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라목사님 바른영성훈련

나를 허물어뜨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육체와 영성2 셋째주 2(서사라목사)

하늘이슬 2017. 5. 16. 18:07

나를 허물어뜨리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육체와 영성2 셋째주 2

 

생명의 삶을 산다고 하는 것은 내안에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주님이 나를 대신하여 사는 삶을 생명의 삶이라고 말한다.

 

첫 번째 특징은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신앙이 좋다는 사람들이 옳고 그름에 빠져서 신앙이 더 이상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옳고 그름에 빠지니까 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오히려 옳고 그름을 따지기 때문에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는 생명단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현상들을 보더라는 것이다.

내가 옳고 그름에 빠지면 내 안에서 다툼이 일어난다.

이것을 발견하면 옳고 그름을 빨리 내려놓고 빨리 하나님의 마음으로 바꾸어라

옳고 그름 속에 빠져있으면 관계 속에서 늘 다툼이 있게 된다.

고전3:1-3

왜 생명의 삶을 못사는가?
난 옳고 넌 그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비를 원하지 제사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워치만니 쓴 책들

생명이 무엇인가?
두형제가 있었는데 높은 산위에 논이 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을 받기 힘들었다.

아래쪽에서 물을 떠서 논에다 물을 대야했다.

그 이틑날 가보니 아래 논의 주인이 물을 빼서 자기논에는 물이 없었다.

그런데도 싸우지 않고 다시 하루종일 물을 퍼서 물을 댔다.

또 그 다음날 가보니 아래 논 주인이 물을 빼서 자기 논에 댔다.

1주일을 그랬다.

신령한 사람을 찾아가서 조언을 구했다.

신령한 자가 조언하기를 우리가 생각하기에 저 사람은 틀렸고 우리는 옳고 이것을 벗어나서

더 좋은 일을 한번 해 보십시오,. 한걸을 더 나아가서 좋은 일을 해 보시라고 조언을 들었다.

이렇게 조언을 듣고 나서 먼저 아래 논의 사람의 논에 물을 대고 자기 논에 물을 댔다.

며칠 뒤에 아래논의 주인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 예수를 믿는 것이 바로 그런 일이라면 나도 한번 믿어 보겠다라고 했다.

자비의 마음 불쌍한 마음, 이것이 생명의 삶이라는 것이다.

내가 부당한 일을 당한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자신을 살피고 우리는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기회라는 것을 느낄 수 있기를, 행할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45:39

생명을 사리는 길이라는 것은 오른 쪽 뺨을 맞으면 왼편 빰을 돌려대는 것이다.

왼쪽 뺨을 맞으면 오른 뺨도 돌려댈 수 있는 그런 목표를 갖고 갈 수 있길 축원한다.

두 번째 특징은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산다.

그럼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내 맘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물어서 행동해라.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영으로 인도하는 받는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

철저히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사는 것이 생명의 삶의 특징인 것이다.

 

하나님의 의견을 묻지 않고는 행하니 않는 삶, 하나님의 뜻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삶, 그런 삶을 살아야할 뿐더러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성령의 인도함을 철저히 받고 사는 삶이 무엇인가?

두 번째는 의미는 내 안에 내가 사는게 아니라 내 안에 성령이 나를 주장하여 사는 삶이다.

여러분 우리는 이걸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예배를 보거나 기도를 많이 하면 성령이 나를 끌고 간다.

은혜가 임하여 은혜가 나를 끌고 간다.

근데 이걸 내적충만이라고 애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걸 은사적인 면 성령이 외부에서 임하여 나를 끌고 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내적충만은 내가 비워지고 그 안에 성령이 와서 사는 것이다. 좀 다르다.

성령이 나를 주장하는 삶이라고 하는 것은 내적 충만을 얘기하는 것이다.

영성훈련을 받으면서 자아를 처리하는 훈련을 받고 계속해서 나 자신을 주님께 내어드림을 말미암아 내가 내적 충만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성령이 충만히 임하여 나를 끌고 가는 삶은 외적 충만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외적 충만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이다.

내가 충만하지 아니하면 밧데리가 소모되면 없어지듯이 다시 충전해야 되듯이 물론 외적 충만도 있어야 능력있는 삶을 살지만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내 안이 늘 비워져서 성령이 날 주장하는 삶, 이 삶이 내적 충만이라는 것이다.

성령께서 내 안에 오셔서 나를 주장하는 삶, 이것이 내적 충만의 삶이다.

이 내적 충만의 삶을 살기 위해서 늘 자아를 파쇄하고 내가 비키고 내 안에 주님을 넣어서 사는 훈련을 주님이 나를 주장하게끔 성령이 나를 중장하여 나를 내어드리는 훈련, 내 몸을 내어드리고, 내 의지를 내어드리고, 내 감정을 내어드리고 나를 내어드리는 훈련을 하지 아니하면 나는 내적 충만의 삶을 살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성령께서 성령에 의하여 온전히 주장되어지는 삶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으면 내적충만의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이다.

날마다 나를 내려놓고 주님으로 훈련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5:18

이런 삶이 생명의 삶이더라는 것이다.

율법은 뭔가? 저거 하지 않으면 죄이다. 그래서 안하는 것이다.

죄가 뭔지를 알게 하고 정죄를 한다.

성령이 인도하시는 바는 그것이 죄기 때문에 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안하고,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함이다.

내 안에 성령께서 원하시기 때문에 하는 것이고, 내안에 성령께서 원하지 않기 때문에 안하는 것이지 그게 죄기 때문에 안 하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율법은 옳고 그름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걸 넘어서서 하나님이 자비를 원하신다면 자비의 마음을 갖는 것. 이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라는 것이다.

생명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기를 다 내려놓지 않으면 불가능한 삶이 생명의 삶이다.

모세를 보면 모세를 하나님은 쓰시기 위해서 철저히 무너뜨리셨다.

자기 신뢰를 철저히 무너뜨리셨다.

자기절망의 상태에 가서야 하나님이 그를 움직여서 모세를 쓰기 시작하셨다.

그러니까 생명이라는 것은 내가 철저히 무너지지 않으면 결코 갈 수 없는 것이, 결코 도달 할 수 없는 것이 생명단계라는 것이다.

내가 무너지지 아니하면, 나를 내려놓지 아니하면.

그래서 내가 무너지는 그때가 내가 철저하게 내려지는 그때가 하나님이 시작하는 단계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 안에서 시작하는 단계이다.

내가 나를 내려놓으니까 그때부터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시더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나에게서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상태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나는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 이런 상태로 우리를 인도하신 이유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이 나를 대신해서 살지 아니하면 안되게끔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무엇가지고 역사하는가? 환경을 통해서 문제와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살 소망까지 끊어지게 하셔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인정하게 하셔서 그때부터 주님이 주시는 새힘으로 살게 하시는 것이다. 이것이 생명단계이다.

그래서 자기 절망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생명의 삶이 뭔지 모른다는 것이다.

자기 절망...

내가 철저히 무너지고 있다, 되는게 아무것도 없다 내 고집대로 되는게 아무것도 없다면 기뻐하십시오.

내가 철저히 무너지는 그때가 주님이 원하시는 시간인 것이다.

내가 되는게 아무것도 없다면 더 무너지게 더 깨뜨려지게 하나님 하십시오.

더 밟아주시고 더 깨뜨려 주시고 주님이 인도하는 대로 가겠습니다.

사도바울 살 소망이 끊어지기 까지 했다.

우리도 살 소망이 끊어져봐야 그때부터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 나를 양보해 드린다.

그때부터 생명의 삶이 시작된다.

 

세 번째 특징은 5가지 신분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5가지 신분이 있는데 자녀 왕 제사장 성전 신부의 신분으로 살아가 시작한다.

자녀로서 누림이 있지만 자녀로서 의무가 있다.

내가 자녀로서 살려면 자녀로서 특권이 있다.

영생을 허락받았고 그분을 아버지라 부르고, 아버지가 다 공급하시고요.

자녀의 의무가 무엇인가요?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할수록 핍박이 오게 되어 있다. 그런 고난, 주를 위한 고난.

주를 위한 고난이 없는 사람은 안된다는 것이다.

내 삶속에 생명단계 특징은 자녀로서 누리는 특권도 있지만 내가 해야 될 의무까지 주를 위한 고난까지 내가 받고 있어야 한다.

왕으로서의 신분.

왕은 다스리는 자이다.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살아야 내가 환경을 다스리고 나를 다스리고 환경을 다스고 사단을 다스린다.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모시고 사는 자 이게 실제가 되어야 한다.

제사장으로서의 삶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고하고 제사지내주고 자신도 죄를 회개하는 삶. 날마다 자신을 번제로 드리는 삶, 자신을 산 제사로 드리는 삶.

성전의 삶 내 안에 거룩한 성전이 이루어져서 심령성전이 이루어져서 주님이 내안에 날마다 동거 동락하는 삶.

신부로서의 삶 옳은 행실로 세마포 입은 신부로서의 삶을 살게 실제의 삶을 살게되는 그런 단계이다.

주님 오시는 날이 얼마 안 남았다.

마지막 축구경기에서 끝나고 심판이 호로라기 불기 직전이라고 한다.

믿어지면 참 좋다.
믿어지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까 생각하며 살기 때문이다.

멀게 느껴지는 사람은 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가서 준비하지 뭐 이런 생각을 한다. 그러면 본인에게 손해이다.

사도바울이 삼층천에 갔다 왔다. 요즘도 갔다 온 사람이 많다.

아무 이름이 없는 자 , 천하고 멸시받는 자를 택하여 지혜로운 사람을 부끄럽게 하신다.

나의 진짜 삶은 여기서 삶이 아니로 저기에서의 삶이다.

여기에서는 시험하는 단계이다. 내 말을 지키나 안지키나 보시는 것이다.

깨어 있는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영생을 생각하고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늘 바라보는 것이 영생이 되어야 한다.

땅에 것들을 생각지 말라 하늘의 것들을 생각하라는 것이다.

땅에 것들을 밟고 살지만 땅을 밟고 살지만 하늘 생각하면 살아야 한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나라에 속했다고 했잖아요.

실질적인 우리의 삶은 저기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가 소망을 하늘에 두고 살면 이 땅에서의 일어나는 조그만 일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생명단계 세번째 특징은 5가지 신분으로 실제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네번째 특징은 성버나드의 4가지 사랑단계 중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를 사랑하는 단계인데,

첫째는 자기를 위하여 자기를 사랑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교회에 와서도 진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생활을 해요.

예수는 믿어도 아직 뭐가 뭔지를 잘 모른다.

이것이 자기를 위하여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이 영성훈련에서 본능단계이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사는 거에요.

예수는 믿기는 믿는데 하나님이 계신 것은 깨달아지는데 밖에서 사는 것은 늘 술먹고 담배먹고...그러죠.

저도 이런 시기를 거쳤어요.

마당 뜰만 밟는 그리스도인. 교회 뜰만 밟아요.

실제가 된게 하난도 없어요.

인제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그 다음 단계부터

자기를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이다.

이게 영성훈련에서보면 윤리단게이다.

여기 단계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푹 빠져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흠뻑 받고 주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리라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이다.

베드로가 성령이 임하기전에는 이 단계에 있었어요.

내가 주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그리고 나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되었지요.

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사랑하는 하나님을 믿어서 내가 한자리 해 볼까? 주를 따라다니면서 저사람이 세상의 왕으로 앉을 때 내가 한자리 해 볼까? 하는 그 마음. 그게 자기를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 이 단계는 자기를 위해서 하나님을 믿어요.

내가 축복받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어요.

나의 모든 것이 잘되기 위해서, 사업도 잘되게 해 주시고 자녀들도 잘되게 해 주시고 우리 남편도 잘되게 해 주시고 다 잘되기 위해서 믿는 단계가 이 단계이다.

이 단계에만 머물러 있으면 하늘나라에서 상이 없어요.

왜냐 다 자기를 위해서 살았기 때문이에요.

아무리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주를 위해서 죽겠나이다. 주의 종들도 다 이런 단계에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늘나라에 상이 없어요.

세 번째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이다.

이것은 진리단계에 들어가는 자이다.

이대부터는 하나님의 뜻만을 행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원해요.

나를 위해서 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사는 존재로 바꿔지게 되요.

이 단계만 가도 참 많이 간거에요.

나의 존재이유가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고, 기도도 나를 위해서 기도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기도해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영혼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내가 잘되기 위해서 기도하는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보면 거룩한 모습이 있어요.

막 자녀들도 가장 좋은 대학교 보내려고 애스지도 않아요.

왜 하나님의 뜻이 아닐 수도 있는데 오히려 거기가면 더 안될 수도 있는데, 오히려 신앙적으로 잘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들이 가장 놓을 수 없는 것이 자녀들 아니에요?

그래서 자녀얘기를 하는거에요.

여러분들은 자녀들이 무조건 잘되길 원해요.

그런데 그 잘되는 것이 세상적으로 잘되는 것이거든요.

근데 진리단계,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에 있는 사람은 내 자녀가 세상적으로 잘되기 보다는 하나님 나라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잘되기를 진짜 원하는 마음이 생겨야 되요.

그게 진짜 진리단계에 있는 사람이에요.

남편을 바라보는 마음도 마찬가지에요.

남편이 세상적으로 잘되길 원하고, 남편이 돈 잘 벌고 세상적으로 잘되길 원하는 마음이 더 많다 그러면 그것은 진리단계가 아니다.

진리단계는 뭐에요?

하나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이거에요.

그리고 하나님이 하시는 것을 봐야 해요.

그리고 하나님 나라안에 더 득이 되는 자로 만들어 주시옵소서.

이 기도가 진짜 기도지, 돈 많이 벌어오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그로고 보니까 나는 우리 남편에게 돈 많이 벌어오라고 기도한적이 별로 없네. 참 다행이죠.

여러분 오히려 기도는 살면서 내가 보대끼더라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기도는 진리적인 기도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

여러분이 여러분 자녀에 대한 기도도 마찬가지이다.

무조건 잘되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안 나와야 한다. 이 진리단계에서는.

하나님 뜻대로 하시옵소서. 내 뜻은 이건데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이렇게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다가 귀결을 시켜야 한다.

처음에 내 뜻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 굴복되어진 자는 그래도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따라가겠습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를 사랑하는 단계이다. 이게 생명단계이다.

사도바울이 이런 얘기를 했어요,

나는 지금이라도 떠나서

주와 함께 사실 사는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다.

그 말이 이해가 가죠?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주와 함께 거하는 것인데 내가 이 세상에 있는 이유는 예수그리스도를 너희에게 유익하게 하려고 예수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주기 위하여.

사도바울이 뭐라고 했어요?

내가 너희를 위해서 너희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지기 까지 내가 해산하는 수고를 내가 다시 한다 그러잖아요. 그러니까 그가 오로지 존재하는 이유가 주를 위하여이다.

이게 뭐냐면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단계를 다시 한번 표현을 하자면 이 단계는 생명의 단계인데 오직 자기 자신을

주님께만 내어드리고 싶은 단계이다.

그러니까 신랑과 신부의 관계속에서 오직 내 몸을 드리는 것은 신랑에게만, 신부의 모습으로 오직 신랑에게만 내 몸을 드리고 싶은 그런 단계가 생명의 단계이다.

그러니까 이런 단계는 뭐겠습니까?

율법이 나를 주장하는 단계도 아니고, 옳고 그름에 빠진 단계도 아니고 내 안에 성령이 오직 주님만이 나를 주장하는 삶, 이런 삶이 되겠지요.

이게 생명단계 삶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네 번째 특징은 이런 네가지 사랑단계속에서 생명단계의 삶은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를 사랑하는 단계라고 했어요.

 

그다음 다섯 번째 특징은요, 하나님의 통로로 쓰임받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통로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자기 자랑을 내려놓는다.

여러분 하나님의 통로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첫째는 자기 자랑을 멈추어야 한다.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통로로 쓰임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가야 하는데 자기가 나가거든요.

하나님의 통로로 쓰임받는 사람을 자기 자랑을 내려놔야 한다.

두 번째는 자기 사랑도 내려놔야 한다.

세 번째는 자신을 신뢰하지 않아야 한다.

근데 참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물론 우리가 온전해서 하나님 앞에 사용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직도 덜된 우리들을 사용하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를 봐서는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통로가 되기 위해서는 이것도 다 내려놔야 한다.

여러분 우리가 참 조심해야 할 것이 자기 자랑이에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여러분도 마찬가지에요.

이것이 이생의 자랑이거든요.

이생의 자랑이 너희 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곳에 있지 아니하다고 그랬어요.

저도 어느새 보면 다 없어진 것 같은 어느새 보면 나를 자랑하려고 하는 마음이 약간 올라온다는 느낌이 올라올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어떻게해야겠어요? 밟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제어하지 못하고 입만 벌리면 자기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조심해야 한다 말입니다. 자기를 위해서.

간증도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때가 있어요.

막 간증을 그냥 하라 소리도 안했는데 막 얘기하는 사람들 물론 그 사람들이 나쁘다 이런 얘기가 아니에요. 아직 뭐가 뭔지 몰라서 그러는데 우리 스스로는 그러지 않기를.

그럼으로써 내가 넘어지고 있는 거에요.

다른 사람들이 듣고 어떻고를 떠나서 내가 넘어지고 있는 거에요. 하나님 앞에.

그래서 여러분 내 안에서 자기 자랑이 올라오려고 그런다 그러면 절제할 수 있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 나를 위해서 얻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고 나를 위해서 잃고자 하는 자는 오히려 얻는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여러분 자기 사랑도 내려놓고 나를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건데 우리가 할 수 있다라는 자체부터가 아니라는 사실.

우리는 단지 나를 주님앞에 내어드리기만 하면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일을 하시는 거지.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거지 내가 하는 것은 인간의 일로 끝나고 말더라는 것입니다.

그건 하나님의 일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통로의 개념은 뭐냐? 나를 하나님앞에 내어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게끔 나를 내어드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이말이 무슨 말이냐?

나를 내어드린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 간단히 예를 들어서 늘 우리가 부딪히는 문제니까 예를 들어서 내가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는데 잘 안되잖아요.

그러면 그 몸을 주님앞에 내어드리는 것이죠.

내가 내어드리기만 하면 주님이 나를 통해서 주님의 사랑으로 주님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어드린다는 의미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면 되요? 안되요?

안되요.

? 자기 유익을 따지기 때문에,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에 안되요.

그럼 나를 내어드린다는 것은 무슨 얘기입니까?

주님한테 나를 내어드린다는 것은 통로가 된다는 것은 주님이 나를 통해서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끔 나를 내어드리는 거에요.

그 얘기는 주님이 원하는대로 그 사람을 사랑해 주는 거에요.

이해가 가요? 안기요?

이해가 간 사람은 간대로 이해가 안가는 사람은 안가는대로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참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생명의 단계가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하면 생명의 삶을 살 수 있는지 생명의 삶을 사는 자의 특징이 어떻게 나타나는 지에 대하여 우리는 미리 배웠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가야할 길이 이 길이므로 결국 하나님께서 이 길을 가시기 위하여 우리의 삶에 모든 문제와 사건을 통하여 우리를 깨뜨리시고 허물어뜨리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하고 계시는 그 일들에 대하여 우리는 두손 들고 항복되어지길 원합니다.

그리하여 깨어지고 허물어뜨려져서 정말 내 안에 내가 사는게 아니라 예수그리스도가 사는 삶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정망 그런 삶을 살아드려서 인생을 마칠 때쯤에 우리 주님 오시는 그날에 칭찬받는 우리 모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주실 줄 믿사옵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님에게 그 사람을 사랑하도록 나를 내어드리면 주님은 그 사람을 주님의 방법대로 사랑하는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