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라목사님 바른영성훈련

영성훈련 아홉달째 대인과 영성 II 4-2 이웃은 하나님의 형상/서사라목사

하늘이슬 2024. 6. 29. 09:34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참 많으신 하나님, 감사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을 닮아간다는 것이, 주님의 형상이 내 안에 조금이라도 이루어진다는 것이 무 엇인지 우리가 깨닫게 하시고 느끼게 하시고 실제로 이루어지는 그 과정 속에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많이 넘어진다 할지라도 의인은 넘어지지 않는 자가 아니라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 꼿꼿이 서서 가는 자라고 하였사오니 주님 우리 가 동일한 사건에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는 반드시 일어나서 우리 주님 가신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우리 주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와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사옵고 이모든 말씀 우리 주 예 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 드렸사옵나이다. 아멘

오늘 이 시간은 대인과 영성 생명단계 훈련에 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생명단계 훈련은 첫째 ‘진리를 행하는 자가 되자’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많이 안다고 생각하죠? 성경도 많이 읽으니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데 “너희가 진리를 알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고 하 셨죠.

그런데 이 자유함이 언제 오는가 하면 행할 때 옵니다.

내가 그 말씀을 지식적으로 안다고 해서 자유함이 오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행 할 때 우리에게 자유함이 오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지니’ 이 말은 내가 진리를 지식으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리를 행 함으로 그 진리 안에 들어감으로 안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119편에 56절을 보겠습니다.

“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

여러분, 우리의 진짜 소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저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이 땅에 진짜 우리의 소유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이 땅에는 나에게 속한 것이 없어요. 내 것이 없어요.

내 소유는 우리가 이 땅의 생을 마치고 저 하늘나라에 갔을 때 진짜 소유가 거기에 있는 거예요. 할렐루야!

시편에서 다윗은 내 소유 즉 하늘나라에서의 내 소유를 말하는데 이것은 주의 법도를

 

지킨 것이라고 말해요.

우리가 주의 법을 지킨 것만 내 소유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오늘 이 말씀을 받아 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날마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 것만 저 하늘나라에 가서 내 상으 로 받을 수가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가장 먼저 여러분의 가치관이 변하지 않으면 안돼요. 저 하늘나라에 쌓을 나의 소유를 위해 살아야지요.

내 가치관이 땅에 있으면 내 소유가 땅에 있는 줄 알고 땅에다가 모으려고 해요. 우 리 진짜 소유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 따라 산 것 만큼 내 소유예요.

날마다 하나님 말씀 앞에 나를 쳐서 복종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영성훈련을 왜 왔는가 하면 진리를 행하는 자가 되기 위해 왔어요. 할렐루 야!

다른 사람보다도 영원한 곳에서 승리하기 위해 이곳에 온줄 믿습니다.

여러분, 진리를 행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면 우리 삶에 오는 모든 상황들을 기 회로 받아들여야 해요.

우리 삶에 문제나 사건이 생기든, 환경적으로 밀어붙이든 간에

우리가 그 상황 속에서 하늘나라에 상을 쌓을 수 있는 기회로 삼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지를 살펴보지 않는다면 내가 하늘나라에 상을 쌓고 있는 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매순간 내가 하나님 앞에 상을 쌓는 기회를 삼는 자가 되려면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지를 살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예를 들어 여러분 앞에 영혼이 나타났을 때 소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하셨으니까 그 영혼을 주님께 하듯 잘 섬기라고 보내주신 것으로 알아야 돼요.

이런 일들을 기회로 삼으라는 거예요.

물론 사랑은 희생이에요. 그러나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섬길 수 있는 기회, 저 하늘나라에 내 소유를 남길 수 있는 기회로 받아야 돼요.

그렇게 여러분을 바꿔가야 됩니다.

여러분이 나중에 여러분을 가르칠 수 있는 자가 되려면 먼저 나를 가르치지 않으면 절대로 남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나를 훈련하는 자가 되지 않으면 결코 남을 가르칠 수 없고 훈련시킬 수도 없어요. 모든 상황 속에서 먼저 나를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해요.

그리할 때 하나님이 남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와 세워주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주님의 움직임을 따라 행하는 훈련을 하자’입니다. 내 안에 주님이 계시죠.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의 움직임을 파악해서 순종하라’는 거예요.

이 말이 조금 어려울 수 있는데 쉽게 말하자면 나는 이 상황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있지만,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은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살피는 거예요.

여러분이 3년 훈련을 마치게 되면 기본강의는 마치게 되는데, 강의는 먼저 나갑니다. 강의는 실제보다 훨씬 먼저 나갑니다.

왜냐하면 먼저 배워야 여러분의 삶에서 실제 상황이 주어졌을 때 “아! 이것이구나.” 하고 깨달아지거든요.

그래서 여러분이 우리가 영성훈련하면 하루에 50번씩 묻는 훈련을 하라고 하죠. 하라는 대로 하는 사람은 그만큼 훈련되어져서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게 되고, 하라는 대로 하지 않으면 그 만큼 듣지 못합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지금 내 안에 계신 주님은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물어봐서 아는 것이 아니라 즉시 느끼는 거예요. 이것은 좀 더 고차원적이에요.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의 뜻이 파악이 안 되어서 물어보는 거예요. 내 안에 계신 하나 님의 뜻이 파악이 되면 물어볼 필요가 없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아니까요. 지금부터라도 하나님께 물어보는 훈련을 하루에 50번씩 열심히 하세요.

아멘입니까?

그러다보면 영적지각이 더욱 더 넓혀지고 형성되어져서 물어보지 않아도 내 안에 계 신 하나님이 뭘 원하시는가가 느껴져요.

그 움직임에 따라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훈련이에요.

여러분, 생명이 무엇인가에 대해 보겠습니다. 주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가 생명이죠. 주님이 생명 자체이시니까요.

마태복음 20장 1절에서 16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 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

 

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1절에 천국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 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다고 하죠. 제 삼시는 아홉시죠. 제 삼시에 장터에 놀고 있는 사람들에게 와서 일하라고 하고 하루 품삯을 주는 거예요.

제육시(정오 12시)에 들어온 자, 제구시(오후 3시)에 들어온 자, 예수님은 제 삼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제구시에 운명하셨죠?

제십일시(오후 5시)에 들어온 자도 포도원에 들어와서 일하라고 하고 모든 사람을 똑 같이 하루 품삯 한 데나리온을 줍니다.

이것이 주님의 마음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은 어때요?

한 데나리온은 하루 품삯인데 하루 품삯이 있어야 가족들이 하루를 사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의 마음은 제삼시에 들어왔든, 제구시에 들어왔든,

제십일시에 들어왔든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시는 거예요.

이것이 생명의 마음이에요. 주님은 항상 생명을 주시고 생명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 리 사람들은 뭘 따집니까?

시비를 가린다는 거예요.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이 옳고 그름이 아니라는 거예요.

주님이 원하지 않으시면 내 생각은 아무리 옳게 보여도 틀렸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이 말씀에서 주님은 생명이 뭔지를 말씀하고 있어요.

그 사람들은 따지잖아요?

“저 사람은 나보다 늦게 들어 와서 일을 조금 했는데 왜 똑같이 품삯을 줍니까?” 그러나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세요?

똑같이 주는 것이 내 마음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해야 되는 거예요. 예수님이 옳다고 하시면 옳은 거예요. 할렐루야!

우리가 옳고 그름을 따지면 결코 우리가 생명의 삶을 살 수가 없다는 거예요. 할렐루 야!

여러분, 제가 누누이 얘기하지만 여러분이 이 모습을 벗지 않으면 영성도 입을 수 없 고 사람을 진짜 사랑할 수도 없고 영혼을 진짜 사랑할 수도 없고 열매를 맺을 수도 없어요.

이 시비를 가리는 마음을 내려놓지 않는 한, 영성훈련을 10년을 해도 아무 소용이 없 어요.

주님이 뭘 원하시는가를 찾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살필 수 있는 여러분과 제게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잘못했다 하더라도 여러분 안에 계신 주님이 용서하길 원하시면 용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사랑의 열매를 점검하라’입니다.

여러분, 나는 저 사람을 사랑했다고 해요. 그런데 주님이 보시기에 그리고 그 사람이 받아들이기에 전혀 사랑이 아닌 거예요.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점검해야 합니다.

첫째는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시는가?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시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러분의 양심에 들어오는 모든 책망들을 들어 올려야 돼요.

그래야 하나님이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을 기쁘게 받으신다는 것입니 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때 얼마만큼 해야 될까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만큼이죠. 나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주님은 더 사랑 하라고 하세요. 한 단계 더 나아가라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 힘으로 조금 사랑하고 사랑했다고 하잖아요?

하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주기를 원하세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만큼 사랑할 수 있 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는 사랑의 열매를 점검해야 하는데, 내가 사랑을 주고 있는 그 사람이 기뻐하 는가를 봐야 해요. 내 사랑을 받는 사람이 기뻐하는가를 봐야 해요.

예를 들어 어떤 목사님이 계신데 생선을 못 먹는대요. 그런데 점심시간에 권사님들이 main dish로 꼭 생선을 올려놓는대요.

목사님은 생선을 못 먹기 때문에 그대로 생선이 남게 되는 거죠. 그러면 권사님들이 불 평하는 거예요. 열심히 조리했는데 왜 안 먹는가 하고요. 그런데 그 권사님들이 목사님이

 

생선을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요리해놓고 먹으라는 거예요. 이것이 섬김입니까? 아니죠.

참된 섬김이 뭐예요?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거예요. 내 생각대로 해주는 것이 아니예요.

가인이 그랬잖아요. 하나님은 다른 것을 원하시는데.

우리가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내 방식대로 사랑한다면 사랑이 아니라는 거죠. 그게 섬김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참된 섬김이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안에서 어떤 의문이 생길 수 있어요.

내가 그렇게까지 해주면 그 사람의 버릇이 더 나빠져서 더 무시하고 더 대들고 하나 님 말씀에도 안 맞는 것 같고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아니라 여러분을 훈련하시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 문제에서 통과되면 남편도 돌아옵니다.

그가 나를 괴롭게 할지라도 지금 하나님은 나를 훈련하고 계시는 거예요.

지금 그가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고 내가 이렇게 해주면 그가 나를 더 무시하고 못살 게 구니까 해주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아니에요.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것까지 넘어가길 원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할 때 여러분이 통과하는 겁니다. 아멘입니까?

여러분이 그렇게 통과되면 더 이상 그가 그렇게 하라고 해도 안 합니다.

참된 섬김이라고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원 하는 방식으로 섬겨 주는 것입니다.

사랑의 열매를 이 두 가지 면에서 점검해야 됩니다.

그 다음에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그 사람을 사랑했는데 그 사람은 계속 해서 악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이런 경우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은 “악을 선으로 갚으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진리예요. 그렇게 해야 이깁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무엇으로 이겼을까요? 사랑으로 이겼어요.

여러분도 악한 사람을 이기려면 사랑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쓰신 방법이에요.

우리도 예수님이 쓰신 방법을 써야 됩니다. 할렐루야!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말씀에 순종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에 상급이 됩니다.

진리를 행한 것만이 나에게 상이 된다는 거예요. 아멘입니까?

 

내가 아무리 주님이 원하시는 만큼 사랑하려고 해도 악으로 대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럴 때 나는 진리만 행하면 되는 겁니다. 아멘입니까?

우리가 진리를 행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내 마음에서 밀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아무리 악한 행위를 해도 그를 내 마음 안에 두는 거예요. 그를 내 마음 안에 두는 것하고 내 마음 밖으로 버리는 것하고는 천지 차이입니다.

아무리 그가 악한 행위를 해도 그를 내 마음 안에 두고 그를 위해 기도해주고 축복할 수 있는 자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네 번째는 ‘민감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시고 어떻게 하라고 감동을 주시는데 그 때 ‘민감해 서 즉각 행하라’는 것입니다.

즉각 행하지 않으면 타협이 되고 나중에는 안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훈련받고 있 는 것이므로 내 안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발견되면 빨리 행할 수 있기를 주의 이 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저도 이 영성훈련에 오기 전에는 왜 내 인생에서 이런 사건과 문제가 터지고 환경적으로 왜 이런 상황들이 벌어지는지에 대한 지각이 열리지 않았어요. 그냥 그 문제만 피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저 사람 안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제가 영성훈련을 받으면서 하나님이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를 알게 되니 까 이제는 그 문제를 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와 사건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가를 찾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문제가 더 이상 계속해서 나에게 오지 않게 되고, 그리고 토기장이가 진흙 을 가지고 쓸 만한 그릇을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 을 알게 됩니다.

문제와 사건과 사람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왜 이 문제를 보내셨 고, 이 사건을 주셨고, 이 사람을 보내셨는지에 대해서 내가 알려고, 살피려고, 파악 하려고 애를 쓰니까 내 스스로가 하나님의 그 뜻 앞에 내가 굴복되더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굴복되어지는 자가 훈련되어지는 자입니다. 굴복되지 않으면 훈련되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각 문제와 사건과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발견되거든 즉각 순종하고 그 뜻에 대해 민감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자신들을 잘 훈련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 ‘자기를 드림에 아끼지 마라’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앞에는 기회가 많아요. 헌신할 기회가 많이 온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

 

는 뭐가 부족하고, 내가 섬겨야 할 부분이 이것인 것 같고... 이렇게 보일 때 자기를 드림에 아끼지 않아야 됩니다. 이것이 환경을 통한 하나님의 음성이에요.

여러분이 볼 때 그 부족한 부분을 보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 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아낌으로 드리지 못하고 이것을 넘어서지 못하면 여러분의 상 급이 하늘나라에 쌓이지 않습니다.

인색함에서 나를 넘어서야 하고 나를 드림에 있어서 나를 넘어서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헌신을 순간순간 어디에서나 기쁘게 받으세요.

어디나 다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를 훈련한다는 말이 있죠?

자기를 훈련하는 자가 빨리 성장합니다.

그래서 어떤 면이든 자기의 부족함이 보이면 하나님 앞에서 제가 이것을 넘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시라고 기도하십시오.

특히 여러분이 분명코 하기 싫은 것이 있어요. 그러면 반드시 그것을 넘어서야 해요. 이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바꿔야 해요. 억지로 하는 것은 받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을 왜 모르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즐겁게 헌신할 기회를 주세요.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에요.

하기 싫은 것을 즐거움으로 할 수 있도록 바꿔보세요. 할렐루야! 하늘나라의 상이 될 줄로 믿습니다.

섬김을 받는 자가 상이 있어요? 섬기는 자가 상이 있어요?

섬기는 자죠. 그런데 우리의 실제 모습은 섬김을 받으려고 해요. 이제부터 섬기는 자 로 우리가 바뀌어야 해요.

내가 요리를 잘해서 먹어주는 사람이 많으면 얼마나 감사해요. 제가 요리를 좋아해요.

미국 동부의 학교 기숙사에서 매번 닭다리 요리해 놓고 친구들 먹으러 오라고 하고 그랬어요. 친구들 실컷 먹게 하고 내가 부족한 부분 좀 가르쳐 달라고 하고 그랬었어 요.

여러분, 정말 내 마음에 우러나서 한 영혼 한 영혼을 섬기고자 할 때 하늘나라에 상 이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자신을 계속 훈련시켜야 돼요.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좋지 않은 생각들에 대해 “주님 제가 바뀌어 지겠습니다.” 기도하며 훈련해야 돼요.

여러분, 가정에서부터 섬기는 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혼을 왜 합니까?

내가 섬기려고 하는 거예요. 내가 섬김을 받으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여러분, 내 남편으로 하여금 상을 받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내가 어떻게 하면 됩 니까? 내가 섬김을 받으면 돼요.

그런데 남편이 여러분을 섬겨주던가요?

안 섬겨주죠. 그래서 남편을 상 받게 해주고 싶지만 남편이 섬겨주지 않으니까 나라 도 상 받아야 될 것 아닙니까?

남편도 영성훈련의 자리로 데려와야 하나님의 뜻을 알게 돼요. 내가 가정에서 섬기는 자가 되면 내가 상 받게 돼요.

이것은 상대가 물 떠오라고 해서 갖다 준다고 섬기는 것이 아니에요. 상대를 미워하 고 마음으로 품지 못하고 섬긴다면 그것은 섬기는 것이 아니에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그를 사랑으로 섬기는 거예요.

내가 하나님 때문에 섬기는 자로 사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래야 여러분에게 상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38절을 보겠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 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 라”

주님의 말씀이죠.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준다 고 말씀하시죠.

여러분, 주는데 있어서 인색하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더 많이 주실 것이니까요. 아멘

여러분이 조금 섬겼는데 하나님이 많이 주실 수 있어요.

내가 조금 하나님을 위해 헌신했는데 자녀들이 너무 잘 되는 거예요. 이것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은 내가 재물을 조금 섬긴 것 밖에 없는데 자녀들을 잘되게 하시고 비교할 수 없는 큰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는 것에 있어서 인색하지 않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 여섯 번째는 ‘생명은 흐른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여러분이 생명의 삶을 살고자 할 때 생명의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을 멈추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위에서 계속 채워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말 그것을 기회로 삼고 내 것을 희생하고 내가 좀 손해보고 계속해서 생명의 삶을 살아갈 때 위에서 부어주십니다.

그러나 내가 가다가 멈추면 그것은 생명의 삶이 아니예요.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영혼들을 보내주십니다. 우리는 섬길 곳이 많아요.

이곳 섬기고 나면 저기 섬길 곳이 보이고 이것 끝났다고 생각하면 또 하나가 오고.. 하나님께서 계속 보여 주셔요.

우리가 섬기는 밭을 계속 찾으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생명은 흐르는 것입니다.

위에서 부어주시고 나에게서는 계속 흘러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멘

빌립보서 3장 12절에서 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 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우리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어요. 그래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푯 대를 향하여 계속해서 달려 나갈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는 대인과 영성의 생명단계에서 ‘함정’이 있습니다. 무익한 말에 생명이 새어나가는 것입니다.

대인과 영성에서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그 영혼을 하나님께 얻어 드리는 것이 목적입 니다.

정말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지기까지 성경에서는 뭐라고 말합니까? “너희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고 말합니다.

가다가 포기하는 것이 아니에요.

“주님, 이제 그만하고 싶습니다.” 가 아니에요.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자가 생명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가다가 중단하면 사 단이 주는 생각이에요.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사단이 이제는 그만 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꾸 집어넣어줍니 다.

 

가룟 유다에게 예수를 팔 생각을 마귀가 집어넣은 것처럼 사단이 우리 머리에 그런 생각을 계속 집어넣어줍니다.

마귀가 주는 생각과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을 어떻게 구분한다구요? 마귀가 주는 생각은 머리로 들어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생각은 내 마음 안에서부터 올라옵니다. “그만하고 싶다”는 생각은 어디로 들어와요? 머리로 들어옵니다. 인내를 이루되 온전히 이루라고 하잖아요.

자, 무익한 말에 생명이 새어나간다고 하면서 왜 이 얘기를 하는가 하면 예를 들어보 겠습니다.

여러분이 한 영혼을 마음 안에 품었어요.

“주여 제가 저 영혼을 끝까지 사랑하겠습니다.”

인내하고 참고 기다리고 그러겠다고 하나님 앞에 결심하고 그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나에게 해를 끼치고 나를 괴롭히고 또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이럴 때에 성경의 말씀은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합니다. 그런데 무익한 말로 인해 생명이 새어나갑니다.

어디서부터 생명이 새어나가는가 하면 내가 그 영혼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예 요.

내가 그 영혼을 품고 있으려면 싹이 트기 위해서 적당한 온도가 있어야 하고 습기도 있어야 하는데 인내를 온전히 이루지 못해서 그 영혼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면 그 영 혼을 품고 있던 생명이 새어나가기 시작합니다.

무익한 말을 통해서 그 영혼에 대한 생명이 열매를 맺으려고 내 안에 잉태되었는데 그 생명이 쓰윽 새어 나가버립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한 수고가 헛된 것이 되어버립니다. 여러분, 잘 살펴보세요.

내가 그 영혼을 참아주고 바라고 믿어주고 인내해 왔는데 이 생명이 어디서부터 새어 나가는가 하면 입에서부터 새어 나간 거예요.

결국 이 말씀이 무슨 말인가 하면 ‘입조심 하라’는 것입니다. 그 영혼에 대해 끝까지 침묵하고 열매 맺기까지요.

썩어도 내가 썩어야 돼요. 그럴 때 열매 맺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이것을 지키지 못해서 많은 영혼들을 놓쳐요.

하나님 앞에 열매를 맺어 드리려고 했는데 이것 때문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거예요. 우리의 무익한 말 때문에요.

다른 사람에게 가서 수군거림 때문에요.

내가 그 영혼을 인내하고 바라고 믿고 참아내려고 그랬는데 다른 사람에게 가서 수군 거림으로 내 안에 잉태되었던 생명이 새어 나가버려요.

 

그래서 지금까지 한 일은 다 물거품이 되고 마는 거예요.

끝까지 승리할 수 있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