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시인 김용택

[스크랩] 김용택 시 모음 2

하늘이슬 2019. 2. 22. 16:45
                        ** 시를 쓰다가 **

발 밑에 가여운 것
밟지 마라
그 꽃 밟으면 귀양간단다
그 꽃 밟으면 죄받는단다

 

* 달 *

앞산에다 대고 큰 소리로
이 세상에서 제일 큰 소리로
당신이 보고 싶다고 외칩니다
그랬더니
둥근 달이 떠올라 왔어요

 

** 봄날 **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그라

 

** 푸른 하늘 **

오늘은 아무 생각 없고


당신만 그냥 많이 보고 싶습니다

 

** 그리움 **

바람이 불면
내 가슴 속에서는
풀피리 소리가 납니다

 

** 일 **

앞산에 꽃이 지누나 봄이 가누나
해마다 저 산에 꽃 피고 지는 일
저 산 일인 줄만 알았더니
그대 보내고 돌아서며
내 일인 줄도 인자는 알겠네

 

** 산벚꽃 **

저 산 너머에 그대 있다면
저 산을 넘어 가보가라도 해볼 턴디
저 산 산그늘 속에
느닷없는 산벚꽃은
웬 꽃이다요

저 물 끝에 그대 있다면
저 물을 따라가보겄는디
저 물은 꽃 보다가 소리 놓치고
저 물소리 저 산허리를 쳐
꽃잎만 하얗게 날리어
흐르는 저기 저 물에 싣네

 

** 그리운 우리 **

저문 데로 둘이 저물어 갔다가       
저문 데서 저물어 둘이 돌아와
저문 강물에
발목을 담그면
아픔없이 함께 지워지며
꽃잎 두송이로 떠가는
그리운 우리 둘

 

** 강가에서 **

 강가에서
세월이 많이 흘러
세상에 이르고 싶은 강물은
더욱 깊어지고
산그림자 또한 물 깊이 그윽하니
사소한 것들이 아름다워지리라
어느날엔가
그 어느날엔가는
떠난 것들과 죽은 것들이
이 강가에 돌아와
물을 따르며
편안히 쉬리라

 

** 미처 하지 못한 말 **
살다가,
이 세상을 살아가시다가
아무도 인기척 없는
황량한 벌판이거든
바람 가득한 밤이거든
빈 가슴이, 당신의 빈 가슴이 시리시거든
당신의 지친 마음에
찬바람이 일거든
살다가, 살아가시다가......

 

** 별빛 **
당신 생각으로
당신이 내 마음에 가득 차야
하늘에 별들이
저렇게 빛난다는 것을
당신 없는 지금,
지금에야 알았습니다

 

** 이별 **
서리 친 가을 찬물을
초승달같이 하이얀 맨발로
건너서 가네

** 나도 꽃 **
수천 수만 송이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납니다
생각에 생각을 보태며
나도 한송이 들국으로
그대 곁에
가만가만 핍니다

 

** 나비는 청산 가네 **
꽃잎이 날아드는 강가에 나는 섰네

내 맘에 한번 핀 꽃은
생전에 지지 않는 줄을
내 어찌 몰랐을까
우수수수 내 발등에 떨어지는 꽃잎들이
사랑에서 돌아선
그대 눈물인 줄만 알았지
내 눈물인 줄은
내 어찌 몰랐을까
날 저무는 강물에 훨훨 날아드는 것이
꽃잎이 아니라
저 산을 날아가는 나비인 줄을
나는 왜 몰랐을까

꽃잎이 날아드는 강가에 나는 서 있네

 

** 길 **

이 세상에
나만 아는 숲이 있습니다
꽃이 피었다가는 지고
눈 내리고 바람이 불어
차곡차곡 솔잎 쌓인
그 고요한 숲길에서
오래 이룬
단 하나
단 한번의 사랑
당신은 내게
그런 사람입니다


** 내소사 가는 길 **
서해 바다
내소사 푸른 앞바다에
꽃산 하나 나타났네
달려가도 달려가도
산을 넘고 들을 지나
또 산을 넘어
아무리 달려가도
저 꽃산 눈 감고
둥둥 떠가다
그 꽃산 가라앉더니
꽃잎 하나 떴네
꽃산 잃고
꿈 깨었네

 

** 하루 **
어제는 하루종일
바람이 불어
나뭇가지들이 멀리 흔들리고
나는
당신에게 가고 싶었습니다
당신 곁에 가서
바람 앉는 잔 나뭇가지처럼
쉬고 싶었습니다
어제는 하루종일
내 맘에 바람뿐이었습니다

 

**  죄 **
우루루 쾅쾅
천둥 번개 친다
알았다 알았어
그만두리라
내가 내 죄를 알았다
 

 

 ** 지금 내 마음은 **
그대 마을 정자나무에
달이 걸리거든
나인 줄 알으소서
달 뜨는 지금 내 마음은
깊은 산 속 명경 같은
샘물입니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
당신,
세상에서 그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그보다 더 따뜻할 수 있는,
그보다 더 빛나는 말이 있을 리 없겠지요
당신......

 

** 사랑의 편지 **
당신의 아름다운 편지
잘 받았습니다
막 피어나는 꽃잎처럼 떨리는
당신의 속마음이
손끝에 파르르 묻어 옵니다
눈 들어
봄이 오는 산천을 봅니다
이 봄
당신에게로 가는 길 하나
지금 열립니다
새 나라로 가는 길이지요

 

** 노을 밑에서 **
노을이 붉은 하늘 뒤로 하고 걸었습니다
당신이
당신 피 걸러
저렇게 아름다운 노을을 그리셨지요
그러셨지요?
나도,
내 피도 시방 저렇게 물들어가요

 

 ** 초겨울 편지 **
앞산에
고운 잎
다 졌답니다
빈 산을 그리며
저 강에
흰눈
내리겠지요

눈 내리기 전에
한번 보고 싶습니다
 

 

** 눈 오는 집의 하루 ** 

                           아침밥 먹고

                           또 밥을 먹는다

                           문 열고 마루에 나가

                           숟가락 들고 서서

                           눈 위에 눈이 오는 눈을 보다가

                           방에 들어와

                           또

                           밥 먹는다

 

출처 : 숲속의 작은 옹달샘
글쓴이 : 효림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