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혼과 영성의 본능(자연)단계의 정의
영혼의 자기 발견 단계라고도 한다.
우리가 거듭나면 영혼과 영성의 단계로 들어가지만 하나님이 계심과 예수가 믿어지지만 교회 뜰만 밟고 다니는 경우이다.
내가 정말 ‘영’이다. 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다가 차츰 ‘참 나는 영이다’를 깨닫게 시작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내 안에는 두 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적인, 본능적인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구분된다. 내 영혼의 자기발견 단계이다.
육신의 생각을 따라 살면 다 사망이라는 것을 로마서에서 말씀하고 있다.
우리의 인생에서 육신을 살다가 주님 앞에 선다면 모두 잃어버린 시간으로 주님 앞에서 사망이다는 것이다.
육신의 삶을 살면 모두 사망이다.
예로 아브라함-- 이삭 ; 약속으로 낳은 영의 자식, (이스라엘)
-- 이스마엘 ; 육신으로 낳은 자식, (이란, 이라크)
육신의 생각으로 사는 삶이 이 땅에서도 사망이지만 하늘나라에서도 사망이다. 라는 것이다.
우리도 인간관계에서 육신의 생각으로 싸운다면 인간관계도 사망이요 하늘나라에서도 사망으로 기록된다. 육신의 삶으로 몇 년을 살았건 영의 생각으로 살지 못했다면 우리는 사망의 삶을 산 것이다. 정말 우리의 소망이 하늘나라에 있다면 육신의 생각을 배재하고 영의 생각으로 살아야 소망이 있음을 명심하고 너무나도 중요하게 깨달아야 한다.
육신을 쳐서 영의 인격에 복종시켜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이 세상에서의 삶 동안에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을 좇아 산 삶의 결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 산자는 영의 생각을 좇아서 산자이고 죽은 자는 육신의 생각을 좇아 산자이다.
계시록의 사데 교회(계 3;1-2)에게 주님께서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자로다‘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예수 믿는 사데 교회 교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시다.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살은 자는 누구인가?
항상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뜻대로 살기 위하여 육신을 쳐서 영의 자세로 산자를 하나님 앞에 산자라 한다.
고후 5;16-17)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보이는 육체는 허상이고 영으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모든 사람들을 겉모양으로, 행위를 보지 말고 하나님 앞의 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영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육으로 보면 사랑할 수 없을 수 없으나 영으로 보면 사랑할 수 있고 기도해 줄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 사람도 주님의 보혈로 사신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우리의 영이 하나님에 대하여 죽어 있었다. 사단의 종이였다. 사단이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었던 무능력한 자였으나 하나님으로부터 살아남으로 말미암아 눈이 뜨이고, 하나님이 누군지 알게 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우리가 이제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말씀이다. 사단의 종에서 하나님의 종으로 바뀌어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
우리에게는 육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나의 내면에는 두 사람이 공존하고 있다. 즉 나의 옛사람과 나의 속사람이 공존하여 살고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 7;24)라고 말하였다.
롬 8;7-8)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우리에게는 두 인격이 사는 것을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계속 새사람을 좇아 살아라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롬 8;12-14)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했는데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옛 사람을 택하여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 라는 성경의 말씀이다.
이 말씀을 성경의 한 구절이다 하고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도 되는 말씀이 아니다.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 죽는다는 것은 엄청난 의미이다.
계시록에서 이기는 자에 대하여 나온다(계3;7-12) 이기는 자의 반열은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사는 자가 아니라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자이다.
하나님이 정말 “너는 내 아들이다.” 라고 하는 사람은 육신대로 사는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그들을 하나님은 정말 ‘아들’ ‘딸’이라 하신다.
엡 2;1-4)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더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즉 내 마음대로 육신대로 사는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징계로 온다는 말씀이시다.
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우리의 신분을 바꿔 놓으셨으니 영으로 살으라는 말씀이다)
골 3;1-4)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4)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실화의 예로 어느 장로님은 30-40년 신앙생활을 했었지만 사망의 삶을 살았다고 하셨다. 이제까지 본인이 산 것이 모두 자기를 위하여 산 삶이더라는 것을 영성훈련을 통하여 깨달았다고 하셨다. 이제까지의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을 위해서 한 것이 하나도 없더라는 것이다. 헌금을 해도 인정받기 위해서, 봉사를 해도 장로님이라는 것을 듣기 위해서 추대받기 위해서 직분의 이름으로..... 이것이 모두 사망의 삶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하셨다.
갈 6;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우리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심령을 감찰하시고 다 아신다. 그러나 본인은 스스로에게 속을 수 있으나 영으로 성장하면서 자신을 보게 되고 알게 된다. 만약 이대로 주님 앞에 선다면 얼마나......
신앙생활은 기간이, 직분이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하다.
예로 모태로부터 신앙생활 했다라고 하지만 자기의 고집으로 신앙생활 했거나, 잘난 맛에 신앙생활 했거나, 인정받기 위해서 했다면 빨리 깨달아서 돌이켜 생명의 삶을 살아야만 승리하는 자가 된다.
롬 7;19)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네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도다.
우리의 육신에는 선한 것이 아무것도 나올 수 없다. 인간의 속에서는 선한 것이 없기에 나올 수 없다 그냥 선한 체하는 것이고 척하는 것이다. 내가 하면 할수록 더 안 된다. 오직 하나님으로 나오는 것만으로 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사람을 사랑하려면 한계가 있다. 그러나 내 안에 하나님을 품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랑의 넓이와 높이와 척도가 너무 다르고 차이가 다르다.
교회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인간에게 나가는 것은 악함뿐이다. 예수님처럼 할 수 없다.
롬 22-24)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속에서 다른 한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하나님은 원수를 나에게 붙여 주신다. 그러나 그 사람의 행동이 미운 짓을 계속하는 것을 볼 때 내가 도저히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을 때가 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자는 이때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스스로는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되지 않는다는 절망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야한다. 하나님이 하시도록 드리고 나면, 주님이 일하기 시작하시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사람이 불쌍히 여겨진다.
이때부터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왜냐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이 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섬길 수 있다.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내가 육신으로 그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면 할수록 되지 않고 죄와 사망의 법으로 가는 죄를 짓게 되는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니까. 그러나 나를 내려놓고 내 안에 계시는 주님으로 하려니 생명의 성령의 법을 따르더라는 것이다.
성령의 법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온유와 절제의 법으로 생명의 열매가 따르더라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속사람의 법을 따라서 해야 한다.
우리는 영성훈련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지만 되지 않음을 발견하여 절망으로 가게 되고 이 절망으로 나는 주님으로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에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넘어가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져서 생명의 삶을 살 뿐아니라 상대방에게도 생명의 삶이 이루어진다.
우리가 생명의 삶으로 살 때에 원수가 친구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이런 기적이 날마다 일어나야 한다.
결론으로 우리는 생명의 성령의 법 아래에서 살기 위해서 영성훈련을 통하여 자아를 파쇄하고(영성훈련에서 상세히 나옴) 주님 안으로 들어가서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살아야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주님 앞에 선다는(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승리의 삶을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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