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라목사님 바른영성훈련

대인과 영성 II - 정의-서사라목사

하늘이슬 2024. 6. 25. 14:15

대인과 영성 II - 정의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 하나님, 우리가 날마다 정말 죽은 자처럼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미 성경은 우리가 2천 년 전에 십자가에 예수님께서 못 박혀 돌아가실 때에 우리도 같이 못 박혔다라고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내가 자꾸 올라올 때마다 내가 죽은 것을, 이미 2천 년 전에 주님이 못 박히 실 때 나도 같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고,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에 우리가 육 체로 변했던 옛사람의 모습들을 주님이 오시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을 때 나도 옛사람의 모습을 못 박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주 안에서 새롭게, 새로운 피조물로 주님이 원하시는 자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우리가 할 수 있는데 새로운 피조물로 살 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버 려 두는 우리의 게으름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늘 나로 행하는 자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주님으로, 내 안에 있는 성령님으로, 내 안에 있는 하나님으로 행할 수 있는 우 리 모두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내가 앞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먼저 나가게 하는 우리 모두 되게 도와주시옵 소서. 영으로 먼저 반응하는 우리 모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육신이 먼저 반응을 보인다 할지라도 그걸 제압하고 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우리 모두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하나님께서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믿사옵고 이 모든 말씀 우 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받들어 기도 드렸사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오늘 여러분과 제가 볼 것은 대인과 영성 제 2단계 윤리단계 정의에 대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윤리단계라고 하면 하나님과 나 사이에 윤리가 서는 것이죠. 하나 님하고 나 사이에 윤리가 형성되는 단계가 윤리단계이지요. 윤리단계에서 우리는 철저 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철저히 깨닫는 그런 단계이지요. 그죠?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많이 받은 자로서 이웃을 대하는 거예요.

나 같은 죄인도 하나님이 용서해주셨는데, 그렇죠?

나는 그러면 이웃을 대할 때 어떤 자세로 대해야 되는가하면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해 주신 하나님, 그 은혜를 생각하면서 이웃을 대하는 거예요. 할렐루야. 우리는 빚진 자 로서의, 하나님께 빚진 자로서, 그 은혜에 빚진 자로서 반응해야 하는 거예요. 이게 하나님과 나 사이의 윤리가 형성되는 거죠.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참 많이 받았어요. 너무 많이 받았잖아요. 근데 우리 인간은 너무 진짜 지렁이 같아서 조금 나에게 해가 되고

조금 나에게 잘못하는 이런 사람들을 막 눈에 불을 켜고 용서를 안해요. 아니,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그렇게 용서를 해줬는데 말이에요.

하나님의 은혜는요, 하늘에서 비를 내리듯이 비를 내려서 땅에 촉촉이 적시듯이 그 만큼 많은 은혜를 우리에게 주셨는데 우리는 우리에게 티끌만한 잘못한 말 그런 것으 로, 눈 한번 흘긴 것으로 원수처럼 살면 안 되지요.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나의 존재 목적이 내가 나한테 조금 잘못한 사람한테 그냥 바 락바락 하면서 저 원수를 갚아야지 하고 마음속으로 품고 말은 안하지만 그렇게 하고 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재하게 하신 그 존재 목적하고는 전혀 딴 판으로 살고 있는 거예요.

하나님이 우리를 존재하게 하신 존재 목적이 뭡니까?

이웃에게 빛이 되고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우리를 존재하게 하시는데..

빛과 소금.. 여러분 빛의 역할을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나에게 누가 말로 나를 험 담을 해도 내가 빛의 역할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끌어안아야 해요. 그게 빛의 역할입니다. 누가 나를 좀 잘못 대해주고 눈을 흘겨도 그를 끌 어안는 것이 빛의 역할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빛이 그냥 빛인 줄 아세요? 하나님을 비추는 빛이 되어야 해요. 아멘입니까?

우리의 존재 목적이 거기 있는 것이죠. 하나님이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시는 그 존재 목적이 나를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지렁이 같은 나를 위해서 사는 게 아니라 누구를 위해 서 살으라고요?

하나님을 위해서요. 그러니까. 나 좀 멸시 좀 당하면 어때요? 내가 좀 지렁이 취급 좀 받으면 어때요?

그러나 나에게서 나가는 거는 하나님이 나를 존재하게 하신 존재의 목적대로 살아드 릴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저 사람이 나에게 못되게 군다고 해서 나도 못되게 굴고 그러면 절대로 하나님의 우 리의 존재 목적에 맞는 그런 삶이 아니에요.

그런 삶에서 빨리 벗어나야 돼요.

그게 뭡니까? 본능이죠. 본능적으로 사는 사람이에요.

원래 우리는요, 지렁이처럼 취급받아도 돼요. 내 자체가 지렁이예요. 여러분 되게 잘난 줄 알죠?

내 육신은, 하나님이 없는 내 육체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지렁이 취급 좀 받으면 어떻습니까? 괜찮아요. 멸시해라. 욕해라.

근데 나는요?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이 하라 하시는 대로 나는 살겠습니다” 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예요.

그게 빛의 역할이죠. 빛과 소금, 말은 잘하죠.

 

근데 그게 어떻게 하는 건지도 잘 모르잖아요.

빛이라면 나를 욕해도 그를 끌어안으라고 그랬어요. 나를 못살게 굴어도 끌어안아야 돼요. 이게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거예요. 뭐 빛이 그냥 빛의 역할을 감당하는 줄 압니까?

그래서 쉬운 게 아니죠. 그러나 내가 정말 나를 뽑고 하나님으로 살기 시작하면 쉬운 단계가 오기 시작해요. 그래서 여러분을 계속 오라는 이유가 여러분의 강한 그 여리고 성이 무너져야 되는데 여리고 성이 무너져야 모든 게 쉬워져요.

이게 무너지지 않는 이상은, 제가 이런 말을 하지만 여러분에게 가능한 얘기가 아닙 니다. 그러나 자꾸만 들어 두셔야 돼요. 가능하기 때문에 가자는 거예요. 가능하기 때문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써보자는 거예요.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엄청 받았기 때문에 나한테 조금 잘못한 사람 용서 할 수 있어요. 쉬워요. 그렇지 않습니까?

“요한일서 4장 7절에서 8절”을 찾아봅니다. 요한일서 4장 7절에서 8절. 다 같이 시작.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 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자, 여기 보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그랬죠.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을 모른다는 얘깁 니다. 그죠?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났다, 그러니까 이 사랑은 하나님으로 그들 을 사랑하는 거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을 그들에게 주는 겁니다. 나는 그 사랑 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서 그 사랑을 흘려보내는 거예요.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 는 거죠. 그런 자가 하나님을 안다는 거예요.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여러분, 사랑은 어떻게 하는가를 봤더니 고린도전서 13장을 가보니까 오래 참고 그게 사랑하는 거예요. 온유하고 성내지 아니하고 투기하지 아니하고 자기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무례히 행치 아니하고. 이런 것들이 사랑을 하는 거라는 거예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그러면 하나님의 그 사랑이 나타날 때 우리에게서 나타날 때 어떻게 나타나느냐. 오래 참아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느낀다는 게 뭔지 아세요?

하나님은 막 바람과 같이 강하게 때려 부수고 하는 그런 분이 아니예요. 은은하게 촉촉하게 우리 마음에 임하세요. 할렐루야!

그러니까 내가 집중을 해야 되고, 그분을 느낄려고 해야 되고, 내가 그분 속으로 들어갈려고 노력을 해야 돼요.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걸 느낀 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네요. 내가 그분 안으로 들어가야 해요.

그래야 감동이 있고 서로 마주치고 나에게도 감동이 오고.. 내가 하나님 안으로 들어 가 있지 않으면 아무리 얘기를 들어도 겉도는 얘기로 밖에 안들리는 거예요. 아멘. 제가 하는 얘기가 무슨 얘긴지 잘 알아들으시고 노력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 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하길 원하는 사랑, 그 사랑에 대해서 한 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있잖아요,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 에게 가장 원하는 것이 뭔지 아세요?

첫째는 뭡니까? 하나님 사랑.

두 번째는? 이웃사랑. 왜 이웃사랑이죠?

여러분 “요한일서 4장 21절” 말씀 읽어봅니다.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 지니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으로서 하나님께서 결국 우리에 게 원하는 건 뭐냐 하면 내가 죽고 오로지 온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같이 이웃을 사랑하는 거예요.

둘째도 이와 같이 정성을 다하여 네 몸같이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20절 그 앞에 한 번 봅니다.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여러분 내가 형제를 미워하고 있으면 내가 하나님을 지금 사랑하고 있는거다 없는거 다? 아니라는 거죠. 내가 이웃을 사랑하고 있을 때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 거라 고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예요. 하나님은 늘 뭘 본다는 거예요? 네가 이 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는 가를 본다는 거예요. 그게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보여준다는 거죠. 할렐루야.

여러분, “고린도전서 13장” 한 번 가보겠습니다. 사랑 장이죠. 1절과 2절.

다같이. 13장 1절과 2절입니다. 다같이 시작.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

 

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여러분, 모세는 참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이스라엘 민족 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춤추고있을 때 모세는 십계명을 받아 내려와서 두 돌판을 그들 앞에서 깨뜨렸어요. 분노 했어요. 그런데 그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또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 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 밖에 안된다고요.

비록 화를 내지만 모세는 정말 이스라엘 민족을 사랑했어요.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뭐라고 했냐하면 “생명책에 내 이름이 지워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스라엘 민 족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모세는 그들을 정말 사랑했어요.

저는 지금 뭐가 사랑인지를 말하고 있는 겁니다. 사랑하는 것이 뭔지를 지금 얘기하 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안에 늘 말 한마디 할 때, 행동 하나 할 때 내 안에는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사랑 없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울리는 꽹과리와 같아요. 할렐루야. 내 안에 그 사람을 향한 사랑이 있는가를 봐야 해요. 아멘.

사랑이 있게끔 해야 되는 거예요. 아멘.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사람을 사랑하는 데에 있어서 조심해야 될 것이 있어요. 내가 나를 볼 수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여러분 조심해야 되는 것이 뭐냐 하면 늘 내가 옳 다 이런 마음을 가진 것 하고 또 늘 시비를 가리는 것 이런 마음이 있으면 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잘하고 잘못하고를 판단하는 자리에 있으면, 이런 판단하는 자리에 내가 나를 두면 결코 내가 그를 사랑할 수가 없는 것이예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그랬는데 그 사랑을 내가 그 사람에게 정말 사랑하는 마음으 로 그 사람을 대하고 기도해주고 기다려주고 참아주고 그렇게 하는 마음이 없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으로 인해, 늘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그 사람을 대하기 때문에 생명의 삶이 안 나가더래는 거예요.

그게 진짜 사랑이, 사랑 자체가, 사랑이란 말도 할 수 없을뿐더러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더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뭐냐 하면 내안에서 시비를 가리는 마음에서 벗어나야 돼요.

내가 이런 마음이 있으면, 늘 모든 사람들에 대해 “어 저건 틀렸는데” 근데 그런 마 음이 들면, “내가 그보다 낫다”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뒤에 숨어 있는 거죠. “저 사람 하는 게 틀렸어” 라는 생각은 내가 저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거죠. 항상 그렇잖 아요. 그런데 이걸 바꿔야 돼요.

 

우리가 분별과 판단이라는 말을 쓰잖아요?

분별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있는 것이 분별이고, 판단은 나로 하는 거예요.

판단은 내가 하는 거고 분별은 하나님이 주시는 눈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으로 보는 거고, 판단은 내가 보고 내가 듣고 내가 결정을 내리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있는 건 분별인데 판단은 내가 하는 것이죠. 판단하고 나서 우리는 대게 어떻게 합니까?

비난하고 정죄하고 시비를 가리죠.

여러분,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랑은 하나님께로 난 것이라고 그랬잖아요? 하나 님으로부터 오는 그 사랑이 뭐냐 하면 시비를 가리지 않아야 돼요. 시비를 가리는 사 람들은요? 사랑할 수가 없어요. 사랑이 나갈 수가 없어요.

어떻게 사랑이 나갑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 가장 조심해야 돼요. 하나님 나라에 내가 덕이 되려면 시비를 가리는 마음이 없어져야 돼요.

이게 여러분 그냥 되어지는게 아니예요. 제가 지금 그냥 말을 한다고 해서 여러분에 게 지금부터 시비를 가리는 마음 땅! 하고 없어지냐 하면 제 경험상 아니더라고요. 여전히 내 마음에 있어요. 또 내가 시비를 가리고 앉아 있어요. “어, 저건 아닌데” 이 러고 앉아 있는 거예요.

근데 제가 그걸 어떻게 벗었다고요? 훈련했어요. “남이 나보다 낫다”는 것을 훈련했 어요.

어떻게요? 그 분의 나보다 나은 점들을 자꾸 생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정말 그 영혼 을 사랑하기 시작했어요. 딱 요 두 가지요.

제가 금방 뭐라고 했습니까? 그가 나보다 나은 점들을 생각하기 시작하고,

두 번째는 그 영혼을 진짜 사랑하려고 그랬어요. 그 두 가지를 하니까 내 마음 안에 내 앞에서 상대방이 잘못을 하더라도 시비를 가리는 마음이 없어지고 그걸 보는 순간에 주님 한테 기도하는 거예요. 기도하는 마음이 생겨요. 그 영혼을 위해서.

그럼 내 마음 안에는 이미 판단하는 마음이 없어진 거예요.

아예 생기질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거기에 놀아나지를 않는 거예요.

판단하고 정죄하는 이 모든 것이 육신적인 삶이거든요.

하나님은 누누이 “육신적인 삶을 살지 마라, 너희는 영으로 살아라, 너는 이제 영이 됐다, 영의 인도함을 받아라.” 할렐루야.

영의 인도함을 자꾸 받을 수 있도록 나를 훈련시켜야 돼요.

그러면 내가 벗어져요. 그게 그냥 벗어지는게 아니라 1년 2년을 걸쳐서 벗어집니다. 여러분이 노력해야지요. 노력 안하고 살면요, 그냥 육신대로 판단하고 살고 시비를 가 리고 살고 저거 틀렸는데 이러고 사는 거예요.

그러면요 나에게는 정작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대인관계의 목표가 뭔지 아십니까? 대인과 영성에서 대인과 영성의 목표는 ‘내가 생명적인 삶을 사는 것’이예요.

내 ‘상대방에게 생명을 주는 삶’ 생명이 누굽니까?

 

‘예수님을 주는 삶’을 사는 것이 목표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시비를 가리고 있는 이상 은 결코 나는 주님을 줄 수가 없어요. 무능력해요. 나에게 예수가 나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빨리 벗어야 되고요. 그런데 빨리 벗을 수가 없더라고요. 제가 보니까 훈련 을 통해서 어느 새 내가 벗겨져 있더라고요. 할렐루야.

여러분, 우리 모두는 다 주의 일을 해야 돼요. ‘주의 일’이 뭡니까?

‘이웃을 사랑하는 것, 나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랑하는’ 거예요. 성도는 목사님을 맡았고 목사는 성도님들을 맡았어요.

서로가 서로를 맡은 거예요. 맡음 속에서 우리는 뭘해야 되냐 하면 생명을 줄 수 있 어야 돼요. 예수를 주는 거예요. 여러분, 하루 속히 늘 시비를 가리는 마음을 내 안에 서 벗겨낼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어떻게 노력하라 그랬다고요? 그 영혼을 정말 사랑하려고 노력해야하는 것이에요. 두 번째는 그 사람이 나보다 나은 점을 생각하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러면 우리는요, 사실 그렇게 자꾸 자기를 훈련하다보면 교만한 마음도 없어져요. 아멘.

이 세상적인 길과 그리스도의 길이 다르다고 그러잖아요.

내가 그리스도를 택하여 사는 자는요? 늘 낮은 자의 모습이죠.

세상적인 길을 택하여 사는 사람은요? 늘 강자가 되려고 하고, 높은 곳을 바라보고 높은 데 앉으려고 하고, 인정을 받으려고 하고 그러죠.

그러나 예수의 길을 택하는 자는 아까 우리 찬양하면서 제가 잠깐 저에게도 하나님께 서 음성을 주셨는데 오직 인정 받으셔야 할 분은 누구라고요?

예수님 한 분 밖에 없어야 된다는 것이예요.

그러면 우리는요? 인정 안 받아도 돼요. 나는 좀 밟혀도 돼요.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 뜻을 행하는 것이지요. 나도 인정 받고 하나님도 좀 인정 받고 이런 것을 하나님이 원하시는게 아니예요. 우리는 좀 밟혀도 돼요.

그런데 하나님은요? 하나님만이 인정받는 그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더라는 것 이죠. 할렐루야.

자~ 그래서 그 메뉴를 한 번 보죠. ‘육신에 속한 사람들의 특징’이 나타나는데 첫째,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모든 인간관계를 형성한다.’ 이게 육신에 속한 사람들의 특징 이죠. 나의 행복을 위해서,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거예요. 그런 데 여러분 이게 너무 무지한 것이 모든 인간관계는 누구로부터 오는가 하면 하나님으 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인간관계를 제대로 보는 눈이 열려야해요. 하나님이 모든 인간 관계를 형성시키세요. 그래서 그걸 우리는 환경이라고 말해요.

환경 속에서 하나님께서 set up해 놓으시는 인간관계들이 있어요. 그 인간관계를 하 나님이 만드신 거예요. 그게 우연히 생겼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아직 하나님이 뭘하고 계시는지 눈이 안 열린 상태죠.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모든 인간관계를 형성시키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하고 는 전혀 관계없이 사는 거예요. 이렇게 사는 것은 동물과 같은 인생이죠.. 하나님의 뜻하고 상관없이 사는 삶이요, 동물과 같은 인생이예요.

동물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지만 우리 인간은 죽으면 그 영혼이 영원히 안 죽는다는 게 더 불행한 거예요. 영원히 안 죽잖아요.

두 번째, 육신에 속한 사람의 특징 두 번째는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좇아서 행하는 거예요. 누가 한 마디하면 한 마디 해줘야 되고 두 마디 해줘야 되고 그리고 내가 좀 취급 좀 못 받는다 생각하면 화가 확 올라오고 이 모습들이요. 이렇게 살지 말라는 거 예요. 너희가 본능대로 살면 진노의 자식이라잖아요. 본능대로 살지 말라는 거죠. 정상 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은 본능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정상적인 그리스 도인의 삶은 본능이 우리에게 있지만 그걸 누르고 하나님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요, 인간관계에 있어서 ‘자기중심적’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바꿔져 나가야 되냐 하면 인간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 는 걸 볼 수 있어야 돼요. 내 중심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에게 set up시켜준 그 인간관계를 보면서 거기서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되는 것인지, 내가 어떻게 대해 야 할 것인지’ 그걸 생각하라는 거예요.

이것이 ‘자기중심적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이죠.

우리는 자기중심적인 그 인간관계에서 어떻게 바꿔야 된다고요? 하나님 중심적인 인간관계로 바꿔야 되는 거예요. 할렐루야! 항상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여러분 어때요?

매일 만나서 차 마시고 수다 떨고 점심 늘 같이 먹고 오늘은 너가 사고 내일은 내가 사고 그러면서 하루하루 이렇게 보내고 싶죠? 이게 뭡니까?

자기중심적인 인간관계죠. 그런데 하나님은요?

그러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에게 손 벌리러 오고 그 다음 한 번씩 나에게 확 해대는 사람들 있게 하기도 하고 그러시죠. 그럼 나는 그런 사람들 아예 안 쳐다 봐요.

“나 너 안보면 그만이야.”우리가 이렇게 살잖아요.

근데 그 얘기가 아니지요. 우리는 하나님 중심적인 인간관계를 보려면 “왜 저 사람을 하나님이 나에게 오게 하셨나?”

“왜 저 사람이 나에게 와서 안 좋은 소리를 하지?” 그를 통해서 나를 볼 수 있어야 된다고요.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을 수 있어야 돼요. 이게 하나님 중심적인 인간관계를 가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나에게 너무 잘해주는 사람하고 너무 친하게 지내면 나는 하나님 눈에 벗어나는 자가

 

되어 버려요. 왜요?

내 기분대로 사는 것 밖에 안되거든요. 우리 몸은 그래요. 사실은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하고 자꾸 있고 싶어해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래서는 우리가 다뤄지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 질 않기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 중심의 인간관계를 어떻게 우리 주위에 맺어 두시는가 잘 보란 말이예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큼.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거기에 맞게 반응해야 돼요. 아멘.

우리 에스겔서 36장 가봅니다. “에스겔서 36장 26절에서 27절” 1209페이지에 있네 요. 구약 1209페이지. 26절에서 27절. 다 같이 시작.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여러분, 우리 육신에서 굳은 마음과 부드러운 마음이 있는데 우리는 어떤 이웃에 대하여 내가 굳은 마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주님이 내 마음에 임하시면 부드러운 마음을 준다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고 어떤 특정한 한 사람에 대하여 내가 굳은 마음을 갖고 있으면 나는 이미 실패하고 있는 자예요.

이런 말 있잖아요?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마라.”

여러분 이러한 일들이 어디에서 일어나느냐 하면 부부 사이에서 서로 컨트롤하려고 하는데서 일어나요. 제가 한 번 경험해본 얘기입니다. 저는 버렸습니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거는 거요. 그래서 부부 싸움하고 말이예요.

그럴 필요가 없더라고요. 주님이 임하시면 부드러운 마음이 될 줄로 믿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관용하고 용서해주고. 아멘.

용서해주는 마음이 뭐예요. 부드러운 마음이예요. 그런데 내가 그것을 용서하지 못하 고 꽁 하고 있는 것. 이런 것이 굳은 마음이죠. 그런 것을 빨리 빨리 벗어야 돼요. 아멘.

여러분, 이런 경우가 있어요. 열 사람이 내 이웃인데 아홉 사람하고는 친한데 꼭 한 사람하고 나하고 사이가 안 좋으면 이것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들을 수가 있어요.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듣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의 통로, 하늘 문이 닫혀져 있을 수 있어요.

아홉 사람하고는 참 잘 친하게 지내는데 꼭 한 사람하고는 이게 안 풀어지는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야 되겠어요?

풀어야죠. 누구를 위해서요? 나를 위해서. 아멘.

 

나를 위해서. 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예요. 나를 위해서.

이게 뭡니까. 그 사람에 대하여 굳은 마음을 갖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린 어떻게 해야 돼요?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내가 그를 용서하겠습니다. 그에 대하여 전혀 굳은 마음을 갖 고 있지 않겠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야 여러분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또 하늘의 신령한 복을 문이 열려서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우리 마태복음 18장 한 번 가보죠.

“마태복음 18장 21절에서 35절”까지 같이 한 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 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곱번을 일흔번까지라도 할 찌니라

23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24 회계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25 갚을 것이 없는지라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한대

26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가로되 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

27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

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

29 그 동관이 엎드리어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30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31 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

32 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 감하여 주었거늘

33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34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35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 이 하시리라

우리가 이웃을, 나에게 잘못한 이웃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하나님도 나를 용서 안 해 줄 수가 있다는 거예요. 이웃을 용서하지 아니하면요.

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긴 것 같이 너희도 형제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우리는 일만 달란트 탕감 받았는데 일만 달란트와 백 데나리온 이게 차이가 얼만지 아시죠?

제가 일만 달란트 빚진 것을 탕감 받았는데, 백 데나리온이 얼마냐 하면 일 데나리온 이 하루 품삯이니까 백 불이죠. 그러니까 백 데나리온은 만 불 정도 되네요.

그런데 여러분에게 누가 오백 불 빚지고 돈을 안주면 어떻게 해요?

어떤 사람 보니까 천불인가 이천 불 정도를 떼였나봐요. 전화에 대고 그냥 막 뭐라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서 얘기하는 걸 보자면 만 불을 우리에게 빚진 자가 있어요. 그 걸 안 갚는다고 목을 잡아가지고 재판을 해서 감옥에 넣어버렸어요. 갚을 때까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한테 뭐라 그런다고요?

너가 일만 달란트 빚진 것을 내가 탕감해줬다는 거예요.

백 데나리온이 만 불 인데 하루 품삯이 일 데나리온이면 백 불 이니까 하루에 100불씩 번다고 계산하면 100일 일해서 모을 수 있는 돈이에요.

그런데 일만 달란트를 제가 계산해봤더니 하루 품삯을 100불로해서 10만년을 일을 해야 돼요.

여러분 몇 살 살다 갑니까? 100살 안팎이죠.

그런데 10만년을 일을 해야 일만 달란트를 벌 수 있는 거예요. 돈 하나도 안쓰고 다 모은다 해도요. 그것을 탕감해줬는데 우리가 죽었다 깨어나도 갚을 수 없는 그 일만 달란트 빚을 하나님이 탕감해줬는데 우리는 어떻게 한다고요?

우리에게 만 불 빚진 자. 그 자를 목을 잡고 안 갚으면 감옥에다 쳐 넣는 그런 짓을 우리가 서슴없이 하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가 죄 사함 받은 그것이 엄청 나잖아요. 원죄 에다가 과거의 모든 죄에다가 현재 짓고 있는 죄에다가 또 미래에 지을 죄까지 다 사 실은 탕감 받은 자들 이예요.

그 엄청난 죄 사함을 받은 자들이 나에게 조금 잘못한 형제를 용서 못한다는 그것을 두고 지금 얘기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에게 지금 잘못하고 있는 형제자매 그 모든 자들에게 내가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자로서 어떻게 해야 한다고 그랬어요? 나에게 잘못한 자가 있으면 베드로가 몇 번까지 용서한다고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하면 됩니까? 베드로는 일곱 번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주님이 뭐라고 그래요? 네게 이르노니 일곱 뿐만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까 지라도 하여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은 몇 번입니까? 490번이죠?

여러분 오늘부터 달력에다 한번 표시를 해보십시오. 오늘 잘못한 거요.

이걸 490번까지 한 번 세어보십시오. 이게 일곱 번씩 일흔 번 이라는 게 정말 490번 이 아니라 사실은 평생이라는 말도 될 수 있어요.

하나님의 이 말씀의 의미는 우리가 다른 각도로 생각해 볼 수도 있어요.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금방은 이렇게 보이는데 또 다른 각도로 보면 또 이런 의미가

 

돼요. 그러니까 490번 얘기가 아니라 우리는 평생 죽었다 깨어나도 일만 달란트 못 갚는 사람이니까 평생을 용서해라 이 얘기거든요.

그래서 여러분, 여러분에게 잘못한 모든 자들을 용서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 원합니다. 그걸 용서해야 내가 네 죄도 용서하겠다는 거예요.

용서안하면 어떻게 한다구요?

여기 성경대로 하자면 일만 달란트 탕감해 준 것을 취소하는 거예요. 취소하고 있잖아요.

우리가 좋은 말씀만 받고 정말 성경에서 얘기하는 진짜는 안 받고 그러면 안된다는 얘기죠.

일만 달란트 탕감 받은 것을 내가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한 걸로 말미암아 내가 하나 님한테 취소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잖아요. 여기 일만 달란트 갚을 때까지 여기 옥졸 한테 붙이래요. 그러니까 여러분 우리는 용서 안하는 사람이 없어야 돼요. 내 마음 안에서 내가 미워하는 자가 없어야 돼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앞에 가서 막 알랑 거리면서 잘해주지는 못할지언정 하는 행동 이 좀 미워도 내 마음 안에서는 다 풀어져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은 뭐를 보세요? 마음 안을 보세요.

그런데 바깥으로는 안 그런 척하면서 안으로는 막 미워하고 부글부글하고 이거는 더 잘못된 거지요.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하자고 하는 건 뭐냐 하면 내 안에서부터 그를 용서하라는 겁니다. 아멘.

바깥으로는 아직 좀 덜 된다 할지라도 나중에 되겠지만요. 안에서부터 내가 그를 진 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중심으로 용서하고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요한복음 13장 한번 가봅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 35절” 다같이 한번 읽어보

겠습니다.

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아멘. 할렐루야. 우리 요한일서 보겠습니다. “요한일서 4장 10절에서 12절” 말씀 읽 어 보죠.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 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 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아멘. 우리 주여 한 번 부르고 기도하실 때 하나님 내 안에 미워하는 자가 없게 하시 고 온전히 사랑케 하시고 일곱 번씩 일흔 번 이라도 용서하며 살겠습니다. 그가 나에 게 잘못하는 즉시 내가 용서하며 하나님으로 내가 그를 대하겠습니다. 한 번 기도하 겠습니다. 주여 한번 부르고 기도합니다.