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살며시 연록의 5월 그 대지위로 스며들던 날 오후에 경복궁 뜨락을 걸어봅니다.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오르는 옛 석공의 손길을 만나게 되고
정인의 슬픈 전설 하나 쯤 깔려있을 듯한 석탑의 조각이 모진 세월에 듬듬합니다.
철쭉의 화려한 자태가 사라진 뜨락 한켠에서는 초록빛 틈새로
하얀 속살을 터뜨리며 5월의 하늘에 고개내민 이팝꽃이 이방인을 반깁니다.
고궁을 찾아오는 방문객은 가정의 달 5월을 맞이하여 발길이 더 잦아지는 것 같습니다.
"궁"을 소재한 올봄의 서울 페스티벌 영향인지 수문장교대 현장체험 코너도 있습니다.
구중궁궐속에 어찌 여인의 한이 스려있지 아니할까요?
고궁 뜨락에 핀 할미꽃의 사연이 특별할 것 같아 잠시 발길을 멈추게 됩니다.
경복궁 옆 민속박물관에도 어른들 손을 잡은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들어옵니다.
향원정의 연못가를 한바퀴 돌아보지만 우연을 핑계한 인연하나 만나지 못하고
소설속 슬픈 이야기가 살며시 기억 한켠에 되살아나기 시작하는데
꿈을 한껏 피워올린 부푼 수국이 눈치없이 고궁의 처마끝을 타고 희열처럼 피어 오르네요.
후원의 작은 뜨락에는 아녀자의 한맺힌 사랑과 못다나눈 이야기가
붉디 붉은 작약의 슬픈 전설로 남아 피빛 눈물로 피어올라 있습니다.
좁디 좁은 후원 뜨락을 밟고 나오면서 만나게 되는 연못 위의 경회루,
돌 다리를 건너 석축을 따라 푸른 아이비가 세월을 거슬러 가려는 듯 긴 행열로 누워있고
당당하면서도 어딘지 모를 안타까운 역사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을 법한 경회루는
물과 하늘과 신록을 품은 자랑스런 우리의 문화제이자 역사의 흔적입니다.
연못을 둘러 서있는 능수버들 가지사이로 봄비가 살며시 스며들기 시작하는데
이시간, 봄비를 맞으며 고궁을 걷는 사람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면서
역사의 숱한 궁중비사와 전설이 살아 숨쉬는 이곳을 지나치고 있을까요?
깔끔하게 정리된 옛공간의 길을 걷는다는 건 일상에서 쉽게 느끼지 못할
시간의 여행이자 특별한 체험임에 틀림없습니다.
아직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옛시간의 흔적을 발굴하는 작업은 계속되고
우리와 우리들 후손으로 이어질 마침표 없는 과제물이기도 합니다.
봄비가 길손의 마음을 잡아끄는데 어쩔 도리없이 고궁박물관 로비 한켠의
"고궁뜨락"에서 커피 한잔으로 잠시 쉼을 가져보는데
봄비속의 고궁은 옛시간의 정지이자 회귀한 연어의 추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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