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시인 김용택

[스크랩] 김용택 시 모음 3

하늘이슬 2019. 2. 22. 16:48

 ** 자화상 ** 

사람들이 앞만 보며 부지런히 나를 앞질러갔습니다

나는 산도 보고, 물도 보고, 눈도 보고, 빗줄기가 강물을 딛고 건너는 것도 보고    

꽃 피고 지는 것도 보며 깐닥깐닥 걷기로 했습니다

 

 **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 **
겨울은 봄바람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고요
봄은 세상에서 매미 소리가 제일 무섭대요

여름은 귀뚜라미 소리가 제일 무섭고요
가을 햇살은 눈송이가 세상에서 제일 무섭대요

 

 **  지구의 일 **    

해가 뜨고

달이 뜨고

꽃이 피고

새가 날고

잎이 피고

눈이 오고 바람 불고

살구가 노랗게 익어 가만히 두면

저절로 땅에 떨어져서 흙에 묻혀 썩고

그러면 거기 어린 살구나무가 또 태어나지

그 살구나무가 해와 바람과 물과 세상의 도움으로 자라서

또 살구가 열린단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얼마나 신기하니?

또, 작은 새들이 마른 풀잎을 물어다가

가랑잎 뒤에 작고 예쁜 집을 짓고

알을 낳아 놓았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것 또한 얼마나 기쁜 일이니?

다 지구의 일이야

그런 것들 다 지구의 일이고

지구의 일이 우리들의 일이야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람이 지구의 일을 방해하면 안 돼

 

** 지구의 일 **
저기 저 가만가만 흔들리는 나뭇잎 하나
풀잎 한줄기가 그냥 흔들리는지 아냐
나도 풀잎처럼 아픔없이 휘고 싶다
온갖 것들 다 게워내고
햇살이 비치는 맑은 피로
나도 저렇게 부드럽고 연하게 가만가만
흔들리고 싶다
가만히 땅위에 누워서 텅빈 하늘을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고 싶다
저기 저 흔들거리는 상수리 나뭇잎 하나
땅 위에 바로 선 풀잎 한줄기가 그냥 흔들리는지 아냐
지구의 일이다

 

 ** 편지 **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말과

    당신의 글이

    다

    내 마음과

    내 말과

    나의 글입니다 

 

** 그 꽃 못 보오 ** 

안 가고 보지 않아도

뒤안의 목단꽃은

내 발 아래 똑똑 떨어지는데

해 지고 산 그늘 내리면

차마 뒤안에 나는 못 가오

행여, 행여나

나 볼 때 꽃잎이라도

내 발 아래 뚝뚝 떨어진다면

참말로 떨어진다면

어떻게 그 꽃 본다요

두 눈 뜨고 그 꽃 못 보오

그 꼴 나는 못 보오

 

                         ** 워매, 속 탄 것 **
                    워매, 날씨 환장허게 좋아부네
                        날이 날마다 이렇게 날이 좋아불면
                        저기 저 남산에 봄바람 살 불어불도
                        저기 저 남산에 꽃 펴불겄는디
                        저기 저 남산에 꽃 펴불면은
                        바작바작 타는 봄잔디 같은 내 가슴
                        봄불 확 불어 활활 타겄는디
                        워매, 속 탄 것
                        워매워매 속 뜨건 것
                        저기 저 남산에
                        봄바람 불동말동허고
                        요내 가슴에는
                        불이 일듯말듯허니
                        워매, 속 탄 것
                        워매워매 속 뜨건 것

 

** 나도 꽃 ** 

수천 수만 송이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납니다
생각에 생각을 보태며
나도 한송이 들국으로
그대 곁에
가만가만 핍니다

 

** 인생 ** 

사람이, 사는 것이

별것인가요?

다 눈물의 굽이에서 울고 싶고

기쁨에 순간에 속절없이

뜀박질하고 싶은 것이지요


사랑이, 인생이 별것인가요?

 

** 짧은 해 ** 

당신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기에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갈대가 하얗게 피고

바람 부는 강변에 서면

해는 짧고

당신이 그립습니다

 

 ** 그 나무 ** 

꽃이 진다

새가 운다


너를 향한 이 그리움은 어디서 왔는지

너를 향한 이 그리움은 어디로 갈는지


꽃잎은 바람에 날리고

사랑에는 길이 없다


나는 너에게 눈멀고

꽃이 지는

나무 아래에서 하루해가 저물었다

 

** 산도 물도 ** 

당신 앞에 서면

산도 물도 꽃도

지워집니다

** 마을회관 ** 

이월매조다

팔월공산이다

똥 안 먹고

뭐한다냐

하루종일

80원 잃었다

 

** 하동 배꽃 **

긴가민가 아른아른 아른거리고 
간 지 온 지 한들한들 웃기만 하네
흩날리는 한 점 꽃잎 잡아
강물 위에 어른어른 띄워놓고
산들산들 부는 바람에
발 헛디디며 나는 왔네

 

** 스님이 **

길가에 두꺼비 한 마리가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니, 두꺼비가 살며시

눈을 떴다가 도로 감아버립니다

 

저놈, 무슨 큰 걱정이 있나?

 

** 아이가 **

길가에 두꺼비 한 마리가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쪼그리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니, 두꺼비가 끔뻑끔뻑

           눈을 떴다 감았다 합니다

 

           야, 너 나 아냐?

 

출처 : 숲속의 작은 옹달샘
글쓴이 : 효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