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주-4)
Ⅲ. 물질과 영성 진리단계- 내가 너로라 하는 주님의 말씀
두 번째 시간에는 관계의 영성에 대해서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관계의 영성인데 이사야 43장 가 봅니다.
이사야 43장 19절에서 21절 다같이 시작.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아멘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 뭐냐면 뭐라고 그랬습니까?
우리를 지은 목적이 그를 찬송케 하기 위해서 지었다. 하나님을 찬송케 하기 위해서 지었습니다.
그러면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라는 거에요.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기가 잘 살기 위한 수단으로 삼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뭐냐면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죠.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음받기 전부터 계신 분인데 그렇잖아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게 맞습니까? 틀립니까?
오늘 성경말씀을 보면 내 백성을 내가 왜 지었냐? 이 백성을 내가 왜 지었냐?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 그러니까 우리 존재목적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존재라는 거에요.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이유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살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다는 거에요.
하나님을 위해서 내가 살고 있다.
여러분 성버나드가 이야기 했다고 했지요.
4가지 사랑의 단계, 성버나드의 4가지 사랑의 단계가 있습니다.
이게 머릿속에 있어야 좋습니다.
첫 번째 두 번째는 다 내가 나와요. 나를 위해서.
첫 번째는 나를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단계. 이것은 본능단계입니다.
본능단계에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를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단계.
그다음에 두 번째는 나를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러니까 이 단계는 뭐냐면 하나님이 도깨비 방망이처럼 자기가 원하는 것을 다 주는 걸로 생각하는 거에요. 그렇지 않죠. 그죠.
나를 위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소위 얘기하는 영성훈련의 네가지 기둥에서 윤리단계에 속합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와 네 번째는 하나님이 먼저 나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 이게 진리단계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 그러니까 하나님을 위해서는 사도바울이 말한 것처럼 모든 것을 주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는 내가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겨지는 이 단계가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로서 진리단계에요. 진리단계. 우리가 소위 얘기하는 진리단계.
그다음에는 하나님을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단계.
이 땅위에 있는 나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그런 거에요. 내가 나를 위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 사도바울이 뭐라고 그러냐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지금이라도 이 세상을 떠나서 주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인데 내가 이 땅위에 있는 것은 너희를 위함이라 그랬어요. 이게 네 번째 단계에요. 하나님을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단계.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많은 사람들이 어느 단계에 있냐면요?
두 번째 단계에 있어요. 예수 믿는 자들이.
많은 예수 믿는 자들이 어느 단계에 있냐? 두 번째 단계에 있어요.
나를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
우리는 처음에 이게 본능단계라고 그랬지요. 나를 위해서 나를 사랑하는 단계.
그리스도인들이 본능단계를 거쳐서 윤리단계에 가고 윤리단계를 거쳐서 진리단계로 넘어가고 진리단계에서 생명단계. 맨 마지막이 생명단계거든요.
우리 영성훈련 네가지 단계와 비교를 해 본다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게 하루속히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로 바꿔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손에 놀아나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여러분을 따라오게 하기 위해서 구하는 대로 줍니다.
그렇죠. 그죠.
구하는 대로 줍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성장하면 구해도 안 줍니다.
왜냐? 하나님의 뜻이 아닌 걸 구하고 있기 때문에.
어린애 때는 막 죽는다고 퍼지고 그러면 초코렛을 줄 수 있어요.
몸에 나빠도 안 주길 원하지만 하나님은 애 이 썩는 것 때문에 부모는 안 주길 원하지만 그러나 너무 뻗대고 울고 나자빠지고 그러면 주는 거에요.
그런데 성장하면 하나님 뜻이 아니면 안줍니다. 안줍니다. 구해도.
그러니까 내가 구해도 하나님이 안주실 때는 ‘아 내가 좀 성장했구나’ 생각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진짜라니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이 뭔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그래요.
그리고 그 구하는 것 안 주죠? 그러면 나중에 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는 걸 알아요. 아멘입니까? 하나님은 더블로 축복하시는 분이에요.
우리를 훈련시킬 뿐만 아니라 더 좋은 게 기다리고 있다. 아멘입니까?
그래서 나를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 이 단계에 있다면 하루속히 정말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관계영성에서 처음에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를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 우리와의 관계
여러분이 이 영성훈련에 앉아 있는 이유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살아드리고 싶어서 이곳에 온 줄로 믿습니다. 이게 바른 관계에요.
어린애 때에는 하나님의 뜻도 상관없어요. 무슨 상관이 있어? 내가 원하는 것만 받으면 되지. 그렇지 않았습니까? 내가 어릴 때는.
그런데 성장하고 보면 ‘아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드리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구나!’를 알게 됩니다. 아멘입니까? 아멘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알고 싶고 알기만 하면 제가 그 뜻대로 살아드리겠습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되는 거에요.
그런데 그 뜻대로 살고 싶다는 마음은 또 가졌는데 몸이 안 따라주는 몸이 안 따라줄 때에는 거기서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그죠.
그래서 우리가 영성훈련을 하면서 자아파쇄 훈련과 비우는 훈련과 주님으로 사는 훈련을 계속 하고 있는 거에요. 할렐루야.
하나님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그렇습니다.
결국은 뭐냐?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그분의 뜻대로 살아드리는 것이 바른 관계라는 거죠.
로마서 12장 한번 가 봅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 2절 다같이 시작.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그러니까 하나님과 나와의 바른 관계는 첫째는 하나님이 나를 하나님을 위해서 지었다. 이걸 알아야 되죠. 하나님을 위해서 나를 지으셨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지,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존재라는 거에요.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뭐냐면 우리를 지은 이유가 뭐냐면 그분을 위해서 지었다는 거에요.
그럼 나는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두 번째는요 그랬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로마서 12장 1절-2절에서 얘기하는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서 그 뜻 앞에 우리의 몸을 산제사로 드리는 삶, 이런 삶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와 나의 관계에서 바른 관계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이런 얘기를 했어요.
그분이 어떤 교회의 여전도회 회장이래요.
여전도회 회장하면 신앙 좋은 사람들이 여전도회 회장을 하죠. 그죠.
그래요? 안 그래요? 좀 괜찮은 사람들.
그 사람이 이 영성훈련 2년을 받고 나서야 이런 고백을 했대요.
2년 후에 ‘목사님 내가 이제야 내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멘? 아멘.
그러니까 이게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에요.
말은 한 마디하고 지나가는데 정말 내 삶이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느냐는 것입니다. 이게 깨달아지면 내 삶이 변해져요. 내 가정이 변하고 내 이웃이 변하고 내 교회가 변해집니다. 나로 인해서. 아멘입니까? 아멘.
내가 왜 존재하냐? 하나님을 위해서 존재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요 모세가 늦게 내려오니까 십계명을 가진 두 돌판을 가지고 늦게 내려오잖아요. 그들이 아론을 시켜갖고 금송아지를 만들었어요.
그래놓고 모세가 내려와 보니까 금송아지 앞에서 뛰어놀고 제사를 드리고 그러더라는 것이지요.
왜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었냐? 이거에요.
왜 이스라엘 민족은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그 앞에서 뛰고 놀고 제사를 드렸냐는 것입니다.
이들의 마음을 보면 하나님이 금송아지든지 또 다른 어떤 것이든지 상관이 없고 그들의 관심은 오직 잘 먹고 잘 사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자기들을 이끌어 낸 하나님이 하나님이어야 하는데 그 하나님이 하나님이든지 금송아지가 하나님이든지 상관이 없는 거에요.
왜? 자기만 잘 먹고 살면 되니까.
이게 뭐냐면 우리 교회에 들어와 있는 신 바알주의 사상이에요. 신 바알주의.
이게 뭐냐면 누가 나를 잘 먹고 잘 살게 하든지 상관이 없다 이거야.
그게 하나님이든지 금송아지든지 아무 상관이 없는 거에요. 내가 잘 먹고 잘 살면.
이게 뭐냐면 지금 현재 우리 교회에 들어와 있는 신 바알주의로서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 신앙생활 하는 것, 기복주의 신앙생활 하는 거.
여러분 없는 것 같죠?
그들의 관심이 늘 어디에 있었냐면 자기 자신이었어요. 자기 자신.
자기를 위해서 살았어요.
여러분 이 세상에 지금 현재 세상에 가장 큰 우상이 뭔지 아십니까? 자기 자신이에요. 자기 자신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우상이 ‘나’더라는 것입니다. ‘나’ 나를 위해서 사는 것. 항상 관심이 자기한테 가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자기를 위해서 섬겨요.
여러분 이게 그냥 넘어갈 얘기들이 아니에요.
나를 한번 잘 볼 수 있어야 해요.
정말 이 말씀 앞에 내가 정말 나를 위해 섬기는 건지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건지 한번 봐야 되요. 아멘입니까? 아멘.
스스로 속이면 안 되요.
내가 나 자신을 아는데서 발전이 시작이 되요.
내가 나를 모르면 발전이 없습니다.
나도 나 자신에게 속고 하나님은 안 속지만, 내가 신앙생활 하는 게 나를 위해서 하는 건지 하나님을 위해서 하는 건지를 봐야 되요. 그럼 초점이 어디로 가냐? 하나님의 뜻에다가 초점이 맞추어집니다.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초점이 맞춰져야 되요. 할렐루야.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초점이 맞춰진 자는 어떻게 사냐면 내가 좀 희생이 되도 내가 좀 못 살아도 내가 좀 죽을 거 같아도 하나님의 뜻에 초점이 맞추어진 자는 ‘그래도 가겠나이다.’ 이렇게 되는 삶이 되어야 되는 거에요.
아멘입니까? 아멘.
예를 들어서 선교지에 왜 나갑니까?
여러분에게 바로 선교지에 나가라는 얘기는 아니지요.
이 얘기를 하려다보니 선교지 나가는 사람들의 예가 생각나서 하는 겁니다.
선교지에 왜 나갑니까? 사람들이. 잘 살라고 나갑니까? 잘 살기 위해서 나가는 게 아니잖아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가는 거에요. 할렐루야.
가서 고생할 거 뻔하고 여기서 돈 안 보내주면 굶어죽을 게 뻔한데 굶을 게 뻔한데 누구만 바라보고 가는 거에요? 하나님만 바라보고 가는 거에요.
왜?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여러분 내가 나를 위해 사는 자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 사는 자하고는 틀리잖아요. 이렇게. 틀려요. 우리가 비록 여기 있지만 여러분이나 저나 하나님의 뜻을 쫒아 사는 자들이 되어야 되요. 아멘입니까? 아멘.
선교사님들만 하나님의 뜻을 쫒아 살고 그럼 나는요? 나는 선교 안가니까 내 뜻대로 살고.. 이게 아니잖아요. 여기 남아 있다 할지라도 이곳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드리는 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것이 나에게 손해가 오고 희생이 오고 내가 죽는 거 같아도.
아멘입니까? 아멘. 잘 받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에 관심이 내가 항상 갖고 있는 관심이 나라면 빨리 벗어나야 되요.
내가 아닙니다. 나의 존재목적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되요.
내가 기쁜 게 아니라 주님이 기쁘신 것을 따라서 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도행전 20장 가 보겠습니다.
사도행전20장 22절부터 24절 보겠습니다. 다같이 시작.
22.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여러분 여기 분명히 뭐라고 그러냐면 사도바울은 가라 그런다잖아요.
가는데 또 성령이 뭘 가르쳐 주냐면 가면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한다는 거에요. 거기까지만 알려주셨어요.
분명히 가라하시는데 가면 너 결박당한다는 거죠. 잡힌다는 거죠.
그리고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얘기하시는 거에요.
그런데 사도바울은 뭐라 그랬어요? 하나님이 가라하면 간다는 거잖아요.
나를 결박하고 환난이 기다리고 있지만 하나님이 가라하니까 가겠다는 거에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할렐루야.
정말 하나님의 뜻을 받으면 결박이 기다린다 그래도 가야 되는 거에요.
아멘입니까? 이걸 여러분의 삶에 한번 적용을 해 보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결박해서 그 삶에다 묶어놨어요. 분명히 환난이야. 그래도 하나님의 뜻이면 어떻게 해야 된다는 거에요? 가야 된다는 것에요. 할렐루야. 하나님의 뜻이면 가야 되요. 이게 아버지 하나님과 나와의 바른 관계더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다음에 사도행전 21장 4절 한번 보죠. 다같이 시작.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자 여기도 보니까 사도바울만 그런 성령의 감동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들도 성령의 감동을 받았지요. 그러니까 성령의 감동은 성령은 한분이신데 다 받을 수 있다는 거에요. 어떤 사람만 성령의 감동을 받고 어떤 사람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런 게 아니라는 거에요.
성령은 어느 누구에게도 다 음성을 들려주실 수 있다는 거에요. 할렐루야.
문제가 뭐냐? 순종 하냐 안 하냐가 문제입니다. 아멘!
그다음에 사도행전 21장 10절 12절 보겠습니다.
10. 여러 날 머물러 있더니 아가보라 하는 한 선지자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과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자 이 아가보라고 하는 자는 또 이 사람도 성령의 감동이 있었지요.
11절에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아가보라 하는 자가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그러더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성령은 벌써 세 종류의 사람에게 얘기했죠.
사도바울한테도 성령의 감동이 있었고, 제자들에게도 성령의 감동이 있었고, 또 누구에요? 아가보라고하는 선지자에게도 성령의 감동이 있었어요.
그 감동이 뭐냐? 예루살렘으로 가면 환난이 기다린다는 거에요.
그런데 그게 하나님의 듯인 것을 또 알았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반응하는 게 좀 틀리죠.
사도바울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지금 바른 관계에 대해서 얘기 하거든요. 하나님의 뜻이면 환난이 기다린다 할지라도 나는 간다. 할렐루야. 거기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다. 아멘.
하나님이 왜 보내겠습니까? 환난만 당하라고 보내는 하나님 아버지입니까?
그런 분이 아니잖아요. 반드시 거기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그러니까 가라는 거에요. 내가 환난을 당하고 결박을 당하는 그거보다 더 큰 뜻이 있는 거에요. 아멘입니까? 아멘.
그러니까 사도바울은 그렇다할지라도 나는 간다는 거에요.
그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제자들은 가지 말라잖아요. 가지마라.
성령의 감동이 있긴 있었지만 가지마라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뭐냐면 하나님 아버지 뜻을 알더라도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면 안 따르는 거에요.
이게 뭡니까? 자기에게 관심이 있는 자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긴 듣고 감동이 있긴 있는데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안 듣는 자들,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자들, 그런 자들이 지금 제자들이죠.
그다음 아가보는 그냥 말만 전했어요.
이렇게 하시더라 그러시더라 따르고 안 따르고는 당신들에게 달렸습니다.
이게 중간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죠.
그러니까 하나님과 정말 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은 사도바울이었다는 거에요.
하나님은 사도바울에게 그 이후에 일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분명히 너는 가야 되는데 가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 거기까지만 알려줬어요.
그럼 이게 무슨 얘기냐?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에게 부분적으로 가르쳐줍니다. 그걸 하고 나면 또 가르쳐 주세요. 할렐루야.
그래서 사도바울이 거기 가서 환난과 당했지만 결국 어디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까? 로마로 이송되어져서 거기서 2년 동안 복음을 열심히 전하잖아요.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결박과 환난이 있게 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더 큰 뜻이 숨어 있더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하나님은 때로는 조금밖에 안 가르쳐 주세요. 그런데 그 조금밖에 안 가르쳐 준 것에 순종하고 나면 뒤에는 더 큰 그때 가서 가르쳐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뭐 하면 됩니까? 우리는 순간 순간 한 단계만 잘 인도함 받아 가면 되더라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아멘.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정말 예언을 잘 받았는가?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음성을 들었는가는 언제 증명이 됩니까? 그 일이 일어날 때. 우리는 모릅니다.
애매한 경우들이 많잖아요.
이게 정말 하나님의 음성인가? 내가 들은 것이. 사단이 한 것 같지도 않고 내가 보기에는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것 같지도 않지만 이게 정말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정말 모르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럴 때에는 한번 더 확인할 수도 있겠지만 제일 정확한 거는 그 일이 일어나는가 안 일어나는가 입니다. 할렐루야.
때로는 하나님이 실패도 하게 하셔요.
제가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인데 어쩔 수 없어요.
제가 우리 남편과 결혼을 했잖아요. 신혼살림을 차렸잖아요. 그죠.
그때 원 베드룸에 이사를 갔는데 그때는 동양선교교회 뒤쪽으로 있었어요.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하나님께 기도를 하는데 여기는 싸움의 영이 있으니까 집을 나가라는 거에요. 한 달밖에 안되었는데.
결혼해서 한 달밖에 안되었는데. 시부모한테 내가 만일에 제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 한 달만에 이 집에는 싸움의 영이 있으니까 나가라고 그러는데요. 그러면 듣겠어요? 안 듣겠어요? 기가 막힌 상황이 벌어진 거에요. 솔직하게.
그래서 저는 남편한테만 얘기했습니다.
‘자기야, 하나님이 그러시는데 여기는 싸움의 영이 있다고 그러는데 우리 이사가야 되겠는데’ 그러니까 이제 이사 온지 한 달밖에 안되었는데 우리 남편도 팔딱팔딱 뛰는 거에요. 그러지 않겠어요?
나는 분명히 하나님이 말씀하셨는데 제가 물어본 것도 아니야.
기도하는데 그냥 쫙 와 버렸어요. 일방적으로 와 버린 거에요.
‘아 그럼 나가야 되는 구나’
계약한지 한 달밖에 안되었는데 침대 산지 한 달밖에 안되었는데 신혼살림 차린지 한 달밖에 안되었는데 이사를 가야 되는 거에요.
얘기를 할까 말까 그랬어요. 그런데 우리 남편에게 했어요.
이사 가자 그랬지요.
그랬더니 우리 남편이 시부모님한테 쪼르륵 가서 얘기했네.
우리 시부모님이 와서 우리 시누이한테 갔다가 돌아다니다가 아직 한국에 안 가셨거든요. 그러니까 거기 가서 얘기를 한 거에요.
그랬더니 시부모님 하는 얘기가 ‘얘야 싸움의 영이 있으면 이겨야 되지 않겠니?’ 이러시는 거에요. 영적 싸움을 해서 이기라는 거에요.
그런데 이길 것 같으면 하나님이 나가라고 했겠어요? 안 나가라고 했겠어요?
못 이길 것 같으니까 나가라고 한 거에요.
그래서 나도 그 말 듣고 어떻게 우리 남편 꼼짝 안 하죠.
우리 시부모님 둘이서 그러시죠. 우리 시누들도 그러죠.
그 영 싸워서 이겨야죠 그러는데 할 말이 없는 거에요.
그러고 나서 1년도 안되어서 우리 남편이 집을 나가버렸어요.
그 상세한 얘기는 제가 다 얘기를 못합니다.
그 때 제가 영성훈련을 받고 있었어요.
우리 남편 때문에 제가 이기는 생명으로 넘어갔다는 거 아니에요.
아무리 잘해줘도 다 차 버리고 내가 다 얘기 했나?
들은 사람 있을 거에요. 그죠.
빨래를 접어놓으면 다 흩어 버리고 직장 나가면서 신발 다 차버리고 그거 되게 기분 나빠요. 내 신발 차버리고 가면. 사람은 없고 얼마나 기분 나쁜데요.
그런데다가 밥을 계속 했는데 밥을 안 먹는 거야. 한 달을.
견뎌보십시오. 얼마나 기가 막힌 지.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내가 사랑하려고 하니까 사랑이 안되요. 사람의 힘으로.
안에서 막 부글부글 그러고요. 내가 이렇게 살아야 되나?
무슨 얘기인지 알죠? 다 때려치우고 싶고 진짜.
내가 내 힘으로 하려고 해도 안 되는 거에요.
그때 이기는 생명으로 들어갔다고 그랬지요.
그리고 우리 남편이 딴 교회에 가서 앉아 있고 밤 12시 2시 되어서 들어오고 난 찾으러 다니고 별 일이 다 일어났어요. 그리고나서 우리 남편이 집을 나가버렸어요. 그대 제가 뭐가 생각이 났겠어요?
처음에 한 달 뒤에 받았던 그 음성 ‘여기는 싸움의 영이 있으니까 빨리 이사 가라’는 거에요. 그 음성이 생각 안 났겠습니까? 제가.
1년 후에 그 일을 당한 거에요.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냐?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면 반드시 일어납니다. 그 얘기를 하려고 하는 거에요.
우리 집 가정사를 다 얘기하려고 한 게 아니에요.
또 하나 받은 말씀이 그 때 영성훈련 다닐 때인데 영성훈련에 와서 앉아 있는데 마음이 찹찹하더라구요. 우리 남편이 집을 나갔는데.
‘하나님’ 그랬더니 ‘내가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린다’ 딱 말씀하시더라구요.
그 말씀 받고 나서 제가 움직였겠어요? 안 움직였겠어요? 안 움직였지.
전화를 하거나 안 하거나 그 얘기는 하나님이 돌린다는 거거든요.
두 달 후에 집에 들어오더라구요.
하나님 말씀 앞에 바로 앉아 있으면 반드시 그 일을 이루세요.
아멘입니까? 아멘.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고 성령의 감동을 주시고 또 말씀하시기도 하는데 정말 그 말씀이 하나님이 주신 음성이냐 반드시 주신 음성이면 반드시 일어나기 때문에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기다려서 일어나는가 안 일어나는가 보시라는 거에요.
그럼으로써 ‘아하 내가 지금 받고 있는 것이 정확하게 받고 있는 것이구나!’를 깨닫게 되요. 맞는 걸 보면서. 무슨 얘기인지 아세요?
그래서 여러분 저도 가끔 가다가는 여러분을 상담하면서 말씀도 주고 하기도 하면서 정말 내가 한 말씀이 맞는가를 지켜보는 때가 상당히 있습니다.
그리고 함부로 얘기할 것은 말하지 않습니다.
일어날 때까지 지켜보고 있다가 그 후에 간증합니다.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저로서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들은 거의 다 맞더라는 거에요. 저는 그게 참 감사한 거에요.
때로는 여러분들을 제가 상담을 하면서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어요. 제가 생각해도. 그런데 듣는 사람은 생활고라든지 어떤 생활의 염려라든지 앞으로 사는 그런 것 때문에 막 이렇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도 그런 것들 때문에 따를 수가 없는 거에요.
그때는 차선을 택합니다. 그때는 어쩔 수가 없어요. 약하니까.
차선을 택하는데 그래도 하나님은 차선을 택해도 또 좀 봐 주시더라구요. 그것을. 물론 최선은 하나님이 알려 주신 방법입니다.
근데 그걸 지금 내 믿음으로서는 따르지 못할 수가 있어요.
그럼 차선을 택해요. 그래도 하나님은 그 나름대로 또 좀 풀어나가시는데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냐면 그러면 처음에 받았던 하나님의 말씀은 잘못된 거다. 아니라는 겁니다.
제가 이런 경우를 몇 번을 제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데 아직 그분들의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기에는 부족할 수 있잖아요. 우리의 모습들도 가끔 알면서도 안 따르는데,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죽입니까? 그렇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냐면 우리의 신앙들이 성장하면 성장할수록 어떻데 변해져야 되냐면 나를 위해서 하나님께 묻는 자가 있고, 잘 들어보십시오. 하나님을 위해서 진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묻는 자가 있어요. 그런데 내가 지금 당한 환난이 너무 커서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가 나의 어떤 상황이나 나의 유익, 나를 위해서 묻는 경우들이 상당히 많아요.
그럴 경우에는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줘도 내 문제가 너무 커서 그걸 못 먹더라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는 저도 고민이 될 수 있지요. 그렇지만 또 하나님의 뜻은 이거라고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고 그래서 참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봐요.
결국 차선을 택해서 그들이 살아남긴 살아남지만 다른 쪽에 얘기입니다.
여러분의 얘기가 아니에요. 벌써 거쳐 간 사람들의 얘기에요.
그들이 과연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는가? 당장 뭔가는 피했다 할지라도 정말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다른 거였어요. 그러나 자기들이 당장 예를 들어서 먹고 사는 게 고민이 되고 그럴 때에는 당장 차선이 나은 거에요. 자기들이 보기에. 그럼 차선을 택했다할지라도 그러면 길이 길어지죠.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방향으로 가면 고생은 되더라도 빨리 빚어지는데 그 고생을 택하지 않고 차선의 길을 택해서 갈 때에는 우회하여 가더라는 것입니다.
많이 또 그런 일을 당하고 또 당하고 또 당하면서 우회를 하면서 인생이 허비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 속에서 만일에 우리가 나를 위해서 묻고 있다면 많이 물으라 하잖아요. 하루에 50번씩 물으라 하잖아요. 그런데 묻는 그것이 그 목적이 나를 위해서 묻는 거하고 진짜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묻는 거하고 차원이 틀리더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은 이제부터는 나를 위해서 하나님께 묻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묻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까 얘기했잖아요. 이웃을 사랑하라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에요.
왜 사랑해야 됩니까? 이것은 나를 위해 묻는 것이죠. 그죠.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데 어떻게 사랑하길 원하십니까?
이게 하나님을 위해서 묻는 거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는 물을 때, 나를 위해서 묻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게끔 물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게 바뀌어져야 되요,
그래야 하나님과 나와의 바른 관계속에 들어간다는 것이에요.
첫 번째는 하나님 아버지와 나와의 바른 관계를 봤지요. 그죠.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살아라.
나를 위해서 사는 자는 다 실패한다는 것입니다. 우회하고 인생이 허비되고.
두 번째는 예수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죠.
두 번째는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입니다.
참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 정말 성경대로 일어나요.
저는 그걸 참 경험을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되요. 아멘입니까? 아멘.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그러면 성경에 그 말씀이 있는지를 봐야 되요.
하나님은 성령은 동일하게 역사합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역사하세요.
하나님이 하신 말씀속에 다 있어요.
저는 제가 여자잖아요.
근데 갑자기 기도하는데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그러시는 거에요.
그런데 그 말씀이 있더라구요. 저는 그 말씀이 없는 줄 알았어요.
시편 2편에 가면 내가 너를 낳았다는 게 있어요.
내가 너를 낳았다. 한번 가 볼까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이상한 것을 듣는 게 아니라 이미 선진들에게 하신 말씀들을 우리가 또 듣는 겁니다. 아멘입니까? 아멘.
시편2편 7절 가 봅니다. 다같이 시작.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제가 이 구절을 읽으면서 얼마나 놀랬는지 아세요?
어머나, 그 말씀을 듣고 나서 제가 너무 좋아했는데 있는 줄도 모르고, 한참 취해 있었지요. 그 말씀에, 나중에 읽으니까 이 말씀이 있는 거야.
오 마이 갓, 제가 벌벌 떨린 거 있죠.
여러분 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냐면 그 다음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에요.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그분과 연합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가? 그걸 말씀드리고 싶어서 그런 거에요.
그 제가 그 예수 믿은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일이에요.
하나님은 너무 영이 어린 자에게 그런 말씀을 주니까 감당을 못했던 때가 한번 있었는데 하나님이 얼마나 그걸 원하시는가를 오늘 제가 아침에 이걸 준비하면서 오늘 이 얘기를 할까 그런 생각을 해 봤어요.
제가 예수 믿은 지 1년인가 2년도 안 되었을 때 그게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지, 겨우 이제 주일날만 지키다가 그다음에 이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하 그렇게 살아야 되겠다고 좀 깨어난 상태인데 그때 얼마 안 되어서 하나님의 육성이 들려요. 하나님의 육성.
저는 하나님의 육성을 들은 게 그때가 처음인 것 같아요.
육성이라고 하는 것은 귀로 들리는 겁니다. 정말로.
귀로 들리는 얘기인데 뭐라고 그러냐면 그 음성이 너무 큰데 방안을 가득 채우면서 하는 얘기가 저는 너무 두려워요. 하나님이 임하시거나 하나님의 어떤 형상을 보거나 사도요한도 하나님의 영이 임하니까 그 자리에서 죽은 것 같이 엎드렸다고 하잖아요. 하나님의 음성이 임했는데 너무 두려운 거야.
너무 두려운데 어떤 소리였냐면 ‘내가 너로라’ 그러는 거에요.
‘내가 너로라’ 그게 이해가 가겠습니까?
그럼 내가 예수란 얘기인가?
어머 내가 이단이 되는 것 아닌가?
제가 이해가 가겠습니까? 순간적으로 그러는데.
‘내가 너로라’ 그러는데 얼마나 제가 놀랬는지 ‘이야 이제 내가 이단이 되는구나!’ 신 내릴 때 이상하듯 ‘내가 이단이 되는구나!’ 막 그런 두려움이 확 오더라구요.
그 다음에는 육성이 아니야, 그게 육성이었고, 그다음에는 내 안에 영 전체에서 울려 퍼지는 영으로 들어오는 건데 너는 지금부터 네 안에 있는 모든 욕심을 비우라는 거에요.
그런데 그때 내 안에 무슨 욕심이 뭐가 있었느냐? 이런 욕심이 있었어요.
그때는 결혼 안하고 혼자 있을 때니까 ‘결혼해서 좀 행복하게 살아볼까?’ 그런 게 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 뭐라고 하냐면 너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다 비우라는 거에요. 그래서 제가 그럼 그 행복한 거 내리고 ‘그럼 하나님 내가 그러면 신발은 신는데 안 떨어지고 안 떨어진 것 신고 싶은 거, 옷도 안 떨어진 거 입고 싶은 거 그것 그런 거는 좀 붙여놓으면 안 되겠냐’ 그랬어요. 신발 뒤쪽에다가. 위에서 아래까지 다 비우라고 하니까 신발 뒤에다가 조금 껌 모양으로다가 조금 붙여놓으면 안되겠냐? 막 하나님과 다투고 있는 때인 것 같아요. 순간적으로. ‘하나님 그것만은 붙여놓으면 안되겠습니까?’ 그랬더니 그것도 안 된데요.
‘주여 그러면 그것도 내려놓겠습니다.’ 그러는데 여러분 잘 들어보십시오.
여러분 이것은 제가 영적으로 경험한 건데 여러분도 경험할 수 있는 거에요. 하나님이 임하시면. 제가 앉아 있었거든요. 정확하게 머리에서 발끝까지 기도할 때 ‘내가 너로라’ 그러는데 무릎꿇고 앉았지요 뭐. 그때부터 다 비우라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물도 아니에요 어떤 물리적인 게 위에서부터 또르르르르 뭐가 내려오더니 발끝에서 딱 멈추는 거에요.
그러면서 이제부터 내가 이제 네 안에 좌정한다. 이 음성이 오는 거에요.
그런데 그때는 제가 이것을 해석을 할 수가 없어서 제가 해석할 능력이 있겠습니까? ‘내가 너로라’ 듣고 뭐 욕심 비우라까지는 괜찮은데 뭐가 내려와서 또르르르르 내가 좌정한다고 그러고 이걸 내가 감당할 능역이 없어서 그 성경공부 가르치는 장로님에게 가서 얘기를 했어요.
장로님 장로님 제가 이런 일을 겪었는데 그러는데 장로님은 나를 이상하게 보는 거에요. 얘가 사단한테 씌었나? 왜냐하면 ‘내가 너로라’ 그러고 그다음에 뭐라고 뭐라고 그러고 장로님이 그때부터 나를 조금 이상하게 본 것 같애. 약간.
지금 와서 제가 보는데 이게 그게 무슨 뜻일까? 영이 어릴 때에는 모르는 거에요. 와 닿지도 않고 그게 무슨 뜻일까?
내가 분명히 예수는 아닌데 이게 무슨 뜻일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이제 태어난 별로 알지도 못하는 그 어린애 같은 나한테 얼마나 네가 예수와 함께 연합된 삶을 살기를 원해서 이런 경험을 어렸을 때부터 시키시나 그런 것을 제가 좀 깨달았어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뭔지를 깨달았다는 거에요.
하나님은 정말 내 안에 내가 죽고 하나님만이 살기를 원하시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는 거에요.
저는 그것을 해석할 능력이 없었어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잘못 받은 것도 아니었고 그게 늘 내 안에서 ‘그게 무슨 뜻일까?’ 나는 이단이 되기는 싫고 그래서 그 얘기를 우리 구역장한테 그때는 내가 구역원이었는데 구역장한테 했어요.
그때 그 구역장은 좀 깨어있었던 것 같애.
구역장이 ‘그게 성화에 대한 것 같은데요’ 그러고 끝났어요.
성화, 성화가 뭔지... 그런데 그 말이 맞아요.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 딱 믿고 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말씀하시고 나서 그때부터는 비워지고 그때부터 하나님이 정말 들어와 살기를 원하시는데 우리는 그렇게 삽니까?
하나님이 얼마나 그걸 원하시는가?
그걸 다시 한번 제가 생각해 보고 그렇게 살아드리지 못하는 제가 너무 부끄럽고...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냐?
하나님은 내안에 누가 살기를 원하시느냐?
그분이 살기를 원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들은 그 음성 ‘너가 내로라’ 그랬거든요.
물론 제 경험을 얘기해서 죄송하지만 ‘너가 내로라’는 것은 내 안에 내가 없고 내 안에 그분이 온전히 들어오셔서 너가 내가 된 것처럼 살아드리라는 말씀 아니겠습니까? 그 말씀을 생각하면서 참 하나님은 너무나 그렇게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온전히 비워내고 제가 그 음성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뜻인지도 몰랐고 지금에 와서야 ‘아하 얼마나 그분이 원했으면 너무 어린 그 상태에서 감당하지도 못한 그 상태에서 이런 말씀을 주셨나?’ 지금 생각하면 야 하나님도 정말 너무 하셨다. 좀 깨달을만해서 그런 음성을 주시지 전혀 알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그런 말씀을 주셔서 그래도 지금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나에 대한 기대가 컸었는지 저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었는지 저가 내안에 내가 저안에 살면 너희가 열매는 많이 맺는다고 그랬잖아요.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얼마나 원하셨으면 그랬을까?
그러나 아직도 그 음성에 맞춰서 잘 살아드리지 못하는 제가 늘 느껴지고 죄송스럽고 또 그 음성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기도할 때마다.
우리 갈라디아서 2장 20절 찾아보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것 같아요.
정말 그렇게 살기까지 그래서 우리 인생에는 환난이 끊이지 않고...
갈라디아서 2장 20절 사실 우리 영성훈련의 목표가 이것입니다.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여러분이나 저나 이것을 목표로 해서 하루속히 내 안에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빌립보서 1장 8절 한번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빌립보서 1장 8절 다같이 시작.
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사도 바울은 늘 어떤 심장을 갖고 있었냐면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이웃을 대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했습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늘 이웃을 대할 때 인간관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그들을 대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웃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대할 때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재물을 맡겼다고 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 영성훈련을 통해서 물질에 대해서 여러분이 꼭 변함을 받아야 될 것이 뭐냐면 물질의 주인은 누구라고 그랬습니까? 하나님이다.
내가 갖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내 것이다?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이웃한테 쓰는데 뭐가 아깝냐? 이것입니다.
내 것이면 아까운데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이웃에게 쓸 때 그것이 아깝겠냐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질을 맡기셨잖아요.
아직도 그것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웃한테 쓸 때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정말 여러분이 물질과 영성훈련을 통해서 자꾸 비워내고 내 개념 자체를 바꾸면 정말 하나님의 것인 것이 들어온 사람은 물질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라고 들어온 사람은 아깝지 않고 쓸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써 드리는데 뭐가 아깝냐? 이것입니다. 내 것도 아닌데. 아멘입니까? 아멘.
바꿔져야 되요. 완전히 개념이 바꿔져야 되요. 내 것이 아니라는 거에요.
내 것이 아닌데 하나님이 쓰라고 하면 쓰는데 뭐가 아깝겠어요?
내 것도 아닌데. 아멘? 아멘.
이 세상에는 내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그랬어요.
말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 영적 실제의 삶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과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지고 이웃을 사랑하고 그죠? 이웃을 사랑하는데 때를 따라서 양식을 나눠줄 수 있는 바른 청지기의 삶들을 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는 연합의 관계라고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우리 안에 들어와서 본인이 사시기를 원하시는지 우리는 하루속히 비워드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는 성령 하나님과 관계죠.
성령 하나님과 관계인데 이 성령님은 우리를 인도하고 계시지요.
인도하신다. 앞에서 우리를 끌고 가고 계시죠. 그죠.
그래서 견인차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고 사는 자가 되어야 되는데 하나님을 앞에 두고 가야 된다는 것이죠.
하나님은 성령님은 내 앞에서 끄는 견인차라는 겁니다.
견인이 잘 되려고 하면 기아를 어디에 두어야 된다고요? 중립에 두어야 됩니다. 중립에 둔다는 것은 내 의견이 없는 상태를 얘기합니다.
내 의견이 있고서는 하나님의 뜻을 쫒을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묻기를 원합니다.
물어서 행하라.
성령의 지도를 받아서 행하기를 원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아까도 잠깐 언급했지만 사울은 하나님한테 묻지 않았어요.
하나님한테 묻지 않고 행했기 때문에 자기 뜻대로 자기 맘대로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한테 버림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묻기 위해서 블레셋 진영에 있는 하나님의 궤를 가져오기를 원했습니다. 뭐 하기 위해서요?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서요.
성령은 이미 우리 안에 와 계시잖아요.
우리 안에도 계시고 밖에도 계시고, 그분은 알게 모르게 우리 인생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지요.
사람이 그 마음으로 자기 길을 계획한다 할지라도 그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아니하시면 그 자리에 있어야 됩니다.
이게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그 성령님과 동일한 성령이라 말이죠.
구름기둥이 멈추면 이스라엘 민족도 멈추었고 구름기둥이 떠나면 그들도 떠났어요.
그 얘기가 무슨 얘기냐?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현재 생활에 충실하라. 할렐루야. 그런데 하나님이 움직이면 움직이고, 하나님이 하라는 일에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이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환난과 고난과 여러 가지 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어떻게 해야 될지 하나님께 물어보면 하나님이 말씀하시죠. 그 말씀하신 것이 맞느냐 틀리느냐 하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나느냐 안 일어나느냐를 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혹이라도 틀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틀리게 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내 욕심을 가지고 들을 때는 그게 일어나지 않고 정말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면
정말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고 그러니까 하나님은 실패케도 하시고 또 그 말씀이 맞게도 하시고 그럼으로써 우리를 다루어 나가시는 거에요.
여러분이 물을 때 하나님이 다 대답하시냐?
들은 게 다 맞냐? 아니요. 50%는 틀리게 하십니다. 처음에는.
왜냐? 하나님의 음성을 구분케 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다 맞게 하면 어떻게 합니까? 사단의 음성도 있으니까. 그래서 영분별이 필요하잖아요. 사단의 음성도 들을 수 있으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게 처음에는 50%는 맞고 50%는 틀리게 하세요. 아멘?
그래야 어느 것이 하나님의 음성인지 진짜를 구분하려고 하죠.
그냥 다 맞게 해봐. 그렇잖아요. 그러면 엉뚱한 데로 흘러갈 수가 있는 거에요.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으면 그 하나님의 말씀이 첫째는 성경 말씀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속성에 맞는가? 하는 것이고, 그 두 개도 아니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안 어긋나고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를 때는 기다려 보는 거에요.
기다려 봐서 그 일이 일어나면 그게 정확하게 들은 것이고 안 일어나면 잘못 들은 것이죠. 그죠. 그건 확실한 거죠.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음성을 구분해 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음성은 나에게 있어서 이렇게 이렇게 들리는구나를 구분해 가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너무 맞다 아니다에 초점을 맞추지 마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구분하는데 초점을 둘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사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가 관계의 영성 속에서 바른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무엇인지 늘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도 나 중심적으로 묻는 게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묻는 자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드리는 자들이 되게 하옵시고 또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 주님은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셨사오니 주여 정말 우리가 주님 안에 주님이 우리 안에 정말 ‘내가 너로라’하신 그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살게 하신 그 역사가 우리 안에 일어나길 원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붙들어주시고 반드시 승리하는 삶 살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사옵고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우리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한번 부르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걸 놓고 한번 기도합니다.
주여 부릅니다.
주여 우리는 반드시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해 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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