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라목사님 바른영성훈련

영성 상담의 네 기둥-서사라목사

하늘이슬 2024. 6. 25. 14:11

영성훈련 영성 상담의 네 기둥

주여 한번 부르고 이 시간 회개하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까지 여러분의 마음속에 불순한 생각과 죄지은 것을 회개하는 시간 갖도 록 하겠습니다.

또 우리를 세상 가운데 두지 않으시고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신 것에 대한 무한한 감 사도 드리면서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한번 부릅니다.

할렐루야! 아버지 하나님, 예수의 이름으로 이 시간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머리에서 발끝까지 우리를 씻어 주시고 오늘 하루를 살면서도 입술로, 마음으로 범죄 한 죄, 행동으로 범죄 한 모든 것 우리 주님 앞에 죄 용서함을 받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하 나님, 우리 모두를 용서하시고 주님의 뜻을 좇아 살지 못한 것을 용서하시고 우리 모 두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주여, 예수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 하나님, 지금 이 시간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고 우리의 마음들을 위로하여 주시 고 우리가 어찌 할 수 없는 그것들을 주님 손위에 다 올려놓을 수 있도록 우리 주님 축복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함께 볼 것은 영성훈련과 영성상담에 대해서 먼저 나누고 그 다음에 영성훈련의 네 가지 기둥에 대해서 보려고 합니다.

영성훈련이라고 하는 것은 시간이 걸립니다. 영성훈련이 3년이 걸립니다.

3년을 마칠 때 쯤 되면 “아하, 내가 정말 그렇게 살아야겠구나” 동의가 일어나는 때 가 3년을 마칠 때입니다. 내가 3년이 되어 내가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의 모습으 로 살아지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3년이 되면 내가 그렇게 살아야 되겠다고 동의가 일어나는 때가 3년째입니다. 여러분, 영성훈련을 받고 우리가 빚어지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우리 계절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잖아요.

이렇게 계절도 시간이 걸리듯이 영성훈련도 시간이 걸려요. 봄에는 뭐합니까? 씨앗을 뿌리죠.

영성훈련에서도 여러분에게 열심히 말씀을 줘요. 말씀을 많이 듣게 합니다. 씨앗이 땅에 뿌려지는 때가 봄이에요. 그 다음에 싹이 나죠.

여름에는 뭐합니까?

열심히 뿌린 씨앗이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할려면 뜨거운 햇빛을 쬐며 땀을 뻘뻘 흘 리고 노력하는 때죠. 여름이 가장 힘든 때예요.

여러분의 영성훈련은 대개 여름 속에 많이 있어요. 여름을 잘 지내야 열매를 맺잖아요.

 

영성훈련을 우리가 받는 이유가 열매 맺기 위해서 받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죠.

그러면 좋은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내가 좋은 나무가 되어야죠.

그래서 영성훈련은 좋은 나무가 되기 위한 과정이예요.

좋은 나무만 되면 좋은 열매는 절로 맺어지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못된 나무가 못된 열매를 맺고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좋은 열매가 많이 맺혀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 겨울은 안식이잖아요.

안식은 생명단계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 안식이 찾아옵니다. 그 안에 주님이 온전히 거하시니까요.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겨울은 어디냐 하면 저 하늘나라예요.

우리가 이 땅 에서는 열매 맺는 일을 열심히 하고 저 하늘나라에 가서는 안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영성훈련에는 어떤 것을 다루고 있는가?

3년이 참 빠른 과정이에요. 예수님도 제자들을 몇 년 데리고 다니셨어요?

3년 반을 데리고 다니셨어요. 예수님도 제자들을 만드는데 3년 반이 걸렸잖아요. 다 윗은요? 16년. 모세는 몇 년 걸렸을까요? 40년. 요셉은요? 13년.

야곱은요? 20년이 걸렸어요.

그런데 우리가 영성훈련 하는데 3년이란 시간이 사실 짧은 건데 길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예수님이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실 때 무엇을 가르치려고 하셨는가 하면, 첫째는 그들의 가치관의 변화를 도모하셨고

두 번째는 진리의 훈련을 시키셨어요.

우리가 영성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는 가치관이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가치관의 변화란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땅의 가치가 하늘로 옮겨져야 합니다. 내 가 이 땅에 사는 이유가 주님이 되어야 돼요.

많은 사람들은 나 자신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까지도 자신을 위해서 이용해요. 자기가 잘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해요.

나 자신을 위해서 살기 때문에요. 지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축복받기 위 해서 살고 있어요. 그래서 헌금도 많이 하고 자녀들 잘되게 하기 위해서 헌신하고. 동기가 매우 잘못되었다는 거예요.

헌금을 많이 하는 동기가 내가 축복받기 위해서 하고 있다면 이것은 나 자신을 위해 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거지요.

헌신도 내 자녀가 잘 된다고 하니까 헌신한다면 이것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거지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고 말씀하셨잖아요. 우리는 우선순위가 바뀌어 있잖아요?

나를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가? 정말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가?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주님은 정말 기뻐하시는 거예요. 나를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은 아직도 어린애 모습이죠.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축복받기 위해서 해요. 축복은 뭐라고요? 따라오는 것이에요.

축복받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라 축복은 따라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 내 가치관이 땅에서 하늘로 옮겨지는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내가 육신인줄 알았는데 영인 것을 발견하고 영을 위해서 사는 거예요.

내가 육신이라고 생각하면 육신을 위해서 모든 것을 하는 거예요. 내가 영인 것을 발견하면 영을 위해 삽니다.

저는 죽는 것을 한번 생각해봤어요.

예를 들어서 이 시대가 악하고 곧 종말이 오고 핍박이 온다고 해요. 핍박 가운데 죽이는 형태가 다르지 않겠어요?

총 맞아 죽는 사람, 단두대에서 죽는 사람, 고통가운데 죽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그중에 단두대에서 죽는 사람은 어떨까요?

목숨이 끊어지는 순간에 영이 그 몸에서 뜨겠죠?

예수 믿는 자에게는 누가 와서 그 영을 맞이할까요? 천사들이죠. 여러분, 진정한 ‘나’ 즉 참 ‘나’ 는 영 이라는 걸 알아야 돼요.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오래하면서 기도도 많이 하고 그러다보면 하나님께서 강권적으 로 영이 육체의 몸을 이탈하는 경험을 시켜주세요.

저도 초등학교 3학년 때 경험해봤고 기도할 때 한번 이탈시키셨어요.

내가 영이 떠나는 걸 경험해봤기 때문에 단두대에서 죽으면 내 영은 떠날 것이라는 것이 확실한 거죠.

제가 왜 이 얘기를 하는가 하면 진짜 나는 육신이 아니라는 거예요. 진짜 나는 ‘영’이라는 사실입니다. 똑같은 내가 빠져나가요.

그래서 우리의 가치관이 내가 육신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것 하고 참 ‘나’는 ‘영’이라 고 생각하고 사는 자하고 삶의 모습이 전혀 다르지요.

그 다음에 가치관의 변화인데, 땅의 것이 하늘로 가고 내가 육신이라고 생각했던 것 이 영이고, 나로 살던 것이 주님을 위해서 사는 삶으로 변화가 일어나는것을 말합니 다.

우리 예수님은 제자들을 3년 반 동안 데리고 다니면서 이것을 추구했단 말입니다. 그 들이 이렇게 가치관이 변할 수 있도록요.

그래서 주님은 늘 천국을 말씀하셨어요. “천국은 이와 같으니”

 

우리 예수님은 땅의 일을 단 한 번도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오직 천국에 대한 비유와 아버지에 대한 얘기만 했어요. 그들의 가치관을 하늘로 자꾸 옮기는 말씀만 하셨어요. 그래서 내가 사는 목적이 하나님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까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했잖아요.

우리의 영이 어디에 있을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배 안에 있어요.

이 영이 진짜 나이고 육신은 아닌데, 육신이 왜 필요하냐 하면 육신은 오직 영에게 복종하는 의의 병기로 쓰임받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셨어요.

그런데 아담과 하와로 인해 우리가 죄에 풍덩 빠져서 죄의 병기로만 쓰임 받았었죠? 그러나 주님이 오시고 나서는 다시 의의 병기로 쓰임 받을 수 있는 ‘재창조’라는 말 을 쓰잖아요. 의의 병기로 쓰라고 육신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주님은 진리훈련을 했어요.

여러분, 이것은 우리에게 슬픈 얘기일 수도 있어요. 사람들은 희노애락을 말해요. 희노애락이 뭐예요? 감정이죠. 이 감정은 혼에 속한 것입니다. 지, 정, 의 는 혼이죠.

머리로 배우고 기억하고 하는 지식, 감정, 의지입니다. 지, 정, 의는 뇌에서 일어나요. 우리는 생각이라고도 얘기하고 정신이라고도 얘기하고, 혼이라고도 얘기합니다. 그 안 에 감정이 속해있어요. 그 감정이 희노애락 이잖아요?

희노애락에 대한 시도 많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희노애락이 아니면 전혀 쓸모없는 것이 희노애락이에요.

하나님이 주시는 희노애락이 아닌 이 감정대로 사는 사람은 혈기와 쾌락을 추구하고, 화내고 내가 기쁜 것 좇아가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전혀 쓸모가 없는 사람이에요. 여러분, 모세가 혈기 한번 부리다가 그 혈기 다루시기 위하여 모세를 어디로 보내셨 습니까? 미디안 광야에 40년을 쳐박아 두셨어요.

여러분, 진리훈련이 뭐냐 하면 감정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는 훈련이예요. ‘내가 너무 기분 나쁘다. 너무 속상하다’ 이런 감정은 다 ‘나’거든요.

나의 감정을 주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감정대신에 그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거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어요.

예수님이 그들을 3년 반을 데리고 다니면서 진리훈련을 시켰어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내가 생각하는 감정대로 부리고 사는 사 람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모습과는 전혀 멀다는 얘기예요.

그래서 ‘육신에 있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 ‘육신에 있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하셨어요.

내가 감정을 부리는 그것이 얼마나 하나님을 근심시키는 것인지, 내가 화를 내는 것 이 얼마나 하나님을 근심시키는 것인지 알아야 돼요.

 

우리는 우리의 육신을 제거하기 위해 눈물을 흘릴 때가 많이 있어요. 저절로 안되니까요. 그래서 육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지요.

성경은 뭐라고 말하냐하면요 “원수가 있으면 저주하지말고 축복하고 기도해주라”고 해요. “원수가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주라.”

여러분, 사실은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 줄 아세요? 실제로 당해본 사람에게는 이 일이 참 어려운 일이에요.

여러분, 부끄러운 얘기지만 제가 이 일이 안되었어요. 원수가 5리를 가자고 하면 10 리를 가는 거요. 내가 이번에 이것을 목표로 잡았어요. 내가 평생을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인데 이것을 실천도 안 해 보고 죽어서 되겠는가. 할렐루야

제가 승리하고 나서 간증하겠습니다.

성경은 “원수가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주라”고 해요. 내게 닥친 상황에서 머리로는 도저히 방법이 안 나옵니다. 그럴 때는 앉아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물어야 돼요.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요.

‘하나님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요?’

내 생각이나 내 감정이나 이 모든 것들은 다 필요없어요.

오직 하나님의 생각만이 중요한 것이고 하나님의 뜻만이 중요한 것이에요. 내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내가 이 세상에 살고 있다고 조금이라도 생각하고 있다면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이 뭔지를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늘 우리 삶에는 원수들이 나타납니다. 원수가 분명히 나타납니다. 진리훈련은 뭐냐?

성경에서 네 오른뺨을 때리면 어떻게 하라구요? 왼뺨도 돌려 대라고 합니다.

여러분, 저는 이게 안 되었어요. 무슨 말인지도 몰랐어요. 다른 것은 다 넘어갈 수 있 는데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내 오른뺨을 때리는 자에게 왼뺨도 내밀라는 것이 전 도 저히 내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이해가 가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이유는 다 나를 위해서 허락하신 거예요. 나에게 원수가 붙어 있다면 그 원수를 누가 보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요.

수긍하기 어렵고 너무 힘들고.. 하지만 그 원수를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보내셨다는 거예요.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 위해 통일 왕국에 왕으로 앉혀지기까지 가장 큰 공헌을 한 자가 사울 왕이에요.

 

다윗은 아무 잘못한 것도 없고 나라를 위해 싸웠는데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이려고 돌 아다녀요. 뽑고 뽑은 3천명을 데리고 16년을 쫒아 다닙니다.

다윗은 사울 왕 때문에 16년간을 도망자 생활을 했어요. 편히 잠도 못자고 이불도 편 히 못 덮고 밥을 제대로 먹었겠어요? 4백 명, 6백 명이 따라다녔는데요.

어디서 식량이 생겨서 밥을 실컷 먹어볼 수 있었겠어요? 그런데 그 일을 행하신 분이 하나님이세요.

사울 왕이 다윗을 쫒아 다니도록 뒤에서 주권적으로 역사하셨던 분은 하나님이셨어 요. 다윗을 만들기 위해서요.

우리 인생의 모든 고난과 환란에 대해 “야고보서 1장 2절에서 4절”에 보면 뭐라고 해요?

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우리 인생의 고난과 환란이 우리를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이라는 거예요. 이것 을 깨닫게 되면 오른뺨을 때리는 자에게 가서 왼뺨도 내밀 수 있겠더라구요. 그때 제 가 이해가 되었어요. “아, 이 얘기구나”

내가 아무 잘못도 없는데 오른뺨을 때려 봐요. 그런데 이런 사람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과 나를 향하신 사랑이 깨달아지니까 왼뺨도 가서 내밀 수 있겠더라구요. 더 잘 만들어 달라고요. 할렐루야!

성경에 “사람들이 내 머리 위로 타고 가게 한다”는 말씀이 있어요. 하나님이 사람들을 시켜서 내 머리 위를 타고 가게 한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런 환란이 오고 고난이 올 때 우리는 뭐라고 할 수 있어야 해요? “하나님, 저들이 사뿐히 즈려 밟고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실상은 너무 힘드니까요.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은 진리가 나를 끌고 갈수 있을 때 까지, 말씀이 나를 끌고 갈 수 있을 때 까지 우리에게는 환난과 고난을 허락해서 우리를 만드실 수 밖에 없는 하 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지금 나에게 당한 모든 고난과 환난은 하나님께서 나를 너무 사랑해서 오는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내가 그 사랑 앞에 굴복되어지면 감사로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무슨 영문인지 잘 모르지만 감사합니다.”

“내가 잘 만들어지길 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여러분, 하나님은 너무 멋지세요.

내가 내 자신을 알고 있는 것 보다 하나님은 나를 더 잘 알고 계세요.

그래서 내가 건너지 못할 그 강을 내가 생각지도 않는 환난과 고난을 허락해서 건너 게 하세요. 그 손길이 와 있을 때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기 원하는 거예 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 감정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통로로 쓰임 받을 수가 없어요. 여러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것은 400년간이었어요.

“내가 네 후손들을 애굽에 종살이 하다가 내가 그들을 너가 지금 천막치고 살고 있는 이 가나안으로 인도하겠다”고 하셨는데 그런데 정작 그들이 나온 햇수는 430년이었어 요. 그럼 왜 30년이란 세월이 연장되었을까요?

그 이유로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종살이 하면서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안 나갈려고 그랬어요. 그래서 늦어졌어요.

두 번째는 하나님이 그들을 이끌어 내는데 모세를 쓰실 작정을 하고 계셨어요. 뜻은 이미 하늘에서 모세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었어요.

그런데 미디안 광야에서 10년이 지나도 모세가 안 만들어졌어요.

모세가 40년이 걸려서야 완전히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쓰실 만한 통로로 만들어지니까 그 때 모세를 불러서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는 것을 볼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감정을 부리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전혀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그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여러분, “갈라디아서 6장 8절” 보겠습니다.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 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둔다는 것은 육신대로 사는 삶을 말하죠.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둔다고 하죠. 여러분, 이 땅위에서는 잠깐 사는 삶이잖아요?

잠깐 사는 삶에서 내가 육신으로 살면 썩어진 것을 거둔다는 거예요. 하늘나라에서도 이것은 잃어버린 시간이 되어 버려요.

그러나 상대가 육신으로 나오지만 나는 영으로 대하는 그것이 신령한 자의 모습이에 요.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은 영생을 거두리라 이 말은 저 하늘나라에서 승리한다는 말 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자가 아닙니다. 저 세상에서 승리해야 해요.

 

이 세상에서는 제가 좀 핍박받고 못 살아도 괜찮아요.

대접 못받아도 괜찮아요. 그러나 저 하늘나라에 가서는 대접받고 살아야 돼요. 내가 육신으로 다 살면 저 하늘나라에서는 Homeless 예요.

영으로 산 것이 없기 때문에 그래요. 집이 없어요.

어떤 사람이 천국에 갔는데 내가 영으로 살 때는 천사들이 집을 열심히 짓고 있는데 내가 육으로 살때는 천사들이 아무것도 안하고 있더래요.

육신으로 내가 이 땅에 살 때 내가 얼마나 영으로 살았는가에 따라서

저 하늘나라에 거둘 것이 있다는 것을 알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그들의 감정의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꾸는 훈련을 했어요.

영성훈련의 네 가지 기둥에 대해서 나누고 마치겠습니다.

왜 네 가지 기둥이 필요하냐면 신앙생활이 이것으로 다 요약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 다.

영성훈련의 네 가지 기둥에서 영혼과 영성이 있죠?

그 다음에 육체와 영성, 그 다음에 물질과 영성, 그 다음에 대인과 영성이 있는데 이 것을 네 가지 기둥이라고 하죠.

영혼과 영성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죠?

육체와 영성은 하나님 앞에서 나의 육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이고,

물질과 영성은 평생 우리에게 물질이 오고 가는데 물질을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잘 사용해 드릴 것인가 이고,

대인과 영성은 평생 우리에게 지체의 개념으로 이웃이 오고 가잖아요? 사람이 올 때, 영혼이 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이렇게 네 가지 기둥으로 우리는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 기둥에서 우리는 네 가지 단계로 나눠서 봅니다.

각 기둥은 뭘 가지고 있는가 하면 본능단계가 있어요. 본능대로 사는 단계죠. 두 번째는 윤리단계가 있어요.

그 다음에 진리단계가 있고 그 다음에 생명단계가 있죠.

영혼과 영성의 본능단계는 영혼의 자기발견이라고 해서 내가 육신이 아니고 참 ‘나’는 영이다를 발견하는 단계입니다.

참 ‘나’가 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살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육체와 영성에서는 은사 체험단계이고 물질과 영성에서는 의무와 책임단계입니다. 우 리는 십일조를 지키는 삶 그리고 이웃에게도 십일조를 드리는 삶으로 나아가야죠. 우 선 하나님 앞에서 십일조를 지켜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대인과 영성 본능단계는 너와 나 사이에 하나님이 없어요. 단지 ‘너와 나’뿐입니다.

그래서 부부도 너와 나 사이에 하나님이 없으면 잘 깨지죠.

오늘 나에게 원수가 나타난 것도 그 가운데는 하나님이 있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원 수를 원수로 대하지 않는 거예요.

영혼과 영성의 윤리단계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아는 단계예요. 하나님은 나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여기서는 은혜가 넘칩니다.

너무 넘치면 순교까지 생각해요. 나는 주를 위해 죽고 싶다는 열정이 막 올라와요. 은혜가 충만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내 삶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주장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많은 주의 종들이 말씀선포는 잘하는데 주를 위해 죽겠다고 하고 사명감은 넘 치는데 삶을 보면 전혀 그것을 따라가 주질 못해요.

삶은 전혀 아니에요.

주를 잘 섬긴다고 하는 자들이 윤리단계에 많아요.

육체와 영성 윤리단계는 실용단계라고 하는데 은사체험이 아니라 은사가 활발하게 나 타나는 단계입니다.

물질과 영성 윤리단계는 열심히 심고 거두는 단계입니다.

의무와 책임단계에서는 물질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알아요. 물질이 하나님의 것임을 아는 단계에요. 그래서 열심히 심고 거둡니다. 이 단계에서는 심는 이유가 내가 더 많이 거두기 위해서 심습니다. 내가 축복받기 위해 헌금하는 단계일 수 있어요.

대인과 영성 윤리단계는 너와 나 사이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인정하는 단계죠. 본능단계는 ‘나 중심의 인간관계’이고, 윤리단계는 ‘하나님 중심의 인간관계’로 맺어지 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너와 나 사이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알면 부부사이가 깨지지 않습니다. 부부중의 한명만이라도 영성훈련을 받으면 왜 하나님께서 부부를 맺어주셨는가를 알 게 됩니다.

평생 원수가 누군지 아십니까? 부부예요.

하나님이 평생 원수를 왜 부부로 붙여 주셨는가 하면 서로에게 평생원수를 붙여서 우 리를 가장 잘 깎아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데까지 이르는 데 가장 공헌을 하는 자가 사실 부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부부가 아닐 수도 있어요.

 

어떤 사람에게는 자식일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직장상사가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부모나 시부모가 될 수도 있고 이와 같이 여러 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일하고 계십니다.

그 다음에 영혼과 영성의 진리단계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억지로라도 살아가는 단계입니다. 억지로라도 나를 쳐서 말씀에 복종시키는 거죠.

복종과 순종은 다르죠. 순종은 즐거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이고 진리단계는 내 가 싫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나를 쳐서 복종 하는 단계가 진리단계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윤리단계에서 하루속히 진리단계로 넘어 가야 합니다.

오늘 나에게 고난이 오는 이유는 즉 윤리단계에 있는 자를 진리단계로 옮기시기 위해 서 우리의 삶에 고난과 환난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시편119편의 71절을 보면 “내가 고난을 통하여 주의 율례를 배웠나이다”

67절에는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 다” 72절에는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그래서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된 이유가 나의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천천 금 은보다 좋은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을 통과하면서 우리에게 실재가 된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나의 진정한 기업이 되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것만이 나의 기업이예요. 내가 정말 싫은데, 나는 정말 괴롭지만 내 몸을 쳐서 복종할 때 그 때에 나의 내면에서 하나님 의 기뻐하심과 나를 위로하심과 깊은 바다가 깊은 바다를 부르는 것 같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기가 너무 어려운데도 나를 쳐서 하나님께 복종 시킬 때에 내 안에서 올라오는 희열은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내 몸은 정말 괴롭지만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그때에 내 안에서 하나님이 노래를 부르십니다. 이것이 바로 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장성한 자는 의의 말씀을 경험하는 자입니다. 어린아이는 아직 젖을 먹는 자라로 했어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과 환난을 허락하신 이유는 내가 진리적인 사람으로 세우시 기 위함이에요.

다윗에게 사울 왕으로 하여금 그토록 쫒아 다니게 한 이유가 다윗을 진리적인 사람으 로 세우기 위해서예요. 하나님의 일을 맡기기 위해서죠.

아멘입니까?

나에게 정말 힘든 고난이 왔다라는 생각이 들면 하나님께서 그만큼 나를 사랑하시나 보다 하고 생각하세요.

 

하나님이 사랑하지 않는 자는 내버려 둬요. 왜요?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정말 사랑하는 자는 내버려 두실 수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가 그냥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거든요. “내가 단련된 후에는 정금같이 나오리이다”

정금은 24k죠?

정금을 만들려면 불순한 금을 몇 번 불에 들어갔다 나와야 되는지 아세요? 그렇죠. 24번이죠.

여러분은 몇 번이나 들어갔다 나왔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속에도 넣으시고 물속에도 넣으시는 이유가 우리로 하여금 정금 으로 만들기 위해서예요.

많이 들어갔다 나오는 사람일수록 더 깨끗해지는 거예요. 우리 인생을 은을 단련함같이 하신다고 하잖아요?

은도 몇 번이나 불속에 들어갔다 나와야 돼요. 불속에 24번을 들어갔다 나와야 정금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께 맡기세요.

설마 하나님께서 나를 죽게까지 하시겠습니까? 고난이 복 인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다윗을 생각해보세요.

내가 그 상황에 처했다고 생각해보세요.

1년도 아니고 16년간을 도망자 생활을 했으니 얼마나 기가 막혀요?

그런데 그것이 다윗을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입니다. 아멘

찬양가사 중에 이런 가사가 있죠.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그런 찬양 있죠?

여러분, 어떤 사람은 애를 낳았는데 뇌성마비예요. 평생을 아이 곁에서 애를 돌봐야 되는 거예요. 걷지도 못하고,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잘 먹지도 못하고 평생을 그 아 이 곁에서 돌봐야 되는 거예요.

그런 경우를 보면 우리는 감사할 것이 너무 많은데 감사가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그러지 마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 육체의 영성에서는 내 안에 신령한집이 지어지기 시작하는 단계인데 무슨 의미냐 하면 내가 의의 병기로 쓰임받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내 육체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움직여지기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내 육체를 거룩한 산제사로 드린다고 하잖아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해서 나의 몸을 온전히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했죠?

그것이 바로 의의 병기로 쓰임 받는 것이거든요.

 

이것이 시작 되는 단계입니다.

그 다음 물질과 영성은 하나님의 뜻대로 물질을 사용하는 단계죠.

그 다음 대인과 영성은 나에게 다가온 이웃 즉 원수로 다가왔든, 친구로 다가왔든, 성도로 다가왔든 진리적인 인간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진리적인 인간관계란 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를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 앞에 원수가 나타나면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이죠.

여러분, 원수가 내 앞에 나타났을 때 나의 존재 목적은 그를 사랑하기 위함 이라 했 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에요.

나를 접어두고 내 감정과 내가 미워하고 싶은 마음을 접어두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 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자라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이죠. 원수를 내 앞에 두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 시험에 통과하기를 바라시는 하나 님의 기대가 나에게 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 인생 앞에 시험을 갖다 두십니다.

내 앞에다가 원수를 두시고 얼마만큼 맞는 답을 써낼수 있는가 보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통과점이 있어요.

우리가 시험 볼 때 합격점이 있잖아요. 그 점수를 통과하면 똑같은 시험은 안옵니다. 통과 못하면 통과 할 때 까지 그 시험이 옵니다. 할렐루야!

빨리 통과하면 더 이로울 줄 믿습니다. 빨리 통과하세요. 기뻐하세요.

저는 저 두 집사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이 얼마나 저 분을 사랑하면 저런 시험 을 허락하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는 기쁘고 밖으로는 슬픈척해야 되고 하나

님이 사랑하셔서 그래요.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말하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다른 사람에게는 다른 형태의 고난들이 와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통과하라고 얼마만큼 통과할 수 있는 지 를 하나님이 보신다니까요. 거기서 잘 써내야 돼요.

써내는 것이 뭡니까? 삶에서 내가 실천하는 겁니다. 이를 악물고 실천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육체와 영성의 생명단계는 억지가 아니라 즐거이 순종하는 단계입니다. 내 안에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사는 삶이 생명단계입니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의의 병기로 온전하게 쓰임 받는 단계죠.

주님이 내 안에 사시니까 내 육신은 온전히 거절되고 내 안에 주님이 사시니까 내 몸 은 오직 의의 병기로만 사용되어지는 단계죠.

 

그 다음에 물질과 영성의 생명단계는 흐르는 단계입니다.

나는 오로지 정거장 일뿐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흘러 나가는 단계죠. 나에게 온 이웃을 지체로 받는 단계입니다.

지체의 개념이란 예를 들어 내 오른쪽 발가락이 곪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거든요. 여러분이나 저나 한사람은 눈이 되고 어떤 사람은 손가락, 어떤 사람은 발가락, 어떤 사람은 가장 쓸모가 없는 그것이 요 긴하다 그랬죠?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인데 오른쪽 발가락이 곪아서 아파봐요.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가 없지요. 발가락이 아픈데 내 온몸이 아픈거예요.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한 사람이 아파요.

그 사람이 정신병이 걸렸거나 모자라거나 좀 아파요. 사람들이 다 멸시해요. 나에게도 잘 못해요. 이게 아픈 거예요. 곪은 거예요.

어떤 목사님은 이런 예를 들었어요.

위가 아프대요. 위가 아프다고 해서 다 잘라내나요? 발가락이 아프다고 잘라내면 병신대는 거죠.

그럼 어떻게 해요? 발가락이 아프고 고름이 나면 고름을 짜고 약을 사서 발라 낫게 해야 되잖아요? 그게 지체의 개념이라는 거예요.

위가 아프다고 해서 위를 잘라낼 수 없잖아요. 대인과 영성의 생명단계는 참 깊어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왜 참아주고 바라고 믿고 견뎌내야 하냐면 이 지체의 개념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들은 내가 밀쳐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위가 아프면 보통 밥을 먹는 것이 아 니라 죽을 쒀서 먹고 약도 먹고 해서 위를 잘라 내는 것이 아니라 달래잖아요? 그것 처럼 대인과 영성의 생명단계는 우리에게 오는 모든 이웃을 지체의 개념으로 받는 것 입니다.

그가 아프면 나도 아픈 것이에요.

이것이 지체의 개념이에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옳고 그름에 빠져서 전혀 생명단계 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모든 단계에서 생명단계에 이르기를 원하세요.

그러나 우리가 옳고 그름에 빠져서 비난하고 정죄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진리단계와 생명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그런 삶을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때로는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해요. 여러분, 성경구절 몇 구절 찾아보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빌립보서 3장 3절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봉사할때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하라는 거예요. 나로 하지 말고요.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나로 대하지 말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대하고 나로 자 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을 신뢰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에요.

다음에 갈라디아서 2장20절 봅니다.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 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로마서 6장 13절을 봅니다.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 데서 다시 살아난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우리에게 육체를 주신 이유가 의의 병기로 쓰임 받도록 하기 위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누가복음 9장23절을 봅니다.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 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 이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내 감정도 중요하지 않고 내 생각도 중요하지 않고 내 의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 직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는 오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마음이 중요 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기쁘게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기쁘게 하는 삶으로 우리가 옮겨지 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다 같이 주여 한번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