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와 영성1 종합
로마서6:1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체를 주신 이유가 의의 병기로 쓰라고 주신 것이다.
창1:28
땅을 정복하고 바다에 있는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라 하셨다. 이것은 명령이죠.
우리에게 육체를 창조하시고 하시는 말씀이 명령하신 것이다. 다스리라.
우리에게 육체를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드리기 위해서 우리에게 육체를 주신 것이다.
우리 인간은 못되 가지고 자유의지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삶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왜 자유의지를 주셨는가? 우리로 하여금 상 받게 하시려고.
여러분 우리가 로봇이라면 하나님의 계명만 수행하는 로봇이라면 우리에게 상이 있겠는가?
없다.
그러나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그들에게는 하늘나라의 상의 준비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들이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해서 자기를 위해 사니까 불의의 병기로 사용받다가 인생이 끝날 수가 있다는 것이다.
나를 위해 사는 삶이 얼마나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지!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 종속된 자가 되어야 하는데 종속된 관계를 벗어나서 내가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 나의 사는 모습이 하나님이 내 주인이 아니고 내가 주인되어 살고 하나님의 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나의 종으로 나를 섬기고 사는 나의 종으로 사는 이 모습이 얼마나 하나님을 진노케 하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우리를 본질상 진노의 자녀라고 얘기하고 있니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육체를 주신 이유를 잘 알아서 우리의 몸을 의의 병기로 쳐서 복종시키면서라도 의의 병기로 드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잘 나타나 있는 곳이 계명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해라, 이렇게 하지마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근데 계명을 우습게 여기고 있는 모습을 본다.
사실 계명 안에는 하나님의 가장 귀하고 가장 많은 요구사항이 들어있는 것이 계명인 것이다.
계명을 지키는 자가 복된 것이다.
나외에 어떤 신도 섬기지 마라.
자기를 위하여 어떤 형상에게도 절하니 말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부모를 공경하는 자가 장수하는 것이다. 건강식을 먹어서 오래 사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 오래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영혼들이 불쌍해서 그렇다.(서목사님)
오로지 하나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서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잘 묵상하고 계명에 어긋나는 것을 절대 하지마십시오.
남의 이웃에 것을 탐내지 마라. 부녀라도 탐내지 마라. 그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을 탐내지 마라. 거짓증거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살인하지 마라.
신약에 와서는 다른 뜻으로 또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하여 잘 지켜드리기 위하여 우리 육체를 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 영적 존재가 세 개있다.
1) 하나님이시다.
2) 사단이다.
3) 인간이다.
이 세부류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
그러나 선한 천사들은 자유의지가 없고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다. 오로지.
육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혼과 영성이 잘되야 한다.
그래야 육체와 영성이 잘 될 수 있다.
내 영의 가치관이 하늘에 옮겨져 있지 아니하면 내 가치관이 아직도 땅에 속해 있다.
이런 자는 어떻게 그 육체가 의의병기로 쓰임 받겠는가? 아니다.
땅에 속한 자는 의의병기로 쓰임받을 생각조차 못한다. 땅에 속한 자이니까.
영혼과 영성이 첫째는 잘되어야 한다.
내 가치관이 땅에 있는 자가 아니라 하늘에 옮겨져야 된다. 아멘
소망을 어디에 둔자라고요? 하늘에 둔 자....
소망이 아직도 땅에 있다면 아직 멀었다.
영혼과 영성부터 그 가치관을 땅에서부터 하늘로 옮겨야 되는 것이다.
영혼과 영성이 잘 되면 모든 가치관이 하늘을 향해 있다.
그래서 골로새서보면 땅에 것을 아예 생각지 마라 그러죠.
우리 생각 속에는 늘 뭐가 있어야 하는가? 하늘과 하나님만 있어야 한다.
땅에 것을 내가 품고 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내 생각속에는 아예 땅에 것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자가 영혼과 영성을 “아하 다 헛 것이구나. 내가 죽고 없어질 것을 생각하고 있네, 그건 아니야”라고 깨달았는데 깨닫은 것만 가지고 됩니까?
육체가 그 깨달음에 어떻게 해야 하나요? 육체가 복종을 해야 한다.
깨달음이 먼저요.
호세아에 내 백성이 깨닫지 못해서 망한다고 그랬어요.
그러나 깨달아도 육체가 반대로 반응하면 아무 소용없다.
깨달음이 있지만 육체가 따라주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없다.
영성 훈련이란 말을 왜 붙이는가?
훈련이란 것을 붙인 이유가 이 말 안 듣는 육체를 내 깨달음에다가 복종시키기 위해서이다.
복종하다 보면 순종하는 데까지 나가게 된다.
내 육체를 이 깨달음에다가 종속시키기 위해서 우리가 훈련이란 말을 붙이는 것이다.
여러분 10년 넘게 영성훈련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보면 영성훈련을 우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특징은 성령을 모르고 성령에 무뎌있고 성령의 흐름에 들어오지 못하고 성령의 조명하심에 부족하다.
왜 그런지 아는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 안하는 자들은 맨날 듣기만 듣고 돌아다니고 이 영성훈련을 우습게 여기더라.
그게 특징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성훈련에 부르는 자가 있다.
영성훈련이 정말 귀하다고 느끼게 하는 자가 있다.
그런 자는 끝까지 승리한다.
근데 내가 기도안하고 귀히 여기지도 않고 다 떨어져 나간다.
결국 소수밖에 남지 않는다.
여러분 성경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가 적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넓어서 그 길을 찾는 자가 많다고 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라 그 길을 찾는 자가 적다고 했다.
정말 영성훈련이 귀하다고 여기는 자들은 이미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 자들이다. 아멘
왜요? 이미 좁음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안되지만 그러나 희망이 있는 자들이다.
그런데 영성훈련에 와서 아 다 아는 얘기만 하네...그러고. 알지만 행하나요?
그 사람 삶을 보면 전혀 행함이 없는 것을 본다.
각성이 없다.
육신의일이 뭔지 영의 일이 뭔지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면서 나가서 영성훈련에 대해 비판한다.
그러나 목사님은 영성훈련을 받으면서 이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지는지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것 같고 그랬다.
영적으로 지탱을 해 주었다.
정말 가야될 길이 이 길이구나 알았다.
신앙이라는 것은 정도가 있다.
새로운 길이 아니다. 신앙의 선진들을 따라 가는 것이다.
그 길을 이제 빨리 가면 되는 것이다.
그 길이 발견되었으면 그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아직도 발견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이 길인지 저 길인지 잘 모르고 방황한다.
하나님의 말씀에다가 내 삶을 끌어내리는 것이다.
말씀이 적힌 말씀이 아니라 이 말씀이 내 삶속에서 뿌리 내리는 것이다.
말씀이 내 삶속에 뿌리 내리게 하기 위해 와 있는 것이다. 영성훈련 받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말씀이 내 삶속에 온전히 뿌리 내려져서 내가 그것을 행하면서 사는 자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일생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몇 개나 행하고 살았는지 생각해 보세요.
몇 개 안될 것이다.
말씀은 너무 많이 아는데 꿰고 앉아있는데 정작 내가 행하고 있는 행동을 보면 별로 없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머리로만 알라고 주셨는가? 알고 있으니까 기분좋네...말씀이 너무 다네...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씀을 깨닫는 것으로만 그쳐서는 안된다.
24시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져야 하는 나는 어디로 간데 없고 맨날 그런 거,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만 바라보고 산다면 그러면 삶을 다 놓치는 것이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24시간 중에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사는 것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만 바라보는 것은 감나무 밑에 누워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가다가 하나 둘씩은 떨어질 때도 있겠지요. 감이 익으면..
물론 강권적인 역사도 필요하다.
그러나 24시간 사는 삶속에서 사도바울의 로마서를 보면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을 얼마나 정교하게 이야기 하고 있는지, 얼마나 처절하게 자신도 고민하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을 알면서도 영의 생각을 못 쫓는 자신을 보면서 얼마나 고민을 했으면 그렇게 말했겠는가?
우리는 사도바울을 보잖아요.
사도바울의 그렇게 고민한 삶에서도 똑같은 과정을 거쳐서도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그 삶을 살기 위해서 여러분이 여기 와서 앉아 있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
여러분 제가 뭘 얘기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영성훈련이 깊이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깊이 들어갈 수 있는지 아는가?
그런 사람을 위해서는 기다려주고 기도해 주는 수밖에 없다.
육체를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켜서 의의병기로 사용받는 그것이 육체와 영성의 목표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육체가 너무 질기죠.
갈라디아서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그 정과 함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죽은 나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이미 죽은 나.
그러나 우리는 2,000년 전에 예수님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을 때 죽은 나를 도로 살려서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면 너무 어리석은 거잖아요.
성경은 예수님이 2,000년 전에 돌아가셨을 때에 너는 죽었다.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육신을 2,000년전에 못박았다고 선언하고 있는데 “저게 말이야 나를 무시했어? 다음부터 오나봐라.”..그러고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불쌍하다. 왜 그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하나님은 죽었다는데 이리 우리를 위해서 못박아 죽으셨다는데 왜 우리가 이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옛사람이 자기인 것처럼 꺼내갖고 고거로만 산다. 그러니까 불쌍하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른다. 그가 막힌 일이다.
저도 몰랐다 영성훈련에 와서 겨우 깨달았다.(서목사님)
여기 와서 육신이 뭔지 영이 뭔지, 영의 생각은 어떤 것인지 육체의 생각이 뭔지, 어떻게 분리시키며 어떻게 분리시켜서 분별해서 쫓는 것이며, 어떻게 하면 죽었다고 하는 그 자아를 올라오는 그 자아를 다시 내려놓는지 거절하는지, 그런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조금 희망이 생겼다. 아하~~ 나도 할 수 있구나!
안되는 줄로만 알았는데 나느 다르게만 살았는데 가망성이 생기는 거에요.
가능성이 생기고 희망이 생기고 아하~~ 결국은 되는구나, 사도바울도 그 길을 갔구나
된다는 것이다.
죽은 나를 붙들고 살지 말고 죽은 나를 다 붙들고 살면서도 자기들이 그렇게 사는 것도 모르고 사는 그게 얼마나 처참한 일인가? 안된 일인가? 참 불쌍한 일인가?
이걸 깨닫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에 대해 빨리 깨닫게 되길 바란다.
육체와 영성을 잘 하는 비결
1) 부르짖고 기도한다. 철칙이다.
성도들도 부르짖고 기도하게 해야 한다. 그래 은사가 임하고 하나님의 음성도 듣게 된다.
2) 물으라. 하나님께 묻는 훈련 이거 안하면 안된다.
하루에 50번씩 해라.
이 두 개만 잘해도 여러분은 반은 한 것이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다.
조명해 주시고 회개시켜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다해 주신다.
은사도 임하고
기도안하니까 정말 모른다. 영의 일을 모른다.
그리고 tv만 보고 있다. 보이는 게 다거든요. 들이는 게 다니까요.
밤새 비디오 보고 앉아 있고.
이게 뭡니까?
부르짖고 기도하고 어려운 일이든지 쉬운 일이든지 하나님께 순간순간 다 물으라.
이 훈련 하지 않으면 육체와 영성 잘 안된다.
왜냐 내가 나를 쳐서 앉혀서 기도하는 것도 제대로 안되는데 혼자 하잖아요,
그런데 인간이 서로 마주쳐서 그 속에서 쳐서 복종시키는 것이 제대로 되겠어요?
혼자 가만히 앉아서 기도하라는 것도 안하는데....
혼자서 쳐서 복종시켜서 혼자 기도하라는 것도 안하는데 인간관계속에서 그 어려운 일이 벌어지는 속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에 쳐서 복종하라는 것이 되겠냐고요?
혼자서 하라는 것도 안하는데....
우리는 육체를 하나님의 뜻에 자꾸 두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은사도 많이 경험하라.
여러분 제가 변한 거 말씀 드릴께요.
저의 설교 듣게 하려고 전도해서 데리고 왔다.
영성훈련은 내 마음을 보는 것이다.
내 영혼이 주님 앞에서 정결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저는 6년 동안 사람의 숫자에 매여 있었던 것 같다.
교인수가 몇 명인가?
그런 모습 속에서 자신을 보니까 자신이 헛살았구나 깨달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비즈니스식으로 생각한다.
옛날에 큰교회에서만 전도사 하려고 했다.
큰교회 있으면 내가 커지는 것 같고 작은 교회 있으면 내가 작아지는 것같고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자신의 마음을 보니까.
무슨 얘기냐면 큰 교회에 가면 내 자신이 커지는 것 같고 작은 교회가면 내 자신이 움츠러드는 것 같았다.
이게 뭔지를 몰랐다.
지금은 아는게 뭐냐면 보이는 것들에게 우리가 좌우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진실이 아니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무엇을 심판받느냐면 겉으로 보이는 것에 좌우되었던 나는 헛것이라는 것을 접접 깨닫게 되었다.
우리가 목회를 하면 몇백명되고 목사 월급 많고 다들 목사님 목사님 떠받들어주고
다 괜찮은거죠..그런데 다 보이는 건 괜찮은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나는 부요하여 부족함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보실 때 야 내가 너를 보니까 네 영혼이 가난하고 헐벗었고 눈이 멀었고 곤고한 것을 니가 알지 못하느냐?
여러분 우리는 저는 아 그래 내가 목회가 시프트(방향이 바뀌는거)
전에는 제가 사람들을 내 설교 듣게 하기 위해서 앉혀놨어요.
지금은 아니다.
변화될 것 아니면 오지마...
앉혀놔도 변화될 거 아니면 오지마라
이렇게 변화되었다.
500명 앉혀놓고도 한명도 변화 되지 않는다. 그러나 한두면 앉혀놓고도 변화된다면 무엇이 낫겠는가?
우리는 거품적인 것에 더 신경을 쓰고 거품이 아닌 진실을 외면하고 내가 평생을 그렇게 목회를 해야 하는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용기 목사님 아시죠?....ㅠㅠ
먹고 살기 좋으니까 점점 타락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의 종으로서 가장 조심할게 뭐냐면 나의 영혼을 드려다 보려고 해야 한다.
교회가 커질수록 어떻게 되냐?
내가 죽을까봐 버림받을까봐 제단 뿔을 잡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내 영혼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여러분 처음에 쓰임받고 다 버림받지 않나요?
오히려 가장 타락할 수 있는 존재가 양들은 믿음이 성장하지만 맨 위에 있는 지도자 인 것이구나...
우리 자신의 영혼에 대하여 깨어있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는 진실한 거 우리의 마음이 끝까지 진실하고 어느 누구도 우리의 진실함 앞에 설사 교회가 부흥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릴 보고 “너는 나의 충성된 종이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늘 우리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드려다 보고 낮추고 그래서 결코 타락하지 아니하는 여러분과 제가 되길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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