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스크랩]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Mozart, Piano Concerto No.20 in D minor, K.466)

하늘이슬 2012. 3. 30. 14:16

Mozart, Piano Concerto No.20 in D minor, K.466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Clara Haskil  piano

Igor Markevitch  cond.

Orchestre des Concerts Lamoureux 1960

1st Mov. Allegro

2nd Mov. Romance

3rd Mov. Rondo/Allegro Assai

 

<피아노 협주곡 20번>은 모차르트가 남긴 27곡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피아노 협주곡 24번>과 더불어 단 두 곡밖에 없는 단조 작품이자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모차르트의 작품 중에 D단조는 <레퀴엠> <돈 조반니>를 들 수 있다. 누구나 어릴 적이나 어른이 되어서나 자신의 소유물을, 혹은 자신 자체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돈이든 우정이든 사랑이든 혹은 눈물을 흩뿌리며 길을 걷던 기억이든 간에 그런 깊은 상실감은 아마도 잊기 힘든 기억일 것이다. 모차르트의 단조 곡들은 대개 엷은 미소를 띤 얼굴에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 <피아노 협주곡 20번>의 1악장은 그야말로 상실의 슬픔을 간직한 깊고 진솔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 이 곡에서 모차르트는 과감하고 대범하며 타협할 줄 모르는 자신의 일면을 노출한다. 먹구름처럼 어두운 오케스트라의 색채와 롤러코스터처럼 급격한 분위기의 변화가 일품인 작품이기도 하다. 독주자와 오케스트라는 서로 협력하지만 곡 중간 중간 라이벌끼리 벌이는 경쟁의식을 극적으로 펼쳐내기도 한다.

 

Mitsuko Uchida conducts and performs Mozart's Piano Concerto No.20

1st Mov. Allegro1

1st Mov. Allegro2

2nd Mov. Romance

3rd Mov. Rondo/Allegro Assai

 

모차르트의 흔치 않은 단조 피아노 협주곡

이 곡이 작곡된 1785년의 유럽 문화는 격렬하고 어두운 정서로 대변되는 ‘질풍노도’(Strum und Drang) 문학 운동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이 작품은 빈의 카지노인 멜그루베에서 열린 예약 연주회를 위해 작곡된 모차르트 최초의 단조 피아노 협주곡이다. 단조의 모차르트 음악은 바람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베토벤의 고뇌 어린 표정을 엷게나마 띠고 있다. 이 곡은 얼핏 베토벤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모차르트의 협주곡이기도 하다. 베토벤도 이 피아노 협주곡을 무척 좋아해 따로 카덴차를 작곡해서 남길 정도였으며, 베토벤 외에도 브람스, 훔멜, 부조니, 클라라 슈만과 같은 뛰어난 음악인들이 이 피아노 협주곡의 카덴차를 남겼다.

 

귀족과 예술가들 앞에서 자신의 곡을 연주하고 있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은 모차르트의 생활이 궁핍하던 시절 예약 연주회를 위해 작곡된 곡이다.


이 당시 모차르트의 생활은 매우 궁핍하기 짝이 없었다. 모차르트는 출판업자 호프마이스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급히 필요하니 약간의 돈을 빌려주었으면 합니다. 아무쪼록 빠른 시일 안에 도착했으면 합니다. 이런 폐를 당신은 너그러이 용서하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저도 당신의 힘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부디 저를 위해 편의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늘 쪼들리며 먹고살기 위해 뛰었던 모차르트의 펜 끝에서 나오는 음악은 왜 그리도 광휘롭고 한 점의 티도 없을까라는 의문이 떠오르기도 한다. 작품의 초연은 1785년 2월 11일 이루어졌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부친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빈에 도착해 아들의 초연 연주회를 지켜보고 “볼프강 아마데우스의 음악 활동 중 가장 빛나는 연주회”라고 밝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아래 각 악장마다 붙인 연주는 굴다(피아노)/아바도(지휘) 녹음입니다.

Frederic Gulda piano

Claudio Abbado cond.

Viener Philharmoniker 1974


1악장: 알레그로

모차르트 연구가 알프레드 아인슈타인은 이 1악장에 대해 “마치 복수의 여신들이 지쳐 있지만, 여전히 큰 소리를 내며 매순간 다시 충돌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고 말했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긴장감이 넘치는 악장이다. 위협적으로 상승하는 바순 소리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조용하지만 고뇌에 차 있으며, 끊임없이 강해지는 첼로와 베이스의 현악 선율이 이어진다. 이 제시부를 곧 피아노 솔로가 따라잡으며 악장 전체를 통해 발전해 나간다. 전개부에서는 약간 밝은 분위기가 감지되지만 기쁨에 찬 분위기는 아니다. 팀파니는 카덴차 전의 코다에서의 긴장을 더 증대시킨다. 카덴차에 들어서면 여러 주제에 의해 조용한 여운을 남기면서 악장은 마무리된다.


2악장: 로망스

행복감에 넘치는 우아한 악상이 나타난다. 피아노의 명랑한 테마가 나타나며 후반부는 오케스트라가 멜로디와 반주를 번갈아가며 제시한다. 피아노는 높은 음과 낮은 음이 대화풍으로 진행되다가 후반부에 다시 시적인 풍미를 자아낸다.

 

3악장: 론도 - 알레그로 아사이

1악장의 극적인 성격이 다시 등장하며 급박한 느낌의 피아노 솔로로 시작된다. 근심 가득한 분위기의 선율이지만 피아노의 움직임이 빠르고 역동적이어서 미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어둡고 밝은 악상이 재빠르게 교차되면서 대화를 주고받는 느낌, 미묘한 표정 변화를 타고 쉼 없이 흘러가는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협연이 매력적이다. 화려한 카덴차가 펼쳐진 뒤에는 호른과 함께 발랄한 선율이 나타나게 된다. 피아노 솔로가 다시 앞의 주제부를 반복하면서 어두운 정서에서 밝은 느낌으로 전환되며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서로 화려하게 융합하며 곡을 끝맺는다.

 

클라라 하스킬(1895-1960)

"나는 평생 진정한 천재라 할 만한 사람을 셋 만났다. 한 사람은 윈스턴 처칠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었으며,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은 클라라 하스킬이었다." _찰리 채플린

 

세상에는 가혹한 운명의 시련을 겪었던 천재 음악가들이 더러 있지만, 클라라 하스킬만큼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 달리 또 있었을까. 온몸이 뒤틀리는 불치의 병에 걸려 불과 몇 년 사이에 천사와 같던 용모를 잃고, 나치가 무자비하게 유대인들을 탄압하던 시절에는 병석에 누워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두려움에 떨며 살아야 했습니다.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극한의 육체적 고통과 고독, 전쟁에 대한 두려움 등이 그녀를 엄습했습니다만,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녀의 음악을 무너뜨리진 못했습니다.

 

클라라 하스킬은 1895년 루마니아에서 유대인 부모 슬하에 태어났습니다.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었지만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과 보살핌으로 성장했지요. 자라면서 한번 들은 음악을 대부분 그 자리에서 기억해내는가 하면 때로 즉석에서 조바꿈 연주까지 하는 등 일찌감치 신동이자 천재로 불렸습니다. 어린 나이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고 14세에 파리 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합니다. 그녀의 나이 18세, 글자 그대로 꽃보다 아름답고 무한한 영광만이 그녀의 앞길을 비춰줄 거라 누구도 믿어 의심치 않았을 때 척추측만증(scoliosis)이라는 불치의 병이 그녀를 엄습해오면서 기나긴 시련이 시작됩니다. 연주를 할 수 없는 몸이 되어버린 그녀는 뒤틀려가는 자신의 온몸에 보장구를 부착한 채로 침대에 누워 투병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그녀를 돌보아주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클라라 하스킬은 스스로 생계를 꾸려가며 하루하루 병마와 싸우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3년 뒤인 1921년, 무서운 의지로 병마와 싸워온 클라라 하스킬은 무대공포증에서 벗어나 8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라 모차르트를 연주하며 재기에 성공합니다. 이어서 1924년에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1926년에는 영국에서 데뷔 연주를 가졌고, 그 후 파리에서 당시 음악계 후원자로 명성이 높았던 폴리냐크 공작부인에게서 재정적 후원을 받으며 연주를 계속합니다. 그 후 1930년대 후반까지 이자이, 카잘스 등과 같은 당대의 초일류 대가들과 작품활동을 하지만, 당시 청중들의 반응은 어린 시절 그녀가 받았던 평가에 비하면 많이 모자랐었나 봅니다. 아름다운 미모와 더불어 수많은 찬사 속에서 천재로 칭송받던 그녀에게 갑작스레 들이닥친 불행과 그로부터 연유한 그 후의 일련의 일들이 그녀의 마음에 어떻게 작용했을지 미루어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유대인이었던 클라라 하스킬에게도 악몽 같은 시절이 닥칩니다. 당시 파리에 머물던 그녀는 그곳을 떠나 마르세유로, 다시 스위스로 이리저리 피난처를 따라 떠돌게 되는데, 온전치 못한 건강상태로 강행군을 하면서 전쟁의 공포와 이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나머지 그만 뇌졸중을 얻어 쓰러져 사경을 헤매게 됩니다. 이때 그녀의 열렬한 팬이었던 한 유대인 의사가 소식을 듣고 마르세유까지 찾아와 그녀의 수술을 위해 집도합니다. 장시간에 걸친 수술 끝에 클라라 하스킬은 다시 생명을 건졌지만, 18세 이후 그녀를 떠나지 않았던 기나긴 고통으로 결국 그녀는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에 비해 20년 이상 더 늙어버린 외모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약 10년쯤 후, 구소련의 대표적인 피아니스트 타티아나 니콜라예바가 1956년 1월에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를 방문하게 됩니다. 방문에 앞서 소련 음악계의 지인들은 그녀에게, 서방세계로 가게 되면 당시 떠오르던 지휘자 카라얀의 연주회를 꼭 가볼 것을 권합니다. 잘츠부르크에서 마침 카라얀의 모차르트 연주회가 열리게 되자 니콜라예바는 티켓을 구해 연주회에 참석했습니다. 훗날 그녀는 이 연주회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습니다.

 

"협연을 위해 나온 피아니스트는 온몸이 뒤틀려 있었고, 잿빛 머리카락은 온통 헝클어져 있었다. 그러나 막상 연주가 시작되자 지휘자 카라얀의 존재는 내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내 눈에는 오직 피아니스트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가 건반에 손을 올리자 나의 뺨에는 곧이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모차르트는 내가 아는 모든 모차르트들 중에 최고였다. 나는 그때까지 그렇게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를 들어본 일이 없었다. 그녀의 마력은 너무나 강렬해서, 연주가 끝날 때쯤 연주단원은 물론 카라얀마저도 그녀에게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1949년 클라라 하스킬은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며 처음으로 레코딩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그녀가 녹음한 모든 연주들은 하나같이 명반으로 남게 됩니다. 195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투르 그뤼미오와 함께 베토벤과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녹음하며 유럽 연주여행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1960년 12월 7일, 파리에서 그뤼미오와의 연주일정을 성공리에 마친 클라라 하스킬은 다음 예정지였던 벨기에의 브뤼셀에 도착했습니다. 기차에서 내려 계단을 내려가던 하스킬은 갑자기 계단에서 쓰러져 머리를 부딪쳐 심하게 다친 채로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의식불명이던 그녀는 얼마 후 잠시 정신을 되찾았는데, 그 잠깐 동안 자신의 동생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아무래도 내일 연주는 어려울 것 같구나. 그뤼미오 씨에게 미안하다고 전해주렴."

 

평생을 독신으로, 두 번의 전쟁, 나치의 공포, 척추측만증, 다발성세포경화증, 뇌졸중, 척수종양,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독, 이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65세의 클라라 하스킬은 그렇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래서 클라라 하스킬의 연주를 듣노라면,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도 건반을 누를 때마다 매번 느꼈을 그녀의 고통이 떠올라 더욱 특별하게 여겨집니다. 클라라 하스킬이 짊어졌던 삶의 무게가 참으로 무겁게 전해 오지만, 그러나 정작 본인은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저는 운이 좋았어요. 평생을 벼랑 끝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살았지만, 그래도 결국 굴러 떨어지지는 않았거든요. 이것은 신의 축복이었습니다."

 

추천음반 클라라 하스킬과 마르케비치가 협연한 연주(필립스)는 생을 굽어보는 피아노 노래 속에 고고한 기품이 서려 있다. 굴다와 아바도가 지휘한 빈필의 연주(DG)는 먹구름에서 뭉게구름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음영을 펼쳐내는 굴다의 피아노와 아바도의 수채화 빛 반주가 잘 어울린다. 브렌델과 네빌 마리너의 협연(필립스)은 감정의 무게를 걷어낸 무색무취의 객관성으로 일관하지만 곡의 아름다움을 담백하게 드러내는 품위 있는 연주다. 우치다와 테이트의 협연(필립스)은 영롱하고 순수하면서도 무엇인가를 간절히 호소하는 듯한 매력이 있다.

 

류태형(음악칼럼니스트) 월간 <객석> 편집장 역임, 현재 (재)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 거장들의 옛 음반과 생생한 공연의 현장이 반복되는 삶이 마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같다고 생각한다.

 

  음악해설은 네이버캐스트 문화예술>음악 2010.01.10에서, 클라라 하스켈 이야기는 웹글을 정리했습니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1818&path=|455|509|674|&leafId=935

 

출처 : 라라와복래
글쓴이 : 라라와복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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