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말레이시아 선교
(1) 기본현황
① 국명 : 말레이시아(Malaysia)
② 인구 : 32,042,458명(2018추계)
③ 종교 : 이슬람교(61.3%), 불교(19.8%), 기독교(9.2%), 힌두교(6.3%)
④ 민족 : 말레이인(52%), 중국인(24%), 원주민
⑤ 특징 : 국민 61.3%가 신앙하는 이슬람교가 국교이며, 연방제 입헌 군주국으로 국가원수는 국왕, 정부수반은 총리입니다.
말레이 반도에는 6,000년 동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2~3세기경, 소수 말레이왕국들이 있었고 당시 인도의 모험가들이 이 지역에 상륙하였습니다. 1400년경, 수마트라 추방자들이 도시국가인 말라카를 세우고, 1511년 포르투갈인들에게 점령당하기 전까지 교역과 이슬람교의 중심지로 황금기를 맞이하였습니다. 1641년, 네덜란드가 말라카를 점령하고 1819년, 영국이 싱가포르 섬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1867년, 말라카, 싱가포르, 페낭 섬을 중심으로 하는 해협식민지의 지배권을 획득하였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중국인들이 말레이 반도로 이주하기 시작하여 인도네시아와 말레이 반도에 집성촌을 이루었습니다. 1941년, 일본이 말라야를 침공하고, 1942년, 싱가포르를 점령하였지만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1946년, 영국의 지배 정책에 대한 반대하는 통일말레이국민조직(UMNO, United Malays National Organization)이 결성되었습니다. 그후, 1948년, 페낭 섬이 말레이 반도에 합류하고 말레야는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습니다. 말레야·싱가포르 및 영국의 이전 식민지들이면서 보르네오 섬에 위치한 사라와크와 사바가 1963년, 말레이시아 연방으로 합병하였습니다. 1970년대 후반부터 경제적으로 번영하기 시작했으며, 1990년대 중·후반 지역적 경제 침체를 겪기도 했지만 이후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세계 주요 항로인 말라카 해협과 인근하여 있기 때문에 다양한 인종 분포를 갖고 있습니다. 말레이인과 중국인들이 가장 큰 인종집단을 형성하고 두드러진 소수 종족으로는 여러 부족의 토착민들과 남아시아계가 있습니다. 공용어는 말레이어이지만 중국어와 오스트로네시아어, 인도유럽어 계통의 언어가 복합적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국교는 61.3%의 신자를 갖고 있는 이슬람교이고 불교, 그리스도교, 힌두교 및 몇몇 지역 종교들이 있습니다.
(2) 말레이시아의 종교
출처 : Begoon/wikipedia|CCBY3.0/말레이시아의 종교분포그래프2016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교를 국가종교로 하고 있습니다. 전국민의 52%를 차지하는 말레이인은 모두 이슬람교인입니다. 24%의 중국인들은 19.8%의 유교와 불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의 이슬람교는 이슬람 상인들에 의해서 유입되었으며 비교적 유연한 연성회교단체의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을 하면 교육, 주택 등의 주거복지의 특혜가 전면적으로 취소됩니다. 헌법적으로 이슬람교의 특별보호와 함께 타종교의 자유를 주고 있지만 말레이인을 제외한 중국인과 한인과 외국인과 소수부족민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말레이인 가운데 600명의 개종자는 극심한 핍박과 고난속에서 다민족문화지역 교회를 출석하고 있습니다. 1987년에는 일부 개종자들을 대상으로 형사체포되고 구금하는 사례까지 있어서 말레이지역 전도는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있습니다. 1970~80년대, “자마트타브리”(Jamaat Tabligh)라는 회교원리주의 부흥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이것은 이슬람교는 말레이어만 사용할 수 있고 이슬람을 믿는 사람에 한해서만 말레이인으로 하려는 극단적 과격 이슬람주의의 “다크와”(Dakwah)운동입니다. 이들과 반대로 온건주의 회교도들은 “븜인푸트라”(Buminputra,땅의 아들) 정책으로 원주민을 우대하였습니다. 또한 “아르캄”(Darul Arqam)은 다크와와 븜인푸트라를 비난하며 참된 이슬람신자들로만 구성하는 반유럽 연대의 이슬람국가를 지지하였습니다. 이슬람청년운동인 “아빔”(ABIM)은 이자를 받지 않는 이슬람은행과 금주금연하는 이슬람대학교 건립을 주장하였고 마티힐 수상은 이들 청년운동의 대학교 설립을 추진하였습니다. 이슬람 교리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분야에 적용할 것을 주장하는 “말레이시아 이슬람정당”(Partilislam SeMalaysia)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불교는 19.8%로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중국인들은 불교를 중심으로 도교와 유교가 있으며 이들의 비중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힌두교는 6.3%로 하층민계급에서 숭배하고 있으며 사원을 건립하는 등 인도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자신들만의 세력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기독교는 로마카톨릭을 포함하여 300만명으로 전 인구 대비 9.2%의 비중을 갖고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동부말레이시아, 사바, 사라왁에 밀집되어 있으며 서말레이시아 지역에는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수의 인원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말레이인을 대상으로 하기보다 미전도종족을 대상으로 전도를 집중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략적 전도를 위해 현지지도자를 양성하고 있습니다.
(3) 말레이시아의 기독교 선교와 전망
① 로마카톨릭 선교
로마카톨릭 최초의 선교사는 1511년, 포르투갈 함대와 함께 한 군종신부들로 이들 가운데 6명은 프란시스코회 선교사들이었습니다. 포르투갈 함대는 말라카 왕조를 정복하고 성당을 세웠지만 포르투갈인을 대상으로 하는 예배당이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1544년, 프란시스 사비엘 선교사가 말레이반도에 신학교를 설립하고 선교를 시작하였습니다. 말라카에서 사비엘은 일본인 탈출자 야이로를 만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16세기 후반 포르투갈의 국력쇠퇴로 프랑스 사제들이 말레이시아 선교를 맡게 되었습니다. 1806년, 페낭에 신학교를 설립하고 500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라토렛 교수는 19세기 로마카톨릭 선교를 인계받은 프랑스 외방선교회가 말레이 반도에 선교 하여 포르투갈 혈통의 소수 개종자만을 얻었을 뿐 성과를 내지 못하였습니다. 1844년, 로마카톨릭 선교사들은 싱가포르에서 500명, 페나에서 2,110명, 말라카 부족인들 수십 명을 개종하였습니다. 1855년, 로마카톨릭은 7,000명의 교세로 확장하였습니다. 1890년, 27명의 선교사, 1912년, 사제 42명, 수녀 118명, 신자 32,582명이었으며 이들이 대부분은 중국인과 인도인이었습니다.
말레이시아에서 기독교선교는 런던선교사가 시작하였습니다. 1814년, 런던선교회 장로 선교사 윌리엄 밀른(William Milne)는 로버트 모리슨을 지원하기 위해 중국선교 길에서 함께 하였습니다. 밀른은 미션스쿨을 통하여 청년교육과 문서선교에 주력하였습니다. 1841년, 장로교회 선교사 벤자민 키스베리(Benjamin Keasberry)는 싱가포르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7인의 말레이인, 1명의 중국인, 2명의 원주민 교인을 선교하여 2년후에 60명교인으로 성장하였습니다. 1847년, 런던선교회가 중국선교를 위해 선교본부를 이전하였을 때 키스베리는 말레이시아에 남아 성경번역과 문서선교를 지속하였으며, 부키트 티마에 중국인 교회를 새롭게 설립하였습니다. 1856년, 영국 성공회는 중국인 선교를 위해 말레이시아에 도착하였습니다. 1859년, 형제교단, 1891년, 감리교단이 선교를 시작하였습니다. 사라와크 지역의 중국인을 대상으로 선교를 확대한 감리교 선교부는 학교와 의료선교를 주력하였습니다. 1949년, 성탄절, 감리교 선교부는 사라와크 이반족 30명이 집단개종함으로서 이반족 주거지역에 신학교를 설립하여 원주민 지도자 양성에 주력하였습니다. 사라와크 신학교를 통하여 동말레이시아 선교와 교회부흥에 기초가 되었습니다. 이반족 교회는 수년동안 목사 39명, 교회 62개, 신자 1,600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감리교 선교부는 이곳에서 이반교회 선교대회를 개최하여 전 세계 감리교회의 빅뉴스가 되었습니다. 1882년, 루터교회 바젤선교부가 사라와크 지역 카다와크 원주민과 중국인을 대상으로 선교를 하였습니다. 1953년, 미국 루터교회가 말레이시아 선교에 참여하고 1949년, OMF선교회가 중국에서 철수하여 말레이시아 선교에 동참하였습니다. 동말레이시아 선교는 수마트라에서 이전해온 원주민 신자에 의해 30명을 전도하여 세례를 준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폭발적으로 부흥하였습니다. 이것은 1938년, 영국정부관리가 동말레이시아에 도착하여 확인하게 되었으며 1945년 이후에 타 부족에게도 전도하는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동말레이시아에서 기독교는 20%를 차지하였으나 서말레이시아에서는 3%에 미치지 못하는 환경에 부딪혔습니다.
② 기독교 선교와 현황
말레이시아 기독교 인구는 로마카톨릭을 포함하여 9.2%로 300만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5.5%로 170만명, 로마카톨릭이 3.7%로 130만명입니다. 말레이시아 최대교회는 보르네오 복음주의 교회로 510교회 20만명에 이르고 감리교회가 300교회 17만명, 성공회가 322교회 17만명, 안식교가 200교회 5만명, 바젤그리스도교회가 90교회 3만2천명, 하나님의 성회가 231교회 2만5천명 등입니다. 선교사는 40여 기관 189명입니다. 말레이시아 기독교는 전체 기독교의 80%를 차지하는 중국계 교회와 인도계 교회와 중국, 인도계의 혼합교회라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사라와크 지역의 부흥은 34%에 달하는 기독교 인구가 대변합니다. 북보르네오지역인 사바지역에서도 기독교 인구는 30%에 달하지만 명목상 신자와 도시로 전출한 신자가 혼재되어 복잡한 상황을 겪고 있습니다. 이반족과 멜라나우족에서 성장하는 교회들은 사역자의 부족과 복음적 신자가 적다는 측면에서 문제점이 나타났습니다. 말레이시아 교회는 인도와 방들라데시 교회와 같이 인종적 교회로서 인종과 언어를 초월한 교제가 불가능하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중국인 특유의 상술이 교회내로 침투해 영적 부흥보다 헌금과 재정을 은행에 저축하여 수익을 늘리는 부동산투자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 문제로 부각되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교회가 목회자 중심의 교회가 아니라 교회운영회(Committee members)가 실제 운영권을 가지고 담임목사를 파면하거나 교체를 쉽게 하는 불안정적인 목회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신학교사가 양질적 측면에서 부족하여 말레이시아의 적극적인 선교활동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③ 선교전망
말레이시아의 선교의 위험성은 외국인 선교사 뿐만 아니라 중국계와 인도계 말레이시아인도 말레이인에게 전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동말레이시아에서의 선교에 치중하게 되고 서말레이시아 선교는 순교와 연결되는 위험성으로 인하여 소극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말레이시아 선교는 한인교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수도인 쿠알라룸푸르 한인교회는 말레이시아 복음화를 위하여 평신도 선교와 봉사활동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에는 미전도종족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으나 실제적 전도에 있어서는 어렵고 복잡한 환경에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오랑 아슬리 원주민들이 모두 이슬람교라고 인정하지만 전체인구의 10%가 이미 기독교로 개종한 상태로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복음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은 중국인 선교입니다. 5~6개의 신학교를 설립 지원하고 한국의 학교로 초청하여 목회자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안이 적극적으로 시행되어야 합니다. 1990년, 서울 아시아선교대회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말레이시아 교회 지도자들의 선교적 사명과 지도자 훈련에 대한 필요성이 요구됩니다. 아시아 지역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슬람의 확장을 저지하고 기독교의 핵심역량을 키워 나가는 것은 중요한 사명입니다. 말레이시아는 88%에 달하는 인도네시아에 이어 이슬람교를 국교로 지정함으로서 타 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정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기독교 선교국은 이슬람국가에 있어서 새로운 전도전략을 실현하고 확장을 위한 전략적 협력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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