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서사라목사
대인과 영성2 윤리단계
생명의 삶을 살 때에 많은 열매가 맺어지게 된다.
생명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가 비워져야 한다.
영성훈련에서 주력하는 것이 자아파쇄이다.
나의 못된 자아가 내려놔져야 비워진 내 안에 누가 와서 살게 될까요? 주님이.
안 비워지면 못 들어오시는 것이다.
컵에 물을 반정도 채워놓으면 공기가 반정도 찬다.
우리가 우리 안에 나를 비워내어야 예수님이 그 안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첫째는 비우는 작업을 해야 한다.
영성훈련에서 예수님이 들어와 사는 것을 신령한 집이 지어진다고 말한다.
신령한 집이 지어지는 삶...
자아파쇄를 열심히 하고 나서 예수가 삼위일체 하나님이 내 안에 동거 동락하는 그런 상태가 되어져야 되고 그 다음에는 이기는 생명으로 넘어가야 한다.
생명의 성령의 법을 좇아서 사는 삶, 순종하는 삶, 이 두 가지가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어떤 사람은 요 밑에것만 강조한다.
그러나 아무리 강조해도 내가 비워지지 않으면 내가 하나님으로 살 수 없습니다.
아무리 내가 입으로 나는 죽었다고 입으로만 나는 죽은 사람이라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때에 나도 죽었다라고 말은 하지만 내 안에 내가 비워지지 않고 그 안에 예수가 없는 사람은 아무리 얘기해도 예수가 그 안에서 나올 수가 없어요.
이 두 가지가 다 이루어져야 한다.
여러분이 지금 영성훈련 3년 동안 뭐하는가? 이두가지 하는 것이다.
나를 비우는 작업, 그리고 그 안에 예수님이 들어와 사실 때 내가 생명의 성령의 법을 좇아서 사는 이 두 가지를 하는 것이다.
엡4:22-24
“새 사람을 입으라”
갈4:19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2:20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그러니까 내가 다 비워지고 그 안에 누가 산다는 거에요? 예수님이 산다는 것이다.
갈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그 정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래서 이렇게 그 정과 욕심이 못박은 자들의 삶이 어떻게 나타나느냐면 갈5:22 성령의 열매로 나타난다.
갈4:22-23
“옛사람을 벗어버리라” 이것이 자아파쇄이다.
벗는 훈련을 해야 한다.
“새사람을 입으라” 벗고 입어야 한다.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래서 여러분 자아파쇄 훈련은 벗고 입는 것이다.
나의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는 것이다.
감정, 욕심 이런 것이 자아이다.
주님은 어디 계시는가? 우리 속사람 안에 있다.
우리가 느끼는 것은 바깥에 있는 감정밖에 안 느껴진다.
자아를 내려놓지 않으면.
내가 주님으로 행할 수 있고 주님의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내가 이 올라오는 감정, 자아를 벗지 않고는 이걸 깨트리지 않고는 주님을 결코 만나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감정이 업되어 있을 때에 주님의 마음이 느껴지던가요?
아무리 생각하려고 해도 하나님이 안 느껴지잖아요.
내 안에 있는 감정이 주님을 완전히 싸버린다. 아예 안 느껴진다.
나의 자아를 내놓지 않고는 주님이 느껴지지도 않을 뿐더러 주님이 만져지지도 않고 주님으로 행할 수도 없는 것을 보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내 옛사람의 모습들을 자아파쇄 훈련을 통해서 벗기는 훈련 깨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이게(자아) 없어지고 내 안에 계신 주님이 내가 느껴질 수 있게끔 하는 것이다. 이게 자아파쇄 훈련인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자아파쇄를 시키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느냐?
여러분의 삶에서 모든 문제와 사건을 통해서 여러분을 깨기를 원하신다.
그러니까 나는 이 문제가 왜 생겨서 오늘 또 나는 넘어졌나 낙심만 하고 있을게 아니라 왜 이 사건과 문제를 허락하셔서 넘어지게 하셨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감사가 나오더라는 것이다.
왜냐? 하나님이 나를 드러내서 그걸 고치시기를 원하시니까.
우리는 자아파쇄가 되어져서 그리스도의 형상이 내안에 이루어지길 추구를 가진 자는 모든 문제와 사건을 기회로 보아야 한다.
무슨 기회요? 내 자아가 파쇄될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문제가 생겼다 그런데 감정이 올라 올라고 한다?
그러면 브레이크를 잘 걸어라.
화가 올라 오고 할 때, 감정이 올라올라고 할 때 브레이크를 잘 걸어야 한다.
여러분 모든 문제와 사건속에서 내가 변회될 수 있는 내가 자아파쇄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면 내가 설사 넘어졌다라도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 왜 이 문제가 발생했습니까? 주님 왜 이 사건이 발생했습니까?” 그리고 나의 반응이 어땠고 나는 또 넘어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여기에서 주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물어보면 나온다.
이 문제와 사건속에서 예를 들어서 정말 부당한 일을 당해서 화가 올라왔다면 쏟아서 넘어졌다면 쏟은 게 넘어진 것이다.
쏟은 게 너무 분해서 주님 앞에 나와서 너무 애통하는 것이다.
주님 내 모습이 아직도 이렇습니다. 왜 이 사건이 일어났습니까?
화가 나는 이유가 뭐라구요?
워치만 니가 화를 내는 자는 교만한 자가 화를 낸다고 했다.
화를 내는 자는 내가 교만한 증거가 화를 낸다는 것이다.
그 말이 맞는 거 같다.
교만하니까 화를 내는 것이다. 교만한 자가 화를 낸다.
화를 내고 성을 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내 안에서 왜 화가 나는가를 생각해 보니까 아직도 내가 니보다 옳고 너는 틀리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시비를 가리는 맘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그거 드러내실라고 문제가 생긴 것이다.
아직도 생명의 삶을 살지 못하는 너의 모습을 봐라.
그 다음에 내가 너보다 낫다는 것이다.
이건 진리가 아니잖아요.
우리 주님은 “남을 너보다 낫게 여기라” 말씀하셨죠. 이것이 진리이다.
아직도 이런 마음이 있고 그리고 대접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맘이 있어서 화가 올라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들을 하나님은 처리하시고자 그 문제와 사건을 일으키셨다는 것이다.
그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왜 어저께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며칠 전에 왜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지?
보니까 이런 마음들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드러내시고 처리하시려고 그 문제와 사건들을 일으키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그때는 넘어졌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사용하신 그분들을 미워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길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에 만나면 더 잘 해줘야 한다.
여러분 모든 문제와 사건 속에서 우리는 자아파쇄 훈련받는 기회로 삼자.
우리의 삶이 얼마나 많은 문제와 사건들이 있습니까?
우리의 삶이 사실은 하나님이 나에게 걸어오시는 말씀이더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삶을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와 사건 속에서 내 삶속에서 하나님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뭘 원하시는지 왜 이 사건을 일으키시는지,
하나님의 음성을 문제와 사건 속에서 듣기 시작하면 여러분이 하나님을 아는 지각이, 영적 지각이 단단한 식물을 먹는 자가 장성한자라고 했는데 여러분이 장성한 자의 모습으로 변하여져 갑니다.
왜냐하면 문제와 사건 속에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그리스도의 형상이 내 안에 이루어지까지 나 자신도 해산하는 수고를 하기 때문에 단단한 식물을 먹는 장성한 자의 모습으로 변하여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기도할 때 하나님 음성이 들리고, 물어볼 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이런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많이 말씀하시는 것이 문제와 사건 속에서 여러분에게 말씀으로 걸어오시더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하는 여러분의 눈이 열리기 시작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는 정도가 많이 발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거는 다 놓치고 기도 속에서만 예언하는 거에서만 그런데에서만 병 고치는 데에서만 이런데에서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생각하고 그러면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하나님의 음성을 다 놓치기 때문에 십분의 칠을 다 놓치고 사는 것이다.
주님 앞에 나가서 늘 애통하는 것은 뭘 해야 하는가?
남편이 나에게 잘못해줘서 애통하는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애통해야 한다.
그런 남편을 안아줄 수 없고 그런 남편을 주님의 마음으로 용서할 수 없고 안 되는 나를 놓고 애통해야 하는 것이다.
주님은 아픔을 통해서 여러분을 성장시키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하여 어떤 목적을 갖고 계시는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있다.
예수님은 맏형이다. 그리스도는 맏형인데,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고자 하는 목적, 이 목적이 있으신데 우리는 이 목적 안으로 들어가야 된다.
하나님은 이러한 목적을 가지시고 모든 문제와 사건을 일으키고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그 목적 안으로 들어가야 되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나그네 인생이다.
가만 보면 어제 보이던 사람이 안 보이고, 조금 일찍 가고 조금 늦게 가는 나그네 인생인 것이다. 우리 이땅에 살면서 아옹다옹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우리가 되자.
어던 사람은 우리 인생이 연극이라고 했다.
연극이 마치면 본향으로 간다.
그런데 본향에 돌아갔더니 거지로 산다면 어찌 되겠는가?
여기에서의 인생이 연극하는 삶이다.
우리가 늘 생각하고 살아야 하느냐면 저 본향을 생각하고 이 땅에서 잘 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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