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와 영성1-하나님의 마음으로
시119:56 내 소유는 이것이니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속에서 내가 진리를 행하고 있는데도 상대방이 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인간관계속에서 진리를 행하려고 애를 써야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변하지 않을 때, 그래도 우리는 끝까지 진리를 행해야 한다.
내가 진리를 행한 것만으로 기뻐해야 한다.
상대방이 변하고 안 변하고에 상관없이 변하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진리를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그러니까 상대방이 변하는가 안 변하는가 이걸 보는 게 아니라 나는 끝까지 진리만 행하고 있으면 된다. 안변한다고 그만두는 게 아니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기대를 알자.
내가 행복하고 내가 기쁘고 이런 것에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되어지는 것에 관심을 두라는 것이다.
우리는 근데 사는 삶이 내가 행복하고 내가 기뻐하는 삶에 관심을 두니까 하나님께 사용받지 못한다.
이런 것들은 내려놓고 내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사용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인과 윤리 훈련을 보고 있다.
대인과 윤리 영성에서 우리가 조심할 것이 있다.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
1. 보상심리에 빠지지 말라.
나는 이만큼 했는데 왜 저 사람은 안 해주나? 이런 심리가 보상심리이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에게 한 것은 누구에게 한 것인가?
하나님께 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내가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하는 것이다.
2. 사람 앞에 인정받으려고 하지마라.
이것은 쉽다.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께 인정받기는 어렵다.
우리는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내 내면을 살피고 계신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하라.
3. 내가 앞서서 선을 행하지 마라.
내가 보기에 좋다고 해서 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 좋은게 좋은게 아니다. 하나님께 물어서 해야 한다.
나는 돕고 싶은데 하나님은 가만히 있으라고 하실 때가 있다.
하나님께 물어서 행해야 한다.
* 사람을 받으라(내 마음 안에 두라)
여러분의 인간관계속에서 껄끄럽고 보기 싫고 안 봤으면 좋겠고 하는 그런 사람을 다시 여러분의 마음에 두라는 얘기이다.
그 인간관계도 하나님이 조성하셨다는 것이다. 마음으로 받으라는 것이다.
그 사람을 마음으로 받을 때 그 사람을 정죄하는 마음이 있으면 마음으로 받을 수 있겠는가?
정죄하면 안된다.
그 사람이 설사 잘못한 것이 보인다할지라도 지적하면 안된다.
지적하는 순간 이상하게 그 사람이 내 마음 밖으로 밀쳐진다.
왜 시비를 가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을 품는다는 것은 허물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덮어주는 것이다.
봐도 덮는 것이다.
내가 한번 지적하고 나면 그 사람이 바깥으로 밀쳐져 버린다.
그러면 내가 그 사람에게 대하여 생명적인 삶을 살 수가 없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나에게 보낸 이유가 하나님은 나에게 감당할 만한 시험밖에 주지 않죠.
하나님은 그 사람을 나에게 보낸 것은 내가 품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보냈는데 아직도 덜된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보이고 하면 또 차버린다면 안된다.
나한테 이익이 안 되고 보기 싫으면 차버리잖아요, 이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린 아이의 모습에서 장성한 자의 모습으로 자라나야 하는데 어린아이는 열매를 못맺는다.
성경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마다 어디에 던져진다고요? 불못에 던져진다고 했어요.
그러므로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신앙이 좋다고 생각하는데 어린아이 짓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온다. 사랑장에 나온다.
어린아이와 장성한 자의 차이는 사랑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진리를 따라서 기뻐하며....
어린아이와 장성한 분량의 차이는 사랑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여러분들이 어린 아이의 모습을 벗어나서 장성한 자가 되어 열매를 맺는 자가 될 수 있기를 축복한다.
마7:13-24
좁은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들어가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넓어 찾는 이가 많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문은 좁고 그 길을 찾는 이도 적어 ....
아버지의 뜻대로 사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
아버지의 뜻은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열매를 왜 못 맺나?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이 많은 분은 하나님이다.
그럼 하나님을 내 안에 놓고 살면 된다.
하나님을 내 안에 넣고 살면 아까운 것이 없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려고 하면 따지게 되고 인색하고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하나님을 내 안에 넣고 살면 줘도 더 주고 싶다. 이런 마음이다..
내안에 인색한 마음이 들어오고 따지기 시작하는 그때부터 나는 나한테 매여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풍성하게 주신다.
우리는 인간관계속에서도 물어야 한다.
근데 우리가 물을 때 묻는 것을 잘하는 사람들이 금방금방 응답을 받기 시작한다.
어머니 권사님 묻는 훈련이 안되었는데 묻는 훈련을 하시더니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하신다.
하나님께 묻는 훈련을 하라.
물으면 가르켜 주신다.
물으면 가르켜 주시는데 첫 번째 물었는데 이렇게 하라 그러면 두 번째 왜 그렇게 해야 되는지를 물어보라.
왜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이 또 그렇게 은혜가 된다.
거룩한 하나님의 느낌이 나면서 어떨 때는 눈물이 나기도 한다. 왜?를 물을 때 말이다.
두 단계로 들어가서 물어보시기 바란다.
사람을 영혼으로 보기를 시작하라.
영혼이 나에게 왔다는 것은 나에게 맡겨졌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이것은 나에게 주어진 기회이다.
어떤 기회인가?
하나님 앞에 상급을 쌓을 기회, 그를 섬길 기회, 내가 그들에게 하나님을 깨칠 수 있는 기회이다.
하나님을 그들에게 깨칠 수 있는 기회! 할렐루야! 기회로 삼으라는 것이다.
모든 영혼들에게
사람을 영혼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주신 영혼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했는가?
이 사람은 이래서 안되고, 저 사람은 저래서 안되고 그러면 기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완전히 오히려 하나님의 뜻대로 못살아 드리고 다 짤라 버리고 이 사람 이랬으니까 짜르고 저 사람 저랬으니까 짜르고 그러면 나중에 열매 맺을 가지가 아무것도 없게 된다.
어느 누가 여러분에게 오더라도 하나님이 보내신 것을 알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머리카락도 다 세시는 하나님이 왜 저 사람을 또 보냈지? 전에도 딴 짓하고 가더니 또 왔네.
이러면 되겠어요? 안되지요!
하나님이 또 오게 하신 것은 맡겨주신 기회인데 그 사람이 어떻든지 지금의 모습이 어떠하든간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 것처럼 그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 하면 그를 도울 수 있을까?
그 사람이 잘못하고 있다고 해서 여러분이 깨우쳐 줄 수 있는게 아니라 그 사람을 바꿀 수 있는게 아니라 구구만이 할 수 있나요? 하나님만이 할 수 있다
그 영역을 우리가 끼어드니까 인간관계가 깨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할라니까 안된다.
하나님이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고 봐주고 참아주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기를 원하시는 진리만을 행하고 있으면 된다.
오는 모든 영혼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받을 수 있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불화가 있지요. 이걸 누가 하게 한다고 했나요? 하나님이다.
누구를 위해서요? 나를 위해서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상대방이 바꿔져야 하나요? 내가 바꿔져야 하나요? 내가 바뀌면 된다.
상대방을 바구려 하지 마라 누가 바뀌면 되다? 내가 바뀌면 된다.
상대방은 내가 바꿀 수 없다. 잠깐을 들은척 하지만 바뀌지 않는다. 하나님만 바꿀 수 있다.
그럼 하나님을 움직이려면 어떻게 해요? 내가 바뀌면 된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움직여줘야 하나님이 감동을 받고 그를 바꾸어 주시는 것이다.
내가 직접 바꾸려고 하면 안된다니까요.
그러면 내가 바꿔져서 하나님을 움직여야 한다.
그럼 하나님이 그를 바꾸시는 것이다. 차례가 내가 바뀌면 하나님께서 그도 바꾸신다.
롬14:1-4
“4절에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러니까 남이 잘못하고 있는 걸 보고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라는 것이다.
지금 그가 넘어지고 있지만 나중에 세우시겠다고 하는 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다.
지금 현재 그가 넘어지고 있지만 그를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의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기 때문에 그가 세움을 받으리니 언젠가는 하나님이 세우신다. 그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게 있다고 했다.
누가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봤다면 정죄하지 말라는 것이다.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많이 그런 일들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부로 얘기하지 말고 오히려 기도해 주는 것 밖에 할게 없다.
1절에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받으라.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가 믿음이 있는 것은 내가 잘나서 있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믿음을 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직도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이 다 하시는 것이다.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기지 마라. 그러니까 우리가 길잡이가 잘 되라는 것이다.
우리를 먹게 하신 이유가 그들을 인도하는데 우리를 쓰려고 먼저가게 하는데 우리는 그걸 이용해서 내가 너보다 잘났다는 것이다. 그를 무시하고. 이 모습은 이 사람이나 그 사람이 다 똑같은 것이다.
그 존재목적을 모르니까 내가 너보다 낫고 내 믿음이 너 믿음보다 낫고 너는 못하지!
아이쿠, 그러니까 저 모양이지. 이런 마음을 갖는 그 사람이나 아직 하나님이 믿음을 허락하지 않으셔서 믿음이 약한 상태에 있는 그 사람이 더 낫다. 믿음이 약한 사람이.
내가 믿음이 더 있다고 해서 믿음이 없는 자를 업신여기고 욕하고 이러는 것보다 차라리 하나님이 큰 믿음을 허락 안하셔서 약한 상태에 있는 그 사람이 죄를 짓지 않는 것이란 얘기이다.
믿음이 더 있다고 해서 업신여기는 그 자가 죄를 짓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잘 인도하라고 참아주라고 기다려주라고, 먼저 가는 자가 있어야 길잡이가 되는거 아닙니까?
같은 집에 사는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데 바깥에 나가서 다른 사람을 생명적으로 사랑할 수 있겠는가? 없다. 하는척해도 없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것은 생명이 아니다.
가정에서부터 밀어내고 있기 때문에 밀어내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받을 수 있다?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서부터 바꿔져야 할까요?
가정에서부터, 집안에서부터 바꿔야 한다.
내게 밀뤄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야 한다.
다 내 안에 있어야 한다.
내 안에 있어야 된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의 부족한 모습을 보면 무릎꿇고 기도하는 것에요.
정말 그가 은혜를 받기를 원한다면 금식기도해야 한다.
하루라도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그래 너는 믿음이 없어서 그런 거니까 니는 니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살고 그러다가 그냥 이러고 가자, 이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은 바깥에 나가서도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똑같다.
어떻게 정말 주님이 사랑하라고 하는 그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되겠는가?
그러니까 내가 가정에서부터 내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내 마음을 고쳐먹지 않으면 나는 평생 하나님앞에 합격된 인간관계를 살지 못하는 것이다.
열매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좋은 나무 얘기하고 있지요.
예를 들어서 나는 평생 내 남편도 못 품는다 그러면 나는 평생 못된 나무로 사는 것이다.
바깥에 가서도 그렇다.
안 그런 것 같지만 그렇다.
또 아내를 품지 못한다, 또 한 집에 사는 누구를 품지 못한다면 그럼 나는 평생 못된 나무로 사는 것이다.
여러분 한계를 넘지 못하면 절대로 좋은 나무가 될 수가 없다.
왜 가정에 남편을 통해서 아내를 통해서 인간관계를 통해서 왜 하나님이 나를 힘들게 하시나? 그거 아시고 깨뜨리실라고 그거 내려놓게 하려고 그거 못 놓으면 좋은 나무로 못산다.
열매 못 맺어드린다. 그래서 천국에 가서 무슨 상이 있겠습니까?
내가 믿음이 좋았다구요? 믿음 좋은거 좋아하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안받는다고 그랬어요.
그럼 행함이 있다는 그것은 내 마음 안에서부터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안이 바꿔져야 한다.
내가 내려놓지 않고 끝까지 니는 니, 나는 나, 그렇게 살면 본능적인 삶이다.
그럼 예수님은 왜 믿는가?
하나님이 그만큼 우리에게 기대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변화받아서 정말 열매를 맺어드리기를 원해서 우릴 훈련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훈련속에서 훈련 잘 받고 정말 좋은 나무가 도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안되더라는 것이다.
맨날 그 모양 그 꼴이고, 열매맺는 좋은 나무가 되지 못하고 평생 시간만 흘러가다가 주님 오실 때 다되어서 들림도 못받고 그러다가 원망하고 불평하며 살다가 광야에서 엎드러져 죽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그의 인생이 끝나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은 영성훈련에 오셔서 뭘해야 하는가?
마음을 찢어야 한다. 내려놓아야 한다. 다 내려놓아야 한다.
내가 고집피우고 내가 꼭 해야되는 것은 해야된다 이런게 없어져야 한다.
그게 뭡니까?
내가 힘이 빠지는 것이다.
주님의 뜻이라면 내가 다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한다.
주님의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의 뜻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가장 가깝게 옆에다 갖다 놓으신다.
그게 하나님께서 성경에서 말씀하신 한마디 한마디 말씀하시는 것보다 여러분의 환경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조성해 놓은 그 상황이 정말 하나님의 음성이다. 100% 음성이다.
그 속에서 여러분이 항복되어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 자신도 강의를 하면서 새로운 각오를 해요.
그렇구나, 내가 없어진 마음은 바다와 같은 마음이구나!
껄끄러운 게 없고 하나님이 원하시니까.
그래서 우리는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붙여져 있고 오거나 들리거나 모든 그 영혼들에게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큼 그런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그런 인간관계를 맺어 나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롬15: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서로 받으라 이거는 나만 잘하면 된다.
서로의 상대방의 관계속에서 저 사람은 나를 받지 못하더라도 나는 항상 받아야 한다.
이게 서로 받으라의 의미입니다.
아니 나는 받는데 저 사람이 안 받았어요. 나는 또 안 받기로 했어요. 이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 사람은 아직 나를 받지를 못해요, 왜? 어리니까.
믿음이 아직 연약하니까 강하지 못하니까 아직 육신에 있고 아직 영이 뭔지 모르니까.
그런 자를 데리고 우리가 같이 싸우면 안된다.
서로 받으라의 의미가 뭐냐면 그 사람이 어떻게 하든 간에 나는 계속 받으라는 것이다.
나만 잘하면 도니다. 언제가는 그가 돌아온다? 안돌아온다? 돌아온다.
언제가는 그도 성장해서 돌아온다. 하나님께서 감동케 하셔서 돌아오게 된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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