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그림

[스크랩] 이쾌대

하늘이슬 2008. 5. 18. 13:50

 

형은 월북 작가이며 역사화가인 이여성이다.
대구 수창보통학교를 나와 휘문고등보통학교에서 장발(張勃)의 지도를 받았다.
 
재학중인 1932년 제11회 조선미술전람회전에 〈정물〉이 입선했고
그해 가을에는 제3회 전(全)조선남녀학생작품전람회 회화부 2등상을 받았다.
 
일본의 제국미술학교에 진학하여 재학생 중심의 하라츠바 양화 전람회, 일본 유학생들이 망라된 재도쿄미술학생종합전에 참여했고,
일본의 공모전인 녹포사전(綠包社展)·이과전(二科展) 등에 출품하여 입선했다.
 
1941년에는 조선신미술가협회를 조직하여 중심적으로 이끌었으며
이 조선신미술가협회전과 함께 재도쿄미술학생종합전에 해마다 출품했다.
 
8·15해방 뒤에는 1946년 조선조형동맹 회화부 위원을 거쳐 조선미술동맹 서양화부 위원장으로 진보적 미술인들의 조직을 이끌었다.
미군정의 강화에 따라 결성된 조선미술문화협회 위원장에 선임되어 3차례의 회원 전람회에 참가했으며
 좌익 전향자 조직인 보도연맹에도 가입했다
.
1949년 창설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는 추천작가로 참여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다시 조선미술동맹을 조직하여 활동했으며 9·28수복 직전에 서울을 탈출했으나 체포되어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휴전 직전 남북 포로교환 때 북한을 선택했다. 
1987년 정부에서 월북 예술인 해금 조처를 내린 뒤 1990년 '해금작가 유화전'에서는
해방 이전에 제작한 〈부인도〉 등 3점이 선보였으며 1991년 '월북작가 이쾌대전'에 40여 점의 작품이 선보여
그의 예술세계를 알 수 있게 되었고 초기 습작시절부터 인물상에 주력하여 〈
나부〉·〈누워 있는 나부〉·〈여인상〉·〈자화상〉 들에서 보여준 충실한 데생을 바탕으로 〈첼리스트〉·〈
2인 초상〉에서는 표현적인 수법으로 인물의 개성을 강하게 포착해냈다.
 
또 〈작품〉(1938)·〈운명〉(1938)에서는 상징적인 인물설정과 구도를 보였으며
이 작품들과 함께 〈부녀도〉(1941)·〈부인도〉(1943)·〈두루마기 입은 자화상〉 등에서는
얇은 붓질의 맑은 담채 효과로 동양화와 같은 분위기의 독특한 개성을 드러냈다.
이러한 인물상 수련을 바탕으로 〈조난〉(1948)을 비롯하여 여러 군상작품을 제작했다.
 
1940년대말로 추정되는 군상작품들에서는 구도나 인물표현에 있어서 단단한 해부학 수련을 바탕으로
 서양의 역사화나 고전주의적인 기법을 빌려온 것을 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거제도의 미군기 폭탄 투하 사건을 비롯한 해방 공간의 어지러운 사회상을, 또 한편으로는 그런 가운데
새로이 나라를 건설해가는 사람들의 힘과 희망을 힘찬 필치와 역동적인 구도로 표현했다.
〈걸인〉(1948)에서는 대담한 소재와 표현적인 기법으로 현실사회의 단면을 드러냈다.
 
그의 이러한 작품들은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던 해방 공간 미술의 한 면을 메웠으며,
한국 현실주의 미술의 선구적인 작업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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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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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쾌대(1913∼65)의 자화상은 풍경과 인물이 결합된 그림이다. 두루마기 차림에 중절모를 쓴 화가는 그림도구를 들고 있다. 그 뒤로 초가집이 있는 시골풍경이 평화롭게 펼쳐져 있다. 그런데 왠지 그림이 부자연스럽다. 정면을 응시하는 화가의 큰 눈동자에는 불안한 기운이 역력하다. 이런 불안의 기미는 화면에 숨겨진 모순들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두 가지 사항에 주목해보자.

먼저 두루마기 차림새와 유화 팔레트의 모순이다. 일반적으로 ‘화가’ 하면, 베레모(일명 ‘빵떡모자’)를 쓰고 작업용 앞치마를 두른 채 팔레트를 든 모습을 떠올린다. 그런데 이 자화상은 빵떡모자와 작업용 앞치마 대신 전통복식인 두루마기에 서양의 중절모를 쓰고 있다. 이질적인 것들이 공존하고 있다.
게다가 이런 부자연스러움은 그림도구에서도 나타난다. 왼손에 든 것은 유화 팔레트인데, 오른손에는 유화용 붓이 아닌 동양화 붓을 쥐고 있다. 기이하다. 이는 동양과 서양, 전통과 근대, 정상과 비정상이 한 몸을 이룬 모순된 모습이다. 화가의 얼굴에 드리워진 불안의 한 정체는 여기서 발원한다.

이런 불안감 조성에는 배경도 한 몫 한다. 화가의 등 뒤로,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평화로운 시골풍경이 펼쳐져 있다. 논길을 따라 머리에 물동이와 짐을 이고 가는 여인들이 보인다. 이는 그가 동경하는 조선의 풍경이자 이상향으로서의 자연이다. 그럼에도 정면을 응시하는 화가의 눈빛은 불안하다.
왜 그럴까. 지금 화가의 정면에 어떤 광경이 펼쳐져 있기에 저런 표정일까. 그것은 등 뒤의 평화로운 풍경과는 상반된 모습이 아닐까. 이상향과는 다른 거친 현실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이 자화상의 제작시기가 1948∼49년이다. 당시는 독립의 기쁨과 환희를 맛볼 틈도 없이 다시 동족끼리의 사상적 분열과 대립, 반목으로 사회적 혼란이 극심한 시기였다. 이런 ‘해방공간’ 소용돌이를 염두에 둘 때, 불안한 표정의 정체는 한결 또렷해진다.
그것은 시대의 아픔을 함께 앓고, 혼란기와 맞서는 작가의 자기표현인 것이다. 그래서 손에 든 붓과 팔레트가 무기처럼 보이는 게 아닐까.

-미술에세이스트 정민영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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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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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인

  

별/신영옥 

 

 

 

 

 

출처 : 이쁘고 고운 마음으로
글쓴이 : 맘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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