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네 마음을 지키라-247. 바른영성훈련 성장반
게으른 자의 특징
서사라 목사
잠26:12-16
첫 시간에는 게으른 자의 특징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미래는 우리가 가는 내일을 걱정하라는 게 아니라, 내일을 준비하라는 게 아니라 영원한 미래, 영원한 미래에서 내가 찾아 쓸 것을 준비하지 않는 자가 오늘의 삶속에서 준비하지 않는 자가 게으른 자라고 했습니다.
잠언서 26장 다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언서 26장 12절에서 16절 다같이 시작
12.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
13.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14.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도느니라
15.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16.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게으른 자의 특징 중에 세 번째 특징이 뭐냐면 자신이 변화하려 하지 않는다. 변화해야죠.
첫 번째 특징은 뭐라고 그랬습니까?
스스로 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
스스로 기도하는 것도 없고 말씀 읽는 것도 없고 남이 시켜야 시키는 것 고작 그거 하나 합니다. 그게 게으른 자의 특징입니다.
두 번째는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다.
그런 얘기를 했습니다.
세 번째 특징이 뭐냐면 자신이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나길 원합니다. 할렐루야.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나길 원합니다.
근데 자신이 변화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래서 개가 늘 같은 짓을 반복하는 거죠.
개가 토한 것을 뭐라 한 거에요? 다시 먹는다는 거죠.
항상 토한 것을 다시 먹고 있는, 그러니까 자기가 변화하려고 하지 않아요.
자기가 넘어졌으면 그 넘어짐에 대하여 다시 안 넘어지게끔 자아파쇄 훈련을 통해서 자신을 내려놓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똑같은 걸 계속 반복하는 거에요.
이건 뭐냐? 내가 변화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그래요.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나를 바꾸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기가 막힌 얘기입니까?
개가 토한 것을 계속 또 먹는 것과 같은 거에요.
여러분 개가 토한 것을 자기가 먹는 것을 본 사람?
많이 봤어요? 예
근대 우리 집 강아지는 안 그러던데. 지가 토한 것은 안 먹던데.
근데 토한 것 먹죠. 개가. 그런 얘기를 해요.
저는요 책도 많이 읽고 이 영성에서 얘기하는 책도 부지런히 갖다 읽고, 또 강의도 열심히 들으러 오고, 그 다음에 테이프도 CD도 열심히 갖다 듣는데 왜 나는 안 변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말 하죠. 왜 그럴까요?
그렇죠. 게으른 거에요. 그 사람이.
뭐냐면 책도 열심히 읽고 강의도 열심히 듣고 CD도 열심히 갖다 듣는데 내가 안 변한다.
변화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중요한 게 뭡니까?
내가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CD도 들으면 뭐 합니까?
내가 안 변화하려고 하는데, 내가 안 변화하려고 하는데.
여러분 차라리 이런 거 좀 더 안하고 그 시간에 내가 어떻게 변할까? 생각하십시오.
아멘입니까? 아멘
내가 변화하는 게 더 큰 거에요.
변화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변화가 없는 거에요.
자기가 안 변하는데 변화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에요.
그런 자가 게으른 자의 특징입니다.
게으르다...
여러분 내가 변화하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변화하려고 하면 희생이 필요하고, 자기 유익을 구치 않아야 되고, 그죠?
이기적이지 않아야 되고, 그런 거 있죠. 자기 사랑을 내려놔야 되고, 그건 안하면서 대따 책은 갖다 읽고 대따 강의는 열심히 듣고 CD도 열심히 듣는데 왜 내가 안 변하냐 이거에요.
참 웃기는 얘기지요.
여러분 내가 변화하려고 할 때 하나님이 도와주는 줄로 믿습니다.
내가 내려놓으려고 할 때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거에요. 아멘
듣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듣는 것도 중요하죠.
내가 변화하려 하는 게 더 중요하다. 할렐루야.
예 그 말씀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게으른 자는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한다.
그 얘기에요. 그 얘기.
깨닫는 건 많은데 실제로 행함이 없다는 거죠.
여러분 게으른 자는 어떠냐면요?
게으른 자의 특징
자꾸 변화하라 그러니까 변화하라 그러니까 변화하라고 하라 하니까 영성훈련에 안 나타나요.
영성훈련에 안 와. 못하겠으니까.
게으른 자의 특징은 영성훈련하다 안 하는 사람이에요.
근데 여러분 어떻게 해야 되요? 끝까지 해야 돼요. 아멘입니까? 아멘
영성훈련은 될 때까지 해야 된다. 아멘.
3년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에요. 제가 보니까.
여러분 3년이 길다 라고 생각하는데 3년이 금방 갑니다.
어떠세요? 금방 가죠. 정말 금방 가요.
3년이 크리스마스 3번만 지나면 가는 거에요.
여러분 크리스마스 저번에도 보냈고 이번에도 보냈고 저저번에도 보냈죠.
근데 크리스마스 3번만 지나면 3년이에요. 금방 가.
근데 3년을 마쳤다고 내가 되었냐?
우리 3년 된 자매가 있어요.
거의 3년이 다 됐어. 물어봤어요. 앉혀놓고.
어때요? 그랬더니 옆에 두고 물어봤어요.
3년쯤 되었으면 많이 변했겠네요. 그랬더니 ‘저 부끄러워요’ 그게 진짜 답이야.
부끄러운 거에요. 3년은 지났는데 내가 변한 게 안 느껴지는 거에요.
그렇다고 할 필요가 없냐? 그건 그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는 거에요. 그게 정상이에요.
그래프는 다 올라갔는데 어~ 3년 쯤 됐으면 어~뭐 좀 됐을까 싶은데 ‘부끄러워요.’ 이게 진짜 나오는 답인 거에요.
그 자매가 ‘부끄러워요’ 그러더라구요. 잘 가고 있는 거에요.
잘 못 가고 있는 자의 태도는 어떨까요?
아 3년을 했으니까 그렇게 나오겠지요.
3년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될 때까지 하는 겁니다. 할렐루야.
제가 오죽하면 10년을 했다고 제가 얘기를 하겠습니까?
사실 10년 더 하고 있어요. 이제 여러분하고 이렇게 부대끼면서 10년 더 하고 있어요.
그래도 아직 제가 덜 된 게 발견되는데 어떻게? 많아요.
그래도 발견되는 게 너무 많아. 그래도 계속 이 길에 있으니까 결국은 안 내려놓고는 안 되더라 이거에요.
결국은 안 내려놓고는 누가 이기냐? 하나님이 이겨요.
우리가 이기는 게 아니야. 우리가 결국은 지더라 이거에요. 아멘입니까? 아멘.
붙어 있어야 여러분 하나님한테 져야 돼요.
그 야곱이 씨름하고 이겼다고 하잖아요.
그게 뭔지 아세요? 지 생각 안 내려놓은 거에요.
하나님이 왜 못 이기겠어요?
하나님한테 져야 되는데 하나님의 사람과 겨루어 사람이 이긴 거에요.
그건 자기 생각을 안 내려놨다는 거에요.
무슨 얘기인지 알죠?
자기 생각을 안 내려놓고 하나님을 이겨 버린 거에요.
우리는 그런 자가 되면 안돼요.
하나님이 우리를 이기시게 해야 돼요. 아멘.
그렇게 되기까지 우린 붙어 있어야 돼요. 아멘입니까? 아멘.
그래서 여러분 게으른 자는 자기가 변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런 자를 보면 뭐하고 있냐면요. 남만 보고 있어요.
여러분 부지런한 자는 자기를 봐요.
자기를 보는 자는 부지런한 자에요.
자기를 보면 자기를 보면 너무 많은데... 이게 부지런한 자에요.
뭐 남을 볼 여유가 없는 거에요.
내가 너무 나한테 바쁜데...
그런데 게으른 자는 자기를 볼 줄 몰라요. 남만 봐.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항상.
그 특징이 나타난 특징이 나는 남보다 낫다 이렇게 이게 진리입니까? 진리가 아닙니까?
아니지요. 이렇게 하고 살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허물만 들추고 살아요. 자기를 못 보니까.
부지런한 자는 자기를 보는 자에요.
영성은 남을 보는 게 아니에요.
영성은 그 사람이 영상이 입혀졌냐? 안 입혀졌냐? 첫째 덕목이 뭐냐면 그 남의 얘기를 하는가? 자기 얘기를 하는가? 봐야 돼요.
무슨 얘기하는지 알죠?
영성을 입문을 해서 영성이 입혀지기 위해서 가는 과정이 있어요.
바른 과정 그 바른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 그 사람의 영성에 들어서서 자기 얘기를 하고 있나 남의 얘기를 하고 있나 가만히 한번 보세요.
계속해서 1년이 지나도 남 얘기하고 앉아 있다 그러면 정말 문제가 있는 거에요.
내 얘기를 해야 돼요.
‘주님 저는 아직 이것이 잘 안됩니다.’
‘주님 저는 아직도 이 면이 모자랍니다.’
이렇게 자기를 봐야 돼요.
그래서 게으른 자는 늘 남을 판단합니다. 남을 판단해요.
여러분 생명이 뭔지 아십니까?
생명, 우리는 영성을 하면서 생명적으로 살아라.
자 여러분 판단과 분별의 다른 점이 뭐냐?
이 비슷한 말 같은데 우리는 남을 판단하지 말라고 그러죠. 분별
여러분 생명적으로 사는 사람은 분별을 합니다.
분별하는데 뭘 분별하냐?
판단하는 것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거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거.
분별하는 자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아~아직도 저분은 저기에 계시는구나’ 그걸 보는 거에요.
그게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잘했다 잘못했다가 아니라 ‘아 아직은 저분은 저기에 머물고 계시는구나’
그러면 앞서가는 나는요 그분을 잘 인도해 주면 되는 거에요. 이게 분별이에요.
근데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뭘 보고서 저거는 옳고 그르고 이런 판단이 나온다. 내 안에서. 아직 나는 옳고 그름 시비 속에 머물러 있는 자에요.
이거는 율법, 율법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이에요.
우리는 율법에서 벗어나서 복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돼야 돼요.
그런 자는 분별합니다.
생명으로 사는 자는 저 사람이 하는 게 옳고 그르고가 판단되는 게 아니라 ‘아 저분이 아직 저기 계시는구나’ 그걸 아는 거에요. 무슨 얘기인지 알죠?
여러분 우리는 하루속히 빨리 옳고 그름에서 빨리 벗어나야 돼요.
옳고 그름에서 벗어나서 ‘내가 어떻게 하면 저분을 도울 수 있을까?’
굉장히 다른 마음이지 않습니까?
내가 판단해서 저거는 틀렸고 옳고 이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저분을 도울 수가 있지?’ 이 마음으로 바꾸어져 있어요.
여러분이 최소한 제가 거의 약속드릴 수 있는 것이 3년 정도를 마치면 그 마음 정도는 바꾸어져 있어요. 할렐루야.
이것이 얼마나 큰 건지 아십니까?
그 얼마나 큰 변화인지 아십니까?
그것만은 최소한 바꿔져 있어요.
그래서 잠언서 26장 16절에 보면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
이런 사람들이 판단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고 자기 생각을 옳다 그러고 여러분 한번 생각을 해봐요.
너무나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거에요.
그 사람은 시비속에 있으면서 복음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지도 못하면서 하나님의 뜻도 알지 못하면서 자기의 생각 속에 갇혀서 다른 사람을 판단을 해요.
얼마나 그게 오차인지 아십니까?
저도 옛날에 그러고 살았어요.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서 분별하는 것도 분별이 좋은 건데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서 판단하는 것도 아닌데 지 생각 틀 안에서 저건 옳고 그르고 그것도 틀렸어요.
왜? 하나님 보시기에 그건 옳을 수 있어요. 아멘입니까? 아멘
또 우리는 내가 스스로가 판단한 자체부터가 아예 틀려먹었다는 거에요.
할 수도 없는 존재들이에요.
하나님이 그게 옳다 할 수 있는 거에요.
그런데 내 생각 속에 내 그건 틀렸고 이게 맞다는 거에요.
그 자체가 틀렸다니까요.
그걸 몰라. 우리는 모르고 그 짓을 행하고 있는 거에요.
얼마나 어리석은지.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과 틀릴 수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잘 보면 내가 덜 됐을 때 남보고 그러니깐 나의 행동을 뒤돌아서서 보면 ‘내가 참 희한한 짓을 하고 살았구나’ 그걸 알게 돼요. 아멘.
‘참 희한한 짓을 하고 살았구나!’
그러면 내가 지나온 길속에서 내가 나 자신을 보잖아요.
그럼 다른 사람의 영적 상태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영적 상담이 가능한 거에요. 아멘.
성장한 자가 영적 상담을 할 수 있어요.
내가 성장하지 못하고는 다른 사람의 지금 어느 상태에 있는지를 보는 눈이 없어요.
무슨 얘기인지 알죠? 그래서 성장해야 돼요.
지도자가 될 사람들은 빨리 성장하길 힘써야 돼요.
그 성장이라는 게 나를 보는 훈련, 내가 하나님 안에서 뭐가 잘못됐는지 보는 훈련이 많이 필요해요.
이런 소리 듣기 싫거든 빨리 성장해라.
억울하면 성장해라. 근데 하여간 성장하십시오.
성장해야 보여요. 내가 옛날에 했던 행동들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아멘.
그 다음에는요.
우리가 조금 다른 주제로 가서 이 혀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잠언서에서는 뭐라고 얘기하고 있는지 잠언서 4장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의 눈에는 참 안된 것 같은데 하나님의 눈에는 잘 되고 있는 것이 분명할 수도 있고, 인간의 눈에는 틀린 거 같은데 하나님은 그것이 옳다라고 할 수 있는 거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판단할 수 없어요.
우리 판단은 옳지가 않아요.
판단은 주께서 오셨을 때 그 모든 것을 판단하십니다.
판단하시는 분은 오직 주밖에 없다고 그랬습니다.
잠언서 4장입니다.
23절에서 24절 다같이 시작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24.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 하라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여러분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마음을 지키라고 그러죠. 마음을 지키라.
내가 어떤 마음을 먹었어요.
믿음을 가진 마음을 내가 가졌는데 예를 들어서 믿음의 마음, 그 마음을 지키라는 거에요.
왜냐하면 생명의 근원이 여기서 난다.
생명적인 삶이 이 마음에서부터 난다는 거죠.
그런데 이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가 그 이유를 한번 봤더니 대개는 말 때문에 입에서 생명이 새어 나갑니다. 말을 함부로 하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가 어떻게요?
믿음이 분명히 내 안에 믿음이 생겼는데 그 믿음을 지키지 못한 이유가 입으로 뭐하는 거에요? 입으로 뭐라 그러지? 오도방정을 떤다 그러나?
입으로 믿음을 어떻게 새어 나가게 해 버리는 거에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냥 마음속에 가만히 갖고 있었으면 될 걸 말을 뱉는 순간부터 어 진짜 그런 일이 있을 수 없을 거 같아요. 말이 나를 끌고 가 버리는 거에요. 말이. 그래요? 안 그래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리고를 돌 때 하루에 한 번씩 돌 때 말하게 했습니까? 말하지 않게 했습니까?
여리고가 무너질 때 한 바퀴씩 돌아라.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마지막 날엔 일곱 번 돌고 마지막에 가서 입을 열어서 외치라 그랬어요.
그럼 무너질 것이다. 그랬는데 하루에 한 바퀴씩 돌면서 입을 열었으면 그 2백만 명이 뭐라 그랬을까요? 돌면서 입을 열었으면 ‘야 우리가 돈다고 이 큰 게 무너지냐?’ 그래요? 안 그래요?
그 믿음이 새어 나가지 않게 해라.
그래서 하나님은 입 다물어라 그랬어요. 할렐루야.
그랬더니 그들이 진짜 입을 다물었어요. 믿음이 새어 나가지 않게.
여러분 뜨레스디아스 가서도 첫날은 침묵하게 하죠.
‘아니 우리를 왜 여기다? 아니 분명히 이 간다 그래놓고 괜찮은 데 간다고 그래놓고 이런 데 데리고 왔네’ ‘뭐 하는 거야? 도대체’ 이런 말을 못하게 하는 거에요.
입 딱 다물게 하는 거에요.
그 입조심, 입조심이 내 마음을 지키는 비결이다. 할렐루야. 아멘
믿음이 새어나간다는 거에요.
그래서 성경에는 뭐라고 얘기하고 있냐면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다.
여러분 말이 실수가 없는 사람이 없는데 그렇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건 말에 실수가 없기를 바라더라 입니다.
거기에 오늘 읽은 구절을 보면 궤휼을 네 입에서 버리며, 그러니까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그랬고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그래놓고 네 입에서 궤휼을 버리라. 입조심 하라. 사곡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그러니까 우리가 마음을 지키는 첫째 비결이 뭐냐면 입술을 지키는 거. 말이 많으면 실수가 많죠.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어디 달려있다고요? 혀에 달려 있다고요.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혀에 달려 있다고요.
혀가 그만큼 무서운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의 입에서 나가야하지 말아야 될 말이 나갔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예수 이름으로 취소합니다.
전 취소 많이 해요. 부끄러운 얘기지만. 즉시 깨달아서 예수 이름으로 취소합니다.
덮어놓고 취소 안하면 말의 힘이 나를 끌고 가더라구요.
그게 뭐냐? 사단이 날 갖고 노는 거에요.
그 말한 대로 돌아가게끔 계속 그거 갖고 놉니다.
싸움이 왜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말 때문에 싸우더라구요. 말. 말 때문에.
말 한마디 잘못한 거, 사소한 말 한마디 갖고 싸우더라구요.
그럴 때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취소한다. 그럼 영적으로 깨끗해져 버려요.
그런 거 안해 보셨어요?
저랑 이렇게 많이 하다보면 많이 해 보셨을 거 같은데 예수 이름으로 취소해 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생명이 새어 나간다.
이 말이 무슨 말인지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생명이 새어 나간다.
말을 잘 못하면 생명이 새어나간다.
그러니까 우리는 저는 그런 경우를 봐요.
야 참 조심해야 될 것들이 많은데 우리가 어떤 A라는 사람에 대하여 내가 생명의 마음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 맞아 나는 그를 위하여 기도해 줄 거야. 그가 아무리 나를 나에게 잘 못했다 할지라도 나는 그를 위해서 끝까지 기도하고 생명으로 대할 거야’ 그런 마음을 가졌어요. 가졌는데 누구랑 얘기하다보니까 그 A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그냥 또 하지 말아야 될 얘기들을 까 벌리고 그의 잘못됨이 나오고 이러므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사람에 대한 생명적인 마음을 잃어버리게 될지 참 조심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는 내가 남한테 가서도 다른 사람의 잘못을 얘기하지 말아야 내가 그 사람의 잘못을 말하는 순간부터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는 그런 자가 돼 버리고 말아요.
말하지 않았으면 나는 그를 용서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의 잘못을 입에 담는 순간부터 나는 인제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으로 돼 버리는 거에요.
이게 생명이 새어 나가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그리고 또 우리는 남들에게 남의 잘못을 듣는 것도 조심해야 되요.
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생명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죄짓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습니까?
남의 잘못을 캐려고 하는 다른 사람의 입에서 그 사람에 대한 잘못된 점을 얘기하게 하는 그런 일도 조심해야 합니다. 아멘입니까? 아멘
저는 아주 중요한 얘기를 했어요.
그래서 사람은 뭐라고 그랬냐면 입술의 열매를 먹고 산다. 입술의 열매.
여러분 조크(Joke) 농담요, 농담이 뭔지 아십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으로서 짓는 죄 중에 들어가는 것이 조크입니다.
조크,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조크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조크들이 죄입니까? 조크가 죄에요.
저는 조크를 몰라요.
그 사람이 조크를 하면 나는 그게 진짜인지 알아요.
그래서 많은 오해를 불러와요. 내가 진짜로 받아들이기 때문에요. 내가 조크를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요. 조크가 죄에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죄짓게 만들고 조크가 진짜인지 아니까 과장되게 말하고. 이 조크가 과장되게 말하고 거짓되게 말하고 그런 게 조크에요.
여러분 어떤 조크를 즐기세요?
난 조크가 생각이 안 나네. 도대체 생각이 안 나네.
어떤 게 조크에요? 웃음을 주는 거?
아~~ 웃음을 주는 거.. 아 그냥 넘어갑시다.
그냥 조크는 안 좋은 것이다.
여러분 우리는 농담이 조크라고 그랬어요. 농담이 조크다.
여기 보니까 농담하는 분이 거의 없네요. 다 씨리어스하네요.
저 집사님은 조금 하는 면이 있어요. 하지 말아야 돼요. 조크는 죄에요.
그 다음에 우리 집사님 안하고 씨리어스 하고..
조크를 아 이런 경우가 많죠.
남에게 상처주는 말, 이게 자기는 조크라고 하는데 남에게 칼같이 칼이 후비고 들어온다고 하잖아요. 칼이 후비고 들어오듯이 조크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 있어요? 없어요?
그거는 정말 죽이는 독이에요.
죽이는 독이 이 혀에 대해서 우리가 야고보서에 얘기하잖아요.
혀에 대해서 야고보서에서 이게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 가득하다. 그런 거에 속하는 거에요.
물어보면 자기는 조크했대.
다른 사람은 상처를 받아가지고 잠을 못자 잠을. 그것이 풀릴 때까지.
이거 죄 아닙니까? 이런 게 죄라는 거에요.
조크하면 남에게 상처되는 말이 무슨 말들이 있죠?
말은 지도자가 될 사람들, 특히 지도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걸 높여서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이 나를 지도자의 입장에 둘 수가 있다. 그러면 절대 지도자는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농담도 하지 마라. 농담을 아예 몰라야 돼요.
그리고 영적 지도자는요 결코 남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다.
남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다. 저는 우리 남편에게도 못하는 말들이 많아요.
안 합니다. 우리 성도들에 대한 비밀도 지킵니다. 우리 남편이라고 해서 한 몸이라고 해서 다 얘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남편은 남편대로 신앙이 따로 있고 저는 제 입장에서 지켜야 될 비밀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 비밀을 지켜주지 아니하면 으 영혼이 상처를 받게 되는 거에요.
무슨 얘기인지 알죠?
무덤에 갈 때까지 얘기 안하는 게 있어요. 제가.
우리 남편한테도 다른 사람의 비밀을 말 안해요.
영적 지도자는 요 상황 판단을 잘 해야 돼요. 해야 될 말과 이 말은 내 입에서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누설해서는 안 되겠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그러면 절대 하지 않습니다.
첫째는 말 때문에 생명이 새어 나간다 그랬지요.
두 번째는요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자는 왜 그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가?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 지키지 못하는 이유.
첫째는 말이라 그랬죠.
두 번째로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가 뭐냐면 내 안에 있는 욕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내 안에 있는 욕심.
사울왕이 다윗이 자기를 죽이지 않은 것을 알고 있었어요.
알았을 때 충분히 자기를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 죽였음을 알았을 때 사울은 그 자리에서 울었습니다. 나는 너를 죽이려 하는데 너는 나를 죽이지 않았구나.
나는 네가 내 다음에 왕이 될 것 까지 알고 있다. 내가 다시는 너를 뒤쫓지 않는다 그랬어요. 그냥 그래요. 그러고 나서도 다시 사울왕은 미친 자처럼 다시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녔어요.
그러니까 그게 뭐냐면 마음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가 내가 깨달은 것보다 그죠? 깨달았어요. 사울도 깨달음이 있었어요.
하나님이 뭘 원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 부었다는 것도 알고 있었어요.
네가 내 다음에 왕이 될 것을 알고 있다 그랬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쫓아다녔어요. 죽이려고.
내 안에 있는 욕심이, 그 안에 있는 옥심이 깨달음 보다 컸기 때문에.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욕심을 조심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욕심이 내가 그렇게 살고자 하고 그런 깨달음보다 더 크면 나는 내 욕심대로 다시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것처럼 다시 그 짓을 하고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욕심 때문에 우리 안에 없어지지 아니하는 아직 나에게 남아있는 욕심 때문에 우리는 내가 깨달았더라도 그 마음을 지켜내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 우리는 그 깨달음을 지킬 수 있는 방법, 마음을 지켜내는 방법, 어떻게 하면 내가 마음을 지켜낼 수 있는가에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마음을 지켜내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봤습니다.
첫째는 말이다.
두 번째는 내 안에 있는 욕심이라고 그랬어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내가 깨달은 것을 그 마음을 지켜낼 수 있는가? 그걸 봅니다.
첫째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라
여러분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셔서 살아 있는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앞으로 믿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지금까지 나에게 나를 그걸 뭐라고 하냐면 ‘에벤에셀의 하나님’ 나를 지금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아멘.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라.
그분은 아직도 미래에도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멘입니까? 아멘
그 다음에는요.
우리가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것이 뭐냐면 아까도 얘기했지만 하늘나라에 상을 생각하라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상을 생각하라.
이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많은 것을 접을 수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 나가면 이렇게 돈 벌수 있고 저렇게 할 수 있고 잘 살 수 있는데 예를 들어서 그렇지만 그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은 그게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생각이 든다면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을 생각하십시오. 할렐루야.
그러면 견딜 수 있습니다.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요 마음을 지켜내는 방법에 대해서 얘기하는 거죠.
지켜내지 못하면 어떻게 되냐면 실패하더라. 실패하더라.
이건 실패다. 실패하면 어떻게 되냐면 나중에는 내가 잠시는 이긴 것 같지만 비참해집니다.
내 꼬락서니가 아주 비참해 집니다.
비참해질 걸 생각하라.
그 다음에는요 마음을 지키는 방법 중의 하나가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안에 들어가라
여러분 이 세상에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 그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하나님 뜻 안으로 들어가야 돼요.
‘아~ 그렇구나 하나님이 나를 이 자리에 두었구나!’
그 뜻 안으로 들어가는 것, 그러면 여러분이 마음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깨달음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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