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영성3 진리단계 종합
하나님은 우리를 진리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신다.
첫째는 영의 사람이 되기 시작한다.
로마서에 보면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다.
영의 생각을 좇아서 사는 자가 생명과
처음에 오실 때 영을 좇아 사는 삶이 20% 육신을 좇아 사는 삶이 70-80%였다.
윤리단계는 영을 좇아 사는 삶이 50%, 육을 좇아 사는 삶이 50%쯤 된다.
딱 가운데이다.
진리단계는 영을 좇아 사는 삶이 더 많아지는 단계이다.
육신의 사람과 영의 사람의 행동을 살펴보자
육신에 있는 자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본다.
영에 있는 사람은 그 사람 안에 있는 동기를 본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밖으로 드러난 행동만을 본다.
우리는 점점 영의 사람으로 변하여 간다.
영의 사람은 남의 허물을 덮어준다.
육신의 사람은 남의 허물을 드러낸다.
다른 사람의 단점을 드러냄으로서 나는 너보다 낫다는 생각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모슴이 아니더라는 것이다.
노아가 술에 취에 누워 잠이 들었을 때 함은 드러내고 셈과 야벳은 뒤로 들어가서 덮어주었다.
하나님이 그 입술을 통해서 축복과 저주를 한 것이다.
함은 저주를 받았고 셈과 야벳은 축복을 많이 받았다.
내 삶에 축복이 없다면 잘 생각해 봐야 한다.
혹이라도 나의 모습이 남의 허물을 들추는 습관이 있다면 하나님이 그 삶을 징계하지 아니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 자가 되길 축원한다.
영의 사람으로 변하여 갈수록 우리는 “그럴 수 있다”라고 해야 된다.
영의 사람들은 육의 사람들의 말을 별로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
왜냐 몰라서 그런 것이다.
말하는 것 보면 함부로 하지 않는가?
그것에 대하여 흔들리면 안되고, 상처 받으면 안된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취소해야 한다.
안좋은 말을 들었다면 내가 예수의 이름으로 세번 취소해 버리면 악한 영이 우리를 갖고 놀지 못한다.
그러면 말한 사람도 해방되어 버리고 들은 사람도 해방되어 버린다.
상처받지 말고 취소하라. 몰라서 그런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하신 말씀이다.
저들이 알지 못하나이다. 저들의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상처받지 마시고 기도해 주시길 축원한다.
우리는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 기도해 줄 수 있기를 축원한다.
골로새서1:22-24
주님이 죽으실 때 우리도 죽은 것이다.
우리도 주님 죽으실 때 죽었기 때문에 영으로 살아야 하는 존재인줄 믿는다.
사도바울은 예수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에 채운다고 했다.
여러분들이나 저나 이 세상에 살 때 진짜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가 하면 예수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몸에 채우는 것이 가장 값진 삶인 것을 믿는다.
그 삶은 때론 내가 손해보고 욕을 먹고 잘못한 것도 없는데 육신이 괴롭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주를 위하여 그것이 생명의 열매로 나타날 수 있다면 내가 인내함으로써 소망을 이룰 수 있다면 기다리고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고 할 수 있다면 그 고난을 받아도 마땅하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진짜 사랑이다.
진짜 사랑이 정말 그를 위해서 기도해 주고 내가 좀 고난이 있다할지라도 참아주고 인내해야 할 줄 믿는다.
육체적인 사랑은 가볍다.
영적인 사랑은 값진 것이다.
승화된 부부관계는 주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마7: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
주님이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신다.
롬8:5-8
육신을 쫓는 자는 사망이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12-13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요, ...무릇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을 원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지 않고 사는 자들은 하나님이 어떻다는 건가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육신대로 살면 사망이요,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는 것이다.
영의 생각이 생명이라고 했다.
마7:14
생영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다라고 했다.
생명은 영의 생각을 좇는 것이다.
육신의 생각을 좇아 사는 자들은 넓은 문으로 가는 것이다.
그 길은 멸망의 문이라는 것이다.
마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아버지의 뜻대로 산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했으며, 그럼 내 뜻대로 산 자는 못 들어간다는 것이다.
예수님만 믿으면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하고 있지 않ㅇ다.
누가 들어간다고요? 아버지 뜻대로 산 자라야 들어간다는 것이다.
예수님 믿는 건 뭐냐? 우리 원죄를 사해주기 위해서 오셨다.
하나님을 모르고 태어난 것이 원죄이다.
죄 지은 것 하나도 없어도 나는 죄인인 것이 원죄이다.
그럼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원죄가 들림을 받아버린다.
그럼 예수 믿는 자는 그 이득이 무엇인가?
영원한 불 못에서 면했다는 것이다.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영원한 불 못을 면했는데 영원한 불 못 안 가는 것만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거기서 영원히 타고 괴로워야 하는데 면한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그런데 성경은 거기에서 더 나아가서 너희의 구원을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가라고 얘기하고 있다.
그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게 무엇인가? 이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불 못도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자는 어디로 가는가?
계시록22장 12-15
영원한 불 못은 면했는데 어디로 가는가?
이 성은 어느 성을 얘기 하냐면 새하늘과 새땅이 열리고 새 예루살렘성이 내려왔다. 그 성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성안은 하나님의 영광이 해같이 빛나기 때문에 밝다.
그러나 성 밖은 하나님의 영광이 해같이 비치지 않기 때문에 어둡다.
영원한 불 못은 아닌데 예루살렘 성전 밖이다.
마태복음에 열 처녀 비유가 나온다.
다섯 처녀는 문안으로 들어가 다섯 처녀는 문밖에 남게 되었다.
기름 준비한 다섯 처녀는 문 안으로 들어가고 기름준비를 안한 다섯 처녀는 문밖에 남게 되었다.
이 열 처녀가 누구냐? 예수님 믿는 자들이다.
예수님 믿는 자들이 신랑예수님을 기다리는 자들이다.
그 문에 들어갈 권세를 가진 자가 누구냐?
예수 보혈의 피에 그 모든 죄를 철저히 빠는 자,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
주님 오시는 그날에 이런 죄를 짓고 있는 자들은 성 밖에 있다는 것이다.
회개할 기회가 없어졌죠.
개들과 점술가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자들..
여기서 거짓말은 과장하는 것도 포함된다.
어떤 말을 할 때 과장하지 말라.
작게 얘기하라. 그럴 수 있다고 하라.
개들이 누구인가? 사56:11-12
개가 누구라구요? 몰각한 목자들을 말한다.
성경에서 얘기하는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자기 이익만 도모하는 몰각한 목자들, 즉 성도들을 이용해서 자기 이익만 도모하는 목자들이다.
짐승들은 사탄 마귀를 상징한다.
사56: 12
그 아래에 포도주는 세상에서 주는 즐거움을 말한다.
술객들은 예수믿는 자중에서도 점보러 가고 관상보는 자들,
행음자들은 음행하는 자들이다.
살인자들은 죽을 때까지 나는 그 사람 안본다고 맺혀 있는 사람들
우상숭배자들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말로는 하나님 하지만 실제로는 돈을 더 따라가고 그리고 자녀를 더 사랑하는 자들,
거짓말하는 자들이 성 밖에 있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니은 우리에게 진짜 천국을 주시기 위해서 좁은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셨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쉽지 않다. 영의 생각을 좇아야 하기 때문이다.
영의 생각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 영안에 성령하나님이 와 계신다.
하나님이 늘 말씀으로 찌르잖아요.
그 하나님의 영의 생각을 좇아서 살 때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것이다. 그게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라는 것이다.
성안으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은가? 적은가? 적다는 것이다.
마7:21이하
이 반석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모레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내 뜻, 나를 위해 사는 삶을 말한다.
성 밖에는 홈리스이다.
(천국에 홈리스가 있다고 했다.: 홍혜선선교사)
은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드리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내가 하나님의 뜻도 몰랐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뜻이면 거기에 생명을 걸 수 있는 자로 변하는 것이다.
주의 뜻이면 주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주의 뜻이면 거기에 생명을 걸 수 있는 자가 되어지길 축원한다.
우리가 최대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의지를 최대한 드리는 것이다.
좁 은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겠습니다.
영의 생각을 좇아 살겠습니다.
주의 뜻이면 생명을 걸겠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하나님께서 진리의 사람으로 바꿔줄 줄 믿는다.
두 번째 특징이 진리가 나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주장하기 시작한다.
롬12:20-21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이기신 방법이 무엇인가? 사랑이다. 십자가의 사랑.
우리가 악을 이기는 방법이 무엇인가? 사랑이라는 것이다.
악을 악으로 대하면 지는 것이다.
악을 선으로 대할 때 이기는 것이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여기 말씀에 동의가 되나요? 아멘
실제 삶에 가면 우리는 이 말씀을 얼마만큼 살 수 있을까요?
10%밖에 살 수 없네, 아니면 30%밖에 , 50%...100%되기 까지 해야 될 줄로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기에 따라가야 한다.
상은 누가 받는다? 섬기는 자가 받는다.
말씀대로 행하면 누가 상 받는다? 내가 받는다.
결혼은 왜 하는 거라구요? 섬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환상을 갖고 하는가? 백마 탄 왕자, 순종하는 여자
환상이 빨리 깨져야 한다. 환상이 빨리 깨져야 제자리를 찾게 된다.
그리고 섬기는 자로 살아야 한다.
섬기는 자가 상을 받는다. 주의 이름으로 섬겨야 한다.
내 힘으로 하려면 못 섬긴다. 진리가 나를 주장한다.
세 번째 우리가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할수록 핍박이 따른다.
고난이 따른다는 얘기다.
내가 진리로 살려고 하면 마귀는 더 난리친다.
내가 진리로 살고자 할 때 마귀는 옆에 있는 사람들을 더 요동시킨다.
그럴 때 우리는 고요해야 한다.
예) 제자들이 탄 풍랑이 이는 배
주님이 함께 배를 타고 가는데도 불구하고 풍랑이 일었다.
어떤 풍랑이 우리 인생에게 와도 우리는 누구 때문에 고요해야 합니까?
예수님 때문에.
그 풍랑이 우리를 삼키지 못하는 이유가 내 안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주님 때문에 고요해야 한다.
또 하나는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고난은 누구를 위해서 오는가?
나를 위해 온다.
다윗은 내가 고난을 통해서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고난이 없으면 우리 인간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말로 그렇다.
고난을 주신 주님께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고난이 없으면 사람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여러분이 실패와 고난을 통해서 여러분이 성장하고 만들어 졌다고 믿는다.
우리의 인생에 고난이 없으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맞다라는 것이다.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으나 고난을 당한 후에는 바르게 행하나이다. 다윗이 그랬지요.
그래서 다윗은 고백은 하나님이 말씀이 금보다 귀하고 은보다 귀하다고 고백했다.
고난을 사랑할 수 있기를 원한다. 여러분 안에 넉넉히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고난이 올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나를 위해서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2)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
우연히 그렇게 되었겠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안 일어난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으면 다툼이 일어나고 불화가 일어나게 되죠. 그래서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3) 우리의 모든 영적인 지식을 이용해서 그 고난이 왜 왔나를 따져봐야 한다.
하나님이 그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가 “나” 때문이라고 했다.
나를 넓히시고 바르게 하시기 위해서 만드시기 위해서 고난이 오게 되어있다.
왜 왔을까? 나는 아직도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구나!
그런 나의 모습을 처리하시려고 이 문제를 일으키셨구나!
고난의 이유를 찾으라.
육신적인 사람들은 육신적으로 받고 넘어간다.
그러나 영의 사람은 그게 아니라 왜 나를 무시하는 사건이 발생했을까?
저것도 하나님이 하신 것이지.. 하면서 기도하면 알게 하신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주의 형상을 닮아가야 한다.
우리가 언제 주의 형상을 닮기 까지가 이루어지겠습니까? 죽을 때까지.
우리가 온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 예수님 외에는 다 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죽을 때까지 온전한 데로 나아가야 될 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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