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라목사님 바른영성훈련

물질과 영성 II 셋째주 3-2 영적 문둥병을 치유하려면

하늘이슬 2018. 11. 29. 16:26

물질과 영성 II 셋째주 3-2

 

영적 문둥병을 치유하려면

 

여러분들과 같이 열왕기하 58절에서 14절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물질과 영성 생명단계 하려고 했는데 주제 강의부터 하도록 하겠습니다.

 

열왕기하 58절에서 14절 말씀

다같이 한 목소리로 한번 읽어 내려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아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오늘 열왕기하에서 말하는 정말 이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이 고쳐진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의 영적 문둥병들이 고쳐지길 원합니다.

날마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죽기를 원하고 또 사랑하기를 원하며, 미워함이 없고 증오함이 없으며, 정말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자유함을 얻으며, 정말 우리를 통하여 일하시고자 하는 그 하나님을 내가 받으며, 그분을 나를 통하여 통과시키며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우리 주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내 생각과 내 마음과 내 뜻과 모든 것들을 내려놓게 하여 주옵시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쫒아갈 수 있도록 우리 주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사옵고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오늘 열왕기하 5장에 나오는 얘기는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이 들었잖아요.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이 들었는데 그 집에 있는 계집종의 얘기를 듣고 이 나아만 장군은 이스라엘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 문둥병이 나은 이유는 요단강에 가서 어떻게 했어요?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금으로 말미암아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이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고 해서 사실은 그 병을 고쳐주신 분은 누구입니까? 그렇죠. 하나님이지요.

하나님이 고쳐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하면 이 하나님보다도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더 초점을 둘 수가 있고, 우리가 잘못하면 하나님보다도 요단강에 있는 물에 더 초점을 둘 수가 있는 그런 상황들이 또 발생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확하게 알아야 되는 것은 질병을 고쳐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그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 하나님의 사람이 없으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물론 우리가 영적으로 어릴 때, 영적으로 어릴 때는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어린 아이 모습일 때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평생 그렇게 산다면 나는 언제까지라도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난다. 이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내가 어린 아이의 모습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하나님을 내가 만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을 기도의 자리에 앉으라, 앉으라 하는 이유가 하나님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 할렐루야.

여러분 여러분에게 왜 기도를 강조합니까?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가 있는 거에요.

어린 아이는 혼자서 기도를 못해요. 혼자서 하나님을 만나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1-2년이면 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3년 된 고린도교회 보고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어야 할 때가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마땅한데, 선생이 될 시기인데 아직도 초보를 닦아서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될 것이냐 그렇게 책망을 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루속히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는 이 모습에서 빨리 벗어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

장성한 자가 되어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러려면 기도의 자리에 앉아서 내가 하루에 몇 시간씩 1시간 내지 3시간씩 방언기도하면서 만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내가 직접 만날 수가 없고 또 하나님의 음성도 제대로 안 들리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결국 우리가 찾는 것은 하나님인데, 하나님을 직접 만나자는 것입니다. 직접.

많은 사람들은 엘리사를 주목합니다. 그렇잖아요? 엘리사를 주목하잖아요.

그리고 엘리사를 떠받듭니다.

그런데 이것이 엘리사는 너무 정말 괜찮은 사람이 분명한 것이 뭐냐면 우리의 멘토가 될 만한 자질이 뭐냐면, 엘리사는 나아만으로 하여금 자기를 찾아오게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게 합니다. 하나님을 줍니다. 하나님을 주잖아요.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찾아오게 하는 게 아니라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아만이 자기 나라에 돌아가서도 이스라엘에 있는 하나님을 믿고 또 공경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뭐냐? 그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뭐냐면 내가 가르치는 자리에 있다할지라도 인도하는 자리에 있다할지라도 나는 우리는 중매쟁이라는 거에요. 중매쟁이.

중매쟁이가 뭐에요?

그들로 하여금, 그들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끔 나를 주목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나님을 주목할 수 있도록 그렇게 인도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될 일이에요.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자기를 주목하게 만들고 그런 일들이 많이 일어나죠.

그 다음에는요.

여러분 이 요단강 물,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서 요단강물에 가서 나아만을 일곱 번 몸을 담그라 그랬어요.

많은 사람들은 이 요단강물이 효력이 있다고 해서 요단강물을 퍼 와가지고 자기 몸을 씻는다할지라도 하나님이 역사하지 아니하면 물에 힘이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에게 힘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많은 실수가 어디서 일어나냐면요?

한국의 어떤 분을 보면 어디 있는 물이 효과가 있더라. 효력이 있더라. 한번 두 번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질병이 나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 물이 무슨 요술을 부리는 물같이 그 물 자체가 어떤 질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해서 물을 팔고 예를 들어서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개념이더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물이 병을 고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고치지요. 할렐루야!

잘못된 인식 속에서 막 갖고 와 가지고 보물단지처럼 하나님은 어디로 갔는지 없어지고 물이, 하나님은 어디로 갔는지 없어지고 그 사람이 하여간 미신이라고 하잖아요. 물 떠놓고 나무 밑에 물 떠놓고 비는 것처럼, 미신과 같은 그런 식으로 우리가 뭘 믿는다고 한다면 우리가 잘못된 것이라는 겁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을 기억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면 물이 아니라 진흙을 이겨서 발라도 낫게 하시고,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면 나뭇가지를 던져서라도 그 있는 독을 없애게 하셔서 먹게 하시고, 하나님이 하셔야 하는 거에요. 그 나뭇가지가 힘이 있고 효력이 있고 물이 효력이 있고, 이런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사람도 아니고 물도 아니고 나뭇가지도 아니고 오직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인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고친 분은 물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하나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믿고 따라가면 승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여러분 참 이것은 제가 예를 들어서 이 말씀들이 약이 되길 원합니다.

어떤 한 사람을 비난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좀 더 잘되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측면에서 말하는 겁니다.

우리에게 오는 모든 질병은요, 우리에게 오는 모든 질병은 첫째는 죄 때문에 옵니다. . 그럼 나는 죄가 없는데요. 죄를 기억해 낼 수 있으면 너무나 좋은 것이지요. ? 그 죄만 회개하면 고침을 받을 거니까.

두 번째는 부모의 죄 때문에도 옵니다. 부모의 죄.

그래서 어떤 사람이 나와서 이 사람이 이렇게 된 것이 부모의 죄 때문에 그렇습니까? 본인의 죄 때문에 그렇습니까? 물었을 때에 이 사람 죄 때문도 아니고 저 사람 죄 때문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다고 말씀을 했지요.

그래서 세 번째를 보면 금방 얘기한 것처럼 어떤 연단의 목적이지만 또 어떤 한 면으로 보면 연단의 목적으로 올 수도 있고 깨닫게 하시기 위해 올 수도 있고 그다음에 결국은 깨달아서 하나님의 어떤 그 질병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 또 쓰임받기 위해서도 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우리가 다 이것이 문제가 되었었더라면 예를 들어서 죄가 문제가 된다, 그러면 죄만 찾으면 그 죄만 철저히 하나님 앞에 눈물 뿌리고 회개하면 나을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결국은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해결하셨다는 겁니다. 저가 채찍을 맞음으로 너희가 나음을 얻었노라. 할렐루야!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39대의 채찍을 등에 맞아 주셔가지고 뼈가 다 드러나기 까지 다 맞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미 질병을 위해서 우리에게 있는 육체의 질병을 위해서 그분은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을 정말 믿음으로 받아드릴 때에 그 질병은 분명히 나을 수 있을 것을 믿습니다.

주님이 하신 거에요. 다 여기서 자기의 몸을 못 박으시면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래서 질병에 낫기를 구하는 자는 믿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음을 행사해서 내 몸을 위해서 주님은 이미 다 이루신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그래서 그 악한 영들이 물러가고 또 질병이 나음을 입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죄가 있다면 회개하시고.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 나아만 장군의 이 문둥병을 보면서 여러분 참 이게 희한한 것은 성경에는 이 문둥병, 몸에 있는 문둥병이지만 이것을 영적으로 해석을 하면 문둥병은 희한하게도 성경에는 보면 영적으로 죄를 지을 때 그 몸에 문둥병이 발하기도 했고, 또 이 문둥병은 영적으로 보면 육체적인 문둥병이기도 하지만 영적인 문둥병을 이야기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 성경의 많은 일들이 영적인 비유가 많아요. 실제로 일어난 일이지만 그걸 영적으로 해석해서 영적으로 보면 정말 그 안에도 참 우리가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그런 비밀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나아만 장군의 그 육체적인 문둥병이 어떻게 보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의 영적인 문둥병을 말할 수도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 영적인 문둥병을 나아만 장군은 어떻게 고쳤느냐? 어떻게 고쳤느냐?

어떻게 고쳤습니까?

나아만 장군이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와서 그냥 갈라고 그랬는데 그냥 가려고 그랬잖아요? 우리나라의 물이 더 좋다 뭐 요단강물만 좋으냐? 우리나라 물이 더 좋은데 왜 내가 여기에서 일곱 번 몸을 담그냐? 하고 갈라고 그랬잖아요.

그러나 그 옆의 사람들의 말을 듣고 귀가 열려있는 거죠. 들을 귀가 있는 거죠? 나아만 장군은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었어요. 아무리 얘기해도 못 듣는 귀가 있어요. 들을 귀가 있는 자는 그 말에 순종해서 요단강가에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그라 하는 말에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그 문둥병이 깨끗하게 나아진 줄로 믿습니다. 그 근원까지 다 말라버린 거에요.

근데 그 문둥병이 여섯 번까지는 안 나았다가 마지막에 일곱 번을 담갔더니 근원까지 말라버렸다는 것입니다.

저는요 하나님께서 하시면 정말 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요.

제가 이번에 선교, 이번에 선교를 나가려고 그랬는데 못 나가게 되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한테는 더 좋은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여러분한테 충실하라고 저에게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아서 못 나가게 되었는데 그 문제가 뭐냐? 재정적인 상황이 문제가 생겼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못 가게 하시나보다. 그래서 어쨌든 가기 위해서 예방주사를 맞았잖아요. 예방주사를 백신을 다섯 개를 한꺼번에 맞았더니 그랬더니 그날은 괜찮은데 그 뒷날 온 몸이 아프기 시작하고 열이 팍팍팍 나고 사경을 헤맸어요. 사경을. 아 그러다가 정말 의식이 없으면 가는 구나. 그럴 정도로 죽기 전에 사람들이 이렇게 느끼겠구나 할 정도로 정말 제가 많이 아팠어요.

근데 화요일 저녁에 7시인데 화요일 저녁에 영성훈련 있잖아요.

620분에 딱 일어났어요. 7시에 강의니까.

620분에 딱 일어나서 7시에 찬양하고 강의를 하는데 너무 깨끗해지는 거에요. 하나도 안 아픈거야. 내가 그걸 경험하면서 이야~ 하나님이 낫게 해 주시면 이렇게 될 수 있는 거구나. 그렇게 하루 종일 사경을 헤매다가. 그걸 내가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능력이 이렇게 놀랍구나. 제가 한 것은 없어요. 앞에 서서 강의했을 뿐이에요. 정신도 사실 좀 몽롱하더라구요. 내가 지금 이 말을 해야 하는지 안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연결이 되는지도 안 되는지도 모르면서 다 했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안 아프게 하시는 거에요. 그 뒷날부터 거의 안 아픈 거에요.

여러분 이게 뭐냐면 이것도 마찬가지야. 하나님이 하시면 일순간에 깨끗하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하시는 거란 말씀입니다.

근데 여기서 가만히 보면 나아만 장군이 그 자기 집에 있는 계집종의 얘기를 들었어요. 나을 수도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와서 갈라고 그랬는데 또 그 옆에 있는 시종들의 얘기를 듣고 뭘 하라고 그래도 안 하시겠습니까? 또 물에 가서 몸 일곱 번 담그라 그랬는데 왜 그걸 못합니까?

그 얘기를 듣고 가서 담갔더니 결국은 깨끗함을 받고 그는 돌아갑니다.

그 하나님을 찬양하잖아요.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보면 나아만 장군의 그 어떤 영적 추구의 모습을 볼 수가 있죠. 영적 추구.

하나님을 찾아가는 영적추구의 모습을 볼 수가 있죠. 찾아가서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서 나와서 막 대접해 주고 할 줄 알았더니 문도 안 열고 하는 얘기가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담그랍니다. 그 얘기를 했더니 화가 나서 갈라고 그랬는데 다시 이제 그 말을 듣고 결국은 복종을 해서 승리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영적 추구가 때로는 그만두고 싶다. 너무 힘들다. 영성훈련 받는 것도 무슨 3년이야? 1년만 하다가 말지. 그렇잖아요.

나는 받을 만큼 받았는데 알거는 다 알았고 그만하자. 혹시 그런 마음 드는 사람이 있으면 잘 못되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누가 승리하냐?

끝까지 가는 자가 승리해요.

저는 10년 이상 영성훈련을 내가 받기도 하고 가르치고도 있지만 지금도 하나님이 나를 다루시는 것을 봅니다. 할렐루야!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는 이 영적추구가 한번으로 끝나는, 1년으로 해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 영적추구는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 갈 때까지 지속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 나라 갈 때까지.

그런 자는 어떻게 하냐? 반드시 승리합니다.

왜 승리 못하냐? 가다가 도중하차 하니까 승리를 못하는 겁니다.

내가 변화받고 싶어서 왔어요. 정말 나 변화받고 싶어서 왔어요.

근데 도중하차하면 이 날을 볼 껀데, 이 날을 볼 껀데, 이 날을 보지 못하고 도중하차해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돌아가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해야 될 것은 뭐냐면 끝까지 추구하는 거에요.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는 야곱을 보죠. 야곱.

야곱은 정말 속이는 자였어요.

속여서 뭔가를 이루어보려고 하는 자였어요.

에서도 자기 형도 속이고, 죽어가는 아버지도 속이고, 그리고 그 인생이 험악했어요. 그런데 이 야곱을 하나님이 버리지 아니하신 이유가 뭐냐면 물론 하나님의 뜻은 야곱에게 있었어요. 에서보다는 야곱에게 있었어요. 에서가 아니라. 이 야곱이 정말 하나님이 이를 들어서 그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조상으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라 말을 하기 까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야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가나안으로 들어와서, 그가 처음에 에서의 눈을 피해서 도망할 때 만났던 그 벧엘에서의 그 돌단을 세워놓고 그 다음에 밤에 사다리가 내려와서 사자가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봤던 그 자리에 돌아와서 가나안까지 돌아와서 하나님의 그 나라를 끝까지 추구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를 이스라엘로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결국 승리는 누가 하냐? 끝까지, 끝까지 달라붙는 자에게 승리케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좁은 문 좁은 길, 끝까지 그 길을 추구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승리케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을 하나님께서는 나는 야곱의 하나님이라그런 말씀을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장점이 뭐냐?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여러분 우리가 영적인 문둥병, 예를 들어서 영적인 문둥병은 주로 어떤 것인가를 한번 볼 때에 예를 들어서 누군가가 미워진다. 여러분 이게 항상 우리 인생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잖아요.

괜히 미워집니까? 하는 일 없이 미워지지 않지 않습니까? 분명히 그 사람이 미워지는 것은 나에게 해를 입혔거나 그렇잖아요? 나에게 해를 입혔거나 그래서 미워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미워지는 것이 사람이 미워지기 시작하면 어떻든가요? 하늘 문이 닫히기 시작하고 하나님의 음성이 안 들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서는 미워하는 감정이 불쑥 불쑥 불쑥 솟아오르더라는 것입니다.

근데 이게 뭐냐? 나의 그 자아더라는 것입니다. 자아. 그것도 옛 자아.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예수 안에서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는 삶, 이런 사람을 사는 것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 되는 것이 정상적인 삶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안에서는 아직도 미워하는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보더라는 것입니다.

그럼 여러분 이게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문둥병이 들게 하는 그렇잖아요? 영적인 문둥병이 들게 하는 시작이라고 볼 수 있지요. 왜냐하면 내 안에서 미워하는 감정이 불쑥 불쑥 올라오니까. 이게 나를 영적인 문둥병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근데 여러분, 우리는 분명히 주님이 죽으실 때 다 이루셨다라고 그랬잖아요. 다 이루신 것이 뭐냐면 우리도 그와 함께 그가 죽으실 때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524절이죠. 그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러니까 우리는 그 말씀대로 살아야 되는데 그 말씀대로 살지를 못하잖아요. 옛사람인 나를 붙들고 사는 거에요. 이게.

그럼 영적인 문둥병을 고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되냐?

나아만 장군처럼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담근 것처럼 우리도 이 믿음 앞에 이 말씀 앞에 나를 일곱 번 담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요단강은 뭐 하는 곳이냐? 요단강은 죽는 곳이에요.

요단강의 의미가 두 가지가 있지요. 그죠.

요단강 건너서... 찬송가 402장인가? 요단강 건너서 면류관 받아쓰리.

요단강 건넌다는 것의 첫째 의미는 육체의 장막을 벗는다는 의미에요.

육체의 장막. 육체의 장막을 벗는다는 얘기이고.

두 번째는 나의 옛 자아가 죽는 것을 얘기하죠. 죽는 것.

요단강에 내가 몸을 담근다고 하는 것은 나의 옛 자아가 죽는 것을 의미하더라는 것입니다. 죽는 것.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왜 부활된 모습으로 살지를 못하는가? 부활된 모습.

왜 우리는 부활된 모습으로 살지를 못하는가?

이 요단강에 한 번 담가서는 내가 나를 이기지를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믿음으로 내가 죽은 것을 주님이 십자가에 죽었을 때에 나도 함께 죽었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드릴 때에 우리는 부활된 나로 살 수가 있는데 근데 이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내가 한 번 받아드린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요단강에 내가 죽는 것이 안 되면 또 들어가야 되고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생각하는데 또 안 되면 또 들어가야 되고, 그렇게 해서 일곱 번까지 해서라도 나에게 있는 옛 자아의 모습들이 자아가 올라오는 것이 없어지기 까지 우리는 요단강에 몸을 담가야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주님이 죽으실 때 나도 죽었다. 이것을 기억하고 나에게 적용시키고 그러면 나에게 계속해서 올라오는 미워하는 감정은 뭐냐 이거에요? 이게 바로 죽은 나, 옛 자아, 이거를 붙들고 사는 모습이더라는 것입니다. 붙들고 산다. 이건 내가 아니더라는 거에요.

예수 안에서의 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져서 이전 것은 다 지나가고 새 것이 되었는데 나는 지나간 이전 것을 붙들고 살더라는 거에요.

그거는 내가 아니더라는 거에요. 그건.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지금 나에게 예를 들어서 소록소록 올라오는 미워하는 이거를 밟아야 되요. 아니다. 너 나 아니다. 아니야. 그걸 받아주는 게 아니라 나에게서 올라오는 미워하는 감정을 받아주는 게 아니라 들어주는 게 아니라 거절하고 밟아야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게 뭡니까? 내가 요단강에 몸을 한 번 더 담그고 나는 새로운 사람이야’ ‘나는 예수 안에서 다시 태어났어그리고 참 나는 부활된 나야’ ‘나에게 미워하는 감정 올라오고 좋아하는 감정 올라오는 이것은 다 잘못된 거야이렇게 해서 내가 참 나가 아닌 나로 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잘못된 나를 밟아야지요.

이것을 언제까지요? 그게 요단강에 몸을 담그는 건데 언제까지요? 될 때까지요

일곱 번이라고 하는 것은 될 때까지라는 거에요. 될 때까지.

영적인 추구라고 하는 것은 될 때까지 하는 거에요.

이루어질 때까지, 그것이 나에게 실제가 되기까지.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 가만히 보면 어떤 사건과 문제속에서도 다 하나님이 하고 계신데, 일이 틀어졌어도 그 속에서 우리가 첫째로 해야 될 것이 뭐냐? 얻은 것이 뭐냐? 이걸 생각해야 되요. 얻은 것이 뭐냐?

여러분 실패는 뭐라고 그랬어요? 성공의 어머니다. 그 말이 맞는 거에요.

실패를 통해서 여러분이 얻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는 것들이 있어요.

얻은 게 반드시 있습니다.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얻은 것을 먼저 생각하라.

사람들은 잃은 것만 생각하잖아요.

얻을 것을 생각하라.

그리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를 생각해 봐야 되요. ?

?’를 생각하면 또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는 것이 있어요.

그리고 나에게 일어나는 미워하는 그 감정들을 나의 참 모습이 참 내가 아니므로 말미암아 잘못된 나를 붙들고 살고 있는 나를, 그 감정을 밟아서 이렇게 하다보면 여러분이 정말 그 밑에서 올라오는 미움이라는 감정이 씨도 없어지는 것을 여러분이 알 수 있어요.

그 근원조차도 말라 버립니다.

그럴 때 어떤 마음이 생기느냐?

내가 미워하는 대상이 불쌍히 보이기 시작해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정말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을 때에 문둥병이 그 근원까지 깨끗해 졌던 것처럼 여러분 심령 안에서 미워하는 모든 감정이 없어지고, 사람을 정말 사랑할 수 있는 그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어요.

온유한 심령으로 잘못된 자를 바로잡고 강한 자가 연약한 자를 담당한다.

이런 말씀이 있어요.

우리가 아무리 잘못된 사람을 보더라도 화가 난 상태에서는 그 사람을 바로 잡을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불타고 있는데다가 석유를 붓는 것과 같다는 것이지요.

그럴 경우에 내가 오히려 온유한 심령이 되어지기까지 주 앞에 앉아서 그가 불쌍해 보이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내서 그를 이해해 주고 다시 그를 받아드릴 수 있을 만큼 내 마음이 온유하게 되었을 때에 그 사람을 바로 잡을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시비를 따지지 마라.

옭고 그름을 따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일이 안되게 하시는 것도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안 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냥 홀로 두시는 분이 아니라 천국 가는 그날까지 반드시 여러분의 손을 잡고 함께 가고 있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 주여 한번 부르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내가 잘못 생각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내가 옛 자아를 붙들고 살았습니다. 지금부터는 정말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근 것처럼 내가 정말 내 옛 자아를 죽었다는 그것을 믿고 그 믿음을 일곱 번 담근 것처럼 되어질 때까지 내가 정말 죽은 자의 모습으로 살 때까지 저는 그 영적 추구를 놓치지 않겠습니다.

한번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한번 부릅니다.

주여!!!

주님 우리는 속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옛 자아의 모습에 속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 주안에서 새로운 나, 부활된 모습의 나, 나로 살 수 있도록 우리 주님 축복하여 주옵소서.

나의 옛 모습은 옛 자아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했습니다. 죽은 나를 붙들고 사는 나, 속지 않게 하시고 밟아버리게 하시고...

주여!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새로운 자아의 모습으로 하나님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다시는 미워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주여 감사합니다.

주기도문하고 마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