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라목사님 바른영성훈련

영혼과 영성3 진리단계 특징2 서사라목사

하늘이슬 2016. 9. 10. 12:31

영혼과 영성3 진리단계 특징2

 

영혼과 영성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얘기한다.

우리의 가치관이 땅에 것을 바라보고 살다가 하늘나라로 그 가치관을 두는 자로 바뀌어져 나가는 것이다.

 

진리단계에 들어오면 죄에 대하여 가치관이 새롭게 정립된다.

이전에 죄로 느끼지 않던 것이 죄로 느껴진다.

양심이 더 넓혀져서 이전에 죄로 느끼지 않았던 것이 죄로 느껴진다.

하나님의 음성에 예민해 진다.

59:1-2

우리가 왜 죄를 자꾸 인지하고 자꾸 없애야하는가?

죄를 많이 발견할 때마다 처리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님과 나 사이가 단절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나 사이가 죄 때문에 단절된다는 것이다.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처리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고 짓는다.

죄 때문에 교통이 단절되고 기도 응답이 안되고 너희 죄악이 너와 나 사이를 갈랐다.”라고 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죄로 오염되어서 죄인지 아닌지 잘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10:12-14

하나님의 말씀은 수준 높은 것을 얘기하고 있는데 우리의 삶은 너무 아래에 있기 때문에 너는 너, 나는 나 서로 따로 놀고 있으며, 전혀 연결이 되지 않고 있다.

사역자들도 죄를 죄로 느끼지 않고 있다.

우리의 맘은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설사 내가 불이익을 당한다 할지라도 거짓말을 삼가겠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 살 때 불이익은 잠깐이다.

우리는 불이익이 당연한줄 알지만 우리 양심은 그렇지 않다.

이 세상에 죄가 만연되어 있다.

죄에 예민해져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상이 틀리다.

이 세상에 살 때에 우리는 좀 불이익을 당해도 된다.

내가 거짓말을 안 해서 양심이 가책이 되어서 내가 불이익을 당한다면 그것을 택하겠다. 그러면 천국에서 상이 다르다.

영원한 곳에서 찾아 먹어야 되지 않겠는가?

10:12-14

죄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주님은 처소를 다 마련하면 다시 와서 우리들로 하여금 그가 계신 곳으로 데리고 가신다고 하였다.

우리 예수님은 그런 죄를 위해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얼마나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시는지 말씀 속에서 알 수 있다.

거룩하게 살고자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신다.

그런 자가(죄 가운데 사는 자) 아무리 동행해 달라고 한들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겠는가?

영적인 성장에 따라서 죄가 느껴지는 것이 다르다.

 

양심의 가책 죄가 찔림을 받는 정도가 다 다르다.

 

본능적인 그리스도인, 영적 성장이 전혀 없는 자는 뭘 죄로 느끼냐면 행위로만 죄를 안 지으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괜찮다고 생각한다.

속에는 죄를 짓고 있어도 밖으로 죄를 짓지 않고 있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주님은 이 바리새인들아 안부터 깨끗케하라 그리하면 너가 겉에도 깨끗하리라. 그러셨다.

본능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밖으로 드러나는 행위 속에서 내가 죄짓지 않으면 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안에는 아무리 더러운 죄가 있다할지라도 그걸 처리할 생각을 안 한다.

 

두 번째는 윤리단계에 있는자,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이런 단계에 있는 자들은 은혜를 많이 받아서 주를 위해서 죽겠습니다 라고 결심한 단계에 있는 자들은 내면에 일어나는 것이 죄인 줄 안다.

마음으로 죄를 짓고 남을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음욕을 품는 것이 죄인줄 안다.

내 내면에 있는 죄가 많이 발견되어야 한다. 그래야 진리단계로 넘어간다.

내 내면의 죄가 발견되지 않은 사람은 남의 허물 얘기하기를 좋아한다.

세리의 기도가 여기에 속한다.

바리새인의 기도는 자신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다.

나는 가만히 앉아있어도 내가 죄짓고 앉아있는 내가 보이게 된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 앞에서 살려고 노력이 되는 것이다.

내 죄가 안 보이는데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섭니까?

죄가 많이 보이는 사람은 죄 때문에 고통스러워야 하나요? 그건 아니다.

죄를 보는 순간순간 죄를 회개하잖아요. 앉아있으면서도.

사도바울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한다고 했다.

여러분이 죄가 발견될 때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해 보십시오.

얼마나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평안이 임하는지요.

그것을 모르고 덮어두고 있는 자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평안이 뭔지를 모른다.

내가 가만히 앉아 있어도 죄짓고 앉아 있는 거거든요.

주여 나는 왜 이렇습니까? 자꾸 이렇게 씻으니까 주님이 동행해 주신다.

죄없는 자가 어디 있습니까? 죄가 문 앞에 엎드린다고 했는데.

잘났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넘어지고 있는 것이다.

선 줄로 생각한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우리는 항상 내 마음을 낮추어서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진리단계에 있는 사람은 죄에 대한 개념이 넓혀지고 깊어진다.

한 단계 넘어서서 선을 알고도 베풀지 않는 것이 죄로 느껴진다.

우리는 더 할 수 있다.

주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주님의 계명이 말하고 있기 때문에.

윤리단계와 진리단계의 차이가 무엇인가?

예를 들어서 내 마음에 미움이 싹트고 있다.

그러면 윤리단계에서는 안 미워할거야 하면 죄가 아니다.

진리단계에서는 안 미워할 뿐아니라 내가 더 사랑을 보여줄 수 있음에도 안보여 준 것이 실천 안 한 것이 죄로 느껴진다.

선을 행할 줄 알고도 안 한 것이 죄로 느껴지는 것이다.

미워했습니다. 용서해 주옵소서 그것까지 한다.

진리단계에 있는 사람은 더 하라.

미워하지 않은 것만 죄가 아니라 사랑을 더 베풀 수 있음에도 베풀지 않은 것이 죄로 느낀다.
주님이 사랑하고 하셨지요.

그래도 사랑하라, 주님으로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 한 것, 우리 할 수 있거든요. 우리에게 충분히 사랑할 수 능력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다.

왜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도 안 한 것이 죄로 느껴진다.

선을 알고도 내가 베풀지 않는 자, 내가 더 섬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더 잘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 한 거, 이런 게 죄로 느껴진다.

이런 게 진리단계에서 죄를 느껴지는 것이다.

 

그 다음에 생명단계에서 죄는 무엇인가?
생명은 누구인가? 예수님이다.

그럼 내가 주님으로 하지 않은 것, 주님으로 행하지 않은 것을 죄로 느낀다.

조금 다르다.

진리단계와 생명단계에서 무엇이 다른가?

진리단계에서는 아직도 내가 하려고 한다.

내가 몸을 쳐서 복종시키고 내가 하는 것이다. 내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를 버리고 벌려놓고 내 안에 있는 주님으로 하는 게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진리단계에서는 거리낌이 있다. 하기 싫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쳐서 복종시키는 것이고, 생명단계에서는 내 안에 있는 나를 버리고 내 안에 있는 주님으로 하니까 즐거이 행하는 것이다.

이게 다르다.

진리단계는 억지로라도 내가 하는 것이다.

그 단계를 거치지 않으면 생명단계로 못 넘어간다.

우리는 다 거쳐야 한다.

그 차이를 보았다.

생명단계는 내가 은연중에 생명으로 할 수 있었음에도 안 한 것, 그게 죄로 느껴진다.

여러분이나 저나 영적인 성장에 따라서 죄가 느껴지는 것이 틀려진다는 것이다.

고전13:11

우리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릴 때가 되었다 존재가 바뀔 때가 되었다.

존재가 바뀌는 것이다.

존재가 바뀔 때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진다.

거꾸로 가면 안 된다.

영성훈련을 받고 있으면서 변화되고 있지 않으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영혼이 정화되어 가야 한다.

존재가 바뀌어가고 있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3:16

여기서 얘기하는 것은 성장하자는 의미이다.

존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하라고 했다.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애 짓을 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징계가 즉시로 온다.

행할 수 있음에도 어린애 짓을 하고 있으면 하나님이 징계로 즉각 알게 해 주신다.

사도바울이 세 종류의 사람에 대해서 얘기했다.

고전2:14

육에 속한 사람, 육신에 속한 사람, 신령한 사람

우리 모두는 신령한 사람에 속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

육에 속한 사람은 아직 예수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고전3:1-6 본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시기와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신령한자는 시기와 분쟁이 없는 자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령한 자의 수준에 우리가 이르러야 한다.

성경말씀이 은혜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자라는가? 아니라는 것이다.

시기와 분쟁이 없어지도록 나를 잘 다룰 때 내가 진짜 자라는 것이다.

성경을 백번을 읽고 지식으로 달달달 꾀고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짓이 사망인데.

하늘나라에 가면 육신으로 하는 모든 것이 잃어버린 시간이다.

더 성장한 자가 누구인가? 성경 읽는 것 중요하다. 많이 읽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더 자라기 위해서 읽는 것은 괜찮다.

자랑하기 위해서 읽는 분도 있다. 백독했다고 한다.

상표로 삼는 사람이 문제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주의 종이 하루 한 시간도 기도하지 않는다면 주의 종이라고 생각 안한다. 한 시간도 하나님과 교통 안 한다면 목사 자격 없다.

어디 가서 목사라고 하지도 마라.

우리가 직분을 받고 내가 그만큼의 일을 하려면 그만큼의 자질을 내가 갖추어야 한다.

평신도들보다 더 기도하고 말씀생활 해야 한다.

우리가 더 자라기 위해서는 더 발전하자는 것이다.

내 모습 이대로 두면 웃음거리밖에 안 된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 시간 있을 때에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노력하고 교통하고 그래야 아 저분은 하나님의 직분자구나 하지 않겠는가?

3:12-14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받기 위하여 좇아간다고 했다.

우리는 끝까지 달려가야 할 줄로 믿는다.

우리의 멘토는 단 한 분이시다. 예수님이시다.

인간으로서 두 번째 멘토는 사도바울이다.

주님과 사도바울을 멘토로 삼고 끝까지 달려가길 원한다.

진리단계에 있는 사람의 특징 두 번째가 만사가 진리로 된다는 것을 알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 마음 안에는 어떤 소원이 있다.

그런데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봐서 환경이 펼쳐진 것을 봐서 내가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어느 것이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알아야겠습니까? 반대로 돌아가는 것.

여기서 하나님의 음성을 다시 재점검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해야 한다.

내가 소원하는 이것도 하나님에 별로 어긋나지 않고 하나님의 뜻 같다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환경이나 어떤 상황이 반대로 돌아간다면 하나님의 역사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한다.

만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돌아간다는 것을 인정하고 진리단계 있는 사람은 이걸 인정한다.

하나님의 뜻이면 옮기신다.

내가 선 자리에서 진리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으면 된다.

요셉이 종으로 팔려가서 9-11년 있었다.

요셉이 그 하나님의 뜻이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원망하고 불평한 게 아니라 묵묵히~~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그 선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은 줄로 믿는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꿈을 이루어주신 줄로 믿는다.

우리는 흔들리지 말고 깨어 있으되 내가 선 자리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돌아간다는 행위 속에서(진리단계) 재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소망을 갖고 인내할 때 이기게 된다. 인내하는 자가 이긴다.

인내하지 못하고 들고 일어나는 자는 실패한다.

끝까지 소망가운데 인내하는 자가 승리한다. 우리의 상이 하늘나라에서 있다.

우리 인생에서 일어나는 고난이 하나님의 뜻이다.

1:2-4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다.

우리 생각은 다 틀렸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만이 옳다.

진리단계에 있는 사람의 특징 세 번째가 육신의 것들이 배설물로 여겨지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서 뭐가 제일 첫째로 느껴지겠는가? 하나님의 일이다.

우리가 가치를 어디에 두는가 이다.

이전에는 세상의 것들이 좋았지만 이제는 주님을 생각하니까 버릴 수 있는 단계이다.

3:7

예수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것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