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시인 김용택

김용택 시 모음

하늘이슬 2019. 2. 22. 16:16

김용택 시모음


김용택 선생님 시들이구요.

전부는 아니구, 몇편만 올려드려요.

그리고 시 읽어보시려면 다음 검색창에 "김용택 시모음" 이렇게 치셔도 나와요.

그리고 대표 도서로는 '그래서 당신', '김용택의 교단일기', '내 똥 내 밥', '시가 내게로 왔다'

'얘들아 금강산 가자'등이 있구요.^_^

- 무심천

 

 

 



 

섬진강 1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뜰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노을 띈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자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사람들은 왜 모를까


 

이별은 손 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벗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 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콩, 너는 죽었다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 좀 봐라
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참 좋은 당신


 

어느 봄 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 해도

좋은

당신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밤 너무나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사 랑


 

당신과 헤어지고 보낸
지난 몇 개월은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이
몹시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을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잊을 것은 잊어야겠지요.
그래도 마음속의 아픔은
어찌하지 못합니다.
계절이 옮겨가고 있듯이
제 마음도 어디론가 옮겨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의 끝에서 희망의 파란 봄이
우리 몰래 우리 세상에 오듯이
우리들의 보리들이 새파래지고
어디선가 또
새 풀이 돋겠지요.
이제 생각해보면
당신도 이 세상 하고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을 잊으려 노력한
지난 몇 개월 동안
아픔은 컸으나
참된 아픔으로
세상이 더 넓어져
세상만사가 다 보이고
사람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다 이뻐 보이고
소중하게 다가오며
내가 많이도
세상을 살아낸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당신과 만남으로 하여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고맙게 배웠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애틋이 사랑하듯
사람 사는 세상을 사랑합니다.


길가에 풀꽃 하나만 봐도
당신으로 이어지던 날들과
당신의 어깨에
내 머리를 얹은 어느 날
잔잔한 바다로 지는 해와 함께
우리 둘인 참 좋았습니다.
이 봄은 따로따로 봄이겠지요
그러나 다 내 조국 산천의 아픈
한 봄입니다.
행복하시길 빕니다.
안녕.



 

 

별 하나


 

당신이 어두우시면

저도 어두워요

당신이 밝으시면

저도 밝아요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있는 내게

당신은 닿아 있으니까요

힘 내시어요

나는 힘 없지만

내 사랑은 힘 있으리라 믿어요

내 귀한 당신께

햇살 가득하시길

당신 발걸음 힘차고 날래시길 빌어드려요

그러면서

그러시면서

언제나 당신 따르는 별 하나 있는 줄 생각해 내시어

가끔가끔

하늘 쳐다보시어요

거기 나는 까만 하늘에

그냥 깜박거릴께요

 


 

 

들 국


산마다 단풍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뭐헌다요 산 아래
물빛만 저리 고우면 뭐헌다요
산 너머, 저 산 너머로
산그늘도 다 도망가불고
산 아래 집 뒤안
하얀 억새꽃 하얀 손짓도
당신 안 오는데 무슨 헛짓이다요
저런 것들이 다 뭔 소용이다요
뭔 소용이다요, 어둔 산머리
초생달만 그대 얼굴같이 걸리면 뭐헌다요
마른 지푸라기 같은 내 마음에
허연 서리만 끼어 가고
저 달 금방 져불면
세상 길 다 막혀 막막한 어둠 천지일 턴디
병신같이, 바보 천치같이
이 가을 다 가도록
서리밭에 하얀 들국으로 피어 있으면
뭐헌다요, 뭔 소용이다요.



 

 

누이야 날이 저문다 

 

 

누이야 날이 저문다
저뭄을 따라가며
소리없이 저물어 가는 강물을 바라보아라
풀꽃 한 송이가 쓸쓸히 웃으며
배고픈 마음을 기대오리라
그러면 다정히 내려다보며, 오 너는 눈이 젖어 있구나


--배가 고파
--바람 때문이야
--바람이 없는데?
--아냐, 우린 바람을 생각했어


해는 지는데 건너지 못할 강물은 넓어져
오빠는 또 거기서 머리 흔들며 잦아지는구나
아마 선명한 무명꽃으로
피를 토하며, 토한 피 물에 어린다


누이야 저뭄의 끝은 언제나 물가였다
배고픈 허기로 저문 물을 바라보면 안다
밥으로 배 채워지지 않은 우리들의 멀고 먼 허기를


누이야
가문 가슴 같은 강물에 풀꽃 몇 송이를 띄우고
나는 어둑어둑 돌아간다
밤이 저렇게 넉넉하게 오는데
부릴 수 없는 잠을 지고
누이야, 잠 없는 밤이 그렇게 날마다 왔다




 

 

 

 

집 

 

외딴집,
외딴집이라고
왼손으로 쓰고
바른손으로 고쳤다


뒤뚱거리며 가는 가는 어깨를 가뒀다


불 하나 끄고
불 하나 달았다


가물가물 눈이 내렸다



 

 

슬픔 

 

 

딴 곳
집이 없었다
짧은 겨울날이
침침했다
어디 울 곳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