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라목사님 바른영성훈련

영성훈련 열한번째 육체와 영성 III 1-2 믿음의 사람 모세

하늘이슬 2024. 7. 20. 17:58

(1째주-2)

육체와 영성 III - 믿음의 사람 모세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6절에서 29절.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히브리서 11장 16절에서 29절 말씀 드리겠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6절에서 29절 말씀입니다. 잘 못 찾으신 분은 앞쪽을 보셔도 됩니다. 우리 16절에서 먼저 22절까지 읽도록 하겠습니다.

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 니라.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 아들을 드렸느니라.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20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 하였으며

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 하였으며

요셉은 죽을 때 자기 해골을 가나안에 들어갈 때, 갖고 들어가라 그랬죠. 그래서 400 년 후에 요셉의 해골을 가지고 들어갑니다.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믿음으로 그 아이를 숨겼다는 겁니다.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27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 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으며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보냈죠. 그죠? 거기서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 같이 하여 참았다.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28 믿음으로 유월절과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 한 것이며

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 져 죽었으며

할렐루야! 그래서 오늘 성경 말씀과 더불어, 오늘 여러분에게 믿음의 사람 모세를 중 심으로 해서 말씀 전하는 시간 있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모세를 잘 압니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궁에서 자랐습니다. 몇 년을 살았습니까? 40년을, 그는 히브리인 이였지만, 바로의 공주에게 선택 되어져 서 그의 양자로 삼아져서, 바로의 궁에서 40년이라는 호화스러운 왕자로서의 삶을 살 았습니다.

오늘 히브리서 보니까 뭐라고 얘기하고 있냐면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양자 삼아져서 호화로운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는 그의 민족을 위해서 그 모든 걸 다 버 렸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구절이 어떤 구절이냐, 오늘 읽었죠? 그죠?

히브리서 11장 24절에서 26절 한번 다시 읽겠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 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 봄이라.

여러분 저는, 그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출애굽기에 모세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그는 궁에서 40년간 왕자로서 삶을 살았는데, 갑자기 어느 날 하루 나가서 자기 민족하고, 애굽인 하고 둘이 싸우는 걸 보는 거예요. 그럼 자기가 애굽의 왕자면, 애굽인이 편 을 들어야 되잖아요. 근데 둘이 싸우는 걸 보고 오히려 자기 히브리인 노예로 살고 있는, 지금 애굽의 노예로 좀 살고 있잖아요. 자기는 왕자의 신분이지만, 그 아무도 죽여도 상관없는 노예. 노예는 요, 죽여도 상관 없어요. 근데 그 노예 하나를 구하려 고, 애굽 사람을 쳐 죽입니다. 그리고 모래 밑에다가, 쳐 죽인 사람을 숨겼잖아요. 저는 그 그것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냐면, 참 이상하다. 어떻게 애굽의 왕자, 히 브리인이지만 애굽의 왕자로 선택 받아서, 40년간을 왕자로 살은 자가, 어떻게 하루 에 하루 단지 그 시장 같은데서, 노가다 하는 그런데 나가서 둘이 싸우는 거 보고, 히브리 노예를 구하려고, 애굽인을 쳐 죽이는, 그 제가 이해가 안 갔어요.

근데 이번에 우리가 히브리서를 우리가 저기, 새벽기도 때 우리가 주로 읽고 있습니 다. 근데, 다시 히브리서를 보면서 모세가 그 히브리인을 쳐 죽일 수 있었을까? 히브 리인이 아니라 애굽인을 대신 쳐 죽일 수 있던, 그게 어디서 나왔는가를 알게 된 거 예요. 그거 보니까 오늘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해서, 바로의 공주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히브리서에서 이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자기는 바로의 공주 아들이라고, 아들로 자라났지만, 그 심령 속에, 마음속에, 그는 거절 하고 있는 겁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 아하고....

여러분, 모세는 얼마든지, 그 궁에서 자기 백성 몰라라 하고, 자기가 왕자로서, 살 수 가 있었어요. 모든 걸, 누리고 살 수가 있었어요.

그러나 그는 지금 히브리서에서 모세를 두고 하는 얘기 하면은, 그는 도리어, 하나님 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 이 잠시 죄 악의 낙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서 내가 하나님을 떠난 삶, 하나님을 떠나서 잠시 죄 악의 낙을 누리고, 세상에서는. 그 낙을 누리는 거를 버렸다는 거예요. 그걸 택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내가 아무리 호화스럽게 살고, 궁에서 호화스럽게, 사치스럽게 살 고, 내가 모든 걸 다 한다.

할 수 있다 할지라도, 권세도 있고, 그 밑에 부하도 많고, 평생 호화롭게 살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자신이 그 모든 거를 버린다.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그렇 게 사는 게 죄악의 낙을 누리는 거고, 오히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을 선택해서, 차라 리 고난을 받겠다. 이 얘기입니다.

여러분, 이 모세의 태도가 보입니까? 너무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그 다음에 26절, 뭐라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이 그리스도는, 물론 모세의 시대는 그리스도가 없었지만,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니까, 표현을 그렇게 한 겁니다. 그 리스도도 하나님이고, 하나님은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을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 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여러분, 차라리 내가 능욕을 받겠다는 겁니 다. 하나님 때문에, 애굽에 있는 모든 보화를 자기 걸로 만들 수 있지만, 나 그거 안 하겠다는 거예요.

차라리 하나님 때문에 내가 능욕을 받겠다는 겁니다. 히브리인들이 노예였잖아요, 노 예. 그 능욕을 내가 받겠다는 겁니다. 그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 보다 더 큰 재물 로 여겼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겁니까?

여기서 받는 하나님 때문에 받는 능욕은, 저 하늘나라에서 큰 상이 되는 걸 알았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모세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출애굽기만 보면, 어떻게 모세가 그런 행동을 보일 수 있는가라고 얘 기 하는데, 우리가 히브리서, 오늘 이 히브리서를 보면서 모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 하는 겁니다. 모세가 어떤 사람이었나?

여러분, 모세는 믿음의 사람이었어요. He was a man of King. 그가 미디안 광야로 떠나기 전부터, 사람 쳐 죽이고 나서, 미디안 광야로 떠났잖아요.

왜냐하면, 그 임금이, 바로 왕이 그 사실을 알고 가만히 두겠어요? 애굽의 왕자가 애 굽의, 애굽인의 편을 안 들고, 히브리인의 편을 들어서, 애굽인을 쳐 죽였는데, 왕이

 

그냥 두겠습니까? 그러니까 미디안으로 도망을 가잖아요.

도망가기 전부터 뭐 했냐? He was a man of faith.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어요. 우 리는 생각하기에 미디안 광야에 가서, 거기서 훈련을 받으면서 믿음의 사람이 되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실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미 미디안 광야로 쫓겨 가 기 전부터, 그는 a man of faith. 그는 믿음의 사람 이였습니다. 할렐루야! 믿음의 사람 이였습니다.

그는 뭐냐 하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 보다 더 큰 재물 로 여겼으니까, 그 애굽인을 쳐 죽인 거예요. 할렐루야!

그의 동족을 보호 한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뭐라고 하셨냐? 한번 읽어 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믿음이 있어야, 그 분을 기쁘게 하고, 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 가 계신 것을 반드시 믿어야 되고, 또 두 번째는 뭐냐? 상주시는 이심을 믿으라는 거 예요. 상 주심을. 근데, 상을 어디서 주시냐? 저 하늘나라에서 상주시는 거를 더 바래 야 된다는 겁니다.

성경은 뭐라하나, 주님은 뭐라하냐면 너희는 이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 때문에 당하는 그 환란은, 하늘나 라에서 큰 상으로 우리에게 온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 때문에 당하는 환란들이 많아요. 가만히 보면 많습 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욕해요. 저 사람들은 예수 믿으면서, 저렇게 산다고, 그 것도 환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떻게 예수 믿는 자들이 저런 행동을 보이냐고, 그것도 환란이에요.

우리도 잘 하려고 하지만, 우리도 잘하고 싶지만, 어떤 순간, 어느 순간에 실수할 수 있어요. 할렐루야! 그러니까 환란이에요.

주님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당하는 환란입니다. 물론, 그런 말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가 더 경각심을 가지고 더 잘하려고 하지요.

주님의 빛으로, 주님을 비추는 빛으로, 주님을 비추는 그리스도 향기로, 주님을 전하 는 편지로, 그렇게 살고 싶어 하잖아.

그러나, 어느 때는, 그러지 못한 나를 볼 때 우리도 슬프고,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향 하여 손가락질 합니다.

이게 다 하나님을, 하나님 때문에 당하는 환란입니다.

주님은 뭐라 그러냐? 너희가 이 세상에 당할 때 환란을 당하나, 담대해라, 내가 세상 을 이겼노라, 우리의 상은 어디 있다는 겁니까? 저 하늘나라에 있다는 거예요. 할렐 루야!

 

그는 우리에게 상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 모세는, 모세는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나요? 모세가 어떻게 궁정 에서 40년을 왕자로 살았는데, 어떻게 그가 세상에 빠지지 않고, 소위 말해서, 그 부 유함, 그 권세, 사치스러운 모든 걸 누릴 수 있는 위치에서 있었는데, 어떻게 그가 믿 음의 사람으로, 그렇게 다시 40살이 되기까지, 정말 그가 그렇게 될 수 있었냐는 겁 니다. 그는 보면, 그는 결국은 뭐냐 어떤 사람이었냐면, 이 세상에서 잘 되고 산 사람 이었어요. 하나님을 믿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 자는,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거 보다, 저 세상에서 잘 되길 원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물론, 초심자들은 얘기 합 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잘되려고 교회 가지, 그런 거 없으면 내가 왜 교회 옵니까? 물론, 우리 하나님은 우리 순간, 순간마저도, 우리의 삶에도, 주장하고 계시는 줄 믿 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바라 봐야 될 것은 하늘나라라는 것입니다. 아멘 입니 까? 우리는 이미 영생을 얻은 자들 입니다. 우리는 잠깐이 세상에 살다 가는 거예요. 근데 많은 사람들은 잠깐 사는 세상 속에서,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잘 살까?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내가 좀 더 권세를 부르고, 어떻게 살아 볼까? 그게 더 관심을 많이 가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의 선진들은, 그들을 공통점이 뭐냐? 이 거라는 겁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살았다는 거예요. 그게 어디냐면 하늘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모세가, 모세가, 이 세상에 행복을 원했다 면,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걸 원했다면, 그는 왕자를 포기하지 않았을 겁니다. 근데, 그가 정말 사모한 것은, 뭐냐? 이 세상이 아니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 그들 조상 때부터 나타나셔서, 그들을 아브라함 때부터, 지시해서, 나타나셨던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더 사모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저는 생각을 해봤어요. 어떻게 모세가 이렇게 확실하게 하나님을 잡을 수가 있는가? 여러분, 어떻게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초개와 같이 버릴 수 있는 마음이, 마 음에 어떻게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어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세가 어떻게 이 세상과 이 세상의 모든 번영과 권세와 부를 마다할 수 있는 그 마음이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영혼에 어떤 일을 행하셨기에, 하나님께서 그 영혼에게 어떤 일을 행하셨기에, 그가 이 세상에 부와 번영과 권세와 상문과 그 모든 것을 초 개같이 버릴 수 있는 마음이 있었는가? 그래서 여러분, 이 모세는요, 물론 은혜입니 다. 하나님의 은혜인데, 모세가 하나님을 만났던 것 같아요. 할렐루야! 하나님을 정말 만나지 않는 자는 이런 마음을 가질 수가 없어요. 하나님을 만난 자는, 물이 포도주 로 변하는 것처럼, 물하고 포도주는 너무 틀리잖아요. 모세가 물이였는데, 포도주가 되어 버렸어. 하나님에 의해서. 그랬더니,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초개처럼 분토처럼 여겨졌다는 겁니다.

 

the same thing happen to Paul. 바울에게 얘기하는 것을 한 번 보죠. 우리 바울 도, 우리 바울과 모세를 좀 같이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그러나, 빌립보서 3 장 7절에서 13절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 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들어 여기는 내 주 그리스도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며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걸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는, 그리스도를 얻고 다 잃어버리고 나는 하나님의 얻겠다는 거죠. 하나님을 얻기 위해서 난 다 버리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것은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 니,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남이라. 계속 좀 읽어 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하려 함을 알게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쩌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 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힘 받은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형제 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는 것은 잊어버 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 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여러분 모세도 예수를, 예수을 위해서, 하 나님을 위해서, 자기 모든 걸 버리고, 그 분을 얻기 위해서, 모든 걸 버렸습니다. 똑 같은 얘기를 하고 있죠. 그리고 모세도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자기를 위해서 부름 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는, 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애굽인을 쳐 죽일 때, 이미 모세는 첫째,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 나님의 백성이다. 애굽인의 왕자인 것을 선택하는 거보다도, 나는 하나님을 택하겠다. 이런 정체성이 있었습니다.

할렐루야! 두 번째, 그는 애굽인을 쳐 죽인 이유가 이미 소명의식을 깨닫고 있었어요. 나이 40살이니까, 430년 노예 생활 430년경에 그들이 출애굽 했잖아요. 그때 모세 나이가 80이거든요. 80세 때 그들을 인도 해 냈으니까, 모세가 40살 때는, 그들이 노 예 생활 한 지가 390 년이 예요. 근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희 후손이 이방에 되 게 되어, 4백년이 지난 후에는, 너의 후손은 재물을 얻게 해서, 네가 있는 지금 가나 안으로 이끌어 들이겠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400년을 약속했어요. 그런데 모세가 40살 때, 그때는 그들이 노예 생활이 390년입니다. 10년만 있으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이루어져야 되는 때예요. 그러니까 모세가 그걸 알고 있었어요. 우리 민족들을 끌어내서, 가나안으로 가야 될 자가 나다. 이런 소명의식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는 이스라엘 민족과 애굽인이 싸울 때, 자기 동족을 구하기 위해서, 애굽인을 쳐 죽여 버린 거예요. 여러분, 이 모세는 너무나 확실하게 하나님을 잡았고, 그 다음에 두 번 째는 그에게는 소명의식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바로 쓴 게 아니라, 얼마나 열정적입니까? 하나님을 얻기 위해서 애굽의 왕자를 포기한 사람, 주를 위해서 모든 걸 배설물로 여길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이 였고, 그 다음에 소

 

명의식도 깨닫고 있어서, 그 많은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이끄는데 내가 쓰임 받을 것을, 내가 왕자니까. 그런 소명의식이 있었어요. 그러면 하나님은 그를 바로 써야 됩니다. 왜냐, 그렇게 열정적이지, 모든 걸 다 버렸죠. 그런데 우리가 아는 사실 은, 그가 바로 쓰임 받은 게 아니라, 오히려 그는 애굽을 쳐 죽이는 사건을 통해서, 어디로 갑니까? 미디안 광야에 가서, 40년을 썩습니다. 왜 이럴까요? 하나님은, 왜 이런 그렇게 열심이고, 그렇게 정체성이 분명하고, 하나님을 얻기 위해서, 모든 걸 배 설물 여길 줄 아는 그를, 그리고 소명의식을 깨닫고 있고, 그를 왜 쓰지 아니하시고, 10년도 아닌, 20년도 아닌, 40년을 미디안 광야로 보내 버립니다. 왜 그러셨나? 우리 가 생각하기는, 그런 사람 참 멋지다, 잘 쓰임 받을거라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 은 그를, 그렇게, 우리가 봐서는 참 잘 준비되어 있다, 위치도 왕자지, 한번 반란 일 으킬 수 있잖아요. 군사 모아서. 그걸로 끝내면 되니까. 그런 위치에 있는 자를, 내 가 네 힘으로, 내가 가진 권력으로, 내가 가진 탤런트로, 내가 가진 인력으로, 내가 가진 권세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 모세를, 오히려 하나님은 저 광야에 가서, 40년 을 썩혀버렸습니다. 10년도 아니고, 그럼 40년 동안, 모세는 그렇게 생각하지, 내가 그 자리에서 쓰임 받을 줄 알았는데, 나는 주를 위해서 애굽의 왕자인 것도 포기했는 데, 왜 하나님은 나를 쓰지 아니하시고, 저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는 삶을 40년을 시 키는가? 여러분 모세는 그 40년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만들어져 갔냐면 요, 자기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기가 가진 능력, 자기가 가진 재능, 자기 가 가진 말 재주, 권세, 인력, 이런 거를 사용해서, 내가 소명을 감당해 보겠다, 내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겠다. 하는 그 말소리조차 못 나오게끔, 이제는 가라 그래도, 주 여, 내가 누구한테 갑니까? 다른 사람을 보내소서 하기까지. 하나님은 그를 낮추시고, 그렇게 만든 후 하나님이 쓰시는 거예요. 이게 얘기를 하고 있냐면, 내가 열정이 있 다고, 하나님이 쓰는 것도 아니고,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모든 걸 버렸다고 해서 하 나님이 쓰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모세와의 관계가 정말 주인과 종의 관계, The Lord and servant relationship he knew he needed where the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Moses at the light like Lord and servant. 정말, 하나님과 그 모세의 관계가, 주종의 관계,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자, 자기의 감정이나 자기의 판단이나, 자기 능력이나, 이런 게 들어가는 게 아니라, 정말 하나님께서,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시겠다. 그러면 그 빗자루가 될 수 있는 자. 빗자루가 뭐 튀어나갈 수 가 있습니까? 그 주인의 장중에 붙들려서, 쓰임 받는 빗자루, 그런 것처럼, 그렇게 되 기까지, 하나님은 그를 기다리셨다는 것입니다. He waited for him travel the caravan relationship, even though he could do something people 40 years ago but he waited for 40 years to make him and like humble and then he used.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은,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우리가 열정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이 쓰시는 것도 아니요, 우리에게 능력이 있다 그래서 쓰시는 것도 아 니고, 그럼 누구를 쓰시냐? 언제 쓰시냐는 거죠? 철저하게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가 주종의 관계가 된 사람. 하나님이 쓰시는 줄 믿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누굴 쓰시냐?

 

man of faith 믿음의 사람을 씁니다. 모세를 알았어요. 물론 모세가 먼저 선택되어 졌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근데 언제 쓰냐 말입니다. 하나님이 만들어서 쓰시더라. 이런 이것이 여러분과 저에게 좋은 교훈이 되기를 원합 니다. 다 아는 얘긴 것 같지만, 모세 얘기는 다 아는 거 같지만, 그러나 다시 한 번 이렇게 들여다볼 때,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들이 있다는 거예요. 여러분, 인생은 참 짧 죠. 모세는 다행히도 120살을 살았어요. 근데 우리는 모세가 얘기하는데, 우리의 인 생이 70이다. 그리고 강건하면 팔십이라 그랬어요. 왜 그런 얘기를 하냐면? 모세가 보니까,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40년간 유리하면서, 60, 70대 다 죽더라 이거예 요. 다 죽었잖아요. 하나님한테 반역 하다가, 가나안 못 들어가고 부모들은 다 죽었잖 아요. 근데 요즘에는 90까지 살더라고요, 90까지. 대게는 사세요. 그렇지만, 우리가 가만히 보면 우리 이곳에서 인생은 짧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안 남았다.

그래서 야고보서 보면, 이런 말씀을 하죠. 저는 이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며,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 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 라 할 것이거나, 야고보서 4장 13절 보면, 이런 얘기가 있죠. 그 앞 절을 보면, 제가 뭐 했는데, 어디 다른데 가서, 일 년을 유하는데, 일을 보고 사는 자더라. 장사 해 갖 고, 장사해 갖고 일을 보고 사는 자더라. 그 자들을 보고 뭐라고 얘기하면은, 너희들 참 어리석다. 너희가 어떻게 내일을 알지 못한다, 이거지. 너희 생명이 무엇이며, 너 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다. 오히려, 너희가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주님의 뜻이면, 우리가 잘 살기도하고, 죽기도 하고, 이 얘기가 빠졌습니다. 우리가 살 기도 하고, 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리라.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이 짧 은 세상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잖아요. 주의 뜻에다가 초점을 맞추라는 겁니다. 내가 주의 뜻이면, 내가 주의 뜻이면,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쥐의 뜻에 따라서, 내가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한다. 그렇게 살지 않는 인생은 다 헛되다는 겁니다. 할렐루야! 주의 뜻에, 여러분, 초점을 맞출 수 있기를 주 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목적이 주님이 되지 아니하면 다 헛되 다는 겁니다. 믿음에 대한 정의를 보면, what is the faith? the definition of faith. 믿음이란 정의가 뭐냐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게 증거라고 했어요. 선진들이 이거를 증거로 얻어내요. 바라는 것들이 실상이다. 바라는 거. 바라 는 거는 보이는 게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걸 바라는 거라고 그러죠. 이런 믿음이라 고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걸 믿는 걸 믿음이라, 그러죠? 근데 사람들은 보이는 걸 쫓아가요. 어떤 믿음을 갖게 되냐면,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잘 되게 주실 것이 다. 그리고 보이는 거 잘 되는 걸 따라가요. 그것도 어떤 믿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것도 사실은 조금, 어떤 면으로, 그러나 정말 믿음이라고 하는 거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바라는 것들은 뭐냐면, 하나님 과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는 겁니다. 다른 게 아닙니다. 이 세상에 현실 축복도 아니

 

고, 그래서,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은 이로서 증거를 얻었다고, 그랬잖아요. 어떻게 증 거를 얻었냐면, 믿음은 바라는 게 뭐냐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증거를 얻었어요.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죽었냐? 잘 봅시다. 히브리서 11장 13절.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 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 나그네로, 증거하였으니, 이러니까, 아브라함을 보고, 아브라함은, 믿음을 따라 죽었다 돼 있잖아요. 아브라함 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뭐라고 했냐면, 너의 후손이 400년간, 이 방에 폐기되었 다가, 가나안으로 들어올 거다. 그 믿음을, 거기에 대한, 믿음을 믿고 따라서 죽었다 는 거예요. 약속을 자기가 살 때, 받지는 못 했지만,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고, 그렇게 죽었다는 거예요. 이게 무슨 얘기냐면,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믿음을 따라 살 았으며, 믿음을 따라 죽었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도 그래야 됩니다. 우리 도 어떻게 살아야 되냐, 믿음의 행보를 해야 될 뿐만 아니라, 죽는 것도, 죽을 때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죽어야 된다는 겁니다. 할렐루야! 우리에게는 본향이 저기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은, 모세를 봐도 그렇고, 믿음을 따라 살았고, 또 아브라함을 보면 믿음을 따라서 죽었어요. 그들이 왜 그랬 냐? 왜 그렇게 할 수 있었냐? 왜 그들은? 그게 결국은, 뭐냐면, 본향을 사모했기 때 문입니다. 본향을 사모했기에. Is it that they were looking for better country or have anyone there for God is not ashamed to be called their God for he has prepared the city for them. 우리가 히브리서를 읽고 있기 때문에, 성이 뭔지 압니다. 히브리서 이야기하잖아요, 지금. 우리는 구약을 이야기 하고 있으면서, 히브 리서에서는 그들을 위해서 한 성을 예비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이 뭡니까? 예 루살렘 성전이죠. 우리가 천국가면, 새 예루살렘 성전 있죠. 그 성을 얘기 하는 거예 요. 지금 히브리서에서는 구약의 우리,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을 이야기 하면서 보세 요.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 님의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음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해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여러분, 우리 구약에 있는, 우리 믿음의 선진들도, 하늘나라의 본향 을 그렇게 사모 하면서, 살았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우리가 그 본을 따라서, 우리는 더 잘해야 되는데, 왜냐? 구약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그 얘기를, 우리는 다 알고 있고, 지금 현재 주님의 오시고 나서, 우리가 살고 있으면서, 주님의 오신, 주님 하신, 말씀 다 알면서,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해 처소를 마련하러 간다. 내가 처소를 마련하면, 다 시 와서 너를 나있는 곳에, 다시 너를 데리고 가리라. 너희는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 를 믿으라. 그런 말씀들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우리의 모습이, 세상을 쫓 아가고 있고, 세상에서 어떻게 좀 더 잘 살아 볼까?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돈을 좀 더 벌어볼까? 이렇게 생각하고 사는 우리의 모습이 부끄럽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냐?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 합니다. 우리의 시 민권은 어디 있냐? 하늘에 있다. 여러분, 제가 이 얘기를 하고 지나가야 되겠습니다.

 

우리 한국에는 지금 인육시장이 생겼다는 얘기 들어본 분 계셔요. 그래 가지고 여자 들이 요. 2300명이 실종이 된답니다. 한해에. 1년에 작년만 해도 2300명이 실종이 되 어버렸데. 온데 간데 없는 거예요. 사람이. 그리고 지난 4월 달, 2012년 지금 4개월, 5개월 전인데, 수원에 오원춘이라고, 조선족이 지나가는 여자를 잡아 가지고, 데리고 들어가서, 포를 떴어요. 포 뜨는 거 알지요. 몇 개를 떴냐? 240 몇 개 조각을 떴답니 다. 그리고 20포씩, 20개씩 봉지를 넣었는데, 14개를 넣었어요. 그리고 그 오원춘이 가 한국에 들어온 지 7년밖에 안되는데, 거제도부터 시작했데, 들어와 갖고, 거기서부 터 쭉 살아서, 지나간 7년 동안 보면, 그 자리 지나간 자리에서, 실종된 사람이 151 명이라고 합니다. 그니까 지금 우리 한국도 조선족에 대한 비자가 무비자로 되었데요. 그니까 그 속에서 원래 중국은 10억이 넘잖아요. 거기는 인육을 먹는 풍습이 있답니 다, 옛날부터. 그건 잘 모르셔도 되는데, 그런데, 요즘에는 인육을 먹으면, 사형 제도 가 생겼대요. 그러니까, 미국, 중국에 있던, 그 인육을 구해서 팔던, 사람들이 한국으 로 다 들어왔다는 거예요. 수원으로 들어와서, 중국에서 돈 있는 사람들이 한국에 와 가지고, 한국 여자들은 먹고, 관광을 하고, 그렇게 간답니다. 그게, 인터넷에 많이 떠 있잖아요. 제가 오늘이 얘기를 하면, 물론 조심하자는 면도 있고, 2300명이 작년에 한해 숫자가, 완전 실종 되어 버린 거예요. 사람이, 그 사람은 머리카락, 뼈, 이런 것 들은 다 화학처리, 간대요. 갈아 버린데. 갈아 가지고, 화학처리해서 하수구에 내버린 데요. 그러면 포를 뜨는 장면만 안 들키면 전혀 모른다는 거예요. 그리고 사람을 납 치할 때는, 봉고차, 봉고차 내에는 건장한 남자 다섯 명, 여섯명 기다리고 있답니다. 그리고 봉고차로 유인할 때는 할머니를 사용하답니다. 할머니가 무거운 거들고 있으 면, 애야, 저 나 좀 저기 좀 데려다 달라 그러고, 그리고 젊은 여자들, 젊은 아이들이 표적이 된 겁니다. 고기가 맛있답니다.

그래 가지고, 길가에서 누군가가 길을 가르쳐 달라는지? 뭐 먹는 걸주면 절대 먹으면 안 된답니다. 독이 타 있답니다. 아파트 단지에도 그런 납치 미수 사건이 있었어요. 아파트 단지요. 그리고 대학교도 들어온 답니다. 대학교 학생들이 자취를 할려니까, 방이 하나씩 있는 방을 구하려고 하잖아요. 그러면, 어떤 아저씨 아줌마가 와 갖고, 우리가 집에 원룸이 많은데, 싸게 집 리모델링했으니까, 가서 구경하자고 하면서, 네 명, 세 명을 태우고 간답니다. 가면서 커피를 먹으라고 하고, 먹고 나면, 나중에 깨어 나면, 대구가, 대구에서 태웠으면, 포항에 가 있고, 포항에 깨어나면, 손과 발이 다 묶 여져 있다는 겁니다. 장기적출해서 판답니다. 근데 그게 신문에 안 난다는 거예요. 분 명히 있었던 사실인데, 신문에 안 난다는 거예요. 이 조직포력배들이요. 신문과 언론 과 정부를 다 잡고 있다는 거예요. 경찰청도 잡고 있다는 거예요. 그들이 어떻게 잡 냐? 그니까 다 밝혔었더라고. 그 양심선언한 사람이, 그 조직폭력배 속에서 일했던 사람. 그런 일을 했던 사람이, 어머니의 기도로 개심을 해서, 크리스천이 됐어요. 그 래 갖고, 인육을 내다파는 사람들이, 지옥에서 어떤 고통을 당하나, 그것도 관상을 봤 어요. 그 사람이 양심선언 했는데, 우리나라에는 인육을 내다파는 점조직에, 일하는

 

사람이, 50명이 지금 일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인데, 인육을 먹는 사람이 200명이나 된답니다. 중국에서는 돈 있는 사람들이 패키지 관광 을 와서, 관광도 하고, 물건도, 쇼핑도 하고, 그 다음에 어떤 집에 모여서 인육을 먹 고 들어간답니다. 제가 오늘 또 왜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하냐? 그렇게 돼 버렸는 데, 조심하고, 2300명이 없어졌어요. 지난해만. 근데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나라는 살대가 못 되는데, 정말 어떻게, 그런 파렴치한 자들을 그냥 내버려 두는 가? 근데 더 놀라운 사실은, 한해, 작년 한해, 자살한 숫자가 15,000명이랍니다. 15000명. 제가 오늘 왜 죽는 얘기를 하냐면? 그렇게 실종되어 죽거나, 자살하는 사람 한번 보세요. 만 오천 명, 우리가 이 세상에 왜 사는가? 하는 겁니다. 왜 사냐? 생각 좀 해 보고, 살아야 될거 같아요. 왜사냐? 우리 예수 믿으니까, 예수 믿으니까, 죽으면 천국 가니 까. 언제 죽든지 상관없다. 그렇게 쉽게 생각하지 말고요, 쭉 한번 생각 좀 해 보자는 거예요. 이래도 가고, 저래도 가고 다 갑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게 애타게 할 필 요도 없는 거 같아요. 실종돼서 죽고, 자살해 죽고, 살다가 죽는데, 살아있는 기간 동 안, 왜? 헛되게 사냐. 말입니다. 우린 분명 죽습니다. 그리고 천국 갑니다. 그러나 이 살은, 살게 해주신 동안에, 왜? 헛된 삶을 사냐 이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가 도대체 목적하고 따라가는 게, 뭐가 되야 되냐 말입니다. 이 짧은 세상 속에, 우리 믿 음의 선진들, 그들은 정말 확실히 믿음이 있었어요. 본향을 사모하고, 하늘나라에 있 는 상 주신 이를 바라보고, 이렇게 살은 거예요. 우리는 왜 그렇게 못 사냐. 말입니 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 야죠.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죠.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이나 저나, 돈 버는 일에 너무 현혹되지 마십시오. 솔로몬은 뭐라고 얘기했냐면, 네가 시간 을 투자해서 돈 버는 일에 돈을 벌어도, 그거 헛되다 그랬어요. 왜냐? 네가 벌어놓은 돈, 딴 사람이 쓴다 이거야. 그러면 그 돈 버는데 보낸 시간, 다 헛된 거 아니에요? 그래서 솔로몬이 그래요, 헛되고 헛되도다. 우리의 마음을 어디에 두어야 되는지, 나 의 목적, 나의 삶의 목적, 나의 초점, 내가 정말 내가 바라보고 뭐가 돼야 되는지를 생각해봐야 되는 거예요. 그냥 어영부영 하게 저거 하면 돈 번다 하더라, 시간 보내 고, 그거 재미, 조그만 재미, 세상적인 낙이잖아요. 그러다가 인생이 다 허비 되는 거 예요. 우리 사단은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생낭비 하게하고, 하나 님 따라가지 못하게 하고, 이 세상에 다가 눈을 꽃게 만들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잘 안보여요.

그럼 우리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으려면 어떻게 되냐? 이겁니 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들로 살아가야 돼.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을 함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조금 부담이 될 수 있지만, 그러나 들어둬야 하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뭐라 그랬냐면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 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 지니,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이 하나도 없나니, 이 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경기 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 하지 아니 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자 사도 바울은, 그의 제자 디모데, 디모데가 참

 

그의 수제자였죠, 사실은. 그 제자에게 뭐라고 했냐면,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 사가 되라.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그리고 군사는 어떤 자냐? 자기 생각에 얽매 이는 자가 아니라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겁니다. 모집한 자, 모집한 자가 누굽니까? 하나님이죠.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구원하시고, 부르시 고, 군사로 불렀어요. 그럼 우리는 그분을 기쁘게 하기 위한, 그런 삶을 살아야 된다 는 것이죠. 고린도후서 5장 17절 보면,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 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히브리서 5장 12절 말씀. 때가 오래됨으로 마땅히 선생이 될 텐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에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 할 것인지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면,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좋은 군사 들로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어떤 옷을 입어야 되냐면,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살아야 돼요. 군사, 군복하고 자유인의 복장은 틀립니다, 그죠? 자유인의 복장은, 어떤 옷도 입을 수 있어, 러닝셔츠도 입을 수 있고, 잠바도 입을 수 있고, 치 마도 입을 수 있고, 다 입을 수 있어요. 그러나 군사는 뭐 만 입습니까? 군인은? 군 복만 입어요. 그런데 군복은 여기서 말하는 게 뭐냐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군사로 살 아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어라는 거예요. 여러분, 군인이 옷이 더러운 거 봤습니까? 구겨진 거 봤습니까? 군인이 옷이오. 이제 자유인 옷은, 어떻습니까? 가다 가 진흙도 묻고, 밥 먹다가 김치국물도 튀기고, 더럽고, 그죠? 그러나 우리에게 하나 님께서 이제 자녀삼아 놓고 원하시는 게 뭐냐면? 예수 그리스도의 옷, 그 군복을 입 어라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런 옷을 입고, 그리스도의 군복을 입고, 그렇게 살기를 원하시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나 저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 이 땅위서 (또 하 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시겠지만), 우리의 마음은 정말 믿음의 선진처럼, 본향을 더 사 모하고, 본향에서 더 승리할 수 있도록, 이 땅에서 삶을 준비하는, 그렇게 살아가는, 여러분 제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참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주님 저희들의 가치관이 온전히 바뀌기를 원합니다. 땅에 있는 가치관이 하늘로 온전히 움 직여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삶을 주장하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선진 들이 그렇게 믿음을 따라 살고, 믿음을 따라 죽은 것처럼, 우리 믿음이라고 하는 것 은 오로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으로 그 믿음을 따라 살고 믿음을 따라 죽은 우리 선진들처럼, 그래서 그들의 약속이 죽어서도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에게도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와 함께하여 주옵시기를 원하옵 고 우리 모든 사람들이 믿음의 사람들이 되옵기를 바라옵고 이 모든 말씀 예수그리스 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