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와 영성- 육신으로 행하면 안되는 이유
성경은 잘 보면 영과 육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성경의 모든 믿음의 선진들을 봐도 모든 인물들이 영으로 행한 자들, 영을 쫓아 산자들로 가득하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육신과 영으로 구성되게 하셨다.
육신은 흙에서 왔고 영은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진짜 나는 영이다.
그래서 영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지금 우리가 육체가운데 있을 때에라도 영을 쫓아야 하고 그래야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내가 영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까요?
내가 영이라는 것을 확실히 아는 방법은 몸에서 영이 빠져나온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입신, 육체이탈이라고도 말하죠.
예) 장님이 교통사고로 육체이탈이 되어 자신을 본 얘기
사람이 육체를 위하여 사는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요?
아직도 나는 육신의 것을 쫓고 있다 그런 사람많죠!
영이 빠져 나온 경험을 2번 경험했다.
초3학년때 논둑에서 자신의 영이 1미터위에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이대는 예수님 믿지 않을 때였다.
또 한번은 침대위에서 기도할 때 주님의 손이 자신을 끄집어 내셨다.
우주로 빠져 나갔다. 날았다. 날면서 기분이 좋았다. 무게가 없었다.
어느 성 안에 들어가서 재판받는 장면을 보았다.
어떻게 심판을 받느냐면 책상이 ㄷ자로 놓여 있었고 영혼이 밑에서 영혼이 하나씩 올라와서 ㄷ자 안에 섰다.
하나님이 왜 영과 육신을 자구 얘기하시는지 육신으로 행하면 사망이다.
육신으로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산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다 그랬다.
영이 나에게는 어디 있는지 모른다. 그 영안에 누가 와 있는가? 성령님이다.
영원히 사는 것이 영이다.
영의 생각을 쫓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쫓는다는 것이다.
영을 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육신 안에는 영이 들어 있다.
영의 인격과 육신의 인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영의 지정의가 있고 육신의 지정의가 있다.
영의 생각을 쫓아 행하라 거기에는 성령이 게시기 때문이다.
밖에는 육체가 있지만 안에는 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내 안에 있는 영의 인격을 따라 살기보다 육체의 인격을 따라 살고 있는 모습을 본다.
영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랬는데 그 하나님의 영과 내 영이 만나는 것이다.
영적 교통이라는 것이 그분과 내가 영으로 만나는 것이다.
영적으로 교통을 해서 구분의 생각을 따라서 살아야 된다는 것이다.
근데 우리는 영의 생각은 뒤로 제쳐놓고 내 밖에 있는 육신 내 뇌로 생각하는 것, 그 다음에 내 오감각을 통해서 내 육체가 기뻐하는 것, 이런 것을 따라서 사니까 하나님이 진노하신다 말이죠.
이 육신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 가치가 있느냐?
영의 생각을 쫓아서 순종할 때에만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안 그러면 죄를 짓는 죄의 병기로밖에 사용받지 못하더라는 것이다.
육신에게서는 하나도 선한 것이 나오는게 없다고 그랬다.
육신에서 나온 것을 보면 다 부패하다고 했다.
사람의 마음이 온 세상의 어떤 것보다 부패했다고 했다.(예레미야)
마음은 육신의 인경이다.
영을 쫓지 않는 마음의 삶이 육신적인 삶이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삶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영을 위해 살지 않는 시간들, 영을 쫓아서 살지 않는 그 모든 시간들은 사망의 시간인 것이다.
하나님이 쳐주지(카운트) 않는 시간이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그랬다.
육신의 인격, 육신의 마음, 육신의 생각 이 모든 것이 사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내 안에 영이 따로 있는데 영원히 살 영, 영에 성령이 와 계시는데 영의 생각은 뭘까요?
그걸 쫓으면 영을 쫓으면 생명과 평안이라는 거에요.
우리는 어떤 인격을 쫓아서 살아야 되겠어요?
우리 안에는 두 인격이 존재한다.
나에게는 육신의 인격을 쫓아 살면 사망이고, 영의 인격을 쫓아 살면 생명과 평안이라는 것이다.
간단한 예로 누가 나를 앞에서 무시하면 어때요?
육체는 화가 올라오죠.
화를 내면 육신의 인격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멸시하고 무시하는데 “그래 맞어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야 내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데 왜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하지 나를 낮추시려고 하는 구나 하나님 내가 낮아지겠습니다.” 라고 하면 내 육신의 반응을 거절하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영의 생각 그걸 쫓는 것이다.
우리는 금방 반응이 나오는 게 육신이다.
우리 육신은 먼저 반응하게 되어 있다. 보이는 세계에 대해서, 들리는 세계에 대해서.
영은 좀 늦다.
그래서 성경은 육신과 영을 창세기부터 얘기하고 있다.
아담과 하와를 보자.
하와가 육신을 쫓아서 선악과를 먹어버렸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것이 영이다.
육신의 생각을 거절해야 하는데 먹어버렸다.
그 다음에 가인과 아벨의 경우
가인은 육신적인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이 뭔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곡식으로 제사를 더렸다.
아벨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뭔지를 알고 양의 피로 제사를 드렸다. 이것이 영의 생각이다.
아브라함
첫째 아들은 이스마엘 둘째 아들은 이삭이죠.
이스마엘은 육신의 생각,
하나님의 약속의 아들 이삭은 영으로 온 자식이었다.
약속대로 받은 자녀가 이삭이다.
육신으로 행한 모든 것이 사망이다.
하와도 사망의 길로 갔고, 가인도 사망의 길로 갔고, 아브라함도 이스마엘을 낳은 그 자체가 사망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을 대항하는 민족으로 발전되었다.
성경은 다니엘의 이야기, 무엇을 쫓아서 산 자입니까? 영을 쫓아서 산 자에요.
영을 위해서 살았다.
다니엘의 세친구도 마찬가지이다.
육신대로 산 것이 아니라 영을 쫓아서 살았다.
다윗은 영을 쫓아 산자이고 사울은 육신을 쫓아 살았다.
사사기에도 많이 나와있다.
사도바울이 이 모든 것을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으로 분류해서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딱 두 분류로 나누어서 정리를 해 놓은 것이다.
육신을 쫓는 자는 사망의 길을 가고 있고, 영을 쫓는 자는 생명의 길로 간다는 얘기이다.
주님도 말씀하셨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그 길은 생명의 길이고 찾는 이가 적다.
베드로가 육신을 쫓아 살 때에는 실패했다.
영을 쫓아 살 때에는 감옥에서도 쿨쿨 자을 자고 있었다.
성경은 너희가 육신을 가졌으나 육신이 원하는 대로 살고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진노한다고 그랬다.
그런데 육신의 생각을 거절하고 영의 생각을 쫓아 살면 하나님이 도우시고 그리고 생명을 얻게 되고 하늘나라에서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다 찾아먹는 시간이 되고 하늘 나라에서 큰 자가 되는 것이다.
주님이 생명 아니면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중간지대가 없다.
내가 사망의 삶을 살 거냐? 생명의 삶을 살 거냐? 그건 나에게 달려 있다.
육신으로 사는 모든 자를 깨워야 한다.
우리도 다 육신으로 생각하고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대로 살았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알고 그것이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삶인 줄 알고 영의 생각을 쫓아서 살게 된 줄로 믿는다.
육신으로 살아서는 안되는 이유
1.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롬8)
삶에서 어떻게 적용하는가?
하나님과 원수되기 때문에 살면서 어떻게 적용하는가?
이것이 육신에게서 온 것인지 하나님께서 온 것인지 분별해야 한다.
분별을 안 하니까 육신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그냥 사는 것이다.
분별이 아주 중요하다.
분별할 그 때부터 영으로 살기 시작하는 싹이 트기 시작하는 것이다.
분별을 안하고 산다.
당연히 내 생각이 맞겠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내 육신의 생각을 받아들여 산다. 왜 내가 육신이라고 생각하니까.
참 나는 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내 육신 안에 똑같은 영이 있다니까요.
영이 있다. 똑같은 나이다. 영이 빠져 나가보니까 확실히 알겠다.
우리가 살면서 뇌의 생각을 따라 사는 건지 영의 생각을 쫓고 있는지를 봐야 한다.
내 안에 영에서 온 것인지 육신에서 온 것인지 봐야 한다.
이게 맞겠지 하고 행하는데 다 육신에게서 온 것이 많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인 되는 삶이 영의 생각을 쫓아가는 삶인 것이다.
2. 하늘나라에서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갈5:19-21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육체의 확실한 일이 무엇인가?
음행, 호색, 우상숭배(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섬기는 것),
내가 우상숭배하고 있지 않은지 철저하게 가려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우상숭배...자기를 더 섬기는 것도 생각해 보라.
내가 어느것에 시간을 더 투자하고 있는지?
하나님이냐? 세상이냐? 아니면 세상의 것들이냐?
우리 입으로는 내가 우상숭배 안한다고 할 수 있지만 평소에 내가 하나님을 더 생각하느냐? 세상을 더 많이 생각하느냐?
내 안에 주인이 다르기 때문에 우상 숭배하는 것이다.
그 중심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중심이 정말 하나님인가? 일을 해도 주님을 위해서 해야 한다. 돈을 벌어도 주님을 위해서 해야 한다. 그래야 그것이 우상숭배가 안되는 것이다.
우리는 정말 주님앞에 가는 날까지 나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살피고 삼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방식으로 똑같이 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만큼 내가 드리고 있는가를 봐야 한다. 모든 거에 있어어.
시간도 그렇고 정력도 그렇고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큼 내가 드리고 있는가? 그것도 따져 봐야 한다.
왜냐하면 우상숭배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내가 우상숭배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결국은 너냐? 나냐? 이거다.
너를 위해 사냐? 나를 위해 사SI?
우상숭배가 그걸 로도 볼 수 있다.
니가 나를 위해 사냐? 나를 위해 사냐 로도 볼수 있다.
나 자신을 하나님앞에서 다 볼 수 있어야 하나님앞에 바르게 놓을 수 있다.
그 다음에 술수, 원수 맺는 것, 분쟁, 어디서든지 분쟁하면 안된다.
시기, 분리함 이단, 술취함. 방탕 ...
이러한 사람들은 확실히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육신으로 행하면 안되는 이유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기 위해서는 육신으로 행하는 모든 일들을 회개하고 다시 되돌이켜야 한다.
3. 육신으로 계속 살면 하나님의 징계가 임한다.
왜냐하면 너는 내 아들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육신으로 사는 자들에게는 징계가 임하더라는 것이다.
징계가 임해서 깨달으면 좋은데 못 깨닫는 사람들이 많고 그짓을 되풀이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육신으로 행하는 모든 일들을 STOP해야 한다.
저는 이런 말씀들이 있기 때문에 저도 더 하나님쪽으로 가서 영으로 행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지, 저는 성경에 이런 말씀들이 있는 것이 너무 좋다.
성경에 없었다면 제가 어떻게 알았겠느냐?
어떻게 저를 쳐서 복종시킬 생각을 했겠는가?
4. 하나님이 근심하신다. 하나님의 근심이 된다.
5. 육신으로 살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영으로 사는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영에서 오느냐? 구분하는 방법을 보자.
육신인지 영인지 어떻게 구분하나?
1.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에 본다.
하나님의 말씀과 같으면 영에서 온 것이다.
2. 내 안에 들어오는 생각을 보니까 그 생각이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기 위한 어떤 거라면 영에서 온 것이다.
사랑 희락 자비 양선 희락 오래참음 충성 온유 절제....
내 안에서 나온 생각이 이러한 것들이라면 영에서 온 생각이다.
성령께서 맺는 열매가 이런 것들이니까 영에서 온 것이다.
3. 하나님의 말씀에도 안 나타나있고 그럴 때 어떻게 하는가?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장막안에 있고 자기는 백향목 궁에 거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궤를 성전에 모시려고 성전을 지을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윗이 성전 지을 생각이 육신의 생각인지 몰랐다.
성전을 지을 그 생각이 하나님께로 온 거냐 내 육신의 생각이냐? 그때네 어떻게 했는가?
하나님을 기다리는 방법이 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아니다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환경으로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뜻이면 환경을 활짝 여시고 아니면 환경을 닫으신다.
다윗에게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내 생각이 육신의 인격에서 온 것인지 영의 인격에서 온 것인지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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