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셋째 날)
창2:20-3:21(To), 막1:35-45(신약)
베레쉬트 말씀이 시작되었다. 베레쉬트 말씀은 토라 전체에서 가장 중요하다. 베레쉬트 말씀이 있느냐는 마치 씨앗과도 같다. 거기서 열매가 나오느냐 안 나오느냐는 씨앗을 심었느냐, 안 심었느냐로 결정된다. 그래서 베레쉬트 말씀이 시작되지 않으면 이것은 해결될 수 없다. 베레쉬트 말씀이 시작되야만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베레쉬트 말씀이 없다면, 아무런 씨앗이 심겨지지 않은 것이기에, 우리는 이것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베레쉬트 말씀은 제일 길다. 그래서 제일 중요한 창세기 1-2장 포션이 이미 다 지나갔다. 늘 매년 베레쉬트 말씀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가가 제일 큰 고민이다. 해야할 것은 많은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다. 이번 한 주간에 베레쉬트 말씀을 잘 정리해서, 씨앗이 잘 뿌려지는 시간들이 되길 바란다.
창세기 1장은 또 베레쉬트 말씀 중에서 제일 중요한 말씀이다. 창세기 1장이 온전히 해석되지 않는다고하면, 성경 전체를 해석할 길이 없다. 오늘날 인류의 가장 큰 오해가 있는 말씀이 창세기 1장이다. 왜 창세기 1장이 인류에게 가장 큰 오해가 있냐면, 사람이 창세기 1장을 물질적 세계관으로 해석하면 성경 전체를 물질주의적 세계관으로 해석하게 된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이냐? 물질에 대한 창조의 이야기이냐, 아니냐가 가장 중요한 이야기이다.
성경 전체는 사실 물질을 다루지 않는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성경 전체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이고, 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성경 전체는 참 희한하게, 물질과 시간과 공간과 인간의 활동에 대해서 다루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이것을 초월한 이야기를 다룬다
하나님이 계속해서 심판날, 그날, 하나님 나라를 이야기할 때, 너희가 행하대로 받으리라. 너희가 행한대로 갚아주리라고 하면서, 계속 말씀하시는 것이 다 시간을 초월하는 이야기이다. 왜 지나간 이야기를 나중에 심판하시겠다고 하실까? 하나님에게서는 시간이 지나간다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네가 어떤 무익한 말을 했던지 심판날에 심판받으리라. 왜 지나간 날을 가지고 말씀하실까?
하나님은 사실 과거 - 현재 - 미래가 없다. 다 시간, 공간, 인간의 활동을 초월하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성경을 영에 관한 책이라고 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사실 수많은 시간을 진화론과의 전쟁을 벌여왔다. 그것은 사실은 답이 나오지 않는 이야기이다. 애초에 하나님은 물질을 어떻게 창조했냐를 설명할 의도가 없으셨다. 물질을 어떻게 창조했는가를 설명하시려면, 이렇게 설명하시면 안된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고 하시면 안된다. 빛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생겨날 수 있으며, 이런 것들을 설명하셔야지, 전혀 이런 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빛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이 빛은 물질적 빛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을 어떻게 해석하냐는 굉장히 다른 문제인 것이다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cf ) 이 세상에서 머리가 제일 좋은 민족을 유대인이라고 한다. 왜 유대인들은 머리가 좋을까? 제가 봐도 유대인들은 탁월한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죽어라고 공부하는데 못 따라간다. 같이 공부하는 애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이, 유대인들은 참 이상하다는 것이다. 해야 할 공부양은 많은데, 할거 다 하고, 놀거 다 놀고, 그러곤 시험은 잘 본다는 것이다. 미스테리다. 이스라엘에 유대인 다이아몬드 회사에 다니는 선교사님이 계신다. 자기는 정말 성실 그 자체이다. 아침에 일찍 나가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데, 그래도 실적이 별로 안 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노는 것 같은데, 실적 낼 때가 되면 자기보다 실적을 훨씬 많이 낸다. 유대인들은 왜 이렇게 머리가 좋을까? 우리도 유대인처럼 머리가 좋아지게 되기를 축복한다.
그것은 IQ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IQ로 치면 우리나라도 유대인과 필적할 것이다. 유대인들이 왜 이렇게 머리가 좋냐? 베레쉬트, 인간의 시작, 태초라는 것 자체가 머리가 들어있다.
רֹאשׁ 로쉬 : 머리
= 머리 안에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이게 모든 것의 시작점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인간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의식이 중요하다. 인간이 어떤 의식을 가지고 있느냐? 사람들은 Reality라고 할 때 물질을 실제로 놓는다. 그러나 물질이 실제가 아닌 것을 성경은 이야기한다. 그래서 성경이 논란거리인 것이다. 성경은 세상과 다른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물질을 실제로 여긴다. Reality라고 할 때, 물질이 있어야 실제라고 한다. 그런데 성경은 물질을 실제라고 하지 않고, 로쉬를 실제라고 한다. 머리를 실제라고 한다. 인간이 가지는 의식이 실제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이 있는 세상을 살아가지 않는다. 우리는 이 지구라고 하는 물질적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간다. 나의 공간, 시간, 물질이 나의 세상인 줄 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 세상은 다 이 공간 속에서 여러분들이 어떤 의식을 가지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들이 결정되어진다. 그래서 실제라고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어떤 의식을 가졌느냐가 실제이다.
아무리 좋은 공간에 갖다놔도 소용이 없다. 아무리 좋은 사람을 만나게해도 소용이 없고, 어떤 의식을 가졌느냐가 실제라는 것이다. 이것이 베레쉬트에서 로쉬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식을 가져야하는가? 이것을 성경은 이야기하는 것이다. 만약에 사람이 자기 중심적인 의식을 가지게되면 망하게 되어있다. 사람이 어떤 의식을 가져야하는가? 이 로쉬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람이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면, 이 로쉬를 가져야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떤 의식을 가져야하는가?
의식은 질서를 가지고 있다. 아무렇게나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질서 가운데서 의식을 해야한다. 그래서 모든 의식은 질서를 이루고있다. 모든 학문도 질서를 이루고있다. 의식이 질서가 없으면 성립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질서의 꼭대기에 있는 것을 또한 머리라고 한다. 그리고 으뜸이라고 한다. First one, 장자라고도 한다. 이 꼭대기에 있는 모든 의식을 주관하는 그분을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되면, 모든 의식을 주관하는 의식을 얻게된다
- 이것을 아들의 나라라고도 한다
골1: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고 한다. 왜 주님을 머리라고 하는가? 그분이 베레쉬트, 창조이고, 그분에게서 시작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이 근본이다. 이게 레쉬트라고 했다. Beginning이다. 근본이시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 장자이다.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다. 그분이 으뜸이다.
그래서 베레쉬트는 다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래서 첫째 날~여섯째 날,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
인간이 내가 어떻게 의식하느냐에 따라서 모든 것이 달라진다. 창세기 1장에서 사람은 여섯째 날에 창조가 되어진다. 그런데 창세기 2장에 가보면 희한하다. 여섯째 날에 사람이 창조되었으면, 이미 산천초목, 풀, 나무가 다 있어야한다. 이것이 다 창조가 된 다음에 사람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창세기 2장에 가면 초목이 없었고, 밭에 채소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분명히 밭에 채소가 났고, 나무가 났고, 여섯째 날에 사람이 창조되었는데 말이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사람이 만들어진다
창세기 1장의 창조와 2장의 창조가 다르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서 해석하지 못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나무, 초목, 이런 것들은 사실 물질적인 것이 실제가 아니다. 사람이 생겨나고, 사람의 머리가 생겨나고, 사람의 의식이 생겨나야지 그런 것들이 의미가 있어진다.
Ex ) 여러분들이 아기로 태어났으면, 아마존 정글? 이런 것들이 여러분에게 있는 것일까? 없는 것이다. 아기에게는 그런 것들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의식이 생겨나고나면 그런 것들이 의미가 있어진다. 그런 것들이 그 사람의 세상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의식이 자기 중심적인 의식이 되어버린다. 자기 세상을 만들어버린다. 이것을 교활하다고 한다. 이것이 뱀이라고 한다.
עֵירֹם 에이롬 : 교활하다
- 교활한 뱀이 나타났다고 하는 것이다.
창3: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에이롬이라는 단어는 ער 이르, 아르라는 단어에서 나왔다. 여기서 정말 많은 단어가 나온다. 거꾸로 하면 רע 라아, 악이다. 뱀이 악한 것이다. 그런데 또 아라요트라고 하면 벌거벗음, 음행이다. 다 여기서 나온다. 악, 벌거벗음, 음행이다. 그래서 마지막 때 짐승을 이야기하고, 용 이야기 할 때, 땅의 왕들을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게하고, 마지막 때는 다 음행에 대한 문제이다. 노아의 홍수도 불법적인 성관계 때문에 일어났다. 다 이 교활함 때문에 일어났다. 도대체 교활함의 정체가 무엇이냐?
עִיר 이르 : 도시, 성
- 도시에서 제일 많은 것이 음행이다. 도시는 음행을 하기 위해서 불야성을 이룬다.
그렇지만 이것이 또 이웃이라는 뜻이 되고, 목자라는 뜻이 되고, 여기서 우리 주님이 나온다. 그래서 이쪽에서는 우리 주님이 놋뱀이 되신다. 주님이 뱀인 이유를 아셔야한다. 뱀은 악한 영역에 있어서는 사탄이 된다. 그런데 이웃과 목자에서는 놋뱀이 되신다. 그런데 벌거벗음, 교활함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아담이 어딨는지 몰랐을까? 참 재밌는 구절이다. 전지전능하신 분이 아담이 어딨는지 몰라서 찾는게 아니지 않겠는가? 이 아예카, 네가 어딨느냐라는 것은 너는 지금 무슨 적용을 하고 있느냐? 너는 지금 뭐하고 있느냐는 소리이다. 네가 지금 어딨느냐? 너의 위치가 어딨느냐라는 소리는, 너 지금 뭐하고 있는가? 너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를 아느냐? 이 소리이다. Where are you? 너는 지금 어디 있는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느냐? 네 상태가 어떤지 아느냐? 이 소리이다. 그 때 아담의 소리가 이것이다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다고 한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한 이유가 뭐냐?
וַיֹּאמֶר אֶת־קֹלְךָ שָׁמַעְתִּי בַּגָּן 바요메르 에트 쿨카 샤마티 바간 :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들었다
וָאִירָ֛א 바이라 : 두려워했다
כִּי 키 : 왜냐하면
עֵירֹם אָנֹכִי 에이롬 아노키 : 내가 벌거벗었기 때문이다
עֵירֹם 에이롬 : 교활한
- 사탄이 들짐승 중에서 교활한 짐승이이다. 그런데 지금 그 에이롬은 아담 자신이 쓰고있다. 아담이 뭐가 되었다는 소리인가?
주님아 아담아 네가 지금 어디 있느냐?란 소리는, 아담이 뱀의 짓을 하고 있다는 소리이다.
נָחָשׁ 나하쉬 : 뱀
= 감각, 오감으로 살아가는 것
아담이 지금 뱀의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물질로 살아가는게 아니라, 의식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가끔 보면 그런 사람이 있다. 저 사람은 문제가 뭐야? 뭐가 부족한데? 부족한게 아무것도 없는데 왜 저러는데?
cf ) 옛날에 우리 아내가 신혼 때 초보 선교사로 나가서 상당히 힘들어했다. 그런데 우리 아내 대학교 동창 선교부에 왔더니, 다 선배님들이 어머니뻘이다. 우리 아내 태어나기도 전에 대학을 다니신 분들이다. 어머니뻘이고, 손녀뻘이다. 그래도 후배 선교사니까 얼마나 이쁘겠는가? 손녀뻘되고 자식뻘되는 후배가 선교사로 간다니까 얼마나 이쁘고 그랬는가 모르는데, 이분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안 믿는 남편, 시어머니 밑에서 정말 드라마에서 안 나오는 이야기를 하더라. 애 낳고 바로 이후에, 그 추운 옛날 겨울에 물을 짜서 대청마루를 닦았다. 심지어 피 흘리면서 닦고, 뭐 이런 세상이 다 있는가? 그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려고 하고,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안 믿는 남편 믿에서 신앙생활하느라 고생고생을 했다. 그 선배들이 아내에게 하는 소리가, 남편이 선교사라는거 하나만으로 얼마나 행복한지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우리 아내에게는 안 들어온다. 도대체 부족한게 뭐냐? 왜 그러냐? 따지고보면 우리는 정말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게 안되는 것이다. 왜 안되느냐?
인간은 의식으로 살아간다. 뭐가 있다고해서 되는게 아니다. 자식들에게, 내가 너한테 안해준게 뭐가 있느냐? 내가 그렇게 다 해줬는데? 그게 중요한가? 안 중요하다. 부모가 만약에 내가 해준 물질을 들고 자식에게 나간다면 큰코 다친다. 엄마가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어? 물론 밥 해주고, 해준게 많다. 그러나 인간은 그게 안 중요하다. 어떤 의식을 가지느냐가 그 인간의 삶을 형성한다
그런데 인간이 이 의식을 가지게되는데는 두 가지의 세계가 있다.
먼저 오감으로 의식과 실제를 형성하는 세계가 있다. 여기서 왕국을 형성한다. 그래서 인간의 오감을 대표하는 것을 눈, 보는 것이라고 한다.
영의 세계에서도 눈이 중요하다. 이것을 지혜라고 한다. 여기에 따라서 세상이 생겨난다. 그래서 창3장에서 보암직하고라는 것은 눈, 오감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뱀이 되어버린다
나하쉬는 감각, 오감으로 산다. 오감으로 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오감이라고 하는 것은 자아, 자기 자신이 있다. 자기 자신이 다 받아들인다. 이것이 오감의 시스템이다. 자기 자신의 욕구가 있다. 오감은 다른 사람의 욕구를 알지 못한다.
- 내가 짠 것을 먹었다면, 내가 짠 것이다. 오감은 전형적인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오감한테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 고통이 있다. 누가 고통받으면 안되는가? 내가 고통받으면 안된다. 모든 것을 나로 해석한다
에이롬, 인간이 벌거벗었다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교활하다고 하는 것은 다 자기로 살아가는 것이다. 문제가 나한테 어떠냐이다. 그러면, 항상 문제는 바깥에 있다. 이 오감으로 살아가는 사람한테 있어서 문제는 항상 바깥의 물질이다. 바깥에 존재한다. 이슈, 트러블은 항상 바깥의 것들 때문에 그렇다.
Ex ) 내가 어떤 것이 너무 짜다. 그러면 뭐가 나를 너무 짜게 만든 것인가? 소금이? 또 에*더가 너무 소금을 많이 넣었다. 뭐가 문제인가? 에*더가 문제이다. 소금을 너무 많이 넣는 저 인간이다. 결혼해서 제일 큰 문제가, 부인이 음식을 내 입에 안 맞게 만든다. 정말 큰 문제이다. 저는 다행이 결혼했는데 아내가 밥도 못한다. 그러니 오감이 전혀 기대를 안하고, 뭐 하나만 해도 황송무지하다.
오감이라는 것이 우리를 얼마나 자기중심적이 되게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모든 문제는 다 바깥, 외부에 있다. 그래서 창3장에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물어보신다. 어찌된 일이냐? 네가 어쩌다가 이렇게 교활해지고 오감으로 살게 되었느냐? 대답은 뻔하다. 문제는 하와가 먹게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또 하와에게 주님이 물어보신다. 하와는 또 뱀이 먹게했다는 것이다. 항상 문제가 밖에 있다고 한다. 이것을 벌거벗었다고 한다. 이것을 교활하다고 한다. 이것을 뱀 짓 한다고 한다. 사탄 짓 한다고 한다.
그런데 온 인류가 사탄 짓 하고 있다. 정치권을 보더라도, 모든 경제도, 온 인류는 지구의 위기가 온 이유를 알지 못한다. 자기에게 위기가 닥친 것을 알지 못한다. 자기에게 어떤 문제가 닥쳤을 때, 밖에서 문제를 찾아서 해결하려고 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네가 영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네가 영, 베레쉬트, 머리로, 그리스도로 살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너는 영으로 살지 않는다. 오감으로 살면 안된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 영을 여섯번째 감각이라고 한다. 오감 이외에 다른 문이 열려야한다는 것이다. 오감 이외에 다른 인식하는 채널이 생겨야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도, 만질 수도, 들어갈 수도 없다. 볼 수도 없다는 것이 무엇인가? 분명히 나는 오감이 있는데? 아니다. 다른 채널이 열려야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니들이 본다하면 못 본다고 하신다. 본다하면 죄인이라는 것이다. 오감으로 본다고 하면서, 이것을 다 내가 보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큰 죄인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람이 머리로 살기로 결정하면, 물질이 문제가 아니라 머리가 문제구나 하면서, 머리가 바뀌면 주님께서는 영을 주신다. 우리는 영으로 모든 것을 인식하고, 보게되고, 살게된다. 이것을 영에 속한 사람이라고 한다. 영에 속한 사람은 오감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창세기의 베레쉬트는 우리의 시작점을 알려준다. 네가 오감으로 살아갈 것이냐 아니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을 받아서 살아갈 것이다. 왜 성령을 받는 것이 중요한가? 성령은 우리가 영의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실제를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다.
오감은 물질만 인식한다. 물질을 인식해서 물질세계라는 것을 만들어낸다. 이것을 흑암의 세계라고 한다. 이 세계에서는 다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고, 어둠만 인식할 뿐이다. 그래서 주님은 창세기에서 이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신다.
בְּרֵאשִׁית 베레쉬트
유대인들은 이것을 이렇게 말한다.
רֵאשִׁית חָכְמָה 레쉬트 호크마 = יִרְאַת יְהוָה 이르야트 야훼.
- 베레쉬트를 이르야트랑 동일시하고. 호흐마, 지혜는 야훼도 동일시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로 나오셔서 우리에게 지혜가 되셨다고 한다.
베레쉬트라는 것은, 사람이 삶의 시작이 있으려면 야훼를 두려워함, 경외함이 있어야한다. 야훼를 경외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이냐? 사람이 생각 속에서 야훼를 경외함이 없으면, 사람은 어떠한 시작도 없게되고, 혼돈과 공허만이 있게된다. 왜냐? 사람이 생각 속에서 야훼를 경외함이 없으면 자기 멋대로 생각한다. 나는 하기 싫어!? 살기 싫어!? 저거 싫어!? 자기 멋대로 생각한다
경외함이라는 것은 야훼를 본다는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은 자기 멋대로 해서는 안된다. 머리라고 하는 것은, 머리의 머리가 있다. 세상의 모든 시스템은 머리가 있고, 머리에 머리, 머리가 있다(부장-이사-사장). 그래서 이 머리에 따라서 사람은 생각해야 한다. 자기 위에 머리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야훼를 경외한다는 것은 머리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시작이 있다는 것은 야훼의 머리에 따른 생각을 해야한다는 것을 알아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치 이 생각이 자기 생각인 것처럼 멋대로 한다.
제가 제자훈련을 시키다보면, 정말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렇다. 그냥 오감이 머리를 지배하기 때문에, 그냥 싫은 것이다. 오감이 나를 뒤집어놓는다. 그래서 한 번 뚜껑 열리면 마음대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내뱉지 않는가? 그게 주님을 경외함이 없는 것이다. 주님을 경외함이라는 것은 바로 시작이다. 함부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다른 말로 이야기하면 오감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나한테, 내가 느끼는대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을 주님을 경외한다고 한다. 사람이 주님을 경외하는데는 3가지의 단계가 있다.
1) 이 세상에서 벌 받을 것이 두려워서 주님을 경외하는 경우
첫 번째 단계는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재앙이 닥칠까봐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나한테 문제가 생길까봐, 이것이 첫 번째 단계이다. 이 때 주님을 경외하는 것을 해볼까한다. 마음대로 생각을 안 한다. 이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았다가 권선징악이라는 것에 의해서 문제가 생길까봐, 어떤 존재가 있는지 알아서 벌벌 떨면서 산다
사실 이것은 경외라고 하지 않는다. 경외로 가기 위한 낚싯밥정도 된다. 이 세상에서 살기 무서워서 경외를 배우기 시작한다. 참 유치한 방법인데, 주님은 이 방법을 쓰는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방법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경외의 경자도 모르는 것이다.
2) 저 세상에서 벌 받을 것이 두려워서 주님을 경외하는 경우
그러면 안된다. 그러면 지옥간다. 아니면 천국간다. 어린 아이들도 가끔 질문하는 것이, 아빠, 이렇게하면 지옥가!?이다. 우리는 저 세상의 존재를 알기에, 저 세상이 두렵기에 함부로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이것을 통해서 주님을 경외함을 배운다. 그런데 이것을 경외함이라고 하지 않고, 이것을 통해서 야훼를 경외하게 된다
진짜 경외함은 모든 세상을 통치하고 다스리는 분이 여호와라는 것을 보고 아는 것이다. 여호와를 아는 것이다.
יָרָא 야라 : 경외하다 = רָאָה 라아 : 보는 것
- 경외는 여호와를 보는 것이다
감각으로 살아가면서 거기서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은 끊임없이 나를 본다. 나를 중심으로 생각을 한다. 나에서 나오는 의식, 내가 오감으로 만들어내는 생각과 의식이 내 왕국을 만든다. 여기선 여호와를 경외할 수 없다. 자신이 신이다. 엘로힘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호와를 보지 않는다. 여호와는 내 왕국을 도와주는 자일 뿐이다
그런데 여호와를 경외한다고 하는 것은, 내 의식 속에서 나를 보지 않고, 오감으로 살지 않고, 여호와를 보는 것이다. 이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여러분들의 삶 속에 자기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위해서 사는 의식이 생겨나기를 축복한다
모든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의식은, 여호와를 위해서 살아가는 것만으로 실제를 만날 수 있다. 인간이 모든 것들을 의식할 때,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이냐, 여호와를 위한 것이냐, 이것만이 인간에게 있는 두 가지 종류의 의식이다. 내가 지금 하는 생각이 나를 위한 것이냐, 여호와를 위한 것이냐? 내가 지금 하는 결정이, 이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여호와를 위한 것이냐, 나를 위한 것이냐?
- 나를 위한 것을 뱀, 교활하다, 벌거벗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를 위한 삶은 계속해서 벌거벗고 음행하게 되어있다. 그것이 끊이질 않는다. 그러나 여호와를 위한 삶으로 갈 때 음행이 그치게된다. 더 이상 벌거벗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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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레쉬트 스토리텔링을 잘 하면 성경 전체가 열린다. 가장 신비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 베레쉬트이다. 그래서 창세기 중에서도 베레쉬트 포션을 이해하는 것은 모든 것의 시작점이다. 이게 되지 않으면 시작이 안되는 것이다. 실제가 뭐냐? 내가 뭐냐? 내가 도대체 누구냐? 인간이 도대체 무엇이고, 하나님이 도대체 무엇이냐? 인간의 감각이라는 것은 뭐냐? 의식, 세상은 뭐냐? 하늘과 땅은 도대체 뭐냐? 우리는 하늘을 다 물질로 생각한다. 물질로만 살아가니까 답이 안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를 물질의 창조로 여기는한 물질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물질 가지고 그렇게 싸우면서 사는 것이다. 그런데 물질은 실제가 아니다.
우리는 다 물질이 중요하다고 여기면서 살았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은 참 희한한 일이다. 모든 법칙을 다 초월해버린다.
- 주님이 희한하신 것이다. 다 팔고 오라고 한다. 물질이 이렇게 중요한데, 다 팔고 나를 따르라니 말이 되는 소리인가?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정말 말이 안되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다. 그것을 다 초월하는 이야기를 하신다
창세기 1장에서 일곱 날을 계속 이야기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왜 창세기 1장이 중요하냐면,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어졌다. 그러면 여호와를 보려면 누구를 보면 되는가? 나를 보면 된다. 나는 지금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어졌다. 그러니까 여호와를 보려면 나를 보면 된다. 이게 우리의 미스테리이다.
그래서 십계명에서의 첫째가 나는 야훼 너희 하나님이다. 야훼를 보려면 나를 보면 된다. 그런데 나를 보면 야훼가 보이는가, 안 보이는가? 이게 문제이다. 그래서 인간은 여호와를 따로 분리시킨 것이다.
여호와를 보려면 사실 나를 보면 되는데, 이 "나"를 감각으로 여기면 여호와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을 물질, 육신, 육이라고 한다. 나를 육으로 여기면 여호와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여호와는 영이시다. 여호와는 지혜와 지식이시다. 여호와는 영의 생각이다라고 한다. 나를 감각, 육으로 여기면, 인간이 자신을 감각, 육으로 여기고, 응애 하고 태어난 순간 내가 태어난 줄 알면, 인간은 절대로 나에게서 여호와를 못본다. 피조된 자가 어떻게 여호와의 속성을 지니는가? 그래서 종교를 지닌다. 나는 여호와를 못 본다
그런데 아하. 창세기에서 나는 여호와의 지혜와 지식이다. 1장 첫째 날에서 내가 빛을 보게되어있구나. 둘째 날에서 아하, 내가 영으로 살아가게 되어있구나, 셋째 날에 내가 부활로 살아가게 되어있구나, 넷째 날에 사랑과 진리라는 것이 내게 있고, 다섯째 날에 살아있는 정신, 혼이 있구나, 여섯째 날에 선을 행하며 살게 되어있구나, 이 여섯 가지가 여호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구나..! 아하, 내가 이런 존재구나, 나는 이렇게 빚어져가는 것이구나. 나는 육신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이게 사람의 모습이고, 이게 사람이구나
사람이 자신의 의식 속에서 빛, 영, 부활, 사랑과 진리, 살아있는 혼이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되면 이게 여호와의 모습이구나..! 사람은 자기 자신 속에서 이것을 보게 될 때 여호와를 경외하게 된다.
사람은 육으로 사는 한 절대로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다. 육신, 감각으로 사는 사람들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 봤는가? 아니다. 자기가 최고이다. 여호와를 경외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자기 속에서 여호와를 보는 순간, 여호와를 경외하고, 여호와께서 이것을 이루어가신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은 달라진다. 만약 창세기 1장을 물질적으로 해석해버린다면 인간은 가능성이 없다. 인간은 여호와를 볼 길이 없다. 또한 우리가 이웃을 보면서도 여호와를 봐야한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말씀이 이 작은 자에게 하신 말씀이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그것을 보는가? 볼 수가 없다. 그냥 육신의 정욕만이다. 인간은 거기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도, 다 잃어버리는 것이다
제자를 삼는다는 것은 창세기 1장으로 이 사람을 봐야한다.
- 이 사람은 첫째 날에 들어가야 하는구나, 이 사람을 엘로힘의 형상과 모양으로 보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 첫째 날의 빛이 비춰지면 둘째 날에 들어가겠구나. 그래서 영으로 살아가겠구나. 그러면 셋째 날에 들어가겠구나. 이제 부활 생명으로 살 차례구나.
이 사람 속에서 계속 야훼의 형상과 모양을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야훼의 모습이 나타나고, 야훼를 경외하게 되고, 그렇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를 야훼의 형상으로 봐야지, 내가 야훼의 모양이 되기 위해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간다. 그런데 나를 육신으로 보게되고, 감각 덩어리로 보게되면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신이 되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 기도
여러분들은 창세기에 베레쉬트를 전하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란 것을 아셔야한다. 온 열방에게 가서 가르쳐 지키게 해야할 것이, 이 창세기, 베레쉬트를 올바로 가르치지 않으면 사람들은 이 교활함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벗고, 음행한다. 뱀의 궤계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사탄의 사망과 흑암의 세력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주님, 나로 하여금 베레쉬트를 알게하사,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여 주십시요. 여호와를 보게하여 주십시요. 하나님 나에게 성령을 물 붓듯이 부으사, 감각으로 살지 않게하여 주십시요. 나로 살지 않게 하여 주십시요. 영으로 살게하여 주십시요.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물 붓듯이 부으사, 감각으로 살지 않고 영으로 살게하여 주소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영으로 살게하여 주십시요. 하나님으로 인식하게 하여 주십시요. 우리 이웃들을 여호와의 형상, 야훼의 형상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소서. 우리에게 모든 물질주의적 세계관을 떠나가게 하시고, 교활함을 떠나가게 하시고,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며 살게하여 주소서. 그런 삶이 시작되게 하소서
주님 감사합니다. 베레쉬트 바라 엘로힘, 이제 시작입니다 주님. 이제 여호와를 보게하여 주십시요. 하나님을 보게하여 주시옵소서.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우리가 감각으로 마음대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함 속에서 나를 여호와로 보게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베레쉬트의 복음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물질주의적 세계관 속에서, 감각으로 살아가며 고통받는 모든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성령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온 천하에 알리게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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