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라목사님 바른영성훈련

대인과 영성 II - 구속사적 영성서사라목사

하늘이슬 2024. 6. 25. 14:14

대인과 영성 II - 구속사적 영성

두 번째 시간은 짧은 시간이 되겠지만 내가 하나님 앞에 말씀받기를 원합니다. 나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앉아 있겠습니다. 주여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붙들어주시고 반드시 힘이 되는 말씀, 갖고 가는 말씀, 삶에 적용되는 말씀, 반드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기에 도움 되는 말씀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아 버지, 길가 밭이 아무도 없게 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 드렸사옵나이 다. 아멘.

오늘은 둘째 시간에 구속사적 영성에 대해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영성훈련에는 존재론적인 영성이 있고 관계론적인 영성이 있고 구속사적인 영성 이 있습니다.

구속사적 영성이라고 하는 것은...

잘 들어 보세요. 자~ 구속이란 말이 뭐냐 하면 구속사가 뭐냐 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구속했다는 말을 쓰쟎아요. 이게 영어로 뭐냐 하면 Redemption입니다. 그래서 Redeemer church라는 말이 있습니다.

구속사라고 하면 한글로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3:16)” 이것이 구속삽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해 나가는 얘기가 구속사라는 거예요. 근데 이 구속사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해 나가는 이 얘기 속에는 주관적인 구속사가 있구요, 말이 좀 어려운 것 같은데 전혀 어려운게 아니예요.

들어보세요. 주관적인 구속사와 객관적인 구속사가 있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눌 얘기는 주관적인 구속사와 객관적인 구속사에 대해서 나눌 것입니다.

주관적인 구속사는 뭐고 객관적인 구속사는 뭐냐 하면 간단히 얘기하면 객관적인 구속사는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되는 것이 객관적인 구속사예요. 객관적인 구속사는 예를 들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사건부터 시작해서 그게 하나님 나라의 참여죠? 그죠? 주님께서 이루신 사건부터 시작해서 그 다음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어떻게 참여되는가 하는 것이 객관적인 구속사예요.

그럼 주관적인 구속사는 뭐냐 하면 우리가 객관적인 구속사에 참여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한 개인을 구원하시고 개인적으로 적용이 되잖아요? 구원하시고 그 다음에 한 개인을 만들어 나가시는 일이예요. 왜 만듭니까? 객관적인 구속사에 참여시키기 위해서지요.

 

그래서 여러분 성경은 가만히 보면 이 두 가지로 풀리고 있어요. 성경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선진들의 얘기를 보면 그들의 인생에는 주관적인 구속사와 객관적인 구속사가 있어요. 그러면 그 얘기는 믿음의 선진들만의 얘기냐 그게 아니죠.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는 얘기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하나님은 한 개인을 구원하시고 먼저는 하나님께서 육체의 몸을 입고 오셔서 먼저 구속을 일으키실 수 있는 사건을 일으키시고 이것이 객관적인 구속사속에서 하나님의 나라 그 다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한 개인이 구원을 받는 것으로 적용이 되어져서 그때부터 시작하여 하나님은 그 개인을 쓰기 위해서 만들어 나가시는 얘기가 있습니다. 이것이 주관적인 구속사예요.

우리는 요셉의 얘기를 통해서 주관적인 구속사와 객관적인 구속사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창세기39장 1절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얘기를 알고 나면 우리 인생이 참 신이 나요.

아 하나님께서 내 인생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가 보여 지기 시작하면서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되고 하나님을 기다리게 되고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고자 하는 일에 우리가 동역하게 되고 참 많은 것을 깨닫게 돼요. ‘창세기39장1절에서 6절’까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아멘.

요셉은 지금 종으로 팔려서 애굽에 있는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그죠? 근데 그 이전에 어떤 사건이 있었냐 하면 ‘창세기 37장’으로 가보겠습니다. ‘1절에서 11절’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의 꿈으로 보여주시는 과정입니다.

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3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보다 그를 더 사랑하므로 그를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4 그의 형들이 아버지가 형들보다 그를 더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더라

5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 그들이 그를 더욱 미워하였더라

6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가 꾼 꿈을 들으시오

7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8 그의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의 꿈과 그의 말로 말미암아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

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10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

11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 말을 마음에 두었더라

여러분 요셉은 처음에 두 번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죠? 어떤 꿈을 꾸었습니까? 자기의 볏단을 중심으로 해서 형제들의 볏단이 절하는 꿈을 꾸었고 두 번째는 자기가 별인데 열한별이 자기에게 절하고 해와 달도 그에게 절하더라. 이 두 번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죠?

그런데 하나님은 이 꿈을 이루셨습니까, 이루지 않았습니까? 이루셨어요.

근데 이 꿈이 이뤄지기까지 지금 요셉을 보면 요셉의 잘못된 점 들을 보면 어떤 점 들이 있습니까? 고자질 하는 점이 있죠.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하는 못된 면이 있고 두 번째 자랑하는 면이 있죠.

그러니까 하나님은 이 꿈을 분명히 이루시는 분이신데 지금 요셉의 곧은 성격,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남이 잘못하는 것을 못보고, 그냥 넘어가지를 못하고, 관용하질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그 다음에 자기가 잘난 거 자랑하고, 올라서기 좋아하고, 높아지기 좋아하고.. 이런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요셉의 모습으로서는 결코 이 꿈을 이룰 수 있는 때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꿈을 주시죠.

우리 ‘빌립보서 2장’ 보겠습니다. ‘13절에서 14절’ 다같이 시작.

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우리 하나님은 먼저 여러분에게 꿈과 약속의 말씀이라든지 비젼을 먼저 허락하시고 항상 그러시죠. 그죠? 그 다음에는 여러분을 주관적인 구속사로 다루셔서 객관적인 구속사에 참여하게 되기까지 하나님은 여러분을 기다리시고 참으시고 정말 그때가 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객관적인 구속사에 정말 아름답게 사용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면, 하나님 뜻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면, 첫째 우리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 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렇게 기도하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면 첫째는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뜻을 정하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내가 태어나서 한 날이 되기 전부터 나의 모든 것이 어디에 기록이 되어 있다구요? 책에 기록이 되어 있나이다.

하늘에서 하나님이 먼저 뜻을 정하신다는 거죠?

두 번째는 이 하나님의 뜻이 인간에게 계시되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레마로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꿈으로 주시고 어떤 사람에게는 환상으로 펼쳐주시고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 사람의 인생 속에서 어느 때에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시더란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 마음에 소원이 되어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

그래서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 주십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뜻이 계시가 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냐 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시는데 우리가 주체가 되어 이루는게 아니라, 그 이루시는 과정을 보니까 그 뜻을 이루시는데 주관적인 구속사로 먼저 우리를 다루시고 그 다음에 객관적인 구속사에 참여시키셔서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면 우리 인간은 어떤 유의미한 존재가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통로의 개념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통로라는 것입니다. 무익한 종일뿐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끔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일할 수 있는 통로로 만들어지기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주관적인 구속사로서 다루지 않을 수가 없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창세기39장’을 다시 가보면..

처음에 읽었죠? 다시 보면 자 2절과 3절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지금 종으로 팔려 간 요셉과 누가 함께 하고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죠.

그럼 형들이 요셉을 “저 멀리서 꿈꾸는 자가 오는 도다 저를 잡아서 죽이자” 하고 구덩이에 넣었잖아요. 그때 하나님은 어디 가셨을까요?

보디발의 집에서 요셉과 함께 하신 하나님이 그때는 어디 가셨나요?

우리 인생에서 모든 일을 누가 하고 계시냐 하면요, 하나님이 하고 계시다는 거예요. 형들을 시켜서 종으로 팔려 가게 하신 데는 누가 계실까요?

하나님이 계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형들에게 팔릴 때는 구덩이에 넣어서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데 물도 없었고 깊어서 올라 올수도 없잖아요. 죽임을 당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때 침묵하셨다는 거예요. 사실은 옆에서 다 쳐다보고 계신 겁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대로 잘되고 있나 안되고 있나 하고요.

요셉이 팔려서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는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형통했다고 해요. 이 글들을 보면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이시길래 우리가 고난당하고 죽을 것 같고 환난을 당할 때는 어디 계시나?

우리를 안 보시는 것 같잖아요? 침묵하시는 것 같잖아요?

그런데 거기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다루시고자 하는 주관적인 구속사를 이루어 나가고 계시는 하나님을 볼 수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참 이런 상황들을 보면, 자.. 여러분 아까 얘기했잖아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그 뜻을 계시하신다고요.

다윗을 보면, 다윗에게는 하나님께서 어린 소년일 때 사무엘을 통해서 기름을 부었어요. 너는 사울 다음의 왕이 될 것이다. 그러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으면 바로 왕위에 올라야죠. 그러지 않고 그 다음부터 펼쳐지는 인생을 보니까 오히려 사울 왕에게 쫒겨서 왕이 되기는 커녕 완전히 잡혀서 죽을 만한 상황에 놓여요. 뽑힌 3천명의 군사를 데리고 사울 왕이 16년간을 쫒아다녔잖아요.

이렇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보면 요셉도 형들이 와서 절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전히 그 집하고는 상관이 없는 저 애굽 다른 나라에 팔려 버린 거예요. 다윗도 기름부음 받고 나서 왕위에 바로 올라야 되는데 왕위에 오른게 아니라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 16년간을 도망자 생활을 누가 시켰다고요? 하나님이요. 왜 그런 인생이 벌어지느냐는 거예요?

 

모세는요? 모세는 알았어요. 자기가 왕궁에서부터 왕자 훈련을 받고 어머니 요게벳에 의해 신앙훈련을 받았어요. 요게벳이 그를 키우면서 (공주의 아들이지만 공주가 요게벳이 엄마인지 모르고 맡겼잖아요) 자기 친자식을 키우면서 너는 애굽의 왕자지만 너는 이스라엘을 구원해야한다 말 안했겠습니까? 요게벳이 어릴 때부터 심어준 꿈이었어요.

그게 또 하나님의 꿈이었죠. 그런데 그럴줄 알았는데 40세가 되어 나가니까 애굽 사람하고 이스라엘 사람하고 싸우고 있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 사람을 도와줘야겠다 하고 애굽 사람을 쳐죽여 버렸잖아요.

이제 자기가 40살 정도 되어서 지도자로서 구원할 때가 되었다 생각했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은 그 혈기를 보고 어디다 쫒아버립니까?

광야에다가 40년이란 인생을 미디안 광야에서 버리게 만들어요. 이 모든 것을 보면서 저는 이 부분에서 참 위안을 얻어요.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전혀 반대로 인생이 펼쳐지는 거예요. 요셉의 형들이 자기에게 절하려면 자기 집에 있어야지요.

어떻게 그 어린 소년이 돌아올 수도 없는 다른 나라에 팔려 가냐구요? 게다가 종으로 팔린다는 건 죽음을 당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먼 나라에 언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이러한 상황에 요셉이 왜 처하게 되느냐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인간에게 먼저 뜻을 계시하시지만, 이것을 이루시기 위해서는 각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적합하게 만들어지기까지 하나님은 그들을 다루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이나 저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꿈이 있어요. 꿈이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반대로 펼쳐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사건들을 보면서, 믿음의 선진들이 그런 훈련받은 것을 보면서 나도 가능성이 있다 생각합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꿈을 주시고 그분의 뜻을 계시하여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현재의 상황에서 전혀 꿈이 달성될 희망이 안보일지라도

기뻐하십시오. 할렐루야! 우리는 제대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멘입니까?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가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하시잖아요? 하나님은 우리가 낮아질대로 낮아지길 원하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의 모습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끔 쓰임 받을려면요.

하나님의 일은 누가 하십니까? 하나님이 하시잖아요.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봅시다.

요셉이 꿈을 이루려고 자신이 직접적으로 한일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단지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기 앞에 둔 인생, 그 인생에 충실했을 뿐이에요. 거기에는 원망과 불평도 없었어요.

여러분,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인생을 보니까 다윗도 그렇고, 요셉도 그렇고, 모세도 그렇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인생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한 적이 없어요. 이것이 매우 중요한 얘기입니다.

요셉이 17세의 소년인데 아버지 집에서 채색 옷을 입었다는 것은 왕자처럼 대우받았다는 것이예요.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집에 종으로 팔려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했다는 얘기가 없어요. 요셉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고 해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감사해야 해요.

요나가 불순종해서 고래 뱃속에 들어갔잖아요? 고래 뱃속에 들어 간 요나가 한 일이 뭐였어요?

감사했어요. 자기가 죽은 줄 알았는데 자기가 고래뱃속에 들어가서 살아 있는 거예요. 하나님께 감사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할렐루야.

저는 요셉이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한마디 원망과 불평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어요. 하나님이 그런 꿈을 보여주셨는데, 자기 인생은 일순간에 폭풍우가 몰아치듯 완전히 다르게 바꿔졌어요. 요셉의 삶에 이 일을 누가 하셨다고요? 하나님이시죠. 이들에게 사정없으셨어요.

그렇다면 우리 인생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 사정없이 하십니다. 요셉은 자기 집에서 왕자대우 받다가 하루아침에 종으로 바뀌었어요.

인생이 이렇게 급변할 수가 없는 거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종살이 하는 곳에서 충성하면서 여호와께서 함께 하셨다는 것은 요셉이 감사했다는 거예요. 그가 어떻게 감사할 수 있었는가?

저는 요나를 생각해봤어요. 요나는 자기가 바다 한가운데 던져질 때 자기가 죽는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자기가 살아있는 거예요. 그때 요나가 하나님께 감사했어요. 자기가 불순종했음에도 불구하고요.

요셉은 어떻게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그 형들이 깊은 구덩이를 파고 구덩이에 요셉을 집어 넣고 올라오지 못하게 만들었는데 누가 요셉을 살렸어요? 유다지요.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요셉은 우리가 피를 나눈 형제인데 어떻게 죽이냐 하고 유다가 끌어내 종으로 팔았지요.

구덩이에 있을 때 요셉은 형들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했을 거예요.

 

그러나 형들은 요셉의 말을 듣지 않았고 거기서 죽을 뻔 했는데 유다가 건져 내어 종으로 팔린 것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고난과 환란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단련하시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찬양이 고난 속에서도 우러나올 수 있도록 우리를 다루시는 줄 믿습니다.

다윗도 사울에게 쫒겨 다니면서도 시편의 시를 쓴 것을 보면

“내가 (굴속에서) 안전하게 자고 일어나는 것을 감사하나이다” 라고 했어요.

다윗도 사실 참 억울하잖아요. 남도 아닌 장인인 사울 왕이 3천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쫒아 다니는 그 상황이 어떻게 납득이 되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어요.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 인생을 그렇게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다윗만큼 구약에서 영성이 뛰어난 사람이 없어요.

다윗은 이렇게 기록했어요.

“내가 태어나서 한 날도 되기 전에 당신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나에 대한 생각이 어찌 그리 많은 지요?” 모래보다도 더 많다고 말하잖아요. “내가 어디를 가도 성신이 그곳에 계시고 음부에 자리를 펼지라도 그곳에 계신다” 다윗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찬양했어요.

여러분,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다윗도 그랬고, 요셉도 그랬고, 모세도 그랬고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꿈을 받고 나서는 갑자기 그들의 인생이 반대로 펼쳐지더라는 거예요.

제가 드리는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힘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에게도 힘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러한 상황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얼마나 기가 막힌 상황들입니까?

나에게 꿈을 보여 주신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나에게 꿈을 보여 주신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이십니까? 이런 말도 그들은 안했다는 거예요.

결국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주신 꿈을 소망으로 삼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망과 불평이 없지요.

소망이 없었으면 그들은 원망하고 불평했을 겁니다. 내 인생이 왜 이런가하고요.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비젼을 평생의 소망으로 삼고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만 붙들고 살았다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끌어내 가나안으로 가는데 이들은 광야의 삶이 힘들다고 원망과 불평이 많았어요.

광야의 삶을 거쳐야 가나안이 오잖아요?

저나 여러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광야의 삶이 없으면 결코 가나안도 없습니다. 광야는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이 광야에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기 원하시는가 하면,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8:3)”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을 배운 자만이 가나안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출애굽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어요.

왜냐면 매일 맛없는 만나만 주고 물도 3일 만에 겨우 겨우 주고 했거든요. 하나님의 목적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광야의 삶을 시키시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했어요. 단지 내 눈앞에 보이는 것을 만족시키는 삶을 쫒아 가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들은 원망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었어요.

이렇게 원망하고 불평하는 자는 결코 가나안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게 광야를 허락하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바로 주관적인 구속사에 속하는 거예요. 우리를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과정이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시기 위한 과정이 광야의 삶이고 또 그것이 주관적인 구속사에 속하더라는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뜻을 정하시고 그 뜻을 인간에게 보여주시고 그 인간을 통하여 하나님의 정확한 뜻을 이루어 드리는 통로로 사용 받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결코 그 인생 속에서 하나님께서 펼쳐 놓으신 그 인생의 모든 고난과 환란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일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인생에 찾아 온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여러분을 주관적인 구속사로 다루고 계시는데 그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이 고난을 통하여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로 만들어 나가시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에 대하여 감사하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을 믿으시면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주관적인 구속사와 객관적인 구속사로서 우리의 인생이 해석될 수 있고 또 믿음의 선진들도 성경을 읽어 보면 그들이 하나님께 다룸

 

받은 이야기와 마지막에 쓰임 받은 이야기가 나온다는 겁니다. 요셉을 보면 자기 힘으로 꿈을 이루려고 한 흔적이 하나도 없어요.

단지 요셉은 하나님이 펼쳐 놓으신 인생 앞에서 최선을 다하고 충성을 다했어요. 그러다보니 하나님께서 때가 되었을 때 요셉을 감옥에서 불러냅니다. 어떤 사건으로 불러냅니까? 바로가 꿈을 꾸었는데 아무도 해석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오직 요셉만 바로의 꿈을 해석할 수 있는 거예요.

그렇게 요셉을 불러내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쓰임 받잖아요.

요셉은 삶에 충실하면서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았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소망, 비젼, 꿈을 늘 마음에 품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는 삶속에서 늘 하나님과 함께 했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고 원망과 불평 없이 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이 만드시고자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진 것을 보면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다 할지라도 그를 누명 씌운 그 여자를 고자질 하지 않았어요.

시위대대장 집의 감옥은 한번 들어가면 왕의 명령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곳이에요. 평생 거기서 죄수로 죽을 수도 있는 거예요.

거기 들어가서 요셉은 자기에게 펼쳐진 인생에서 하나님 앞에 충실하고 하나님 앞에서 살고 그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또한 그 삶의 순간순간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가를 알고 하나님의 뜻이 어떤가를 알고 자기가 누명을 쓸지언정 고자질 하지 않고 그런 모습들로 만들어지니까 하나님께서 때가 되니 불러내시더란 것입니다.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시죠.

그럼 다르게 표현해보겠습니다.

지금 현재 우리에게 환란이 오게 하고 고난이 오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신데, 왜 그 고난과 환란을 나에게서 거둬가지 않으시는가?

우리 하나님이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 앞에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만 합니다. 내려놓으십시오. 내려놓으십시오.

우리가 빨리 내려놓으면 하나님의 계획은 좀 더 빨리 갑니다.

내가 내려놓지 못하고 내 고집대로 이래야 되고, 저래야 되고 그러다보면 빨리 가면 1년이면 될 것을 10년도 더 걸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날 만드시는데 시간이 다 걸리고 인생이 끝나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빨리 내려놓지 못하는 것 때문에 하나님이 시간이 걸립니다.

 

요셉에 대해 할 얘기가 많은데요.

하나님께서 요셉을 어떻게 객관적인 구속사로 사용하시는가 하면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시고 그래서 그를 감옥에서 불러내게 됩니다.

이것은 참 특이한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자 한다고 감당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하나님의 때에 우리가 만들어지면 하나님이 어떤 일을 벌여서라도 우리를 씁니다. 할렐루야.

그 때가 오는 거예요. 하나님은 바로에게 꿈을 꾸게 하시잖아요.

왜요? 요셉이 11년간 종살이, 2년간 감옥살이 했죠? 하나님 보시기에 요셉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에 준비가 되었다고 하나님이 판단하신 거예요.

그리고 술 관원장 있죠?

요셉이 술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고 나를 기억해달라고 했는데 2년 동안 잊고 있다가 바로의 꿈을 아무도 해석하는 사람이 없음을 알고 자기가 감옥에 있을 때 자기의 꿈을 해석해 준 사람이 있었다고 바로에게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요셉이 바로 앞에 서게 되어 바로의 꿈을 해석합니다.

꿈을 누가 해석합니까?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하나님께서 평안하게 해석해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꿈 해석 하는 것도 누가 주신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요셉이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이루려고 한 것이 아니라 감옥에서 끌려 나와서 바로의 꿈에 대한 하나님께서 주신 계책을 말함으로 갑자기 국무총리의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는 죄수였는데 그가 갑자기 국무총리에 앉게 된 거예요. 그가 국무총리에 앉게 된 것이 중요한 것이냐? 국무총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은 그를 국무총리에 앉혀야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가 있는 거예요. 가나안땅에 있는 야곱의 집의 70인을 기근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그를 국무총리에 앉힐 수밖에 없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70인이 내려와서 형들이 요셉에게 어떻게 합니까? 못 알아보지요. 형들이 요셉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잖아요. 곡식을 얻으러 와가지고요. 자기들이 죽게 생겼으니까요. 그때 요셉은 무엇을 생각합니까? 그 꿈을 생각하는 거예요.

그 꿈이 자기 앞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왜 자기를 종으로 파셨는지, 왜 감옥살이까지 시켰는지, 그 어린 나이에 자기 인생이 왜 그렇게 험악하게 풀렸는지를 그때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의 집의 사람들을 살릴 려고 자기를 먼저 보내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형들이 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이 깨달아져서 들어가서 요셉이 울잖아요. 펑펑 웁니다. 멋있는 하나님, 신묘막측하신 하나님이 깨달아져서 웁니다. 무서워서 벌벌 떠는 형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며 자기가 요셉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형들이 자기를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형들보다 먼저 자기를 애굽으로

 

보내서 당신들의 목숨을 구할려고 먼저 보내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야곱의 집의 70인의 가족을 살리기 위한 온전한 통로로서 요셉이 형들을 미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서 온전한 통로로 쓰임받기까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그를 종살이를 시킬 수밖에 없었고 게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그를 감옥에 가게 할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지금 내 인생에서 그 일들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나를 지금 너무 아프게 하는 것들, 그것이 하나님은 객관적인 구속사에 우리를 온전한 통로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 속에서 여러분이나 저나 잘 만들어져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꿈과 비젼이 반드시 이루어지는 날이 올 수 있기를 주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 요셉에게 행하셨던 그 모든 일들, 그의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먼저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이루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모습이어서 그를 멀리 보내셔서 그 인생에 반대되는 방향으로 보내셔서 그를 온전히 낮아지게 다루시고 그 낮아진 모습이 하나님 앞에 통과되는 그 즈음에 객관적인 구속사의 통로로서 잠깐 쓰임 받을 수 있는 자로서 잘 만들어진 것을 하나님이 직감하였을 그때에 바로에게 꿈을 주시고 그를 감옥에서 끌어 내셔서 하나님의 귀한 그 경륜에 맞게 요셉을 잘 사용하신 것을 봅니다.

우리 하나님,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께서 동일한 일을 행하고 계시는 줄로 믿사오니 우리 인생 앞에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든 상황 속에서 요셉처럼 원망 불평하지 않고 항상 감사하며 여호와께서 항상 그와 함께 하심으로 형통케 하셨다고 하셨사오니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방법은 범사에 감사하며 그 하나님 앞에 살며 하나님 앞에 득죄하지 아니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꿈을 잃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소망하며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와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사옵고 우리 영성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그 삶에 돌아가서 하나님께서 과연 내게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나를 낮추기 위해,

나의 어떤 점을 고치기 위해, 나의 어떤 부분을 내려놓기 위해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가를 우리의 삶속에서 눈에 뜨일 수 있도록 주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우리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사옵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 드렸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