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라목사님 바른영성훈련

영혼과 영성4(생명단계) 둘째주(2-1)예수로 사는 단계가 생명단계이다.

하늘이슬 2018. 5. 2. 16:36

영혼과 영성4(생명단계) 둘째주(2-1)

 

모든 문제와 사건은 나를 위해서 터졌다.

하나님께서 그 문제와 사건속에서 나에게 뭘 원하시는지 알아서 내가 깨트려지는 것이 우선이다.

 

영성훈련에서 사용하는 특수용어들이 있다.

실제가 된다.

1. 조명이 실제가 된다.

성령이 내게 조명해 주시려면 내가 비워지지 않으면 안된다.

내가 너무 많은 상태에서 성령께서 나를 조명해 주신다. 그럴 리가 없다.

영성은 버리고 채우는 훈련이라고 했는데 나는 자꾸 버리고 비우는 훈련을 해야만 내 안에 성령께서 나를 자유롭게 조명해 주시는 것이다.

조명이라는 것이 무엇이냐면 알게 해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가 보이고, 문제와 사건 속에서 하나님의 의도와 목적이 금방금방 깨달아지는 것이다.

내가 버려지지 않으면 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버려진다는 것은 크게 세가지가 있다.

내 욕심, 세상을 추구하는 마음, 이게 버려져야 그리고 내 감정 생각이 내려놔져야 조명이 된다.

이런 것들이 아직도 내 안에 많다. 그러면 성령께서 내 안에 조명해 주실 수가 없다.

비춰지지가 않는 것이다 그게 막혀갖고. 덮혀갖고.

그러니까 내 욕심을 자구 비워야 되거 세상을 추구하는 마음을 비워야 하고 내 감정과 생각을 내려놔야만 하나님의 뜻이 보이고 하나님의 목적이 보이고 그렇다는 것이다.

 

사단은 뭐라고 하냐면 니 본능대로 살아라, 니 감정대로 살아라 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하냐면 그렇게 살면 반드시 사망이라는 것이다.

사망이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무엇이냐?
지금 니 생각과 감정을 내려봐라는 것이거든요.

주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따라오라고 하잖아요.

내 감정속에 묶여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이 안 들린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에게 잘 조명해 주시길 원한다면 우리는 내 감정에 묶여있지 말아야 하고 빨리 내려놔야 해요. 내 생각도 내려놓고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내가 그것을 하겠습니다 이런 마음이 되어야 한다.

 

2. 관상적인 삶이 실제가 된다.

관상은 하나님을 통해서 나를 보고 하나님을 통해서 이세상을 보고 하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보냐면 나를 통해서 하나님을 본다.

나라는 것이 얼마나 못되었는지 알면 나를 통해서 하나님을 볼라고 그러면 보여지지가 않아요. 그건 왜곡된 하나님이에요.

그리고 또 우리는 아네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을 볼라고 그러잖아요.

우리에게 그런 오류와 실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에게만 역사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것을 통해서 역사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좁은 나를 통해서 하나님을 볼라고 그러잖아요. 그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나를 넘어서서 온세계 충만하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나의 바깥에서 더 크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요?

하나님이 나에게 잘해주시나 못해주시나?

물질적 축복을 받나 안 받나? 나에게 물질적인 축복을 주시면 좋은 하나님이고, 나에게 좋은 사람을 보내주면 좋은 하나님이고...그게 아니잖아요.

이렇게 우리가 인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아니요.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오히려 나 바깥에 게신 하나님이 더 크시고 더 주관하고 계시고 그 분을 통해서 나를 보라는 것이다.

그분을 통해서 그분을 알게 되고 우리는 나를 통해서 하나님을 보려고 하잖아요. 이것은 관상이 아니다.

이것은 오히려 잘못된 하나님을 믿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내 인생을 축복해 주시고 잘 풀어주면 좋은 하나님, 안 풀어주는 것 같으면 나쁜 하나님,

그런가요?
아니잖아요.

물론 좋은게 좋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가 갈 수 없는 그 강을 건너게 하기 위해서 지금 나에게 쓰라린 아픔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 가운데서 내가 하나님에게 생선을 달라고 했는데 설사 나에게 지금 뱀을 주셨을지라도 주신 것처럼 느껴진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알아야 하느냐면 정말 크게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멘

그런 관점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

그렇구나.

내가 아픈 그때가 하나님의 손길이 나에게 지금 와 있구나 알 수 잇는 것이다.

그렇게 아하 하나님이 나를 불 가운데에 넣고 나를 다루고 계시는 구나.

정금을 만들려고 하시는 그 하나님의 열심, 그 하나님의 사랑, 다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 사랑앞에 철저히 깨닫고 많이 울게 될 것이다. 많이 울어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다루시는 그 손길 앞에 많이 울어야 한다.

감사하므로.

그래서 여러분 관상적인 삶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바라보는 내 삶 구석구석마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이 거기서 보여야 한다.

하나님과 내가 같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보여야 한다.

하나님을 보고 사는 것이다. 순간 수간 매 순간 하나님을 보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삶이 실제가 되어야 한다. 생명적인 삶이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것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묻는데,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하는데 나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물으면 잘 안 잡힌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기도의 자리에 앉고 또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

하루에 50번식 묻는 연습을 하라.

그런데 나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자가 있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자가 있다.

이 생명 단계에서는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자로 그렇게 바뀌는 것이다.

나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에는 왜곡되어져서 들려질 수 있다.

때로는 사단이 역사할 수 있다.

왜냐면 사단은 우리의 생각에 생각을 집어넣기 때문이다.

그들이 활동하는 장소는 우리의 생각이다.

우리의 생각만 바꾸어놓으면 사단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동의만 되고 인정만 하면 행동은 생각에 따라 움직이잖아요.

내가 사단의 생각에 동의를 하느냐 하나님의 생각에 동의를 하느냐 그건 우리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의 삶속에 관상적인 삶이 평일화가 되어야 한다.

관상적인 삶이 늘 계속되는 삶, 이 삶이 생명단계에 있는 훈련이더라는 것이다.

 

3.합일

이런 말들이 아면 표현하기 힘들기대문에 사용된다.

합일이라는 말은 귀속이라는 말이다.

부부가 오랫동안 따로 떨어져 살다가 결혼해서 오래 살다보면 서로가 서로에게 귀속되는 것을 보게된다.

내가 저 사람의 싫어하는 행동을 어느새 따라하고 있고 저 사람은 어느새 나의 먹는 음식을 안좋아했는데 어느새 먹고 있고 이렇게 서로에게 귀속되는 것을 보게된다.

이게 합일의 의미이다. 귀속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저는 생선과 두부를 안 먹거든요.

그런데 어느새 먹고 있고,

남편은 소고기와 닭고기를 안 먹는데 가끔씩 먹게 되었다.

주님과도 우리가 주님에게 귀속되는 것을 합일이라고 한다.

어느새 그분의 생각이 내 생각이라고 되어 있다.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께 물으면 하나님이 거꾸로 저에게 물어요.

나는 하나님께 물었는데 하나님은 거꾸로 니는 어떻게 하고 싶으냐?” 이렇게 물어요.

그럼 아하 저의 생각은 이런데요 하면 그럼 그렇게 해라 하신다. 이게 뭐냐면 이것을 귀속이라고 생각한다.

어느새 하나님의 생각과 감정과 그 모든 것들이 나화가 되어 있다.

하나님께 뜻을 물으면 자기와 생각이 똑같은 것을 아시니까 도리어 나에게 그 뜻을 묻는 것이다. “넌 어떻게 생각하니그것을 하나님 모르실 리가 없거든요.

이런 귀속이 합일 이런것들이 생명단계에서는 실제적으로 일어난다.

저도 아직 멀었어요.

그런데 이런 생명적인 것을 경험하고 더 많이 경험하게 되더라는 것이다.

이 생명 단계가 얼마나 깊고 넓고 높은지 모른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는 생명단계훈련은 하나님의 생각이 내 생각으로 느껴지고 하나님의 감정이 내 감정으로 느껴지고 훈련을 하다보면 어느새 주님이 느껴지는 게 내가 느껴지고 있어요. 이게 귀속이에요. 합일이에요.

근데 그게 구문이 가느야?
이건 내꺼고 이건 주님꺼고 근데 이게 구분이 안 갈 정도로 합일이 되어 있어요.

근데 나중에 보면 그게 하나님의 마음이다.

여러분 여러분이 이런 상태에 가면 먼저 경험해 본 사람이 말해 줄 수 있다.

여기 가면 이미 하나님의 감정이 내감정이 되어 있기 때문에 나인지 하나님인지도 그 상태에서는 잘 모른다.

하나가 되어 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면 이게 하나님의 감정이라는 것이 알아진다.

그리고 그러고서 평범하게 살아요.

물론 넘어질 때도 있고 자빠질 때도 있고 그렇지요.

 

그래서 생명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철저하게 나를 비켜드리지 않으면 안된다.

비켜드려야 한다.

철저하게 나를 비켜드려야 한다.

나를 비켜드린다는 말이 무슨 말이냐면 내 삶에 있어서 주인의 자리에 누굴 모셔드려야 하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라.

나의 주인은 주님이시다.

주인의 자리에 나를 비켜드리고 주님을 놓고 사는 삶이 생명적인 삶이더라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얼마만큼 생명적인 삶을 살지를 못하는가?

나는 왜 생명적인 삶을 살지를 못하는가?

아직도 내가 주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 삶에 있어서 내가 아직도 생명적인 삶을 아직도 못사는 이유가 딱 그만큼 내가 주인되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 이런 말들이 아프지 않습니까?

나는 왜 아직도 나의 삶에 생명적인 삶이 안 나타나나?

그 이유가 아직도 그만큼이나 많이 내가 아직도 주인되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에게 아픔으로 다가와야 되요.

그래야 내 자신에게 애통할 수가 있어요.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하기 위해서 끌고 가시는데 우리의 인생 방향이 그렇게 끌고 가시는데 그런 방향으로 정해져 있는데 아직도 나의 모습은 예를 들어서 그렇다면 그만큼 아직도 내가 나의 삶에 있어서 내가 주인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더라는 것입니다.

생명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가 주인된 삶을 내려놔야 된다는 것이다.

나의 주인은 주님이라는 것이다. 할렐루야!!!

여러분이나 저나 하루속히 이 생명적인 삶, 풍성한 생명적인 삶, 그런 삶으로 나아가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생명단계는 생명으로 살기위한 시작의 단계이다.

착각하는 게 있다.

3년 훈련 받으면 생명으로 사는 단계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때부터 시작이다.

그럼 3년 동안은 뭐하냐?

나를 버리는 훈련하는 것이다. 나를 내려놓는 훈련하는 것이다.

3년 다 마치고 나면 하고 이제 나는 안해도 된다. 그게 아니다.

그대부터 시작인 것이다.

그때부터 무언가가 잘못된 것이고 무언가가 잘 된 삶인지 그때부터 조금 알고

그때부터 내가 이제 신부라는 삶에 도립하는 시작점인 것이다.

이론은 끝나고 실제적인 삶에서 시작의 단계인 것이다.

생명의 시작도 안한 시작의 단계인 것이다.

사실 그 생명을 우리 안에 갖고 있어요. 그런데 내가 비키지 못해서 내가 얼만큼 내가 비켜주냐 또 열가지 사건속에서 내가 볓번은 비켜주냐 이것이다.

자아가 두꺼우면 비켜주지 못한다.

일단은 자아처리를 먼저 해야 한다.

자아파쇄. 그 다음에 선택이다.

내 자아가 두꺼우면 선택하지 못한다.

나로 살 것인가? 하나님으로 살 것인가?

이 선택의 자리에서 자유롭게 내가 선택하려면 자아가 파쇄되어야 한다.

자아의 껍질이 너무 두꺼워서 그 선택의 자리에 있지도 못한다.

문제와 사건이 생길 때 하나님이 나를 부수기 위해서 이 사건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으시고 우히려 감사하시고 한걸음 나아가서 더 좋은 일을 하자.

옳고 그름을 떠나서 하나님 나라에 무어가 득이 될까 그런 자들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