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 아론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히브리서 5:1~14)
* 본문요약
사람의 죄를 속하는 속죄제를 드리는 대제사장은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멜기세덱의 계열에 속한 대제사장의 직분을 예수님께 맡기셨고,
예수님은 고난을 받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그들 역시 연약한 자이므로
자기들을 위해서도 속죄제를 드려야 했으나,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고난을 받기까지 순종하여
완전하게 되신 후에 우리의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더욱 성숙한 신앙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찬 양 : 204장(새 288) 예수로(를) 나의 구주 삼고
86장(새 86) 내가 참(늘) 의지하는 예수
* 본문해설
1. 대제사장의 자격(1~4절)
1) 대제사장들은 사람 가운데서 택한 자이므로 하나님께 속한 일(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사람을 위하여 예물을 드리고 속죄하는 희생의 제사를 드리게 하나니
2) 대제사장이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자기도 연약한 자이기 때문이라).
3) 그러므로 (이렇게 대제사장은 자기도 연약하므로)
백성을 위해서뿐 아니라 자신을 위하여도 속죄하는 제사를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4) 이 존귀는(이 영광스러운 직분은) 자기 스스로 얻지 못하고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2.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5~10절)
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셔서(스스로 자기를 높여서) 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시편 2:7) 라고 하셨고,
6) 또 다른 곳에서도 말씀하시되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멜기세덱의 계열에 속한) 영원한 제사장이다”(시 11:4)라고 하셨으니
7) 예수께서 육신으로 세상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경건하심(경외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고난을 통해 순종하는 법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로부터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멜기세덱의 계열에 속하는) 대제사장으로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6절) :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은 왕이었음에도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제사를 드렸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구약에서는 왕과 제사장이 철저히 구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멜기세덱 한 사람만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왕과 제사장이 구별되어 있는 아론 계열의 제사장이 아니라
왕이면서 동시에 제사장인 멜기세덱 계열에 속한 제사장이시라는 뜻입니다.
- 고난을 통하여 순종하는 법을 배워서(8절) :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배우는 자리에 들어오셨다는 것으로,
우리를 구하시기 위하여 연약한 육신을 입은 자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 순종하는 법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8~9절) :
이 말씀은 예수께서 고난을 받기 전에는 불완전한 분이셨다는 뜻이 아니라
고난을 받으심으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대제사장으로서 완전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 일로 주의 이름으로 불리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3. 젖을 먹는 자와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자(11~14절)
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여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12) 너희가 믿은 지 오래되었으므로 지금쯤 마땅히 선생이 돼 있어야 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군가로부터 가르침을 받아야 할 형편에 있으니,
너희는 젖이나 먹고 단단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자가 되었도다.
13)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아직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옳고 그른 것을 분별할 능력이 없는 자요),
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믿음이 성숙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훈련으로 연단된 분별력과 세련된 지각을 가지고 있어서)
선과 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 듣는 것이 둔하여(11절) : 노드로이
‘둔하여’에 해당하는 ‘노드로이’는
‘듣는 것에 무관심한, 이해력이 부족한’을 뜻합니다.
이해하기 어려우면 그것을 묻고 배워서 깨달아야 할 텐데
나태하고 게을러서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서
도무지 깨닫지 못하는 상태에 있다는 뜻입니다.
-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13절) :
그리스도에 관한 진리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주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를 잘 알지 못하므로 그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합니다.
-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14절) : 아이스데테리아
‘지각’에 해당하는 ‘아이스데테리아’는
스토아학파에서 ‘이성(logos, 理性)을 자각하는 감각기관’을 가리키던 말로,
여기에서는 주께서 주신 의의 말씀을 분별할 수 있는
‘신령한 영적 분별 기능’, 혹은 ‘영적인 감각기관’을 뜻합니다.
주께서 주신 신령한 감각기관을 사용하여 말씀대로 살기에 힘쓰면
훈련과 연단을 받아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성숙하고 세련된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 묵상 point
1.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5~10절)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들을 이해하려면
먼저 구약의 대제사장의 역할을 이해해야 합니다.
1) 구약의 대제사장의 중요한 두 가지 역할
➀ 온 백성의 죄를 위한 속죄제를 드리는 역할
➠ 일반 제사장의 역할 : 속죄제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죄를 지은 그 사람이 죽어야 용서를 받습니다.
그런데 죄를 지은 자마다 죽어야 한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자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짐승이 죽게 함으로써 용서받게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죄를 지으면
그가 기르는 짐승 중에서 자식처럼 아끼는 흠 없는 것을 제물로 바칩니다.
그 사람을 대신하여 그 짐승이 죽는 것입니다.
그 짐승을 성막 앞으로 가지고 가서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면 제사장이 기도해 줍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죄가 그 짐승에게로 옮겨지고,
그 짐승이 제물로 바쳐짐으로 그의 죄가 사함을 받습니다.
이것이 속죄제입니다.
사람들이 제사장 앞에 나와서 자신의 죄를 속하는 제사를 드려줄 것을 요청하면
제사장은 그 사람을 대신하여 속죄제의 제사를 드립니다.
➠ 대제사장의 역할 : 온 백성을 위한 속죄제
보통 제사장은 일반인들의 속죄제를 드리지만,
대제사장은 1년에 하루 대속죄일에 온 백성의 죄를 위한 속죄제를 드립니다.
그러면 그가 드린 속죄제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온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➁ 온 백성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중보자(중재자)의 역할
대제사장은 대속죄일에 온 백성을 위해 속죄제를 드릴 뿐만 아니라,
온 백성을 위해 대신 간구의 기도를 드립니다.
이때 대제사장은 온 백성의 대표자 자격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받으시고
온 백성에게 하나님의 복과 은혜를 내리십니다.
2) 이 두 가지 일을 온전히 이루신 예수님
이렇게 대제사장은 온 백성들을 대표하여 속죄제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 온 백성을 위한 기도를 하는데,
예수님은 구약의 대제사장이 했던 이 두 가지 일을 온전히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➀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속죄하는 예수님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께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모든 권한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할 만한 아주 특별한 제물이 필요합니다.
사람이 죄를 지었으니 사람이 죽어야 하지만
온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해서는 죄 없는 완전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 정상적으로 태어난 사람 중에서는 죄 없는 자가 없으니
예수님께서 죄 없는 완전한 사람으로 오셔서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자신이 친히 제물이 되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➁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중재하고 중보하시는 예수님
그리고 예수님 이름을 우리에게 주셔서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직접 고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구약의 대제사장이 했습니다.
인간 대제사장이 하나님을 대리하여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대리하여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친히 하나님과 우리의 중재자 역할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 묵상 :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시며 동시에 스스로 그 속죄의 제사를 위한 제물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제사장으로서 해야 할 모든 사명을 다 이루신 예수께
감사하며 찬양합시다.
2.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신 예수님
1)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대제사장의 임무를 완전히 이루신 예수님(8~9절)
예수님 역시 성삼위 중 한 위치에 계신 성자 하나님이셨으나
온 세상 만민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성부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죄 없는 자만이 인류 구원을 위한 속죄의 제물이 될 수 있으므로
성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스스로 자신이 속죄의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자라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온전히 여시고
대제사장의 임무를 완전히 이루셨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누구나 구원받을 수 있는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 이 일을 위하여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
그러나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해서는
주께서 우리처럼 고난을 받는 연약한 사람이 되셔야만 했습니다.
‘고난을 통해 순종하는 법을 배웠다’(8절)는 것은,
순종하기 위해서는 고난을 받아야만 하는 연약한 사람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조롱과 핍박을 받고 죽기까지 해야만 하는 연약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십자가에 지시기까지 모든 사역을 온전히 이루셔서
우리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 묵상 :
주께서 이렇게 친히 사람이 되셔서 순종하기 위해 고난 당하는 일을 모두 겪으셨으므로,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힘들고 어려운 우리의 처지를 누구보다도 잘 아시기에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고,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 큰 상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포기하지 말고
주께서 명하시는 믿음의 길을 굳건히 걷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신앙의 나태함을 경고(11절)
1) 둔한 자들 : 말씀을 듣는 것에 관심이 없는 자들
‘듣는 것이 둔하다’에 해당하는 ‘노드로이’는
‘듣는 것에 대하여 관심이 없다,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지금 선포되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아무 관심도 없이 그저 듣기만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나의 죄를 지적하는 말씀인지,
구원을 받기 위해 무엇을 어찌하라는 것인지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듣기 좋고 재미있으면 그만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자신의 삶에 적용은 하지 않고 듣기만 하는 자들이 둔한 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조금만 마음에 부담이 되는 말씀을 전해도 듣기 싫어하거나 거부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멜기세덱에 대한 말씀이 꼭 해야만 하는 필요한 말씀이지만
해봐야 그들이 들을 것 같지 않으니 그 말씀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합니다.
2) 둔한 자들 : 신앙의 앉은뱅이
‘둔하다’는 말은 또한 신앙의 앉은뱅이를 뜻합니다.
누군가 옮겨주어야만 움직이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발로 스스로 움직일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영양실조의 사람들입니다.
신앙생활을 적당히 하고 세상일도 적당히 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혜롭게 보이겠지만,
언제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힐지 알 수 없는 위험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사자나 호랑이가 집단에서 떨어진 동물들을 노리듯,
악한 영들이 이런 자들을 노립니다.
● 묵상 :
말씀을 듣다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다면
질문을 하든지 배우고 훈련을 받아 그 말씀의 뜻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학교 공부나 직장의 문제는 어떻게 해서든 해결을 하면서
말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이
데면데면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바로 둔한 자들입니다.
당신은 이런 때 어떻게 합니까?
이런 때 당신의 태도가 곧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자세를 나타냅니다.
4. 젖을 먹는 자와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자(11~14절)
1) 젖을 먹는 자 : 영적인 갓난아이의 상태(13절)
이렇게 영적으로 둔한 상태가 계속되면 아무리 오래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신앙의 초보 상태를 면할 수 없습니다.
본문은 신앙의 초보자를 젖을 먹는 자로 표현했습니다.
젖을 먹는 갓난아이처럼
누군가 도와주어야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연약한 자라는 뜻입니다.
젖을 먹는 상태란 적극적으로 말씀대로 살려 하기보다
보호된 피난처 아래에서 머물러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엄마가 아기를 보호해 주듯 누군가가 나를 이끌어 주어야만 하는 상태,
다른 사람의 봉사의 뒷전에서 머물러 있는 자입니다.
2)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장성한 자 :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14절)
➀ 지각을 사용하므로 : 거듭남의 증거로 우리 안에 주신 신령한 감각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 거듭난 자가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생명이 생깁니다.
이 새로운 생명을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고(고린도후서 5:17),
예수님은 ‘영’이라고 하셨습니다(요한복음 3:6).
이 생명은 마치 엄마의 뱃속에서 아기가 엄마와 탯줄로 연결되어 있듯이
하나님과 생명이 연결된 아주 특별한 생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시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는 신령한 감각이 생깁니다.
그것을 본문 14절에서는 ‘지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➁ 연단을 받아 : 말씀을 따라 사는 자가 받는 고난으로 연단을 받음
그러나 우리가 거듭난 후 새로 받게 된 새 생명의 이 신령한 감각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의를 분별하여 말씀대로 바르게 살려 하면
이 악한 세상으로부터 강한 저항과 압박을 받게 됩니다.
요셉은 그의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노예로 팔려 갔고
수많은 선지자들이 악한 자들에게 미움을 받아 고난을 받았습니다.
➂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9)
그러나 그 고난과 저항에도 계속 주의 말씀대로 살기에 힘쓰면
그 과정에서 연단과 훈련을 받아 장성한 믿음을 가진 자로 성장하게 됩니다.
‘피곤하지 아니하면(지쳐서 중도에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을 따라 살다가 저항과 압박을 받더라도 지치지 않으면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신령한 감각을 더욱 강하게 하셔서
우리가 단단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장성한 믿음을 가진 자가 됩니다.
2) 단단한 식물을 먹는 자 : 장성한 자(14절)
우리는 단단한 음식을 먹는 장성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장성한 사람은 영적으로 훈련된 지각을 사용하여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시련과 연단을 통과하여 하나님께 그 믿음을 인정받은 자들입니다.
단단한 음식이란 마음에 부담을 주는 더 높은 수준의 말씀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은 지금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 때인지, 싸워야 할 때인지 화합해야 할 때인지,
말을 해야 할 때인지 침묵해야 할 때인지를 분별할 지혜를 가진 자들입니다.
5. 왜 신앙이 오래 되었는데도 여전히 초보 상태에 머물러 있나(1~14절)
그러나 히브리서는 많은 성도들이 주님을 믿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이제는 남을 가르칠 정도가 되었어야 할 터인데
여전히 믿음의 초보에 머물러 있는 것을 한탄합니다.
신앙이 오래되었는데도 여전히 신앙의 초보 상태에 머물러 있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1) 영적 성장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믿는 도리를 안다고 생각하여
말씀의 도를 더 배우고 훈련하는 일을 중단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성경 말씀의 내용을 어느 정도 파악한 것을
믿는 도리를 모두 아는 것으로 여기고 신앙의 훈련을 중단합니다.
2) 자신의 영적 성장에 대한 무관심 때문입니다.
세상일에 대해서는 대단히 깊은 관심을 갖고 부지런히 움직입니다.
그런데 영생의 삶을 좌우하는 자신의 영적인 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자신의 영의 상태에 관심이 없으니
더욱 영적 성장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3) 움직임이 없습니다. 반응이 없습니다. 그러다 영적 생명현상이 사라졌습니다.
말씀을 배우고 훈련하는 일을 중단했으니 믿음의 길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어쩌다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더라도
그 말씀에 대하여 어떠한 반응이나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저 듣기만 할 뿐입니다.
이런 상태로는 아무리 오래 시간이 지나도 신앙이 성장 되지 않습니다.
➠ 우리의 육신이 생명의 원리로 그 생명이 이어져가듯
우리의 영도 생명의 원리로 그 생명이 이어갑니다.
잘 먹고 잘 움직여야 우리의 육신이 건강해지듯
우리의 영도 영의 말씀을 잘 먹고 그 말씀대로 잘 움직여야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영은 다시 죽게 됩니다.
➠ 신앙은 관심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말씀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것을 통해서 우리의 영의 상태를 살필 수 있습니다.
거울을 보고 내 몸의 상태를 살피듯
말씀을 통해 나의 영의 상태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각자 자신의 영의 상태에 관심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정기적인 신앙의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하십시오.
신앙의 훈련이란 단순히 성경말씀의 내용을 파악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훈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내 삶에 적용하는 일을 날마다 끊임없이 해야만 합니다.
이 일을 중단하면 당신의 신앙은 멈추다가 사라지고 맙니다.
4) 건강의 3요소 : 좋은 음식, 좋은 공기, 적절한 운동
우리의 육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좋은 양질의 음식을 골고루 먹어야 하고,
좋은 공기를 호흡하며, 적절하게 운동을 해야 만합니다.
이 건강의 3요소가 신앙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양식은 말씀에, 호흡은 기도에 적용되고,
적절한 운동은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것에 적용됩니다.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공기에서 살더라도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면 한 달을 견디지 못하고 죽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를 하고 있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바리새인들 같은 신앙의 동맥경화증에 걸리고 맙니다.
육신의 건강을 위해 잘 먹고 좋은 공기 마시고 적당히 움직이며 운동을 하는 것처럼
영의 건강을 위하여 좋은 양식인 말씀을 먹고,
영의 호흡인 기도를 쉬지 않으며,
그 말씀에 따라 적절히 움직여 더욱 건강한 영을 가진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6. 우리가 거룩한 백성이 되는 길
1) ‘거룩’은 오직 주님과의 신비로운 연합을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거룩’이란 회개의 과정을 통해서 그 죄를 용서받는 자들이 내가 하나님 안에,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시는 신비로운 연합에 이르렀을 때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훈련하고 묵상하는 과정에서 많은 갈등과 아픔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거룩함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2) 출애굽 후 이스라엘이 거룩해지는 데 40년이 걸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데까지 40년이 걸린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10가지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경험을 하고도
광야 40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이 얼마나 놀라운 분이신지를 경험했고,
그 능력의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회개하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들어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 결과로 얻은 것이 ‘거룩한 백성’이라는 칭호입니다.
3)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예배 한 번으로 곧바로 거룩한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건축물을 통해서나, 파이프 오르간 같은 시설물들,
성가대나 엄숙한 예배의 분위기들, 경배와 찬양들을 통해서
단번에 거룩함을 느끼게 하려 합니다.
또 그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회개도 없고 자신의 죄에 대한 아픔도 갈등도 겪지 않은 상태에서
거룩한 감정을 느낀 것을 은혜라 여기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출애굽 한 후에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모른 채
예배 한 번으로 거룩한 자가 되겠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지도 못하고, 회개도 배우지 못했으며
하나님의 은혜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예배 한 번 참석하고 곧바로 거룩한 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거짓말이고,
그런 교회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사기입니다.
4) 이런 ‘가짜 거룩’에 조심하십시오.
그러나 예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내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있는
신비적인 연합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경험된 거룩함은 가짜 거룩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거룩하게 보이는 분위기나 환경이
오히려 신앙을 방해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단지 신앙의 유희, 신앙의 감정 놀음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 묵상 :
➀ 내 마음 중심의 자리를 살피십시오.
그러므로 그 예배와 집회의 결과 내 마음 중심에 예수님이 계신지,
아니면 그 뜨겁고 감동적이었던 분위기가 내 마음을 자리 잡고 있는지,
단지 성도들과의 친교가 마음에 들어 참여하고 있는 것인지,
예수님 바로 그분을 사랑하는 것인지 내 마음의 중심의 자리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➁ 겉보기에만 그럴듯한 ‘가짜 거룩’에 조심하십시오.
예수님만을 믿고 섬기는 공동체가 조금 부실하게 보이고,
예수님 이외에 다른 것들도 함께 섬기는 공동체가
예전적으로 더 거룩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거룩은
진짜 거룩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보기에만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을 좇지 말고,
초라하게 보이더라도 내 마음에 참된 경건을 심어주는 것을 좇는 자가 되십시오.
* 기도제목
1.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시고, 친히 그 제물이 되셔서
우리 구원의 근원이 되신 주께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2. 말씀을 듣기에 둔한 자가 되어
신앙의 초보에만 머무는 자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3. 젖이 아니라 단단한 음식을 먹을 만큼
성숙한 신앙을 가진 자가 되게 하옵소서.
4. 신앙의 감정 놀음에만 머물지 말고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5. 은혜의 변두리만 머물지 말고
주님과 교제하는 신앙의 더 깊은 곳에 들어가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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