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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내 백성을 위로하라 / 유대인에게 메시아를 증거 하라

하늘이슬 2017. 9. 21. 18:34

 

 

내 백성을 위로하라

/ 유대인에게 메시아를 증거 하라

 

(박성업)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의 사람을 입었느니라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느니라 할찌니라“

(사 40:1-2)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예수를 전할 때

'기독교'라는 종교의

행동양식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 1:17; 롬 14:5-17)

 

생명 살리는 십자가 복음에 붙어있는

모든 잡다한 모든 누룩들을 제하고

모든 불순물들을 제하고

복음의 본질만 액면 그대로 전한다면

복음을 듣는 그 사람이

불교권이건 이슬람권이건 무신론자건 유대인건

어느 종교나 어느 문화에 속해있건 전혀 상관없이

'종교'라는 누룩을 제한 순수한 복음에는

사람들이 마음에 쓸데없는 걸림이나 거부감 없이

다 온전히 반응하고 또 복음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히 깨닫게 된다.

(골 1:16-18; 요 18:37, 요 8:47)

 

물론 깨닫고 난 뒤 그 복음에 어떻게 반응할지는

각자가 결정하는 것이지만 말이다.(요 3:16-21)

 

모든 사람이 복음에 분명하게 반응하지만

특히 유대인들은 복음에 대해 반응이 아주 유별(?)나다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를 증거 하고자 하는

사랑이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유익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복음과 관련하여 유대인들에 대한

기본적인 몇 가지를 나눠보려고 한다.

 

물론 우리는 누구를 만나던지

단순하게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면 된다.

(고전 2:4-5)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

전도뿐 아니라 우리 삶의 기본이자 전부이다.

(겔 36:27; 롬 8:4; 갈 5:16; 롬 8:14)

 

우리에게

모든 상황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것이

기본전제가 아니라면 아래와 같은 사항들은 되려

전도하시려는 성령님을 제한하는 걸림이 될 뿐인 것을

분명히 하고 (행 10:19-20)

 

또 전도는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랑으로만 된다는 분명한 전제 아래에서 (고전 8:1)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를 증거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기본적인 사항들을 나눈다.

 

 

1. 기독교

 

정교(orthodox)회들과 카톨릭은

온갖 이방숭배와 샤머니즘적인 요소가

잡다하게 뒤섞여 있어서

우리가 보기에도 상당한 거부감이 든다.

 

하지만

무슬림이나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기독교'라고 하면

이런 거부감 드는 모든 요소가 정신없이

다 섞여있는 것을 '기독교'라고 생각한다.

이들에게는 기본적으로 교단의 차이는 물론

개신교와 카톨릭의 차이도 없다.

그냥 다 뭉뚱그려서 '기독교'라고 인식되어 있다.

 

흔히 예수님과 온전한 관계에 있는

우리가 생각하는'기독교'라는 일반적인 개념과는

전혀 다른 개념을 이들은 갖고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우리 자신을 '기독교'인 이라고 소개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개신교적인

이런 끔찍한 우상숭배와 샤머니즘이 잡다하게 섞여있는

종교에 속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거기에 다가

이들의 지난 역사는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끔찍한 일들과 학살들을 겪어왔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한 엄청난 반감이 민족적으로 있다.

 

예를 들자면

정말 아쉽게도 일제의 통치를 36년간 겪었던

우리 민족은 기본적으로 일본에 대한 미움이

민족적으로 서리게 되었다.

 

고작 36년으로도 우리정도의 미움과 반감이

생길 수 있었는데 이들이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끔찍한 대우를 받은 것은 거의 2000년에 달한다.

 

그런 이들이 지난 2000년의 끔찍한 역사를 통해 갖게 된

'기독교'에 대한 기본적인 미움과 적대감을 생각해보라.

 

따라서 이런 유대인들에게

우리를 '기독교'인이라고 소개한다면

이들은 우리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우리를 인식을 할뿐만 아니라

엄청난 반감이 기본적으로 곤두서게 된다.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는 '기독교'라는 사람이 만든

종교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존재들이기 때문에 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기독교'라는 종교로

개종시키거나 '기독교'라는 사람이 만든 전통과

행동양식들에 매이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이 복음을 통해 죄 사함을 받고

예수님을 참 구주로 삼은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다가갈 때 우리를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 소개하지 않는 게 낫다.

 

우리를 이들에게 소개할 때

우리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메시아를 믿는 사람들이라고 소개한다면

쓸데없는 마음에 장벽 없이

더 온전히 복음에 집중할 수 있는 상태로

관계가 시작되게 된다.(고전 9:19-23)

 

 

2. 신약성경

 

먼저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신약성경에 대해서 많은 오해가 있다.

 

신약이 유대적인 배경으로 쓰여진 지도 모르고

그저 이방인들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위해 만든

엄청난 이단서로만 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에서는

일반 서점에서는 신약을 취급도 하지 않고

도서관에서도 찾아 볼 수도 없다.

그저 대학 도서관에서야

학문적 이유로 겨우 찾아볼 수 있는 게 전부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정통 유대인(종교인)들이 아닌

일반 유대인들에게는

신약성경을 선물이라며 건네면

대부분은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긴 하지만

정통 유대인들에게 신약을 그냥 주었다간

수습할 수 없는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될 수 있다.

 

(보통은 신약을 무슨 벌레 보듯하며

손으로 건들려고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복음을 전할 때

신약을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에 나와 있는 메시아에 대한 구절들을 나눈다면

이들과 복음에 대해 아주 깊은 지경까지 나눌 수가 있다.

(아래 부분에 구절들 참조)

 

 

3. 삼위일체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4-5)

 

우리 모두에게 가장 으뜸 되는 계명이다.

 

특히 유대인들에게

Shema Israel (이스라엘아 들으라)로 시작되는 이 말씀은

자기들 삶의 이유이자 가장 으뜸 된 계명일 뿐 아니라

지난 2000년간 기독교가

자신들을 개종시키려는 끔직한 탄압과 핍박에 의해

생명을 잃어가면서 까지 유대인의 정절(?)을 지켰던

선조들이 순교(?)때 외쳐왔던 그 구절이다 보니

가장 으뜸 된 계명일뿐더러

깊은 민족적인 애환과 한이 서려있기도 한 말씀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한 분이신 여호와시니”

(신 6:4)

 

오직 한분

오직 유일하신 분

 

물론 하나님이

유일하신 오직 한분 이신 하나님이 맞지만

이 하나님이 한분이라는 것을 믿는 것에 있어

왜곡된 부분 때문에 이들은 삼위일체에

엄청난 거부감이 있다.

 

이들에게 삼위일체라는 것은

한분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들도

감히 하나님으로 여기는 것으로 인식한다.

이들에게 삼위일체란 끔찍한 우상숭배이다.

 

따라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진리는

이들에게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심히 불경스러운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그냥 뭉뚱그린 개념으로

'우리 모두는 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다'라고 말하지만

예수님께 신성의 개념이 부여되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진리는

이들은 개념상 받아들일 수가 없다.

 

이런 이들에게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이들에게 사람에 불과한) 예수님을 믿는다.

또 (이들에게 하나님이 아닌) 사람 예수에게 기도한다,

라는 사실은 엄청난 우상숭배이자 끔찍한

신성모독인 것이다.

 

거기에다가

오래전에 죽은(?) 사람을 신격화해서

하나님으로 여기고 죽은 사람(예수)에게 기도를 하다니...

유대인들에게 이런 사실은 개념상

아예 받아들일 수가 없는 아주 끔찍한,

벼락 맞고 지옥 갈 짓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한 가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은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다는 사실이다.

거기다가 히브리말로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엘로힘(Elohim)이다.

 

원래 엘(El) 이라는 단어가 하나님을 뜻하는데

엘은 하나를 뜻하는 단수(singular)이다.

 

히브리 단어들 중에서

끝이~임(~im)으로 끝나는 단어는

단수(singular)가 아니라 복수(plural)이다.

 

하지만 히브리말로

'한분이신' 하나님을 엘로힘(Elohim)이라 한다.

 

이런 사실들을 토대로

보통 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전한다면

삼위일체에 대한 오해가 풀린다.

 

이들도 사람이 영/혼/육으로 구

성되어 있다는 것을 믿는다.

 

당신의 영은 누구의 것인가? 당신 것이다. 맞지..

당신의 혼은 누구의 것인가? 당신의 것이다. 맞지...

당신의 육체는 누구의 것인가? 당신의 것이다. 맞지...

 

이것 세 개 (영/혼/육)가 따로따로가 아니라

당신도 이 세 개가 다 합쳐져서 한 사람을 이루는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기 때문에

이 세 개가 따로가 아니라 합쳐져서 사람을 이루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이와 같다.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

다른 세 존재들을 신격화 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분들이 다 합쳐져서 한 분인 것이다.

 

히브리말로 하나님이 무엇인가?

엘로힘 (Elohim) 이 아닌가!

왜 엘(하나님/El) (단수/singular)이 아니라

엘로힘(Elohim)이라고 부르는가?

 

이 세분(성부/성자/성령)이 서로 다른 분이 아니라

이 세분이 합쳐서 한분 하나님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분은 한분 하나님이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세 분의 신들을(three gods)

잡다히 섬기는 것이 아니라

이 세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신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라고 위와 같은 식으로 전한다면

삼위일체에 대한 기본적인 오해는 깨어진다.

 

거기에다가

구약에 나와 있는 삼위일체의 구절들에 대해서 나누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는데 걸림돌이 많이 제해진다.

 

(구절들은 아래에 정리 된 것들 참조)

 

 

4. 예수에 대한 인식

 

기본적으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 랍비랑 많이 싸우고 랍비들과 문제가 생겨서

유대교를 탈피하고 새로운 종교를 창시한 문제아!

 

- 감히 자기 스스로 신이 된 이방인들이 섬기는 이방 잡신!

 

- 역사상 있었던 몇 명의 자칭 메시아들 중

한 명일뿐 특별한 것 없다!

 

- 예수가 보인 표적과 이적은 예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었던 것들이라서 별다른 특별한건 없다.

 

-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

하나님은 한분이시기에 아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수에 대한 엄청난 오해를 인해서

유대인들은 그저 예수가 정통 유대교에서 벗어나서

이방인들을 선동하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창시한

사이비 교주 혹은 이방인들이 섬기는 우상,

이방 잡신 정도로 생각한다.

 

마치 야곱의 아들들이

자기의 형제였던 요셉을 애굽에서 만났을 때

자기의 형제인지도 알아보지 못하고

이방인의 권세자 정도로 여겼던 것처럼

지금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바라볼 때

자기들의 형제 (유대인의 왕/다윗의 혈통)가 아닌

단지 많은 이방인들이 따르는

이방인에게 권세가 있는 교주/이방 신 정도로 여긴다.

 

마치 요셉이 자기의 형제들을 알아보고도

자기의 정체를 그들에게 밝히지 않고 감춘 채

눈물과 억누르는 심정을 참아가며

유다의 회개함을 기다렸던 것처럼

예수님도 지금 자신을 그저

이방인의 권세자 정도로 취급하는

유대인들을 격한 감정과 눈물을 억누르시며

회개하기를 기다리고 계신다.

 

 

5. 이스라엘의 청년들

 

기본적으로 유대인들이라고 하면

이런 정서가 바탕하고 있다.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하긴 어렵지만

'외톨이 됨' 혹은 '미움당하는 존재'

라고 표현될 수 있는 민족의 한..

민족의 깊은 슬픔이

유대인들의 마음에 새겨져있다.

 

역사동안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들에게 끔찍이도 미움을 당하며 살아왔다.

 

지금 상황에도

모든 주변국들은 이스라엘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고

테러와 전쟁의 위협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특별히 유대인 청년들의 마음을 한번 보자면

이들은 이런 답이 없는 것 같은 존재에 대한 질문과 함께

하나님께 대한 불만과 원망이 마음 깊은 곳에 깔려있다.

 

"대체 내가 왜 하필 (모두에게 미움 받는)

유대인으로 태어난 걸까?"

 

"내가 왜 이런 일(테러, 미움 받음, 땅의 분쟁)을

겪어야 하는가?"

 

잘 알려진 것처럼

유대인들은 남자 여자 모두다

군복무를 의무적으로 해야만 한다.

 

이런 존재에 대한 한 섞인 깊은 질문에

답도 얻지 못한 채 어린 나이부터

'선조들이 약속받은 땅'을 지키러 군에 들어오게 된다.

 

우리군대와 틀리게

날마다 테러의 위협 속에서 실제 전우들이

테러에 죽어가는 실제 상황에 바로 투입이 되게 된다.

 

당위성을 알겠지만 와 닿지 않는

그저 어디선가 건너서 들은 '약속의 땅'이라는

이것을 지키기 위해 어린나이부터

날마다 생과 사를 오가는 위협 속에

군 생활 하기란 쉽지 않다

 

이 답을 찾을 수 없는 존재적 질문들을 떠안고서

이런 위협 속에서 계속 무겁게 가중되는 스트레스....

군대에서 자살시도와 음란은 물론이려니와

여러 가지 죄의 모양들로

어렴풋이 어려서 부터 들어온 창조주에 대한

존재적인 반항심은 표출이 되기 시작한다.

 

막상 하나님에 대한 목마름이 있을지라도

이스라엘 문화에서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해 찾고 싶어도 정통 유대인(종교인)이 되는 게

하나님께 헌신하는 유일한 길이라고

배워온 유대인 청년들..

 

21세기를 사는 청년들에 입장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갈망이 있어도

차마 정말 답답해 보이기 짝이 없는

그 무식한 '종교인 짓'은 못하겠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죄에 끌려

방황하게 되는 것이 대부분의 유대인 청년들이다.

 

거기다가 군대에서 왕창 쌓인 스트레스를 풀겸

또 영적인 목마름에 대한 답도 찾을 겸

많은 유대인들이 군대 제대 후에 찾게 되는 곳이

인도, 태국 등등 아시아 국가들이다.

 

이런 국가들에 와서 마약과 음란..

또 영적으로는 힌두, 불교, 뉴에이지 등에 심취한다.

 

심지어는

여기서 일어나는 귀신들이 주는 영적 경험들에

귀신이 들려서 이스라엘로 돌아와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경우들도 있고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청년들도 있다.

 

(일반적인 유대인 청년들의 집에 방문하면

많은 경우 자기 방에 힌두교의 신, 부처,

뉴에이지 서적 등등 이런 것들이 그냥 방에 걸려있다)

 

사단은 이 유대인 청년들을 이런 식으로

파멸로 몰아가고 있다

 

유대인 청년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에 대하여 목마르고 배고프다.

 

 

6. 적그리스도의 영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싸움이다“(엡 6:12)

 

랍비들은 자기들끼리 있을 때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을

"예수가 왜 메시아가 아닌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보낸다.

 

어떻게 서든 예수를 부인하는 적그리스도의 영이

가장 강력하게 역사하는 민족을 꼽으라면 유대인들이고

(요일 4:3)

 

적그리스도의 영이

가장 강력히 역사하는 지역을 꼽으라면 이스라엘 땅이다.

유대인들은 자랄 때부터 자연스레 예수님을 부인하고

대적 할 수밖에 없는 견고한 진들(지식/감정/등등)이

형성되는 문화 속에서 자란다.(고후 10:4-5)

 

물론 사람이 논리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영에 끌려 살아간다는 것은 잘 아는 사실이지만(엡 2:2)

유대인들에게 역사하고 있는 적그리스도의 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이들을 붙잡고 있다.

 

예를 들어

이들은 구약에서도 다른 여지가 전혀 없이

예수로 밖에 설명이 안 되는

다니엘서 9장에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부인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다니엘은 이름의 의미가

'하나님의 심판'인 것을 이유로 삼으며,

다니엘은 하나님께 심판을 받은 존재라서

저런 말(예수가 메시아)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다니엘서를 성경에서 빼버려야 한다.

라는 주장까지 하고 있을 정도로

이들은 차라리 성경을 부인하면 부인했지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왜냐면 이정도로 강력하게

적그리스도의 영에 붙들려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는 게

전도하기 전후뿐 아니라 전도 중에 항상

적그리스도의 영들을 기도로 처리함으로서

유대인들을 메시아께로 인도할 수 있다.

(막 8:29; 마 16:18-19)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유대인 전도에 기도는 필수이다.

특히 적그리스도의 영을 대적하는 기도 말이다.

(고후 4:3-4)

 

 

이제 가서 유대인들을 시기케 하라.

 

유대인들은 정통 유대인들(종교인들)뿐만 아니라

아무리 그냥 세속적으로 사는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하나님께 열심을 내려하는 DNA가 있다.

 

이들을 만나서 이들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이삭의 야곱의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행해주신 놀라운 일을 간증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를 끔찍이 사랑하셔서

그의 메시아 예수를 보내주시고

우리들의 생명을 구원하시고 축복해주셨는지

나누고 유대인들에게 감사를 표하자.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그분의 메시아 때문에

우리가 받은 놀라운 축복들을 인해

유대인들에게 감사를 표하자.

 

그러면 그들은 자신들의 DNA 특성상

시기심이 발동하여 하나님에 대해 열심을 내며

하나님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신 32:21; 롬 11:11-15)

 

 

구약에서 나타나는 예수의 증거

 

사실 우리가 흔히 '신약'이라고 부르는

하나님의 새 언약은 무에서 유를 뽑아낸

완전 새롭다는 개념이 아니라

예전에 하신 약속을 갱신(새롭게)하신다는 의미로서

'신약'이라 불리우는 것이다.

 

예레미야 31:31-34절에서 공포하신 그 언약을

우리는 '신약'이라고 부른다.

 

사실 이 언약의 당사자들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지만 이 '새'언약뿐만 아니라

성경을 통틀어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들과

언약들과는 전혀 상관없던 이방인인 우리는

십자가로 모든 벽을 허물어 주신

예수님 안에 속하게 됨으로서 이 언약의

혜택을 받는 자들이 된 것이다.(엡 2:11-19)

 

지금의 문제는 유대인들은

우리가 '구약'이라고 부르는 그것이 전부인 것으로

여기고 '신약'을 아예 인정안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주장에 의하면 하나님이

유대인들과 맺으신 언약을 폐하시고

쓸모없이 여겨서 버리셨고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버렸고)

 

이방인인 자신들(기독교인)과

아예 새롭게 언약(신약)을 맺었다.

라는 기독교인들의 주장이

지난 2000년간 유대인들에게 가해졌던

모든 핍박과 학살을 정당화 해주었을 뿐 아니라

엄청나게 큰 민족적 상처를 안겨주어 왔던

근본적 이유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주장은 성경을 똑바로 이해하지 못한

기독교인들의 무지에서 나온 주장이다.

 

(유대인을 높이고자 하는 그런 말이 아니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 앞에는

높고 낮음 없이 똑같은 구원이 필요하고

똑같은 사랑을 받는 존재들이지만

이런 사소해 보이는 오해가 하나님 나라 전체의 그림에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분명히 명시하는 것이다)

(렘 33:24-26, 렘 31:35-37)

 

따라서 가급적이면

굳이 '구약'이라는 표현을 고집하면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의 문을 막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고 다음의 말씀들을 유대인들과 나누자.

(고전 9:19-23)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1.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 (잠 30:4)

 

- 창조주의 이름과 그 아들의 이름을 묻는 구절

 

2.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니“(대상 17:13)

 

- 대상 17:11-14는 다윗에게 메시아에 대한 약속인데

13절에 의하면 메시아는 아들이라 하심.

 

3. “너는 내 아들이라“(시 2:7)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시 2:12)

 

- 시편2편은 전체가 메시아에 대한 예언 시편인데

하나님은 분명히 메시아를 아들이라고 칭하신다.

 

4.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사 9:6)

 

- 사 9:6-7 메시아에 대한 예언인데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신다고 되어있음.

 

 

구약에 나온 삼위일체

 

1.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는 아버지라“(사 9:6)

 

- 이사야서에서는 메시아가 아들일 뿐만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이고 영원한 아버지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2.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 처녀가 낳은 아들 (예수 메시아)의 이름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 아들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3.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 너는 내 우편에 낮으라“(시 110:1)

 

“주의 우편에 계신 주께서 그 노하시는 날에“(시 110:5)

 

- 다윗이 쓴 시편인데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주님(예수)께 말씀하신다.

다윗의 주님(예수)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시다.

다윗은 유대인들이 존경하는 대표적인 하나님의 사람이다.

다윗은 세 명의 신들을 섬기는 우상숭배자가 아니라

한분 하나님을 섬겼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4.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 신(성령)을 보내셨느니라“

(사 48:12-16)

 

- 12절에 보면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라고 시작하여서 하나님께서 쭉 16줄까지 말씀하시다가

16절 마지막에 보면

"이제는 주 여호와께서 나와 그 신(성령)을 보내셨느니라"

 

12절에서 자기는 처음이자 끝이라고 말씀하기 시작하신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말씀하시기를

"여호와께서 나 와 그 성령을 보내셨느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자기와 성령을 보내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5. 하나님(엘로힘/복수 plural)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창 1:26)

 

- 위에서도 언급했던 엘로힘(하나님들)이

스스로를 우리라고 하시는 것은

삼위 하나님이셔서 그렇다.

 

6.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 로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창 19:24)

 

-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 부터 불을 내리신다.

 

7.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우리가 내려가서“(창 11:6-7)

 

- 하나님께서 바벨탑 사건에 인류의 언어를 흩으실 때

또 하나님께서 '우리가 내려가자'라고 하심.

 

8.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에하드/'achad)인 여호와시니“(신6:4)

 

- 유대인들이 생명처럼 여기는 이 구절에서

오직 '하나' 이신 여호와라 할 때

그 '하나'라는 히브리 단어는 '에하드'('achad)이다.

'에하드'의 뜻은 '함께 모이다' '합쳐 하나되다'

'연합하다'라는 뜻이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합쳐 하나 된 하나님이시다.

 

 

그 외 관련된 구절들

 

1. 유대인들은

역사동안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고

하나님만 공부했던 위대한 랍비들은

어째서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의아해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사 29:9-14, 사 6:9-10, 신 32:18-20에서 말씀해주고 있다.

 

 

2. 메시아가 왔다가 죽임당할 것과

언제 이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것까지

이미 성경은 정확하게 예언하고 있다(단 9:24-27)

 

다니엘에게 임한 말씀이다.

다니엘은 이미 포로로 끌려나와 있었고

예루살렘은 이미 무너져 있을 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히브리말로 '메시아'의 의미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다.

 

25절에

예루살렘을 재건하라는 명령이 떨어질 때부터

기름부음 받은 자(메시아)가 나타났다가

메시아가 끊어질(죽을 때)때까지의 기간은

'일곱이레(weeks)'와 '육십이 이레(weeks)'라고

나누어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통합해서 말자하면

예루살렘을 다시 재건하라는 명령이 떨어질 때부터

메시아가 죽는 때까지의 기간은 육십구 이레(weeks)이다.

 

(계시록11장에서13장을 보면

한 이레(1 X 7)를 칠년으로 계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유대 달력에서 일 년의 일수는

350일에서 390일 정도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며

매년 차이가 나고 일정하지 않지만

일단 계시록11장2절을 따라서

일 년을 평균 360일이라고 보고

다니엘서 9장의 예언을 보도록 하자)

 

느헤미야에게 아닥사스다 왕이

예루살렘을 다시 재건하라고 명령하는 때는

바로 B.C 445년 니산월 이다.

(느 2:1)

 

그때부터 일곱이레(weeks) (7 X 7 = 유대력 49년) 동안

예루살렘 도시(성벽)와 제2차 성전(스룹바벨 성전)이 완공된다.

 

그 후 육십이 이레(weeks) (62 X 7 = 유대력 434년)를

계산해보면 AD 32년 니산월이 나온다.

니산월은 유월절이 있는 월이다.

 

(우리는 1월, 2월, 3월 이렇게 부르지만

유대력은 니산월, 이야르월, 시얀월 이렇게 부른다)

 

느 2:1에서 육십구이레(weeks)를 계산하면

AD 32년 유월절이 나오는 것이다.

 

(성경의 날짜를 계산하는 방법에 따라서

조금씩 틀린 결과가 나올 수 있지만

만약 AD 32년을 기점으로

최대한 땡겨서 100년의 오류가 난다고 쳐도

제2성전이 무너지기 전(AD70년)

메시아라는 타이틀로 죽임을 당하신 분은

예수님 밖에 없다)

 

다니엘서에서는 분명히 메시아가 왔다가

끊어진다고(죽임당한다고) 말하고 있다.

 

 

3. 고난을 받은 메시아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와서 고난을 받는다는 개념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왜냐면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는

단순히 메시아는 왕으로 와서 열국을 복종시키고

이스라엘 나라를 온전케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초림 때 어린양으로 와서 연약하게 죽임 당하신

예수를 메시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물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열국을 복종케 하시며

이스라엘을 온전케 하실 것이다)

 

이런 유대인들에게 이사야서 53장은

부담스러운 구절이다.

 

많은 랍비들이 이사야 53장의 논란을

이스라엘 민족을 비유한 거다 등등

여러 이유로 막아보려 하지만

너무나도 분명하고 정확하게

어린양으로 오신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음으로

다른 여지가 없는 게 사실이다.

 

이와 같이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를 증거 하는데

혹시나 도움이 될 수 있을만한 사실을

몇 가지 열거해보았는데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통로가 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하는 전부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을 바꾸실 것이다.

 

만약 이것이 전제가 되지 못한다면

이런 잡다한 지식들은 되려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를 증거 함에 있어

걸림돌이 될 것이다.

 

 

 

 

출처 : 우림과둠밈
글쓴이 : 우림과둠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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