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허상(셋째주3-3) 대인과 영성2
영혼과 영성 본능단계 특징을 다루고 있다.
1) 그 영혼의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서 하늘의 것을 사모하지만 동시에 땅의 것도 추구하고 있다.
그 영혼은 거듭났지만 아직도 세상을 사랑하지만 자아로 살고 있다.
엡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고 사는 것이 진노의 자녀, 사실은 이방인들을 얘기하고 있는데 우리도 예전에는 이방인 가운데 있었다.
그런데 우리를 불러내어 거듭나게 했는데 이전의 모습대로 살고 있더라는 것이다.
옛날에 하던 짓을 고대로 하고 있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이런 행동을 버려야 하는데 이런 행동을 그대로 하고 있다 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엡4:13-14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떼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러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 온전한 사람이 되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이다.
15절도 보겠습니다.
“오직 사랑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성장한 자는 특징이 뭐냐? 안 싸운다.
그냥 넘어간다. 그것은 “관용”이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라 그랬지요.
고린도 전서 13장은 사랑장이에요.
고진도전서 고전13:11을 보겠습니다.
먼저 고전 12:31를 보겠습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가장 큰 은사를 사모하라” 9가지 은사를 모두 말하고서 더 큰 은사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더 큰 은사가 뭐라는 거에요?
더 큰 은사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사랑하기를 사모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고전13:11을 봅니다.
“내가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어린 아이의 일이 뭘까요? 어린 아이의 일이 뭐냐?
어린 아이의 일은 분쟁한다. 싸운다.
범사에 싸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금만 찔러도 싸우려고 하는 사람이 있죠!
성장한 사람은 안 싸운다. 넘어간다. 관용한다.
장성한 자가 된 후에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다고 했다.
이게 왜 사랑장에 나올까요?
성장한 자는 안 싸운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은 때에는 대개 보면 어린아이와 같은 짓을 하고 살아요.
내 싸우고 살고 분쟁하고 산다.
우리가 자아로 살면 싸우게 되어있다.
분쟁하고 시기하고...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보내잖아요.
사도바울이 너희는 아직 어린아이다 라고 했다.
왜냐 분쟁하고 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쟁하고 시기한다면 나는 어린아이인 것이다.
엡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에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옛사람을 벗어버리라는 것이다.
심령이 새롭게 되어져서 의와 거룩함을 따라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고 했다.
진리가 무얼까요?
예수그리스도가 진리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사는 것이 사랑이다.
빌3: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예)교회 청소를 하고 있는데 담임목사님이 보고 있는데 마음속에서 너무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시작했는데 담임목사님이 지나가면서 보니까 막 마음이 기뻐졌다. 이게 누구의 모습일까요? 우리의 모습이다.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은 마음, 아직도 내 안에 처리되지 않은 자아가 꿈틀 꿈틀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성령으로 봉사해라.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라, 자랑할게 있으면 예수로 자랑하라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다. 육체는 선이 나가지 않으니까 하나님으로 행하라는 거에요.
신뢰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하나님으로 행하라는 것이다.
여러분 제가 여기서 영성훈련원의 몇 사람의 강사를 세워봤어요.
여러 의미로 강사를 세워봤어요.
영성훈련 받은 사람중에서 혹시 이분은 되지 않을까 몇 명은 세워봤어요.
그런데 그중에 한분이 서기만 하면 자기 자랑을 하네..
예수님을 높여야 되잖아요.
나의 모자람을 자랑하래잖아요. 나의 약함을 자랑하래잖아요.
강사가 서 가지고 잘 되는 자기만을 자랑한다는 것도 문제가 있는 거에요.
왜냐하면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거든요.
사도바울도 내가 약함을 자랑한다 그랬어요.
약함을 자랑하는 그것이 자기 자신을 바로 보는 증거이거든요.
그래요 안 그래요?
약함을 자랑하는 그가 바로 자기 자신을 알고 있는 자이에요.
그러면 강사도 서서 자기가 실패한 얘기 해야 되요. 안 그래요?
잘 된 얘기도 해야지요. 전부 안 되었다는 얘기도 좀 이상하니까요.
그러니까 보통 5:5라든지 6:4든지 그 정도의 비율을 두어서 잘된 것도 이야기 하고 안 된 것도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어디 가서 뭐했는데 다 어쩌고저쩌고~~~~이것은 자기를 바라보게 하는 거에요.
내가 몇 번을 들으면서 고민을 좀 했어요.
제가 지금 무슨 얘기를 하냐면 우리가 자랑할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어요.
예수로 자랑하라
우리 육체는 나를 자랑하면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없다.
이 세상에서 또 상급을 받으면 분명히 성경은 저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없다고 그랬어요.
우리는 그 말도 심각하게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다 상을 받아버리면 저 하늘나라에서 상급이 없어요.
성경의 말씀이이에요.
그럼 우리는 이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야 되요.
저도 처음에는 막 간증을 하다보니까 어느새 내가 높아져 있는 것 같아요.
간증은 조심해야 하는 것이 해놓고 자기가 높아진다면 거기에서부터 자기는 손해보는 거에요.
무슨 얘기인지 아세요?
듣는 사람은 은혜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자기는 벌써 넘어지고 있는 거에요.
하나님 앞에.
여러분 그런 생각 안 들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생각이 들어야 정상이에요.
아 내가 넘어질 수 있다 이런 생각이 들어야 합니다.
왜냐 내가 남보다 더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 높아지는 게 좋으니까 제 말이 안 들어오죠?
그 누구인가요?
하버드대학 신학교 교수가 있었어요.
20세기-21세기 이 때에 가장 영성적인 사람이고 신학교 교수 신햑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사람이 있어요. 헨리나우웬
이분이 책을 썼는데 이 분의 책을 읽어봐야 해요.
“그리스도의 길과 세상의 길” 책을 썼다.
그 교수직을 포기하고 영국의 정신박약아 “죤”이란 아이를 돌보는 일을 했다.
거기에서 그의 영성이 피어나기 시작해요.
그가 그리스도의 길과 세상의 길을 썼다 말이에요.
그리스도의 길은 하향길이이에요. 하향길.
세상길은 상향길이다.
세상의 길은 내가 높아지는 길이고 그리스도의 길은 낮아지는 길이다.
내가 그리스도의 길을 택하고 사느냐 내가 세상길을 택하고 사느냐 그게 문제가 되지요? 그죠? 우리에게 문제가 된다 말이지요.
이 책은 은혜가 되는 책이에요.
나는 과연 상향길을 택해서 살고 있는지 하향길을 택해서 살고 있는지 점검해 보길 원합니다.
그분이 택한 길은 유명한 교수, 세계적인 교수를 택하여 산 것이 아니라 이름 모르는 정신박약아 “죤”이라는 아이를 돌봐주러 들어갔다니까요.
그러면서 거기서 다시 하나님을 만나기 시작했어요.
거기서 그의 영성이 피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많은 책을 냈어요.
여러분 우리가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내가 높아지고 있는 길인지 내가 낮아지고 있는 길인지 순간순간 장기목표, 단기목표 오늘 하루를 살면서도 나는 누구 앞에서 높아지려고 하지 않았나? 그거 점검하며 살아야 합니다.
두 번재 특징은 자기를 위해서 산다는 거에요.
여러분 제가 영성 훈련 처음 딱 왔을 때 저는 제가 참 잘난 줄로 생각하고 있었지요. 전도사였고 신학교 다녔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고,
그런데 영성훈련에 들어왔는데 어떤 목사님이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엉뚱한 소리를 하는거 같아요.
무슨 소리냐면 ‘하나님 아버지 이 자매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내가 속으로 내가 뭐가 불상한데...그랬어요.
아직도 자기가 허상인지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라고 기도해 주셨어요.
저는 거기서 네가 망치로 뒷덜미를 딱 맞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나는 세상만 허상인줄 알았는데 “내가” 허상이라는 거에요.
너무 기가 막힌거 아니에요?
내가 주의 길을 간 것도 세상이 허상인줄 깨달아져서 간 거에요.
세상이 허상이라는 것이 깨달아져서 주의 길을 갈 수 있었어요.
그런데 구분이 하신 얘기가 내가 허상이라는 거에요.
내가 이 말씀을 딱 듣는 순간에 나는 망치로 내 머리를 콱~~ 한 대 얻어맞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니까요.
내가 그렇게 충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저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라구요.
내가 그 때 기도받을 때 내가 분명히 망치로 한 대 얻어 맞은 건 사실은데 아니 근데 저 말이 도대체 부슨 말이야? 몰랐어요.
“내가 허상이라니?”이게 무슨 뜻인 줄 모르겠어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면 그게 결국 나를 위해 산다는 거에요.
제가요 여러분이 들으면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제가 하나님 앞에 은혜받고 하나님 앞에 기도기를 ‘하나님 100만 명만 구원하게 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했어요. 그 속에서 100만명! 100만명!
그런데 어떤 부흥강사가 와서 여러분! 여러분의 꿈을 두 배로 가지라 해서 200만 명으로 했다가 또 어떤 부흥강사가 와서 ‘여러분의 꿈을 더 크게 크게 가지 십시오’ 라고 해서 5억 명을 구원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니까요.
그래서 당신의 꿈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물으면 5억입니다. 그랬어요. 진짜니까.
그런데 그 사람이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돈으로 알아듣고서 그랬어요.
나는 영혼을 말 한 건데요.
근데 그게 내가 꾼 꿈이지 하나님이 주신 꿈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그 꿈 안에서 내가 잘되고 싶다. 내가 뜨고 싶다. 내가 유명해지고 싶다 이런게 다 섞여 있다 라는 거에요.
여러분 이게 다 허상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게 허상인지 모르고 산다는 거에요.
내가 마음만 먹고 기도만 하면 될거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안잖아요.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
아무리 그것을 놓고 기도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되겠어요? 안되겠어요?
5억을 놓고 기도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되겠어요? 안되겠어요?
안 되는 에요. 그게 허상이라는 거에요
그게 나를 섬기는 것이라는 거에요. 나를 섬기는 것.
결국은 나를 섬기는 그것이 허상이라는 거에요.
결국은 육신을 섬기는 그것이 내가 유명해지고 싶고 재가 존경받고 싶고 내가 잘했다는 얘기 듣고 싶고 이게 다 허상이더라는 것이에요.
저는 그 목사님이 기도할 때 그것이 들어오지 않았어요.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모르겠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영성 훈련 받으면서 나 자신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고 허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 줄 아십니까?
여러분 스스로가 여러분이 얼마나 허상인지 아세요?
저는 정말 이 세상만 허상인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허상이 나라는 것이에요.
여러분도 이것 발견하셔야 되요.
내가 허상인걸 발견하면 하나님은 거기에서부터 시작하셔요.
내가 허상인줄 발견하면 거기서부터 하나님이 일하신다.
허상이에요.
그래서 이 시대에 가장 큰 우상이 무엇인가? 자신이라잖아요.
자신이 높아지고 싶고 대접받고 싶고...내가 허상이에요.
나를 위해 살면 안 된다는 겁니다. 나를 위해 살지마라,.
나는 오로지 무익한 종일뿐이고, 정말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 앞에.
여러분 자신이 아무꺼나 되는줄 아세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음안에서 깨달아지는 거에요.
내가 허상인 것이 깨달아지는 사람은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
나에게서는 선한 게 나올 수도 없고.
그래서 여러분 예수를 믿어도 자신을 섬기는 사람이 있어요.
정말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내가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어도 자기 자신을 섬기면 아무것도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내가 허상이다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실상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 다 허상이다.
꿈꾸는 것이고, 아무짝에도 쓸모없어요.
그래서 여러분이나 저나 우리가 가야 할 길은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야 되요.
나를 위해 사는 것만큼 부질없다는 것을 알아야 되요.
하나님은 뭘 받으시냐?
하나님은 순수한 거, 순수한 헌신을 받으신다.
순수한 마음과 동기, 깨끗함을 받으신다.
하나님은 어떤 그릇을 쓰시는가? 비워지고 깨끗한 그릇을 쓰신다.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천하냐? 그런게 아니라 천해도 안이 깨끗한 것을 쓰신다.
* 영의 계발
고전2:10-13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이 아니면 알 수 없다.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한다.
성령으로 이것을 보여주셨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신다.
성령이 하나님의 뜻을 아시는 것이다.
성령님이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는 것이다.
영의 계발
인간은 육신과 영으로 되어 있다. 이분법이다.
육신은 혼(지정의, 마음=생각)과 육체
하나님 앞에 서는 나는 영이다.
이 두 개가 합쳐져서 사람이다. 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 나는 영이다. 육신은 벗고 갈 것이기 때문이다.
영안에는 성령이 와 계신다. 성령이 역사하신다.
성령이 우리 영에게 알려주신다. 왜냐 영과 영이 교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일들을 영으로 받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려면 모든 것을 영으로 받는 훈련을 해야 한다.
영으로 생각하고 영으로 느끼고 그래야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영과 영이 교통하기 때문이다.
그라나 사람들은 육체로 알려고 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려면 나의 영과 교통해야 한다.
내 육체가 어떻게 육체로 영이신 하나님을 만납니까?
가끔 하나님은 은사를 사용해서 우리의 병은 낫게 하신다.
그런데 그것을 교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를 쓰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냐면 사람들은 넘어졌다고 하면 하나님을 만나고 왔다고 하는데 그것은 교통이 아니다. 나에게 현상이 나타났을 뿐이다.
방언은 현상일 뿐이다. 현상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교통이 아니다.
내 육체가 경험한 것을 내가 하나님과 교통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런데 한번 넘어지면 한번 만났고, 두 번 넘어지면 두 번 만났고....
그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혼동하는 게 뭐냐면 우리 육체가 잠깐 경험한 것을 내가 하나님과 교통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잘못하면 현상만 쫓아다닌다.
현상에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베니힌 집회 많이 쫓아 다녔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은 어떤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가 많이 넘어져봤어요. 많이 쫓아다녀 봤어요. 넘어져도 아무것도 없어요.
내가 넘어져도 그냥 넘어졌을 뿐이었다. 말씀을 가져온 것도 아니었다.
허전하고 허황되었다.
하도 그런데만 쫓아다녔더니 어떤 목사님이 ‘내가 서전도사님의 말로를 지켜보겠습니다.’ 그랬어요.
어쨌든 이것은 현상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교통이 아니다.
영과 영이 교통하는 것이다. 내 육체가 교통했다고 안 해요.
내 육체를 잠깐 썼을 뿐이지.
그러면 교통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영과 영의 교통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폐증애는 어떻게 된 아이인가?
말도 잘 못하고 혼자 있기 좋아하고 기능을 다 안쓴다.
혼자 갇혀서 지낸다.
영적 자폐증도 비슷한 증상를 보여요.
그래서 우리는 영의 계발이라는 말을 써요.
왜냐하면 분명히 나는 영의 존재인데 영을 안쓰고 분명히 영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영을 안 쓰고 맨날 육신만 쓰는 거에요. 이것을 또 다른 말로 영적 자폐증이라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영을 쓰지 않고 있어요.
근데 여러분이 정말 나는 참 “나”는 영인 것을 알고 모든 상황에서 영으로 알고 영으로 느끼고 영으로 반응하고 영으로 듣고 영으로 보고 이런 훈련을 지금부터 해야 됩니다. 이게 계발입니다.
계발은 있는 것을 찾아내어 쓰는 것이다. 민감함이다.
계발은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계발도상국 하면 뭡니까? 없는 것을 찾아내는 거에요.
계발은 있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영의 계발은 나의 안에 있는 영을 깨우는 작업이에요.
내 육신이 보고 말하고 느끼고 하잖아요.
내 영도 똑같은 기능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또 하나의 내가 있다잖아요.
영이 보고 듣고 느끼고 말한다는거에요.
내가 이제는 내가 영으로 보고 영으로 듣고 영으로 말하는 훈련을 하자는 것이다.
영을 깨우는 것. 영을 깨워야 한다.
영의 기능에는
첫째 양심이 있다.
두 번째는 직관이 있고
세 번째는 영교가 있다.
이런 영의 세가지 기능을 통해서 보고 듣고 느끼고 한다.
앞으로는 영교, 교통, 교제, 기도할 때 영교하죠!
이런 영의 기능을 통해서 영을 계발하기 시작해야 되요.
영으로 듣고 영으로 받고 영으로 반응하고 영으로 말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게 영의 계발이에요.
기도하겠습니다.
아버지! 주여! 감사합니다.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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