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스크랩] 제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술

하늘이슬 2009. 1. 14. 14:15

 

제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기술

 

청주교대, 박성희

 

선생님들이 교실에서 가장 많이 의지하는 지도 방법이 바로 꾸중과 칭찬입니다. 하지만 그 중요성에 비해서 이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방법적 지식은 별로 개발되지 않았습니다. 시중에 출판된 베스트셀러들도 선생님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채워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필자는 꾸중과 칭찬에 대한 책을 써냈습니다. 바로 <꾸중을 꾸중답게, 칭찬을 칭찬답게, 학지사, 2005>라는 책입니다. 이 책에서 필자는 상담적인 관점을 바탕으로 학생과 교사 모두가 성장하는 꾸중과 칭찬법을 소개하였습니다. 앞으로 전개될 칼럼 속에는 이 책의 엑기스를 뽑은 핵심 내용이 다루어질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열띤 성원과 정겨운 조언을 기다립니다.

 

1. 꾸중을 꾸중답게, 칭찬을 칭찬답게 (2006. 2. 8)

 

“교사는 입에 쓰지만 몸에 좋은 꾸중 또는 달콤하지만 몸에 약이 되지 못하는 칭찬이 아니라, 먹기도 좋고 몸에도 좋은 꾸중과 칭찬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 꾸중과 칭찬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정답: 부모님, 선생님, 그리고 …….

 

꾸중을 왜 하는가? 칭찬을 왜 하는가? 원론적인 질문을 해 보자. 꾸중과 칭찬에는 상대를 변화시키는 마술적인 힘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책상 사이를 누비며 자유분방하게 쉬는 시간 10분을 즐기는 30여 명의 아이들, 또래들 사이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끝없이 일어나는 사각의 공간, 문 하나만 열면 좁은 교실을 벗어나 냅다 달리고 싶도록 유혹하는 쫙 펼쳐진 복도, 학생들이 아무리 급하게 뛰어다녀도 쉬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은 수업 시간을 방해하기 마련이다. 이 때 교사의 꾸중 한 마디면 숨소리마저 부담스러운 조용한 교실이 된다. 그러나 교사의 칭찬 한 마디면 좀 전의 얼어붙은 긴장은 순식간에 녹아버린다. 이 보다 더 매력적인 힘이 또 있을까? 즉각 나타나는 이 같은 효과로 인해 교사와 학부모는 꾸중하거나 칭찬하는 일에 쉽게 익숙해진다.

 

게다가 우리의 학교 현실은 학급과 학교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 담임교사에게 일차적 책임을 묻는다. 때문에 학생들의 신체적․정서적 성장을 고려한 쉼터가 거의 없는 열악한 학교시설과 비좁은 콩나물 교실에서 학생들의 질서 지키기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책임을 문책당할 만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하여 교사는 엄격한 행동 규칙을 설정해야 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칭찬보다 꾸중을 많이 하게 된다.

 

칭찬 또한 엄격한 규율을 상대적으로 잘 지킨 학생에게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렇듯 꾸중과 칭찬을 교육과 뗄 수 없는 것이 우리 상황이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가르침이 있는 곳에 꾸중과 칭찬이 항상 함께 있어왔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꾸중과 칭찬이 이러한 것이라면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의존하는 ‘필요악’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꾸중과 칭찬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꾸중과 칭찬의 힘, 그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상대에 대한 사랑이다. 진정으로 사랑하기에 그들을 꾸중할 수 있고 칭찬할 수 있다. 그런데 꾸중과 칭찬이 상대에게 사랑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때로 서로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옛날 우리는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고 하였다.

 

그러나 요즘은 “먹기 좋은 떡이 몸에도 좋다”고 하는 시대다. 교사는 입에 쓰지만 몸에 좋은 꾸중 또는 달콤하지만 몸에 약이 되지 못하는 칭찬이 아니라, 먹기도 좋고 몸에도 좋은 꾸중과 칭찬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꾸중과 칭찬은 학생이 ‘옳은’ 혹은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기를 기대하는 행동이다. 바람직한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학생이 맛있게 먹어서 몸에 약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꾸중을 꾸중답게 칭찬을 칭찬답게 하는 원리가 무엇인지, 좋은 꾸중은 어떤 것이며, 나쁜 칭찬은 어떤 것인지 등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실천지식으로 다듬어 가야한다. 이 칼럼을 통해 꾸중을 꾸중답게, 칭찬을 칭찬답게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보도록 하자.

 

 

2. 꾸중은 서로에게 약이 되어야 (2006. 2.21)

 

“‘저 녀석은 내가 수업 할 때마다 저렇게 방해 행동을 한단 말이야. 날 무시하는 거야.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쳐 놓아야지.’ 하는 식으로 2차적 생각과 느낌을 덧붙이게 되면 학생에게 도움 되는 꾸중을 하기 어렵게 된다.”

 

꾸중은 “꾸지람의 높임말”, 꾸지람은 “아랫사람의 잘못을 꾸짖음, 또는 그 말”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아랫사람의 ‘잘못’과 ‘꾸짖는 말’이다.

 

‘잘못’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결과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동이며, 다른 하나는 바람직한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행동이다. 수업 시간에 떠드는 행동은 교사의 수업 진행과 다른 학생의 학습을 방해하므로 잘못된 행동이며, 동시에 수업 시간에 기대되는 바람직한 행동기준(자신의 학습을 위하여 수업에 집중하는 등)을 어겼으므로 잘못된 행동이다.

 

여기서 우리는 꾸중을 하는 중요한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학생의 잘못된 행동을 제재함이요, 다른 하나는 잘못된 행동을 고쳐 바람직한 행동을 하라고 격려함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자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서 그치는 경향이 있다. 잘못된 행동을 꾸짖고 야단치는 데서 멈추는 것이다. 제대로 된 꾸중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학생이 행동을 변화시키도록 도움을 주는 데에 있다. 이렇게 보면 꾸중은 궁극적으로 꾸중을 당하는 학생의 성장을 위해서(for you) 존재함이 분명하다.

 

‘꾸짖는 말’에 대해서도 분석해 보자. 꾸중하는 사람은 꾸짖는 행위를 통해 상대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서 쌓인 스트레스를 말끔하게 털어낼 수 있어야 한다. ‘앞뒤 가리지 않는 화풀이’가 아니라 꾸중의 목적을 달성하면서 꾸중 하는 사람이나 꾸중 듣는 사람에게 감정적인 앙금이 남지 않도록 꾸짖을 때 꾸중은 두 사람 모두에게 약이 된다.

 

서로에게 약이 되는 올바른 꾸중은, 1차적 생각과 느낌에서 멈추고 이를 표현할 때 가능하다. 1차적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라는 말은 학생의 잘못된 행동을 접하고 처음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에 충실하게 자기를 표현하라는 뜻이다.

 

‘저 녀석이 수업 시간에 떠들어서 수업에 방해가 되니까 짜증이 나네. 좀 조용했으면 좋겠다.’ 이렇게 아이 행동을 보고 처음 떠오른 느낌과 그런 느낌이 생기게 된 원인을 드러내면 된다. 여기에다 앞으로 아이가 행동하기를 바라는 바람직한 행동 내용을 추가하면 아주 좋은 꾸중이 된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저 녀석은 내가 수업 할 때마다 저렇게 방해 행동을 한단 말이야. 날 무시하는 거야. 이번 기회에 버릇을 고쳐 놓아야지.’ 하는 식으로 2차적 생각과 느낌을 덧붙이게 되면 학생에게 도움 되는 꾸중을 하기 어렵게 된다.

꾸중은 인격이라는 주장이 있다. 꾸중이 단순히 사람을 변화시키는 기술이 아니라 꾸중하는 사람의 인격, 즉 삶의 방식을 반영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꾸중이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꾸중하는 사람의 삶의 방식과 인격의 힘에 달려 있다. 교사가 학생에게 효과적인 꾸중을 하려면 꾸중하는 기술뿐 아니라 자신의 인격 향상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꾸중을 교사의 전문성과 인격적 만남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3. 꾸중의 원리 (2006. 2.28)

1) 진정성의 원리

 

첫 모의고사를 치른 후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했다.

“어디 가고 싶니?”

“○○대 약대요!”

“뭐? 야 너 못가. 네 실력으로? 네가 어떻게 여길가?”

“……”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 수능에 재도전하여 다시 교대 입학. 그러면서도 다시 약대 편입 시험을 생각하는 한 학생의 진학 상담 경험기이다. “넌 갈 수 없어!”라는 그 말이 아직도 귓가에 선명하게 들린단다. “당신이 뭐데 나를 함부로 평가하나.”라는 생각이 심장을 친다고 한다. 약대에 대한 미련 때문에 현재의 삶을 자유롭게 누리지 못하는 그 학생의 꿈은 자신이 약대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고3 시절 진학 상담을 했던 담임선생님 귀에 들어가게 하는 것이란다.

 

이처럼 꾸중은 날 선 칼과도 같다. 잘 사용하면 학생의 성장을 지원하는 약이 될 수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힌다. 교사의 잘못된 꾸중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고 학교생활에 재미를 잃어버리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교사는 명심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은 꾸중이 될 수 있을까? 꾸중의 원리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일상을 하나씩 되짚어 보자.

 

‘이 분은 나의 성장에 진심으로 관심을 갖는구나’ ‘진지하고 공평하게 꾸중을 하는구나’ ‘나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라고 느낄 때 꾸중의 강도가 아무리 강해도 꾸중에 대한 반발심은 별로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위하는 상대의 마음에 감동하여 빠른 속도로 변화한다. 여기서 우리는 ‘진정성’이라는 꾸중의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 진정성은 온 정성을 쏟아 상대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성실성, 상대방과 대화를 하며 느끼는 내면의 느낌과 외부 표현을 일치시키는 일치성, 상대방에 대해 상호 신뢰감을 갖는 신뢰성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니까 진정어린 꾸중은 온통 상대방이 중심이 되는 꾸중을 말한다. 한번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자. 누군가 나에게 이런 꾸중을 한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할까? 지금껏 나는 이런 진정성을 가지고 학생들을 꾸중하였는가?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이라는 영화를 보면 상담자가 청담자를 꾸짖는 장면이 나온다. 여기에서 상담자의 감정은 매우 격하게 표현되는데 이에 대한 청담자의 반응이 의외로 긍정적이다. 상담자의 꾸중에 진정성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표출되는 감정의 강도보다 그 꾸중이 정말 상대를 위한 것인지, 그리고 그 감정이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순수한 관심에 기인한 것인지가 더 중요한 문제임을 보여 준다. 이처럼 꾸중하는 사람의 태도와 자세는 꾸중의 효과에 크게 영향을 준다. 교사가 학생의 성장을 돕기 위하여 진지하고 순수하며 진정어린 마음으로 꾸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를 위한 약대인지도 모른 채 몇 년을 방황했고 지금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 학생을 보며 생각해본다. 만약, 진학 상담을 하셨던 담임선생님이 진정성의 원리를 알고 계신 분이었다면 이 학생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2) 인격존중의 원리 (2006. 3.7)

 

“얘, 상길아. 고기 한 근 다오.”

“박서방, 고기 한 근 주시게.”

“이 놈아, 같은 한 근인데 어째서 이 사람 것은 크고 내 것은 작으냐?”

“손님 고기는 상길이가 자른 것이고, 이 어른 고기는 박서방이 잘랐으니까요.”

 

고기 한 근에 얽힌 우리의 옛 푸줏간 이야기처럼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하는 일은 사람살이의 기본이다. 따라서 꾸중을 할 때도 상대의 인격은 존중되어야 한다. 인격을 무시하는 꾸중은 효과도 없을뿐더러 인간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만다. 그렇다면 인격을 존중하는 꾸중은 어떤 것일까?

 

첫째, 인신공격을 하지 않는다. 꾸중할 대상은 학생의 인격이 아니라 행동이다. 꾸중은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수준에서 그치면 된다. “영희야, 네가 수업 시간에 떠들면 수업하기가 어렵지?”처럼 학생의 잘못된 행동에 초점을 두고 이를 그대로 기술하는 꾸중을 ‘기술적/묘사적 꾸중’이라고 한다.

 

학생을 교육하는 교사의 입장에서는 가능하면 기술적/묘사적 꾸중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야, 너는 잘 생기지도 못한 놈이 뭐가 잘났다고 수업 시간에 떠드냐?(못 생긴)”, “도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기에 행동하는 게 그 모양이냐?(가정교육을 받지 못한)”처럼 인신공격성 꾸중에는 평가하는 언사가 들어있다. 이렇게 학생 또는 학생의 인격을 평가하며 꾸짖는 것을 ‘평가적 꾸중’이라고 부른다. 인신공격을 피하려면 평가적 꾸중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 외에 학생을 비아냥거리거나 조롱하는 말, 위협하는 말, 설교․훈계하는 말, 심리 분석하는 말 등을 사용하지 않도록 한다.

 

둘째,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꾸중하지 않는다. 남과 비교돼서 꾸중을 당하면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고 열등감을 느끼게 되며 잘하려는 의욕이 사라져버린다. 아울러 비교의 대상이 된 사람에게 이유 없는 질투와 적개심을 느끼게 된다.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했으면 그 잘못된 행동을 꾸짖는 것으로 충분하다. 흔히 학교에서는 모범생, 가정에서는 잘나가는 형・동생과 비교하며 꾸중하는데 이는 아주 좋지 않은 방법이다.

 

셋째, 개성을 꾸짖지 않는다. 성격, 외모, 버릇, 말투, 취미, 호기심 등 학생의 고유한 특성은 꾸중할 대상도 아니고 꾸중한다고 해서 달라지지도 않는다. 만일 학생의 어떤 특성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학생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자신의 시각을 고쳐야 한다. “넌 말투가 왜 그러니? 좀 듣기 좋게 고치도록 해라.”고 꾸중하면 학생은 말하는 것에 대해 심적 부담을 느끼게 되고 심하면 교사 앞에서 아예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넷째, 비밀스럽게 꾸중한다. 진정으로 꾸중이 상대의 성장을 위한 것이라면 개인적으로 만나 비밀스럽게 꾸중할 일이다. 여러 사람 앞에서 공개적으로 꾸중을 하면 아동은 깊은 상처를 입게 되고 잘못된 행동을 고치기는커녕 교사에 대한 적개심을 쌓아간다. 흔히 본보기로 한 아이를 세워 꾸중하는 일이 있는데 이는 한 아이의 인격을 짓밟아 버리는 참으로 잔인한 짓이다. 칭찬은 여러 사람 앞에 드러내놓고 해주는 것이 좋지만 꾸중은 사적으로 만나서 비밀스럽게 해주는 것이 좋다. <한국교육신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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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아동상담센터
글쓴이 : 상담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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