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 시간에 연이어서 조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혼과 영성 본능단계 특징을 다루고 있습니다.
첫째는 그 영혼의 가치관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늘의 것을 사모하지만 동시에 땅의 것도 추구합니다.
두 번째는 영혼이 거듭났지만 아직도 세상을 사랑하고 자아로 삽니다. 우리 다 같이 에베소서 2장3절 보겠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 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고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며 사는 것이 진노의 자식 즉 이방인을 말하는 것인데요. 우리도 이전에는 이방인 가운데 있었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거듭나게 했음에도 불 구하고 우리가 이전의 모습대로 살고 있다는 것이죠.
옛날에 하던 짓을 그대로 하고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영혼과 영성 본능단계 특징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이전에 했던 행동들을 버려야 하는데 그대로 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죠.
에베소서 4장 13절에서 14절 말씀 보겠습니다.
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 스도라
여러분, 성장한 자는 특징이 무엇인가 하면 ‘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냥 봐 줍니다. 이것을 관용이라고 하죠.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이런 말씀이 있죠.
고린도전서 12장 31절과 13장 11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 라”
고린도전서12장은 성령의 9가지 능력적인 은사를 말씀하고 있죠.
그러면서 마지막 31절에서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면서 사랑장인 13장 으로 넘어 가죠.
여기서 더 큰 은사가 뭐라는 거예요? ‘사랑’이죠.
그리고 13장 11절에서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 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라고 말해요.
여러분, 어린 아이의 일이 뭐예요?
어린 아이는 분쟁합니다. 성장한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냥 봐줘요. 그런데 이 사랑장에서 위의 말씀이 왜 나올까요?
우리가 장성한 사람이 되기 전에는 늘 분쟁하고 삽니다. 그러나 장성한 사람이 되고 나면 분쟁을 버렸다는 것이에요.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죠.
우리가 자아로 살면 싸우게 되어 있습니다. 분쟁하고 시기하고 그러고 살죠.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향해 “너희가 아직도 어린애 모습이다. 아직도 젖을 먹고 있 다. 너희 삶속에서 교회 안에서 분쟁과 시기가 있다.” 라고 말했어요.
분쟁하고 시기하는 자는 아직 어린 아이란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에서 24절 다 같이 보겠습니다.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할렐루야!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우 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리가 뭘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진리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아까 우리가 ‘사랑’ 복음송가 불렀잖아요?
사랑은 성내지 않고 진리를 기뻐한다 곧 하나님 말씀을 기뻐하며 사는 것이 사랑이죠. 여러분, 빌립보서 3장 3절 봅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여러분, 이 구절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모두 외우세요.
우리가 교회든 어디서든 봉사할 때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어떤 목사님이 전도사 시절에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안 계실 때 교회를 청소하고 있었 어요. 아무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보신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헌신을 한 거예요. 그 때 갑자기 저기 앞에 담임목사님이 지나가시는데 갑자기 자기 마음에서 기쁨이 올 라왔답니다.
“담임목사님이 내가 혼자 청소하는 것을 보고 계시는구나.” 하고요.
그 때 자기 마음 안에서 “OO야, 너 지금 기뻐하면 안 되지 않니? 그런 마음이 막 올 라오더래요.
처음엔 하나님 앞에서 청소를 했는데 담임목사님이 지나가시는 것을 보며 자기도 모 르게 자기 마음이 청소하는 자신을 더 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올라온 거예요. 이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아직도 내 안에 처리되지 않은 자아가 꿈틀꿈틀 하는 거예요. 말씀에서 성령으로 봉사하라고 했어요.
그 다음에 뭐라고 했어요?
자랑할 것이 있으면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라고 하셨어요.
그 다음에 육체를 신뢰하지 말라고요. 육체는 선한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신뢰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이니 하나님으로 행하라는 거예요.
여러분, 제가 여기 영성훈련원에 몇 사람을 강사로 세워 봤어요. 그중에 한 분이 강사로 서기만 하면 자기가 잘되는 것을 자랑을 해요. 사도 바울 같은 분도 자기의 약함을 자랑하라고 했어요.
그것이 자기를 바로 본다는 증거예요. 약함을 자랑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알고 있는 자예요.
그래서 강사도 자기가 실패한 얘기도 해야 하는 거예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자랑할 분은 오직 예수 밖에 없어요.
예수로 자랑해야 돼요.
이 세상에서 상급 받으면 성경에서 하늘나라에서는 상급이 없다고 했어요. 우리가 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요.
우리가 은혜 받은 것을 간증하다 보면 자기 자신이 높아져 있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간 증도 조심해야 할 것이 간증하고 자신이 높아져 있다면 거기서부터 손해 보는 거예요. 듣는 사람은 은혜가 되었을지 모르지만 자기는 이미 넘어지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이런 생각까지 들어야 됩니다.
“아, 내가 넘어질 수 있다.” 이 생각을 할 수 있어야 돼요. 왜냐구요? 내가 남보다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남보다 높아지는 것이 좋으면 제 말이 귀에 안 들어옵니다.
하버드대학교 신학교 교수로 계셨던 분인데 하버드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고 전 세계 를 다니면서 세미나를 했어요.
헨리 나우엔 들어보셨죠?
이 분이 책을 쓰셨는데 이 책을 읽어 보세요. ‘그리스도의 길과 세상의 길’ 이란 소책자예요.
이 분은 교수직을 포기하고 영국의 정신박약아 공동체에 들어가서 John이란 20세 된 청년을 아침부터 깨워서 씻기고 밥 먹이고 책 읽어 주고 성경 읽어 주고 하면서 잠들 때까지 돌봅니다.
거기에서 그 분의 영성이 피어나기 시작해요. 그리스도의 길은 하향길 이에요.
세상길은 상향길이에요.
내가 그리스도의 길을 택할 것인가? 세상의 길을 택할 것인가? 가 문제지요. 그래서 이 책이 참 은혜가 됩니다.
나는 상향길을 택해서 살고 있는지, 하향길을 택해서 살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 점검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면서도 내가 누구 앞에서 높아지지는 않았는지 매일 점검하며 살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세 번째 본능단계의 특징은 ‘자기를 위해서 사는 것’ 입니다.
여러분, 제가 영성훈련 처음 왔을 때 저는 제가 참 잘난 줄 알았어요. 전도사였고, 신 학교 다녔고, 하나님 음성을 들었거든요. 근데 영성훈련하면서 어떤 목사님이 제 머리 에 손을 얹고 기도하면서 “하나님 아버지, 이 자매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아직도 자기가 허상인줄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그러시는 거예요. 그 때 저는 망치로 뒤통수를 크게 한 대 맞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 어요.
“아니, 내가 허상이라니? 세상만 허상인 줄 알았는데 내가 허상이라니?
제가 주의 길을 간 것도 세상이 허상이란 것을 깨달아서 주의 길을 간 거예요. 그런 데 그분은 저를 허상이라고 하는 거예요.
저는 그분의 말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어 요.
내가 허상이란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내가 나를 위해서 산다는 거예요.
여러분이 들으면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제가 하나님께 은혜 받고 “백만 명의 영혼 을 구원하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했었어요. 그때 어떤 부흥강사가 와서 여러분의 꿈을 크게 하십시오. 두 배로 크게 하십시오.
그래서 제가 이백만 명을 구했어요.
그 때 또 어떤 부흥강사가 와서 여러분의 꿈을 더 크게 더 크게 가지십시오. 그래서 5억까지 되었죠.
그래서 누가 “당신의 꿈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보면 저는 “5억의 영혼구원입니 다.”
그런데 이 꿈이 제가 꾼 꿈이지 하나님이 주신 꿈이 아니었던 거예요. 그 꿈 안에는 ‘내가 잘되고 싶다. 내가 뜨고 싶다. 내가 유명해지고 싶다.’ 이런 것들이 다 섞여 있 더란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허상인데 우리는 이것이 허상인 줄 모르고 살아요. 내가 맘먹고 기도 만 하면 될 것 이라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기도해도 하 나님의 뜻이 아니면 안 되는 거예요. 이게 허상입니다.
결국 나를 섬기는 거예요.
내가 존경받고 싶고 잘했다는 얘기 듣고 싶고 이것이 다 허상입니다.
저는 그 목사님이 저에게 그렇게 기도할 때 저는 그 말이 제게 들어오질 않았어요. 도대체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것인지 몰랐어요.
그러나 영성훈련을 받으면서 나 자신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고 허상인 것을 발견하 게 되었어요.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 허상인 것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 줄 아세요? 저는 정말 이 세상만 허상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허상이 ‘나’더란 것입니다. 여러분도 꼭 이것을 발견하셔야 됩니다.
내가 허상인 것을 발견하면 하나님은 거기서부터 시작하십니다.
이 시대에 가장 큰 우상은 ‘자신’이에요.
자신이 높아지고 싶고 자신이 대접 받고 싶고.. 내가 허상이에요. 나를 위해서 살면 안돼요.
나는 오직 무익한 종일뿐이고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가 허상이란 것을 마음으로 깨달아져야 합니다.
내가 허상이란 것을 깨달은 사람을 나를 위해 살지 않습니다.
나에게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어요.
여러분, 예수를 믿어도 자신을 섬기는 사람이 있어요.
정말 하나님을 섬겨야 되는데 결국은 교회에서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장로가 되 고, 전도사가 되고, 목사가 되어도 자기 자신을 섬기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깨달아야 할 것은 내가 허상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럼 실상은 누구일까요? 실상은 하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다 허상이에요. 꿈꾸는 거예요. 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여러분이나 저나 우리가 가야할 길은 내가 아무것도 아니란 것이 느껴져야 해요. 그리고 나를 위해 사는 것만큼 부질없는 일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순수한 것을 받으세요.
순수한 헌신, 순수한 마음과 동기.. 하나님은 비워지고 깨끗한 그릇을 쓰세요. “얼마나 귀하고 얼마나 천한가?” 가 아니라 천해도 안이 깨끗한 그릇을 쓰세요.
다음에는 영의 개발에 대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2장 10절에서 13절 말씀 찾아봅니다.
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 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도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 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성령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신다는 거죠.
성령님이 하나님의 사정을 아시니까 하나님의 뜻을 아신다는 거죠. 하나님의 뜻을 아셔서 우리에게 알려주신다는 거예요.
13절에서 우리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안하고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한다고 하죠.
여러분, 우리 인간은 육신과 영으로 되어 있어요. 육신은 혼과 육체를 말해요.
혼은 우리 뇌의 작용으로 인한 지, 정, 의 예요.
우리가 보통 말하는 마음이에요. 곧 생각일수도 있고 이것이 혼이에요. 혼과 육체를 합해서 육신이라고 하고 하나님 앞에서는 진짜 ‘나’는 영이죠. 이 두 개가 합쳐져서 사람 곧 ‘나’를 이루고 있어요.
진짜 ‘나’는 육신은 벗고 갈 것이므로 ‘영’이지요.
영 안에는 성령이 와 계시면서 우리 영에게 알려주시죠. 왜냐하면 ‘영’과 ‘영’이 교통하거든요.
그래서 모든 일들을 영으로 봐야 해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려면 우리가 영으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해요. 영으로 생각하고 영으로 느끼고 그렇게 해야 하나님을 알 수가 있어요.
영과 영의 교통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사람들은 육체로 하나님을 알려고 해요.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이 영이시니 나의 영과 교통하시는 거예요.
내 육신과 교통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영이신데 어떻게 육체와 교통하시겠습니까? 가끔 하나님은 은사를 통해서 우리 육체를 사용해서 병을 낫게 하세요.
그것을 교통이라고 하지는 않아요. 나를 쓰신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집회에 가서 넘어지거나 벌벌떨거나 하고 오면 하나님을 만나고 왔 다고 말해요.
그것은 교통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잠시 임하셔서 나에게 현상이 나타난 것뿐이에요.
예를 들어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셔서 사람들이 방언을 했잖아요? 방언 자체가 하나님이 아니잖아요?
현상일 뿐이죠. 내가 현상을 맛보았다고 해서 내가 하나님과 교통한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혼동하는 것이 뭐냐 하면 내 육체가 경험한 것을 하나님과 교통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잘못된 경우에 늘 현상이 나타나는 것만 쫒아다녀요. 한번 넘어지면 하나님을 한번 만났고, 두 번 넘어지면 두 번 만났고... 하면서 제가 5년 동안이나 쫒아 다녔다니까요.
베니힌 집회를 얼마나 쫒아 다녔는지요. 혼자서 운전하면서 방언기도 하면서 혼자 부 흥회 하면서 그렇게 쫒아 다녔어요.
그런데 가면 하나님의 역사가 느껴져요. 그런데 제가 그런 곳에만 쫒아 다녔으면 제 가 어떻게 되었겠어요?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은 어떤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제가 많이 넘어져 봤어요. 부흥회 하는 곳 마다 가서 안수받고 넘어지고 일어나 보면 아무것도 없어요.
“이게 뭔가?”
그래서 제가 넘어지는 상태에서 “하나님, 말씀 주세요.”하면 안주시더라고요. “이건 하나님과 교통도 아니고 도대체 이게 뭐야?”
“내가 뭘 얻고 왔지?”
사실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말씀을 갖고 온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허전하고 허황되고요. 여러분, 하나님과의 교통은 ‘영’과 ‘영’이 하는 거예요.
내 육체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 아니에요. 내 육체를 잠깐 썼을 뿐이죠.
여러분, 자폐증 아이를 보면 모든 기능이 있지만 그 기능을 안쓰고 혼자 갇혀서 지내 요.
영적인 자폐증도 비슷한 증상을 보여요. 그래서 우리는 ‘영의 개발’이라는 말을 써요.
분명히 나는 영적 존재인데 매일 육신만 쓰는 거예요. 이것을 우리는 다른 말로 영적자폐증 이라고 해요. 보통 사람들은 영을 사용하지 않고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이 참 ‘나’는 영인 것을 알고 모든 상황에서 영으로 반응하고 영으로 느끼고 영으로 듣고 보고 하는 훈련을 지금부터 해야 돼요.
이것이 ‘개발’입니다.
‘개발’은 있는 것을 찾아내어 쓰는 거예요.
‘영의 개발’은 내 안에 있는 영을 깨우는 작업이에요.
우리가 육신이 보고 듣고 말하고 하잖아요. 내 영도 똑같은 기능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내 안에 또 하나의 내가 있다고 하잖아요. 영이 보고 듣고 느끼고 말한다니까 요.
이제부터 내 육신을 육신으로만 그럴 것이 아니라 내 영을 깨워서 영으로 보고 듣고 영으로 말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아멘
영의 기능에는 양심, 직관, 영교가 있어요.
이 세 가지 기능을 통해서 영이 보고 듣고 느끼게 돼요.
앞으로는 여러분이 영의 기능을 통해서 영을 개발하기 시작해야 돼요. 영으로 받고 영으로 느끼고 영으로 듣고 이것이 영의 개발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주여 한번 부르고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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