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과 영성2-영성훈련 영성상담 네기둥-둘째주(2-1)
여기서 영성훈련과 영성상담을 보고 영성훈련의 네가지 기둥에 대하여 보려고 합니다.
영성훈련과 영성 상담에 대하여 볼텐데...
영성훈련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이 걸립니다.
오늘도 버지니아세 전화가 왔어요.
영성훈련 받게 하기 위해서 la로 보내고 싶은데 받을 수 있느냐? 그랬어요.
영성훈련은 3년이 걸립니다.
3년 영성훈련을 받게 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지냐?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3년이 지나고 나면 아하~~그렇게 살아야 되겠구나 우리가 동의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 3년이 될 때입니다.
여러분 영성 훈련을 받아서 우리가 빚어지기 까지 기간이 걸리잖아요.
계절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어요, 계절도 시간이 걸리잖아요.
봄에는 뭐합니까? 봄에는 씨앗을 뿌리지요.
영성훈련에도 여러분에게 말씀을 많이 심어줘요. 말씀을 많이 듣게 합니다.
씨앗이 땅에 뿌려지는 때가 봄이에요. 그쵸?
그리고 싹이 나죠.
그럼 여름에는 열심히 뿌려진 씨앗이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이렇게 하려면 땀을 뻘뻘 흘리고 노력하는 가운데... 여름이 가장 힘든 때에요.
영성훈련은 대개 이 여름속에 많이 있습니다.
이 여름을 잘 지내야 열매를 맺잖아요.
영성훈련을 받는 이유가 열매를 맺기 위해 받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는다.
그러면 좋은 열매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내가 좋은 나무가 되면 되지요!
영성훈련 우리가 뭘 만드는 작업이냐면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한 과정이에요.
좋은 나무만 되면 좋은 열매는 절로 맺어지게 되어 있다라는 것입니다.
못된 나무가 못된 열매를 맺고 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어요.
여러분의 삶에 저의 삶에 좋은 열매가 많이 맺혀질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다음에 겨울은 안식이잖아요.
여러분 이 안식은 물론 생명단계의 삶을 사는 자에게 그 마음안에 안식이 찾아옵니다.
그 안에 온전히 주님이 거하시니까.
여기에서 말하는 겨울은 무엇을 말하느냐? 사실은 하늘나라에요.
우리가 이 땅에서는 열매맺는 일에 열심히 일하고 저 하늘나라에 가서는 안식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 영성훈련에는 주로 어떤 것을 다루고 있는가?
여러분 3년 과정이 참 빠른 과정이에요.
예수님도 제자들을 몇 년 데리고 다녔습니까? 3년 반을 데리고 다녔어요.
그러면 우리는 3년 반보다 좀더 빨리 해 보자는 얘기인데 예수님도 3년 반이 걸렸잖아요.
제자들이 만들어지는데 3년 반이 걸렸는데 다윗은 모세는 몇 년 걸렸을까요?
모세는 40년 다윗은 16년 요셉은 13년 야곱은 20년...
그러면 여러분 우리가 3년 안에 만들어보자 말하는 그 자체가 지금 짧은 건데 다른 사람에 비해서 빨리 가는 게 3년 과정이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 길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절대로 안된다는 것입니다.
에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다닐 때에 제자들에게 뭘 가리키려고 했느냐면
첫째는 가치관의 변화를 도모했습니다. 그들으 가치관의 변화.
두 번째는 진리의 훈련을 시켰어요.
하나님은 3년 반동안 그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가치관의 변화를 가리키셨어요.
우리가 왜 영성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가? 첫째는 가치관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성적인 삶을 살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럼 이 가치관의 변화는 뭡니까?
내가 갖고 있는 가치가 땅에 있는 가치가 어디로 옯겨져야 되겠어요? 하늘로.
내가 이 땅에 사는 이유가 주님이 되어야 돼요.
많은 사람들은 나 자신을 위하여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자기를 위해서 이용해요.
하나님을 자기가 잘되기 위해서 이용하더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잘되기 위해서.
근데 여러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느냐면 축복받기 위한 삶을 살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의 축복받기 위해서 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걸 받기 위해서 헌금도 많이 하고 헌금 많이 해야 축복받는다고 하니까.
자녀들 잘 되기 위해서 헌신하고, 동기가 잘 못되었다는 거에요.
헌금 많이 하는 이유가 내가 세상적으로 축복받기 위해서 하고 있다면 이거는 나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거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헌금하는 이유가 내가 하나님 때문에 해야 하는 거에요.
내가 존재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라고 한다면 헌금하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서 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하면 되는 게 아니잖아요.
헌신도 내 자녀가 잘 되기 위해서 헌신한다?
그럼 이건 하나님을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지요.
그러면 내 자녀가 잘못되어야 하느냐?
그러 말이 아니에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경험해야 하는 거에요. 우선순위가 바뀌어 있잖아요.
나를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냐?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는가? 틀리잖아요.
그러나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기뻐하는 거에요.
나를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은 아직도 어린애의 모습이더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축복받기 위해서 해요.
이게 축복은 뭐다? 따라오는 것이다.
축복 받기 위해서, 목적이 아니라 따라 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 가치관의 변화가 내 가치관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옮겨지는 것이다.
내가 육신인줄 알았는데 내가 영인 것을 발견하고 영을 위해서 사는 거에요.
내가 참 육신이라고 생각하면 이 육신을 위해서 모든 걸 하는거에요.
근데 내가 영인 것이 발견되면 어떻게 해요? 영을 위해서 산다니까.
저는 죽는 걸 생각해 봤어요.
예를 들어서 이 시대가 악하다. 종말이 온다. 핍박이 온다.
그러면 죽는 것이 다 다를거잖아요.
총 맞아 죽는 사람이 있고 단두대에서 죽는 사람이 있고, 다 다를거잖아요.
근데 단두대에서 죽는 것은 어떨까?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에 영이 그 몸에서 뜨겠지요.
영이 참 나란 말이에요.
몸은 단두대에서 머리가 끊어지고 밑에 몸이 왜 죽는냐 생각해 보니까 심장이 안 뛰잖아요. 목이 끊어지면 그냥 끝나는 거에요.
나는 단두대에서 죽는 것이 가장 행복할 것 같더라구요.
근데 그러는 순간에 영은 떠버리는 거에요.
예수 믿는 자에게는 누가 와서 그 영을 맞이할까요? 천사들이요.
그래서 여러분 참 내가 영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요.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많이 하면서 기도도 많이 하고 그러면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경험도 시켜 주세요. 영이 육체의 몸을 이탈하는 경우를요.
저도 두 번이나 해 봤거든요.
하나님이 초등학교 3학년때 경험시키시고 그리고 기도할 때 한번 이탈시키셨어요.
내가 영이 떠나는 것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오늘 아까 단두대에서 죽으면 내 영은 떠날 것이다 확실히 알겠어요.
나의 진짜는 육신 아니라는 거에요.
나의 진짜 나는 영이라는 사실이에요.
똑 같은 나에요.
우리의 가치관이 내가 육신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것하고 나의 참 나는 영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모습이 틀리지요.
그다음에 가치관의 변화인데
땅에 있는 가치관이 하늘의 가치관
내가 육신이라고 생각하는 게 영으로 바뀌고
그다음에 나로 살던 것이 주님을 위해서 사는 삶
이렇게 바꿔가는 것이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제자들을 3년 반 데리고 다니면서 이것을 추구했다는 것이지요.
그들의 가치관이 이렇게 변할 수 있도록.
그래서 주님은 뭘 얘기했냐면요 천국을 얘기했어요.
천국은 이와 같으니
오직 예수님은 땅의 일을 얘기한 적이 한번도 없어요.
오직 천국에 대한 비유와 아버지에 대한 애기만 했어요.
그러니까 그들의 가치관을 자꾸 하늘로 옮기는 역할을 했어요.
그래서 여러분 오늘도 내가 사는 목적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나는 육신이 아니라 영이라 그랬어요.
아가 우리가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잖아요.
우리 영이 어디에 있을까요?
개인적인 생각으로 배안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이 진짜 나이지, 육신은 내가 아닌데 이 세상에 살 때에 너무 육신이 괴롭다고 해서..
그럼 육신이 왜 필요하냐?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육신을 주셨을까요?
육신은 오직 영에게 복종하는 의의 병기로 쓰임받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처음에 주셨어요.
근데 이게 아담과 하와 때문에 우리가 죄에 풍덩 빠져서 죄의 병기로만 쓰임받았었죠.
그러나 주님이 오시고 나서는 우리는 이제 다시 의의 병기로 쓰임받을 수 있는 재창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육신을 주신 이유가 죄의 병기로 쓰라는 게 아니라 의의 병기로 쓰라고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주님은 어떤 훈련을 했느냐면 진리훈련을 했어요.
여러분 이것은 슬픈 얘기일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희노애락 감정이죠.
이 감정은 혼에 속한 것이에요.
지정의는 영이 아닙니다. 혼에 속합니다.
지는 머리의 지식, 배우고 하는 게 지죠!
정은 감정이죠!
의는 의지입니다.
이 지정의는 어디에서 일어나느냐면 우리 뇌에서 일어나요.
그래서 우리는 이걸 정신이라고 얘기하기도 하고 혼이라고 얘기하기조 하고 생각이라고도 얘기하죠.
거기 안에 감정이 속하고 있다는 거죠.
이 감정이라는 것은 희노애락이죠.
그런데 하나님한테는 이 희노애락의 감정이 하나님이 주시는 희노애락이 아니면 아무런 쓸때 없는 것이 희노애락, 감정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희노애락이 아닌 나에게서 일어나는 감정, 이 감정대로 사는 사람은 이 감정에는 혈기잖아요, 쾌락, 화내고 하는 것 내가 기쁜 것 쫒아가고 ,,..감정대로 사는 사람은 참 슬픈 애기지만 하나님 나라에 전혀 쓸모가 없는 사람입니다.
전혀 쓸모가 없다!
모세가 혈기 한번 부리다가 하나님이 어디로 보냈습니까?
모세의 혈기를 다루시기 위해 미디안 광야에 40년을 처박아 두었어요.
여러분 그래서 이 감정이라고 하는 것은 진리 훈련이 뭐냐면 감정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먼저 채우는 훈련입니다.
내가 너무 기분 나쁘다. 내가 너무 속상하다.
이게 다 나거든요.
이 나의 감정은 주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 안에 감정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셨어요.
이게 진리 훈련이라는 것입니다.
이게 3년 반을 데리고 다니면서.
그러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내가 생각하는 감정대로 부리고 사는 사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모습에서 전혀 멀다는 얘기지요.
그래서 육신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고 했어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어요.
내가 감정을 부리는 그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근심시키는 일인지 내가 화를 내는 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근심시키는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신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눈물을 많이 흘릴 때가 있어요.
왜냐 안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 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쳐서 복종해야 된다는 말이 나오는 거지요.
성경은 뭐라고 얘기하고 있느냐면 원수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고 기도해 주라.
원수가 오리를 가자고 그러거든 십리를 가주라.
그런데 여러분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세요?
실지로 당해 본 사람에겐 참 어려운 일이에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저는 참 안되었어요.
그래서 목표로 삼았어요.
원수가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자!
이것을 내가 실천해보지도 않고 죽어서야 되겠나?
할렐루야! 제가 승리하고 나서 간증하겠습니다.
여러분 성경은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주라는 말이 있지요.
그러면 내가 당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머리로는 이게 도저히 안 나옵니다.
그럴 때는 앉아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물어야 되요.
묻는다. 물으라!
‘하나님 제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요?’
인간의 생각이나 내 생각이나 내 감정이나 이 모든 것들은 다 필요가 없는 것이에요.
오직 하나님의 생각만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이 중요한 것이고...
그렇잖아요?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다라고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있다라면 이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뭔지를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할렐루야!!!
그래서 늘 우리 삶에는 원수들이 나타납니다.
원수 없는 사람 손 한번 들어 보세요?
진리 훈련이 무엇인가?
성경에 나온 말씀은요 어쩜 이럴 수가 있을까? 그런데 성경에는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니 오른 뺨을 때리면 어떻게 하라구요?
왼 뺨을 내밀어라.
저는 이게 안 되었어요. 그리고 무슨 말인지도 몰랐었어요.
다른 건 다 넘어갈 수 있는데 어떻게 나는 아무것도 잘못한 게 없는데 내 오른 뺨을 때리면 왼뺨을 내밀 수 있나? 이건 도저히 이해가 안가고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문제였어요.
다른 거는 다 역사잖아요.
그러니까 아~~이런 것이 있었나보다 하고 넘기면 되고 넘길 수가 있었는데 이 말씀만은 도저히 이해가 안되었어요.
근데 지금은 이해가 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는 다 나를 위해서 허락합니다.
나에게 지금 원수가 붙어 있다 그 원수를 누가 보냈다는 겁니까?
하나님이 보내셨어요.
수긍하기 어렵고 너무 힘들고 하지만 그 원수를 누가 보냈냐? 하나님이 보내셨어요.
누구를 위해서요? 나를 위해서요.
여러분 다윗이 다윗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 위해서 통일 왕국에 왕으로 앉혀지기 전까지 앉게 되기 위해서 가장 큰 공헌을 한자가 누구냐면은 누구에요? 사울왕입니다.
사울왕은 다윗이 아무 잘못한 것도 없고 오히려 그 나라를 위해 싸워주었고 했는데 사울왕은 오히려 다윗을 죽이려고 돌아다녀요. 군
사들을 3,000명을 뽑고 뽑아서 그것도 몇 년을요? 16년을요.
다윗은 사울왕 때문에 16년 동안 도망자 생활을 했어요.
편히 잠도 못자고 이불도 못 덮고 밥을 제대로 먹을 수나 있었겠습니까?
400명-600명 따라다녔는데. 어디서 식량이 나서 밥을 실컷 먹어 볼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 일을 행하신 분이 누구냐구요? 하나님이요.
하나님이 사울왕으로 하여금 다윗을 죽이게끔 쫒아다니게끔 뒤에 배경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서요? 다윗을 만들기 위해서지요.
우리 인생에 온 고난과 환란, 야고보서 1:1-4절
“너희는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뻐하라~~...”
이것은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그리하면 너희가 구비되어져서 흠이 없게 하려고 부족함이 없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인 것을 보여주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걸 깨닫게 되면 오른뺨을 때리는 자에게 가서 왼 뺨도 내밀수 있겠더라구요.
내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오른뺨을 때려봐요. 왼 뺨을 내밀 수 있는지...
그러나 그 어떤 하나님을 향한 경륜과 사랑이 깨달아지니까 왼뺨도 내밀수 있겠더라구요.
더 잘 만들어 달라고.
그래서 성경에 어떤 말씀이 있냐면 하나님은 사람들을 내 머리위로 타고 가게 하신다는 말씀이 있어요.
하나님이 사람들을 시켜서 내 머리를 타고 가게 하신다는 거에요.
그런 환란이 오고 고난이 올 때 우리는 뭐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하나님 사뿐히 즈려 밟고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너무 힘드니까.
그래서 여러분 진리가 뭐냐면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냐면 진리가 나를 끌고 갈 수 있게 되기 까지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거든요.
말씀이 나를 끌고 갈 수 있게 되기까지 하나님은 우리에게 환란과 고난을 허락해서 우리를 만드실 수 밖에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지금 내가 당한 고난과 환란은 나를 너무 사랑해서 오는 지극하신 사랑이라는 것을 개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 앞에 우리가 굴복만 되어지면 그 상황을 감사로 받을 수 있어요.
하나님 무슨 영문인지 잘 모르지만 감사로 받겠습니다.
내가 잘 만들어지길 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여러분 하나님은 너무 멋지세요!
하나님은 우리가 내가 나 자신을 알고 있는 것 보다 하나님은 나를 더 잘 알고 계셔요.
그래서 내가 건너지 못할 그 강을 하나님은 내가 생각지도 않는 환란과 고난을 허락해서 내가 건너게 하십니다.
그 손길이 와 있을 때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만 믿고 감사하길 원하는 거에요.
왜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에요.
하나님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내 감정대로 사는 사람은 정말 하나님의 통로로 쓰임받을 수가 없어요.
이스라엘 민족이 400년간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은 400년이었어요.
내가 니 후손들을 애굽에서 다른 나라 종살이해서 400년간 종살이하다가 니가 천막치고 살고 있는 이 가나안으로 내가 인도하겠다.
그런데 그들이 정작 나온 햇수는 언제냐면 430년이었어요.
그럼 왜 30년이라는 세월이 연장이 되었나?
첫째는 이스라엘 민족들이 여기가 좋사오니 비록 종살이지만 먹고 자는 것 잘 되고 있고 여기가 좋사오니 안나갈려고 그랬어요.
그래서 늦어졌어요.
두 번째는 그들을 이끌어 내는 데에 모세를 쓸려고 작정하셨어요.
뜻은 이미 하늘에서 정해져 있었어요. 모세가 태어날 때부터.
그런데 모세가 아직 안 만들어졌기 때문에.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이 400년 되는 때에는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10년이 지나도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아직 안 만들어졌어요.
그러니까 모세가 완전히 내려놓기 까지 40년이 되었을 때에야 하나님이 모세를 완전히 쓰실 만한 통로로 되니까 그때에 모세를 불러서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감정은 감정을 부리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전혀 도움이 안 될뿐더러 하나님은 그걸 원치 않는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6장 8절 가 보겠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내가 육신대로 사는 삶, 내가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두리라.
여러분 이 땅에서는 우리가 잠깐 사는 삶이잖아요.
잠깐 사는 삶속에서 육신으로 살면 썩어진 것을 거두고 하늘나라에서도 이게 잃어버리는 시간이 되고 말아요.
육신으로 사는 모든 시간에 저쪽에서 감정으로 대하고 이쪽에서도 똑같이 감정으로 대하는 이 모든 것들이 육신이죠.
그러나 저쪽에서는 육신으로 나오지만 이쪽에서 영으로 대하는 그것이 신령한 자의 모습이죠.
이런 삶을 살면 영생을 거두리라.
영생에서 저 하늘나라에서 승리한다는 거에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자가 아닙니다.
제 세상에서 승리해야 되요.
이 세상에서 내가 좀 핍박받고 내가 좀 못 살아도 괜찮아요.
대접 못 받아도 괜찮아요. 그러나 저 하늘나라는 대접받고 살아야 되요.
저 하늘나라 가서는 내가 집이 없고 내가 육신으로 다 살면 하늘나라에 가서는 home less에요. 영으로 산 게 없기 때문에 그래요. 집이 없어요.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가 보니까 내가 영으로 살 때는 천사들이 막 집을 짓고 있는데 내가 육신으로 살 때에는 그 자들은 쉬고 있더래요. 정말 그럴 것 같거든요.
그래서 여러분 육신으로 내가 이 땅에 살 때 내가 얼마만큼 영으로 살았는가에 따라서 저 하늘나라에 내가 거둘 것이 있다는 것을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을 그들의 감정의 자리에다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꾸는 훈련을 했어요.
그래서 영성훈련 과정을 보면 그래프에 대해서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영성훈련의 네가지 기둥을 간단히 보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영성훈련에는 네가지 기둥이 있어요.
왜 네가지 기둥이 필요하냐?
신앙생활이 다 이 네가지로 요약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영성훈련 네가지 기둥이 있지요.
영혼과 영성이 있지요.
육체와 영성, 물질과 영성, 대인과 영성을 네가지 기둥이라고 하지요.
영혼과 영성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지요.
그 다음에 하나님 앞에서 우리 육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다루는 것이 육체와 영성이고, 그리고 평생 우리에게 물질이 오고 가는데 그 물질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잘 사용해야 하나를 다루는 것이 물질과 영성이고, 그 다음에 우리에게 평생 이웃이 오고 가잖아요.
하나님 안에서 지체의 개념인데 대인과 영성, 사람이 올 때 영혼이 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네가지 기둥으로 우리는 살펴볼 수 있습니다.
물론 더 많이 볼 수도 있겠는데 거의 다 여기에 속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네가지 기둥에서 이 네가지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각 기둥은 본능단계가 있어요.
본능단계는 본능으로 사는 단계이구요,
두 번째 윤리단계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진리단계가 있고 그 다음에 생명단계가 있지요.
영혼과 영성 본능단계는 영혼의 자기발견이라고 해서 내가 육신이 아니고 영이다. 참 나는 영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단계가 영혼과 영성 본능단계이다.
참 내가 영이라는 것을 발견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참 많아요.
그 다음에 육체와 영성에서는 은사체험단계, 여러분이 한번씩 다 들어야 게속 진도가 나가지. 이걸 안 들으면 오늘은 육체와 영성 윤리단계를 하겠습니다, 하면 무슨 소리인지 모르고 오늘은 물질과 영성 진리단계를 다루겠습니다. 이걸 다 들어서 서론적으로 다 이해가 가야 되요.
물질과 영성은 의무와 책임단계
책임과 의무를 져보는 단계, 우리는 십일조를 지키는 삶, 또 이웃에게 십일조는 드리는 여기까지 나아가야 되는데 우선 하나님 앞에서 십일조를 지켜 드리는 삶.
대인과 영성 이게 본능단계인데 너와 나 사이에 하나님이 없습니다.
단지 너 와 나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부부도 너와 나 사이에 하나님이 없으면 잘 깨지지요.
대인과 영성에서 너와 나 사이에 하나님이 없는 단계가 본능단계이다.
오늘 나에게 원수가 나타난 것도 그 가운데는 하나님이 있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원수를 원수로 대하지 않는.
영혼과 영성 윤리단계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아는 단계이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시고 여기서는 은혜가 넘칩니다.
은혜가 넘쳐서 너무 넘치면 순교가지 생각해요.
순교하고 싶다는 열정이 막 솟아나요. 나는 주를 위해 죽고 싶다. 은혜가 충만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내 삶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많은 주의 종들이 말씀 선포는 잘 하는데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고 주를 위해서 죽겠다는 사명감은 넘치는데 삶을 보면 전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해요.
삶이 전혀 아니에요.
주를 잘 섬긴다고 하는 사람들이 윤리단계에 많아요.
그 다음에 육체와 영성 윤리단계는 실용단게라고 하는데 은사체험이 아니라 은사를 활발하게 사용하고 활발하게 나타나는 단계이다. 세탁기가 잘 돌아가면 실용적이라고 하듯이 말이다.
초보 운전자와 운전 잘하는 사람이 다르잖아요.
열심 이용하는 단계이다.
물질과 영성에서 윤리단계는 뭐냐면 열심히 심고 거두는 단계이다.
의무와 책임단계에서는 어떠냐면은 물질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알아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열심히 심고 거두는 단계, 물질이 하나님의 것임을 아는 단계이다.
그래서 열심히 심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거둡니다.
주라 그리하면 후히 되어 넘쳐서 되돌려주리라.
주는 이유가 내가 더 많이 거두기 위해서 줍니다.
내가 축복받기 위해서 주는 단계일 수 있습니다.
그다음 대인과 영성 윤리단계인데 여기에는 너와 나 사이에 하나님이 게신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니까 본능단계는 나 중심의 인간관계이고 윤리단계는 하나님중심의 인간관계가 맺어지기 시작합니다.
너와 나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이 인정만 되어도 부부 사이가 깨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영성 훈련을 받으러 오면 부부중에 하나만 와도 왜 하나님께서 부부를 맺어주셨나? 여러분 평생 웬수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부부에요.
하나님은 평생 웬수를 왜 붙여 놓았나? 평생 웬수를 붙여서 가장 잘 우리를 깍아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데 가장 공헌을 하는 자가 누구냐면 사실은 부부입니다.
그러나 부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어떤 자에게는 자식일 수 있습니다.
어떤 자에게는 직장 상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자에게는 부모가 될 수가 있고 시부모가 될 수가 있고 여러 가지 하나님게서는 일하고 계십니다.
그다음 영혼과 영성 진리단계는 내가 하나님 말씀대로 억지로라도 살아가는 단계입니다.
이게 진리단계입니다. 이게 쳐서 복종하는 것이죠.
이게 복종이에요. 순종의 말과 다르죠. 순종은 즐거이 하나님 말씀을 행하는 것이구요.
진리단계는 내가 싫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씀하기 때문에 내가 쳐서라도 복종하는 단계가 진리단계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윤리단계에서 하루속히 진리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오늘 나에게 고난이 온 이유가 뭐냐? 환란이 온 이유가 뭐냐?
하나님은 여러분의 윤리단계에 있는 자를 진리단계로 옮기시기 위해서 우리의 삶에 고난과 환란이 일어 납니다.
그래서 시편 119편에 71절-72절에 보면
내가 고난을 통하여 주의 율례를 배웠나이다. 내가 고난이 없을 때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고난이 온 후부터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나이다 라는 말이 나와요.
고난이 네게 유익이 되었나이다.
그러니까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된 이유가 주의 말씀이 내게 천천 금은 보다 승하게 된 이유가 내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천천 금은보다 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거에요.
우리가 고난을 통과하면서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가 된 것은 이게 진짜 나에게 영원한 기업이 되는 거에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것만이 나에게 기업이니다.
내가 정말 싫은데 너무 괴롭지만 내가 쳐서 복종할 때 내 내면 안에 있는 하나님이 기뻐하심과 하나님이 나를 위로하심과 그 깊은 바다가 깊은 바다를 부르는 것과 같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너무 너무 어려운데도 나를 쳐서 복종시킬 그때에 내 안에서 올라오는 그 희열은 어느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내 몸은 괴롭지만 내가 쳐서 복종시켜지는 그때에 하나님은 내 안에서 노래를 부르시는 거에요. 그게 바로 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거에요.
장성한 자는 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자에요.
어린 아이는 아직 젖을 먹는 자라고 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과 환란을 허락하신 이유가 내가 진리적인 사람으로 세워지게 하기 위해서에요.
다윗에게 사울왕이 그렇게 쫒아 다닌 이유가 다윗왕을 진리의 사람으로 세우기 위해서에요.
그래야 하나님의 일을 밑기거든요.
나에게 정말 힘든 고난이 왔다.
아 하나님이 그만큼 나를 사랑하나보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되요.
하나님이 사랑 안하는 사람은 그냥 내버려 둬요.
왜 사랑안하기 때문에요.
그러나 정말 사랑하는 자는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는 거에요.
왜냐하면 우리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정금같이 나오리라. 내가 단련된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여러분 정금 몇 k인지 아세요? 24k
이게 정금을 만들려면 불속에 몇 번 들어갔다가 나와야 하나요? 24번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에 몇 번이나 불에 들어갔다가 나왔나요?
아직 3k 되었나요? 5k 되었을까요?
18k 된 사람?
우리를 불속에도 넣으시고 물속에도 넣으시는 이유가 우리로 하여금 정금으로 만들기 위해서에요.
그러니까 많이 들어갔다가 나오는 사람일수록 더 깨끗해지는 거에요.
우리 인생을 하나님은 은을 단련함같이 하신다잖아요.
은도 몇 번 들어갔다가 나와야 돼요.
불속에 24번을 들어갔다가 나와야 정금이 된다니까요.
그러니까 맡기세요.
하나님이 설마 나를 죽이기야 하겠나? 맡기시길 바랍니다.
이게 복인 줄 믿습니다.
다윗이 바로 내 상황이라고 생각해 봐요.
1년이 아니라 16년간을 도망자 생활을 했으니.
다윗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기가 막히나.
그런데 그게 하나님이 다윗을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거에요.
그리고 가사에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마세요’
여러분은 다른 고난을 안 겪어 봤잖아요.
어떤 사람은 애를 낳았는데 뇌성마비야. 평생을 그 옆에서 애를 돌봐야 되는 거에요.
걷지도 못하고, 교육도 제대로 못받고, 잘 먹지도 못하고.
우리는 참 감사할 게 많은데 감사가 잘 안되는 것 같아요.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그러지 마시길 축원합니다.
억지로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복종하라고 했습니다.
그다음에 육체와 영성에서는 내 안에 신령한 집이 지어지기 시작하는 것인데 신령한 집이 지어진다는 것은 뭐냐면 내가 의의 병기로 쓰임받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내 육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여지기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내 육체를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린다잖아요.
아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서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했지요!
그게 바로 의의 병기로 쓰임받는 것이거든요.
그게 지금 시작되는 단계입니다.
물질과 영성 이제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내 물질을 써드리는 단계지요.
대인과 영성, 나에게 다가온 이웃, 원수로 다가왔건 친구로 다가왔건 성도로 다가왔건 진리적인 인간관계를 갖습니다.
진리적인 인간관계는 뭐냐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원수가 나타나면 원수를 내 앞에 두신 이유 그 이유는 그를 사랑하라고.
우리 존재의 목적은 원수가 내 앞에 나타났을 때 그를 사랑하기 위함이다.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다.
나를 접어두고 내 감정과 내가 하고 싶은 거 내가 미워하고 싶은거 그 모든 것을 접어 놓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서 그리스도의 장성함 분량의 충만데까지 자라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더라는 것입니다.
원수를 내 앞에 갖다 놓는 이유는 원수를 통과하게 해 달라는 하나님의 기대가 낭게 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험을 보잖아요.
하나님은 우리 앞에다가 옆에다가 시험을 갖다 놓고 니가 얼마만큼 맞는 답을 써 낼 수 있는가?
근데 하나님이 원하시는 통과점이 있어요.
우리가 시험을 보면 몇 점 이상은 통과 몇 점 이하는 탈락...
통과되면 그런 시험이 온다 안온다?
그런 시험이 안와요.
통과 못하면 통과할 때까지 옵니다.
빨리 통과하면 더 이로울 줄 믿습니다.
기뻐하세요.
하나님의 그 기대.
조집사님의 이야기 들으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저분을 사랑하면 저런 시험을 허락하시나? 속으로는 기쁘고 바깥으로는 슬픈척해야 되고,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더라는 것입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형태의 고난들이 와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이나 저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통과하라고 얼마만큼 받을 수 있는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갖다놓고 보신다니까요.
거기서 잘 써내야 되요.
잘 써 내는 게 뭡니까?
삶에서 내가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를 악물고 실천해야 해요.
진리적인 인간관계, 원수를 갖다 놓는 이유가 사랑하라고 갖다놓는다 했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다음에 생명단계요. 진리단계는 억지로 순종하는 것이고요.
여기는 즐거이 순종하는 거에요.
내 안에서 누가 사느냐면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삶,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삶이 생명 단계이다.
여기도 마찬가지, 의의 병기로 온전하게 쓰임 받는 단계이다.
주님이 내 안에 오시니까 내 육신은 온전히 거절되고 내안에 주님이 사시니까 내 몸은 그냥 의의 병기로만 사용 받는 단계가 육체와 영성이다.
육체와 영성 생명단계는 흐르는 단계이다.
나는 오로지 정거장일 뿐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흘러나가는 단계이다.
그 다음에 이 생명단계는요 나에게 온 이웃을 지체로 받는 단계이다.
지체의 개념이라고 하는 것은 내 오른쪽 발가락이 곪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다 지체거든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이나 저나 한사람은 눈을 맡을 수 있고 한사람은 손가락하 어떤 사람은 발가락 하나 어떤 람은 가장 쓸모가 없다는 그것이 아주 요긴하다고 그랬지요.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들인데 오른쪽 발가락이 곪아서 아파봐요.
그럼 그 사람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잘 못 걸어요.
이게 지체의 개념입니다.
발가락이 아픈데 내 온 몸이 아픈 거에요.
그러면 이 말이 무슨 말이냐?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하 사람이 아파요. 그 사람이 정신병에 걸렸거나 아니면 모자라거나
아니면 아파 다른 사람들이 다 멸시해요.
그리고 나에게도 잘 못해요.
이게 아픈 거에요. 곪은 거에요.
어떤 목사님은 이런 예를 들었어요.
위가 아파요.
아프다고 다 끊어 놓으나요?
발가락이 아프다고 발가락을 끊으면 병신되는 거잖아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발가락이 아프면 고름이 나면 고름을 짜서 약을 사서 약을 발라서 낫게 해야잖아요..
그게 지체의 개념이에요.
위가 아프다고 해서 위를 잘라낼 수 없잖아요.
여러분 이 대인과 영성의 생명단계는 깊어요.
주님이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신 거잖아요.
우리가 왜 참아주고 바라고 믿고 견뎌내야 하냐면 지체의 개념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은 내가 밀쳐내야 될 대상이 아니라 여러분 위가 아프면 미음을 쑤어서 먹어주고 죽을 쑤어서 먹어주고 약도 먹어주고 달래잖아요.
위를 달래잖아요.
위가 아프다고 해서 위를 끊어내는 게 아니라 달래잖아요.
그거처럼 이 대인과 영성의 생명단계는 우리에게 오는 모든 이웃을 지체의 개념을 받는 것입니다.
그가 아프면 나도 아픈 것입니다.
그게 지체의 개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옳고 그름에 빠져가지고 전혀 이 생명 단계에 이르지 못하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단계는 이 생명단계에요.
영혼과 영성도 생명단계 육체와 영성도 생명단계 물질과 영성도 생명단계 대인과 영성에서도 생명단계로 가길 원하는데 우리가 그렇게 생명단계로 못가는 이유가 늘 옳고 그름을 따지고 비난하고 정죄하고 결코 이 진리단계 생명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그런 삶을 우리가 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빌립보서3:3절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봉사할 때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라고 하죠. 나로 하지 말고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나로 대하지 말고 하나님의 생명으로 대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나로 자랑하는 게 아니라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할례당이라.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자.
갈라디아서 2:20절 보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로마서 6:13절 보겠습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체를 주신 이유가 불의의 병기로 쓰이지 않고 의의병기로 쓰임받게 하기 위해서 주셨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23절 보겠습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하나님은 날마다 나를 부인하고 주님을 쫒아오길 원하십니다.
내 감정도 중요하지 않고 내 생각도 중요하지 않고 내 의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는 내 감정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내 생각도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감정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기쁘게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으로 우리가 나를 기쁘게 하는 삶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으로 옮겨지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여 한번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나에게 온 환란과 고난은 나를 사랑해서 온 것임을 믿사오니 감사하기로 마음먹게 하소서.
주님 우리는 정금같이 나오길 원합니다.
주님 고난속에서 주님만을 바라보며 정금같이 나의 모든 아픔을 주님은 알고 계신 줄로 믿습니다.
그러나 그 아픔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 진리가 되지 못하며, 그 말씀이 의의 말씀이 되지 못하며, 아버지 우리는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얻기를 원합니다.
고난보다도 천천 금은보다도 승한 하나님의 말씀을 얻기를 원합니다.
주님 승리하게 하시고 고난이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게 하시고 감사하게 하옵소서.
아버지 원망과 불평이 아니라 감사할 수 있게 하옵소서.
너희에게 여러 가지 시험이 오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앎이라 했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했습니다.
거기에 대한 상급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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