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방

[스크랩] 가짜 거듭남과 온전한 거듭남의 분별

하늘이슬 2017. 5. 6. 11:22

 

 

 

제가 원래 모태신앙이지만 모태신앙만큼 

의미 없는 반복적인 신앙생활도 없습니다.

물론 저의 경우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실 신앙생활이라는 단어는 교회 다닌다고 함부로 붙이면 곤란합니다.

중국 고전 영화를 보면 연배로나 서열로나 위에 있는 사람에게

두 손을 모으면서 대인이라고 부르는 장면을 많이 접하는데

사실 대인이란 원래 의미는 나이가 많다고 혹은 서열이 높다고

붙이는 의미는 아닙니다.

대인의 원래 의미는 대인배란 말에서 나온 것인데

소인배의 반대말로, 아량이 넓고 관대한 사람을 일컫는 사람을 의미하며

그보다 더욱 높이는 말 중에 군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대인이나 군자는 흔하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그만치 인격수양과 인품의 성숙함이 무르익어서

누구나 엄격한 교육과 자신의 노력으로 가능한 성장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 또는 성도라는 말은요??

엄밀히 말하면 신앙생활 하는 성도는 극히 드물다고 봐야 합니다.

냉혹하게 표현하면 거의 다 교회만 다니는 교인이라는 뜻입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교인에게 신앙인이다, 혹은 성도라고 하지 않습니다.

신앙생활 하는 성도란 정확히 표현하면

성령으로 회개하고 거듭난 사람에게 표현하는 말입니다.

물론 거듭났으니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억지로가 아닌

아주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서 나타납니다.

 

우리는 말의 정확한 뜻도 모르고 성도라 하고 거듭났다고 하며

주님을 영접했다는 말을 근거도 없이 저렴하게 사용합니다.

대다수 교인들이 하나 오해하는 게 있습니다.

처음 교회 다니는 분들에게 사영리의 주님 영접,

교회생활 열심히 하며 봉사 많이 하면,

십일조를 포함한 각종 헌금 열심히 바치면,

성경을 여러 번 통독하여 줄줄 외울 정도가 되어서

나름대로 칼럼도 쓰는 성경지식인이 되었을 때

막연하나마 거듭난 성도라고 자신을 위로합니다.

정확히 표현하면 이런 사람들은 거듭난 사람의 필요조건은 될 수 있어도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거의 가짜로 거듭난 신앙인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경우입니다.

예리한 도검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철광석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철광석만 모으면 예리한 도검이 저절로 만들어지나요?

가짜 거듭난 사람들은 철광석(성경지식, 봉사, 헌금)만 잔뜩 모아놓고

도검(성령으로 거듭남)을 만들었다고 우깁니다.

철광석만 잔뜩 모아놓고 자부심이 대단하여

교만함을 인위적인 겸손으로 포장하고

스스로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환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철광석은 누구나 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철광석을 도검으로 만드는 것은 

재료인 철광석 자체가 아니고 잘 숙련된 장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숙련된 장인의 손길이 가야 아주 예리한 도검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럼 숙련된 장인은 누구입니까?

바로 주님이십니다.

우리의 스스로의 힘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0%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터치해야 우리가 예리한 도검으로 완성되듯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엄청난 고급 요리 재료만 모은다고 음식이 저절로 되나요?

숙련된 요리사의 손길이 지나가야 맛있는 요리로 바뀌는 것입니다.

포도만 잔뜩 생산한다고 그 포도가 포도주로 변할까요?

포도주를 만들려면 숙련된 주조장인에 의해 여러 과정을 거쳐

잘 숙성된 맛있는 포도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철광석이 예리한 도검으로,

요리재료가 맛있는 요리로,

포도가 잘 숙성된 포도주로,

이게 진정한 거듭남입니다.

어설픈 모양에서 진짜 모양으로 

체질 자체가 완전히 바뀌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전지전능함은 이 정도가 아닙니다.  

포도가 포도주로 바뀌는 정도가 아니라

맹물(H2O)이 에틸알코올(CH3CH2OH)로 속성이 완전히 바뀌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즉 물이 맛있는 포도주로 속성이 완전히 바뀌게 하는 장면이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이게 진정한 거듭남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세상적인 영이

주님의 터치로 완전히 바뀌어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속성이 완전히 바뀌었으니

맹물에서 포도주가 되어 특유의 알코올 성분이 나타나듯

사람도 거듭나면 체질이 완전히 바뀌어서

성령의 9가지 열매에 있는 특유의 기질이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이렇게 변하면

주변에서 충동해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온유한 성격이 나타나고,

욕심이 죽어 절제하게 되고,

늘 화평을 누리려 하며,

주님께 더더욱 충성하고,

참을성이 대단해지고,

늘 자비로운 마음이 감돌고,

이웃에 대하여 늘 사랑하고 긍휼한 마음이 생기며,

어떤 상황에서도 늘 기뻐하고 감사하는 귀한 모습으로 변합니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사실은

거듭나기 전에는 힘들어서 그렇게 지키지 못할 것 같은 주님의 말씀이

거듭난 후에는 오히려 더 지키고 싶어지고 말씀에 순종이 거침없다는 것입니다. 

마치 억지로 걸어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라야만 할 것 같은 불가능함이 있었는데

이제는 발바닦에 모터가 달려 거침없이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기분이 든다고 할까요,,

즉 주님의 말씀을 지킬 필요가 없어서 거침없는 것이 아니고,

주님을 사랑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지키려니

거침없이 힘들이지 않고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면

같은 일이라도 하기싫은 일이면 억지로 꾸역꾸역 겨우 하지만,

내가 원해 하고싶은 일은 피곤함을 모르고 즐겁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성령님의 조명도 없이 내의지로 일을 꾸민다는 것은 참으로 헛되지만

내안의 성령님의 조명아래 하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달리는 말에 날개가 달리는 것입니다.   

이게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본질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주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포도나무에 접붙임 당하지 못한 가지가 열매맽는 게 불가능하듯

포도나무에 접붙임 당한 거듭난 가지는 열매 맽는 게 쉽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흔히 주님의 말씀을 어떻게 다 지키냐고 항변하며

말씀은 다 순종하지 못해도 믿음만 있으면 

구원받는다고 스스로 위로하는 것입니다. 

위로는 위로일 뿐입니다.

거듭나지 못해 순종 없고, 열매 없는 믿음은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 줄기에 접붙임 당했는데 열매가 없을리 없고

또한 포도나무 줄기에 접붙임도 당하지 않았는데 열매가 있을리 없습니다.

가짜 믿음을 아무리 붙들고 있어 봐야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이런 본질적으로 거듭난 흔적이 없다면

안타깝지만 거듭난 자가 아님을 알고

구원이 이러니 저러니 댓글놀이에 몰입하지 마시고

먼저 거듭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가짜로 거듭난 사람들은

아무리 스스로 거듭난 것처럼 위장해도

반드시 본 모습을 노출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시간이 생기면 다른 기독카페에 가끔 들어가서

글을 읽는데,

은혜와 감동도 없이 지식적으로만 원글을 쓰는 사람도 문제지만,

거기에 달리는 댓글들을 보면

아주 적나라하게 댓글자의 민낯의 모습을 봅니다.

댓글 다는 사람들 중에 칼럼을 쓰는 분들도 있는데

칼럼을 보면 지식적으로

아주 완벽하고 엄청난 믿음의 소유자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남의 글에 댓글 다는 것 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속성은 기대도 안 하지만

거듭나지 못한 이방인들 혹은 신앙인이 아닌 일반 교인들의 속성이

아주 리얼하게 표현됩니다.

빈정대고, 욕하고, 비난하고, 정죄하고, 너는 틀리고 내가 맞는다고

서로 지칠 때까지 우기고, 분노하고,,,,

내 지식이 더 낫다는 걸 증명하려고 기를 쓰고,,

이렇듯 마귀의 속성이 거침없이 나오는데도

그러면서 이런 분들이

믿음이 어떠니,

어떻게 믿어야 구원받는다,

구원은 이런 것이다. 등등,,,

 

심지어는 자신은 구원받았다고 하며

예수 그리스도 보혈의 피를 근거로 내세웁니다.

안된 말씀이지만,

그리스도 보혈의 피로 값없이 구원받았다는 의미는

성령으로 회개하여 진정으로 거듭나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지

거듭나지도 아니하여 세상의 속성(쓴 뿌리)이 그대로 나타나는 사람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헛된 희망고문일 뿐입니다.

세상적인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그리스도 보혈의 피로 자신이 값없이 구원받았다고

슬며시 구원의 대열에 무임승차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무임승차를 확신한다고 주님이 태워 주십니까?

겉 포장지만 보고 내용물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하듯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고 네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 하라, 너희가 짐을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 법을 성취하라,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각각 자기의 짐(일)을 질(살필) 것이라" (갈라디아서6장:1-4)

 

포도나무 줄기에 접붙임을 당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주님의 본질과 위대함을 알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 줄기의 생명력이, 가지인 나에게 흘러들어와 한몸이 되었을 때

비로소 그 속성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고

그 모습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진짜 참된 제자의 모습입니다.

즉 값없이 받았다는 말은, 지식적으로 주님을 아는 자가 아니라

접붙임을 당하여 주님의 본질을 맛보아 아는 자에게 해당된다는 뜻입니다.

접붙임도 받지 않은 분들이 값없이 은혜를 받아 구원받는다는 말이

왜 생겼는지아직도 궁굼합니다. 

종교적으로 혹은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나는 주님의 자녀 혹은 제자라고 표현하면 안 됩니다.

진정한 신앙의 시작은 접붙임을 당한 후부터임인 것은 상식입니다.

가르치는 목사님들이 거듭나지 않았으니 주님의 속성을 몰라서 

이런 것을 잘못 가르쳐서 발생하는 오해 중의 오해입니다.

이러니 하나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람의 의지로만 강제로 접붙임을 하려고

몇 분짜리 사영리 영접식을 쥐어짜기 식으로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이 나를 아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머리가 터질 정도의 성경 지식으로

마구 구원관을 쏟아냅니다.

정작 성령으로 거듭나서 구원받을만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잠잠하게 이런 그들의 모습을 소리 없이 지켜보며 

가슴을 잡고 통탄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치 폭과 깊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강은 요동하지 않고

조용히 잠잠하게 빠른 속도로 흐르는데,

흐르는 물의 양도 얼마 안 되는 조그만 개울물이 소리만 요란하게 

좔좔 느린 속도로 흐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분들이 어찌 그렇게 믿음과 구원관에 대하여

거침없이 논하는지, 서울에 살지도 않으면서

지식적으로는 서울에 대하여 잘 안다고 생각하여

서울에 사는 사람들에게 서울에서 사는 방법을 훈계하고 선도하려듭니다.

마치 조그만 지구도 떠나보지 못한 분들이 태양계는 너무 비좁다고 하면서

말로는 안드로메다라도 정복할 방법이 있는 것처럼 표현합니다.

머리는 터질 정도로 성경지식이 와글거리는데

정작 이방인의 속성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들은 마치 자신의 성경지식이 구원의 첩경이요,

거듭난 자의 표본으로 오해들을 합니다.

그래서 기존의 성경지식에서 더더욱 수준(?)을 높여보려고

더하거나 빼는 무리수까지 둬 가면서 성경을 파헤칩니다.

 

이들의 글은 지식적이라고는 해도 어느 정도 수준은 있어서

글을 다 읽고 나면 머리는 끄떡여지는데,

가슴속 깊이 은혜가 느껴지지 않아 아멘이란 소리가 안 나옵니다.

즉 성령님의 이끄심 없이,  

지식 그 자체에만 치우친 글이니 은혜가 없는 것은 당연하고,

영적인 지혜조차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건 시간 낭비입니다.

결국, 자기 지식자랑중에, 썩어가는 자신의 영이 방치되는 것도 눈치채지 못합니다.

성령으로 회개하여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 쓴 글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릅니다.

거듭나지 못한 목사님이 주님의 은혜도 없이

지식적으로만 메마른 설교를 하는 것과 동일한 현상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영적 지혜도 없이, 지식만 넘치는 사람이

자신은 구원받은 사람이요,

거듭났다고 자신을 속인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을 속이고 또 속고 있으니

진정으로 거듭날 가능성이 없다는 뜻입니다.

자신은 거듭났는데 뭘 또 거듭나란 소리인가라는 늪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주님을 전혀 몰랐던 백지상태의 사람이

진정으로 거듭나는 것이 훨씬 더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두운 골방에 들어가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돌이켜 보십시오.

영적 체질이 완전히 바뀌어 진정으로 거듭난 성도인지 

아니면 교회는 다니는데 영적인 변화없이 귀한 시간만 소모하고 있는지,,

구원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5)

 

이 말씀은 성령으로 회개하여 거듭난 자가 값없이 받은 선물(성령)로 천국 간다는 말씀이지,

거듭나지 못하여 세상의 쓴 뿌리를 그대로 지닌 사람이 

값없이 받은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말씀인가요? 

내 스스로 만든 값없이 받은 무임승차권으로 구원받는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가 큰일 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성령으로 나지 못하면 천국의 그림자도 구경 못 한다는

단호한 말씀입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부디 자신을 속이지 마시고

성령으로 거듭나 구원받는 성도님이 되십시오.

성령님의 조명을 받으면 나의 죄와 추함이 적나라하게 보이므로

나를 나타내는 것 자체가 아주 추하게 느껴집니다.

나타내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자꾸 숨고 싶어집니다.

 

머리가 터질 정도의 지식? 다 소용없습니다.

진정으로 거듭나면

성경이 다르게 보입니다.

성경지식이 지혜로 바뀌며,

남에게 적용하며, 판단하고, 정죄하고, 훈계하는 데 써먹던 성경구절이

나 자신에게 적용하여 애통해하며, 눈물이 저절로 흐릅니다.

나 같은 더러운 죄인을 왜 주님께서 만지셨을까 염치가 없어서

고개도 들지 못합니다.

한없이 감사함과 기쁨이 넘쳐나고 진정한 영적 자유함이 몰려옵니다,

예전에는 이웃의 불행을 봐도 내일이 아니니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이후부터는 이웃의 어려움이 눈에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남의 아픔을 보면 그 아픔이 나에게 고스란히 느껴져서

나를 위한 기도보다 남을 위한 기도에 더 시간을 씁니다.

신기할 정도로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의식하지도 않았는데 

나 자신도 모르게 나타남이 발견됩니다.

특별한 주님의 명이 없다면

나는 이렇게 거듭났다고 주변에 떠들지도 않습니다.

그저 주님께 감사하며,

천국을 바라보며

주님이 오실 날만 학수고대합니다.

 

사랑하는 기독카페 회원 여러분~

간절히 부탁합니다.

자신이 성경의 기준대로 성령으로 거듭났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절대 천국구경을 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건 덕담이 아닙니다.

내 생명이 사느냐 죽느냐의 사생결단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진정한 거듭남 없는 교인생활에서 벗어나십시오.

그리고 정결한 맘으로

주님께 떼를 쓰십시오.

성령님을 달라고

구하고, 두드리고, 찾으십시오.

그리하면 주님은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의 약속은 백 퍼센트 정확한 것입니다.

부디 성령을 받고 거듭나시길 애타는 마음으로 권면합니다.

 

이 세상에 살 때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이 잘 돼야(성령을 받고 거듭나야)

모든 범사가 빛과 소금 같은 순종의 열매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이 성령님의 간섭 없이 마귀에게 노출되면

범사에 마귀가 기뻐하는 열매(분쟁, 시기, 타락, 분냄, 의심, 정죄, 판단, 다툼, 비난)가

열리는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절대로 하늘나라를 볼 수 없다고,,,,,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누가복음 11장 9절~13절)

 

 

 

랑별파파(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출처 :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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