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

민화

하늘이슬 2021. 3. 3. 18:11

모란도, 한지에채색, 한지죽, 2011

 

모란정물, 나무에 채색, 도자기, 2011

 

붉은나무, 한지에 채색, 2011

 

오봉일월도, 한지에 채색, 한지죽, 2011

 

응시, 한지에채색, 한지죽 , 2011

 

 

작가 양현식의 작업은 민화를 지지체로 삼고 있다. 민화는 장식과 기복의 목적을 지닌 실용적인 회화이기에 명료한 형상성과 장식성이 두드러진다. 그것은 생로병사라는 삶의 필연적인 순환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마련인 희로애락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재와 표현에 있어 분명한 목적성과 강한 상징성을 통해 이러한 이야기들을 전달해 준다. 작가의 화면은 부분적으로 새로운 표현을 도입하기도 하고, 형상에 대한 재해석으로 분방한 화면 구성의 묘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는 작가의 관심이 민화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민화라는 형식으로 대변되는 대중과의 소통 방식에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밝고 강렬한 원색들과 질박한 표현의 화면은 민화의 원형에 충실하지만 부분적으로 변형과 재구성을 통해 작가의 개성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정교한 묘사의 기능이나 엄격한 재료의 운용을 통한 장인적 기능이 아니라 민화라는 것 자체에 육박하고자 하는 우직한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의 화면은 거친 듯 분방하고, 화려한 색감을 지녔으나 소박하고 담백하다. 흥미로운 것은 탁본을 뜬 것처럼 나뭇결을 설정하고 여기에 다시 종이나 흙으로 구워 만든 나비를 더하는 작업 방식이다. 나뭇결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이중구조의 화면은 단순히 시각적인 자극을 통해 전해지는 민화의 형태에만 눈길이 머무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상상을 유발하는 조형적 도구이다. 그것은 일종의 시간을 통해 축적되어진 세월의 흔적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일견 단순한 민화의 재현으로 흘러 버릴 염려가 있는 소재의 상투성을 경계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지는 나비는 정적이고 안정적인 민화의 고전적 틀을 돌연 또 다른 공간으로 변환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이중적이고 다변적인 구조와 설정이 바로 작가가 민화를 읽어낸 결과일 것이며, 그것이 전통의 뒤 안에서 나와 현대라는 시공을 호흡하게 된 이유일 것이다. 작가의 화면은 명징한 색채의 화려한 전개가 두드러진다.

 

전통적인 분채(粉彩)를 작업의 매개로 삼는 작가의 작업은 수용성 안료 특유의 반복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침잠된 깊이감이 특징이다. 단지 색채의 자극만을 취한다면 보다 효과적인 재료와 표현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분채를 통한 노동과도 같은 작업을 선택한 것은 바로 이러한 독특한 깊이와 은근한 아름다움에 더하여 작업과정을 통해 확인되어진 자연이라는 시간을 표출하기 위한 작가의 선택일 것이다. 그것은 민화라는 형식을 통해 인간의 삶을 반추하고, 다시 전통시대에서 현대로라는 시공의 간극을 넘어 대중과의 소통을 도모하며,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양태에 대한 천착이 일관되게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투박하고 둔중한 듯 한 작가의 작업은 집중과 몰입의 여운이 가득하다. 민화라는 정형의 틀을 자신만의 조형으로 환원하고자 하는 절절한 노력은 치열한 작업의 흔적들을 통해 여실히 증명되는 바이다. 작가가 지향하듯 민화는 분명 인간의 삶과 대중과의 소통이라는 면에서 주목할 만한 다양한 요소들을 지닌 회화 형식이기도 하다.

 

이러한 소재의 선택과 그것의 가공, 그리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은 분명 긍정되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인간과 자연에 관한 작가의 성찰 역시 존중되어야 할 부분일 것이며, 그것은 바로 오늘의 우리가 당면한 절대 화두이기도 하다. 이러한 전제 위에서 만약 작가가 민화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가공과 취사선택의 과정을 거쳐 보다 한 걸음 더 현대라는 시공을 반영해 낼 수 있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현대인의 삶에 대한 성찰을 더할 수 있다면 작가의 작업은 새로운 상황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것은 마치 나비와 내가 구별이 모호해지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그것과도 유사한 것이다. 즉 민화를 전통시대의 산물로 규정하지 않고, 작가 역시 현대라는 시공에 집착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는 어쩌면 전통을 바라보는 기본적인 원칙일 것이며, 작가가 몰입하고 있는 인간과 자연, 전통과 현대에 대한 영원한 과제이자 화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성실한 작업 의지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건강한 의식을 존중하며 다음 성과를 기대해 본다.

 

 

글 : 김상철(미술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