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스크랩] 우리나라 지역사회복지실천 모델

하늘이슬 2008. 8. 5. 11:26
 

우리나라 지역사회복지 실천 모델


1. 들어가는 말


1970년대 이후에 들어와서 지역사회복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어가고 있다. 특히 '삶의 질'의 향상이라는 과제와 관련하여 생활의 장인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지역주민들의 연대의식에 입각한 주체적이고 자발적 참여를 통해 바람직한 지역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관심가져야 할 점의 하나는 한국인의 가치와 감성, 고유성과 미풍양속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면서 우리의 특성에 맞는 한국적 지역사회복지의 실현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고에서는 우리의 전통적 지역공동체운동인 향약공동체운동을 현대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그 원리를 토대로 한국적 특성을 살린 지역사회복지 실천 가능성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2. 향약공동체운동의 토대


1) 향약공동체운동의 이념적 기반


우리나라에서는 고래로부터 향촌을 단위로 하여 공동체적 의식을 갖고 연대하여 생활조건을 개선하고 삶의 질을 높이려는 공동의 노력이 이루어져 왔다. 향약공동체운동은 그러한 노력의 한 표현으로서 그 내면에는 공동의 복지사회라는 이상향이 자리잡고 있었다.

한국인의 이상사회에 대한 이념은 인류공통의 소망을 토대로 하여 점차 유교적 이념을 받아들이면서 정치적·사회적으로 유교적 도덕이 구현된 덕치의 이상으로 개념화되었다. 유교적 이상은 오늘날 사회복지의 보편적 가치인 인본주의, 공정성, 사회정의, 공동체적 동질감, 평화와 조화로운 관계를 구현하는 것이다(Sung Lai Boo·John Peters, 1992:90). 이러한 유교적 이상은 현대적 관점에서의 복지사회의 완결점인 [대동사회]라는 이상사회를 지향하도록 하였다.

[대동사회]는 행복한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소박한 소망를 반영한 것으로 {예기} 예운편에서는 [대동사회]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대도가 행해지면 천하에는 공의가 구현된다. 현자를 (지도자로) 뽑고 능력있는 사람에게 (관직을) 수여하며 신의와 화목을 가르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어버이만 어버이로 여기지 않고 자기 자식만 자식으로 여기지 않는다. 노인으로 하여금 (편안한) 여생을 보내게 하며 장년은 일할 여건이 보장되고 어린이는 길러주는 사람이 있으며, (의지할 곳 없는) 과부와 홀아비를 돌보며 병든 자도 모두 부양받는다. 남자는 남자의 일이 있고 여자는 여자의 할 일이 있다. 재화가 땅에 버려지는 것을 �어하지만 반드시 (사적으로) 저장할 필요가 없다. 스스로 노동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지만 반드시 자기만을 위해서 일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남을 해치려는) 음모가 생기지도 않고 도적이나 난적도 발생하지 않는다. 따라서 (집집마다) 바깥 문을 닫을 필요가 없다. 이러한 상태를 대동이라 한다.

이상의 {예기}에 나오는 이상사회는 정의와 평등이 구현된 사회이다. 천하는 만인의 공동의 것으로서 지배와 피지배, 압박과 착취로 인한 계급갈등이나 제도적 모순이 전혀 없는 사회이다. 또한 소유를 위해 경쟁하거나 다툼이 없는 신의와 화목한 인간관계를 토대로 상부상조하는 공동체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형제이며 노인이나 젊은이, 어린이나 과부, 홀아비,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공동협동하는 공동체적 생활이 조화롭게 이루어진다. 또한 각자의 능력에 따라 충분한 일이 주어지고 각 사회성원에게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평등한 기회가 주어지며 각자의 주어진 역할이 최대한 존중된다. 따라서 사회성원은 자기자신만의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이기주의를 버리고 모두 사회의 공동이익을 위하여 자각적이고 자율적으로 참여하며 공동체의 성원으로서의 자신의 역할을 최선을 다하여 수행함으로써 공생의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다.


2) 향약공동체운동의 실천적 기반


향약공동체가 지역적·지리적 범주로 하고 있는 [향]은 평균적으로 인구 1000명 내외의 규모(박경하, 1983:5)의 자치행정의 지역단위로서 촌락공동체 또는 생활공동체로서의 향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혈연과 지연을 토대로 한 공동체적 생활양식을 지속해왔다. 브룬너는 한국의 자연적 촌락들이 [민주적이고 자기봉쇄적이며 그 촌락속에 가족생활이 뿌리를 박고 있다]고 하여 한국의 촌락을 공동체적 결합이 강하고 자치적이며 민주적 성격이 농후했다고 지적하고 있다(이만갑, 1980:20). 또한 森谷克己 교수는 {韓國土地農産調査報告書}를 인용하면서 [중조선 및 남조선에 대한 조사자는 전제와 정치의 부패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사회의 기본단위로서의 원생적 모습을 다분히 보존하는 질서정연한 자치공동체의 존속을 인정하고 있다]고 하였다(森谷克己, 1933:518-519).

전근대적인 사회에서의 향촌은 일반적으로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농촌을 말한다. 이러한 농촌에서의 인간관계는 비공식적·정적 유대감을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고정적·연속적·다면적이다. 따라서 사회심리적 경향은 동질성을 나타내며 사회구조는 비교적 단순하고 패쇄성을 지닌다(권태준·김광웅, 1981:45-47). 또한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는 대체로 자급자족적 경제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생산활동에 있어서의 상호부조적인 관계가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지역공동체의 특성은 그 지역 주민들의 상호의존성을 바탕으로 한 연대의식이 서로 얽힌 비형식적 평등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한상복, 1980: 147). 이는 우리나라의 촌락공동체가 공고한 [우리]의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향촌은 대체로 씨족적인 결합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역공동체라 하더라도 혈연공동체적인 요소와 지역공동체적인 요소가 결합된 생활공동체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이에 따른 사회심리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한 상호관계가 지역사회생활의 기축을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촌락공동체를 이루는 자치행정의 지역단위로서의 향촌은 하나의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으며 그 지역구조가 주민들 상호간에 친밀감과 일체감을 증진시켜서 마을사람들의 응집력을 공고히 하고 그들의 강한 연대의식을 고취시켰던 것이다.

인류학자 골드벅은 한국의 공동체모형을 고향의 관념에 원용하고 경제·종교·정치의 차원에서 한국의 전통적 공동체의 주요 특성으로 자급·자치·성원들의 전적인 상호의존성을 들고 있다(C.N.Goldberg, 1979:93-98). 이는 곧 한국의 촌락공동체가 경제적 자족성과 정치적 자율성 및 사회적 의존성을 주요 특성으로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공동체적 성격때문에 촌락이라는 지역집단이 주민 상호간에 공동운명체로서의 [우리]집단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3. 지역사회복지운동으로서의 향약공동체운동의 성격


향약은 화민성속을 위한 목적으로 향촌에서 실시된 자치규약이며 그 조직으로서 자치적 기능을 발휘하는 민간자치단체로 출발하였다. 토착적인 리더십과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상부상조의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예방하고 지역사회의 발전과 지역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현대의 지역사회공동체 또는 지역사회복지 실천의 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향약공동체의 이러한 특징은 자치규약과 운영방법에서 잘 나타나 있다.


1) 향약공동체의 자치규약


향약은 그 자체가 공동체적 생활규범이라 할 수 있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토대라 할 수 있는 조화로운 인간관계와 사회관계의 형성 및 개인의 사회적 책임수행을 강조하고 있으며 지역 주민들의 민생문제의 해결과 생활안정에 주력한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공동체적 규약으로서의 향약의 골자는 4개 강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1) 덕업상권


덕업은 윤리적인 차원에서의 행동강령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개인윤리에서 시작하여 점차 가정윤리, 사회윤리, 국가윤리로 범주를 확대하면서 궁국적으로 개인의 사회관계를 규정하는 원리이자 행위준칙이다. 각자가 자기수양을 통해 타인에게 도덕적이고 교육적인 모델이 됨으로써 바람직한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적 화합을 도모하는 것이다. 향약의 덕업상권은 여기에 부가하여 사회윤리로서 공동선의 추구와 화목한 인간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일정한 지역을 기초로 서로 협력하여 공동생활을 영위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시하고 있다. 덕업상권의 덕목은 ①효 ②충 ③형제애 ④연장자에 대한 존경 ⑤바른 언어·행동 ⑥부모의 의무 ⑦역할모델 ⑧근면성 ⑨공동체 성원의 책임의식과 의무수행으로서 향약공동체의 모든 성원은 건전하고 상부상조의 호혜적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한 바람직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책임과 의무를 자각하고 주어진 바 역할을 다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2) 과실상규


과실이라 함은 덕업에서 말하는 개인윤리, 가정윤리, 사회윤리, 국가윤리를 위반하는 행위를 지칭하는 것으로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그 종류에 따라 처벌이 규정되어 있다. 동약인 스스로가 과실을 살피고 경계하도록 하고 있으며 공동체 성원 상호간에 도덕과 윤리에 위배되는 행위를 감계하고 서로의 역할모델, 교육자가 됨으로써 올바른 인간관계의 확립을 지향한다. 주자학적 실천윤리 내지는 윤리강령적인 성격을 가장 강하게 나타내는 강목으로 상규해야 할 과실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① 나태와 태만 및 과음

② 부모와 친척, 이웃에 대한 잘못된 행동

③ 신체적·언어적 폭력, 모욕, 어린이와 처 및 하인에 대한 멸시, 어린이의 연장자에 대한 불손한 태도

④ 지역공동체의 질서문란 및 윤리파괴 행위

⑤ 도둑질이나 조세포탈 등과 같은 사회질서 위반행위, 법과 공동체 규범 위반행위


(3) 예속상교


예란 조화로운 인간관계를 위한 기본으로서 예속상교는 사회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기 위한 가르침이다. 향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예속은 두가지로 하나는 질서유지를 위한 예속이며, 또 한 가지는 상부상조의 협동을 권장하는 예속이다.

질서예속에서 규정하고 있는 내용은

① 남녀유별, 장유유서의 원칙에 따른 행동

② 신년하례, 결혼식, 장례식에서의 인사예법

③ 제사예법, 상을 당한 가족에 대한 인사예법 등이다.

협동예속은 경조시 동약자들이 취해야 할 예를 규정한 것으로 길사시에는 이를 경하하고 예물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흉사가 있을 경우에는 조문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4) 환난상휼


향약규정중 구빈사업에 대한 규정으로 상호부조적인 성격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 있다. 현대 사회복지적인 측면에서 볼 때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사회사업활동을 장려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촌락단위의 복지성 약정이라 할 수 있다. 상휼의 내용은 수화, 강도, 질병, 사상, 고약, 무왕, 빈핍의 7개 항목으로 나누어 향민들이 합심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 도울 것을 규정하고 있다.


2) 향약공동체의 조직과 운영


(1) 조직


조선시대의 향약공동체의 구조는 향약의 제정자에 따라, 지역적 특성에 따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향약이 국가적인 시책으로서 강제되었던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자생적인 공동체운동으로 전개되었기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향약공동체의 조직은 임원과 약원으로 대별된다. 임원은 도약장(도약정), 부약장(부약정) 및 직월로 구성되며 이들이 상부조직체를 형성하였다. 하부조직체로서는 유사, 색장, 별검, 이정들로서 대개 상인중에서 선출하였다. 약원은 입약을 희망하는 향촌내의 전주민으로 되어 있다.

도약장이나 부약장 등의 임원의 선출에 있어서는 관직이나 신분의 고하에 관계없이 평등성을 원칙으로 하였다. 선출방법도 인격적으로 모든 사람이 신복하는 인사를 여러 사람의 의견에 따라 선출하는 지극히 민주적이고 자치적인 절차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향약공동체의 복지공동체적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토착적 향약조직을 보면 상하민이 함께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신분제사회에서도 양반과 상민 및 천민 등 향촌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의 참여를 통한 향촌공동체의 형성과 이를 토대로 한 사회질서 유지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의 결과라 할 수 있는 것으로서 현대적 의미에서의 사회통합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2) 운영


향약공동체의 운영은 성원들의 소속감을 높이고 성원들간의 인화적 인간관계의 확립 및 교육적 목적의 달성, 성원들의 생활조건의 개선과 상부상조정신의 함양, 성원들이 환난에 대한 대비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전체 주민의 참여를 전제로 하고 있으며 재원의 조달과 그 관리에 있어 성원들의 생활보장을 목적으로 하여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향약공동체가 지니는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향약공동체의 운영상에 있어서의 특징을 크게 구분하여 공동체의식의 함양과 교육이라는 측면과 경제적 관리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① 공동체의식의 함양 및 교화와 교육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운영되었던 것으로 회집독약법이 있다. 향에서는 매년 정월·4월·7월·10월 초순일에 약원들이 모여 집회를 갖고 향약을 읽고 강술하였다. 향약의 조목을 강독하여 약원들에게 향약의 정신을 깨닫도록 하였으며 덕행이 있는 자를 표창하여 우대하고 범약자들은 과실을 중론하여 처벌함으로써 권선징악의 교육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또한 집회시 주연을 베풀어 약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함으로써 공동체의식을 고취하였다. 매년 춘추에는 읍에서 대회를 연다. 약원이외의 서민이라도 참가할 수 있었으며 관에서 기기와 하인을 내어 협조하였다.

② 재원의 조달과 관리 : 재원의 조달은 원칙적으로 약원의 납입으로 이루어진다. 향약에서 경제적인 성격을 지닌 환난상휼조에 의하면 향약공동체의 입약대상자는 가입과 동시에 일정량을 납입하며 또한 매년 일정량을 기여하여 기금으로 활용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러한 기금은 경사나 흉사가 있을 때 구휼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갹출된 옷감과 쌀은 바로 분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금을 마련하여 지출에 대비하도 록 하고 있다. 특히 기금을 수단으로 하여 식리사업을 허용하고 있는데 만일 여유가 있을 때에는 그것을 원하는 주민에게 연 20%의 이율로 대여하며 여유가 없을 때라든지 관혼상제 등의 일이 있을 경우에는 동약인에게 적당량을 골고루 할당하여 필요액을 증수하는 방법으로 재원을 관리하였다. 재원의 사용처는 크게 경사, 상사, 재앙 등 의 3부문으로 나누어 지출되었으며 약원의 노력제공이 의무화되어 있었다.

이상의 향약공동체의 재원조달과 그 운영방법을 보면 자조적인 재원조성방법과 관리를 통하여 경제적 연대성과 노동협동의 형태로 상부상조하도록 함으로써 향촌의 자력에 의한 자조적 경제문제 해결을 지향하고 있었던 점을 알 수 있다. 특히 재원의 관리면에서 식리활동을 허용하여 재원의 고갈을 방지하고 이를 길사나 흉사시에 구휼자금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있는 점이나 생계가 어려운 사람에게 재물을 주거나 대여하여 가업을 이어갈 수 있게 한 점은 현대의 사회복지적 관점에서 볼 때 일종의 생활보호 및 사회보장으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3. 향약에 나타난 사회통합의 실천적 모델


향약을 기능적 측면에서 정의한다면 [향]의 통합을 목적으로 향인들끼리 마련한 가치지향적 약속이며 또한 그것을 구심점으로 삼아 성립된 자치교화적 통치체제라 할 수 있다(박경하, 1983:5). 이러한 향약을 바탕으로 한 향약공동체운동은 전근대적 사회에서 지역사회의 주민들이 참여하여 그들이 당면한 문제와 욕구를 해소 내지 충족시키기 위한 공동의 노력의 표현이었으며 지역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시도였다.


1) 향약의 사회적 기능


향약의 기본정신은 화민성속을 이루어 유교적 정치이념인 왕도정치가 구현된 이상사회를 이룩하는데 있었다. 특히 향약의 실시를 적극적으로 주장한 사람들은 정치적·사회적 변혁을 주창하였던 학자, 정치가들로서 대부분의 실학자들이 당시의 사회질서의 혼란상을 바로잡고 향민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하여 향약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향약을 제정하였다. 그 목적은 유교적 덕목을 생활화시켜 사회기강을 바로잡아(구종회, 1996: 533) 생활의 안정을 도모하고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하는데 있었다.

향약이 수행하였던 기능은 다양하다. 덕업상권, 과실상규, 예속상교, 환난상휼의 4대 강목은 유림에 의한 지역주민의 교화와 상조를 권장하고 동시에 주민의 정신적·물질적 면을 병행하여 취급함으로써 향리주민의 곤란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던 것이다. 대체로 초기에는 성리학적 윤리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교화적 기능이 중심을 이루었으나 사회의 변화와 더불어 사회경제적 기능이 강조되어갔다. 이는 환난상휼의 상부상조 정신에 바탕을 두고 지역주민간의 유대를 강화하여 생활안정 및 지역협동을 통한 지역사회복지 실천을 중요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향약공동체가 수행하였던 기능을 구체적으로 추출해보면 ①교육훈련 및 사회화의 기능 ②질서유지의 기능 ③풍속교화의 기능 ④상부상조의 기능 ⑤생활보호의 기능 ⑥사회보장의 기능 ⑦사회통합의 기능 ⑧공동체적 인화단결을 위한 이념적·실천적 기반으로서의 기능 ⑨관권에 대한 견제의 기능을 들 수 있다. 향약공동체는 이상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향촌의 자체적인 재판권과 처벌권을 행사하였다.

이상의 향약공동체가 향민들의 공동체적 생활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수행하였던 기능을 바람직한 지역공동체에 요구되는 기능인 ①생산·분배·소비 ②사회화(socialization)의 기능 ③사회통제(social control)의 기능 ④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의 기능 ⑤상부상조(mutual support)의 기능의 5가지 차원에서 비교분석하여 보면 다음과 같다.


<표 1> 향약공동체의 기능

 

지역공동체 기능

향약공동체의 기능

규 약

실제적 기능

제도적 장치

① 생산·분배·소비

患難相恤

·상부상조·생활보호

·생활보장의 기능

·예방

·문제해결

재판권

처벌권

② 사회화의 기능

(socialization)

禮俗相交

德業相勸

過失相規

·교육훈련 기능·

·풍속교화의 기능

·문제예방

·개인과 지역사회의

바람직한 변화 지향

③ 사회통제의 기능

(social control)

過失相規

·질서유지 기능·

·견제 및 감시기능

·문제예방

④ 사회통합의 기능

(social integration)

禮俗相交

德業相勸

患難相恤

·공동체적 인화단결의

이념적·실천적 기반

·상부상조·사회통합

·문제예방

·문제해결

⑤ 상부상조의 기능

(mutual support)

患難相恤

·상부상조의 기능

·문제해결


2) 향약공동체의 지역사회복지 실천 모델


향약의 규약에는 인간의 존엄성, 가족중심, 아동보호, 약자보호, 모델링을 통한 실천적 교육,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의 수용, 올바른 삶의 추구, 의사결정과정에의 자발적 참여와 민주적 절차, 비행의 예방과 교도, 상부상조 정신과 행동 및 이웃에 대한 화애정신의 함양 등 현대적 사회복지의 가치와 실천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Sung Lai Boo·John Peters, 1992:91). 이상과 같은 사회복지적 가치와 실천을 강조하는 향약공동체는 본질적으로 향촌을 중심으로 한 지역사회복지공동체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지역사회실천을 통해서 실현해가고자 하는 운동이었다. 향약공동체운동에 나타난 지역사회복지 실천의 원리와 구체적 특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이상


향약의 4대 강령을 그 성격상에서 분류해본다면 덕업상권, 과실상규, 예속상교의 3개 강령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회질서의 확립을 목적으로 한 교화와 교육적인 내용이다. 따라서 도덕적인 선인사회를 지향하는 이념적이고 가치지향적인 실천강령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환난상휼의 조항은 구빈사업에 관한 내용으로서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실천활동을 의미한다.

향약공동체의 규약내용이 교화와 교육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고 하는 점은 공동체 성원의 도덕적이고 윤리적 사고 및 태도의 배양과 성원들간의 조화롭고 인화적인 인간관계의 확립이 공동체적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요소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것은 협력적이고 협동적인 태도와 실천능력을 증대·발전시키고 민주적 절차와 합의에 따라 자발적 참여, 자치적 질서유지, 자조능력의 개발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공동체 성원들의 더불어 사는 삶에 있어서 성원 개개인의 자기규제를 통한 자기성숙과 타인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할 때 실천적 행동강령으로서 환난상휼의 의무와 책임이 자발적이고 무보수의 행위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될 때 진정한 의미에서의 더불어 사는 복지공동체적 사회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


(2) 경제적 협동체


향약공동체의 상부상조적 정신은 환난상휼조에 잘 나타나 있다. 환난상휼은 향촌민의 경제적 연대성과 협동적 생활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입약자는 가입과 동시에 일정량의 곡식을 납부하고 납부된 곡식을 모아서 환난상휼의 기금으로 활용하였다. 또한 가입원이 관혼상제로 인하여 경제적인 지출이 요구되든지 또는 일시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면 가입자들이 자금을 추가로 염출하거나 일손을 내는 방법들을 통하여 상부상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상부상조의 활동은 강제나 강요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주민들의 자발성과 이웃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이루어지는 공생활동이다.


(3) 자치적 질서유지


향약의 규약에는 사회적 규범과 질서 및 유교적 도덕질서의 문란행위에 대한 처벌을 규정하고 있다. 향약의 4대 강령인 덕업상권·과실상규·예속상교·환난상휼은 사회생활의 규범으로서 이를 어겼을 경우 약장의 주도하에 향회의 재판을 거쳐 범죄의 종목에 따라 상벌·중벌·하벌의 형벌을 가하였다. 약장의 재판권과 처벌권은 비록 국가의 법으로 공인된 것은 아니지만 관습법상으로 유효한 것으로 공동체내의 형사사건에 대하여 반드시 수령의 재판을 필요로 하지 않아도 되는 범위내에서 향촌의 질서를 유지하고 교화하기 위한 형사자치를 실현하였다.


(4) 전주민의 참여


향약의 입약대상은 지역공동체의 전 주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 대상은 양반뿐 아니라 하층민까지도 구성원으로 함으로써 지역사회 전원이 참여하여 곤란한 생활조건의 극복이란 공동목표를 추구하였다(김용덕, 1990:113). 이는 인간의 현실적인 생활조건의 개선이라는 문제에 대한 전 주민의 공동책임을 전제로 하여 전 주민의 참여를 권장하였던 것으로 지역사회 전체의 복지공동체적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5) 민간의 자치적 성격


향약공동체는 향촌자치를 이념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주민의 자율성과 자발성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를 향촌민의 교화와 교육을 통하여 배양하고자 하였다. 향약의 본의가 향촌사회에서의 인리화목과 상호부조에 있었던 만큼 어디까지나 관권의 개입을 배제하고 있다. 향약의 자치적 성격은 향회의 운영과 재판권과 처벌권 시행, 원악향리에 대한 통제로 요약될 수 있는데 향촌사회에 대한 제반문제는 향회에서 의논·결정하기 때문에 향회는 사실상 의결기관이라 할 수 있다(신정희, 1991:29). 특히 약법위반에 대한 처벌권은 재판권과 약법제정권과 함께 조선향약이 가지는 대표적인 자치권한(한상권, 1984:39-42)으로서 향약공동체의 질서유지의 책임이 일차적으로는 향약공동체의 성원인 향촌민에게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향약공동체가 관권의 개입을 배제하고 있다고 해서 관과 대립적인 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었다. 향약의 집회시 향청과 관아에서 기기를 내어 협조하도록 하고 있는 점은 민과 관의 협조관계를 바탕으로 한 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6) 공동체 성원들의 생활의 질을 높이기 위한 연대의식과 공동노력의 강조


향약공동체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것은 공동체 성원들의 일체감과 연대의식이라 할 수 있다. 연대의식은 협동과 협력을 통해 공동체 성원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여 다 같이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자발적 참여를 도출해내는 기반이다.

향약의 4대 강목은 모두가 타인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나]만의 행복하고 편안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나]와 마찬가지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동을 하도록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충고하며 경조사가 있을 때 공동으로 문제를 처리하고 해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바로 향약공동체 성원의 공동체에 대한 책임의식과 연대성을 바탕으로 한 공동노력을 통해 공동체적 질서와 복리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7) 생활보호 및 사회보장으로서의 사회복지요소


율곡의 [사창계약속]의 경우 특히 경제적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운영에서 보면 재원의 관리면에서 식리활동을 허용하고 있음은 앞에서도 언급하였다. 이는 민간금융기관으로서 재원의 고갈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식리활동을 통하여 미연에 재원의 고갈을 방지하고 기금을 확보해둠으로써 서비스 제공의 긴급성이나 시의적절성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길사나 흉사시 및 생계보조 등 필요시 시의적절하게 구휼자금으로 활용하도록 하고 있는 점이나 생계가 어려운 사람에게 재물을 주거나 대여하여 가업을 이어갈 수 있게 한 점은 현대의 사회복지적 관점에서 볼 때 일종의 생활보호 및 사회보장으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8) 자발성


향약공동체에의 가입은 위로부터의 강제나 권력의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향촌의 주민이 자신의 희망에 의해 자발적으로 가입하도록 되어 있다. 물론 입약자는 향약공동체의 성원으로 가입한 이후에는 향약공동체의 규약을 지켜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위약자에 대해서는 제제조치를 행하지만 이는 공동체적 단결과 화목을 유지하고 질서를 자치적이고 민주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4대 강목을 보면 공동체내에서 각자가 주체적으로 공동체의 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며 상호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타인에 대해 적극적으로 충고자로서, 원조자로서, 중재자로서,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 대한 적극적인 도움의 제공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향약공동체의 규약은 공동체성원들의 공동체와 타인에 대한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관심과 행동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9) 무보수성


원칙적으로 향약공동체내에서 이루어지는 원조활동은 무보수이다. 구체적인 구빈활동을 규정한 환난상휼조를 보면 활동에 대한 보수규정이 없다. 그 이유는 어려움을 당하거나 곤란에 처한 사람에 대한 원조활동이 곧 공동체 성원들의 기본적인 책임이고 의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환난상휼조는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보았을 때 본능적으로 발현되는 측은지심이라는 인간 본연의 애타심을 반영한 것이다. 이러한 애타심의 발로로서의 상부상조적 정신에 입각한 행동은 어떤 대가나 보수를 기대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그 자체가 자원봉사정신의 발로이며 그 행동이 자원봉사활동인 것이다.


(10) 민주성·평등성


향약공동체의 임원선출에 있어 지위나 관직의 고하를 막론하고 덕행과 학식이 있어 모든 사람이 존경하고 신복하는 인사를 약원들의 의사에 따라 선출하는 방식은 바로 평등성에 입각한 향약공동체의 민주적이고 자치적인 성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향약은 문자 그대로 향리간의 약속으로 향리주민들이 서로 힘을 합하여 화목한 공동생활을 해나가는데 목적을 둔 향리자치제도로서(정완근, 1983:1) 주민들의 자치원칙, 지역주민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참여, 문제해결을 위한 전주민의 상부상조적 공동노력, 민주적 운영에 입각한 지역사회복지 실천의 한 형태이다.


4. 맺음말


생활의 장으로서의 지역공동체의 해체는 인간의 삶의 기반의 상실을 의미한다. 인간성의 회복과 가정의 회복, 사회문제의 예방과 해결 및 사회개혁을 통한 삶의 질의 향상, 시민사회의 건설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지역사회의 재공동체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여기에서 요구되는 것이 해체된 지역공동체를 재건하기 위한 사회사업적 실제모델을 찾아 실천하려는 노력이다.

앞에서 향약공동체가 바람직한 지역복지공동체로서의 요소를 구비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향약공동체는 지역사회를 조직화하여 지역공동체를 형성하고 이를 중심으로 주민의 연대의식과 자발적 참여를 통한 지역사회문제의 예방과 해결을 시도하였던 지역사회복지 실천운동이었다.

향약공동체운동은 현대와는 다른 시대적·사회적 상황하에서 시도되었던 지역사회복지운동이었다. 따라서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에는 향약의 규약이나 특성 및 지향하는 바 이상과 가치가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성격과 불합리한 점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다변화되고 다원적인 현대사회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향약공동체의 정신은 한국인의 의식속에 여전히 내재하고 있다. 향약공동체의 정신과 가치, 실천원리는 구태의연한 과거의 유습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의 삶의 방식을 규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향약공동체의 정신과 복지적 요소 및 실천원리를 현대화하여 지역사회복지 실천에 접목한다면 한국인의 의식과 정서에 부합하는 지역사회복지 실천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렇게 될 때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예방·치유하여 건강하고 건전한 시민사회의 형성이 보다 용이할 것이라 보여진다.

 

츨처 :  꽃 향기 가득 담아

출처 : 인생은 나침판 없는 여행
글쓴이 : 吾坪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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