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인과 영성 II - 훈련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이 시간도 주님께서 축복하셔서 각자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면서 말씀 전하는 자 가 말씀을 전할 때에 그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들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 들의 인식과 모든 집중력이 하나님께 초점이 맞춰지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사옵고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은 대인과 영성 훈련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인간관계는 누구로부터 비롯됩니까? 하나님입니다. 내가 원해서도 아니고 하나님이 set up 해 놓으신 겁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의 모습으로 빚어질 수가 없 는 거예요. 할렐루야!
성경을 봐도 그렇죠?
모든 인간관계가 하나님이 다 set up 해 놓으신 겁니다. 아멘입니까?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돼요?
잘 만들어지면 돼요. 아멘입니까?
잘 만들어 지려고 하면 내가 힘이 팍 팍 솟아나면 되겠습니까? 힘이 빠져야 돼요. 우리는 죽어야죠.
하나님이 해놓으셨는데 그것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잖아요?
그 속에서 내가 힘이 빠지고 그들을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잘 섬길 수 있을 까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set up 해놓은 환경을 우리는 바꿀 수 없어요.
내가 바꾸겠다고 뛰쳐나오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경륜이 이상하게 끝나버려요. 물론 어떤 분들은 “한번 끝나고 나면 다른 기회가 있더라구요.” 말하는데 너무 많이 돌아가요.
하나님의 원래 뜻은 그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원래 죄인이어서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합당화 시킬려고 “그 인간 관계가 끝나면 다른 인간관계를 가지면 되죠” 그렇게 말해요.
그게 아니에요. 그런 분들 보면 평생 그렇게 살고 있어요. 아시죠?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인간관계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정해야 돼요. 그럼 내가 불평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불평하고 원망할 수 없어요. 왜요? 하나님이 하고 계시기 때문에요. 아멘
왜 저 사람이 저렇게 안 바뀌나? 왜요? 나를 위해서요. 그 사람이 많이 바뀌면 내가 만들어지지 않아요. 아멘
우리도 하나님의 손에 있지만 우리와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 그분들도 누구의 손에 있 습니까? 하나님의 손에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맺어 주신 인간관계를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가 아니라 어떻 게 해야 한다구요? 감사해야 합니다.
왜요? 나를 진리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하여 그들이 지금 나에게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요.
아까 우리가 사랑은 오래참고 성내지 않으며 진리만을 기뻐한다고 한 것처럼
정말 우리를 진리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금 나의 인간관계를 오늘도 펼치시고 내일도 펼치실 것이며 과거에도 펼치셨고 누구를 위해서요?
나를 위해서죠. 할렐루야!
우리 다 같이 따라서 해보세요.
“나에게 있는 모든 인간관계는 하나님이 하고 계시는 것이다.” 누구를 위해서요? 나를 위해서죠.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의 파트너에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랑해야 해요. 하나님의 목적이 뭐냐 하면 정말 그분들에 대해 나에게서 하나님의 사랑이 나가기까지 사랑해야 해요.
이것이 대인관계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명적인 인간관계예요.
생명적인 인간관계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붙여진 파트너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는 것이거든요.
이 사랑이 누구로부터 나가는가 하면 나로부터 나가는 것은 참 인색하고 제한적이지 만 내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그것 즉 그렇게 되기까지 그들을 사랑하는데 있 어서 나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나는 육체이기 때문에 선한 것이 나갈 수가 없어요. 그 래서 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이 파트너에게 하나님을 주기까지 우리를 훈련시키신다 는 거예요.
여러분, 내가 하나님을 주기까지 통과되면 어떻게 될까요?
파트너가 더 이상 파트너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역자로 변합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이것이 진리입니다. 이것이 과정이에요.
그래서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면 “내가 너희들에게 검을 준다”고 하셨어요. 검을 주는 이유가 뭐냐 하면 정말 화평을 주시려고요.
검을 먼저 주셔서 불화하게 한 다음에 정말 우리가 만들어져서 주님의 이름으로 화평 케 하는 자로 만드시기 위해 먼저 검을 주신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인간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고 우리가 거기에 굴복되면
우리는 좁은 문, 좁은 길, 생명의 길, 승리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멘입니 까?
여러분이나 저나 이 길을 반드시 가야 돼요.
하나님이 우리가 결국에는 이 길을 가게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사건을 만드십니다. 우 리가 가야할 길은 정해져 있어요. 안 가니까 문제예요.
그래서 여기서 터지고, 저기서 터지고 그래요. 할렐루야!
여러분, 모든 인간관계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관계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는가 하면 사람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를 향해서 인간관계를 가져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을 향해서 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육신은 어때요?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떻게 했고, 그 사람의 행동이 이랬고 저랬고, 이것은 틀렸고 저 것도 틀렸고 이런 것만 생각하거든요. 이게 육신이에요.
뭘 생각한다구요? 남의 허물, 잘못한 것 이런 것들을 자꾸 생각하는 것이 육신이에 요.
성경은 육신을 거절하고 영의 생각을 내 생각으로 받아들이라고 했어요.
인간관계 속에서 자꾸만 내가 육신적으로 생각하면 그 인간관계가 제대로 될 리가 없 어요. 너와 사이에 크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생각해야 돼요.
너와 나는 작아요. 우리는 미물이에요.
너와 나는 작은데 그 사이에는 크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거예요.
크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작은 우리들이 작은 그 사람에게 잘 해야 되는 거예요. 모 든 인간관계가 하나님이 우선입니다. 아멘.
하나님이 하셨어요.
여러분이 영성훈련을 받으면서 무엇이 변하는가 하면 사람보다 하나님이 먼저 보여 요. 이것이 훈련이에요.
사람이 육신이어서 먼저 나에게서 올라오는 것이 있지만 그 사이에 계시는 크신 하나 님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는 거예요. 아멘입니까?
그래서 금방 내 육신이 스르르 들어가요.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 아멘!
너와 나 사이에는 누가 계시다구요? 하나님이죠.
이웃에게 행하는 것이 사실은 누구에 대해서 하는 것이에요? 실상은 하나님에 대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하는 것이라고 여기고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관계를 내 육신대로 내 멋대로 치고받고 살면 안 되는 거예요.
마태복음 25장 40절 보겠습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 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주님은 이웃에 대하여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을 주님에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 모두가 지극히 작은 자예요.
우리 이웃은 전부 다 지극히 작은 자 중에 하나예요. 아멘입니까?
길가에 걸인 한 사람도 지극히 작은 자 중에 하나죠.
그러나 내 삶에 있어서 나에게 오는 모든 자가 지극히 작은 자 중의 하나예요. 내가 그들에게 하는 모든 것이 내가 주님에게 하는 것이라는 거죠.
예를 들어 시어머니와 시누이도 나에게 지극히 작은 자예요.
나도 작은 자이지만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누구에게 한 것이라구요? 하나님께 한 것이란 거죠.
남편도 지극히 작은 자 중에 하나예요. 아멘.
그래서 나 외의 모든 인간관계는 지극히 작은 자 중의 하나로 여기고 그에게 한 것이 곧 누구에게 한 것이라구요? 주님께 한 것이죠.
이게 바른 인간관계의 모습이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고 있느냐 하면요.
내 남편이기 때문에, 내 자녀이기 때문에, 내 무엇이기 때문에 내가 뭘 한다면 결국 은 나를 사랑하는 거예요.
나에게 속해 있다 생각하니까 나를 사랑해서 하는 것이지만 이제는 인식을 바꿔서 내 남편과 자식이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맡겨진 영혼들이기 때문에 주께 하듯 행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해야 상급이 있습니다.
내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한다면 나를 사랑하는 거예요. 먼저 마음속에 동기와 목적부터가 잘못되어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주를 위해서 한다면 내 남편이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자 중에 하나로 내가 주께 하듯 해야 하나님이 받으시고 그것에 대한 상을 마련 하고 계시더란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을 얘기하잖아요?
‘정’은 마귀적이에요. 하나님과는 별로 상관이 없어요. 자식과 부모간의 ‘정’이 있어요.
부모는 ‘정’ 때문에 자식에게 모든 것을 다줘요.
그런데 이런 것은 상이 없어요. 나를 사랑한 것이거든요. 자식을 너무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거예요.
자기 몸에서 나왔으니까요. 그러나 부모가 자식이라도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하 나님께서 나에게 맡긴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는 함부로 자녀에게 하지 않습니다. 재산이 있다고 함부로 다 주지도 않습니다. 다 주면 망하거든요.
‘정’ 때문에 주잖아요. 그러나 맡겼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하나님께 기도하고 돌아가실 때에도 얼마는 구제하는데, 얼마는 필요한 곳에 보내고 나머지를 자녀들에게 많지 않 은 금액이지만 나눠주는 분들이 있어요.
우린 그렇게 살아야 돼요.
하나님 중심으로 인식이 돌아가는 자하고 나 중심으로 돌아가는 자하고는 삶이 너무 나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 일상생활 속에서 자녀에게 내 자식이니까 한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한 영혼 한 영혼을 맡겼다고 생각하시고 최선을 다해서 충성하시길 축원합니다. 그들을 볼 때 먼저 하나님을 생각해야 돼요.
하나님께서 내 몸을 통해 낳게 하셨지만 나에게 저 귀한 영혼을 맡기셨다고 생각해야 돼요.
자녀를 볼 때 “아이구, 내 새끼” 하면서 뽀뽀하고 그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을 먼저 생각하라는 거예요.
남편을 볼 때 누굴 먼저 생각하라구요? 하나님을 먼저 생각해야 돼요.
시댁을 생각할 때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라는 거예요. 아멘입니까?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그들에 대하여 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하여 하 는 것이므로 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육신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이 틀린 점이 있어요. 육신에 속한 사람은 사람을 무서워합니다.
그런데 영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을 무서워합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그 사람에 대해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것만 하면 되니까 무서울 것 이 없지요.
여러분, 사람의 소리를 크게 듣지 마세요.
오히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것을 하는 게 더 나은 거예요.
당장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신 것을 하면 사람들이 욕할 것 같지만 나중에 보면 하나 님 말씀대로 안한 것이 더 나은 거예요. 아멘.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무서워하는 우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1절을 보겠습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자기 공로를 내세우 지 말고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는 것이죠.
첫째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주님께 한 것’이고요. 두 번째는 ‘우리의 존재 이유가 그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그러지 않습니까?
“아이구, 저렇게 살아서 되나?” 그러면서 내 마음으로 밀어내고 비판하고 그러죠. 그 런데 우리의 존재 이유가 그들을 안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안에서 그들을 위해서 내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아멘입니까?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그들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거예요. 아멘 나에게 일어나는 인간관계 속에서 나의 존재 목적이 뭐라구요? 그들을 위해서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를 존재케 하는 이유가 그들을 위해서 있다니까요.
에베소서 5장 22절에서 28절을 보겠습니다.
22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23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 신을 주심같이 하라
26 이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 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28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여러분이 해야 하는 파트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주께 하듯 남편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안 살기 때문에 고난이 옵니다. 아까 제가 뭐라고 했어요?
고난이 오는 이유가 하나님 말씀대로 안 살기 때문에요.
그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으시려고 하나님께서 많은 고난을 일으키시죠. 아멘! 그래서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잘났다고 계속 고개를 쳐들고 있으면 하나님은 계속 고난을 보내실 수밖에 없 는 거예요.
어떻게 하기까지요?
내가 말씀대로 살게 되기까지요. 하나님이 누구를 사랑하신다구요? 나를 사랑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되기까지 내가 먼저 수그러져서 만들어지면 남편이 만들어지게 되어 있어요. 할렐루야!
우리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존재 목적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첫째는 주님 을 위해서이고 두 번째는 그를 위해서, 그녀를 위해서, 또는 나에게 오는 그 영혼을 위해서라는 거예요.
그 다음에 세 번째는 ‘사람을 대하지 말고 그 안에 있는 주님을 보라’입니다. 사실은 여러분에게 가능하지 않은 것처럼 들리지만 훈련에 의해서 가능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영성훈련이라고 하는가 하면 여러분 자신을 훈련시켜야 하기 때문 이에요.
세 번째가 뭐라구요?
사람을 보지 말고 그 사람 안에 있는 주님을 보도록 하라는 것인데요.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예를 들어 나를 사랑하는 주님은 내 안에도 계시지만 지금 나에게 못되게 구는 저 사 람 안에도 계실까요? 안계실까요? 계시지요.
저 사람은 단지 자기 옛 사람으로 살뿐이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 사람 안에도 계시죠.
그 사람 안에 계시는 주님을 보라는 거예요.
그 사람은 육신으로 나에게 해대는데 그 사람 안에 계시는 주님은 나를 보고 계시는 거예요.
내가 ‘육신으로 하는가’, ‘영으로 하는가’를요.
그 사람 안에 있는 주님은 내 안에 계시는 주님과 똑같은 분인데 지금 나에게 육신으 로 해대는 저 사람의 행위를 보지 않고 그 사람 안에 있는 주님이 날 보고 계신다는
거예요.
그 사람 안에 있는 주님을 봐야 해요.
그 사람 안에 있는 주님은 나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도 사랑하시거든요. 단 지 그 안에서 한탄하고 계실 뿐이죠.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행위를 보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어떻게 하든 개의치 말고 “저 사람은 옛 사람의 모습으로 살고 있구나” 하고 불쌍히 여길 줄 알아야 되는 거예요.
아직도 그 모습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도 사실은 그렇잖아요?
그 사람을 보면서 나를 보고 거울을 보듯이 “나도 저렇지.” 그 사람이 하는 행위만을 보고 대하지 말라는 거예요.
그 안에 있는 주님을 보는 훈련을 자꾸 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 있는 주님은 그 사람에 대하여 한탄하고 계시고 그 사람을 만드시기 위해 부 단히 노력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요.
우리는 그 사람 안에 계신 그 분을 보는 거예요.
우리가 그 분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이 불쌍히 여겨지기 시작해요. 할렐루야!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되거든요.
“하나님이 얼마나 아프실까?” 우리도 아픈 거예요.
그가 불쌍히 여겨지고 그렇게 보는 훈련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못되게 구는 사람들이 별로 미워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훈련이에요.
자, 한 마디만 더 하겠습니다.
그가 아직 변하지 않는 이유가 누구 때문이라구요? ‘나 때문’이라는 거예요.
상대방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도 내가 주님이 원하시는 만큼의 사람으로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아멘입니까?
우리 모두가 오늘 이 말씀을 받아갈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어떤 환경이 주어졌다고 해요.
그러면 그 환경에 대해서 “왜 이런 상황이 생겼나?” 묵상을 해보세요. 그러다보면 나의 부족한 부분이 보여지기 시작해요. 할렐루야!
“아! 하나님은 지금 나의 이 부분을 다루시려고 이런 인간관계와 환경을 나에게 허락 하셨구나.” 하고 알게 되죠.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하면 됩니까?
나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더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면 되는 거예요.
“아하! 내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내게 그것을 요구하시기 위해서 이런 환경을 나에게 허락하셨구나.”
나는 어느 정도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안 된 것을 보여 주시는 거예요. 할렐루야!
우리는 알게 된 만큼 더 노력하면 됩니다.
그 다음의 매뉴얼을 보시면 ‘위장된 평화에 속지 마라’ 라고 있죠. 말이 좀 어려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에는 참 깊은 의미가 있어요.
여러분, 우리는 내가 육신적으로 잘되고 재물도 별로 부족함이 없고 교회에서도 이쁨 받고 잘 다니고 모든 것이 잘된다고 해서 내가 진짜 잘 되고 있는 것인가 하면 아니 라는 거예요.
육신적인 편안함이 내가 잘 되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것이 위장된 평화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오히려 고난 가운데 우리를 빚으시기를 원하시고 오히려 육신이 좀 괴롭고 안 된다고 할지라도 그 속에서 내 영이 진주같이 영롱하게 빛이 나기 위해서 깎이고 깎아지는 그것이 잘 되고 있는 것인데요,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면 아무 걱정 없고 편하고 내가 기쁘고 남편이 나에 게 잘해주고 이러면 잘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고난 속에 있는 자가 더 잘되고 있는 거예요. 할렐루야!
다윗은 뭐라고 말했는가 하면 고난을 통해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고 했거든요.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만 배우게 되어 있어요.
고난이 내게 유익이 되었다고 하잖아요.
내가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였으나 고난을 당한 후에는 내가 바르게 행한다 고 했어요. 할렐루야!
우리가 육신적인 편안함과 행복과 같은 것들이 우리가 잘 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 히려 내가 정말 잘되고 있는 것은 내가 고난의 풀무 속에 있을 때 내가 잘되고 있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모두가 이 말씀을 받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들은 뭐라고 말했는가 하면, “나는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러나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내가 보니까 너희가 부요한 것이 아니라 너희는 눈이 헐벗었고 가련하고 곤고하고 눈이 멀었다”
주님은 뭘 보세요?
그 영혼이 파리해지고 전혀 힘을 못 쓰고 시들시들하게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시는 거예요.
육신적인 편안함을 추구하는 자가 그렇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진짜 내가 추구하고 달려갈 길이 뭐냐 하면 주님의 길이라는 거예요. 주님의 길은 결코 쉽지가 않았어요.
늘 낮은 자리였고, 대접받지 못했고, 힘들었고, 머리를 둘 데가 없었고,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는 하나님으로 인해 기뻤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데 있어서는 생명을 걸었 고, “내 뜻을 행하러 온 자가 아니라 나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러 왔다” 고 말 씀하시면서 자신이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신 것을 보면 결코 육신적으로 행복하고 따뜻하고 부요했던 분이 아니었어요.
우리가 장차 주님이 받은 그 영광에 들어가려면 우리도 그 고난을 겪어야 한다고 하 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인생에 고난이 없다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돼요. 할렐루야!
고난을 주신 하나님이 나를 고난의 풀무불에 넣으셨다면 하나님께서 엄청난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고 계신 거예요. 아멘입니까?
이 말씀을 잘 생각해보실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훈련입니다.
우리는 항상 할렐루야 해야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모든 인간관계속에서 “주여, 할렐루야! 나는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해 낼 수 있습니다. 아멘”
그 힘이 뭐예요?
죽는 힘이예요. 죽으라는 거예요.
죽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님의 마음을 품고 내가 없어지라는 거예요. 아멘입니까? 그렇게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 ‘소유의식을 버리라’ 고 되어있죠.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진짜 우리가 유의해야 할 것은 소유의식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소유의식이 뭐냐 하면 ‘내 남편은 내꺼다’, ‘내 자식도 내꺼다’ 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 생각을 버리라는 겁니다.
내 꺼 라고 생각하면 어때요?
“내가 하라고 하는 대로 안하면 안돼.” 라는 내 주장 때문에 맨날 싸우게 되는 거예 요. 눈을 부라리고 내가 하라는 대로 안한다고 고집을 피우고 삐지고....
이 모든 것이 육신이고 사망의 삶이라는 거예요.
내 소유의식을 가정에서부터 버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들이 누구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이죠.
이 세상에 내 것은 하나도 없어요.
내 자식도 내 것이 아니에요. 내 남편도 내 것이 아니에요. 내 아내도 내 것이 아니에요.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마음을 버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제가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어요. 저는 자녀가 없지만 여러분은 자녀가 있죠.
자녀가 나와 한 몸으로 느껴집니까? 남편이 나와 한 몸으로 느껴집니까?
성경에서는 뭐라고 말합니까? 남편과 나는 한 몸이라고 말해요. 이것이 성경의 진리입니다.
그러면 자녀는요?
나에게 맡겨 주신 따로 떨어진 영혼 이예요.
물론 남편도 따로 있는 영혼이지만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남편이 나와 한 몸이고 자녀는 딴 몸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말하는가 하면요,
“우리 남편은 쓸모가 없으니까 버려도 되구요, 우리 자식은 절대 버리면 안돼요.” 이런 식 으로 마음가짐을 가지고 사는 분이 상당히 많아요.
그건 잘못된 거예요.
오히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성경의 진리는 내 몸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한 몸이 되라고 주신 남편이 내 몸이예요.
우리가 잘못되게 살고 있어요. 이것이 뭡니까?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는 삶을 살기 때문이에요. 아까 ‘정’이라고 말했잖아요?
이 ‘정’은 마귀적이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나 저나 자식보다 남편이 내 몸이라고 생각하고 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돼요.
그렇게 살지 않으니까 고난이 오는 거예요. 아멘
여러분, 남편이 내 한 몸이라고 생각하면 헤어질 수 있어요? 없어요? 내 몸을 쪼갤 수 있습니까?
도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쪼갤 수 있어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우리가 굴복될 수 있기를.... 우리는 인간이잖아요?
청년들이 어떻게 그들을 깨끗케 하리이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케 한다고 하잖아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 자체를 깨끗케 해야 돼요. 아멘입니까?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되면 고난이 없어져요. 고난이 줄어듭니다.
이삭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였기 때문에 고난이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고난이 있는 이유는 내가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에 있는 거예요. 아 멘입니까?
내 안부터 바뀌어져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 부부관계 속에서 남편이 내 한 몸이지만 사실은 우리는 맡은 거예요. 남편을 내 것이라고 주장하는 관계가 아니라 예를 들면, ‘내가 바라는 남편’으로 만들 려고 하지 말고 ‘남편이 바라는 아내’가 되기를 하나님은 바라시는 거예요. 이것이 우 리가 해야 할 일이에요.
여러분, 동의가 잘 안되시는 것 같아요.
지금부터라도 내가 조금씩이라도 그렇게 해야 되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다 마찬가지예요.
남편이 바라는 아내가 먼저 되자구요. 아멘
우리 남편도 바라는 것이 너무 많아요. 내가 바빠서 못해주지만요. 뭐냐 하면 자기만을 위해주길 원하는 마음.. 그런 것 있잖아요.
또 제가 살이 좀 쪘어요. 살 좀 빼라는 거죠. 그런 것들요..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요, 그런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구요. 우리가 남편을 내가 바라는 남편으로 만들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여러분, 많이 그러고들 살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걸 버리시라는 거예요.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그것을 다 버리고 오히려 남편이 바라는 아내가 되어보자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것이 섬기는 거예요.
섬기는 것이 다른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해 주는 거예요. 무시하지 말고요. 아멘
그렇게 되면 우리 안에는 내가 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임하게 됩니 다.
남편에게 순종하기 이전에 내가 누구에게 순종하는 겁니까?
하나님이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거예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되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나를 걸러내고 성령을 통과시켜야 된다’입니다. 우리 야고보서 1장 19절에서 20절을 보겠습니다.
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여러분, 우리가 화를 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대요.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위해 존재한다고 하면서 우리가 화를 왜 냅 니까?
결국은 자기를 사랑해서 화를 내요. 자기 맘대로 안 되니까요. 자기주장을 버리지 못하니까요. 내가 고집부리니까요.
그런데 화를 내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화를 내면 되겠습니까? 화를 내면 안 된다는 거죠.
내 맘대로 안 되었다고 해서 화를 내지 말라는 겁니다. 아멘입니까? 그래서 여러분과 제가 인간관계속에서 주의해야 할 것이 너무 많죠?
마지막으로, 사무엘상 16장 7절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 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 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여러분, 모든 인간관계 속에서 하나님은 그 내면을 보신다는 거예요. 바깥에 드러나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척해도 하나님은 안에 있는 마음을 보셔요. 그래서 우리는 안을 바꿔야 돼요. 안에서부터 사랑이 나와야 돼요. 아멘입니까?
안에서부터 내가 내려놔 줘야 돼요.
안에서부터 내가 그를 미워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을 다 내려놔야 돼요. 그러고 나서 그를 사랑하는 행위로 들어가야 돼요.
그래서 우리가 바꿔야 될 것은 외모가 아니에요. 내 안입니다. 하나님은 뭘 보신다고요? 내 안을 살피신다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그것이 안 되면 될 때 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야 됩니다.
“하나님 내가 왜 그들을 사랑할 수 없습니까?”
“아직도 나는 내가 너무 강하고 내 안의 하나님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내 안이 바꿔질 때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 있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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