하셨지.. 생각이 나서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 근처 공원에 갔습니다. 노을이 지는 저녁.. 아이들은 펑펑 울면서 ‘좋으신 하나님’ 워십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남은 삶은 그토록 목사님이 원하셨던
오직 예수만 사랑하고 예수께 전부를 드리는 삶을 살겠다고
지는 저녁해를 향해서 ‘필승’ 했습니다.
목사님이 다 나으시면 보여드리려고 아이들이 준비한
피켓과 풍선.. 그리고 악기 연주..
어찌하든 보여드리고 싶어서 화장터로 가기 전에 목사님을 실은 차가 잠시 교회 앞을 지나가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운구차가 교회 앞에 도착했을 때.. 차창 밖으로 아이들이 보였습니다.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모두 울며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차에서 내려서 영정 사진을 들고 아이들에게 갔습니다.
‘목사님. 아이들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사랑하셨던 교회예요..’
찬송가 복음성가 통틀어서 가장 사랑하는 노래라고 하셨던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아이들의 울음과 주변을 둘러싼 교회 식구들의 울음속에서
찬송가의 선율이 울려퍼졌습니다.
차량을 운전하던 기사 아저씨는 불신자이신데도 그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마지막 한줌 흙이 되어 뿌려진 목사님의 육신..
이제 목사님께서 그렇게 원하셨던 것처럼 사람은 사라지고 그리스도만 남았습니다.
장례 이후에 돌아오는 첫 주일예배를 준비하며
목사님의 3년의 사역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헤븐교회 사역이야기방] 의 글을 쭉 훑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사역과 죽음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내면의 그리스도, 이것은 오직 피를 통해서만 전달된다. 심장의 사역.. 은 사역자의 피를 통해 성도들의 가슴을 여는 것이며 부흥에는 제물이 필요하다는 글들을 읽으면서
목사님의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목사님의 죽음 이후 저도.. 성도들도.. 모두가 달라졌습니다.
가슴 속에 그리스도를 향한 간절한 사랑의 불이 타오르기 시작한다는 것을
우리는 서로 모두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헤븐 교회 안에서는 조용하지만 강렬한 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목사님이 예고하신 한달 동안의 부흥회는 두 주만에 끝이 났고
그나마 단에 서신 것은 꼭 한번 뿐이었지만..목사님은 강단에서의 설교가 아닌 피와 목숨으로 부흥을 일으키기 시작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른들도.. 아이들도..처음에는 목사님이 보고 싶고 그리웠지만
점차 그 그리움은 예수께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이 마지막에 고통속에 간절히 부르셨던 예수.. 내 사랑 예수..
이 고백을 드리면..주님이 너무 보고 싶고 그리워진다고들 말합니다.
예배와 기도는 더 간절해지고 있고
날마다 기도실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오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기도 소리가 달라졌습니다. 마음가짐도.. 서로를 향한 사랑도, 연합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도..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이기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벗어날 수 없었던 죄들이
이상하게 장례식 이후에.. 그 가슴 아픈 시간 이후에.. 애쓰지 않아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고
세상에 대한 즐거움, 애착, 미련이 사라지고 나에 대한 관심 애정도 허무하게 느껴지고..
그저 계속 기도하고 싶고 주님을 부르고 예배하고 싶다는 이야기들을 자주 듣게 됩니다.
아주 작은 아이들에게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목사님을 많이 사랑했던 올해 4학년인 한 남자 아이는
목사님이 돌아가신 후 한동안 열이 나고 힘들어했습니다.
그러다가 예배 시간에 엄마에게 이런 쪽지를 건넸습니다.
“엄마 힘들고 아프지만 정원 목사님을 본받아 주님께 경배하고
주님께 제 심장을 토하며 주님께 저의 영혼을 바치고 싶어요
저도 ‘예수 예수 내 사랑 예수’ 라고 하며 평생 예수님만 섬기는 종이 될께요
그리고 평생 그 말씀을 기억하며 주의 종이 될께요
그리고 정원 목사님이 예수님을 마음 깊이 두었듯이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주님..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저를 사용해 주소서..ㅠㅠ..”
그리고 나서 예배실 바닥에 엎드려 한참을 기도하더니
“엄마, 저 열이 내려간 거 같아요” 했다고 합니다.
머리에 손을 얹어보니 뜨겁던 이마의 열이 정말 사라졌다고 해요.
목사님의 죽음은 헤븐 교회에 소속된 성도들 본인 뿐 아니라
연결된 가족들에게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어떤 집사님의 남편분은 한 두 번 예배에 나오다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던 분인데..
목사님 소식에 눈물을 글썽이며 한 3일을 심란해하시더니
목사님 이야기를 듣고 싶어 그렇게 집사님이 집에 오시기만을 기다리신다 하고..
또 다른 한 집사님의 남편분도 목사님을 뵌적도 없고 이야기만 전해들시던 분인데도..
소천 소식에 충격을 받으시고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시더라 하시고..
또 어떤 집사님의 아들은 영적인 관심이 전혀 없던 아이인데
목사님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피아노 앞에 앉아 찬양을 치더라고, 그런 아이가 아닌데 신기했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집사님은 함께 교회에 왔으면.. 했지만 계속 미적 미적.. 미루고 있던 딸에게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전했습니다.
한번도 정원 목사님을 만난 적도 없고, 책을 읽은 적도 없고
그저 엄마 아빠를 통해 간접적으로 교회에서 전해지는 말씀을 마지 못해 들었던 딸인데
목사님의 소천 소식에 충격을 받고 눈물을 흘리더니 헤븐교회에 가야겠다고 하더랍니다.
지난 주에 교육을 받았는데 교육하신 사역자님의 이야기에 따르면
조금만 어떤 이야기를 해 주어도 눈물을 흘리며 듣고 깊이 수용하는 자세가 참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싸울 차례라고..
나는 이제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고 하며 장례식장 곳곳에 서서 울던 사람들..
그리고 그 이후에 본인에게, 주변에 나타나는 수 많은 삶의 열매들..
그것은 모두 목사님의 죽음이 영광스러운 승리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동안 목사님의 건강과 사역을 위해 기도해 왔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떠나시고 헤븐 교회를 남기셨기에
이제 저는 헤븐 교회를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제 자신과 헤븐 교회 성도들의 가슴에 붙은 불이 꺼지지 않도록
성도들의 영적인 건강과 성장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조국의 통일을 보지 못한 것과
한국 교회의 부흥을 보지 못한 것이
가장 가슴 아픈 일이라고 하셨던 목사님
이제 목사님께서 남겨주신 이 헤븐 교회는
나라를 위해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남은 삶을 불태우기로 하였습니다
헤븐 교회는 성령께서 주인이 되십니다
그리고 끝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싸우겠습니다.
지금도 목사님을 지키던 청년들의 기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헤븐 성도들은 가슴에 이전에 알지 못하던 뜨거운 불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며
이 거룩의 불, 성결의 불을 유지하기 위해 더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조국 통일을 위해 조국의 부흥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할 것입니다.
아래에 정원 목사님께서 생전에 헤븐 교회 성도들에게 쓰셨던 글을 가져왔습니다.
아래 편지는 카페 가족 여러분 모두를 향한 목사님의 마음이라 생각되어 글을 올려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모든 분들은
우리의 가족이고, 헤븐 가족입니다.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필승....
[2014년 2월 7일..헤븐교회 성도들에게 쓰신 글]
내 사랑하는 헤븐 가족들.. 그리운 식구들에게 사랑의 편지를 드립니다.
사역을 하면서.. 저는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어찌나 기쁘고.. 가슴이 설레고.. 때로는 웃음이.. 그리고 눈물이 흐르는지 모릅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은 내 삶에 보화와 같은 분들입니다. 얼마나 내게 힘과 위로와 기쁨이 되는지 모릅니다. 때로 지치고 힘들 때 여러분을 생각하면 곧 힘을 얻고 행복해집니다.
여러분들은 주님의 눈에 아주 귀히 여겨지는 분들입니다.
헤븐에는 세상에서 잘 나가고 당당한 이들보다.. 세상에서 상하고 지치고 주의 사랑과 위로가 필요하신 분들이 많아서.. 너무 행복합니다. 주님께서 이들을 이곳으로 인도하시고 만져주시고 사랑해주시는 것이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다만..한가지.. 무능하고 약하고 실패하고 실수하는 것은 100번도 1000번도 괜찮지만.. 결코 약한 자들을 억압하거나 괴롭혀서는 안됩니다. 어린아이들, 약한 사람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은 주님을 진노하시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아주 조심해야합니다. 어린아이를 영접하는 것은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헤븐에 아무도 거칠은 사람이 없이 모두가 온유하고 겸손하여 어린아이, 상한 자,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헤븐에는 결코 비난이나 억압이나 정죄가 없습니다. 사랑의 조언과 위로, 축복과 권면이 있을 뿐입니다. 혹시라도 억압이나 강압을 영적성장의 도구로 여긴다면, 그것은 정말 오해입니다. 주님은 너무나 아름답고 온유하며 사랑과 긍휼이 가득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압제자를 미워하시며 약한 자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사람은 외모보다 내면이 더 중요하지요. 그런데.. 헤븐의 가족들은 남녀노소 할것없이 어찌나 다들 아름답고 사랑스러운지 모르겠어요.. 한분도.. 귀하고 아름답지 않은 이들을 보지 못했어요.. 교회에서 한분 한분을 보면 너무나 아름답고..기쁨이 생겨서..그저 하루종일 쳐다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보이지 않으면 슬퍼질것 같아요.. 실제로.. 보이지 않는 분들 생각하면서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어디에 있든지 행복하고..주님을 더욱 더 사랑하게해달라고 축복하고 기도하지만..그래도 보고싶은 마음은 잘 안 사라지죠..
감사하고 보고싶고..사랑합니다. 사실 전주에는 예배 후에 모든 이들을 한분씩 포옹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는데.. 막상 끝난 후에는 서있기도 힘들어서 여러 시간을 잠들어버렸어요..
사랑하고..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여러분들 생각하면 자꾸 눈물이 흐릅니다.
여러분들은 아름답고 존귀한 주님의 자녀입니다. 주님이 목숨바쳐서..심장이 터지도록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감사하고..사랑하고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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