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과 영성Ⅱ 셋째주 3-3
형성된 자아의 처리
(= 영성훈련 여덟달째 물질과 영성 II 형성된자아처리 셋째주 3-3)
두 번째 시간에는 영혼과 영성 윤리단계 특징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영성훈련에서 네 가지 기둥이 있다고 그랬지요.
영성훈련에는 네 가지 기둥을 다룹니다. 그죠!
첫째는 영혼과 영성이 있고, 그 다음에 육체와 영성, 그 다음에 물질과 영성, 그 다음에 대인과 영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속에서 이 어느 것 하나도 가벼이 다룰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신앙생활을 이 네 가지로 요약을 해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네 가지 기둥이 정해져 있습니다.
영혼과 영성은 나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주로 다루고 있죠. 그죠.
나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육체와 영성은 하나님께서 왜 나의 육체를 이 세상에 허락하셨는가? 내 육체를 어떻게 쓰기를 원하시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육체를 주신 이유는 의의 병기로 쓰라고 주셨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살펴보는 거죠. 의의 병기.
죄의 병기가 아니라 의의 병기로 쓰라고 우리에게 육체를 주셨다는 겁니다.
물질과 영성은 일평생 우리에게 물질이 오고 가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나눠주시잖아요. 하나님의 뜻대로 나눠주시죠. 개인에게.
일평생 우리에게 물질이 오고 가는데 이 물질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잘 써드리는가?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도 아니고 나를 위해서 쓰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이 물질을 어떻게 잘 써 드리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약에서부터 보면 많은 사람들이 물질 때문에 넘어졌어요.
이게 소위 바알신이라고 얘기하죠. 바알신. 바알이라고 해요.
현대의 바알신은 뭡니까? 돈이죠. 돈. 돈 따라가는 삶.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하나님 하면서도 실질적인 삶은 돈을 따라가고 있다면 이것은 바알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신 바알신이죠.
그래서 물질과 영성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 내가 현혹되지 않기 위해서. 내가 하나님께서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했잖아요.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그러니까 이 물질과 영성도 이 얼마나 신앙생활 속에서 크게 차지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 다음에 네 번째 기둥은요 대인과 영성이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파견하신 이유는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영혼들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죠.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우리를 보내신 이유는 똑같은 이유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는 늘 마주치는 영혼들이 있잖아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이웃이 있잖아요.
이웃은 아주 광범위하죠.
내 가족부터 시작해서 부부도 이웃이고 자녀도 이웃이고 내가 시집가서 맺어진 시집식구들도 또 친정식구들도 다 이웃이에요.
내가 아파트에 있는 아파트 식구들도 이웃이고, 교회에 있는 성도들도 이웃이고, 내가 매일 마주치는 뉴코스트에 누구도 이웃이고, 나의 카스트머들도 이웃이에요.
이 이웃의 범위는 굉장히 넓습니다. 그죠.
거기뿐만 아니라 저 아프리카 굶어죽어 가는 자의 소식이 들린다면 그도 이웃입니다.
멕시코에 누가 선교를 가는데 감옥에 갇힌 사람들 선교를 다니는 분이 있더라구요. 그 소식이 들릴 때 좀 후원하십시오! 하는 편지가 올 때 그것도 이웃입니다.
이웃의 대인과 영성 영혼들에 대한 것, 그러니까 여러분 잘 보면 영혼과 영성, 육체와 영성은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거죠. 그 신앙생활이.
그런데 물질과 영성, 대인과 영성은 오히려 이게 만일에 나무로 치면 뿌리에 해당된다면 뿌리 부분이 튼튼해야 되죠. 그래야 안 넘어지죠. 바람이 불어도,
나무로 치면 이게 뿌리에요. 뿌리가 영혼과 영성, 육체와 영성이라면 위에 보이는 부분 가지를 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하는 거는 물질과 영성, 대인과 영성에서 이 보이는 부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뿌리를 형성하는 것과 보이는 부분, 열매를 맺는 것은 주님은 우리가 열매 맺기를 원하잖아요.
좋은 열매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어서 불에 던지운다 그랬고, 좋은 열매를 맺는 자마다 더 가지치기를 해서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고 그렇게 얘기를 하잖아요.
비록 내가 지금은 나쁜 나무, 좋은 열매 맺지 못하는 나쁜 나무이다 할지라도 여러분이 영성훈련을 3년을 거침으로 말미암아 이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 이게 존재가 바뀌는 거죠. 존재가.
존재가 바탕이 나쁜 거였는데 좋은 걸로 존재가 바뀌는 거에요.
3년의 과정을 거쳐서 자아가 부서지고 내안에 내가 사는 게 아니고, 그리스도가 살게 되면 우리는 반드시 이 바깥 부위에 맺어지는 열매들이 좋은 열매들을 맺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이 이 3년 과정에서 뭘 하느냐? 자아를 파쇄시킵니다. 자아.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못하는 이유가 내가 하나님의 뜻을 아무리 행하고 싶어도 교회 안에서는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 말씀을 들을 때 ‘아 맞아 내가 그렇게 살아야 돼’ 근데 그렇게 결단하고 깨닫고 눈물도 흘리고 했는데 실질적으로 내가 삶에 와서 그 말씀을 실천하려고 그럴 때 잘 되든가요? 안 되든가요? 잘 안되죠.
왜 잘 안되냐? 내 안에 있는 자아 때문에 안돼. 자아.
이 자아가 자기 껍질을 벗어야 됩니다.
그러니까 나의 속사람이 내 속사람이 영이거든요. 참 나는 영이잖아요.
우리 육체를 가지고 천국 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죠?
우리가 죽어서 영이 떠나서 하나님 앞에 가는데 육체 갖고 가나요? 안 갖고 가잖아요.
그러니까 이 육체는 좀 병들어도 괜찮아. 좀 곰보가 되어도 괜찮아.
째져도 괜찮아요. 좀 소아마비라도 괜찮아.
왜? 참 나는 영이기 때문에 내가 이 몸은 겨우 써봤자 얼마만큼 쓰는 거에요? 100년, 100년 쓰고 버리는 거야. 진짜 중요한 거는 뭐냐? 나라니까요. 나. 영. 영이 나라니까요.
이 영이 영으로 살아야 되요. 영에 속한 사람, 이 영이 자아라는 껍질에 둘러 싸여 있어요. 이게 속사람이죠. 이 자아는 겉 사람. 이렇게 말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근데 이 자아의 껍질을 벗어야 하는 거에요. 벗어야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자유롭게 방출이 되어지고, 주님의 마음과 내 안에 내가 사는 게 아니고 주님이 사는 것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3년 동안 뭐하냐?
여러분이 강의와 실제적인 삶속에서 여러분이 자꾸 실천하고 또 하므로 말미암아 자아의 껍질을 계속 벗습니다. 벗어서 내 안에 있는 속사람이 흘러나올 수 있도록. 이 속사람은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면 이 속사람은 성령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동안에는 성령이 와 계시니까 이 성령이 늘 우리의 영에게 깨우쳐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양심으로 찌르시고 성령님은 많은 일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이 자아만 벗으면 우리는 내 영의 사람, 내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고 싶어 합니다.
이 자아만 벗으면 자아만 깨지면 내 영은 늘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어 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싶어 하는 그런 특성이 있습니다. 그렇게 살게 되는 거에요. 자아만 부서지면.
여러분 오늘 자아에 대해서 좀 들어야 되는데, 자아에는 형성된 자아가 있어요.
그리고 본질적 자아가 있어요.
형성된 자아라고 하면 교육과 문화, 환경, 내가 자라나면서 교육에 의해서 문화에 의해서 몇 십년동안 우리가 그 문화에서 살잖아요.
교육을 받잖아요. 몇 십년동안 나에게 환경에 의해 형성된 자아에요.
이 형성된 자아에는 예를 들어서 한번 봅시다.
교육과 문화니까 부지런한 자아가 있어요. ‘저 사람은 참 부지런해.’ 왜냐하면 부지런하다는 말을 듣고 좋아하니까. 그죠.
그 다음에 또 잘 참아. 잘 참는다. 이것도 형성된 겁니다.
그 다음에 또 좋은 게 뭐가 있습니까?
침묵할 줄 안다. 저 사람은 입 딱 다물고 있는 거에요. 보기 좋잖아요.
침묵하는 자아.
이런 것들은 가만히 보니까 우리가 보통 얘기하는 형성된 자아인데 선한 자아라고 말을 하죠, 남에게 해를 안 끼치고 남에게 칭찬 듣고 그런 선한 자아라고 할 수 있어요.
근데 형성된 자아 중에는 악한 자아도 형성이 됩니다.
어떤 게 있습니까?
‘저 사람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 그러니까 이 거짓말 하고 나서 저 거짓말또 하게 되고, 별거 아닌 거 같애. 그리고 사람들이 잘 속으니까 거짓말을 막하고 사는 거야. 이게 형성된 거에요. 요리조리 피하고 저리조리 피하고 거짓말로. 그러고 사는 거에요.
거짓말하는 자아, 속이는 자아, 좀 나쁜 사람들 지금 얘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도 형성되어지는 거에요.
그다음에 또 자랑하는 자아, 이것도 악한 자아죠. 그죠.
말 많은 거, 이것도 형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가는데 마다 수다 떨고 남 얘기하고 앉아 있고 이런 게 다 형성된 자아인데 그리고 형성된 자아 중에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만 좋아하고 안 좋아하는 사람은 안 좋아하고 딱 딱 사람 가리고 이런 거, 니편 내편 이런 것들이 다 악한 자아입니다. 악한 자아.
이런 형성된 자아, 내가 자라면서 교육과 문화와 환경 속에서 형성된 자아, 이런 자아들이 있다 말이에요.
근데 이런 자아들이 일단 자아라고 하면 다 부서져야 됩니다.
다 부서져야 된다.
선한 자아든 악한 자아든 하나님이 없는 자아, 하나님이 없는 모습, 자아는 다 벗겨야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없이 내가 부지런한 것은 내가 칭찬받잖아요.
내가 칭찬받기 위해서 하나님 없어도 하나님은 저리 가라하고 나는 내가 칭찬받기 위해서 부지런하다고 하니까 사람들에게 칭찬받기 위해서 부지런한 거에요. 아무소용이 없는 거에요.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 없는 모든 행위는 악한 겁니다. 아무리 선한 자아라도.
불교를 믿는 불교 쪽에서는 이거 더 잘 하잖아요.
희생하고 참아주고, 그죠. 불교는 하나님이 없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은 참 인자하더라구요. 이게 다 악한 거에요.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악한 거에요.
선한 자아도 악한 거에요.
그래서 다 부서져야 돼. 다 없어져야 되요. 이거 다 처리 받아야 되요.
그러면 본질적 자아는 뭐냐?
본질적 자아는 갖고 태어나는 자아에요. 누구나 갖고 있어요.
갖고 태어나는 자아. 누구나 갖고 있다.
이 형성된 자아는 사람마다 틀여요. 다 다르게 자라났고 환경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교육도 달랐으니까 형성된 자아는 사람마다 다 틀립니다.
그런데 본질적 자아는 원래 갖고 태어나기 때문에 거의 똑같아요. 사람마다.
그럼 이 본질적 자아에는 뭐가 있냐?
우리 아담과 하와가 겪었던 그리고 예수님도 시험 당했잖아요.
이생의 자랑, 높아지고자 하는 것, 자존심이 여기에 들어갑니다.
부부간에도 자존심 때문에 대개 자존심 때문에 싸우죠. 부부가.
저도 결혼 생활 해 보니까 알겠어요. 이생의 자랑에 속합니다. 이게.
이게 갖고 태어나는 것 본질적 자아입니다.
그 다음에 자존심만큼 쓸데없는 것이 없더라구요. 그죠.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 누구나 이쁜 것 입고 싶고, 좋은 차 갖고 싶고, 깨끗한 집에 살고 싶고. 이게 다 안목의 정욕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 좋은 것 갖고 싶고.
그 다음에 육신의 정욕, 먹고 싶고 좋은 것 먹고 싶고, 맛있는 것 먹고 싶고, 자고 싶고, 편안하고 싶고 이게 다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자아죠.
여러분 우리는 영성훈련을 받으면서 3년 동안 형성된 자아가 처리되는 시기가 있고 처리해야 하는 시기가 있고, 본질적 자아와 싸움이 시작되는 시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가만히 보면 여러분 이 자아는 다 무너져야 되요.
부서져야 되고 파쇄시켜야 되는데 여러분 우리가 진리의 삶을 산다잖아요.
진리는 뭡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그죠.
예수님이 진리이고,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럼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지는 삶을 산다는 것은 뭘 얘기하냐면 이 형성된 자아도 없어져야 되겠지만 가만히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다 보니까 이것도 다 처리되어야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고 내가 사는데 이것들을 내가 갖고 살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없죠.
그러니까 우리가 영성훈련을 받는 과정 속에서 어떤 때에까지는 형성된 자아를 벗는 훈련을 하고, 그 다음부터는 본질적 자아와 싸움이 시작이 됩니다.
이게 싸우지 아니하면 우리는 결코 진리의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할렐루야!
버려야 되는 거에요.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버리느냐?
영성훈련에서 이것을 가르쳐 드립니다.
교회에서는 나오지 않습니다. 설교에서는 안 가르쳐 줍니다.
설교는 늘 왜 해야 하는지만 가르쳐 줍니다. 왜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이것만 파고 있지요. 근데 영성훈련에서는 왜 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 수 있을까를 가르쳐줍니다. 길을 가르쳐줍니다.
영적 실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자, 여러분 우리는 이 성경은 그냥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지요.
이스라엘 민족의 여정 그들의 실질적으로 걸어온 역사 이 역사가 뭘 얘기하냐면 이게 영적인 여행을 우리가 거쳐야 될 영적인 패스, 길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들은 애굽에서 하나님은 기적으로 그들을 끌어냈습니다.
열 가지 기적과 홍해를 가르는 사건을 통해서 광야로 끌어내서 이제부터는 너희들이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요 끌어낼 때부터. 그렇게 말씀했죠. 그죠.
이것은 우리가 세상 가운데 있는 우리를 하나님이 독수리가 그 새끼를 업어 나르듯이 우리를 구원했어요. 그렇잖아요.
우리가 예수 믿게 된 게 하나님의 은혜지요.
여러분이 믿고 싶어서 믿었습니까?
하나님이 믿음 주셔서 믿은 거지!
독수리가 새끼를 업어 나르듯이 우리를 세상에서 끄집어 낸 거에요. 할렐루야.
그다음에 광야를 거쳐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이 가나안은 뭐냐면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 그러니까 우리 자체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로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거기는 뭐냐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젖과 꿀은 누가 줍니까? 우리 주님이 주죠.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젖과 꿀이 흐르게 하는, 생수가 넘치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 심령천국,
너희는 여기도 말고 저기도 말고 예배할 때가 오는데 바로 이때라 그랬어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를 만들기 원하시는 거에요.
너희는 거룩한 나라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너희가 거룩한 나라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가 이렇게 그냥 그들을 백성 삼아서 광야에서 40년간 유리시키고 고생 직사게 시켰지요? 그죠.
유리시키다가 가나안으로 인도한 이 얘기가 물론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말을 했죠. 약속의 말, 내가 네 후손이 이방인의 객이 된지 400년 만에 그들이 재물을 가지고 네가 지금 거하는 천막을 치고 사는 장막가운데 거하는 지금은 이 땅은 네 땅이 아니다. 네 후손에게 내가 준다고 그랬어요.
그 말씀을 하신지 600년 후에 이루셨어요. 신실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보지 못하고 죽었지만 멀리서 환영하면서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얘기가 무슨 얘기냐면 이 일은 이스라엘 민족의 얘기인 것 같지만 이게 바로 우리, 예수 믿는 우리의 영적인 그것을 비유하고 있더라는 거에요.
그러면 어떻게 되냐면요. 광야를 거치면서 40년간 여기서는 하나님은 그들을 뭘 훈련했느냐면 신명기 8장 3절이죠. 그죠.
오늘 처음 온 사람들을 위해서 신명기 8장 3절 한 번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광야 생활을 시키신 이유, 제가 가진 성경으로 274페이지에 있습니다. 맞나요?
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다음에 2절 읽습니다.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여러분 광야의 삶 속에서는 하나님이 뭘 원하시냐면요? 여러분에게 형성된 자아, 이 자아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가 없어요. 오늘 거기 보니까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형성된 자아를 광야를 거치면서 파쇄시키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형성된 자아를 파쇄시킵니다.
형성된 자아는 본질적 자아보다는 벗기가 쉽습니다.
왜냐하면 형성되었기 때문에, 내가 갖고 태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형성되어진 것을 벗기기는 그렇게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울 필요는 없어요.
내가 노력만 하면 벗을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거짓말 하는 자아, 내가 정말 깨닫고 안 하려고 마음먹으면 거짓말 안 할 수 있어요. 할렐루야.
자랑하는 자아, 입 꼭 다물고 있으면 안 할 수 있습니다.
무슨 얘기인줄 알죠?
수다 떠는 자아,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그랬으니까 안 할 수 있습니다.
형성된 자아가 파쇄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광야의 삶을 시키시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레미야 18장 한번 가보죠.
여러분 예레미야 18장에는 뭐가 나옵니까?
예레미야 18장 한번 가보겠습니다.
1절부터 6절까지 보겠습니다.
1.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 주리라 하시기로
3.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4.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5.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6.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에서 끌어내신 후에 그분의 손 안에 놓고 우리는 그분 안에 있는 진흙으로서 하나님은 그 한사람, 한사람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만들기 시작하는데 예수 믿고 나서 아니 예수 믿고 나면 다 잘 된다고 그래서 다 잘 되는 줄 알았는데, 예수 믿으면 잘 되죠! 구원받고, 구원받은 것만도 얼마나 감사합니까?
평생 춤을 추고 감사해도 모자라는 게 구원받은 사실입니다.
근데 구원받고 나서 내가 이 세상에서 비즈니스도 잘되고 부부생활도 잘되고, 행복하고 자녀들도 잘되고 다 잘되는 줄 알았는데 예수만 믿으면 근데 그게 아니라 구원받은 건 확실한 것 같은데 내 삶은 왜 이렇게 잘 된다기 보다는 오히려 고난이 더 많이 찾아오는가?
그런 쾌스쳔이 있을 수 있죠?
이게 광야의 삶이라는 거죠.
하나님은 우리를 은혜로 끌어내시지만 내서 구원을 하셨지만 그분의 자녀로 삼으셨지만 자녀로 삼으셨기에 그분의 손 안에 놓고 우리를 진흙으로 우리의 형성된 자아를 파쇄시키기 시작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의 모습으로 만들어지잖아요. 할렐루야!
그 광야의 삶에서 우리의 형성된 자아를 파쇄시켜 나가시면서 결국에는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가장 큰 여리고, 이 여리고라는 게 있어요.
여러분 가나안을 점령하려면 여리고성을 먼저 무너뜨려야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가장 큰 성이 무너지는 거에요.
이것도 나에게 있어서 견고한 진입니다.
가나안, 내가 가나안에 도달하길 하나님이 원하시고, 하나님이 나를 심령천국, 그분이 나를 다스리시고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로 만드시길 원하는데 거기서 가장 크게 도사리고 있는 것이 여리고성이라는 거에요.
이걸 우리는 뭐라고 해요? 사단이 나에게 있어서 가장 견고한 진을 형성하고 있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이건 또 뭐냐? 이것도 형성된 자아이에요.
형성된 자아 중에서 가장 큰 게 기다리고 있는 거에요.
이것만 무너지면 이제 내가 가나안을 점령할 수가 있는 거에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어요.
여러분 이 여리고, 이게 형성된 자아라고 그랬습니다. 견고한 진.
이게 언제 넘어지냐? 무너지냐?
영성훈련 1년 정도 되어야 무너진다 그랬어요.
그 1년 동안에 다른 형성된 자아들이 계속 파괴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의 영성상담 그래프가 올라가면서 1년 정도 되면 이 여리고가 무너진다는 거에요.
여리고가 무너지기 전에 떨어져나간 사람들, 우리 그 말이 있죠? 노래 중에 가다가 뭐하면 아니간만 못한다, 가다가 발병난다 뭐 그런 말 없어요?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1년이 되기도 전에 떨어져나간 사람, 여리고가 무너지기 전에 떨어져 나간 사람, 진짜 못 말리게 손해보는 사람들이에요.
저도 영성훈련을 정말 오랫동안 여러 번 다녀봤지만 거기는 사역자들도 있고 목사님들도 있고 집사님들, 장로님들 다 있어요. 선교사님들도 있고.
누가 가장 많이 떨어져 나가냐? 너무 부끄럽게도 사역자들이 많이 떨어져 나갑니다. 왜냐하면 목이 뻣뻣하거든요.
처음에는 우리 영성훈련 얘기할 때 참 죄송한 얘기지만 목회자반들이 있었어요. 따로 있었어. 제가 세반을 운영을 했으니까.
월요반이 있었고, 화요반, 목요반이 목회자 반이었어요.
제가 목회자반을 안하려고 했는데 어떤 목사님이 오셔서 목회자반을 열어 달래. 평신도들하고 같이 교육받기 부끄러우니까 그러니까 제가 그 말을 잘 받아들여서 ‘그래 목회자반을 형성하면 목회자들이 많이 오겠구나!’ 그것도 어디에요? 많이 와서 훈련받는다는 게.
그래서 목회자반을 선전을 하고 목회자반을 모였었어요.
제가 보기에는 사모들하고 부부들이 오더라구요.
근데 결국은 목회자님들이 다 떨어져나갔어요.
왜냐? 교회에서는 대우를 받거든요. 목사니까 ‘목사님 어쩌고 저쩌고...’하는데 여기 오면 여기에 오면 다 내려놔야 되니까 근데 그걸 못 내려놓는 거에요. 못 내려놔.
그러니까 이게 1년이 되기 전에 떨어져나갈 수밖에 없는 거에요.
그러면 그분들은 어떻게 사냐? 평생 여리고 갖고 살아야 되요.
여러분 여리고 무너지기 전에 떨어져 나가면 안 되겠지요?
여리고는 반드시 무너져야 됩니다.
제가 왜 무너져야 되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저기 로드아일랜드에 사시는 어떤 주사모님, 제가 거기 가서 여선교회 수련회를 제가 영성세미나를 가지고 4박5일 동안 인도하고 왔었어요.
거기에 목사님의 사모님이 통신영성을 하세요. 근데 1년이 딱 된거야.
오늘 상담을 하는데 여리고가 무너졌어요.
여리고에 대해서 제가 얘기를 하면서 제가 하나님께서 생각나게 비유적으로 참 알맞게 표현할 수 있는 여리고가 뭔지에 대하여 그걸 생각나게 해 주셨어요. 그걸 제가 하나 말씀드릴께요.
여러분이 여리고를 갖고 있으면 여리고가 안 무너졌다. 그러면 그 여리고가 있기 때문에 나의 견고한 진이잖아요, 내 속사람이 그 견고한 진 때문에 나올 수도 없고 받아들이는 것도 여리고의 그 색깔을 통해서 받아들이고, 나에게서 나가는 것도 여리고를 통해서 나가기 때문에 자아의 그 어떤 모습을 통과해서 나가기 때문에 여러분은 결코 받아들이는 판단과 분별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여리고 때문에, 나에게서 나가는 것도 나의 자아에 묻혀서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할 수도 없습니다.
자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한다고 하는데 그 자아의 모습 때문에 자아에 묻혀 나가기 때문에 절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런 삶을 살아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럼 이 여리고가 무너지고 안 무너지고의 차이는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좀 더 이해가 잘 될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담은 높아요. 비싼 집일수록 담이 더 높더라구요. 명동인가? 효자동인가? 청와대 가까운데 거기가 무슨 동이에요? 거기 가면 담이 더 높아요.
집도 막 크고 담이 사람의 높이 두 배는 되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막 어느 누구도 그 집에 들어갈 생각도 안하고 쳐다볼 생각도 못하는 거에요. 그죠?
여리고라는 게 그런 거에요.
그 여리고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갈 수도 없어요.
제가 무슨 얘기하는지 잘 아시죠!
제가 미국에 와서 놀란 게 있어요. 담이 없는 거야.
우리나라는 도둑이 들어 올까봐 집집마다 대문에다가 담에다가 이렇게 해 놨잖아요.
대문 없는 집, 담 없는 집 있나요? 우리 한국에. 저는 그거 못 봤거든요.
그런데 미국에 오니까 담이 없어.
바로 잔디고 바로 현관문이 보이네. 아니 어떻게 집들이 담이 없나?
도둑놈이 없나? 이야 이거 어떻게 이런 집들이 있나? 처음에 너무 놀라버렸어요. 담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여러분 여리고가 무너지면 담이 없어져요.
어느 누구도 그 집 문 앞에 가서 ‘똑똑’ 그러면 돼.
주인이 나와서 문 열어 주고, 물주고, 배고프면 음식 주고, 집에 들어오라고 그러고, 그런데 우리나라 담이 있는 집은요? 아예 생각을 못하는 거에요.
여러분이 자아의 모습에서 여리고가 무너지지 아니하면, 우리 한국에 있는 대문으로, 대문으로 쳐져 있는 그 집과 똑같은 거에요.
아무도 접근을 못해요.
그 담이 있고서는 아무리 내 속사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담이 무너지고 나면 미국에 있는 집들처럼 담이 없잖아요.
어느 누구나 가까이 가서 문을 노크할 수 있고 ‘물 좀 주세요, 나 좀 도와주세요’ 얼마든지 내 안에 있는 사람이 문을 열고 ‘누구세요, 들어오세요, 물 드세요’ 할 수 있는 거에요.
여러분 여리고가 무너지지 않은 이상은 결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 아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열매를 요구하세요.
“니 삶의 열매를 좀 내놔봐라”
열매가 뭡니까? 열매가 뭔가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뿐인가요?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기본이고, 그 다음에 하나님은 열매를 원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그 열매를 맺어드리는데 있어서 나에게 여리고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하나님 앞에 열매를 맺어드릴 수 없는 자에요. 결코 맺어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형성된 자아 중에서 가장 큰 것이 가나안 바로 직진해 들어가기 전에 여리고입니다.
이것이 반드시 무너져야 되요.
그 다음부터, 그 다음부터 갈 길도 멀어요.
여리고는 형성된 자아에요.
그때 그러면 여리고가 무너졌습니다. 1년 되면 무너집니다.
무너지고 나면 자, 가나안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보면 가나안에서 가나안을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끌고 들어가서 가나안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그 안에 있는 일곱 족속을 이걸 싸워서 물리쳐야 했었습니다.
그래야 온전히 그 땅을 차지하지요. 일곱 족속.
뭐 여러 가지 있잖아요.
기르기스, 히위, 여러 가지 족속들이 있잖아요. 다 제가 못 외웁니다.
그 안에 사는 일곱 족속이 있어요.
원래 살고 있던 사람들, 여부스 족속. 그걸 몰아내야 되요.
이 일곱 족속이 뭐냐? 이게 본질적 자아에요.
그 안에 살고 있는 본질적 자아, 이것도 싸워서, 이것도 싸워야 됩니다.
본질적 자아, 일곱 족속.
이게 2년 동안 여러분 여리고가 무너지려면 1년이 걸리고, 2년 동안 본질적 자아와의 싸움에서 여러분이 그 자아들과 싸우면서 내가 점차 이제는 나를 내려놓고 진리의 삶을 살게 되는 진리의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얘기하는 영혼과 영성 윤리단계는 형성된 자아가 처리되는 과정, 이 과정 속에 있습니다.
윤리단계 다음에 진리단계로 넘어가죠.
윤리단계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윤리단계와 진리단계의 차이점.
윤리단계는 내 마음 안에 싸움이 심합니다.
내 마음 안에 싸움이 심하다.
어떤 싸움이냐?
내가 하고 싶은 게 있고, 그 다음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있어요.
이 두 가지 마음, 이 싸움이 아주 심합니다.
그래서 윤리단계에서 제일 괴로워요, 사실은.
내가 하나님 쪽을 택할 것인지, 내가 내 쪽을 택해서 살 것인지, 그런데 늘 하는 걸 보면 내 쪽을 택해서 살아요. 내가 져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그러면서도 막 싸우는 힘든 이게 윤리단계입니다.
그 다음에 진리단계는 뭐냐?
차이점이 뭐냐면 싫어도 억지로라도 내 몸을 쳐서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거에요.
진리단계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어떻게든 살아지기 시작합니다.
왜? 내가 쳐서 복종하니까.
그러니까 진리단계로 넘어간다는 것은 굉장히 고단계 단계에요.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내가 쳐서 복종이 되어지는 단계라면 여러분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왜? 억지로라도 그렇게 사니까. 하기 싫어도. 그렇잖아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내가 억지로라도 쳐서 복종하고 끌려가려고 하니까.
그런데 여러분 그렇게 합니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지.
진리단계.
여러분 하루속히 윤리단계에서 진리단계로 넘어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
쳐서 복종시켜야 되는 거에요.
여러분이 여기 와서 왜 강의를 듣습니까?
자꾸 들어야 되요. 들어야 내 몸이 내가 하고 싶은 내 힘이 약해집니다.
‘아 내가 이렇게 살아야겠구나! 아휴 또 내가 졌네’
‘하나님 또 죄송합니다. 회개합니다.’
그러면서 내 힘이 자꾸 빠지는 거에요.
내가 그렇게 살아봤자 사망의 삶인걸 아니까 사망의 삶을 살고 나면 기분이 좋든가요?
그 뒷맛이 씁쓸하지 않든가요?
그걸 자꾸 경험하므로 말미암아 이제는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아이고 두 번 생각하지 말고 그냥 가자. 그렇게 되어야 되요. 할렐루야!
그렇게 되어야 되요.
싸우기 싫고 이제는, 해봤자 그냥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자.
내 생각하기도 싫다 이제. 이렇게 되어야 되요. 이게 진리단계에요.
그러니까 여러분 지금 우리가 영혼과 영성 윤리단계라고 하는 것은 제가 뭐라고 했냐면 싸움이 극심하다.
그리고 이 윤리단계에서는 범사에 하나님이 간섭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이 개입되어 있다, 하나님이 개입되어 있다. 이걸 알아요.
문제와 사건이 생기면 옛날에는 그 문제만 피하려고만 했어요.
하나님 이 문제 잘 해결해 주시고 이 사건 빨리 지나가게 하시고, 내가 너무 괴로우니까 다 지나게 해 주세요 그렇게 기도했잖아요.
윤리단계에서는 우리 영혼이 어떻게 알게 되냐면 ‘아~ 이 문제와 사건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이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다.
그래서 물론 문제와 사건도 해결함을 받아야 되겠지만 영성훈련을 받는 다고 하는 우리는 더 초점을 맞추어야 될 것이 그 문제와 사건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이걸 발견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이게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그가 네 길을 지도하시라” 그 말과 동일한 거지요.
우리 머리카락까지 세시고 계시는 하나님이 여러분 머리카락 몇 개인지 아세요? 하루에 몇 개 빠지는지 아는 사람?
하나님은 이 세상에 개미 숫자까지도 알고 있지만 여러분 집에 개미 몇 마리 있는 아는 사람? 없죠.
저도 제 머리가 하루에 몇 개 빠지는지 몰라요.
그런데 하나님은 내 머리카락이 몇 개인지 세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머리카락을 세시는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다가온 이 문제를 보니까 미치고 환장하겠네. 어떻게 나에게 이런 문제가 발생했지? 미치고 환장하고 팔짝 뛰겠네.
너무 기가 막힌 문제가 발생했어요.
그 문제를 하나님이 모르실까요? 하나님이 모르실까요?
하나님이 안 보내신 걸까요?
하나님이 왜 침묵하시나요? 그 문제에 대해서.
그럼 하나님은 내 머리카락은 세고 계시고, 내가 지금 당한 문제는 전혀 간섭 안하시고 그럼 하나님은 지금 어디 있나요?
우리는 다시한번 생각을 해 봐야 되요.
내 머리카락을 세시고 계시는 그분이 이 온 우주를 지으시고,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이 세상을 붙들고 계시고,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나를 살게 해 주시고 물과 공기를 주시고 고기도 주시고 물고기도 주시고 먹을 것을 주시고 다 주시는 그분이 오늘 나에게 왜 이 문제가 발생하게 하셨냐? 이겁니다.
여기는 하나님이 그분이 간섭 안하고 그분은 아무것도 모르고 계시냐? 이 얘기입니다.
내 머리카락도 세시는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큰 문제를 허락하신 것은 더 큰 뜻이 있다. 할렐루야!
더 큰 계획과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강의를 하면서도 내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내 머릿속에 막 지나갑니다. 그러면서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뜻이 그 안에 있군요. 제가 마음을 좀 편안하게 갖겠습니다.’
내안에도 막 이런 일들이 일어나요. 지금 강의를 하면서도.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하나님이 왜 나에게 울어도 시원치 않는 밤낮으로 울어도 시원치 않은 그 일을 왜 나에게 허락하셨는지... 나중에, 나중에 알고 보면 그게 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사실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인 것이 확신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정을 하고 우리가 아무리 아니라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어떤 문제와 사건 속에서도 하나님이 거기 계시고, 하나님이 좋은 걸 주시기 위해서 결국은 오늘 나에게 슬퍼 보이는 그런 일을 허락하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 나의 참 좋으신 하나님, 그 선하신 하나님, 선한 계획을 갖고 계신 하나님, 나의 사랑하는 자들에 대하여 선한 계획을 갖고 계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믿어드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영혼과 영성 윤리단계에서 여러분이 열심히 해야 될 것은 뭐냐면 지난 시간에 다룬 것 같은데 인격적인 분리를 잘해야 된다고 그랬지요?
우리에게는 영의 인격, 영의 생각과 육신의 인격, 육신의 생각이 다르다고 그랬어요.
내 속사람의 인격과 내 겉 사람의 인격이 틀립니다.
내 속 사람은 늘 하나님의 뜻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싶어 하고 이 세상을 초월하고 싶고 하나님과 함께 하고 싶고, 이게 영의 생각이에요.
육신은요? 늘 편안하고 싶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옷 잘 입고 싶고 더 좋은 것 갖고 싶고 하나님의 뜻하고는 상관없이 내 육체가 원하는 것, 그런 두 인격이 우리 안에서 늘 공존합니다. 공존.
아예 이것 생각 안하고 사는 사람은 육신대로만 사는 사람이죠.
육신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을 결코 기쁘게 할 수 없다고 그랬어요.
육신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나 늘 육신적으로 삶을 살아서 하나님과 원수 된 삶을 사는 사람을 얘기할 필요가 없는 거에요.
우리는 지금 영의 인격과 육신의 인격을 확실하게 분리시키는 훈련을 열심히 해야 됩니다.
그래야 내가 어느 것을 따를 것인지, 분리가 되면 우리가 어느 것을 선택해서 쫓을 것인지가 확실히 나오잖아요.
내가 설사 지금은 못 쫓는다 할지라도.
내가 쫓아서 살기 이전에 분리마저 안 된다면 그것은 우리가 쫓을 수도 없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인격적인 분리를 영혼과 영성 윤리단계에서 열심히 하라고 그랬습니다.
이게 하나님이 원하는 것인지, 이거는 내가 원하는 것인지 이게 분리라는 거죠. 이걸 열심히 분리하셔서 그 다음에는 선택하는 겁니다. 선택.
나를 선택하냐?, 하나님을 선택하냐?
선택해서 그 다음에 쫓아야 되는 문제가 있지요.
깨닫긴 깨달았는데 내 몸이 안 간다, 그러면 깨달아도 깨달은 만큼 살지 못하니까 늘 실패하고 넘어지고 그러면서 여덟 번째는 또 일어서서 가는 자가 의인이라고 그랬습니다.
의인은 안 넘어지는 자가 아니라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일어서서 가는 자가 의인이라고 그랬어요.
이처럼 여러분 우리는 실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덟 번째는 반드시 일어나서 갈 수 있는 자가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주여 한번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 두 번째 시간을 통해서 저에게 주신 음성이 있습니다.
첫째시간에는 우리가 믿음에 대해서 다뤘고, 두 번째 시간에는 영혼과 영성 윤리단계에 대해서 다뤘습니다. 자아에 대해서 다뤘고 여리고에 대해서 다뤘고, 하나님 내 평생에 여리고가 무너지길 원합니다.
여리고가 무너지지 않은 이상은 나는 결코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가까이 올 수가 없고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나에게 여리고가 무너지게 하옵소서. 제가 그 길을 가겠습니다.
주여! 한번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여리고가 있습니다.
다 틀리지만 1년이 되어져야 이 아주 견고한 진,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처리하길 원하는 여리고가 무너진다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축복하여 주시옵시고, 여리고가 무너지기까지 그 질주를 놓치지 아니하는, 그 추구를 놓치지 아니하는 한사람, 한사람들이 되길 원합니다.
아버지 여리고가 무너지고 난 후에 그 자유함과 그 여리고가 있던 때와 없던 때가 얼마나 틀린지 주님 스스로가 깨달을 수 있도록 맛볼 수 있도록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 주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번데기가 번데기 안에 있을 때에는 너무나 갑갑합니다.
그러나 그걸 벗고 훨훨 날을 때에는 얼마나 자유로운지...
주님 주님이 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벗기실 것을 믿습니다.
그들의 삶속에서 그들의 여리고가 무너지기 까지 우리 하나님께서 사건과 문제를 일으키시고 그들을 빚어나가실 줄 믿습니다.
아버지 그날이 오기까지 그들을 붙들어 주시고 반드시 여리고가 무너져서 정말 가나안을 점령하여 심령천국이 이루어지며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거룩한 나라들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주님 축복하여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사옵고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우리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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