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반 둘째주 4. 우리의 육체를 의의 병기로2
16.3.8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체를 주신 이유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 잘 안되더라도 복종해 가면서 살아가라고 우리에게 육체를 주셨다.
그런데 우리가 주신 육체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순종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불복종하면서 살면 어떻게 하실까요?
고난을 보내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고난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축봅ㄱ이다.
우리 인간은 못되서 고난이 없으면 하나님의 뜻을 알긴 알면서도 잘 깨닫지 못하고 정말 고난이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나에게 있어서 실제가 되지를 못한다는 사실을 여러분이 경험으로라도 깨달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왜 우리 인생에 있어서 끊임없이 고간을 허락하시는가?
신명기 8장 2절-6절
이스라엘 민족을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시키신 것이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 너로 알게 하려하심이다.
눈으로 보여지는 모든 것들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란 걸 알게 되기까지 하나님께서는 네 인생에 열심히 고난을 보내노라 이 이야기이다.
아직도 내 인생에 고난이 끊이지 않는다면 아직도 나는 내가 떡으로 사는 줄로 알고 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아직도 내가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지으시고 말씀으로 모든 만물 우주를 붙들고 있다.
그리고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다.
크게 봐도 그렇고 작게 봐도 그렇다.
그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하고 계시지만 우리 인생을 작게 보면 아주 작은 문제에서부터 큰 문제에 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더라는 것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리라고 생각하고 사실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눈에 보이는 것들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언제든지 있다가도 없어질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 세세토록 변하지 않고 서 있다 그랬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는줄로 알아야 한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걸로 사는게 아니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진짜이고 그게 사실이니까 그렇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스라엘 민족을 40년간 헐벗게 하고 광야에서 굶주리게 하고 고난을 허락하신 것은 그게 사실은 하나님의 징계였다. 내가 너희에게 가나안을 주겠다. 그랬는데 모세가 열두지파에게 두령들을 뽑아서 가나안 정탐을 보냈더니 (하나님은 분명히 준다고 그랬는데....) 눈에 보이는 떡으로 사는 것으로 안 10명의 사람들이 우리는 못들어 간다. 가나안 족속들이 얼마나 크냐? 무기도 많고 훈련받았고 저들은 장대와 같고...우리는 들어가면 죽는다.
이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였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가나안을 주시기를 원했고 결국에는 주셨다.
눈에 보이는 것과는 상관없이 믿고 들어가기만 했다면 그들은 광야에서 40년간 유리하는 생활은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복종하니까 하나님이 너희들이 탐지한 날수를 1년으로 쳐서 너희들이 광야에서 엎드려 죽기까지 내가 기다려서 너희들이 들어가면 죽는다하는 너희 아들들과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만 들어가게 하겠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이 40년이라는 고난을 왜 주셨냐면 이게 하나의 징계데 이 징계 있었기에 그들은 다시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왜냐면 여러분 하나님은 그들은 징계해서라도 그들은 가나안으로 인도했어야 했다.
가나안으로 인도한 사람들은 그 후손들이다.
그 후손들이 뭘 보고 배웠겠는가?
그 부모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광야에서 다 죽었구나 우리들은 절대적으로 순종해야겠다.
그래서 여러분 여호수아가 그 후손들을 데리고 여리고를 하루에 한번씩 6일 동안 돌고 7일째에는 일골번을 돌고 소리를 크게 질러서 그때 여리고가 무너지게 한 것 아닙니까?
그 크고 견고한 여리고가 사람이 돈다고 해서 무너지리라고 그들이 생각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아시고 입을 다물어라고 했다.
돌 때 너희들은 절대로 입을 열지말라.
믿음이 있어야 나가니까.
그러니까 여러분 그들이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은 40년동안 불순종의 댓가가 어떠한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징계가 처음에 그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지만 나중에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게 되더라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고난과 징계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 안에서 인친 자녀들이다.
자녀들을 매를 때린다고 하는 것은 사랑에 의해서이지 결코 하나님이라는 속성 자체가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화가 나서 때릴까요? 사랑으로 때릴까요? 하나님은 속성 자체가 사랑이다.
징계를 하거나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빗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우리 인생에도 숨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 인생에 있어서 아직도 수많은 고난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은 아직도 내가 떡으로만 내가 사는 줄 알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절실하게 깨닫기 까지 하나님은 나를 훈련시키지 아니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우리가 하루 속히 내가 눈에 보이는 것들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게 결국에는 최선을 허락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육와 영성 종합을 다루고 있는데 우리 영혼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이 늘 다투고 있다.
우리 육체를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뜻에 불복종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라고,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라고 주신줄로 믿습니다.
늘 죄의 병기가 아니라 의의 병기로 여러분이 쓰임받기를 원하시고 계시다.
우리 안에는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늘 같이 다투고 있는 것을 본다.
처음에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몸을 그대로 두면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지만 그러나 내가 될 수만 있으면 내가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을 분리시켜서 내가 영의 생각을 쫓기를 원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분리가 안되면 쫓지를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다는 것이 뭔가?
깨어있다는 것은 내가 육신의 생각대로 살고 있는지 영의 생각대로 살고 있는지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대로 내 몸을 드리고 있는지 내가 봐야 한다.
깨어있지 않으면 분별도 못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생각인지 사단이 준 생각인지 분별하면서 살아가야 한다.
처음에는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을 분별해서 분리시키는 작업을 하지만 나중에는 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
연합이란 이제는 내 육신이 육신대로 살아봤자 다 사망이라는 것이다. 그걸 알고 나면 실패와 실패를 거듭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살지 말라고 그러니까 이제는 육신이 내가 육신대로 살아보니까 육신대로 살아봤자 다 사망이고 하늘나라에 상급도 없고 하늘나라가면 선악간에 다 심판받을거니까 육신아 이제는 영에 굴복하라. 할렐루야!
그래서 육신이 영에 속하게 되는(귀속)
이전에는 반발했어요.
인제는 해봐도 별 소용이 없으니까 영을 따랄 사는 것이 가장 멋있고 가장 가치가 있고 가장 상급이 많은 삶이야.
이걸 깨닫고 나면 귀속 현상이 일어난다. 육신이 이제는 반발하는 게 아니라 영에게 몸을 쳐서라도 이제 끌려가는 거에요.
연합의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연합이란 하나님과 나의 연합
1+1=2
하나님+나=나는 없어지고 하나님만 남는다. 이게 연합이다.
그러니까 연합된 삶을 향하여 내가 비워지고 내가 없어지는 그런 연합의 삶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육체가 의의 병기로 쓰임받을 수 있다.
의의 병기로 쓰임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첫째로 감정이다.
감정대로 사는 사람은 진짜 하나님 나라에 쓸모가 없다.
사도바울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라고 말했다.
이 감정을 보니까 주의 종들도 마찬가지로 감정이 앞서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있어서 무력하더라는 것이다.
이 감정은 얼마나 많이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는지 모른다.
모세는 하나님이 쓸라고 하니까 혈기 부려서 사람 쳐 죽이고 모레에 묻고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훈련을 받았다. 지도자가 될 사람은 혈기 부리면 안된다.
감정이 앞서면 안된다.
내가 감정이 앞서고 감정이 드러난다면 훈련을 해야 한다.
하나님은 온유한 사람을 지도자로 쓰신다.
얼마나 감정이라는 것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에 쓸모없는 자로 무력한 자로 만드는지 모른다.
이 감정은 아무짝에도 쓸데없다.
그래서 죽었다. 감정은 주 안에서 죽었다고 선포하고 있거든요.
주님이 돌아가셨을 때에 나의 정과 욕심도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할 때 우리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우리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도 복음이다.
감정이 없앨 수 있기를 축원한다.
영성훈련을 받으면 받을수록 변한다.
아직 저분은 저기에(그 수준에) 계시는 구나...기다려 준다.
감정은 괴물이다.
영성이 입혀지면 입혀질수록 내가 뭐가 너무 좋고 이런 게 없어진다.
뭐가 너무 싫고...이런 게 없어진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뭐가 좋고 싫고가 아니라 오직 주님이 좋고 주님이 어떤 것을 싫어하고 그런게 문제가 되더라는 것이다.
의의병기로 쓰임받는데 있어서 욕심도 방해가 된다.
여러분이 내 안에 어떤 욕심이 발견될 때 개인적인 욕심, 하나님의 대한 것이라고 내가 말을 하고 있지만 내 안에 욕심이 발견되는 수가 있다.
이 욕심이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게 만든다.
영성훈련을 하면서 여러분의 불순물을 제게 시킨다.
하나님이 먹고자 하는 것을 아주 맛있는 순수한 것이다.
거기에 내가 섞이고 나의 유익이 섞이고 하는 것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신다.
그러니까 우리는 다른 것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펴야 한다.
내 안에 일어나는 모든 동기와 목적을 먼저 살펴야 한다.
살피고 나서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열매와 결과를 가져다 드릴 수 있다.
이게 훈련이 되어지지 아니하면 모든 것이 겉치레 포장된 모습으로 평생을 그런 인생을 살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런 인생을 살면 나중에 가서 어떻게 할까요?
후회하죠.
이 영성 훈련은 여러분 안을 청소하는 것이다.
안이 청소가 되면 바깥은 천천히라도 바꿔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주님이 너희 안을 먼저 깨끗이 하라.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안 보신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너무 잘 보고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이 되어야 하는데 늘 사람 앞에서 삶을 살고 보이는 것들에 의해서 좌우되고 그러면 안된다.
우리가 의의 병기로 쓰임받기 위해서는 우리안에 조금한 욕심이라도 발견되면 짓밟을 수 있기를 축원한다. 누구를 위해서요. 나를 위해서.
갈라디아서6:8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경은 심은대로 거둔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 육체를 위하여 심으면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둔다고 말씀하고 있다.
7절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였다.
심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이다.
성령으로 내가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고 내가 성령으로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둔다.
이게 하나님의 거둠의 법칙이다.
우리는 성령의 지도와 인도함을 받아서 삶을 살기를 원한다.
내가 성령의 지도와 인도함을 받아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내 안에 있는 더러운 것들을 치워야 한다.
이걸 우리가 치워야 하는데 이것을 우리가 자아파쇄라고 한다.
내가 성령의 뜻을 알아서 내가 실천하고 싶어해도 못하는 이유가 내 안에 있는 자아 때문에 안되더라는 얘기이다.
여러분 자아파쇄를 잠깐 보겠다.
여러분의 인생에는 수많은 사건과 문제들이 있다. 그때 내 안에서 진리가 아닌게(화가난다) 발견된다면 이것은 내 안에 진리가 아닌 것이 있기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건은 자아파쇄를 위한 보기 위한 예를 들고 있다.
어떤 사건에서 화가 나고 분이 난다는 얘기는 자아파쇄를 하기를 원한다면 이 문제는 누구 때문에 일어났냐고요? 나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이죠.
왜? 내 안에 있는 진리가 아닌 것을 하나님께서 처리하시기 위해서 이 문제를 나에게 허락하실 수밖에 없더라는 것이다.
왜 화가 나는가 보니까 나를 무시하네..
무시하는 것을 내 안에 들어가 보니까 화가나는 것은 현상이죠.
내 안에 들어가보니까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라는 것이다.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은 진리일까요? 진리가 아닌 것일까요? 진리가 아니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섬김을 받으라고 보낸 것이 아니고 섬기라고 보내신 것이죠.
그러면 진리가 아닌 나는 항상 대접받고자 하고 인정받고자 하고 그래서 누가 나를 무시하고 멸시하면 화가난다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마음에는 아직도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이게 있는 한은 우리가 아무리 성경말씀을 듣고 아멘 한다고 할지라도 이 자아가 나에게 도사리고 있는 한은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없는 것이다.
원수가 사랑이 되나요? 안되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실천 못하는 이유가 시퍼런 자아가 내 안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이걸 내려놓은 훈련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실천하기 어렵다.
우리는 어떤 사건과 문제를 통해서 나를 훈련하기를 원하는 자는 정말 내 몸이 하나님 앞에 육체와 영성이 의의병기로 쓰임받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도구와 통로가 되기를 원하는 자는 자아파쇄훈련을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말씀을 실천한다.
자아는 시퍼렇게 살아있는데 어떻게 하나님 말씀이 실천이 됩니까?
나는 내 자아대로 살고 싶은데...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내 자아위에 떨어지는 것은 돌밭에 돌위에 떨어지는 것과 같은데 거기 떨어지면 흙이 조금 있어서 잠깐은 자라지만 해가 쨍쨍 내리쬐면 말라 비틀어지고 만다.
근데 나가서 말씀을 시험하는 사건 앞에서는 그 말씀이 온데 간데 없어지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돌 치우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
그 돌을 치워야 씨앗이 떨어져도 옥토에 떨어지죠!
내가 육체와 영성에서 내가 정말로 의의 병기로 쓰임받고자 한다면 자아파쇄부터 하라.
나의 자아 파쇄를 위해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라.
그래서 여러분 다툼이 일어났다면 누구를 위해서 일어났다고요? 나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일어난 것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의 감정대로 혈기대로 살다보면 어떻게 되나요? 사람들이 다 떨어져 나가요.
그래서 삶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 것이다.
성경에만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24시간 우리와 접촉하고 있는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더 잘 들을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육체와 영성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도바울도 그랬어요 내 육체를 쳐서 복종시키노라. 나는 날마다 죽노라.
우리가 육체가 있는 동안은 내가 날마다 죽어야 하는 거에요.
내가 날마다 죽은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죽은 걸로 기억안하고 있는 대로 부리고 살면 어떻게 되요?
사망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과는 전혀 반대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 앞에 스스로가 부끄럽고 감정대로 살았다면 회개하시길 바랍니다.
지금부터라도 사람들과 화합하는 자로 살겠습니다.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으로 받아들이시고 하나님 앞에 달려나가시기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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