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라목사님 바른영성훈련

이기는 자가 받는 축복-영혼과 영성3

하늘이슬 2016. 9. 2. 18:21

이기는 자가 받는 축복-영혼과 영성3

계시록22

계시록3

주님이 내가 속히 오리라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줄 상이 있어 각 사람이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주님이 오시는데 어떻게 오시는가?

노아의 때와 같이 오신다.

홍수가 날 때 아무도 알지 못했다.

주님이 언제 오시는가?

우리가 이 세상에 파묻혀서 살아갈 때 오신다는 것이다.

주님이 오시는 그 날을 준비하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하신다.

계시록에 이기는 자들에 대하여 나온다.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에 준비해야 하고 이기는 자의 반열에 속해 있어야 주님이 우리를 맞이하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일곱 교회에게 주님이 말씀하시길 이기는 자에게 이런 축복을 주시겠다고 한다.

고전2:9

우리가 천국가면 눈으로도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한 우리가 생각으로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준비하고 계신다고 하신다.

누구에게 이걸 주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신다고 했다.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킨다고 했다.

그러므로 내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 눈으로도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한 우리가 생각으로도 생각하지 못한 것을 예비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 예배한 것을 찾아서 먹을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원한다.

일곱교회가 나온다.

1) 에베소교회

첫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이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사랑했는데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이기는 자에게는 생명나무의 과일을 먹게해 주시겠다고 했다.

2) 두아디라교회

천주교 루터가 종교개혁하여 나오기까지의 기간을 두아디라교회로 본다.

이기는 자에게 철장을 가지고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

계시록에 나오는 일곱교회중에 첫째 라오디게아교회부터 집중해서 봐야 한다.

라오디게아교회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교회라고 했다.

왜 미지근하다고 했는가?

그들은 주님을 문 밖에 세워도고 살았다.

주님없이 결정하고 내 힘으로 사랑하고 주님없이 그 심령속에 주님이 없는 것이다.

내가 너와 더불어 먹고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 미지근한 생활을 벗어나라는 것이다.

미지근한 자는 내가 토하여 내쳐버리겠다는 것이다.

마음속에 주님이 없는 사람을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헌금도 내 맘대로 하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내 안에 주님이 없는 사람의 그런 사람은 자신이 주인이다.

어떤 일을 해도 주님께 물어보지 않고 다 자신이 결정하고 사는 것이다.

내가 주인 되어서 사는 삶이다. 주님을 밀어내는 삶이다.

그런 사람들은 주님은 미지근한 신앙상태라고 한다.

내 안에 주님이 없는 삶, 내가 결정하고 사는 삶,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내가 하기 싫으면 안하고..

예수를 믿고 나서 너는 내 것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면 내 맘대로 살면 안 된다.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주인 된 삶을 살 수 있게 내어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미지근한 신앙상태를 벗어나는 삶이다.

주님이 돌이키라 회개하라 열심을 내라 하신다.

그럼 우리는 어떤데에 열심을 내야 하는가?

주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내안에 주인 된 삶을 살게 하시는데 열심을 내라는 것이다.

이기는 자에게 어떤 축복이 오는가?

3:21

얼마나 기가 막힌 축복인가?

미지근한 이유가 니 안에 내가 없다는 것이다.

나를 문밖에 세워두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니 안에 들어가서 살게 되면. 이것이 이기는 삶인 것이다.

결국 주님이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들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사는 것을 원하고 계신 것이다.

연합된 삶을 사는 자가 이긴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기는 자에게 주어진 축복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된다는 것이다.

 

두 번째 교회는 사데교회를 잘 봐야 한다.

살았다고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라는 것이다.

이런 상태가 어떤 상태인가?

솔로몬을 보자.

처음에는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 나이가 들면서 하나님을 떠나고 첩이나 와이프가 많아지면서 그들이 섬기는 신들을 섬기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2절 보면 행위가 올바르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미 받았던 은혜를 생각하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3절 보면 처음 어떻게 구원을 받았으며, ...회개하라는 것이다.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간 자들, 이기는 자에게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솔로몬이 회개하지 않았다면 생명책에서 흐리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솔로몬은 회개하고 돌아왔다. 전도서를 썼다.

그는 구원받았다.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지 않았다.

20:15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 못에 던져진다고 했다.

한번 비췸을 받고 떨어져 나간 자는 구원받을 수 없다.

32:31

범죄하면 책에서 이름을 지워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워버린다는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장면이다.

사데교회에게 이기는 자에게는 흰옷을 입을 것이고 생명책에 이름이 지워지지 않을 것이니 회개하고 돌아와야 한다.

 

세 번째 교회가 버가모교회이다.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좇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요한12:15-17

버가모교회에게 주님이 책망하는 것은 세상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이 세상이나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그랬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들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다.

버가모교회는 지금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세상의 재물을 따라간다는 것이다.

니골라당을 따라가는 것은 권력을 탐하는 무리들을 얘기한다.

여러분 교회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권력을 탐하는가?

니가 잘났니? 내가 잘났니?

이게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님이 버가모교회에게 경계하고 책망하는 게 뭐냐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가지 말라는 것이다.

주님이 뭐라시냐면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을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좇아가지 말고 오직 우리가 주력해야 될게 뭐냐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에 대하여 주력하라.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사랑치 말고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좇아가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뜻을 내가 어떻게 이룰 것인가?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럴때에 이기는 자에게 어떤 축복이 오는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흰 돌을 준다는 것이다. 돌 위에 새 이름이 있다.

세상 것을 좇아가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님이 이 물을 마시는 자는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서 만나 얘기가 나오는 것은 세상 것을 좇니 말라는 것이다.

세상 것보다 훨씬 맛있는 만나를 주겠다는 것이다.

세상이 주는 물과 음식은 금방 마르고 또 먹고 싶고 이러지만 이걸 이기는 자에게는 감추었던 만나를 준다는 것이다.

흰 돌을 준다.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따라가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잘 살필때에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네 번째 교회가 서머나교회이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고 말씀하셨다.

이기는 자에게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겠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게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대강대강 살고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봉사안하고 편하게 살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기지 못하는 자에게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사망은 주가 가는 곳인가?

20:15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자가 가는 곳이다.

사데교회의 회개하지 않고 돌아오지 않는 자가 가는 곳이다.

21:7

둘째 사망은 볼 못으로 가는 것이다.

죽도록 충성하지 않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을 수 있다.

24:51

이 장소는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는 장소이다.

재물의 청지기, 물질의 주인이 하나님인 것을 모르는 자가 가는 데가 어디냐면 엄히 때리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 곳으로 간다.

바깥 어두운 곳,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장소로 간다는 것이다.

25:10-13

열 처녀가 주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예비하고 준비되었던 다섯 처녀는 문 안으로 들어가고 준비하지 않고 있었던 미련한 다섯 처녀는 문 밖에 남았다는 것이다. 여기가 어디인가?

외식하는 자의 율에 처해지는 바깥 어두운데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이라는 것이다. 거기가 바로 둘째 사망의 해를 받는 곳이다.

둘째 사망이 아니라 둘째 사망의 해가 오는 곳이다.

25:30

바깥 어두운데 새 예루살렘 성전 밖이라는 것이다.

달란트 비유를 보면 달란트를 받고서 땅에 묻어 둔 자는 바깥 어두운 데에 간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달란트를 주셨다.

섬기는 달란트 봉사하는 달란트 헌신하는 달란트..

그 재능을 가지고 죽도록 충성하지 아니하면 나중에 주님 오실 때에 외식하는 자의 율에 처해지고, 바깥 어두운 데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울게 되고 둘째 사망의 해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서머나 교회에게 편지를 보내서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줄 것이지만 죽도록 충성하지 않고 대강대강 살면 너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빌라델피아 교회이다.

그들은 책망을 맏지 않았다.

너희에게는 열린문을 두었다고 했다.

3:7

이 열린문은 어디의 열린문일까요?

22:12절 이후에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게 위하여 두루마기를 빤다는 것이다.

성에 들어가면 생명나무가 있다.

열린문은 하늘에서 내려 온 새 예루살렘 성전 문을 열어두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 빌라델피아 교회 교인들에게.

열어두었는데 아무도 닫을 자가 없다는 것이다.

빌라델피아 교회 교인들이 어떤 자들이기에 그들 앞에 열린문을 두었는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켰기 때문에 그들 앞에 열린문을 둔다는 것이다.

적은 능력을 가졌다.

큰 교회는 큰 능력을 가졌다. 재정적으로도 빵빵하죠.

그러나 작은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말을 지키고 내 이름을 배반치 않았다는 것이다.

큰 교회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하나님 말씀 지킴니까?

큰 교회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배반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죠.

오히려 작은 교회에 다니는 자들이 더 성실하고 더 진실하고 정말 적은 능력을 가지고 그분의 말씀을 지켰다면 이 자들이 빌라델피아교회 교인들에게 속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이 될 수 있길 축원합니다.

큰 교회 다닌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지 아니하나요?

하나님이 뭘 보는지 알아야 한다.

오히려 작은 교회 다닐지라도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들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신다.

큰교회 다닌다고 목에 힘주고 ..이게 아니라는 것이다.

빌라델피아 교회에게 주님이 주시고 하는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진실하라. 진리의 말씀으로 살아라, 내 말씀을 지키라.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말씀을 지키고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계명을 지킨다 그랬다.

끝까지 내 이름을 배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주님이 뭐라고 하냐면 끝까지 하나님을 배반치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내가 너를 끝까지 사랑하는 줄로 알게 하겠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느부갓네살이 금신상을 세워두고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절하라고 했다.

그렇지 아니하면 풀무불에 집어넣겠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절하지 않았을 때 7배나 더하게 풀무불에 집어 넣었는데 인자같은 이가 함께 하시므로 살아났다.

느브갓네살왕이 저들이 섬기는 신을 너희가 욕되게 하지 말라 그랬다.

우리는 빌라델피아교회 교인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

니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 주겠다고 했다.

대환란 후삼년 반 환란을 면하게 해 주겠다.

이 말씀 때문에 환란 전에 휴거될 줄로 믿는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내가 그 환란의 때를 면하게 해 주겠다고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누구냐면 하나님을 진짜 사랑하는 자들이다.

왜냐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리니하셨다.

세상에서도 사랑을 해보면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지킨다. 안 사랑하니까 안 지킨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사랑을 받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되지 않는 것은 거짓이고 가짜라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받는 것은 두 번째 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래서 가장 큰 첫째 계명이 무엇이냐?

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계명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빌라델피아 교회 교인들처럼 살아야 될 줄로 믿는다.

그런 자에게는 예루살렘 문을 아예 열어놓고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자가 없는 자가 말씀하시되 빌라델피아교회 교인들 앞에는 아예 열린문을 둔다는 것이다. 휴거될 때 반드시 휴거된다는 것이다.

빌라델피아 교회 교인들처럼 산 이기는 자는 네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신다는 것이다.

여러분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살은 자들에게는 아예 새예루살렘문이 열려있을 뿐만 아니라 새예루살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어차피 살다가 갈텐데 새예루살렘의 성전에 기둥이 되고 싶지 않은가?

다시는 성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원히 성전안에서 함께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이기지 못하면 이런 축복이 안주어진다는 것이다.

인내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이 무슨 말씀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지키면서 인내하라는 것이다.

1:4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데에 있어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것이다.

이것이 인내의 말씀을 지키라는 것이다.

가다가 하다가 중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저나 여러분이나 온전히 지키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럼 왜 말씀을 지키라는 말씀을 주셨을 까요?

의인은 없나니 아무도 없는데.

안 되는 나를 붙들고 살지 말고 내 안에 되어지는 주님을 넣어서 주님으로 그 말씀을 지키라는 것이다. 할렐루야!

그래서 동거 동락하자는 것 아닙니까?

주님이 라오디게아교회 교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그 말씀이다.

내가 너에게 들어가서 먹고 살고 너는 나에게 들어와서 먹고 살자.

내가 너에게 들어가서 주인 되는 삶을 살자. 그 얘기거든요.

여러분이 큰 교회 다니거나 작은 교회 다니거나 아무 상관이 없다.

뭐가 상관있냐? 내 안에 그분을 모셔 들여서 내가 그분의 하시는 말씀을 지키면서 사느냐? 안 사느냐가 문제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육신은 그분의 말씀을 지킬 수가 없다.

사랑하라고 했는데 사랑할 수가 없다.

미워죽겠는데 미워하지 않을 수가 없는 나

그러나 내 안에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자는 그 말씀을 지킬 수가 있다.

주님으로 하니까 그를 사랑할 수가 있다.

 

말씀요약

라오디게아교회

미지근한 신앙상태에서 벗어나라

내 안에 주님을 모시고 살아라.

그분이 우리의 주인되게 하라.

사데교회

회개하고 돌아오라.

그리하면 생명책에 이름을 흐리지 않게 하겠다고 하심.

 

버가모교회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좇지말고 너희 몸을 구별해서 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

그렇게 될 때에 너희에게 감추엇던 만나를 먹게 하고 새 이름이 적힌 흰돌을 주겠다고 하심.

 

서머나교회

죽도록 충성하라.

대강대강 살지 말고 대강대강 봉사하지말고 죽도록 충성하라.

너희에게 맡겨진 일과 너희에게 맡겨진 물질과 너희에게 맡겨진 영혼들에게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겠다. 성안에 들어가게 하겠다.

새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해같이 빛나는 그곳에서 영원히 살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해 주겠다는 것이다.

 

빌라델피아교회

아무런 책망이 없었다.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그분의 이름을 끝까지 배반하지 않는 그들에게 열린문을 둘 것이고 환란의 때에 환란의 때를 면하게 할 것이고 이기는 자에게는 새예루살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