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방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은총 빌존슨

하늘이슬 2010. 1. 16. 10:49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은총

 

 

빌존슨

 

 

많은 교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하여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것이 얼마나 우리 일상의 삶에 영향을 주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안과 주변에 존재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실상은 우리가 는으로 보는 물질 세계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그 세계와 얼마나 관련을 맺고 있는가에 따라, 우리는 그 축복을 누리고 살든가 아니면 반대로 보이지 않는 세계에 의해 당황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이는 세계에  어떻게 강력하게 영향을 주는 지에 대한 좋은 예가 모세와 여호수아의 삶에 잘 나타나 있다. 모세의 명령하에 여호수아가 군대를이끌고 계곡 아래로 내려가 아말렉 군대와 싸울때이다.

 

모세는 산 위에 올라가 손을 치켜들었다. 모세가 지쳐서 손을 내릴때면 여호수아의 군대가 패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모세가 손을 들면 여호수아가 이겼다.

여호수아의 승리가 모세가 손을 드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그들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모세의 팔을 치켜들었고, 결국 여호수아의 군대는 전쟁에서 승리 했으며, 그날에 이스라엘에 평화가 있었다(출17:8-13을 보라).

 

만약 우리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은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아무리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더 좋은 전략을 세우고, 더 강력한 무기를 구입한다 할지라도 결국 우리는 전쟁에서 패하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우리의 지도자를 지원(공경)한다면 그런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승리를 유산으로 물려받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유익을 위하여 모세와 다윗과 요셉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신다. 믿음과 신실함이 입증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그 의 백성을 지도할 권위를 부여하신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도자에게 복종하여 나아갈때, 그들은 지도자들의 승리에 대한 전리품을 자연스럽게 몰려받는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유산을 통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수고하지 않은 축복을 물려받는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들이 이 사실을 깨닫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몇 가지 일들이 발생한다.

 

첫째, 오늘날 교회안에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나가서 싸우도록 부름을 받았는데, 그 전쟁은 실상 누군가에 의해 이미 승리로 끝난 전쟁이다.

그런데 계속되는 전쟁으로 불필요한 상처를 유발하고 있으며, 심지어 최악의 경우 죽음까지도 초래하고 있다.

그것들은 다 불필요한 전쟁의 재난들일 뿐이다. 하나님이 이미 숭리하여 차지한 땅에서는 더 이상 전쟁의 상처가 영광은 아니다.

 

두번째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지도자라 생각하고 있지만 본인스스로가 개인적인 승리를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성도들을 덮는 덮개라고 스스로 속이며 착각에 빠져 있다. '목자'로서의 개인의 삶 속에서도 승리하지 못한 전쟁은 결국 그에게 모여든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들의 삶속에서 아직 하나님께 복종하고 있지 않다면 그들은 분명 다른 무었인가에 복종하고 있는것이다. 그것이 그들 자신일수도 있고 또한 다른 우상일 수도 있다. 만약 사람들이 그들을 따르게 된다면 그들은 사람들을 결국 같은 우상에게로 이끌게 될 뿐이다.

 

이것이 바로 영적 권위가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런데 많은 믿는 자들이 이러한 윈리에 무지하다.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하여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감독을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을 대접하여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자기집을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 찌며(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아보리요) 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딤전 3:2-6)

 

물론 이 말이 지도자는 좋지 않은 날이 전혀 있어서는 안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만약 지도자들이 좋지 않은 삶을 가지고 있다면 그 상태에서 계속 사람들을 지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상생활 속의 죄가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박탈할 수있다. 거기에는 반드시 인내의 용광로 속에서 다루어지는 참된 회개가 필요하다.

 

인내하고 하는 것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우리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다. 지도자들의 회개를 판단할 때 시간의 요소가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나쁜 성품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교육도, 영적은사도, 경험도, 심지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람들도 결코 나쁜성품을 제거하지 못한다. 죄악의 속박을 보충해 줄 수 있는 것 또한 아무것도 없다. 과거의 승리가 결코 현재의 죄를 무효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죄악된 삶을 살고 있는 타락한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다시 세워가는 동안 진정한 덮개 아래로 들어와야만 한다.

이 덮개가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더 안전한 환경에서 회복될 수 있도록 온실효과를 나타내 준다.

 

 

 

왕의 자녀의 초자연적인 삶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