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과 영성2
3-1. 훈련
주님 오늘도 감사 감사 드립니다.(통성기도)
오늘도 귀한 시간을 허락하셔서 우리에게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영성훈련을 받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을 허락하시니 감사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아버지 하나님 말씀을 전할 때 받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갈아놓은 옥토와 같은 심령으로 되어 있어서 주여 그 말씀을 사모함으로 받아들이게 하시고 아버지 하나님 그 말씀을 받아서 아버지 하나님 이 험한 세상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드리다가 아버지 하나님 정말 그렇게 살아드릴 수 있도록 아버지 우리 주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우리는 죽을 때까지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다가 가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아버지 하나님 우리 하나님께서 힘을 주시고 아버지 하나님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다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능력 주실 때에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을 수 있으며, 주여 아버지 우리는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을 믿습니다. 주님 우리의 밴댕이 같은 우리 속을 아버지 하나님 꺼내 버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넣어서 살 수 있는 자, 내가 하나님으로 채워지는 자, 아버지 하나님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 하나님의 마음을 넣어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자, 그런 자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 주님게서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 시간도 우리 주님께서 축복하셔서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시간들 아버지 하나님 각자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아버지 말씀 전하는 자가 말씀을 전할 때에 아버지 그 영으로,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들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그들의 인식과 모든 집중 능력이 하나님에게 안테나가 가 있을 수 있도록 우리 주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사옵고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은 첫 시간을 대인과 영성 윤리단계 훈련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인과 영성 예 대단히 중요한 파트입니다.
대인과 영성 훈련. 9월달 마지막이죠.
대인과 영성 훈련에 대하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누구로부터 비롯됩니까?
예? 누가 그랬어요?
모든 인간관계는 누구로부터 옵니까? 예? 하나님입니다.
내가 가지고 싶어서 가진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딱 셋업 해 놓으신 거에요.
거기에 내가 굴복되지 아니하면 그걸 인정하지 아니하면 거기에서부터 인정이 안되면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빚어질 수가 없는 거에요.
할렐루야! 성경을 봐도 그렇죠.
모든 인간관계가 하나님이 딱 셋업을 해 놓습니다.
아멘입니까? 아멘
그럼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돼요?
잘 만들어지면 되요. 아멘.
잘 만들어지려고 할 때 여러분 내가 막 힘이 팍팍 솟아나면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에? 죽어야죠. 힘이 빠져야 되요.
하나님이 해 놨는데 뭐 그걸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그럼 그 속에서 내가 힘이 빠지고 그들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잘 섬길 수 있을까? 그걸 고민해야 된다 말이지요. 아멘입니까? 아멘.
하나님이 셋업해 둔 환경을 우리가 바꿀 수 없어요. 그걸 바꾸겠다고 내가 뛰쳐나 와 버리면 이제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그 경륜이요 거의 이상하게 끝나버려요. 물론 다른 분들은 그런 얘기를 해요.
아이 한번 끝나면 그 다음에 초이스가 있더라구요. 이러는데 너무 많이 돌아와요. 하나님의 원래 뜻은 그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원래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이라서 죄를 짓는 거기 때문에 그거를 합당화 시키려고 어휴 그거 인간관계 끝내면 그 다음에 다른 인간관계로 또 하면 하죠. 이러더라구요. 근데 그게 아니에요.
그런 분들 보면 평생 그러고 돌아다니고 살고 있어요. 아시죠?
자 그래서 여러분 모든 인간관계가 누구로부터 온다?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이걸 인정해야 되요.
그러면 불평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 인간관계에 대해서.
불평하고 원망할 수가 없는 거에요. 왜?
하나님이 하고 계시기 때문에요. 아멘. 하나님이 하고 계시다.
왜 저 사람이 그렇게 안 바뀌나? 누가 하고 계시다구요? 하나님이. 왜? 나를 위해서. 그 사람이 많이 바뀌면 내가 만들어지지 않아요. 아멘? 아멘.
저도 여러분도 하나님의 손에 있지만 우리와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그분들도 누구 손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손에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그 인간관계를 원망불평하는 자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한다구요? 사실은 감사해야 되요. 감사
왜냐? 나를 진리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그들이 파트너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요. 아멘 나를 진리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아가 우리가 사랑은 오래 참고 나는 오직 성내지 않고 진리만을 기뻐한다. 정말 그런 사람으로 진리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금 나의 인간관계를 오늘도 펼치시고 내일도 펼치실 것이며 과거에도 펼치셨고, 누구를 위해서요? 누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할렐루야!
다같이 따라서 해 보겠습니다.
나에게 있는 모든 인간관계는 하나님이 하고 계시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크게. 나를 위해서.
그래서 파트너 되는 분들을 어떻게 해야 됩니까? 사랑해야 되요.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가? 정말 나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아가기 까지. 아멘입니까? 아멘. 이게 대인관계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명적인 인간관계에요.
생명적인 인간관계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붙여준 파트너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 생명적인 인간관계거든요. 그러면 그 사랑이 누구로부터 나가는 거냐?
그 사랑이 나로부터 나가는 것은 참 제한적이에요. 인색하고 제한적이지만 내가 파트너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그것, 그렇게 되기까지 그들을 사랑하는데 내가 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나는 육체이기 때문에 선한 것이 나갈 수 없어요. 그러므로 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이 파트너에게 하나님을 주기 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시키신다.
그럼 우리가 하나님을 주기까지 통과되면 어떻게 될까요?
파트너가 더 이상 파트너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역자로 변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이것이 참 진리거든요. 과정이거든요.
그래서 주님은 뭐라고 하시냐면 내가 너희들에게 먼저 검을 준다고 그랬어요. 검, 검을 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정말 화평을 주시려고.
검을 먼저 주셔서 불화하게 한 다음에 정말 우리가 사람이 만들어져서 정말 주님의 이름으로 화평케 하는 자로 만드시기 위해서 먼저 검을 허락하신 것이다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그 깊으신 뜻을 인간관계속에서 거기에 내가 굴복되면 우리는 정말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로 가는 생명의 길로 가는 승리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아멘
여러분이나 저나 이 길을 반드시 가야 되요.
하나님이 이 길을 가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사건을 만드시는 거에요.
결국은 그 길을 가게 하기 위해서. 정해져 있어요. 우리가 가야되는 길이. 안가니까 문제인거에요. 얻어터지고. 여기서 쥐어 박히고, 저기서 쥐어 박히고.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인간관계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거다.
그래서 훈련에서 보면 무든 인간관계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냐?
그 사람에게 행하는 게 아니라 누구를 향해서 인간관계를 가져야 되겠습니까?
하나님. 사람에게 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서 행해야 됩니다.
첫째는 훈련이 사람에게 대하여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서. 우리는 그 인간관계를 가져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 육신은 늘 어때요?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했고 그 사람 행동이 어떻고 저렇고, 저것은 틀렸고 이것도 틀렸고 이런 것만 생각하잖아요. 이것이 육신이거든요.
뭘 생각한다구요? 남의 허물. 남의 잘못 이런 것들을 자꾸 생각하고 하는 것이 육신이라는 거에요.
성경은 육신을 거절하가고 그랬어요. 거절하고 영의 생각을 내 생각으로 받아들이라고 그랬거든요.
인간관계속에서 우리가 자꾸만 내가 육으로 생각하면 그 인간관계가 제대로 될 리가 없는 거에요.
늘 너와 나 사이에는 누가 있다? 하나님이 계신거에요.
이걸 크게 생각해야 되요.
늘 너와 나 사이에 크신 하나님이 너와 나는 조그만해요. 우리는 미물이에요.
너와 나는 조그마한데 그 사이에 크신 하나님이 계신 것이다는 거에요.
거울을 생각하면서 조금만 우리들이 조금한 그분에게 잘 해댜 되는 거에요.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모든 인간관계가 하나님이 우선입니다. 아멘.
하나님이 하셨어요.
우리가 영성훈련을 받으면서 뭐가 변해지게 되냐면요?
사람보다 하나님이 먼저 보여요.
이게 자꾸 훈련이에요. 이게
내가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하고 처음에 육신적으로 사람이 육신이 있기 때문에 육신적으로 먼저 반응이 올라오게 되어있지만 우리는 고 사이에 작용하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는 거에요.
아멘입니까?
그럼 금방 내 육신이 사르르르 들어가요.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아멘!
너와 나 사이에는 누가 계시다? 하나님이 계시다.
그러니까 내가 이웃에게 행하는 것이 사실은 누구에 대해서 하는 거에요?
하나님에 대하여 하는 거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하는 거라고 여기고 생각해야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인간관계를요 내 육신대로 내 멋대로 치받고 그렇게 살면 안되는 거에요. 하나님이 하나님에 대하여 인간관계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뭐라고 하냐면 마태복음25:40 한번 가 보죠.
마태복음25:40 다같이 읽겠습니다.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주님은 이웃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는 가를 본인에게 하는 거라고 얘기를 하는 거에요.
지극히 작 은자, 우리 모두가 다 지극히 작은 자에요.
내 이웃은 나에게 전부다 지극히 작은 자 중에 하나입니다. 아멘입니까?
꼭 길가에 다니는 거지만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아 그 사람이 지극히 작은 자야 그중에 하나죠.
그러나 내 삶에 있어서 모든 자가 나에게 오는 모든 자가 지극히 작은 자 중에 하나에요. 할렐루야! 그들이 다.
그러니까 내가 그들에게 하는 모든 것이 주님에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멘.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저같은 경우에 시어머니가 계신다. 시누이도 있다.
그러면 그들은 나에게 뭐라구요? 지극히 작은 자에요.
그럼 나도 작은 자지만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하는 것이 누구에게 하는 거라구요? 하나님께.
남편은요? 지극히 큰 자 중에 하나입니까?
지극히 작은 자 중에 하나에요. 아멘? 아멘.
그에게 한 것이 뭐라고요? 주님께 한 것이라고요.
그러니까 우리는 나 외에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인간관계를 뭐로 어겨야 한다? 지극히 작은 자 중에 하나로 여기고 그에게 한 것이 바로 누구한테 하는 것이다? 주님께 하는 것이다.
이게 바른 인간관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른 인간관계 모습이더라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아멘.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고 있느냐면 내 남편이 때문에 내 자식이기 때문에 내 무엇이기 때문에 내가 뭘 한다 이게 아니라 이것은 내 남편이기 때문에 하고 내 자식이기 때문에 하는 이것은 결국은 나를 사랑하는거에요. 나에게 속해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를 사랑해서 하는 거지만 개념을 바꿔서 인식을 바꿔서 내 남편이라서 하는 것도 아니고 내 자식이라서 하는 것도 아니라 나에게 맡겨진 영혼들이기 때문에 주께 하듯,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주께 한 것이라고 했으니까 내 남편이라서 하는 것도 아니고 내 자식이라서 하는 것도 아니고 주께 하듯이 다 행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래야 상급이 있어요.
내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한다 이것은 나를 사랑하는 거죠
먼저 이 마음속에 있는 동기와 목적부터가 잘못되어 있어요.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은 그걸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안 받으세요.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주를 위해서 하려고 한다면 내 남편이라서 하는게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 중에 하나로 내가 주께 하듯 해야 하나님이 그걸 받으시고 거기에 대한 상을 마련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을 얘기하죠. 정.
이 정이요 마귀적이에요.
하나님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어요.
자, 자식과 부모간의 정, 물론 정이라는 게 있어요. 부모는 정 때문에 모든 걸 다 줘 자식한테.
이런 것은 상이 없다니까요.
나를 사랑하는 거에요. 나.
그러니까 이런 부모님을 보면 자식을 너무 사랑해서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자기를 사랑하는거죠. 지 몸에서 나왔으니까.
그러나 부모가 자식이라도 내 껏이라 생각 안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맡겼다, 맡김을 받은 것이다. 나에게 라고 생각하는 자는요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함부로 다 주지도 않아요.
왜 다 주면 망하거든 자식이, 정 때문에 주잖아요.
그러나 맡겼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하나님 앞에 다 기도하고 돌아가실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해서 얼마는 저쪽에, 구제하는데 얼마는 필요한데 얼마는 자녀들에게 딱 딱 싸우지 말고 이거 가져라. 그런 분들이 있다 말입니다.
우린 그렇게 살아야 되요.
그러니까 하나님 중심으로 인식이 돌아가는 자하고 나 중심으로 돌아가는 자의 삶은 너무 틀리더라는 거에요.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내 새끼이기 때문에 한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한 영혼을 맡겼다고 생각하시고 최선을 다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개네들을 볼 때 하나님을 생각해야 해요. 먼저.
아~ 하나님이 나한테 내 몸을 통해서 낳게 했지만 나에게 저 귀한 영혼을 맡겼구나! 아멘.
자식을 볼 때 어이구 내 새끼 내 새끼 뽀뽀하고 이게 아니고,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라는 거에요.
남편을 볼 때 자식을 볼 때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시댁을 생각할 때 저는 시댁이 있으니까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라는 겁니다. 아멘입니까? 아멘
그럼 우리는 모든 것이 먹으나 마시는 거나 일을 하는 그들을 대하는 것도 하나님께 대하여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게 상을 얻을 수 있는 거에요. 할렐루야!
여러분 육신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에 틀린 점이 있어요.
육신에 속한 사람은 사람을 무서워합니다. 사람을 무서워 해요.
그런데 영에 속한 사람은요? 누구를 무서워할까요? 그렇죠. 하나님.
영에 속한 사람은 사람이 무섭지가 않아요.
왜? 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하라는 것만 하면 되니까 뭘 무서워 무섭긴.
잘 하면 되지 뭐.
영에 속한 사람은요 하나님을 무서워해요.
잘 한번 보세요. 내가 아직도 사람을 무서워하는 경향이 많다, 그럼 아직 영에 속한 사람이 아닌 거에요. 아멘입니까? 아멘.
사람의 소리를 그렇게 크게 듣지 마세요.
오히려 하나님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게 더 나은 거에요.
당장은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고 그랬는데 사람들이 욕 할 것 같애.
그렇지만 나중에는요 안한 게, 하지 말라고 한 것을 안 한게 더 나은 거에요.
아멘.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거에요.
사람을 무서워 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무서워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요 우리는 베드로전서 4장 11절 한번 찾아보고 넘어가죠.
베드로전서4:11
신약에 382페이지입니다. 저는 먼저 찾아놓고 있기 때문에 안 찾습니다. 지금.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자기 공로를 내세우지 말고 그런 얘기지요.
그 다음에 두 번째는요
첫째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주님께 한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는 존재 이유 나의 존재이유가 그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겁니다.
내가 존재하는 존재 목적이 그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그러지 않습니까?
아휴 저렇게 살아서 되나?
그리고 그 사람을 내 마음 안에서 밀치려고 그러고 비판이 생기고 우리는 그런 것을 보죠.
근데 우리 존재 이유는 그를 안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안에서 그들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거에요.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그들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거에요. 아멘.
그럼 나에게 일어나는 인간관계가 인간관계속에서 나의 존재목적이 그들을 위해서 있는 거에요. 아멘
하나님이 나를 존재하게 하신 존재이유가 그들을 위해서 있다니까요. 할렐루야!
그럼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섬겨야 된다는 거에요. 아멘
우리 에베소서 5장 23절 한번 가 봅니다.
에베소서 5장 23절 다같이 시작.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2절 읽죠.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그다음에 24절 다같이 시작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절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서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자 여러분 여기에 있는 말씀들을 보면 남편에게 주께 하듯 하고 그에게 복종하라 그랬지요.
그게 왜 그렇다고 했습니까?
남편이 아내의 머리된다는 것이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 이유가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여러분이 해야 할 파트는요 남편에게 복종하는 거에요.
거기 이의가 있는 사람 손 한번 들어보세요.
여러분이 해야 하는 파트가 뭐냐면 뭐라고요? 남편에게 복종하는 거요.
근데 주님은 남편에게 하는 말이 또 있죠. 그죠.
근데 여러분은 남편이 아니잖아. 아내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아내가 해야 될 파트가 뭐라구요?
주께 복종하듯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거에요.
그렇게 안 하면 어떻게 해요? 하나님 말씀인데 그렇게 안하면 고난이 옵니다.
아까 제가 뭐라고 그랬어요?
고난이 오는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안 살기 때문에.
그거를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많은 고난을 일으키시죠. 아멘
그러니까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어요.
아무리 우리가 잘났다고 고개 쳐들고 있으면 하나님은 계속 고난을 보내실 수밖에 없는 거에요. 어떻게 하기 까지요? 내가 말씀대로 살기 까지요.
하나님은 누구를 사랑하신다?
나를 사랑하시는 거에요. 나를 사랑하시는 거에요. 그게 되기까지. 하나님은...
근데 내가 먼저 수그러져서 내가 만들어지면 남편이 만들어진다? 안 만들어진다? 만들어지게 되어 있어요. 할렐루야!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나의 존재목적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니라 첫째는 누구를 위해서? 주를 위해서. 두 번째는 그를 위해서, 또는 그녀를 위해서, 나에게 오는 영혼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이것도 대단히 중요한 건데...
사람을 대하지 말고 그 안에 있는 주님을 보라.
여러분 이게 사실은 가능한 얘기가 아닌 거 같이 들리지만 훈련에 의해서 가능합니다.
우리가 왜 영성훈련이라고 얘기를 하냐면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훈련시켜야 되요.
자 세 번째가 뭐라고 그랬어요?
그 사람 안에 있는 사람을 보지 말고 그 안에 있는 주님을 보도록 해하는 것이죠.
그 사람 안에 있는 사람을 보지 말고 그 안에 있는 주님을 보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 말이 무슨 말이냐?
예를 들어서 나를 사랑하는 주님은 내 안에도 계시지만 지금 나에게 못되게 굴고 있는 저 분 안에도 있다? 없다? 계시죠.
근데 그 사람은 단지 뭘 행하고 있는 거에요? 자기 옛 사람으로 살 뿐이야.
근데 하나님은 그 안에 있어요? 없어요? 계시지요.
그 분을 보라는 거에요.
그분은 날 뭘 보고 있냐면요.
그 사람은 육신으로 해 대는데 나를 보고 있는 거에요.
내가 육신으로 하는가 영으로 하는가를 보고 계신 거에요.
그분 안에 있는 그분이 내 안에도 있는 똑 같은 분인데, 지금 나에게 해대고 있는 육신으로 치받고 있는 저 사람의 행위를 보지 말고 고 안에 있는 주님이 날 보고 계신다는 거에요.
그 안에 있는 주님을 보라는 거에요.
그리고 그 주님은 나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도 사랑하고 있다는 거에요. 아멘입니까? 아멘
단지 그 사람안에서 한탄하고 계실 뿐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행하는 것을 보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뭐라고 얘기를 하든 저 사람은 옛사람으로 살고 있구나! 불쌍히 여길 줄 알아야 되요. 아직도 그 모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도 그렇잖아요. 사실은요. 때로는.
그 사람을 보면서 나를 보고 거울의 모습 나도 저렇지.
그 사람의 행위만을 갖고 대하지 말라는 거에요.
그 안에 있는 주님을 자꾸 보는 훈련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 있는 주님은 그 사람에 대하여 한탄하고 계시고 그 사람을 만드시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그분을 보는 거에요.
그러면 우리가 그분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이 불쌍히 여겨지기 시작해요.
할렐루야.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갖게 되거든요.
하나님은 얼마나 아프실까? 우리도 아픈 거에요.
그러면 그 사람이 불쌍히 여겨지고 그렇게 보는 훈련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못되게 구는 사람들이 별로 미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게 훈련이라는 거죠. 훈련.
자 저는 한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그가 아직 변하지 않는 이유가 누구 때문이라구요? 나 때문이다.
이거 받아들이시기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상대방이 안 변하는 이유가 아직도 내가 주님이 원하시는 만큼의 사람으로 변하지 안했기 때문입니다. 아멘입니까? 아멘. 나 때문이라는 거에요.
우리 모두가 이 말씀을 오늘 받아 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에게 환경이 주어졌다 환경이 주어졌다 어던 환경이 셋업이 되었다 그러면 이 환경에 대하여 묵상을 해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겼나? 묵상
하면 내가 부족한 게 드러나요. 나의 부족한 모습이 보여지기 시작해요.
나의 부족함이 보여지기 시작해요.
아! 하나님은 이것을 다루시려고 이런 인간관계와 환경을 허락하셨구나. 할렐루야!
그게 보여지기 시작한다니까요.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나의 부족함 이것을 더 잘 하려고 이걸 메꾸려고 나는 그 길을 향해서 나가면 되는 거에요. 할렐루야!
아 나는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직도 하나님이 요구하시기 위해서 이런 환경을 나에게 허락하셨구나!
그게 온다 말입니다.
아직도 나는 내가 어느정도 됐다고 생각하는데 안 된 것을 보여주시는 거에요.
할렐루야.
더 가면 됩니다. 그러면. 아멘.
환경이 어떤 환경이 펼쳐졌을 때 하나님이 왜 나에게...
그 다음에는요.
여러분이 매뉴얼을 보시면 위장된 평화에 속지마라 그런 얘기가 있죠. 그죠.
위장된 평화, 자 말이 좀 어려운 거 같은데 그렇게 어려운 얘기가 아닙니다.
위장된 평화에 속지마라.
여기에 참 깊은 의미가 있어요.
여러분 우리는 내가 육신적으로 잘 되고 또 재물도 별로 부족한 게 없고 건강하고 교회직분 받아서 잘 다니고 이래저래 잘 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진짜 잘되고 있는 거냐? 아니라는 거에요.
육신적인 편안함이 내가 잘되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게 위장된 평화라는 거죠.
하나님은 오히려 고난가운데 우리를 빚으시길 원하시고 오히려 내 육신이 괴롭고 좀 안된다고 할지라도 그 속에서 내 영이 진주같이 영롱하게 빛이 나게 되기 위해서 깍이고 닦아지는 그것이 잘 되고 있는 건데 오히려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냐면 아무 걱정없고 편하고 내가 기쁘고 남편이 나한테 잘해주고 이러면 내가 잘되고 있는 거다? 아니라는 거에요.
오히려 그렇다면 고난 속에 있는 자가 더 잘되고 있는 겁니다. 할렐루야.
왜냐하면 다윗은 뭐라고 했냐면 고난을 통해서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고 했다고 그랬거든요. 고난을 통해서만 우리가 배울 수 있어요. 사실은.
고난이 내게 유익이 되었나이다.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더니 고난을 당한 후에는 내가 바르게 행하나이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어떤 육신적인 편안함, 육신적인 행복, 그런 것들이 내가 잘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히려 잘 되고 있는 경우는 정말 잘되고 있는 경우는 고난의 풀무 속에 있을 때 나는 잘 되고 있는 거에요. 할렐루야.
이것을 받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라오디게아 교회에다가 교인들이 뭐라고 하냐면 나는 부족한 것이 없다. 부요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그랬어요.
근데 주님은 뭐라 그랬어요? 내가보니까 너는 부요한 게 아니라 너는 눈이 멀었고 가련했고 헐벗었고..눈이 멀었다는 거에요.
그러니까 주님이 보는 것은 그 영혼이 파리해 지고 전혀 힘을 못쓰고 시들시들해지고 죽어가는 것을 보는 거에요.
육신적인 편안함을 추구하는 자가 그렇다는 겁니다.
그럼 우리는 진짜 추구하고 달려갈 길이 뭐냐면? 주님의 길이라는 거에요.
주님은 길은 쉽지가 않았어요.
늘 낮은 데였고 대접 못 받았고 힘들었고 머리 둘 데가 없었고 그러면서도 그 안에 하나님, 하나님 때문에 기뻤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생명을 걸었고, 내 뜻을 행하러 온 자가 아니라 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했던 그 모습을 보면 그는 결코 육신적으로 행복하고 따뜻했고 부요했고 그런 자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장차 그분이 받을 영광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도 어떻게 해야 한다고 했어요?
우리도 고난을 겪어야 한다고 했어요.
인생의 고난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되는 거에요. 할렐루야!
고난을 주신 하나님이 나에게 지금 고난의 풀무불에 넣고 있다...그러면 그 정도의 사랑이 지금 나를 얼만큼 사랑하고 있다구요? 엄청난 사랑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거에요. 할렐루야!
고난이 없다? 그러면 사랑 안하는 거에요. 하나님이. 아멘입니까?
그렇게 거꾸로 잘 생각할 수 있는 이것도 훈련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할렐루야! 해야 되는 거에요.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모든 인간관계속에서 주여, 나는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능력으로 해 낼 수 있습니다. 아멘.
근데 그 힘이 뭐에요?
죽는 힘이에요. 죽으라는 거에요. 아멘.
죽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품어서 내가 없어지라는 거에요. 아멘입니까?
그렇게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 소유의식을 버리라 되어 있지요.
여러분 인간관계속에서 또 하나 우리가 진짜 유의해야 될 것은 소유의식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자 여러분 소유의식이라는 게 뭐냐? 내 남편, 그다음에 내 새끼, 저에게는 강아지 새끼가 있지만, 물고기 새끼도 있고, 그리고 개네들은 새끼라고 해도 되요.
근데 소유의식 남편이 내꺼다 내 새끼도 내꺼다 이게 아니라는 거에요. 이것을 버리라는 거에요.
내 꺼라고 생각하면 어때요? 내꺼 내가 하라는 대로 안하면 안돼.
안되니까 어떻게 해요? 주장이 있으니까 맨날 싸우는 거야.
눈을 부라리고 내가 하라는 대로 안하고 말이야 고집을 피우고 삐지고 여러분 이 모든 것이 뭐에요? 이게 육신이고 이게 사망의 삶이라는 거에요.
내 소유의식을 내 가정에서부터 버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구 껍니까? 하나님 꺼. 이 세상에 내 꺼는 하나도 있다? 없다? 없다.
내 새끼도 내께 아니다.
내 남편도 내께 아니다.
내 아내도 내께 아니다.
주장하는 마음을 버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제가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어요.
저는 자식이 없지만 여러분들은 자식이 있지요.
자식이 내 한 몸으로 느껴집니까? 남편이 내 한 몸으로 느껴집니까?
우리 사모님은 남편이에요? 그래요?
아하 그래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렇다 이거에요?
어떤 의미에서는 시간이 가면서 그럴 수도 있는데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성경은 뭐라고 얘기하고 있습니까?
남편과 나는 하나라는 거야. 한 몸 이게 성경의 진리입니다.
자녀는요 나에게 맡겨주신 따로 떨어진 영혼이에요.
물론 남편도 영혼이지만 남편이 나와 같이 한 몸이고 자녀는 딴 몸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사냐면요
우리 남편은 쓸모가 없으니까 버려도 되고요, 자식는 절대로 버리면 안되요. 이런 식으로 마음가짐과 살고 있는 분들이 상당히 있더라구요.
그건 잘못된 거에요.
오히려 하나님께서 말하시는 진리는 자녀는 내 몸이 아니에요.
오히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한 몸이 되라고 주신 남편이 내 한 몸이에요.
우리가 잘 못되게 살고 있죠. 이게 뭡니까? 나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진리를 사랑하는게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거에요. 동물과 같은 삶, 그런 삶을 얘기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아까 정이라고 얘기했잖아요.
이 정은 마귀적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여러분이나 저나 자식보다 남편이 내 몸이라고 생각하고 살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되요.
그렇게 안 사니까 고난이 오는 거에요. 아멘.
여러분 남편이 내 한 몸이라고 했으면 헤어질 수 있어요? 없어요?
내 한 몸이면 반쪽을 쪼갤 수 있습니까?
도끼로 가져와서 여러분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짤라 볼까요?
아니래니까요.
우리가 다시한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 거기에 굴복될 수 있기를 저를 비롯해서 우리는 인간이잖아요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청년들이 어떻게 해서 그들을 깨끗케 하리이까 하나님 말씀으로 깨끗케 되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삶 자체를 깨끗케 해야 되는 거에요.
아멘입니까?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세상도 돌아가고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되면요 고난이 없어져요. 줄어듭니다.
말씀대로 사는데 뭐.
이삭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저였기 때문에 고난이 없었어요.
근데 우리가 고난이 왜 있냐?
내가 말씀대로 안 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멘입니까?
내 안부터 바꿔져야 되요.
자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은 부부관계 속에서 우리는 어쨌든 맡았습니다.
내 한 몸이지만 남편도 어째든 맡았어요.
그러면 내가 내 꺼이라고 생각해서 주장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예를 들어서 남편이 내가 바라는 남편, 내가 바라는 남편 있잖아요. 그런 남편으로 만들려고 하지 말고, 우리가 해야 될 파트가 뭡니까? 남편이 바라는 아내가 되기를 하나님은 바라시는 겁니다. 우리 편에서. 우리가 해야 될 도리는.
여기에 동의가 잘 안 되는 것처럼 보여요.
남편이 바라는 아내가 지금부터라도 내가 조금씩이라도 해야되겠다. 마음 먹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럼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다 마찬가지에요.
남편이 바라는 아내가 먼저 되자. 아멘!
우리 남편도 바라는 게 너무 많아요. 내가 바빠서 못해줘서 그렇지.
우리 남편 바라는 게 참 많아...
뭐가 많으냐?
남자들이 원하는 게 비슷 비슷하죠.
자기만을 위해주기 원하는 것 이런 것 있잖아요.
또 제가 요즘 살이 좀 쪘어요. 그럼 살을 좀 빼라는 거지. 그런 것.
...하여간 그렇습니다. 어쨌든.
그러니까 뭘 얘기하려고 하는가? 그런 어떤 하나를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내가 바라는 남편으로 만들지 말라는 거에요.
여러분 많이 그러고 살죠.
그거 버리시라는 거에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거 버리고 오히려 바꿔져서 내가 남편이 바라는 아내가 되어보자. 그게 섬기는 거거든요.
섬기는 것이 딴 것이 아니라 섬기는 게 딴 게 아니잖아요.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거에요. 아멘.
무시하지 말고...할렐루야!
그러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내가 순종하기 때문에 남편을 기쁘게 해 주기 이전에 누구를 기쁘게 해 주는 겁니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거잖아요.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요 나를 걸러내고 성령을 통과시켜야 된다.
야고보서 1장 19절에서 20절 찾아보죠.
약1:19-20
제가 있잖아요 영성훈련을 일주일에 세 번을 하고 나면 화요일 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프기 시작해요.
이게 제가 힘든 거에요. 하루종일 헤매 막 어떤 때는. 헤매다가 저녁때 시간쯤 되어서 강의 서면 정신이 바짝 들어서 낫고 지난주는요 지난주 수요일날 이게 왔어요. 화요일에 온 게 아니라 수요일날 온 거에요. 아침부터 계속 아프더니 하루종일 헤매다가 수요일날은 제가 아무것도 없거든요. 다행이죠. 헤매다가 나중에는 이렇게 어디 가서 파킹을 하는데 파킹할 때 삥 좀 돌잖아요 돌 때 바깥이 도는 현상이 생기는 거야.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구요.
내 안에서 도는 게 아니라 바깥이 막 돌아... 그래갖고 파킹을 하려다가 들어가다 그랬으니까 빨리 P로 놓고 누워 있었는데도 계속 돌아가는 거에요.
그래갖고 혼났어요. 처음 제가 겪어보는 건데 제가 그만큼 스트레스고 이게 바쁘다 보니까 우리 남편이 조금 서운한 점이 있겠죠. 그죠.
그런 면들이 있어서 내가 무슨 얘기를 하려다가 이런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네. 제가 좀 힘들었다. 그 얘기에요.
자 야고보서 1장 19절에서 20절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여러분,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대요.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는 자들이 주님은 뭐라고 하시냐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대요.
여러분, 화를 왜 냅니까? 결국은 자기를 사랑해서 화를 내더라구요.
자기 맘대로 안 되니까 주장을 버리지 못하니까 내가 고집피우니까 내 맘대로 안되니까.
그런데 이 화를 내는 게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는 거에요.
그럼 화를 내서 되겠습니까? 안내야 되겠습니까?
안내야 된다는 거에요. 내 맘대로 안 되었다고 해도 화를 내지 말라는 겁니다.
아멘입니까?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인간관계속에서 주의 해야 될 것들이 너무 많죠.
마지막으로 하나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
어제 주일 예배 마치고 어떤 목사님 두 분이 우리교회 방문하셨어요.
친한 목사님 두 분이 와갖고 뭐라고 그러냐면 한 목사님이 우리 남편 집사님보고 우리 목사님이 집사님에게 잘 해 주세요? 물었어요. 그건 또 왜 묻는지 몰라. 내 앞에서. 그랬더니 우리 남편이 씩 웃으면서 하는 얘기가 너무 바빠서요. 근데 제가 또 뭐라고 그랬냐면은 아이 그럼 잘 해주죠. 제가 아침마다 일어나서 새벽기도하기 전에 도시락 다 싸 주구요. 또 저녁에 오면 저녁도 차려주고요. 아 근데 저녁에 영성훈련이 있는 날에는 차려주나? 아 그것도 차려주네요. 그랬더니 막 웃으시는 거에요. 근데 저는 그게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남편은 또 남편 입장에서는 더 잘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런 게 있잖아요. 그런 게 있겠지요. 그 얘기를 듣고 오늘 저도 인간관계를 다시 하면서 나도 좀더 잘해야 되겠다. 할렐루야!
사무엘상 16장 7절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여러분 모든 인간관계속에서 하나님은 그 내면을 본다는 거에요.
바깥에 들어나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척해도 하나님은 뭘 보신다구요?
안에 있는 마음. 그래서 우리는 안을 바꿔야 되요.
안에서부터 사랑이 나와야 돼. 안에서부터 내가 내려놔져야 되요.
안에서부터 그를 미워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맘을 다 내려놔야 되요. 아멘.
그러고 나서 그들을 사랑하는 행위로 들어가야 된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외모가 아니에요. 내 안입니다.
하나님이 뭘 보신다고요?
하나님은 내 안을 살피신다고 했습니다. 아멘입니까?
그래서 여러분 그게 안되면 될 때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야 됩니다.
하나님이 내가 왜 그들을 사랑할 수 없습니까?
아직도 나는 내가 너무 강하고 내안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될 때까지. 안이 바꿔질때까지.
누구 앞에 앉아 있어야 된다구요? 하나님 앞에. 할렐루야!
이 내용이 너무 많은데 우리 두 번째 시간에 하든지 연결해서 하든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 우리가 인간관계속에서 하나님께서 다 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그것도 누구를 위해서 이 밴댕이같이 속이 좁은 못된 나를 깨뜨리시기 위해서 나를 좀 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서 그들을 내 옆에 두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 옆에 두심을 감사하옵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우리가 만들어지기 위해서 나를 비우는 훈련과 나의 못된 것들을 내려놓고 나를 빼어내고 내 안에 주님을 넣어서 정말 나는 힘이 없어지고 내 안에 주님만 강해져서 주님으로 사랑할 수 있는 그 인간관계가 되기까지 우리를 훈련시키는 줄로 믿사오니 주님 우리는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사옵고 이 모든 말씀 우리 예수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하였사옵나이다. 아멘
우리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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