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 바른영성훈련 - 물질과 영성 IV. 우리가 해야 할 세 가지 - 서사라 목사님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이 참 많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감사 감사 또 감사드립니다. 저희들이 너무나 부족한데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렇게 자녀 삼아주시고, 또 하나님 안에서 이렇게 어 우리를 예쁘게 봐주시고 늘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해주시는 하나님을 찬영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이 시간에도 하나님 우리는 주님을 초청합니다. 주님을 우리의 마음속에 모셔드립니다. 임하셔서 이 예배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귀한 예배가 되게 도와주시고 아버지 앞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아버지 부족한 종 아버지 하나님 기억하시고 아버지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전하고자 하는 귀한 말씀들이 나올 수 있도록 우리 주님 축복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우리의 심령이 옥토밭에 떨어지게 도와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사옵고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오늘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다시 한번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시편 105편 1절부터 4절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사를 말할지어다 그 성호를 자랑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아멘.
우리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말씀이 외치신 말씀이 뭐냐면 뭐였겠습니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라고 얘기했습니다.
천국이 가까웠다 라고 말씀하시고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복에 대해서 말씀하셨죠. 누가 복 받은 자인가? 그게 마태복음 5장 3절부터 복 있는 자에 대해서 그분은 가르치셨습니다.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3가지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복 있는 자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근데 세상적인 복하고는 너무나 틀린 복들이죠. 그죠 첫째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했습니다. 그러니까 영적으로 가난한 자, 영으로 나는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하는 자가 복된 자라는 거예요.
이 세상에는 돈만 있으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죠. 그래서 영으로 가난한 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나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임이요. 그리고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그랬습니다. 애통하는 자가 누구냐면 여러분 우리는 세리를 우리는 기억합니다. 주님 앞에서 자기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가슴을 두드리고 감히 하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애통하는 그 모습을 그런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남의 죄에 대해서 애통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죄에 대해서 애통하는 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세 번째로 주님이 말씀하신 복 있는 자가 누구냐 하면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며 온유한 자, 여러분 성경에는 화를 내는 것이 성을 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그래서 오래 참는 자, 오래 참는 자 그게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속하죠. 오래 참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다음에 네 번째는요 의에 줄이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이며 저는 이 말씀을 가장 좋아합니다.
다른 어떤 말씀보다도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왜냐하면, 주님의 약속은 우리가 배부를 것이라고 말하기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저희들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아멘. 이런 자가 복이 있다는 거예요. 그 다음에 긍휼히 여긴 자는 복이 있다.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 여러분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긍휼히 여겨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단점을 보고 약점을 보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기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서로에 대하여 관용하고 그렇잖아요. 관용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라고 말합니다.
서로에게 관용하고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그렇게 하여 긍휼히 여긴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다음에 여섯 번째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며 마음이 청결한 자, 그러니까는 마음이 청결한 자, 그런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양심에 대하여 확실하게 반응하고, 민감하게 반응하고, 그러한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양심의 소리를 멀리하지 말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자가 하나님을 본다, 하나님을 볼 것이다. 그다음에 어 일곱 번째가 뭐냐면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며, 여러분 우리는 어디를 가나 화평케 하는 자가 돼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쪽 가서 얘기하고 저쪽 가서 저 얘기해서 싸움을 일으키는 자가 아니라 왜냐하면, 그런 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하잖아요. 주님은 우리를 화평케 하러 오셨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평케 하러 오신 거예요.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본받아서 어디를 가나 화평케 하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화평케 하는 자는 어떤 자냐면요 이쪽 가서 이 말하고 저쪽 가서 저 말 할 수 있는데, 과장해서 얘기하거나 없는 얘기를 만들어 낸다거나 중상모략을 하거나 그러지 말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잘못한 게 있더라도 덮어주면서 얘기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자가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천국에 가면 누가 큰 상을 받는가? 주를 위해서 헌신하고 죽기까지 그 목숨을 아끼지 아니하고 내어놓는 자들이 그들의 상이 큰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속이지 말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누가 그렇잖아요. 누가 핍박을 받는 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조금 핍박받고 핍박 많이 받았다 하는 그런 자가 아니라 정말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의 것임이라. 우리는 성경을 말씀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를 많이 봐야 되는데 여러분 그냥 그냥 넘어갈 얘기들이 아닌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 의를 위하여 핍박받기를 즐거워하는 자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주님은 어떻게 제자들에게 가리키고 있냐면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는 너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아멘. 여러분 제가 전도하러 한번 나갔었는데 거기가 어디냐 하면은 12가 하고 벌문 정도 돼요. 거기 갔는데 좀 얼굴이 빨간 사람들이 앉아서 장기를 두고 있더라구요. 바둑을 두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전도를 했습니다. 아저씨들 예수 믿어야 천국 갑니다. 그랬더니 그중에 얼굴이 제일 빨간 사람이 하나 일어서더니 이 무슨 년 하면서 그냥 차는 거예요.
막 차기 시작하는 거야. 뭐 얼굴 때릴라 그러고 한번 차였어요. 그래갖고 내가 속으로 얼마나 화가 나는지 내가 지를 위해서 얘기했는데 말이야. 그죠. 자기를 위해서 얘기했는데 일어나갖고 막 차는 거야. 그래 수위가 와갖고는 말렸어요. 다행히. 그 수위가 자기도 목사래요. 막 와가지고 그냥 막 말리더라고. 멕시칸 페스터. 그때 제가 얼마나 화가 막 부룩부룩 나는지요? 왜냐하면, 아니 자기를 위해서 복음 전에는 날 차는 게 뭐예요? 도대체 막 진짜 무슨 년 하면서 막 그냥 막 따귀를 때리기 직전에 와이 그래갖고 나도 막 화가 막 나 가지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내가 지금을 위해 천국 가라고 내가 복음 전화하는데 저 사람이 와서 날 때립니다.
얼마나 화가 나는지 근데 오면서요.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지 몰라요.
사도바울은요, 그 복음 전하면서 얼마나 많이 맞고 돌로 맞고 돌로 맞아서 죽은 줄 알았는데 저 끌어다가 놨는데 죽은 줄 알았는데 하나님 살려주셔서 싹 걸어갔잖아요. 그런 거 생각하니까 내가 막 화가 나고 울그락불그락 했던 그게 너무 부끄럽구요.
우리가 핍박을 받는다는 이것이 저는 그 핍박이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아무것도 아닌 거 같고, 울그락불그락했구나 사도바울에 비하면 얼마나 사도바울은 매 맞고 그렇잖아요.
39대의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을 맞았는데 세번은 태장으로 맞고 한번은 돌로 맞고 핍박을 받은 사도바울을 생각하니까 이건 정말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그러고 있구나 많이 회개했습니다.
여러분 창세기 1장 1절에는 뭐가 나오느냐?
태초의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런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의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 하나님이 천지창조.
그다음에 요한복음 1장 1절 태초의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러니까 이 태초하고 이 태초는 틀린 태초이죠. 그렇죠. 이 태초는 하나님이 이전부터 계셨는데 천지를 창조한 태초, 그러니까 이 태초는 천지가 창조된 태초를 얘기하는 거고, 태초의 말씀이 계시니라 이 태초는 영원 전의 태초를 얘기하는 거죠.
근데 이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니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 말씀이 예수님이신데, 예수님은 언제부터 있었다는 거예요. 태초부터 있었다는 거에요?
태초. 태초부터 그분이 계셨는데 그분은 하나님이었더라.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이사야 7장 14절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다 같이 읽어봅니다. 시작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아들이 우리에게 주어지는데 그것도 처녀가 잉태해서 아들을 우리에게 낳아서 주시는데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임마누엘은요, 엘은 하나님 하나님이란 말이고 누는 우리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임마는 함께하시다 이 조사하고 함께 해서 임마누엘 하면은 하나님이라는 분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그 아들이라는 거예요.
임마누엘 그러니까 그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근데 이 분이 태초부터 있었다. 천지를 창조한 태초가 아니라 그 이전에 영원한 태초부터 그분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얘기죠 근데 그분의 능력은 그분의 능력은 어떤 능력이냐?
그분의 능력이 어떤 능력이냐? 여러분 지금 우리가 보이는 모든 세상을 창조한 능력, 그분의 능력입니다. 그는 무에서 유를 부르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모든 세상이 그분의 말씀 한마디로 지어졌다는 그 사실은 그분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우리는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늘을 위한 그리고 그분의 능력 말씀 한마디로 인해서 지금 보이는 하늘과 땅이 없어질 것입니다.
여러분 베드로후후서 3장 10절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물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계시록 6장 14절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 옮겨우우매 그러니까 결국 뭐냐면 왜 이런 말씀들이 성경에 있는가 하면요 결국 우리가 보는 하늘과 땅은 그분이 지으신 말씀으로 인하여 그분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그분의 또 한마디 말씀으로 인하여 하늘이 떠나가고 땅도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새하늘과 새땅이 열릴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분이 지어놓은 세상을 말씀으로 지어 놓은 세상을 말씀으로 떠나가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계시록 20장에 11절 12절 보면 이게 백보좌 심판대에서 일어난 얘기죠.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그래서 그분의 능력은 그분의 능력으로 인하여 지으신 이 세계가 옷을 갈아입듯이 우리가 옷을 갈아입잖아요. 헌 옷을 버리고 어제 입던 옷을 벗고 오늘 새로운 옷을 입듯이 그분은 말씀 한마디로 이 세상과 하늘과 땅을 다시 갈아치우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이사야 34장 4절을 보면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하니 포도나무 잎이 마름같이 무화과 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그러니까 하늘의 만상이 하늘들이 두루마리같이 말린다는 것입니다. 말려서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이런 얘기를 제가 지금 하느냐? 이 세상은 우리가 아무리, 아무리 마음을 둔다 할지라도 다 죽고 썩고 없어질 것들이라는 것이란 말입니다. 그 죽고 썩고 없어질 것에 성경은 뭐라고 얘기하고 있냐면 마음을 두지 마라 너희는 너희 눈을 땅에다 두지 말고 하늘에다 두라 라고 얘기를 합니다.
너희는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하늘의 것을 생각해라. 할렐루야.
여러분 저는 신학교 가서도 한 과목을 제가 뭐 잘나지는 않았지만 누가 부탁해서 강의를 하고 있는데, 신학생들한테도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신학생들이 나중에 주의 종이 돼서 말씀을 선포할 텐데 저는 그렇게 얘기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이유가 내가 이 세상에서 잘되기 위해서 믿는 것이라면 그거는 잘못된 선포입니다. 그건 잘못된 믿음입니다. 우리는 어디서 잘 돼야 되냐면은 이 세상에서 잘되는 게 아니라 저 하늘나라에서 잘돼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렇게 선포하는 것이 바른 주의 종의 선포라는 것을 제가 누누히 말씀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나의 봉사가 오늘 나의 헌신이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오늘 나의 봉사와 나의 헌신이 내가 이 세상에 살 때 내 자녀가 잘되고 내가 건강해지고, 내가 잘되고 비즈니스 잘 되고 그런 이유의 목적이라면 오래 살고 말이죠. 그것을 위한 것이라면 포커스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늘에다가 소망을 두고 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도할 때는 다른 말을 쓸 수 있어요. 예수 믿으면 잘 됩니다. 비즈니스도 잘되고 하나님 지켜주심이 따르고 다 그렇게 얘기할 수 있지요. 그렇잖아요. 첫째는 잘되는 게 영혼이 잘 되는 거죠.
지옥 안 간다는 게 얼마나 기가 막힌 말입니까? 이 세상에서 아무리 잘 돼봤자 무슨 소용 있어요. 죽고 나서 지옥 가면. 하나님은 바다를 명하여 육지와의 경계를 정하셨어요.
바닷물아 이만큼만 올라 와라. 너희는 '너 바다는 이만큼만 올라와라' 그 경계를 두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거기다 모래를 두셨더라 여러분 모래가 보면 바다에 밖에 없어요.
모래가 산에 있는 거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모래를 두셔 가지고 바다에 올라오지 말아라 여러분 쓰나미가 그냥 일어날 것 같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 명령하에 일어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 시편 107편 23절에서 29절 한번 읽어보죠. 이것은 육지에 사는 사람들은 육지에서 하나님을 경험하지만 바다에서 사는 사람들은 바다에서 하나님을 경험한다고 얘기를 합니다.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편 107편 23절에서 29절 한번 봅니다.
선척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영업하는 자는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닷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엄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저희가 이리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히 하사 명령하시는 거죠.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여러분 이 바다에서 물결이 일어나는 것도 그냥 우연히 일어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명해해서 광풍 일어난다는 거예요.
광풍이 일어나서 바닷물결을 일으키셔서 그들로 하여금 식겁하게 하잖아요. 어떤 분은 보니까 바닷물결 속에서 그 깊은 바닷속에서 일주야를 나중에 사도바울이 사도행전에서 나오는데 일주야를 기품 속에 있었다. 이럴 때 지각의 혼동한 속에서 얼마나 죽음과 그 뭐죠 사경 속에서 헤매겠습니까? 그때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주님은 명령으로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 그래서 그들을 그들이 부르짖으니까 하나님이 그들을 저희의 소원이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그러니까 바다에서 영업하는 사람은 바다에서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거예요. 동의하십니까?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살아있는 당시에 제자들이 바닷물결에서 막 이렇게 헤매고 있을 때 주무시다가 나타나서 하는 얘기가 너희들 왜 이렇게 소동하냐? 그랬더니, 우리가 죽게 생겼나이다. 그랬더니, 예수님이 바다야 잠잠하라 그랬더니, 바다가 갑자기 잠잠해지는 거예요.
여러분 그분이 누구냐면 바로 하나님 우리를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더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0절에 보면 그런 얘기가 있죠.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했다. 자기 땅에 오면 자기가 지은 땅에 왔다는 거잖아요.
자기 땅에 오면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어떤 자들에게요?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그 이름은 예수입니다. 예수는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 예수라는 것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신 예수님 그 예수님을 우리는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창조물들,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 창조물을 창조 목적이 있어요. 해는 해대로 창조했고, 달은 달대로 창조했고, 물고기는 물고기대로, 나무는 나무대로, 공기는 공기대로, 다 창조했고 우리도 창조한 목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해가 어떻게 하면 그 분 창조주에게 노래하면서 살 수 있을까요? 우리가 보면 모든 창조물은 사실은 하나님을 향하여 노래하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그 언어를 그 언어 알아듣지 못해서 그렇죠. 그럼 여러분 해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찬양하겠습니까? 잘 떴다가 잘 지는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시편 19장 6절을 보면 이렇게 얘기합니다.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얼마나 이렇게 또릿또릿하겠습니까? 그죠.
신랑이라는 말을 붙였으니까 기뻐하며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달리는 장사 같아서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하며 그 온기에서 피하여 숨은 자 없도다 여러분 이 해는 하나님이 창조하셨는데 자기가 가장 그 창조 목적에 가장 잘 행하고 있는 게 뭐냐면 이쪽 끝에서 나와서 저쪽 끝까지 열심히 달리면서 운행하는 것이 그 자체가 창조주가 그를 창조한 목적에 따라서 일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이 자체가 이렇게 일을 잘 하는 자체가 하나님을 그의 창조주인 하나님을 노래하고 찬양하는 행위더라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 인간은 하나님이 어떻게 뭐하라고 창조했나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사야 43장 21절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창조하였나니 지었나니 누구를 위해서 지었냐면 나를 위해서 지었다는 거예요. 이 하나님을 위해서 지었다는 거죠.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가 그 분의 목적에 잘 살고 있으면 우리는 그 삶을 통하여 그분을 노래하고 자랑하는 것이더라는 것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서 지었다라고 말하고 있죠.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오늘 성경 말씀을 보면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뭐냐 하면 여호와께 감사하며 우리가 그분께 창조함을 받았으면 그분께 감사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될 일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두 번째로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뭐냐 하면 그 이름을 불러서 아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첫째 우리가 그분의 창조주인 그분에게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뭔가 감사해야 되더라고요. 여러분 이스라엘 민족들은 애굽에서 나와서 원망 불평했어요.
열가지 기적을 보였고 홍해를 갈라서 그들을 이끌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세상에서 죽고 썩을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지옥갈 수 없는 밖에 없는 그런 인생 속에서 우릴 끌어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는 게 뭔지 삶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원망 불평하고 살더라는 것입니다. 근데 이스라엘 민족을 보면 그들이 광야에서 가난으로 들어가는 광야 속에서 광야에서 원망 불평을 했더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하나님이 그들에게 진노하셨어요. 원망 불평했더니, 가난해도 못 들어가게 했고 광야에서 그냥 엎드려 죽게 해버렸단 말씀이죠.
여러분 우리는 우리가 지옥갈 수밖에 없는 우리들을 끌어내서 광야에서 지금 우리의 삶이 광야인데 광야의 삶을 살 때 우리를 끌어내신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면서 살아야 되는데 우리가 영원천국으로 인도하시는 그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살아야 되는데 우리 삶에 조금 어렵다고 그래서 원망 불평하고 서로가 서로를 원망하고 불평하고 사는 그것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하나님이 그 진노하는 삶을 사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될 일은 뭐냐 무조건 감사해야 된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분이 하신 일에 대하여 감사하고 나에게 대해 하신 일에 감사, 내가 나된 게 내가 나의 나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죠. 나의 나된 건 나를 구원하실 분은 그분이시고 그분이 일을 다 하셨는데 무슨 그 이후에 원망 불평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무조건 감사합시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여러분 성경에는 그런 말씀이 있어요.
한 입에서 어떻게 단물과 쓴 물이 같이 나오며 찬양과 저주가 같이 나오는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입을 주신 이유는 그분이 우릴 창조하신 목적은 그분을 찬양하기 위해서 아멘입니까?
우리에게 입을 주신 이유는 그분께 감사하기 위해서 입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원망 불평할 것이 아니라 뭐라고 얘기합니까? 주여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다 주의 뜻입니다. 할렐루야. 순간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도하지 않았다라고 생각하시는 분 손 한번 들어보십시오. 우리는 다 하나님께서 순간순간도 이 순간마저도 그리고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그분의 인도하심 속에서 선한 삶을 살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께 감사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너의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범사에 감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참 감사할 일이 많더라고요. 한국에 가면 또 다른 데서도 우리가 여행 한번 할려고 함 해 보십시오. 얼마나 이상한 사건들이 인터넷에 많이 뜹니까? 누가 납치됐다. 그리고 죽어서 발견됐다. 그리고 우리 한국에는 뭐 인신매매에다가 장기적출에다가 여러분 생각하면 참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셨고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있다는 것만도 내 사랑하는 자녀와 가족과 부모들이 살아있는 것만도 감사하지 않습니까?
다 감사한 일인데 우리는 감사하지 못하고만 사는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 죄짓고 사는 줄로 믿습니다. 감사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 뭐라고 얘기하냐? 시편 106편에 이렇게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런 선하시며 그 인자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두 번째로, 그분은 우리에게 뭘 하기를 원하냐면 그분께 아뢰기를 원하고 있더라구요. 아뢰라 그렇잖아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께 아뢰기를 원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이름을 불러 아뢰라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기도하라는 얘기죠 기도하라는 겁니다. 그분의 이름을 불러서 아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어떻게 시작하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부터 시작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부터 우리의 기도는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아멘.
하나님 아버지 이름을 부를 때 여러분 좋지 않습니까?
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부르면요 그냥 그 자리에서 그냥 하나님하고 만나지는 것 같은 느낌이죠.
여러분 아버지라는 이름 한번 부를 때마다 그러니까 우리가 수없이 아버지 하나님 이름을 불러야 되는 거예요. 하루하루를 살면서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도와주세요.
하나님, 하나님만 불러도 내 안에 뭐가 있는지를 아세요.
그분은 내가 그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도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 아멘. 그래서 가장 간단하게 하나님 부르면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걸 듣고 계신 하나님은 그 자리에 함께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와 늘 함께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다음에 여러분 우리가 기도라는 것이 있는데, 기도는요. 차례를 제가 한번 봤어요. 왜냐하면, 첫 번째가 하나님 이름 부르지 않습니까? 그다음에는 우리가 해야 될 게 있는데 뭐냐하면, 회개더라고요. 왜냐하면 나한테 죄가 있으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불러도 죄가 있으면 그분과 나 사이에 벽이 생겨있잖아요. 벽이 생겨있다. 그 벽을 들어 올리려면 회개부터 해야 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러분 우리가 교회에 왔으나 또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 앉아서 기도를 하는데 무조건 앉아갖고 하나님 이거 해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요거 해 주세요. 한다고 해서 듣는 게 아니라 먼저 그 분 앞에 벽을 없애는 회개의 기도를 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아멘입니까? 그분의 얼굴을 우리에게로 향하게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도할 때 간구의 기도 이전에 우리는 먼저 회개가 있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제가 가리워져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면 내가 10분을 기도해도 30분을 기도해도 하나님은 안 들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아멘입니까? 여러분 우리는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됩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한다는 게 뭐냐면 먼저 죄부터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는 건 죄기 때문에 근데 그 죄가 주로 어디에 주로 말씀하고 있냐면 우리 양심의 얘기를 하고 있죠. 그래서 내 양심을 잘 살펴보면 뭘 해결해야 될지가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내 사이가 회복이 되고, 그다음에 내 기도가 그분 앞에 올라갈려면 죄부터 해결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 다음에는 뭐해야 되냐는 거죠. 여러분 우리는 다 안다고 하지만 다시 한번 살펴봐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다음엔 뭐 해야 되냐? 감사해야 돼. 여러분 성경에 보면요 성경에 보면 시편 100편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4절입니다. 이 말씀이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그분이 계신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감사함이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계신 문을 여는 열쇠가 있어요.
우리 현관문 여는 열쇠도 있고, 우리 지하실 여는 열쇠도 있고, 우리 안방 문 여는 열쇠도 있고, 다 열쇠가 있는 거예요. 근데 그분이 계신 문을 여는 열쇠가 뭐냐? 감사함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감사함으로 그분이 계신 문을 연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버지 이름을 부르고 그다음에 어떻게 죄를 회개하고 그 벽이지 않습니까?
집에 들어가면 우리 한국인은 벽이 아주 높잖아요. 그 벽을 허무는 행위가 죄를 회개하는 거고, 그 안에 들어가 또 문이 있어요. 현관문 들어가야 되지 않습니까?
그 문을 여는 키가 감사라는 거예요. 하나님께 들어가는 차례가 있다면 하는 거죠.
그러면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고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서 문을 들어가기 위해서 감사라는 것이 여러분 우리 입술에서 감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 평상시에 감사를 많이 하는 자는 하늘 문을 열어놓고 사는 자예요. 아멘입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래도 감사하고 저래도 감사합니다.
저에게 원망 불평이 올라올 때마다 저에게 올라올라할 때마다 저는 어떻게 하냐? 주여! 그 사람이 살아 있음을 감사합니다. 아멘입니까? 감사할 조건을 찾아내는 거예요.
내 안에서 원망과 불평이 올라오려고 하는 싹이 트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럴 때마다 주여 감사합니다. 왜 감사하냐? 그가 살아있기 땜에 감사합니다. 저는요 저에게 원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요 살아있는 게 좋더라구요. 할렐루야. 원수가 죽기를 원합니까? 저는 살아있길 좋더라구요. 하나님 그가 살아있어서 감사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감사함으로 그가 계신 분으로 들어간다 그러고 나면요 내 마음의 어둠이 싹 없어지는 것 같아요. 그쵸. 감사함으로 그 문을 들어간다 그다음에 우리는 어떻게 하냐? 그다음에 이제 그분이 계신 그 문이 열렸으니까 그다음에 어떻게 하냐? 인제는 간구의 기도도 할 수 있고 또 도고의 기도도 할 수 있고, 어떤 때는 내가 아무리 간구하려고 해도 하나님이 안 시켜요 그냥 하나님만을 먹기를 원하실 때가 있어요.
하나님만 쳐다 보고 하나님은 너는 나만 쳐다보고 있어라. 하나님만 먹으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계속 방언 기도도 할 수 있구요. 하나님을 계속 먹을 수도 있고, 간구 기도도 할 수도 있고,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 우리가 기도할 때 무조건 앞에 가서 이거 주세요. 저거 해주세요. 한다고 해서 하나님이 듣는다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이름을 부르고 그 앞에 가서 죄를 깨끗이 회개하고 그와의 장벽을 없애고 그다음에 감사함으로써 그분이 계신 문으로 들어가서 그 안에서 그분을 보면서 얘기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깊이 동의하고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이 간구는 또 하나님이 우리가 뭐 해주세요. 뭐 해주세요. 하잖아요. 근데 그 간구는 또 어떻게 하라고 하냐?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또 성경에서 얘기하고 있어요.
우리는 성경대로 해야 됩니다. 믿음으로 하는 거예요. 믿음으로, 믿음으로 간구해라.
그 믿음으로 간구하는 게 어떻게 하는 거냐?
우리 빌립보서 4장 6절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마라. 그렇잖아요. 염려하지 마라.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여러분 우리가 감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내가 구하는 것에 대하여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을 믿습니다. 하는 것을 감사할 수 있다는 것은 그분을 믿어드리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라서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실 것을 알고 구하는 그것에 대해서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주님은 뭐라고 얘기하냐? 너희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라고 얘기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실 아버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일단은 염려가 됐다 할지라도 그분이 나의 아버지이므로 내가 이것을 구하지만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을 알고 계시는 한 그것을 주실 것을 아는 우리 그 믿음이죠. 그 믿음을 갖고 그분이 우리에게 나는 이것을 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이 있다면 그것을 주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아무것도 염려함이 없이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분 앞에 나아가서 아뢰고 감사함으로 아뢰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실 하나님을 날마다 만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예레미야 29장 13절을 보면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난다. 못 만나는 이유가 안 찾기 때문에 못 만난다는 겁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여러분이 전심으로 자꾸 찾는다는 거는 사실은 내가 일하면서도 할 수 있어요. 게을러서 그렇지. 여러분 전심으로 찾는다는 것은 내 마음을 다하여 찾는 겁니다. 내 마음을 다하여 그럼 나를 만난다. 어떤 기도 제목을 갖고 계속해서 일하면서 한번 그 응답을 구해 보십시오. 그것도 전심으로 찾는 것입니다. 전심이라고 하는 것은 꼭 성전에서만 앉아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전심으로 찾는 건 내 인생을 다 인생을 다 걸고 찾을 수도 있습니다. 내 온 하루를 걸고도 찾을 수 있고 내가 일하면서 운전하면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가 뭐라고 말씀할까요?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는 분 아닙니까?
차에서도 만날 수 있고, 운전하면서도 만날 수 있고 그래서 그분을 날마다 찾아서 만나야 되는 것이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자인 그분이 원하시는 그 일에 그가 우리를 창조하신 그 목적에 바로 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 6절에서 7절 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그 이름을 그분의 이름을 불러서 그분께 아뢰기를 원하고 계시더라는 것이죠.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그런 얘기를 하죠.
일하면서도 만날 수 있고 또 일하지 않으면서 집중하면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십일조를 합니다. 물질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아서 그 물질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라고 고백하는 행위가 십일조죠.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간의 십일조도 원하시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꼭 재물뿐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들 우리에게 주어진 정력과 건강과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주신 우리에게 하나님을 위해서 쓸 수 있는 물질 속에 속한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혹이라도 만일에 우리의 삶 속에서 하루에 하나님을 잊고 산다면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들이 십일조의 시간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러분께서 사시면서 좀 더 그 시간들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사는 것이 내가 오늘 하루를 사는 게 있는 데 있어서 의미가 있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오늘 하루를 보낸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창조하시고 목적대로 살지를 못하고 있는 그런 모습밖에 되지 않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어 그 고린도후서 10장 5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죠.
모든 이론을 파하고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라. 여러분 하나님이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그 모든 것, 그 모든 것을 다 이렇게 뒤로 두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아는 것을 가장 높이 높은 곳에 두고 가장 먼저 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 그런 얘기를 했잖아요.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빌립보서 3장 7절에서 9절 다같이 시작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여러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이 세상에서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하건 간에 먹든지 마시든지 간에 내가 뭘 하든 간에 내가 살아있는 기간, 그 기간 동안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그것이 가장 먼저 돼야 된다는 것인입니다. 이것이 가장 높아야 되고 이것이 가장 우리의 목적이 돼야 되는데 그 외의 것들은 지금 사도바울은 뭐라 그랬냐? 그것을 위해서 다른 것들은 내가 다 해로 여기고 다 배설물로 여긴다 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면 우리가 무엇을 가장 먼저 둬야 될지를 사도바울의 그 이 얘기를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날마다 하나님 앞에 여러분이 드려지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뭐라고 얘기하고 있냐면은 우리가 해야 될 일이죠. 첫째는 그분께 범사에 감사해라 감사밖에 우리가 할 수 밖에 없다는 거죠.
그분의 주권에 대하여 이러쿵저러쿵 얘기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불러 아뢰고 두 번째 할 일입니다. 그죠 그 다음 세 번째는 그 행사를 만민중이 알게 할지어다 그게 뭡니까? 그 행사 그분이 하신 일을 만민 중에 가서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분이 하신 일을 만민에게 전파하는 일이라는 건 뭐냐면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지요. 내가 오늘 살아도 오늘 살아도 살아있는 의미가 뭐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살아 있어라 라고 얘기를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뭐라고 얘기하냐? 너희가 떼를 얻거나 못 얻거나 복음을 전파하라고 얘기합니다. 때를 얻거나 못 얻거나 하는 말은 모든 때가 때다라는 겁니다. 모든 시간이 다 때라는 거예요. 때를 가리지 말라는 게 때를 얻거나 못 얻거나 아멘 .때가 가릴 게 아니라는 겁니다. 복음 전하는 데 있어서는 때를 가리지 말아라. 아멘입니까?
여러분 성경은 평안에 복음의 신발을 신고 가라 그러잖아요. 평안에 복음의 신발을 신고 가라.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얘기가 구원받은 자녀로써 그냥 있는 게 아니라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빛을 발하라 라고 얘기했잖아요. 이런 빛을 발하는 것이 꼭 멀리 가야 되는 게 아닌지 아니지 않습니까? 빛을 발하는 것은 먼 데 갈 수도 있고 가야 됩니다. 가도 가야 되죠. 왜? 온 세상에 만민에게 전해야 되니까. 가야 됩니다. 그러나 내 옆에도 있다면 내 옆에서도 빛을 발해야죠 일어나야죠. 일어나서 때를 얻거나 못 얻거나 복음을 전파라는 것입니다.
저는요 고속도로가 쫙짝 뻗어 있잖아요. 어디를 가든지 뭐 엄청나게 운전을 해 보면 예를 들어서 여기서부터 샌프란시스코까지 간다. 9시간 정도 제 실력은 9시간 정도 운전을 해야 돼. 가는데 도로가 얼마나 반듯이 뻗어있는지 몰라요. 그냥 뭐 어떻게 그냥 가만히 있어도 가는 거 같애. 그렇잖아요. 얼마나 뻗어있는지 내 손가락 별로 안 움직여도 돼요. 그냥 가만히 잡고만 있어도 그냥 가. 그리고 무슨 크루즈 컨트롤 해갖고 딱 속도 맞춰 놓으면 그냥 가는 거예요. 졸지만 않으면 되는 거에요. 그리고 브레이크 잡으면 브레이크 밟아지고 근데 그렇게 뻗어있는 거 보면서 제가 지금은 또 다른 생각 들지 그때는 제가 막 눈물을 흘렸어요. 왜 눈물을 흘렸을까요?
저 사람들이 저거 도로 닦느라고 인생을 다 보냈구나. 여보시오. 잠깐 멈춰서서 5분만이라도 복음을 들었다면 그렇지 않습니까? 그 닦느라고 인생을 다 보낸 거예요. 돈 벌어갖고 밥 먹고 사느라고 내가 보면서 주여 하나님 저 일하는 자들 얼마나 얼마나 저렇게 일하고 벌어먹다 살다가 죽었겠습니까? 여보쇼 스탑 5분만 스탑하고 내 얘기를 좀 들어 보시오. 내가 거기 있었다면 그랬었을 것 같아요. 5분만 스탑해라. 5분만 멈췄어 근데 아무도 그런 얘기를 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도로 닦느라고 그 도로가 얼마나 세상에 도대체 몇 명이 거기서 봉사를 했겠으며 봉사가 아니라 밥을 먹고 살아요. 얼마나 일을 했겠으며 그렇지 않습니까?
스탑! 그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었어야 되는 건데, stop! listen to me 여러분 우리가 사는 데서 빛을 발하고 일어나라 여와 영광이 네 위에 임하여 있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빛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렇죠. 이웃을 사랑하는 가장 큰 방법은 뭐냐? 복음을 전파하는 거. 빵 하나 더 주고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복음이 그에게 들어가기 위해서 그걸 하는 거지 복음을 전파함이 없이 빵만 준다면 그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지요.
여러분 요한복음 3장 18절 이렇게 얘기합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 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벌써 이 세상에 살아도 심판을 받은 것이래. 그러나 저를 믿는 자는 저가 누굽니까?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말씀으로 오신 그분, 동정녀 마리아에게 태어나서 우리를 위해서 죽어주신 그분, 그분을 믿는 자는 그분은 부활하셨어요. 우리는 복음이 죽은 것만 얘기할 게 아니라 그분은 부활하신 하나님입니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그분의 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디 있든 간에 평안의 복음의 신발을 신은 자 하나님과 그와 화평케 하는 자, 그런 자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도 승천하시기 전에 우리에게 무슨 얘기를 하셨냐면은 마지막으로 명령을 하셨죠. 승천하시기 전에 예수께서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20절입니다. 예수께서 나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당연한 얘기죠 그렇죠. 그분은 하나님이니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가서 제자 삼는 게 우리가 해야 될 일이라는 거에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예수 믿게 하라는 거죠.
내가 너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성령 하나님이 되셔서 너희와 함께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하늘과 땅에 모든 권세를 가지신 이가 우리가 가는 곳마다 그가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리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다시 오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분이 다시 오실 때에 그분은 어떻게 하시겠다고 얘기하냐? 심판하시겠다. 특별하게 주님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이나 사복음서에 얘기하는 그 비유들을 보면 그분이 오셔서 심판하시는 것 중의 하나가 뭐나 심판입니다. 므나 심판 그분은 승천하셔서 저 하늘나라에 가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써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는데 와서 심판하는 것 중의 하나가 므나 심판이에요.
그분은 우리에게 한 므나씩 다 맡겨놨어요. 그 한 므나를 받아쥐고 나서 나중에 그분이 오실 때 몇 므나 남겼냐? 보시겠다는 겁니다. 므나 함 내놔 봐라는 거죠. 네가 내 올 때까지 어떻게 장사해서 몇 므나를 남겼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있는 사역자들은 빼고 집안 식구들이나 여기 있는 성도들을 한번 보십시오. 다 제가 전도에서 온 분들입니다. 여러분들도 이제는 전도해야 돼요. 므나 심판이요. 물론 저는 안 보이는 데서 다 결신시키고 또 전도했습니다. 좋아요. 그렇게 그것도 해야 돼. 그러나 보이는 것도 좀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오셔서 므나 심판하시겠다는데 여러분이 제가 안 보는 데서는 얼마만큼 전도하는지 모르지만 제가 보는 데서 아무도 안 한다면, 이거는 므나 하나 갖고 있으면서 안 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습니까? 앞에서부터 시작해서 한 명도 데리고 온 사람이 없어. 여러분 제가 전도를 많이 했다는 게 아니라 저도 별로 자신이 없어요. 제가 전도한 영혼 중에 얼마나 하나님께로 진짜 인도함을 받았는지에 대하여 자신이 별로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지만 저는 단지 데려다 놓고 전도하고, 말씀 전하고 할 뿐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시겠죠.
그래서 여러분 이 므나 심판 때 한번 보죠.
우리 누가복음 19장 이것만 읽어보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19장 12절부터 한번 읽어봅니다. 다같이 시작 가라사대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 준 종들의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그 첫째가 나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니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그 둘째가 와서 가로대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 차지하라 또 한 사람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 그때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주인이 가로대 주여 저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주인이 가로되 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여러분 이 일하지 않은 자, 수건에 싸둔 자죠. 한 므나를 받아서 일하지 않고 수건에 싸둔 자는 무릇 있는 자 있는 것까지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 성경에는 므나가 뭔지는 확실히 우리는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받은 사람이 각 한사람에게 한 므나씩 주어졌다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신 것으로 어떤 사람은 성령으로 얘기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을 받아서 내가 그 평화를 받아서 그 평강의 왕이신 하나님을 가지고 우리가 전도하러 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았으니 그 한 므나를 가지고 다른 사람 열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열 므나를 남기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받아서 그 하나님으로 다섯 므나를 전도해서 남기는 것이 다섯 므나를 남기는 것이지요 근데 한 므나를 받았는데 하나님을 받았는데 성령 하나님을 내가 가졌는데 구원을 받았는데 구원받은 자에게는 성령 하나님 계시지 않습니까? 그거 갖고 나가는 겁니다. 근데 수건에 싸둔 자는 나중에 와서 그것마저 빼앗긴다고 하는 얘기잖아요. 그럼 뭘 빼앗겼느냐는 것입니다. 도대체 뭘 빼앗기느냐? 여러분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가장 큰 존재예요. 우리가 저 하늘나라도 하나님이 가장 큰 상급입니다. 그걸 빼앗긴다면 도대체 우리는 그럼 무엇을 가진 자가 되냐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므나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불가운데 구원받는 것 같은 구원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뭐 하면요? 그 므나를 한 므나를 받아서 수건에 싸둔 자.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세 가지가 뭐냐 우리 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다같이 시작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중에 알게 할지어다 이 세가지 일을 날마다 하면서 사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참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또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 또 우리가 지금 살아있는 그 이유가 오늘 이 시편에서 말하는 시편 105편 1절에서 얘기하는 이 말씀 3가지 우리는 창조물로서 피조물로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항상 해야 될 것은 원망 불평하는 단 하나의 한마디 말도 아니며, 우리는 단지 그분이 하신 모든 일들에 대하여 우리에게 행하신 모든 일들에 대하여 감사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하루를 살면서도 수없이 그분의 이름을 부르고 아버지 그분께 아뢰는 귀한 시간들이 있게 도와주옵소서. 또한 아버지 하나님 오늘 하루를 살면서 오늘은 나도 오늘은 내가 정말 그분이 원하시는 가라 하신 말씀에 내가 순종하였는가 복종하였는가를 보면서 사는 우리 모두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와 함께 여 주실 것을 믿사옵고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렸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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