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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섹스리스

하늘이슬 2009. 5. 17. 13:56
미치도록 사랑을 나눌 때는 섹스 없이 살 수 있을까 생각했었다.
한때는 남자가 없다는 것은 섹스가 없기 때문에 외로운 것은 아닐까, 그렇게도 생각했었다.
사랑이 지나가고 난 후 그의 모습, 눈빛, 목소리보다 더욱 간절해지는 것은
낯선 모텔방에서 그와 함께 뒹굴었던 그 정열의 밤, 그의 알몸뚱이였다.
내 몸을 스쳐간 그의 손짓과 입술로 남겨진 그 느낌들,
어쩌면 그리움의 원천이 그런 것들이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맛'을 아는 여자였고
온 몸 가득 '기'가 줄줄 흐르는 끼 많은 여자였다.
남자 없이는 못산다고들 하는 바로 그런 여자말이다.

지금도 나는 매일 밤을 뜨거운 광란의 밤으로 보낼 수 있다.
하지만 섹스리스로도 내 남편을 사랑하며 딴 생각 안 하고 살 수도 있다.

부부의 80%가 섹스가 차지한다고 한다.
성격차이는 궁합차이라고 할 만큼 부부에 있어서 섹스는 중요하고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하지만 난 나머지 20%로 80%를 뒤엎고 살 수 있다.
어떻게 살어?...비중을 80%에 두지 않고 20%에 두면 된다.
그렇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 남편과 언제 사랑을 나누었는지 이젠 기억도 나질 않는다.
신혼 때도 우린 중년보다 더 뜸하게 살았고
지금은 노년보다 더 뜸한 거겠지.
아니 이제 완전히 섹스리스 부부가 된 건지도 모르겠다.
이유는, 남편은 허리가 아픈 사람이었고 관계 후엔 척추가 심하게 아픈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다 알고 은연중에 각오하고 한 결혼이었지만 솔직히 쉽진 않았다.
남편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
자존심이라면 나 역시 만만치 않다.
그런 걸로 서글프고 외롭다는 자체를 용납하지 못할 만큼...

이젠 섹스 없이 남자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내 몸이 그것을 원할 때 자위 없이도 잘 견뎌내는 초연함을 배웠다.
다행일까? 이젠 남편과 아예 맨살을 맞대지 않고도 잘 살 수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산다는 것이 바람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한번도 섹스와 연관해서 남편의 자존심을 건드리거나 서글프게 하진 않았지만
가끔 스스로 미안함에 내게 잘하려고 하는 것 같은 걸 느낀다.
그는 알까? 나는 그것이 더 서럽다는 것을...

나는 안다.
아직도 내 속엔 뜨거운 열정과 끼가 한껏 품어져 있다는 것을.
하지만 단 한번도 다른 생각을 한 적은 없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울해하지도 않는다.

나는 섹스보다 사랑을, 그리고 사랑보다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언젠가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예전처럼 그런 열정과 뜨거움으로 밤을 보낼 날이...

그런데 난 왜 슬 걱정이 되지?
그때가 와서 내가 부처가 돼 있지는 않을까 하는..^^


출처 : 별비내리는 밤에 마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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