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말씀: 롬13:11-14
설교제목: 깨어 있으라.
저는 어릴 적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중학교 때 얘기를 잠깐 하려 합니다.
시골에서 중학교를 가려면 버스를 타고 다녔습니다.
혹여라도 늦잠을 자서 늦게 일어나면 버스를 놓치게 되고 지각을 하기 때문에 아침 시간에는 전쟁시간입니다.
한번 버스를 놓치면 1시간 이후에나 버스가 오기 때문에 모든 학생들이 그 버스를 타기 위해 아침 전쟁을 치르게 됩니다.
거의 매일 아침 미어지는 만원 버스를 타고 버스 문을 닫지도 못한 채 출발하였습니다.
그땐 얼마나 잠도 많고 꿀잠이었던지요!
지금도 잠이 많지만요.ㅎ
그렇게 잠에 취해 있던 저를 깨우는 자명종과 같은 소리가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엄마의 목소리입니다.
“일어나라!”
“빨리 일어나라! 학교 늦겠다.”
그 시골엔 자명종이 없었기 때문에 서로 깨워줘야 했습니다.
엄마의 날카로운 소리에 정신이 번쩍 나면서 부랴부랴 학교에 갈 준비를 하였던 것이지요.
아침이 되었는데 잠만 쿨쿨 자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안 되는 것이지요.
제가 여기에서 여러분과 나누고자 하는 말씀은 것은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본문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성도들은 다 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깨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여러분이 속한 교회나 한국 교회나 이 나라의 모습을 잠깐 상상해 보십시오.
깨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어쩌면 이 말씀은 자타가 인정하는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 옛날에도 깨어 있고 지금도 깨어있으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왜 깨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까?
“이는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말씀입니까?
예상치 않은 날, 예상치 않은 시간에, 언제 어느 시에 우리가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많은 메스컴을 통하여 다양한 사건과 사고를 듣고 있습니다.
예전에 없었던 범죄가 다양해지고 있으며,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땅에는 안전지대라고 할 만한 곳이 없습니다.
모든 곳이 범죄의 온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어디 범죄뿐입니까?
지진과 해일, 태풍 등 많은 자연 재해로 많은 생명을 잃기도 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요즘에는 무슬림 극단주의자들로 말미암아 세계 곳곳에 테러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종말의 시대 마지막 시대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 오실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본문 12절에 깨어 있는 사람의 특징이 나타나 있습니다.
먼저는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럼 어둠의 일은 무엇입니까?
13절에 보시면 나오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고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라”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5:19-21절에서 이러한 어둠의 일을 육체의 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본문 14절에도 보시면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일을 만들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혹시 지은 죄가 있다면 반드시 회개하고 자유함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죄가 있을 때 사탄은 그 틈을 타서 들어오기 때문에 우리가 사단에게 틈을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빛의 갑옷을 입자라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옷은 행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빛의 갑옷을 입고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9절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빛의 갑옷을 입는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 착함과 의로움 진실함이 있어야 된다는 것이지요. 삶의 변화가 있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세 번째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아가기 까지 점점 더 성숙해 지고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섬기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온유하고 인내하고 충성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섬기는 것은 때로 힘들고 지칠 때가 있습니다.
왜 꼭 내가 해야 하나? 하는 맘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이만큼 섬겼으면 상대방도 나를 섬겨주길 은근히 기대하는 맘이 있거나 알아주길 원하는 맘이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생명, 성령으로 섬긴 것이 아니지요.
그것은 나로 섬긴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나로 섬긴 것을 넘어서서 예수님의 생명으로, 성령으로 섬기는 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 주님이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또 늘 깨어 있어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님의 싸인을 받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어야 하고, 또 늘 깨어 있어야 주님의 싸인을 받을 수 있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이것을 성령의 인도함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기 위해서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생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이 마지막 시대에 깨어 있으므로 우리 주님 맞을 준비할 수 있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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